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느덧 겨울이 지나가고 강남갔던 제비가 집들의 추녀밑으로 날아들었다.

화창한 봄날과 더불어 기적같은 희한한 소식이 전해져 온 공주마을을 기쁘게 하였다.

글쎄 백사람이면 백사람이 다 잘못될거라며 고개를 저었던 효가마을처녀가 백첩 약을 먹고 드디여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밀랍같이 창백하던 얼굴에 피기가 돌면서 함박꽃같은 웃음이 피여났던것이다.

리제마는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의 참뜻을 다시한번 절감하였다.

귀동이 하루같이 병자의 곁에서 약을 달여먹이고 침도 놓아주고 뜸도 뜨더니 그 지성이 그대로 처녀의 생명을 이어준 불사약으로 되였다.

처녀가 일어선 날 그의 부모들은 딸이 아니라 귀동이를 껴안고 울음을 터치였다.

그길로 처녀의 아버지는 리제마를 찾아와 고마움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 은혜도 백날에 갚을수 없다는데 다 죽게 된 딸자식을 살려준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리제마는 꺽꺽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처녀의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의 딸에게 귀동이를 장가들이면 어떨가. 눈치를 보면 귀동이도 그 처녀를 좋아하는게 알린다. 그것은 단지 의원으로서 병자를 동정하여 살리려는 마음만 아니라 사내로서 처녀를 보살피고 지켜주려는 진심이 엿보였기때문이다.

귀동이가 살기를 단념한 처녀를 구원해주었으니 이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연분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그들은 천상배필이다. 그들을 모여살게 하는것은 스승된 사람의 마땅한 도리이다.

리제마는 웃음을 가득 짓고 입을 열었다.

《그래 그 집에서 보기엔 우리 제자가 어떻소이까?》

《?…》

《내 생각엔 오늘의 이 일도 하늘의 연분인가 하오이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기웃거리던 처녀의 아버지는 그제야 얼굴이 환해서 부르짖었다.

《의원님! 그 말씀 진담이오이까? 세상에 이런 복도 있담. 의원님의 은혜를 백골난망 잊지 않겠소이다.》

그날로 리제마는 귀동이를 불러앉히고 관례식을 차린 다음 이름도 개명해주었다. 부모들이 지어준 귀동이란 이름은 아명으로 두고 의술로 백성들을 구제하는 우뚝한 봉우리가 되라는 뜻에서 의봉이라고 하였다.

물론 처녀의 집에서도 딸의 머리를 쪽지는 계례식(녀자가 시집갈 어른이 되였다는 례식)을 하였다.

이렇게 되여 의봉은 효가마을로 장가들게 되였다.

리제마는 의봉의 혼례식을 조용히 차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방네들에서 병을 고쳐주는 의원의 혼례식을 어찌 구메혼인(널리 알리지 않고 하는 혼인)할수 있느냐면서 너도나도 성심성의로 나서주는 바람에 판이 매우 커졌다.

하여튼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제자의 혼례식을 객지에서나마 섭섭치 않게 차려주었으니 스승된 사람의 도리를 했다고 할수 있었다. …

공주에서 어느덧 세해가 흘렀다.

리제마는 이제는 공주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재봉의 집에 머물러있으면서 하려고 했던바를 밝혀냈으니 떠날 명분이 있었다. 3년간 공주에서 병을 보아주면서 확신한것은 사람들의 병이 지대의 풍토에 따라 다르다는것이였다.

바로 그에 맞게 사람들의 병을 대해야 한다.

이것은 농사군들이 농사짓는 리치와 비슷하다.

농사군들은 추운 지대에서는 《보리따라기》나 《휴두벼》 같은 올벼종자를 심고 남쪽지대에서는 《천일벼》, 《청총벼》, 《해남벼》같이 바람에도 강한 늦벼종자를 심는다.

이처럼 농사군들은 지대와 풍토에 따라서 그에 맞게 농사를 지을줄 안다.

의원도 마땅히 병을 고치는데서 그렇게 해야 한다.

지대와 풍토에 맞게 사람들의 병을 다스려야 한다는것이 아직은 사람들마다 차이나는 약효를 해명하는데 별로 도움은 못되지만 이악하게 파고들면 언젠가는 꼭 그 비결을 밝혀낼수 있다고 확신한다. 신심이 있다. 아직은 그것이 실마리라고 장담할수는 없지만 사람들마다 같은 약을 썼을 때 약효가 차이나는것은 사람의 체질이 서로 다르기때문일것이다.

사람의 체질! 바로 이것이 문제해결의 요진통일것이다.

이제는 과녁이 설정되였으니 고향에 돌아가서 사람의 체질을 파고들자.

그사이 고재봉의 집살림도 어지간히 추세워주었다.

리제마는 이제 며칠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마음을 먹고 길떠날 행장을 갖추고있었다.

이때 《이 집이 고의원댁입니까?》 하는 목소리를 앞세우고 웬 사내가 삽짝문으로 들어섰다.

《예, 옳소이다.》

의봉이 방을 뛰쳐나가 그 사내를 맞아주었다.

《아, 그러니 면바로 찾아왔구만. 이 집에 함흥에서 온 의원이 들지 않았소이까?》

의봉이 의아해서 대꾸했다.

《예, 그렇소이다.》

《아, 됐군. 난 부여고을에 가는 사람인데 한성에서 혜암선생이 써보낸 글월을 가지고 왔소이다.》

혜암선생이라는 소리에 리제마는 갓신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뜨락에 내려섰다.

의봉이 길손에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였지만 그는 바쁘다면서 글월을 꺼내주고는 떠나갔다.

리제마는 글월을 받아들자 급히 펼쳐들었다.

정말 황도연의 활달한 필체였다.

황도연이 집을 멀리 떠나 공주에 내려가있는 리제마의 객지살이를 걱정하여 그의 고향소식을 전해준것이였다.

글을 몇줄 읽어내려가던 리제마는 그만 글월을 떨어뜨리며 부르짖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다니. 아!?》

리제마는 혹시 잘못 본것이 아닌가 하여 글월을 주어들었다.

분명 기로사는 3년전에, 그러니 리제마가 집을 떠난 그해에 잘못되였다고 씌여있었다.

《선생님!?》

리제마는 뜨락에 꿇어엎드려 곡성을 터치였다. 이제 더는 자기를 일깨워주고 가르쳐주던 기로사가 없다고 생각하니 서러움이 북받쳐 쾅쾅 가슴을 두드렸다.

《선생님! 그렇게 가시면 소생은 어찌하란 말이옵니까.》

의봉이도 땅을 치며 울었다.

한동안 지나서 마음이 진정된 리제마는 자기를 다잡고 글월을 마저 읽어내렸다.

황도연은 글월에서 한옥이 생남했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 다음의 글줄에서 리제마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보게, 듣자니 장성고을에 명의라 소문난 의원이 있다고 하네. 그는 병만 잘 고치는게 아니라 사람의 생김새를 보고 그 사람의 성미며 가지고있는 병, 앞으로 쉽게 걸릴 병까지 짐작해낸다고 하네.

그를 만나보면 자네의 뜻하는바를 밝혀내는데 도움이 될걸세. 한번 찾아가보게.》

리제마는 슬픔속에서도 번쩍 새로운 앞길이 트이는듯 했다.

《아, 장성에 명의가 있는줄을 난 왜 몰랐을가. 혜암선생님! 고맙소이다. 당장 장성으로 떠나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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