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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환멸에 찬 벼슬길에 올라

 

 

1873년(계유년)의 정월이 왔다.

리제마가 고향으로 돌아온지 어느덧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5년동안 리제마는 날마다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면서 4상인에 따르는 약처방을 적지 않게 밝혀냈다.

이제 몇해만 더 애를 쓴다면 그 어떤 확실한 결론을 찾아낼것 같았다.

그런데 날로 시국이 뒤숭숭해지면서 그의 마음을 불안케 했다.

유럽렬강들의 끊임없는 침입속에 1871년, 1 200여명의 침략군을 실은 미국침략함대가 대포를 쏘아대며 강화도에 기여든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나라의 여러곳에 외적과 화의를 반대하는 《척화비》가 세워졌는데 비문은 이러했다.

《서양오랑캐들이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것은 나라를 파는것이다. …우리의 천만년 자손들에게 이것을 경고하노라.》

게다가 날마다 들려오는 더 흉흉한 소문은 서양오랑캐들을 쫓아버리니 왜놈들이 기여들려 한다는것이였다.

구름이 잦으면 비가 온다고 요즘 오랑캐들이 날치는 꼴이 여간 심상치 않다.

명치유신으로 국력을 키운 왜놈들이 오만하게도 무력으로 조선을 《정복》한다는 《정한론》이란것까지 들고나왔다니 미구에 전란이 닥쳐들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속에 리제마는 지난해 여름 다음해 한성에서 여는 무과시험을 위한 예비시험인 향시를 함흥감영에서 가을에 실시한다는 방을 붙인것을 보았었다.

이런 때 내가 의술만 해서 되겠는가. 스승 기로사가 등을 떠밀어 포태마을로 보내고 《포태선생》이 나에게 무술을 가르쳐준것은 바로 오늘을 내다보았기때문인것이다.

아마 기로사가 살아있었다면 《무평! 지금이야말로 <무병장생은 만민지복락>보다 <강병은 부국지초석>이 요구되는 때일세. 잠시도 지체하지 말게.》 하였을것이다.

어느날 집에 들어온 리제마는 마당에서 네굽이 쭉 빠진 백마를 보고 놀랐다.

《이건 무슨 말이냐? 누가 왔느냐?》

13살 난 딸 달래와 11살이 된 아들 민성이 리제마의 앞으로 달려와서 대꾸했다.

《아버지가 탈 말이래요.》

《뭐? 내가?》

《엄마가 그랬어요.》

리제마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한옥이 비록 말 한마디 없었으나 나의 생각을 알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내다본것이였다.

고마운 안해였다. 아니, 어찌 보면 안해라기보다 누이같이, 스승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과의 길로 떠나자. 나라가 위태한데 뭘 더 망설인단 말인가. 무과에 급제하고 무관이 되여 나라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의술로써 백성들을 구제할수 있으리라.

하여 36살의 리제마는 무과를 보려 한성에로의 길에 올랐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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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고향마을이 점점 멀어지니 리제마의 마음은 몹시 쓸쓸하였다.

안해와 아이들을 언제면 다시 보게 될는지…

한사코 따라나선 두 제자와 함께 길을 가니 쓸쓸한것이 한결 나았다.

한성에 올라온 리제마는 황도연의 집을 찾아갔다.

황도연과 그의 식구들이 몹시 반가워하였다.

밤늦도록 황도연의 방에서는 불이 꺼질줄 몰랐다.

《자네 정말 무과에 급제할 자신이 있나?》

확실히 황도연은 못미더워하는 눈치였다.

하긴 리제마가 체소한데다 나이도 어지간하게 많으니 그가 그럴만도 하였다. 그보다는 명의로 소문난 리제마가 중년의 나이에 의술을 버렸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리제마는 13년만에 만난 황도연의 머리가 반백임을 보고 자기도 나이가 많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선생님! 그건 념려하지 않아도 되오이다.》

리제마는 무과에 자신이 있어서보다 시국의 요구앞에 자기를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백두산기슭에서 3년세월 닦은 무술을 버리지 말라는 《포태선생》의 당부대로 무술련마를 소홀히 한적이 없었다. 틈이 나는대로 달리기며 권법을 하였고 한해에 몇번은 말타고 활쏘기며 창던지기를 숙련했다.

이번에 한옥이 백마를 마련해준 후부터는 거의 매일이다싶이 말타기와 무술을 련마하였다.

홍안의 시절보다는 숨이 차고 몸동작도 굼뜬게 알렸으나 이렇게 한달나마 직심스레 맹훈련을 하였더니 과연 포태산기슭에서 애써 배운 무술기법들이 하나둘 회복되여나갔다.

그러니 어찌 무과급제를 어려워하겠는가.

황도연은 그의 말을 듣고서도 미타한지 고개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한성에서 치는 무과는 도들에서 치는 향시하고는 다르네.》

리제마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가을 그는 함흥감영에서 치는 무과의 향시에 나가 우수한 실력으로 당선되였다.

황도연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이 있다니 마음놓이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지난해 써보낸 글월에서 4상의술이 애를 먹고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생겼나?》

4상의술소리가 나오자 리제마는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동안 4상인을 구별하는데서 중시해야 할 생리비결을 새롭게 확정하였소이다. 체질상차이점으로 하여 쉽게 생길수 있는 병도 다르고… 그리고 4상인으로 체질을 가르고 그에 따라 약을 쓰니 효험이 놀라울 지경이였소이다.

그렇게도 말썽을 부리던 우리 집사람의 심비증이 눈에 띄게 나아졌소이다. 체질상 우리 집사람은 태음인이였소이다.

그래서 율무쌀, 밤, 석창포, 오미자, 맥문동, 무우씨, 도라지, 마황으로 약처방을 지어 써보았더니 놀라웁게도 얼굴에 혈색이 오르면서 애를 먹이던 심비증의 증세가 퍽 수그러졌소이다.

동시에 부종도 뚝 떨어졌소이다.》

황도연은 연신 머리를 끄덕거리더니 크게 웃었다.

《그러니 무평의 부인이 4상의술의 덕을 선참으로 받았소그려.》

리제마는 뒤이어 4상체질에 약을 써본데 대하여 이야기했다.

황도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더니 마침내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자네야말로 진짜의원일세. 사실 난 한생을 의원답게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네. 의서도 써냈겠다, 숱한 병자들도 고쳐주었겠다, 그런데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마음이 허전하네.

난 사람의 체질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는걸 몰랐으니… 의원구실을 바로하지 못하였네.》

《선생님!》

《내 생각엔 자네의 4상의술이 이제 앞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놓을걸세.》

리제마는 황도연의 칭찬에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황도연은 앉은 자세를 고치며 무겁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무과에 나가겠단 말이지? 어찌겠나.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자네같은 의생보다 장검을 쥔 무관이 더 요긴할수도 있지. 난 자네의 뜻을 지지하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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