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벌써 선기가 났다.

삼경이 지나도록 잠자리에 누운채 궁싯거리던 리제마는 끝내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여놓고말았다. 이밤 어떻게 잠들수 있단 말인가.

이밤은 진해에서의 마지막밤이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진해고을을 떠나야 한다.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길로 떠나야 한다.

부임되여올적에 한생 이 고장에 눌러앉아 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어도 이렇게 빨리 떠나야 할줄은 몰랐다.

진해현감으로 부임한지 해수로는 3년이라지만 바로 따지면 두달이 모자라는 2년이다. 나라법에 고을원의 임기는 출근일수로

1 800일(집안식구를 데려오지 않았을 경우는 900일)을 채워야 다른데로 조동될수 있다고 정해있다.

물론 국법을 어겼을 때는 부임되여온 그해로도 쫓겨갈수 있다. 그러나 쫓겨가는것도 아니고 2년도 못돼서 더 높은 관직에로 출세하여가니 꿈만 같다.

지금은 바야흐로 논밭들에서 벼이삭, 조이삭들이 한창 패는 좋은 시절이다. 농사작황을 보면 올해도 지난해 못잖은 풍년이 들것 같다.

풍작을 걷어들이는 풍요한 가을을 보고 가면 좋으련만…

그러나 지체말고 새 임지로 가라는 임금의 어지를 받은 몸이니 한시인들 지체하랴.

리제마는 벌써 몇번째나 어제 있은 일을 돌이켜보았다.

그제 오후 파발이 달려와 래일 아침 웅천관가로 올라오라는 웅천군수의 분부를 전해주었다.

진해현은 작은 고을이다보니 웅천군에 속해있어서 진해현감은 웅천군수의 관할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현감의 직분이 웅천군수에게 종속되여있는건 아니다. 작은 고을의 현감일지라도 큰 고을의 군수나 마찬가지로 관찰사와 절도사에게 매여있다.

사실 진해현감이 웅천군수와 만나는 일은 한해에 기껏 몇번정도이다. 그것도 조세를 받아들인다거나 군사일과 같은 큰 일감이 아니라 다리를 새로 놓고 도로를 보수하는 등 부역을 내는 일로 마주할뿐이다.

가을걷이때가 되여오니 도로를 손질하자고 불렀을가 하고 생각하며 웅천관가뜨락으로 들어서니 마침 웅천군수가 대청마루로 나오고있었다.

리제마는 례법대로 군수를 향해 섬돌아래에서 몸을 구부리며 절을 차렸다.

리제마의 절을 읍으로 답례한 웅천군수는 야릇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늘은 공을 내가 부른게 아니고 한성에 상경하셨다가 곧장 여기로 행차하신 관찰사대감께서 부르신거요.》

리제마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은 고을의 현감으로서 관찰사를 만나는 일은 한해에 한번 있을가말가 한 일이다.

대개 관찰사들은 조정대신들가운데서 특별히 임금의 령을 받고 한개 도를 맡아 내려오는 까닭에 그 행차가 요란하고 엄하여 감히 낮은 벼슬아치들은 함부로 가까이 할수 없다.

관찰사가 무엇때문에 한성에서 내려오자바람으로 불렀을가. 혹시 조정에 불려가서 왜병선을 놓아보낸 일로 추궁을 받은것은 아닐가. 그럴줄 알았으면 왜적선의 일을 관찰사에게도 미리 알렸을걸…

리제마는 왜적선을 쫓아보낸 일을 그날로 한성에 가있는 수군첨절제사에게만 전령을 보내 알리였다. 수군과 관련된 일이니 수군첨절제사가 알아서 뒤일을 조처하리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다시는 우리 바다에 기여들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도망친 왜적선이 또다시 우리 바다에 기여든것이 아닐가. 그럴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성에 올라갔던 관찰사가 왜적선의 행처를 알아가지고 그 병선을 놓아보낸 당자를 문책하려고 곧장 웅천으로 내려왔을것이다.

이제는 벌을 받는 길밖에 없다.

리제마는 긴장한 기분으로 웅천군수를 따라 동헌으로 들어갔다. 두마리의 학과 구름이 뚜렷한 흉배를 보는 순간 리제마는 관찰사를 알아보고 그앞에 꿇어엎드렸다.

등받이교의(의자)에 앉은 관찰사는 꿇어엎드린 리제마를 잠시 굽어보고나서 비둔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에서 《교지!》 하는 웅글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리제마는 놀라 머리를 방바닥에 조아렸다.

교지라면 임금의 어명을 적은 글월이란 뜻인데 관찰사는 어명이 적힌 종이말이를 펼쳐들었을것이다.

관찰사의 무뚝뚝한 음성이 동헌을 울리였다.

《진해현감이 백성들을 잘 보살펴 민심을 크게 얻었으니 농사도 잘 짓고 풍속도 고르게 하고 군일도 잘 도왔다고 한다. 실로 갸륵한 일이로다.

