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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마에게 있어서 배기달은 어느모로 보나 매우 적합한 제자라고 말할수 있었다. 큰 키에 잘 생긴 용모 그리고 의봉이와 달리 입이 무겁고 침착한데다 온화한 성격이였다.
흠이라면 붙임성이 적어보이는건데 지내보니 그와 정반대였다. 틀진 몸가짐을 가진 그가 어찌나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림기응변하는지 첫날부터 그의 덕을 입게 되였다.
배기달은 한시바삐 의주땅에 가고싶어하는 리제마의 마음을 헤아려 자기가 길안내를 맡아나섰다. 그는 륙로로 가면 시일이 많이 걸리고 힘도 든다면서 장성고을과 이웃한 부안진(전라북도 부안군)의 줄포로 리제마를 이끌었다.
줄포에 이른 그는 하늘소를 팔자고 하였다.
의봉은 하늘소를 팔면 행장을 지고 다녀야 하니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행장을 지고 다니지 않게 할뿐아니라 선생님도 걷지 않게 할수가 있다는 배기달의 주장보다 당장 로자가 급해서 리제마는 하늘소를 팔게 하였다.
기달은 제꺽 맞춤한 장사군을 톺아서 너무 비싸다고 할 정도로 돈을 푼푼히 받고 하늘소를 팔았다. 그리고 어떻게 선을 놓았는지 때마침 해주로 떠나려고 하는 장사배를 찾아내였다.
그 덕으로 리제마는 배에 올라 아름다운 서해풍경까지 구경하면서 편안히 해주에 갈수 있었다.
해주는 황해도감영이 있는 큰 고을이여서 호구도 많고 번화했다.
리제마를 객주집에 들게 하고 점심식사를 끝내자 배기달은 잠간 고을형편을 알아보겠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의봉이까지 해주바람을 쏘이겠다며 밖에 나가다보니 홀로 방에 남은 리제마는 곧 깊은 생각에 묻히였다.
사람의 체질을 어떻게 구분하여야 처방과 비방을 알수 있겠는가.
배를 타고 오면서도 오직 그 한생각뿐이였다. 집을 떠나 8년동안 보다 더 련마한 의술을 더듬느라니 뭔가 떠오를듯말듯 하였는데 바다길에서 한 절반은 찾아냈다고 할수 있었다.
때로는 전혀 뜻밖에 횡재를 한다고 배군들의 걸죽한 육담소리를 듣다가 무릎을 치게 되였다. 육담의 진진한 이야기속에 음기니 양기니 하는 말마디들이 기발한 생각을 일으킬줄이야.
음과 양, 바로 그것이였다.
황도연을 찾아가던 길에서 만났던 송도의 늙은이가 소의 입천정에 난 비구개공에 나무가지를 꽂아넣고나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소도 5장6부를 가진 짐승이여서 음양조화가 문란해지면 병에 든다고 하였다.
업은 아이 찾는다더니 세상리치가 너무도 뻔한 음양에 대해서도 미처 몰라보았던것이 아닌가.
이것을 미리 알아보았더라면 장성에서 아니 공주에서 벌써 사람의 체질을 가르는데 확신을 가지고 좋은 결과를 보았을것이다.
만물이 서로 대립되는것은 음과 양이 존재하기때문이다.
불이 양이면 물은 음이고 낮이 양이면 밤은 음이다. 봄, 여름이 양이면 가을과 겨울은 음이고 더운것이 양이면 추운것은 음이다. 마른것이 양이면 습한것은 음이고 밝은것이 양이면 어두운것은 음이다.
하듯이 사람의 몸에도 음과 양이 존재한다.
사람의 웃몸이 양이면 아래몸은 음이고 몸겉이 양이면 몸안은 음이다. 5장이 음이면 6부는 양이고 심장과 페장이 양이면 간장과 비장, 신장은 음이라고 할수 있다. 말소리가 높고 빠르며 맑으면 양이고 그 반대이면 음이다. 목소리가 높고 거칠면 양이고 그 반대이면 음이다.
그렇다. 음양의 리치를 사람의 체질을 가르는 자막대기로 쓴다면 사람은 양인과 음인으로 나눌수 있다.
