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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일은 무과시험을 치는 날이다.
리제마가 병조에 나가 무과응시자명부에 오른 자기 이름을 확인하고 거처지에 돌아오니 황도연이 자기 방으로 오라고 찾는다. 리제마가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황도연은 무과에 나가려면 나라의 군사형편도 알아야 한다며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한성물정에 밝은 황도연이 울분을 터뜨리며 말하기를 이제는 5영(중앙군)까지도 명색뿐이라고 하였다.
근래에 와서 군사들을 먹이고 입힐 돈이 없어 반수는 번을 들이지 않고 군포를 물게 하였는데 그나마 번드는 군사수는 그 수의 절반도 되나마나하다.
다른 영들의 사정은 금위영보다 더 한심하다.
군, 현들에 소속되여있는 군사는 눈을 뜨고 못 볼 형편이다. 속오군(량인, 량반들로서 훈련을 받을만 한자들로 무은 부대)에 올라있는 군사들은 코흘리개아이들의 이름을 올려서 군사수를 굼때고있는 형편이다. 남아있는 군사들은 군사교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제식동작 하나 변변히 할줄 모른다.
그런데도 민비일파는 백성들에게서 빨아내는 군포를 군비로가 아니라 저희 패거리의 향락과 치부에 탕진하고있다고 황도연은 개탄하였다.
민비일파는 군영에 번드는 군사들에게 한달에 네말씩 내주게 된 료미(봉급으로 주는 쌀)마저 뚝 잘라내서는 먹자판을 벌리고 외국사신들의 접대에 쓰는 판이다.
그래서 영곤(감영이나 병영, 수영)과 제진들에는 이전에 만들어놓았던 활과 창만이 남아있다고 하였다.
황도연의 말에 리제마는 분노를 참을수 없었다.
이번에 한성에 올라와 다시 살펴보니 조정이 썩어가고있다는것이 알린다.
이런 판에 어찌 나라를 지키는 군사가 녹아나지 않겠는가. 내 기어이 무과에 급제하고 어느 군진에 나가 거기만이라도 본때있게 꾸려 나라방비의 본보기가 되게 하리라. …
다음날 훈련원에서는 무과시험을 열었다.
리제마는 배기달이 견마를 잡은 백마우에 앉아 의봉이를 앞세우고 황도연의 집을 나섰다.
황도연의 아들 황필수도 여러 친구들을 데리고 따라나섰다.
훈련원은 대묘의 동남으로 동대문의 근처에 있었다.
아침부터 훈련원의 넓은 마당은 구경군들이 둘러싸고있었다.
근래에 와서 무과도 문과처럼 한해에 한번씩 해마다 3월에 연다.
훈련원에서 주관하는 원시와 각 도들에서 치는 향시를 《초시》라고 하는데 이 시험들에서 각각 70명, 120명을 뽑는다. 복시(2차시험)에서는 190명이 참가하여 33명을 급제시키는 문과와 달리 28명을 뽑는다.
마지막으로 임금이 지켜보는 앞에서 전시를 열고 갑과에 3명, 을과에 5명, 병과에 20명으로 급제자들의 등급을 매긴다.
무과시험에서는 먼저 무술을 치고 그 다음 지정된 유교경전인 4서5경가운데서 어느 한책, 군사관계의 7서중에서 한책, 《통감》, 《병요》, 《장각방의》, 《소학》가운데서 응시자가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골라잡아 읽게 하여 《경국대전》의 리해정도를 알아본다.
오늘은 복시를 치는 날이다.
황필수가 훈련원의 담장 가까운데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몇백년 묵었을 큰 느티나무아래였다.
백마의 고삐를 잡은 기달은 어깨를 으쓱이며 훈련원을 바라보았고 의봉은 혹시 미흡한 점이 없나 하여 리제마의 행색을 더듬고있었다.
좀 있어 솔발(놋쇠로 만든 큰 방울)을 흔드는 종소리가 마당쪽에서 울려왔다.
