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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하루종일 조가을을 하며 가끔 동구길을 바라보고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까치가 울었다. 리제마가 기로사를 따라 이 집에 들어온 첫날에 심은 그 황철나무우에 앉아서 우짖은 까치였다.
이제는 황철나무가 거목으로 자랐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귀한 사람이 온다고 했다.
어제는 거미가 천정에서 줄을 드리우고 데룽데룽 내려왔었다.
거미가 줄을 늘이며 내려오면 기다리는 님이 온다고 했다.
한옥은 이번에는 거미도 까치도 헛기별을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인지 정말 오늘 낮에 인편으로 글월 한장이 날아왔다. 그렇게 기다리고기다리는 남편이 써보낸것이였다.
한옥은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글줄을 더듬었다.
이번까지 두번째로 받았다.
지난해 써보낸 글월에서 리제마는 황도연네 집에 들어서 아무 불편없이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며 안면도 넓혔고 꼭 만나야 할 기인이 있어서 공주로 간다고 하였다.
오늘 온 글월에서 리제마는 아무래도 공주에 좀더 머물러야 할것 같다고 했다. 《공주기인》의 집살림도 돌봐주고 보다는 공주에 병자들이 많은데 그들의 병이 함흥사람들이 걸리는 병과 좀 다르다고, 바로 그것을 밝혀내면 집떠난 보람이 있을것 같다고 하였다.
마음이 놓인다. 뭐니뭐니해도 객지에서 남편의 몸이 건강하다니 됐고 바라는바를 이루고있다니 됐다.
개꼬리같은 이삭이 무겁게 실린 조대들을 베여나가는 한옥의 머리속은 온통 리제마생각뿐이였다.
그동안 죽었다는 부고를 띄우지 말라는 외할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장례를 치르고 리씨가문의 대를 이어줄 아들자식도 낳아서 두아이를 키운다.
생남했다는 소식과 아들의 이름을 지어보내라는 기별을 남편에게 보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고생끝에 락이라고 남편이 뜻을 이루고 돌아오면 그동안 못 누린 기쁨을 한껏 맛보리라. …
한옥이 하루하루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있을 때 리제마는 여전히 고재봉의 집에 묵고있었다.
찾아오는 병자들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만 갔다.
침 한대면 쑤시던 팔다리가 거뿐해지고 그가 내준 탕약을 몇번 받아마시면 해묵은 속탈까지 뚝 떨어진다고 소문이 나서 공주고을만이 아니라 이웃고을들에서까지 병자들이 찾아온다.
확실히 여기 사람들이 생기는 병은 북관사람들이 걸리는 병과 차이가 있었다.
함경도사람들은 주로 찬바람, 랭기에 의해 생기는 해소병(기침병), 풍온(페염)이 많다면 공주사람들은 더위와 습기로 인한 설사나 리질이 많았다.
그렇다면 지대와 풍토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생기는 병도 달라진다는것이 아닌가.
의원이라면 마땅히 한 고을, 한 지역이 아니라 8도강산, 온 나라 모든 고장사람들의 병을 고치려 애써야 할것이다.
지역에 따라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 달라진다는것을 확증하면 그것이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 약의 효험이 달라지는것을 밝혀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가.
하여간 이것부터 확증하자.
한옥이에게 한두해 더 공주에 머물러있겠다고 인편에 글을 써보냈으니 마음놓고 달라붙자.
하여 리제마는 사람들의 병치료와 함께 의술연구에도 더욱 전심하였다.
공주고을에도 제노라 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리제마는 병치료로 바쁜 속에서도 여러 의원들을 만나 의술에 대한 의견도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 때로는 질병의 발병원인을 가지고 날이 밝은줄도 모르고 격렬한 론쟁을 벌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사람의 체질을 가르고 그에 맞는 약처방을 지어내는데 필요한 도움은 별로 받을수가 없었다.
리제마가 팽이처럼 돌아가며 병을 진단하고 약처방을 내주면 귀동이가 처방대로 약을 지어냈다.
귀동이 하는 일이 한가지 늘어났다. 그것은 약을 받아먹은 병자들의 병이 나아지는 상태를 알아내여 글로 남기는 일이였다.
리제마가 포태골에서 의술을 배우겠다고 나선 귀동이에게 선참으로 배워준것이 약초를 가려보고 병자의 맥을 짚어보는것이 아니라 글짓기였다.
글을 잘 알아야 의서에 씌여진 글뜻을 풀어볼수도 있고 자기가 쌓은 의술을 의서로도 남길수 있다는것이 그의 지론이였다.
리제마는 가난한 사람들의 병은 거저 보아주었지만 부자들한테는 약값을 꼭꼭 받아냈다. 그렇게 받아낸 돈으로 고재봉의 집을 고쳐지었고 살림밑천도 장만해주었다.
고재봉이 이제는 타지에서 그만 세월을 보내고 함흥으로 떠나라며 등을 떠밀었지만 그렇게 할수 없었다. 마음먹고 도와줄바엔 좀더 도와주고 명년 봄쯤에 떠나자.