양인에는 웃몸이 실한 사람, 페와 비장이 크고 동작이 빠른 사람, 성격이 활달한 사람, 땀이 적게 나는 사람(땀이 적게 나므로 오줌량이 많은 사람) 등이 속해야 한다.
반대로 음인에는 아래몸이 실한 사람, 간과 신장이 큰 사람, 동작이 굼뜬 사람, 성격이 온순한 사람, 땀이 잘 나는 사람들이 속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순간에 생각이 일사천리로 내달렸다. 그러나 사람을 크게 양인과 음인으로만 갈라놓은것은 석연치 않아보였다. 너무나 단조로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마음에 찰가?)
리제마는 승려들이 명상에 잠길 때면 똑바로 앉아있듯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서 사색을 거듭하였다.
한나절이 지났다.
리제마는 끝내 더 좋은 궁냥을 해내지 못한채 사색을 포기하고 일어섰다.
그때 인기척이 나고 두 제자가 방에 들어섰다. 배기달은 얼굴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웬만해서는 자기의 기분을 잘 나타내지 않던 그가 저렇게 기뻐하는걸 보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였다.
《선생님! 한가지 말씀을 올려도 되겠소이까?》
리제마는 배기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장거리에 나갔다가 해주감영의 판관나리네 집사정을 듣게 되였소이다.
그 량반이 지난해 새로 후실을 맞아들였는데 그 계집이 천하절색이라 하옵니다. 색시가 고우면 가시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판관나리는 후실의 말이라면 하늘의 별까지 따다줄 기세라고 하옵니다.
후실에게는 병든 아비가 있는데 그 아비때문에 판관이 되게 머리를 앓는다고 하옵니다. 후실이 아비의 병을 고쳐달라고 꽤나 들볶는다나요.
그래 소생이 그를 찾아가 만나보았소이다. 우리 스승이 그 어떤 병도 다 고치는 명의라고 하자 그 량반은 값을 후히 치를테니 가시아비만 고쳐달라는것이였소이다. 그래서 병을 며칠내로 당장 고쳐줄테니 말 한필을 내라고 했소이다.》
리제마는 그만 기분이 잡쳐 방바닥을 두드렸다.
《그만하게. 말많은 집에 장맛이 쓰다고 내 잘났다 떠들고 다니면 잘되는 일이 없네.》
배기달은 풀이 죽어 기여드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잘못했소이다, 선생님.》
의봉이 한걸음 나섰다.
《선생님, 이 친구가 선생님의 뜻을 잘 모르다나니 그런 약속을 했는데 이번만은 용서해주셨으면 하옵니다. 그리고 차라리 잘된것 같소이다. 판관이라면 관찰사의 손발노릇 하는 량반인데 말 한필이 대수겠소이까.》
리제마는 마음 같아서는 의봉이도 되게 꾸짖고싶었지만 이왕 배기달이 약속까지 하였다니 판관네 집을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두번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누구든 용서치 않겠네.》
배기달의 길안내를 받아 하인청과 행랑채까지 붙어있는 판관네집에 이르렀다.
후실을 얼핏 보니 한성거리에서도 뽐낼만큼 잘 생긴 녀인이였다. 몸매도 보기 좋고 고운 얼굴에서는 교태가 찰찰 넘치고있었다. 그러니 판관이 오금을 못 쓸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채뒤에 있는 집에서 가시아비가 거처하고있었다.
방에 들어선 리제마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키가 구척같이 크고 몸이 실한 거인이 방에 누워있었다. 이렇게 몸집이 실한 거인은 많이 보지 못했다.
병자가 애원조로 말했다.
《이보게, 의원! 날 살려주게나. 허리가 어찌나 쑤시는지 움직일수 없는데다 어깨까지 아파나서 팔을 쓰지 못하니 이건 완전히 신수 멀쩡한 송장일세그려.》
보건대 병자는 활달하고 과격한데다 노여움이 많을 늙은이였다.
제마는 병자곁에 앉으며 《로인님, 옷을 좀 벗어야겠소이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판관의 후실이 병자의 몸에서 옷을 벗겨냈다.