솔발을 한번 흔들면 대오를 정돈하라는 신호다.
리제마는 응시자들이 모이는 마당으로 뛰쳐갔다.
훈련원에는 주부(종6품의 벼슬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만도 38명이 있는데 그들이 전부 떨쳐나와 응시자들을 10명씩 19개의 렬로 정렬시켰다.
이어 표범의 꼬리를 새긴 표미기가 있는 좀 높은 둔덕으로 벼슬아치들이 주런이 나와앉았다.
그 둔덕에서는 마당을 한눈에 굽어볼수 있다. 표미기를 세운데로는 보통 사람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주장의 허락없이 자의대로 그쪽으로 가는자는 리유불문하고 군법으로 제지시킨다.
대오의 맨 앞장에 선 리제마는 둔덕우의 벼슬아치들속에서 박규수며 민겸호도 알아보았다.
응시자들속에서 수군대며 하는 말이 령의정까지도 나왔다는것이다. 그러고보면 조정벼슬아치들이 거의다 나온 모양이다.
나팔소리와 함께 포소리가 한방 울렸다. 동시에 대렬앞에서 기를 흔들었다. 몸을 돌리라는 신호였다.
응시자들은 일제히 기발이 가리키는쪽으로 몸을 돌리고 느리게 치는 북소리를 령으로 삼아 마당 한켠으로 움직여갔다.
또 한번 울린 징소리에 대렬은 멈춰섰고 련이어 울리는 바라소리에 응시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부터는 한자리에 앉아쉬면서 차례대로 나가 무술시험을 치르어야 한다.
《기사요!-》 하는 주부의 구령소리에 앉아있던 첫렬이 일어섰다.
그러니 오늘 무과시험은 기사라고 하는 말타고 하는 활쏘기로 시작이라는것이다.
응시자들은 35보사이로 폭이 1자 되는 둥근 과녁을 5개 세운 그앞으로 말을 달리며 한순(5대)의 화살을 쏘아야 하는데 한발 맞힐 때마다 5점을 받는다.
리제마는 첫렬 첫번째에 선 까닭으로 오늘 무술시험에 선참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기달이 끌고온 백마우에 뛰여올라 등에 멘 동개에서 활을 뽑아들었다.
시작하라는 주부의 기발신호에 따라 리제마는 채찍을 휘둘렀다. 순간 백마는 껑충 뛰여오르더니 앞으로 질주하였다.
리제마는 날래게 활에 대우전을 먹여들고 첫번째 과녁을 지나치려는 순간 만궁으로 당겼던 시위줄을 탁 놓았다.
핑!- 소리에 이어 사람들속에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리제마는 명중이라고 들끓는 군중의 환성에 귀기울일새 없이 두번째 과녁을 겨누었다.
핑!-
또다시 환성이 터져올랐다.
핑!- 핑!- 핑!-
잠간사이에 리제마는 쏜살같이 말을 달리면서 5개의 과녁마다에 화살을 면바로 쏘아박았다.
그의 뒤로 응시자들이 차례로 말을 달리며 화살을 날리였다.
그 다음의 무술시험은 《기창》이라 하는 말타고 하는 창쓰기였다. 말을 달리면서 25보간격으로 세개 세운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의 면상에 창을 곧바로 찌르면 그때마다 5점을 받는다.
리제마는 기발신호에 따라 채찍을 들어 힘껏 말을 때리고는 두손으로 길이가 15자 5치(약 470㎝) 되는 장창을 머리우로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는 날쌔게 장창을 겨드랑이에 끼웠다가 즉시로 돌려 오른쪽겨드랑이에 끼고 첫번째 목표를 향해 짓쳐나갔다.
거의 서너보까지 다가간 순간 리제마는 번개같이 손을 놀려 창을 내찔렀다.
창은 면바로 면상을 꿰찔렀다.
리제마는 말의 배허벅을 걷어차며 창을 뽑아가지고 왼쪽겨드랑이에 끼고 두번째 목표를 향해 달렸다.