오늘도 제마는 아침일찍 요기를 하고나서 찾아온 병자들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오늘은 처음부터 녀인들이다.
첫눈에 방 한켠에 쭈그리고앉은 두 녀인이 무슨 병으로 찾아왔는지 알수 있었다.
두 녀인은 다 스물댓살 나보이는데 생김새는 판판 달랐다. 한 녀인은 실로 왜장녀라고 할만 했다.
허우대가 두드러지게 큰 녀인을 왜장녀라고 한다. 그 녀인은 어찌나 큰지 앉은키도 보통 사내보다 반뽐가량은 크고 선키는 리제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얼굴은 크고 둥글며 활달해보였다.
반대로 다른 녀인은 키가 작고 아련하고 얌전하게 생겼다.
두 녀인은 어데가 아파서 왔다는 말은 꺼내지 못하고 죄를 진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만 있었다.
리제마는 그들이 아이낳이를 못해본 녀인들이며 그때문에 왔으리라고 생각했다.
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것은 대체로 병에 걸려서이기도 하지만 한이불속에 드는 사내의탓이기도 하다.
리제마는 두 녀인을 가까이 나앉게 한 다음 두손으로 동시에 그들의 맥을 짚어보았다.
병세를 물어보지 않고도 짐작할수 있었다.
두 녀인은 다같이 늘 아래배와 손발이 차다고 할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체소한 녀인은 웃배까지 차다고 할 때가 많을것이고 키큰 녀인은 잔등이 시리고 팔다리가 가끔 저리면서 아프다고 할것이다.
그건 다 랭병이 심해서 그렇다. 랭병이 심하니 무자(불임증)에 걸려 아이를 낳을수 없는것이다.
녀인들에게 있어서 랭병은 만병의 근원인데 그것은 늘 고되고 진일에 부대끼다보니 생기는 병이다.
안색을 보니 두 녀인이 다 얼굴이 누르끼레하고 여위였다. 그렇다면 어지럼증도 있을것이다.
리제마는 쑥스러워하는 녀인들을 위로하여 말했다.
《너무 근심들 마소. 이제 약을 좀 쓰면 태기가 있게 될것이고 그러면 시부모님들의 귀염을 받을수 있소.》
두 녀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이를 배게 해주려면 랭병부터 떼주어야 한다.
리제마는 약처방을 내리였다.
체소한 녀인은 비위허한증에 해당되는 랭병이니 포부자, 포건강이 들어간 부양조위탕이 좋겠고 키큰 녀인은 풍한증에 속하는 랭병이라 인삼과 차조기잎이 들어간 삼소음이 맞을것이다.
리제마는 그들에게 60첩씩 약을 지어주었다.
《이 약을 한번에 한첩씩 하루 두번 끼니사이에 달여먹으시오. 될수록 덥게 하고 동침하소. 이 약을 다 쓰고나서 다시 찾아오시오. 그때 다른 약을 내여주겠소. 그 약을 두달가량 받아쓰면 반드시 알 도리가 있을거요.》
약을 받아든 녀인들은 고맙다고 거듭 절을 하고 돌아갔다.
리제마가 숨을 좀 돌릴가 하는데 급한 기척소리에 이어 방문이 열리였다. 귀동이 들어와 대뜸 꿇어엎드리기부터 한다.
《선생님! 불쌍한 랑자를 살려주사이다.》
《?! …》
리제마는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귀동은 오전에 효가마을을 다녀오게 되여있었다.
그 마을에 적취에 걸린 늙은이가 살고있다. 예로부터 적취는 고치지 못하는 병으로 알려져있다.
두달전에 효가마을에 사는 젊은이가 자기 아버지를 업고 와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리제마는 오독도기를 섞은 약을 그에게 내주었다.
오독도기는 독성이 몹시 세서 벌레까지 죽일수 있다.
리제마는 옴이나 악창에 바르는 독한 약초로 알려진 오독도기를 대담하게 약처방에 넣어주었다. 옛적의 의서들에도 오독도기를 적취에 썼다는 기록이 있었던것이다.
그 오독도기가 신비한 효험을 냈는지 배아픔이 매우 심해서 고통스러워하던 병자가 미음도 받아먹고 기운이 나서 바깥출입을 한다는 기별이 왔다.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제마는 귀동이를 보내여 사실여부를 알아보라고 했었다.
그런데 알아오라는데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난데없이 처녀를 살려달라는 소리뿐이다.
《대체 무슨 일인지 바로 말해야 알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귀동은 먼저 효가마을에 가서 늙은 병자를 만나본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자가 병이 차도가 커서 인사를 차리러 오겠다고 한다는 소리에 리제마는 한없이 기뻤다. 지옥사자의 명부에서 또 한사람을 지워버린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 옆집에 골병을 앓은적없이 다리에 병이 들어 일어나앉지도 못하는 처녀가 있다는것이였다. 오늘 아침에 그 처녀가 그런 병을 안고 일생 살바에는 차라리 죽겠다고 하여 큰 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
리제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