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며칠간 몸져누웠던 리제마는 아침해살이 비쳐들자 간신히 일어나앉았다. 방문이 열리고 을순이 겸상을 차린 밥상을 안고 들어왔다.

리제마는 음식을 보자 입안이 소태처럼 쓰거워옴을 느꼈지만 아무 내색없이 웃목에 쭈그리고 앉은 복만을 불렀다.

《동생! 밥을 들자구.》

복만이 성큼 밥상에 나앉았다.

리제마는 벼껍데기를 씹는것처럼 밥 한숟갈에 물 서너숟갈을 입에 떠넣었다.

그는 밥그릇을 절반도 축내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곡상으로 높이 담은 밥 한그릇을 말끔히 바닥낸 복만이 입술을 문대며 숭늉사발을 쥐였다.

리제마는 복만이 숭늉까지 다 마시고나자 을순이에게 말했다.

《상을 물리게.》

을순이 눈물이 글썽해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렇게 음식을 들지 않으면 몸이 견디지 못하오이다. 선생님께서 몸져누우셨다는걸 알고 백성들이 다들 걱정하시오이다. 제발 고을정사를 생각하시고 음식을 드시오이다.》

《음-》

리제마는 고을백성들이 떠오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나마 가난구제의 뜻을 잊고 사사로운 일에 사로잡히다니… 떠나가신 아버지도 세운 뜻을 미루어놓는 효도는 바라지 않을것이다.

리제마는 복만이 앞에 무릎을 꿇고 《동생!》 하고 불렀다.

복만이 펄쩍 놀라 급히 그를 마주 향해 엎드렸다.

《형님! 왜 이러시오?》

《동생! 내 동생에게 간절히 부탁할 말이 있소. 들어주겠소?》

《형님! 어서 분부를 하소. 그 어떤 분부라도 다 따르겠소.》

《그건… 죄많은 형을 대신하여 동생이 아버님의 묘를 잘 돌봐주었으면 하는거요.》

복만은 희색이 돌아 머리를 쳐들었다.

《그 일때문이라면 념려마소. 아, 우리 가문에 어쩌다 벼슬사는 큰사람이 나왔는데 사사일로 해서 사또자리까지 바쳐야 효도겠소? 나도 자식이니 려묘살이는 근심마소.》

리제마는 몹시 감동되여 복만이의 손을 꼭 싸쥐였다.

돌아간 부모의 묘곁에 초막을 짓고 3년상(어머니인 경우 1년상)을 마칠 때까지 묘를 돌보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일이 려묘살이다. 이 기간 상제는 오직 죽만 들어야 한다.

《형님! 제 여기에 온것도 실은 제가 형님을 대신하여 려묘살이를 하고싶어서였소. 형님분부가 없이야 동생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형님을 제껴놓고 려묘살이를 맡아하겠소?!》

《동생!》

리제마는 격정으로 하여 목이 꽉 잠기였다.

《그런데 형님! 저…》

복만이의 얼굴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동생! 무슨 일인가? 어서 말하라구.》

복만이 떠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 이놈이 암둔하고 어리석다보니… 가사를 망탕 처분하다가 그만 재산을 몽땅 잃고말았소이다.》

《그건 무슨 말인가?》

《친구를 잘못 사귀는 바람에 그만… 그놈의 꼬임에 넘어가 장사를 함께 하기로 하고 전장을 몽땅 팔아서 그 돈을 들이밀었댔소이다. 그런데 그놈이 그 돈을 전부 가지고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소이다. 설상가상이라고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느라고 남은 가산을 팔다보니… 모친의 입에까지 풀칠하게 되였소이다.》

복만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졌다.

리제마는 가슴이 탁 막히는듯 하여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서자는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을수 없어 리제마는 집재산에 관심을 가진적이 없었다. 어떻든 가문을 유지해나가기에 넉넉한 재산이라는것만은 알고있었다.

그런데…

리제마는 애써 마음을 진정하고 입을 열었다.

《동생! 너무 근심말게. 아무렴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치겠나?》

리제마는 즉시 붓을 들어 한옥에게 글을 썼다.

동생 복만이에게 밭도 나누어주고 천필이 있거든 있는대로 다 내주라는 글이였다.

그리고 호방을 불러들였다.

《내게 남은 록봉으로 천필이 얼마더라?》

호방은 잠시 속구구를 하더니 대꾸하였다.

