5

 

 

다음날부터 제마는 오후엔 외가집을 찾아가군 하였다.

외가집은 향교마을 한켠에 있었다. 움집처럼 키낮은 추녀아래 찌글써한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굴속같이 어둡고 답답한 방이 사람을 삼켜버린다.

이런 집이 참말 꿈결에도 가보고싶어했던 외가집이란 말인가.

허리가 꼬부라진 외조부모님들이 우리 외손자가 왔다며 꼭 품어줄 때 눈물이 쏟아졌다.

늙으신 외할머니가 차려준 저녁상은 어떠했던가. 제마쪽에는 흰쌀 하나 섞이지 않은 강조밥에 감자국이고 조부모님들켠에는 멀건 죽이 담긴 죽사발이다.

《제마야, 우린 늙어 이발이 없어서 일부러 죽을 쑤어먹으니 어서 먹어라.》

제마는 죽맛이 어떨가 하여 얼른 외할머니 죽사발에서 한숟갈 떠먹어보았다.

생도토리를 씹는것처럼 쓰고 텁텁하고 게다가 깔깔하기 짝이 없는 별난 죽이였다.

제마는 강피쌀로 쑨 강피죽이 외가집에선 상음식인줄 알수 없었다.

벼가 안되는 진땅에 심는 불그스름한 강피는 곡식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농사군들은 그 강피도 부족하여 대충 껍질을 벗겨 죽을 쑤어먹는다.

외가집의 일은 정말 고되기 그지없었다. 볕에 탈대로 타서 얼굴이 새까만 외조부모님들이 땀에 얼굴이 흙먼지로 범벅이 되여 이악스레 김을 맨다.

제마가 호미를 들고 조밭에 들어서니 외할머니가 변이 난듯이 야단했다.

《에그, 네가 이러면 우리 가슴이 터진다. 너만은 고생을 시키지 못하겠다.》

외할머니는 옷고름을 눈에 가져가고 외할아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제마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래도 집에서는 기장쌀이 섞인 조밥을 떨구지 않는데 어이하여 메좁쌀이나마 외가집에는 보내주지 않는걸가. 집에는 또 무명천쯤은 넉넉한데 베옷도 부족하여 누덕누덕 덧기워입는 외가집에 베천이야 왜 보내주지 못하는걸가.

야속한 아버지였다.

할머니에게 외가집을 도와주자고 청해볼가.

그러나 외조부모님들은 그의 속생각을 알아차린듯 《다른 생각을 하겠거든 더는 여기로 걸음을 말아라.》고 하였다.

가난해도 의기를 가지고 사는 외조부모님들이였다.

악을 박박 써서 호미질을 하니 제마는 다소나마 안타깝던 기분이 풀어지는것 같았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에 두눈이 쓰리고 콩알같은 물집들이 터져 손바닥이 얼얼해도 외조부모님들을 자기 힘으로 돕는다는 생각에서 힘든줄을 모르고 더욱 열성껏 호미질을 하였다.

문득 책에서 본 《농부의 탄식》이라는 시 한구절이 입에서 절로 터져나왔다.

 

지난해의 모진 흉년에 백성들은 굶주렸네

관리놈들 조세독촉 무섭게 구는구나

마을사람들 살길 찾아 흩어져가니

농사일 하는것도 어려운 일이로세

그 누가 죽어가는 백성들을 구원해주려는가

 

크게 읊어대는 제마의 소리에 외할아버지가 허리를 펴며 감탄조로 말했다.

《오, 그렇게 백성생각을 해주는 선비도 있느냐? 제마야, 너도 그런 사람이 되여라.》

제마는 대답대신 주먹을 불끈 쥐였다.

어서 커서 조부모님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의로운 일을 찾아하리라. …

며칠이 지나자 어인 까닭인지 기로사는 제마에게 외가집에 가지 말고 온종일 집에 들어앉아 책만 읽으라는 분부를 내리였다.

워낙 성미가 조급하고 헤덤비기 잘하는 제마인지라 하루종일 집안에 꾹 박혀있자니 엉치가 쑤시고 손발이 근질거려 견딜수 없었다.

게다가 책을 펼치면 글줄이 아니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정겨운 모습이 떠올랐다.

하여 제마는 이틀도 견디지 못하고 그 다음날 오후에 뒤뜰안의 담장을 넘고야말았다.

종종걸음을 치여 외가집앞에 이르렀는데 누군가의 억센 손이 덜미를 잡아당기는것이였다. 돌아보니 웬 어른이 눈을 부릅뜨고있었다.

《이녀석! 네 눈엔 저게 안 보이느냐?》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외가집 사립문에 당장 살가죽을 찌를듯 날카로운 가시들이 삐죽삐죽한 엄나무가지들이 범접할수 없도록 쳐있는것이였다. 엄나무가지들은 외가집의 지붕에도 얼기설기 올라있었다.

제마는 눈앞이 아찔하였다.

열병이라는 무서운 돌림병이 외가집에도 들이닥쳤음을 깨달았던것이다.

열병에는 힘센 장사도 맥없이 쓰러진다.

요즘 열병은 사람의 씨를 말릴 기세로 사납게 마을과 마을을 휩쓸고있었다.