웃몸을 벗고 나선 병자를 보고 리제마는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병자나 늙은이치고 이렇게 살집이 좋은 사람은 처음 본다. 긴 목이 어찌나 굵은지 머리가 작아보일 정도이고 떡판같은 잔등에서는 척추뼈가 보이지 않는다. 웃몸과 달리 허리쪽에서는 갑자기 가늘어졌고 엉뎅이도 작다. 웃몸은 실하고 아래몸은 허한 늙은이였다. 살갗은 희고 윤택해보였다. 정말 쉽지 않은 체격이였다.
《로인님, 아픈 어깨쪽의 팔을 좀 뒤로 가져가보소이다.》
병자는 왼쪽팔을 뒤로 뻗치였으나 겨우 허리쪽으로 한뽐을 못 지나쳐 《아이쿠?》 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팔을 떨구었다.
《그럼 이번에는 앞쪽으로 올려보소이다.》
병자는 가슴부위까지 팔을 올렸으나 또 신음소리를 냈다.
리제마는 병자가 배를 깔고 눕게 한 다음 허리부위를 조심스레 눌러보았다.
《아이쿠? 누르는대로 다… 다 아프오. 젊었을적에 다친 허리를 제때에 손쓰지 않았더니 해마다 다친 때가 되면 이렇게 아프다오.》
리제마는 한숨을 쉬였다.
요통증(허리아픔)이 말썽거리였다. 의서대로 하면 요통증은 하루이틀에 고칠수 없다.
질러가는 길이 먼길이라더니…
판관의 후실은 한숨짓는 리제마를 쳐다보며 안타깝게 물었다.
《의원님, 힘들겠소이까?》
리제마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병자와 맞다들렸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고쳐주어야 한다.
리제마는 먼저 능숙한 솜씨로 병자의 왼쪽어깨를 눌러서 제일 아파하는데를 세군데 찾아낸 다음 녹두알만 한 뜸봉으로 여러장씩 뜸을 놓았다. 그 다음 허리부위에 참대부항단지를 세게 붙여놓고 두손으로 그것을 틀어잡은채 우아래로 끌고다녔다.
《아이쿠, 아? 아…》
병자는 신음소리를 냈지만 리제마는 아랑곳 않고 열심히 부항단지를 허리에서 끌고다녔다.
몸에 붙여놓은 부항단지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면서 병을 다스리는것은 시간이 급할 때 리제마가 쓰는 특기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리제마는 불쑥 묘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장성명의》는 사람의 체질을 크게 세가지로, 키크면서 아래몸이 실한 사람과 키가 작으면서 웃몸이 실한 사람, 키가 작으면서 웃몸이 허한 사람으로 갈라보았다.
그러고보면 그는 키가 크고작은가를 기본자막대기로 하여 사람의 체질을 갈라보았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이 병자처럼 키가 크면서 웃몸이 실한 사람을 말해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가. 그건 분명 이 사람과 같은 특이한 체질을 가진 병자가 드물어서였을것이다. 10여년이상 수많은 병자들을 보아왔지만 웃몸이 실한 거인은 별로 보지 못했다. 공주에서 맞다들었던 아이를 낳지 못해 애쓰던 왜장녀가 이 병자와 체격이 비슷한 사람이다.
병자들속에 이런 체격을 가진 사람들이 적은것은 실지 이런 체격의 사람들이 적은데도 있고 병에 적게 걸리는데도 있을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속에서 웃몸이 실한 거인들을 드문드문 보지 않았던가.
키라는 자막대기와 음양이란 자막대기를 합쳐쓰면 어떻게 될가.
키가 크고작은가에 따라 양인은 태양인과 소양인으로, 음인은 태음인과 소음인으로 갈라볼수 있을것이다. 이것이 옳은 판단일가. 옳은듯싶었다.
공주와 전라도에서의 체험이, 《장성명의》의 가르침이 바로 오늘을 가져왔다고도 말할수 있었다.
리제마는 하마트면 병자의 잔등을 철썩 후려칠번 하였다.
아! 하늘이 나를 돕느라고 해주에 들려가게 하였구나.
리제마는 한순간에 사람의 체질을 4상인으로 갈라놓았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입속으로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을 뇌이며 더 열성껏 병자의 잔등에서 부항단지를 끌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