《사또님, 명주 세필하고 베 열세필이 남아있소이다.》

명주 세필과 베 열세필은 나라에서 현감에게 내여주는 한해 록봉이다.

실은 가끔 헐벗은 사람을 보면 록봉에서 잘라 옷감을 내주라고 분부하였으니 그 천이 남아있을리 만무하다.

지금 호방은 상전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 무슨 변통을 생각하였을것이다.

쌀도 주어보냈으면 좋으련만 현감의 록봉으로 차례지는 곡식 34섬은 두 제자와 을순이 달려먹으니 오히려 부족할것이다.

《호방! 내 동생이 오늘 떠나가겠다니 내가 타는 백마에 상감께서 하사하신 비단도 실어주게.》

호방은 놀라워하더니 마지못해 《분부대로 하겠소이다. 》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호방이 왜 그러지 않으랴. 백마는 무과에 꼭 급제하여 나라를 지키는 무관이 되라고 한옥이 장만해준 말이다. 형의 몫까지 합쳐 효도를 바치려는 동생에게 천금인들 아끼랴. 현감일을 잘하라고 나라에서 내준 말도 있으니 그 말을 타면 될것이다.

리제마가 써준 글월을 가슴에 품은 복만이 방바닥에 넙적 엎드렸다.

《형님! 고맙긴 한데… 이왕이면 크게 인정을 써주시우.》

리제마는 잘못 듣지 않았나 해서 물었다.

《인정이란건?》

《꼭 꼬집어말해야 알겠수? 진해고을이라고 하면 물산이 풍요하기로 소문난 고장이고 게다가 형님은 고을민심을 크게 얻었다는데 사또분부 한마디면 돈 만냥쯤이야 대수겠수? 그러니 만냥쯤 내주소.》

리제마는 어처구니가 없어 복만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형님! 형님이 관가돈을 돌려쓰면 어련히 아전들이 도루 채워넣지 않으리요. 바다에 손을 뻗치면 야광주라는 진주보석이 들어오고 들에 손을 내밀면 옥백미가 굴러오고 마을들에 손을 대면 포목이 바리로 실려오겠는데 뭘 주저하우?》

리제마는 불끈 화가 치밀었으나 곧 자제했다.

얼마나 궁지에 빠졌으면 이러랴. 그러나 아무리 동생이 가난에 빠졌어도 어떻게 나라의 재물에 손을 댈수 있단 말인가.

《동생! 동생은 심히 잘못 생각하고있네. 백성들이 피땀흘려 마련한 나라고간에 함부로 손을 대는것은 나의 뜻도 선친들의 뜻도 아니질 않나.》

복만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가지고 어성을 높이였다.

《형님생각이 잘못됐소. 형님이 청렴하게 산대서 그걸 누가 알아나 줄것 같수. 그러다 남는것은 가난밖에 없수다. 손에 권세가 쥐여졌을 때 살 궁리를 해야 하우. 남들이라구 형님만 뜻이 못해서 벼슬살 때 한생 먹고살 재물을 긁어들이겠수? 나라요, 백성이요 하는것은 사실 권세를 잡자고 하는 감언리설이고 권세를 쥔 다음에야 제 집안을 살리는것이 세상리치가 아니겠소?!》

리제마는 금시 자기앞에 큰 뱀이 똬리를 틀고있는듯 하여 소름이 쫙 끼쳤다.

《형님! 어서 호방을 불러들여 분불 하소. 돈 만냥만 내주면 다신 형님에게 도와달라는 청을 안하겠소.》

리제마의 주먹이 방바닥을 내리쳤다.

《그만하지 못할가?》

복만은 더는 자기의 뜻이 통하지 않겠다는것을 깨달은듯 발끈 성을 내며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에익, 내가 어리석었지. 그래도 형이라고? 흥! 그래 거기가 언제 한번 아버지한테 효도한적 있소? 허구한 날 잔소리 많은 아빌 내 혼자 모셔왔는데도 거기선 부조도 안하겠대, 려묘살이도 안하겠대. 흥! 이제 두고보시우. 천벌을 받지 않나. 거긴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니요. 하긴 내 언제 서자인 거길 형이라 여긴적이 있다구. 흥!》

붉으락푸르락대던 복만은 방문을 걷어차고 뛰쳐나갔다.

리제마는 고역을 치른듯 온몸이 나른해서 겨우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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