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음날에도 무과시험은 계속되였다.

리제마는 《옛글의 강받기》란 시험에서 잃은 점수를 만회하리라 마음먹고 시험받는 방으로 들어갔다.

리제마가 병서를 한책 지정하고는 묻는대로 좔좔 외우고 그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내리엮자 시험관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한 시험관은 자기는 《옛글의 강받기》를 한생 주관해오는데 리제마처럼 그 어떤 질문에도 척척 거침없이 대답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군사를 다지는데 생각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였다.

리제마는 자기의 주장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오늘날 천하의 나라들은 앞을 다투어 신식군대를 기르고있소이다. 우리 나라도 나라사정이 어렵더래도 신식군대의 골간을 이룰수 있는 무관을 따로 길러내는 학당을 내와야 한다고 생각하오이다.》

시험관들은 그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복시를 치른지 며칠 지나 무과급제자들이 발표되였고 뒤이어 훈련원에서는 임금이 지켜보는 앞에서 치는 전시가 열리였다.

전시는 28명 무과급제자들의 등수를 가르는 마지막 겨루기였다.

리제마도 28명에 들어 전시에 참가하게 되였다.

도정(훈련원의 장관)이 직접 시합을 주관했다.

첫 시합은 가지런히 세운 황소를 뛰여넘는 내기였다.

이미 말을 세워놓고 뛰여넘기를 련마한 리제마는 황소 5마리를 넘었다.

다른 응시자들은 대체로 소 4마리를 뛰여넘었다.

다음시합은 권법이였다.

응시자들은 어리둥절하여 도정을 쳐다보았다.

옛적에는 권법으로 4명을 당하면 상등, 3명을 이기면 중등으로 쳐주었지만 권법이 무과에서 제외된지는 오랬다.

지금 와서 갑자기 권법을 하겠다는건 무슨 소리인가. 리제마는 왜놈들의 침입이 기정사실화된 오늘날 무예를 중시하는 기풍을 세우려고 권법을 다시 내왔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모두가 눈이 둥그래가지고 웅성거릴 때 리제마는 웃통을 벗으며 《다섯명!》 하고 소리쳤다.

전복을 차려입은 늙수그레한 주부가 리제마에게로 다가왔다.

《다섯명을 감당할수 있겠나?》

나이도 어지간하고 체소한데다 그보다는 달리기와 힘내기에서 성적이 씨원치 못한데 괜히 그러다 망신을 당할수 있다는 암시였다.

리제마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래도 늙은 주부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동정의 눈길을 주었다.

어디에서 기다리고있었댔는지 몸집이 우람하고 힘꼴이나 쓰게 생긴 5명의 사내들이 마당으로 달려나왔다.

임금을 호위하는 어영청에서 뽑혀나온 군사들이였다.

리제마는 그들과 어떻게 격투를 하였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요란한 박수갈채가 일어서야 리제마는 상대들을 모두 물리치고 자기가 이겼다는것을 알았다.

임금은 리제마에게 비단을 상으로 내렸다.

전시가 끝난 후 훈련원에는 과거급제자들을 발표하는 방이 나붙었다.

그날은 3월 보름이 지난 그 다음날이였다.

리제마는 울렁이는 가슴을 붙안고 급히 방을 훑어보았다. 최우수등급인 갑과 다음의 을과급제자들속에서 자기 이름을 보았을때 그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황필수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축하해주었다.

그는 을과급제자(갑과 3명 다음의 5명 급제자)는 적어도 8품벼슬은 받고 5영의 무관직은 갈데 없다며 기뻐하였다.

며칠후 과거급제자들에게 관직이 차례졌다.

그런데 리제마에게만은 아무 기별도 없었다.

관직을 받은 급제자들은 의기양양해서 귀향하였다.

황필수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위로해주었지만 리제마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거 서얼차대(서자와 그 자손을 차별하는것)를 하자는것인가, 아니면 북관내기라고 차별하자는것인가.

선기가 나기 시작해서야 병조에서 찾는다는 기별이 왔다.

병조에 나가니 정랑이란 량반이 맞아주면서 리조에 가라는것이였다.

리제마는 더럭 의심이 들었다.

무과급제자를 왜 리조에 가라는것일가.

우두커니 서있는 리제마를 보고 병조정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댄 복이 있는 사람이요. 장원급제자도 바라보기 힘든 벼슬을 받게 될터니까. 하여간 임지에 가면 군사일을 잘 살펴주오. 이제 리조에 가면 고신(임명장)을 내줄거요.》

어떤 벼슬을 주려고 리조에 가서 고신을 받으라는것일가.

리조에 가니 이미 안면을 익힌 리조정랑 민겸호가 맞아주었다.

《그댄 확실히 명의일세. 그대가 내린 약방문대로 약을 지어먹었더니 몸이 거뿐해졌거든.

