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꽃피는 봄이 왔다지만 리제마는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날마다 들려오는 시국소식은 불안하기만 하였다.

박규수가 보내준 글월에는 김옥균이 사간원의 정언(임금의 언행과 정사를 간하는 관청의 정6품벼슬)으로 승진하였고 그가 은밀히 충의계를 무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불길한 소식들도 적혀있었다. 불길한 소식이란 다소나마 군력을 기르는데 힘쓰던 대원군이 민비일파에 의해 조정에서 밀려났고 한성에서는 왜놈들과의 《국교회복》을 위한 굴욕적인 교섭이 진행되는 속에 올 정월에 왜군을 가득 실은 7척의 왜적선들이 부산포에 닻을 내렸다는것이였다.

박규수는 글월에서 오늘의 형세로 보아 불원간 왜놈들이 전란을 일으킬듯 하니 그 어느때보다도 제포의 수군일을 잘 도와야겠다고 강조하였다.

진해앞바다는 전라도앞바다로 통하는 수로의 길목이자 진주로 들어가는 륙로의 길목을 막는 관문이라고도 할수 있다. 제포를 적에게 빼앗기면 적들은 손쉽게 우도병마절도사가 있는 합포(마산)를 기습하여 진주로 쳐들어갈수 있고 바다로는 서쪽의 거제도와 통영사이의 좁은 수로 견내량을 제압하여 전라도수군의 목을 조일수 있다.

리제마는 매일같이 제포에 나가 이제는 병이 깨끗이 나은 수군첨절제사와 함께 수군들의 교련모습을 보아주군 하였다.

그만하면 수군사들의 배다루는 솜씨도 적병선을 기습하는 솜씨도 괜찮다고 할수 있으나 걸린것은 확실히 병기였다. 서양포로 장비한 왜적선과 맞서려면 병쟁기를 갱신해야 한다.

생각다못해 수군첨절제사는 한성에 가보겠다고 하였다. 무위소(왕궁의 수비를 담당한 군사기관)에 친구들이 있는데 거기서 만드는 7련발조총과 사거리가 긴 화포들을 구해오겠다는것이였다.

좋은 일이다. 조정에 안면이 넓은 사람이니 아무렴 무위소에서 만든다는 병기야 가져오지 못하겠는가. 수군첨절제사는 한성으로 떠나면서 돌아올 때까지 제포의 수군일을 리제마에게 맡기였다.

누구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고 해전에도 밝은데다 현감의 직분에 관내의 군사일도 돌보게 되여있으니 리제마를 내놓고 다른 사람에게는 제포를 맡기지 못하겠다는것이 그의 주장이였다.

하여 리제마는 수군첨절제사가 돌아올 때까지 제포에 나가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리제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지휘선인 판옥선에 올라 병선들이 싸움진을 펼치는 교련을 보아주고있었다. 그런데 《세상에도》집 사위인 전령이 달려와 큰소리로 고하였다.

《사또님! 봉화가 오르고있소이다.》

급히 눈길을 돌려 남쪽을 살피니 정말 가마섬켠에서 짙은 연기가 타래쳐오르고있었다.

앞쪽 바다에 수상한 배가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리제마는 즉시 구리빛거폭(지휘봉)을 추켜들고 출전령을 내리였다. 북소리가 울리자 판옥선을 선두로 한 병선들이 기치를 펄럭이며 가마섬을 향해 질주했다.

판옥선의 이물우에 우뚝 선 리제마의 손에서 거폭이 오르내렸다.

《학익진을 펴라!》

전령이 리제마의 령을 되받아넘기고 기수가 기발을 휘둘러 병선들에 신호를 보냈다.

병선들은 일제히 판옥선을 선두로 하여 두줄로 학이 나래를 펼친듯 한 학익진을 이루었다.

임진왜란때 리순신장군은 학익진으로 왜적선들을 무리로 쳐부셨다.

노군들은 기세드높이 노질을 하고 포수, 조총수, 궁수들은 이를 갈며 앞을 노려보았다.

가마섬을 가까이 하니 봉화는 10여리앞에 있는 보기섬에서 오르고있었다.

그렇다면 수상한 배는 보기섬쪽에 있을것이다.

드디여 수상한 배가 걸려들었다. 보기섬근처에 돛을 내린 큰 배 한척이 있었다. 국기도 병선기도 띄우지 않아 어느 나라 배인지 알수 없었다.

리제마는 부르짖었다.

《전속 앞으로!》

아군의 화포는 사거리가 멀지 않아 될수 있는 한 빨리 이양선에 가까이 접근해야 우세를 차지할수 있다.