진해현감은 <수령7사>의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아 포폄때마다 매번 상을 받았다고 한다. 능히 후진의 본보기로 삼을만 하니 고원군수를 제수하노라. 무인년 ×월 ×일.》

리제마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떨어졌다.

관찰사에게서 문책을 받고 엄한 벌이 떨어질줄 알았는데 뜻밖에 군수로 임명한다니 이럴 때도 있는가. 국법대로 하면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의논하여 등급을 매기는 열차례의 업적평가에서 매번 다 《상》을 받아야만 벼슬이 한품계 올라갈수 있다. 열차례중 두번 《중》을 받으면 록봉이 없는 관직에로 돌려지고 세번 《중》을 받으면 파직을 당해야 한다.

그런데 한 품계도 아니고 두 품계나 뛰여넘어 고원군수를 받았으니 어찌 황송하여 몸이 떨리고 땀이 나지 않겠는가.

리제마는 눈앞이 어지러워서 바닥에서 이마를 떼지 못하였다.

이런 때 큰소리로 《성은에 망극하오이다.》라든가 《충정으로 보은하겠소이다.》라고 해야 한다는것을 알면서도 리제마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어나게.》

리제마는 관찰사의 거듭되는 재촉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감께선 그대의 공로를 가상히 여겨 큰 고을을 맡겨주셨으니 일을 더 잘하리라고 믿네. 자, 받게. 고신일세.》

리제마는 관찰사가 내여주는 고신을 받아들었다.

고신의 표지에 《교지》라는 두 글자가 현판의 글인듯 두드러지게 보였다.

교지란 4품이상의 벼슬을 내릴 때 신하에게 하사하는 임금의 임명장이다.

고신을 펼치니 글자들이 선명하게 안겨왔다.

《신 리(제마)를 종4품의 고원군수로 봉하노라. ××년 ×월 ×일》

날자를 가리키는 그우에 주먹같은 옥새날인이 있었다.

《리공에겐 시간이 없네. <해유>(인계문건)는 념려말고 래일 임지로 떠나야겠네. 당분간 새 현감을 보낼 때까지는 웅천군수가 진해정사를 겸해보도록 하겠네.》

리제마는 아연했다. 아무리 부임지로 가는 일이 촉박하더래도 며칠쯤은 말미를 주어야 하질 않겠는가.

나라법에 고을원이 바뀔 때면 구관사또는 신관사또에게 공무를 인계하고 인계정형을 문건으로 작성한 《해유》를 호조에 바쳐야 한다. 그러면 호조에서 《해유》를 검사하고 리조로 통지하며 리조에서는 그 통지를 받은 후에라야 구관사또에게 다른 자리로 옮겨가도록 허락한다.

굳이 나라법을 어기면서까지 부임지로 가라고 등을 떠밀어보내는 까닭이 무엇일가.

리제마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관찰사의 다음말은 제법 부드러웠다.

《본관은 공같이 청렴결백하고 문무를 겸비한 부하를 남에게 주고싶지 않네. 그러나 나라사정을 먼저 생각할줄도 알아야지. 상감께선 고원일이 근심되시여 자네를 지체말고 떠나보내라 하셨네.》

리제마는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나마 사사기분에 잠겨 의혹을 가지다니.

리제마는 그 자리에서 대궐이 있는 한성을 향해 절을 하는 례를 차린 다음 관찰사와 웅천군수를 하직하고 진해로 말을 달려왔다.

그리고 즉시 6방관속들을 모이게 하였다.

호방을 보니 얼굴이 뜨거웠다. 그가 경주감영에서 달라는대로 재물을 꿍져준 덕에 포폄에서 매번 상을 받은것이 아닌가.

사실 고을정사를 보면 겉으로는 잘되고있는것 같으나 속은 이전과 별로 다른게 없다. 여전히 관찰사와 병마절도사 같은 큰 도적들에게 재물을 실어다 바쳐야 하고 그런데로부터 가렴주구를 피할수 없었다. 이것이 량반세상의 법도라 그 누가 없앨수 있단 말인가.

리제마는 한탄조로 말했다.

《벼슬사는 사람치고 한자리에 머물러있을수는 없는것이고… 반드시 옮겨감은 정해진 리치라 난 래일 여길 떠나야 하오.》

6방관속들의 얼굴에 모두 실망이 어렸다.

