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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교라는 가마에 실려 어데론가 끌려가는 리제마는 자기가 귀신에게 업혀가는것 같기도 하고 도깨비에게 붙들려가는것 같기도 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없었다.
가마를 메고 풍우같이 내달리는 사내들은 하나같이 몸집이 실하고 우락부락해보이는 힘장사들이였다. 저승사자들에게 실려가는듯 한 환각까지 든다.
이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나를 어데로 실어가는것일가. 아무리 따져보아야 이 넓은 한성바닥에서 의원이나 하는 사람을 붙잡아 싣고 갈만 한 인물이 짚이지 않았다.
한성에서 아는 사람이란 황도연과 박규수 두사람뿐이다. 병을 보아준 사람들은 다 10여년전 사람들이니 그들이 나를 기억할리 없다. 이번에 한성에 올라와 황도연의 집에 머무르고있으면서 박규수대감을 내놓고는 일체 외인들과 담을 쌓고 무과에 나갈 차비만 하였으니 알 사람이라고는 더우기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누가 이 리제마를 알아서 이렇게 독수리 병아리 채가듯 하는것이다.
그는 자기가 꼭 흉몽을 꾸는것 같아 아침일을 돌이켜보았다.
오늘도 첫새벽에 일어나자바람으로 밖에 나가 달리기를 하고 들어왔다. 그 다음 아침밥을 먹고 병서를 펼쳐놓았는데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이 활짝 열리며 장독교가 들이닥치였다.
뒤면은 벽으로 되고 량옆에 창을 낸 장독교는 앞쪽에 문이 있는데 벼슬아치들이 타는 가마다. 어떤 벼슬아치가 아침부터 병을 보이러 왔는가 하여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빈 가마였다.
가마를 멘 교군군들앞에서 해사하게 생긴 사내가 물었다.
《이 집에 든 함흥에서 온 의원이 뉘시오?》
리제마는 별생각없이 대꾸하며 뜨락에 나섰다.
《나요.》
그 사내는 잠시 리제마를 훑어보더니 굽석 선절을 차리였다.
《의원님! 가십시다.》
《가다니, 어데루?》
《그런건 묻지 마소이다.》
사내가 손짓하자 교군군들이 리제마앞에 가마를 들이댔다.
리제마는 웬일인가 하여 마루에 나와선 황도연을 쳐다보았다.
황도연은 난색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그도 누가 찾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것이다.
교군군들은 리제마를 거의 떠밀듯이 가마에 밀어넣고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골목저골목으로 요리조리 빠지는 바람에 정신이 어리뻥뻥해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닥 좋지 못한 일로 해서 실려가는것 같지는 않았다. 붙잡아다 죽이거나 곤죽을 먹일 작정이면 죄인을 실어가는 함거따위를 들이대지 호화스런 장독교일리 없다.
그렇다고 어떤 병자에게 데려가는것 같지도 않다. 병자에게 데려간다면 하다못해 약통이나 침통을 꺼내오라고 했을것이다.
에라,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 했는데… 어디 맞서보자. 백두산가까이에서 다진 무쇠주먹이 있는데야.
리제마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옆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가마는 요란한 솟을대문으로 들어가고있었다. 해사하게 생긴 사내가 소리쳤다.
《내리시오이다.》
가마에서 내려선 리제마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전에 본 장동의 김좌근네 집보다 더 큰 집이 아닌가.
《여기가 어데요?》
리제마가 묻자 사환군은 씩 웃더니 《여긴 안국동인데 차차 알게 되오이다.》 하고 앞을 가리켰다.
《자, 저쪽으로 가시오이다.》
리제마는 사환군을 따라 후원에 있는 별채로 향했다.
사환군은 대웅전같이 웅장한 별채앞에서 소리쳤다.
《<함흥의원> 대령했사옵니다.》
그 다음 사환군은 리제마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선 리제마는 현훈증이 났다.
번쩍거리는 자개박이옷장이며 책장, 이불장들이 한벽을 가리웠고 또 한벽에는 기이한 꽃이며 새, 나무를 그린 12폭병풍이 서있었다.
바닥에는 공작새며 꿩을 수놓은 화려한 돗자리가 깔렸는데 아래목쪽에 강마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눈길은 강마른 사람이 아니라 그가 의지한 안석(방안에 앉았을 때에 몸을 기대는 크고 두툼한 받치개)이며 장침(모로 기대앉아서 팔꿈치를 괴는데 쓰던 베개 비슷한 물건), 보료(솜이나 짐승의 털로 속을 넣고 비단천으로 싸서 선을 두르고 곱게 꾸며 만든 두툼한 요)로 끌리였다. 지금까지 본것은 《수》, 《복》자를 수놓은 비단을 씌운것들인데 이것들은 하나같이 연누런 밤색바탕에 검고 둥근 점들이 꾹꾹 찍힌 표범가죽을 씌웠다.