이번에도 정통으로 꿰찔렀다.
마지막과녁도 면바로 찔렀다.
백두산가까이에서 배운 무술을 잃지 않으려고 짬짬이 되풀이했고 이번 무과시험을 앞두고는 바싹 달라붙어 련마했더니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리제마는 몸을 돌려 왼쪽을 바라보면서 창으로 뒤를 가리키고는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창을 바꿔쥐고 출발선으로 돌아왔다.
자기 자리로 돌아오니 언제 왔는지 김옥균이 웃으며 맞아주었다.
《고려의 한희유공을 보는것 같소이다.》
제마는 얼굴을 붉히였다.
한희유(?-1306)라면 말타고 활쏘기와 창쓰기를 잘하여 세상에 알려진 고려의 장수이다.
그런 장수에게 비기다니, 안될 말이다.
좀 있어 다른 응시자들의 활쏘기며 창쓰기도 전부 끝났다.
《달리기요!-》 하는 주부의 웨침소리가 울리였다.
그러니 이번 차례는 300보(498m)달리기이다.
달리기는 한렬에 10명씩 서서 동시에 뛰여야 한다. 8되가량의 물이 들어있는 구리병에서 가는 구멍으로 물이 다 나가는 동안 270보를 달리면 1등인 《1주》, 260보를 달리면 2등인 《2주》, 250보를 달리면 3등인 《3주》의 성적을 받는다.
리제마와 함께 뛸 9명의 사내들은 하나같이 혈기왕성한 20대의 젊은이들이였다.
나이도 많고 키도 작은 그가 이들을 당할는지…
제마는 곁에 선 젊은이들과 함께 주부들이 가져온 쇠갑옷을 껴입었다. 쇠패쪽들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촘촘히 덮인 무거운 쇠갑옷을 껴입고 머리에 검은색가죽투구까지 눌러쓰고 활과 화살이 든 동개까지 등에 멘 다음 몸을 흔들어보니 무거운 나무짐을 진듯 불편했다.
리제마가 선 선두렬이 회가루를 뿌려 그은 출발선에 나서자 주부는 기발을 흔들었다.
그 순간 응시자들은 있는 힘껏 땅을 차며 앞으로 내달렸다. 마치나 군마들이 짓쳐나가는듯 자욱한 흙먼지가 타래쳐올랐다.
한치를 다투면서 내달리는 사람들이 백보를 넘어서자 차이가 생기였다.
선두에서 달리던 리제마는 이를 사려물고 안깐힘을 썼지만 점차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200보에서는 중간으로 밀려났다.
선두사람이 300보를 넘을 때 징소리가 귀따갑게 울렸다. 구리병의 물이 다 빠져나간것이였다.
달리기에서 리제마는 아쉽게도 3등인 《3주》의 성적을 받았다.
첫렬에 이어 다음렬들이 꼬리를 물고 마당을 달리였다.
마감으로는 《력》이라고 하는 힘내기였다.
50근짜리 모래자루를 량손에 하나씩 들고 내처 160보를 달리면 1등인 《1력》, 130보를 가면 2등인 《2력》, 100보를 가면 3등인 《3력》의 성적을 받는 력에서 리제마는 젖먹은 힘까지 다했으나 겨우 2력에 들어가고말았다.
무술을 놓고 오랜 세월 의원을 하다보니 몸이 약해진탓이였다.
황필수가 벙글벙글 웃으며 위로의 말을 하였다.
《잘했소. 나이든 사람이 한창내기들과 겨루었다는것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두번씩이나 25점, 만점을 받았으니 급제는 떼여놓은 당상이요.》
리제마는 오늘 비로소 이제는 한풀 꺾인 나이든 시기임을 가슴아프게 깨달았다.
지금부터가 뜻하는바를 실현하는 길이겠는데 어느덧 기력이 쇠진한 나이에 들다니, 그것이 한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