이양선의 갑판우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형체가 똑똑히 보이자 리제마는 거폭을 높이 쳐들었다.

《포 한방을 쏘아 어느 나라 배인지 정체를 밝히게 하라!》

리제마의 군령에 판옥선에서 화포가 불을 토했다.

꽝!-

요란한 포성에 이어 이양선앞에서 물기둥이 솟구쳐올랐다. 그러자 이양선에서 국기와 함기가 서서히 떠올랐다.

허연 백판에 피자욱같은 벌겋고 둥근 자국이 꾹 박혀진 기발을 보았을 때 리제마의 눈에서 시퍼런 불이 번쩍였다.

저건 왜나라의 국기가 아닌가. 만일 조금이라도 반항한다면 미국놈 《셔먼》호를 대동강에 처박은 평양사람들처럼 무자비한 불벼락을 안기리라.

리제마는 거폭을 틀어잡고 웨쳤다.

《위협포격을 들이대면서 왜놈배를 포위하라!》

병선들은 즉시 포문을 열었다.

꽝!-

꽝!-

포성이 바다를 뒤흔들고 왜적선의 지척에서 연방 물기둥이 솟구쳤다. 왜적선의 왜놈들은 불의에 나타난 조선병선들을 보고 아우성을 쳤다.

지금껏 가고싶은대로 개싸다니듯 했지만 걸치는것 하나 없었는데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정예한 병선들이 불길을 토하며 에워쌌으니 청천벽력이 아닐수 없었다.

리제마는 적들이 혼비백산해있는 틈을 타서 지체없이 왜적선을 기습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빨리 저놈 배에 배를 붙여라!》

군사들이 나는듯이 왜적선의 선체에 다리를 놓았다.

리제마는 지체없이 다리를 타고 왜적선의 갑판우에 올라섰다.

그의 뒤로 창검이며 조총을 꼬나든 수군사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왜적선에 짓쳐올랐다.

정신이 들었는지 왜놈들이 갑판으로 쓸어나왔다. 순간이라도 우물쭈물한다면 신식총을 가진 왜놈들에게 우세를 떼울수 있었다.

리제마는 《나를 따르라!》 하고 소리치며 군교인듯 한 왜놈을 향해 비호같이 달려들었다.

어느새 군교인듯 한 놈의 목을 한팔로 감아쥔 리제마는 총을 쏘려는 왜놈을 발길질로 쓸어눕히고 벽력같이 소리쳤다.

《맞서는 놈은 죽여버릴테다!》

왜말을 아는 전령이 리제마의 말을 류창하게 통역하였다.

성난 맹호같이 달려든 조선군사들의 기습에 왜놈들은 선손을 떼우고말았다.

갑판에 몰켜선 왜놈들은 조선군사들에게 두팔을 붙잡히여 총을 쏠수 없었다.

리제마는 목을 조여서 기절할번 했던 군교놈을 놓아주며 호령했다.

《너희 대장에게 길잡이를 해. 어서!》

전령이 통역하자 그제야 살았다고 생각했는지 군교놈은 머리를 갑삭이며 앞서 걸었다.

그놈을 앞세우고 어느 선실에 들어가니 시꺼먼 전복을 입은 왜놈들이 소총을 꼬나들고 당장 쏠듯 살기등등해있었다. 리제마의 뒤에서는 조총과 검을 틀어쥔 군사들이 그놈들을 노려보았다.

리제마는 놈들의 어깨우에 별모양의 작은 쇠쪼각들이 붙어있는것을 보고 이놈들이 왜적선의 두목들임을 짐작하였다.

이제 조금이라도 약한 기색을 보인다면 놈들은 소총을 발사할것이다. 그러면 피를 보게 될것이다. 아군의 손실이 없이 왜놈들을 제압하자면 대담무쌍해야 한다.

리제마는 선실벽에 걸려있는 왜검을 띠여보고 눈 깜빡할 사이에 손을 놀려 그것을 벗겨들었다.

《얏!-》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리제마의 손에서 왜검은 두동강이 나고말았다.

왜놈들은 전률했다. 그 어떤 적수의 목도 단숨에 버일수 있다는 단단한 왜검이 조선장수의 손에서 수수대인듯 여지없이 동강나버리다니…

리제마는 량손에 동강난 왜검쪼각을 하나씩 들고 태연히 걸상에 걸터앉았다.

《우리와 맞서려는자가 있다면 이 칼 신세를 면치 못할줄 알라.》

전령이 사기나서 통역하였다.

《병쟁기를 거두라.》

리제마의 호령에 왜놈들은 소총을 내려놓았다.

《누가 이 배의 우두머리인가?》

기가 죽은 왜놈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그중 한놈이 한걸음 나섰다. 어깨우에 별쪼각이 다른 놈들보다 많은것으로 보아 배의 함장이 틀림없었다.