리제마는 가슴이 알알하였다. 그래도 여기 모인 사람들은 백성들을 동정하여 될수록 그들에게 해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이들과 헤여져야 하다니…

《자고로 얻은 지위는 버리기 쉬우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할수 있는 지위를 얻긴 힘들다고 하였네. 난 처음 자네들을 불러냈을적에 하고싶은 말은 다했고 손잡고 일해오면서 뜻도 통해왔네. 그러니 무슨 말을 더 할텐가. 그래도 한마디 한다면 그대들은 그전처럼 세상을 등지고 살면 안된다는것일세. 오늘과 같이 사방에서 오랑캐들이 우릴 먹자고 호시탐탐 노리고있는 때에 세상을 외면하면 죄로 될걸세. 난 그대들이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할줄로 아네.》

6방아전들도 라졸들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한가지 당부할것은 내가 고을을 떠나간다는 말을 당분간 하지 말아주게. 지금은 태평시절이 아니니 민심이 흔들려선 안되네.》

리제마는 곧 웅천군수에게 인계해줄 문서들을 리방에게 맡기고 호방을 불러서는 이런저런 일로 관가재물을 당겨쓴것을 자기의 남은 록봉으로 메꾸도록 하였다.

워낙 그시그시 정사를 끊고맺고 깐지게 해온 리제마에게는 인계와 관련하여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하여 오후 일찌감치 관속들을 들여보내고 제포에 나가 수군들과 하직인사를 나누었다.

팔물군자탕을 장복하여 페로를 말끔히 털어버린 수군첨절제사는 자기 집안에서 물려온다는 보검을 내여주며 눈물을 흘리였다.

갑자기 밥익는 냄새가 풍겨왔다. 밥익는 냄새에 생각에서 깨여난 리제마는 눈길을 들었다.

방문으로 동터오는 빛이 휘연하게 비쳐들고있었다.

그러니 밤을 꼬바기 지새운것이였다.

리제마는 기지개를 한껏 켜고 일어섰다.

진해고을만큼 정을 쏟아붓고 심혈을 기울인 고장이 있었던가. 앞으로도 있을것 같지 않았다.

정든 사람들, 정든 땅을 그대로 두고 떠나가야 하니 마음이 뻐근하였다.

해뜨기 전에 아침을 먹은 리제마의 일행은 조용히 동헌을 나섰다. 사람들이 길을 오가기 전으로 고을을 벗어나야 한다.

일행이라야 그전보다 방자겸 밥시중을 맡은 을순이 하나 더 늘었을뿐 끌고가는 짐도 이전과 다를바 없다. 타는 말 한필 , 부담짝을 실은 짐말 두필이 전부였다.

삼문을 나선 리제마는 너무도 놀라운 광경에 우뚝 굳어지고말았다.

관가의 앞마당이 인산인해가 아닌가.

《사또님!》

군중속에서 등굽은 로인이 초립동이 총각애의 손을 잡고 나와 꿇어엎드리는것이였다.

리제마는 그들을 알아보았다. 두해전 어느 마을에 앉은뱅이아이가 있다기에 가보니 정말 일여덟살 났을가 한 총각아이가 방을 기여다니고있었다.

너무도 가슴이 아파 그날부터 몇달간 틈을 내여 침도 놓고 약도 먹였더니 놀라웁게도 일어나 걷는것이였다.

그 총각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타난것이였다.

《사또님! 가지 마소이다. 사또님이 가시면 우린 한지가 되오이다.》

로인의 말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부르짖었다.

《가지 마소이다.》

《사또님!》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나와 로인의 뒤에 꿇어엎드렸다. 태반이 병을 치료하던 나날에 얼굴을 익힌 사람들이였다.

《가지 마소이다.》

리제마는 로인의 손을 잡아일으켰다.

《로인님! 너무 걱정마소이다. 6방관속들이 다 고을을 위해 의로운 일을 찾아하려는 사람들이니 백성살이를 잘 알아줄것이오이다. 부디 앓지 마시고…》

리제마는 눈물이 앞을 가리워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때 《사또님!》 하는 어떤 녀인의 챙챙한 웨침소리에 이어 인파를 헤치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에도》집의 모녀였다. 그들의 뒤에 수군첨절제사의 전령이 서있었다.

《큰 세상에도》가 술주전자를 들고 《작은 세상에도》가 받쳐든 술잔에 술을 부었다.

《큰 세상에도》가 눈물이 글썽한 눈을 슴벅이며 입을 열었다.

《사또님! 이렇게 떠나야 하오이까?》

리제마는 할 말이 없었다. 빈번히 《세상에도》집앞을 지날 때면 그 집 모녀가 달려나와 들어가자 하였는데 그때마다 다음번엔 꼭 허리띠를 풀어놓고 술대접을 받겠다며 만류했었다.

《사또님! 술을 받으시오이다. 사또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고… 사또님께서 돌봐주신 고을사람들을 대신해서 부었나이다.》

《작은 세상에도》가 맑은 술이 찰랑이는 술잔을 내밀었다.

리제마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마시겠소. 고을사람들에게 복이 들기를 바래서, <세상에도>집에 태여날 아기의 복을 바래서 마시겠소.》

리제마는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아, 정든 사람들과 헤여지기란 어려운 법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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