대단한 벼슬아치였다.
사환군이 리제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의원님! 리조정랑어르신께 절을 드리시오이다.》
리제마는 깜짝 놀랐다. 정5품의 정랑벼슬이나 하는 사람이 궁궐같은 이 집의 주인이란 말인가.
《의원님, 무슨 생각을 하고있소이까? 어서 민대감어른께 인사를 드려야지요.》
리제마는 더욱 놀라웠다. 5품관에게 정2품이상의 높은 벼슬아치를 공경하여 부르는 대감이란 호칭을 함부로 쓰는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바른대로 부르려면 나으리라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다음순간 리제마는 소름이 끼치였다. 방금 사환군은 저 사람을 민대감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집주인이 민비일파의 두목중의 하나인 민겸호가 아닐가. 분명하다. 그래서 이런 호화로운 집을 쓰고살것이다.
민겸호는 3공6경이 굽신거려야 하는 왕비 민비의 양오래비이다. 민비는 자기의 팔다리로 여기는 민겸호에게 더 높은 관직을 주고싶었겠지만 벼슬한지 오래지 않았으니 백관의 시비를 꺼려 잠시 그를 리조정랑자리에 앉혀놓았다고 한다.
보다 민비의 첫째가는 심복은 양오래비이자 대원군의 처남인 민승호이다. 민승호는 민겸호의 친형이다.
민비는 어려서 량친부모를 다 잃고 민승호의 집에서 자랐다.
안동김가네를 몰아내고 조정을 장악한 대원군은 외척들의 세도정치를 끝장낼 심산에서 일가친척이 별로 없는 민비를 며느리로 삼았다.
1866년에 왕비로 책봉된 민비는 민승호를 병조참의에 앉히도록 힘을 썼다.
음으로양으로 세력을 기른 민비는 1873년 마침내 대원군을 밀어내고 조정정사를 민승호에게 맡기였다.
이것이 화가 되여 병조판서로 승진된 민승호는 그 이듬해 대원군일파가 보낸 《뢰물》을 펼쳐보다가 그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즉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후날의 일이였다.
벼슬품계는 어떻든 민겸호는 민비와 형 민승호를 등에 업고 막강한 권세를 부릴것이다.
《어서요.》 하는 사환군의 재촉에 리제마는 방바닥에 꿇어엎드렸다.
《의원 리제마 문안드리오.》
그때까지 안석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까딱않던 민겸호가 움지럭거렸다.
《자네가 리제마인가? 소문은 들었어. 용한 의원이라고…
내가 복이 없는지 벌써 여러해나 병을 앓고있는데… 황도연이 지어준 약도 먹어보았지만 말을 안 들어. 그런데 함경관찰사가 자네만은 내 병을 고칠수 있다고 하더군.》
지난해 함흥감영에서 치는 무과의 향시에 나갔던 리제마는 병을 보아달라는 관찰사의 부름을 받았었다. 그때 그는 한성에 있을 때부터 앓았다는 관찰사의 병을 어렵지 않게 고쳐주었다.
그 일을 가지고 관찰사가 민겸호에게 자랑을 한 모양이였다.
《나를 살려주게.》
리제마는 침착하게 민겸호의 안색을 살피였다. 여윈 얼굴은 시꺼멓고 거친데 두눈만은 반들거렸다. 맥을 보니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리제마는 정신이 곤두섰다. 병자가 간적(간비종대 등)에 걸린것 같아서였다.
리제마는 민겸호를 눕게 하고 그의 배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오른쪽옆구리에서 간이 크게 만져졌는데 겉이 울퉁불퉁하였다.
틀림없는 간적의 시초였다.
민겸호당자로서는 정말 천행이 아닐수 없었다. 한두달만 더 병을 길렀어도 천하명의일지라도 어쩌지 못할것이다.
고양이뿔외에는 무엇이나 다 가진 사람도 간적에 들다니, 그것도 아직은 마흔살전인데…
하긴 과도하게 술과 기름진 음식으로 포식을 하면서 더 많은 재물을 긁어들이려 악을 박박 썼겠으니 간적이 피해갈수 없지.
민겸호는 일어나앉으며 물었다.
《꽤 고칠만 한가?》
리제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취에 든 병자까지 고쳐냈는데 간적의 시초를 어찌 어렵다 하랴.