리제마는 그놈의 멱살을 잡아 바다에 처놓고싶었으나 분노를 다잡았다.

《나는 우리 조정의 전권을 맡은 수군첨절제사의 수하군장이다. 너희들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우리 바다에 들어왔는가?》

전령이 통역해주었다.

《우린 <천황>페하의 칙령을 받고 조선과 <국교회복>을 할 중임을 맡은 사절단을 부산포에 건네다주고 돌아가려던중 먹을 물이 떨어져서 음료수를 보충하러 이 섬에 들린거요. 그런데 어이하여 귀측은 우릴 원쑤처럼 여겨 포를 쏘고 위협하는가?》

리제마는 두동강난 왜검을 선실바닥에 내던졌다.

챙강-

볼꼴없이 나딩구는 왜검동강을 보고 왜놈들은 공포에 질렸다. 리제마는 함장놈을 노려보며 저력있게 말했다.

《하나 묻겠다. 너희들은 도적이 도적이야 하는 말을 아는가? 너희 섬나라에선 도적이 들면 대문을 활짝 열고 맞이하는가?》

함장놈은 대답이 궁한지 한참 끙끙대다가 대꾸했다.

《조선은 우리 일본과 국교를 맺으면 덕을 볼수 있소.》

리제마는 함장놈의 뱁새눈을 쏘아보며 부르짖었다.

《허튼소리 말아. 덕으로 말하면 옛적부터 너희들이 우리 덕으로 살아왔다.》

함장놈은 낯짝이 수수떡같이 벌개졌지만 입만은 다물지 않았다.

《귀국은 사실 약소국이고 후진국이요. 때문에 문명한 우리 일본에 의지해야 잘살수 있으며 청나라의 침략도 막을수 있소.》

리제마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쪽발이란게 보통 간교하고 검질기지 않다더니 정말 못돼먹은 종자들이다.

《너희 나라에선 너같이 암둔한자들만을 골라서 벼슬에 등용하는가?》

함장놈은 눈을 껌벅이며 대꾸했다.

《그건 무슨 뜻이요?》

《그 뜻을 참말로 모르겠는가? 너희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일본이란 나라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는지 도대체 너는 알고나 덤비는가? 바로 일본이란 나라이름은 까마득한 옛적 삼국시기 우리 조상들이 지어준거다. 그때 너희 조상들이란건 부끄럼을 타는 가운데거나 겨우 가리고 옷은 어떻게 지어입는지, 곡식은 어떻게 심어먹는지도 몰랐어. 그걸 다 우리 조상들이 바다를 건너가서 일일이 배워주었단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누굴 보고 약소국이다, 후진국이다 하며 자길 문명하다 줴치는거냐?》

함장놈은 메사한지 한눈을 팔다가 나비수염을 쓸며 대꾸했다.

《우리 일본은 산업에서 동양의 으뜸이요. 조선은 우리의 산업을 받아들여야 부흥할수 있소.》

《천만에! 너는 그렇게도 조선사람들을 모른단 말이냐? 바로 이 바다에서 리순신장군이 이끈 거북선들이 여길 쳐들어온 너희 조상들을 모조리 수장시켜버렸다.》

그만에야 함장놈은 벙어리가 되였는지 메기입을 쩍 벌리고 아무 말도 못하였다.

리제마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엄포를 놓았다.

《긴말할것 없다. 우린 우리 조정에서 너희 배를 받아들이라는 령을 받지 않았으니 당장 물러가라. 그것이 싫다면 싸우는 길이다. 그래 우리와 맞서보겠는가? 일각(15분)의 여유를 줄테니 물러가지 않으면 너희 배를 묵사발 만들테다.》

리제마는 쿵!- 쿵!- 발소리를 울리며 위풍당당히 함장실을 나섰다.

병쟁기를 비껴든 군사들이 리제마를 호위하여 판옥선에 올랐다.

판옥선에 오른 리제마는 거폭을 추켜들었다.

《남쪽길을 열어주라!-》

병선들은 질서 정연히 왜적선의 좌우에서 물러나 앞을 틔여주었다.

군사들은 분노의 눈길로 왜적선을 쏘아보았다. 왜적선은 불맞은 놈처럼 수라장이 되였다.

꽥꽥 고아대는 욕지거리들이 어지럽게 울리고 닻을 올린다, 돛을 펼친다며 야단법석거렸다.

이어 왜적선은 아군이 내준 남쪽길로 배고동을 길게 울리면서 황급히 질주했다.

얼마후 왜적선은 주먹만큼 작아졌다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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