병이 다 나았단 말일세. 은혜는 은혜로 갚으랬다고 내 어찌 은인을 몰라보겠소? 자, 나를 따라오게.》

리제마는 의기양양해서 앞서 걷는 민겸호의 뒤를 따랐다. 뜻밖에도 민겸호는 광화문안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리제마는 몹시 긴장하여 난생처음 들어와보는 경복궁을 눈여겨볼 여유도 없었다.

문득 《진해현감 들랍신다!-》 하는 큰소리가 지척에서 울리였다.

진해현감은 어데 있는것일가.

그 자리에는 리제마와 민겸호 둘뿐이였다.

민겸호가 리제마의 팔을 잡아주며 나직이 귀띔했다.

《이보게, 진해현감! 처신을 잘해주게.》

리제마는 너무 놀라 그냥 서있었다.

해변이나 변경지대 고을원은 리조에서 병조와 의논하여 무예를 갖춘 무관을 임명하기도 한다.

새로 부임된 고을원들은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수령7사》(고을원들의 의무로 되는 7가지 일)를 외워바쳐야 한다.

농사일과 누에치기를 잘하게 하며 호구수를 늘이며 향교를 추겨세우며 군사관계의 정사를 잘하며 부역을 고르게 시키며 송사를 간소하게 하며 아전들의 롱간질을 없애겠다는것이 《수령7사》의 내용이다.

진해현감이라고 생각하니 리제마는 문득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해인가 어느 마을에 들려 사람들의 병을 보아주고있는데 박우물집에 중병에 걸린 병자들이 있다는것이였다.

급히 그 집을 찾아들어가니 정말 어둑침침한 방에 두 늙은 내외가 누워있었다.

외아들은 변방군진에 군사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였고 며느리와 하나밖에 없는 손자는 병들어 죽었다는것이였다.

리제마가 그들의 맥을 보려 하자 로파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의원님! 괜한 품을 들이지 마우. 우리가 걸린 병은 병이 아니고 굶어서 생긴 병이라우. 의술로는 굶어서 죽게 된 병을 고칠수 없수다.》

령감이 로파의 말을 이었다.

《우리 며느리도 그렇고 손자애도 굶어서 죽었소. 우리같은 가난뱅이들은 약이 없어 죽는것이 아니라 쌀이 없어 죽는거요.》

그때 리제마는 의술의 허망함을 느꼈었다. 의술은 백성들에게 선차적인 먹는것이 풀려야 소용되는것이 아니겠는가.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고을원이며 아전놈들의 못된짓을 없애버릴수만 있다면…

그런데 오늘은 뜻밖에 그가 진해현감이라는 고을원이 되였다.

분명 민겸호가 손을 썼을것이다.

고을원이라면 임지의 군사일도 돌봐야 하는 중임도 있으니 나라를 지키는 일도 내밀면서 한 고을에서나마 가난을 구제하여 백성들이 잘살게 할수 있지 않을가. …

리제마는 민겸호가 꿇어엎드리는것을 보고 자기도 그의 뒤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 다음 민겸호가 한대로 머리를 조아리며 목청을 돋구었다.

《신 진해현감 리제마, 현신하여 상감마마께 문안드리오이다.》

얼마후 앞쪽에서 응답소리가 울렸다.

《진해현감은 임지로 내려가 일을 잘하라.》

《황송하오이다. 상감마마의 성은에 충정으로 보답하겠소이다.》

리제마는 다시한번 절을 하고 민겸호를 따라 궁을 나섰다.

밖에 나서니 온몸이 땀으로 화락하게 젖어있었다.

민겸호가 다가와 리제마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난 자네가 중전마마께 충정을 바치리라고 믿네.》

리제마는 그제야 민겸호에게 불려갔을 때 그가 주위사람들에게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한 말뜻을 깨달았다. 그때 벌써 민겸호는 리제마에게 고을원자리를 내줄 생각을 하고있던 모양이다.

리제마는 고신을 받아가지고 병중의 박규수를 찾아갔다.

전후사연을 다 들은 박규수는 일이 아주 잘되였다며 기뻐하였다.

그는 리제마에게 지난해 진해의 제포수군진에 부임해간 수군첨절제사에게 보내는 글월을 써주었다.

글월을 내주면서 박규수는 진해수군첨절제사는 젊어 한때 자기 문하에서 배운 제자인데 병약하나 사람됨이 대바르고 청렴한 무관이라고, 그와 손을 잡고 진해앞바다에 외적이 얼씬하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리제마는 다음날 황도연과 작별하고 떠났다.

고을원으로 부임되여갈 때 나라에서는 타는 말 한마리, 짐말 두마리에 따라다니는 시중군 4명을 붙여준다. 리제마는 말만 받고 시중군들은 돌려보냈다.

두 제자가 있는데 시중군이 또 있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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