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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길로 돌려세울수 없는 복만이의 행악은 도리여 리제마에게 나라와 백성을 돌보는 길에서 물러서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혀주었다.

그래도 복만이 천필을 실은 말을 끌고갔다니 돌아가신 아버님앞에 다소나마 면목이 서는것 같았다. 리제마는 쇠약해진 몸을 돌볼새 없이 또다시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고을정사도 돌보고 사람들의 병도 보아주었다.

농사일로 흥성이는 백성들의 모습은 그에게 더할나위없이 힘과 약이 되였다.

땅이 꺼지게 잘된 곡식을 베여들이는 백성들을 보니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다.

게다가 제포앞바다에 띄워놓은 고기배들에서는 어물이 실려나오고 새로 앉힌 염분들에선 소금이 쏟아져나오니 마음이 흐뭇했다.

백성들이야말로 한없이 근면하고 성실하다. 백성을 다스리는자들이 인을 본으로 삼고 도를 지키고 덕을 펼치면 그들은 생업에 헌신하기마련이다. 이것이야말로 부국하는 리치가 아니겠는가. 나라를 먹여살리는 백성들을 잘 돌봐야 할것이다. 가난구제를 본업으로 여기면 고을원일지라도 얼마든지 백성들을 잘살게 하는 무릉도원을 이룰수 있다. …

이런 생각에서 리제마는 농사작황의 등급을 매기는 일을 아전들에게만 맡겨두지 않았다.

현감인 자신부터가 마을들에 나가 로인네들과 젊은이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올해는 농사가 제일 잘된 해라고 엄지손가락을 뽑아들었다.

농사가 제일 잘된 상상년이면 농사군들은 토지 한결당 조세를 스무말 바쳐야 한다. 결당 조세가 스무말이면 농사가 보통정도로 된 중중년에 비해 여덟말을 더 바치는것으로 된다.

농사는 농사군들만큼 잘 아는 사람들이 없으니 그들이 상상년이라면 상상년인것이다.

하여 진해고을은 전해보다 조세를 몇곱으로 바치게 되였다.

제자들의 소행도 힘이 되고 약이 되였다. 글쎄 기달이 그렇게 웅심이 깊을줄이야.

기달이 병을 보아주고 받은 돈을 모아두었다가 제포의 수군일에 써달라고 보내주었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제자들을 생각해서라도 고을정사를 더 잘해야겠다.

조세를 바치느라 바삐 돌아가는 마을들을 돌아보고 동헌으로 향해가던 리제마는 관가앞의 느티나무아래에 서있는 을순을 띄여보고 말을 멈춰세웠다.

《왜 여기 있나?》

《선생님을 기다리던 참이오이다.》

《날?》

하필 만날데가 없어서 이런 길가에서 기다릴건 뭔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선생님! 방금 <세상에도>네 집에 갔다오는 길이옵니다.》

리제마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오늘 아침 을순이는 《세상에도》집을 다녀오겠다고 하였다.

《그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오이다. <작은 세상에도>가 꼭 선생님께 알리라는 말이 있어서…》

《그런가?》

《어제 웅천장사군들이 주막집에 들려 하는 말이 진해현감이 글쎄…》

《어서 말하게.》

《글쎄, 경주감영에 묵돈을 뢰물로 바쳤다고…》

《내… 내가?》

리제마는 억이 막혀 입술이 푸들거렸다. 세상에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법도 있는가. 어떤 심술사나운자들이 그런 허망청한 수작까지 내돌리는것일가.

《그래서?》

《그 사람들 말은 호방이 그 일을 맡아했다고…》

《호방이?》

리제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누군가가 모해를 하려는것이 분명하다.

이런 때를 가리켜 혀아래에 도끼가 들었다고 하는것이다.

관가에서 내쫓긴 아전놈들의 작간일가. 민심을 흉흉케 하는자들을 잡아치워야 한다.

리제마는 동헌에 들기 바쁘게 호방을 대청으로 불러들였다.’

보통키에 무던하게 생긴 용모로 하여 호감이 가는 호방은 여느때나 다름없이 단정한 몸가짐을 하고 퇴돌아래에 와섰다.

《자네, 돌아가는 소문을 좀 아나?》

호방은 놀라는 기색을 지었다. 지금껏 리제마가 한번도 시국형편을 가지고 물어본적이 없어서였다.

《진해고을 사또가 감영어른들에게 뢰물을 먹였다는 소문이 나돈다는데 자넨 그걸 어떻게 생각하나?》

별안간 호방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또님! 그건 헛소문이 아니오이다.》

리제마는 와뜰 놀라 마루를 차고 일어섰다.

《뭐라구?》

《미리 사또님께 사실을 말할수 없었소이다.》

《어찌된 일인지 어서 말하라. 어서!》

《며칠전 웅천관가로 오라는 기별이 있어 가보니 관찰사어른이 보낸 호방비장과 형방비장이 내려와있는것이 아니겠소이까. 그 사람들은 우리 고을에서는 만냥을 내라고 하였소이다. 만냥으로 관찰사와 병마절도사에게 <가을인사>를 차려야 한다고…》

《<가을인사>? 생전 처음 듣는 소리다.》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가을에는 의례히 웃사람에게 뢰물을 바쳐야 한다는것이오이다.》

《그, 그래서?》

《그래서 소인은 다음날로 돈바리를 끌어다 바쳤소이다.》

리제마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러니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나랴 하는 말이 맞았구나. 이제 이 사실을 고을사람들이 알면 이 리제마를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누가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느냐? 누가?》

호방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부르짖었다.

《사또님! 소인 목을 치시오이다. 어느때건 떨어지게 된 목인데…

차라리 지금 떨어지는것이 마음 편하오이다.》

《누가 그따위 푸념소리나 듣겠다더냐? 왜서 그런 망탕짓을 했느냐 말이다.》

리제마는 성이 나서 대청마루를 오락가락하였다.

《사또님! 알건 아셔야 하오이다. 지금 뢰물이 없이 어떻게 벼슬을 부지할수 있소이까. 하관이 상관에게 뢰물을 먹이는것이야 오늘날 세상리치인데 만약 이를 어기면 사또님이 무사할수 있소이까?》

리제마는 더 참을수 없어 발을 굴렀다.

《너 이놈! 날 어떻게 보고 그런 망발을 하는거냐?》

그쯤하면 기가 죽어야 하는데 호방은 고개를 쳐들고 낮으나 힘살배긴 어조로 대꾸했다.

《사또님께 한가지 묻고저 하오이다. 사또께서 뢰물을 바치길 금물로 여기시다가 상관들의 미움을 받아 파직된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해가 되겠소이까? 사또님대신 이전 현감들처럼 탐오밖에 모르는 악한 량반들이 고을에 내려온다면 백성들에게 고통밖에 차례질것이 있겠소이까. 그럴바엔 차라리 내키지 않더래도 뢰물을 바치고 사또께서 계속 그 자리를 부지하는것이 백성들에겐 득으로 되오이다. 비장은 사또들의 포폄(관리의 업적평가)은 오로지 뢰물의 많고적음에 따른다고 하였소이다.》

리제마는 맥이 빠져 마루에 주저앉았다. 허무한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 이것도 아니로구나. 호방의 말은 하나도 그른데 없다. 벼슬길에서는 아무리 청렴하게 살자 해도 그렇게는 안된다. 사모쓴 도적놈들이 사방에서 대문같은 큰 입을 벌리고 먹자고 달려드는 한 언제 가도 세상은 바로잡힐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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