《저… 약재가 걱정이오이다. 급히 오다보니…》
《그건 념려말게. 내 집에 천하 어떤 약이든 다 있으니 처방만 바로 내려주게.》
민겸호는 으시대며 떠들었다.
사환군이 례장함보다 좀 작은 궤를 안아왔다.
십장생무늬가 있는 값진 자개박이궤였다.
궤안에는 서우뿔, 사슴뿔, 산삼 같은 희귀한 약재들이 가득하였다.
리제마는 사환군에게 잇꽃, 단삼, 현호색, 오독도기, 삼릉 같은 약재들이 들어간 약처방을 써주었다.
《이 처방대로 하루 두첩씩 몇달 약을 쓰면 꼭 알 도리가 있소이다.》
민겸호의 입이 귀밑으로 돌아갔다.
《이제야 살것 같군. 나만 살리라구. 그럼 내 자네가 바라는건 뭐나 다 들어주지.
이봐, 그걸 가져오라구.》
민겸호가 손짓하자 사환군이 목침만 한 보물함을 리제마앞에 내놓았다.
《그안에 웅담이 들어있네. 강계무사가 내 병에 쓰라고 올려보낸건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디 알수가 있어야지. 요즘놈들은 서로가 속여먹을 내기라 어느 놈도 믿을수 없다니까.》
리제마는 입이 쓰거웠다. 제 속이 시꺼머면 남의 속도 검은줄로 안다는 말이 민겸호를 두고 생겨난 말 같았다.
하여간 흥미가 동하여 리제마는 물을 떠오라고 일렀다. 인차 사환군이 보시기에 물을 반쯤 떠왔다.
리제마는 주먹만 한 웅담에서 좁쌀알만큼 떼내여 손끝으로 보드랍게 부스러뜨린 다음 보시기에 떨구었다.
곰열가루는 보시기안에서 인차 진한 유백색을 내며 녹더니 채 녹지 않은것들은 밑굽바닥에 가라앉았다.
소열이나 양열은 곰열보다 천천히 녹고 유백색도 그리 진하지 않다. 또 물에 안 녹는 껍진한것이 곰열보다 많다. 돼지열은 소열보다 빨리 녹고 색갈도 진하나 곰열보다는 천천히 녹으며 색도 연하다. 그리고 물에 풀리지 않는것도 소열보다는 적고 곰열보다는 많다.
《진품이 맞소이다.》
민겸호의 입이 함박만 해졌다.
《내 오늘 기뻐하는건 말썽많은 병도 고칠수 있게 되였고 웅담도 진품인줄 알게 되여서보다는 중전마마를 잘 받들수 있는 인재를 찾아내서일세. 그래, 자네 무과에 응시하려 한다는게 사실인가?》
《그렇소이다.》
《그러니 빈소문은 아니였군. 헛 참, 누구도 견줄바 없이 뛰여난 명의가 고작 우직한것들이나 나가는 무과에 뜻을 두다니.
난 자네만 동의한다면 발벗고 나서 내의원(국왕의 약을 짓는 일을 맡은 관청)의 어의(당상관 의원)로 내세워주겠네.》
《대감! 리공은 의원이기도 하오나 무예에 능한 무인이라는데 본인의 뜻대로 무과에 급제시켜 우리 금위영(훈련도감의 정초군과 별대로 무은 중앙군부대)에 보내주사이다. 지금과 같이 어수선한 때 리공 같은 무인은 중전마마를 지키는 일을 맡아보아야 하오이다.》
리제마는 비로소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방이 또 있으며 반쯤 열려진 문사이로 그안에 몇사람이 앉아있는것을 볼수 있었다.
사환군이 리제마의 귀에 대고 귀띔했다.
《방금 말한 저 어른이 금위대장이올시다.》
민겸호는 조대비의 5촌조카인 금위대장 조녕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자넨 언제 봐야 욕심자루가 지내 크거던.》
《일욕심이 많은거야 장점이라고 할수 있소이다.》
조녕하의 곁에 앉은 량반이 한마디 하였다.
《저 어른이 형조정랑 심공(심순택)이올시다.》
사환군의 귀띔소리를 들으며 리제마는 은근히 속이 떨렸다.
그러니 이 방에는 이마빡에 금관자(2품이상 벼슬아치들이 망건에 붙이는 작은 고리)는 달지 못했어도 민가패의 쟁쟁한 거두들이 모인셈이다.
심순택의 웅글은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소꼬리보다 개대가리가 낫다고 문무를 겸비한 인재한테야 물산이 풍요한 고을을 맡겨줘야 어울리지요.》
《옳거니!》 하고 무릎을 치고난 민겸호는 조녕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다 생각이 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