열병든 집들에 엄나무가지를 베여다 둘러쳐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접촉할수 없게 하는것은 이 고장의 풍습이였다.

매발톱같이 날카로운 엄나무가시앞에서는 누구나 주춤거린다. 열병귀신도 엄나무가시를 두려워할것이라고 여겨 그런 풍습이 생겨난것이리라.

제마는 기로사가 왜 외가집으로 가지 못하게 하고 책만 읽으라고 했는지를 깨달았다.

《외할머님!? 외할아버님!?》

방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열병에 든 외조부모님들은 외손자가 그대로 돌아가기를 바래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마는 끝내 사내에게 등을 떠밀려 외가집문앞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저녁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기로사는 그가 다시는 담을 넘어 나갈수 없도록 외손녀를 붙여놓았다.

한옥이라고 부르는 외손녀는 제마보다 두살우였다.

한옥은 제마가 갑갑해할세라 노래도 불러주고 고을형편도 알려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며칠전에 백성들이 열병든 집들에 쌀을 내여주십사 하는 진정서를 함흥감영에 냈다고 한다.

그것을 받아본 함경도 관찰사란자는 감히 나라의 쌀을 넘겨다본다면서 진정서를 낸 백성들에게 곤장을 안기게 했다는것이다.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랬다는데…

제마는 어린 가슴에도 의분이 끓어올라 당장 관가로 뛰쳐가서 관찰사란자와 한바탕 싸우고싶었다.

한옥의 엄격한 감시에 꼼짝 못하고 며칠동안 글방에 들어박혀 몸살을 앓던 제마에게 갑자기 기로사가 오늘은 어데 좀 가보자며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린 제마는 조롱속에서 놓여난듯 하여 기쁘기만 한데 기로사의 얼굴은 웬일인지 침중하였다.

입을 다물고 조용히 끌려가는수밖에 없었다.

기로사는 반룡산에서 줄기쳐내린 야산중턱으로 그를 이끌고갔다.

야산중턱의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삽질을 하고있었다. 사내들은 땅을 판 광안에 관을 넣고 매몰할 황토와 석회를 섞고 녀인들은 제상에 낼 음식을 다루고있었다.

제마는 무서움으로 숨이 막히는듯 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기로사에게 끌려갔다.

여느때의 장례 같으면 골안을 울리는 비창한 호곡소리에 지나가던 길손들도 눈물을 흘렸을텐데 이제는 사람들이 슬픔에 지쳐서인지 잠잠하였다.

하루에도 골백번 생땅을 파내고 식솔들을 묻어야 하니 울 기력마저 없어진 사람들이였다.

지나간 력사를 상고하여보면 죽음의 돌림병은 대개 5~10년을 주기로 하여 들이닥쳤다.

멀리는 그만두고 10여년전에 터졌던 돌림병으로 한성에서만도 수천명이 생죽음을 당했다.

돌림병은 사람들의 생명을 무리로 앗아가군 하였다.

동양에서는 주로 열병 같은 돌림병이라면 서양은 흑사병(페스트) 같은 돌림병으로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시뻘건 봉분들을 손질하는 상두군들을 바라보는 기로사의 눈에 눈물이 고이였다.

그것을 본 제마는 놀라 부르짖었다.

《선생님!》

기로사는 제마를 와락 부둥켜안고 그만 오열을 터치였다.

제마는 어깨를 세게 떠는 그를 보자 더 무서워졌다.

《선생님…》

갸날프게 울리는 그 소리에 기로사는 한참후에야 마음을 진정하고 제마의 등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너에게 이제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안계신다.》

그 순간 제마의 몸이 꽛꽛이 굳어졌다.

《선생님! 그건… 그건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기로사는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얘야, 할머님도 외조부모님들도 저기에… 바로 저기에 누워계신단다.》

제마는 눈길을 허둥거렸다.

산중턱의 좀 높은 곳에 생겨난 봉분이 이전에 묻힌 리진사와 합장한 김씨의 묘이고 그 아래기슭의 한켠으로 치우쳐있는 새 봉분은 외조부모님들이 함께 묻힌 묘이다.

제마는 우에 있는 봉분앞에 차린 제상에서 술을 붓는 사람이 아버지 리반오임을 알아보고 몸을 떨었다.

《할머니이!?》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합장묘에 달려가 어푸러지며 몸부림을 쳤다.

제상에 술을 붓던 반오도 상두군들도 봉분을 그러안고 태질하는 제마를 보며 같이 울었다.

기로사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작은 어깨에 손을 얹고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울음을 그쳐라. 글공부를 열심히 하여 인재가 되길 바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뜻을 따르자면 어른들처럼 슬픔을 참을줄도 알아야 한다.》

울음소리가 멎었다.

기로사는 제마를 일으켜세우며 타일렀다.

《어서 할머님께 술을 부어올려라. 그래야 할머님이 편히 잠드실수 있단다.》

제상에 술을 붓고 절을 하는 제마의 가슴속에서는 한마디 웨침이 고패치고있었다.

병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제일 큰 슬픔을 주는 악귀로구나.

그날은 제마에게 있어서 영원히 아물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겨준 비운의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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