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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마는 귀동이와 함께 중풍에 든 병자를 치료하고 돌아오고있었다.

요즘은 도처의 마을들에서 병을 봐달라고 청해오는 사람들이 많아 눈코뜰새 없었다.

며칠만 공주에 머무르고 함흥으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죽지 못해 살아가는 고재봉의 형편을 보고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하루이틀 늦잡는 사이 명의라는 소문이 나서 발목을 묶인것이였다. …

어느새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왔다.

리제마는 여전히 공주에 머물러있으면서 사람들의 병을 보아주고있었다.

집에서는 한옥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겠는데 북행길을 타자니 병자들이 앞을 가로막았고 고재봉이 또한 마음에 걸렸다.

어느 고을이나 다를바 없지만 공주고을은 병자가 더 많은것 같았다. 공주가 벌방의 큰 고을이다보니 인총이 붐비여서일것이다.

당장 의원의 손길이 가닿지 않으면 잘못될수 있는 숱한 병자들을 두고 제 집 사정이 급하다고 해서 어떻게 떠나갈수 있단 말인가.

그도 그렇고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고재봉의 두 식구가 다 굶어죽고말것이다.

어떻게 하나 고재봉의 집살림을 추세워주고 가도 가야 한다.

리제마가 이런 생각에 묻혀 머리를 수굿하고 장거리를 지나가는데 《게 섰거라!》 하는 호통소리가 앞에서 울렸다.

리제마는 놀라 눈길을 들었다.

뜻밖에 안면이 있는 《명주바지저고리》가 앞을 가로막고있었다.

그자의 뒤에 대여섯의 라졸들이 창대를 꼬나들고있었다.

귀동이 앞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왜 남의 앞을 막는거요?》

《명주바지저고리》가 삿대질을 하며 씨벌였다.

《왜냐구? 벌써 잊었니? 관가어르신을 모욕하고도 무사할줄 알았는가. 내 여직껏 네놈들을 찾아다녔다.》

리제마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거 함정에 빠졌구나. 이럴줄을 내다보지 못하고 공주에서 오래 묵은것이 잘못이였다. 자칫하다간 형틀에 매일수 있겠다.

귀동이 성이 나서 맞섰다.

《흥! 가소롭다. 우리 선생님의 머리칼 하나라도 다쳤다간 네놈들의 대갈통이 박살날줄 알아라. 그래도 비키지 못하겠어?》

《뭐가 어쨌어? 얘들아, 요놈부터 오라를 지워라.》

《명주바지저고리》의 호령에 라졸들이 귀동이를 둘러쌌다.

리제마는 그제야 입을 뗐다.

《그래, 나에게서 뭘 바라느냐?》

《곱게 오라를 지고 사또님에게 가자는게다.》

《가만! 너희들이 곱게 가자 하면 내 발이 따를것이요, 오라를 지우겠다 하면 이 주먹이 말을 듣지 않을것이다.》

리제마의 웨침소리에 《명주바지저고리》는 목을 쑥 움츠렸다. 법보다 눈앞의 주먹이 무섭다고 서뿔리 덤비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것이다.

《명주바지저고리》는 한결 기세가 꺾여 떠듬거렸다.

《좋다, 곱게 걸으면 오라는 지우지 않겠다. 그러나 달아날 틈을 노린다면 그땐 목없는 귀신이 될줄 알아라.》

리제마와 귀동은 라졸들의 뒤를 따라 공주관가로 갔다.

길가에서 라졸들에게 끌려가는 리제마를 보고 놀랜 사람들이 떼를 지어 우르르 뒤를 따랐다.

《함흥의원》이 잡혀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따라오는 사람들의 수는 삽시에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리제마가 관가에 들어서니 동헌뜨락에 형구가 놓여있고 대청마루에는 장죽을 입에 문 고을원이 거드름스럽게 앉아있었다.

리제마와 귀동을 잡아들인다는 전갈을 받고 형구를 차려놓은것이였다.

리제마는 눈앞이 캄캄했다.

정말로 잘못 걸렸다. 제발로 형구를 지고 온셈이 되고말았으니…

《명주바지저고리》는 공주관가의 형방이였다.

형방이 대청마루아래의 퇴돌로 다가가 허리를 굽신거리며 목청을 돋구었다.

《사또님께 아뢰오. ? 범인들을 잡아왔소이다.》

고을원이 장죽으로 뜨락에 선 리제마를 삿대질하였다.

《어째서 저놈에게 오라도 지우지 않았느냐?》

리제마는 이럴 때 머리를 숙이기 시작하면 죽는 길밖에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러나저러나 맞서보아야 한다.

《사또님은 어찌하여 알아보지도 않고 저희들을 나쁜 놈이라고 하는것이오이까?》

사또는 게거품을 한입 물고 목청을 돋구었다.

《너 이놈! 그래 네놈들이 관장의 령을 받들고 일을 하던 형방에게 매를 안기지 않았단 말이냐? 무엄하게도 암행어사라 한것은 또 무어고? 열백번 릉지처참을 해도 남을 죄란 말이다.》

리제마는 사또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나라법에 농사철에는 대역죄, 살인죄를 내놓고는 송사를 하지 않게 되여있소이다. 그만큼 농사가 중하기때문이옵니다.

나라님께서도 밭에 나가시여 곡식을 뿌리는 봄철에 전해의 빚을 빨아들인다고 사또께서 라졸들을 풀어놓아 마을을 분탕칠하는게 옳은 일이오이까? 소인은 사또님께서 대역죄를 저지른 무리이거나 화적들이 사는 마을도 아닌 마을에 라졸들이 백주에 무리로 달려들어 무고한 백성들을 릉욕하고 가산을 마스고 솥을 뽑아내는것과 같은 악행을 시켰을리는 만무한줄로 아옵니다.

이는 <경국대전>(리조의 법전)에 심히 어긋나는 범행이온데 이일은 전적으로 탐욕무도한 저 형방이 제배를 불리자고 한짓인줄 알고 말을 한것이옵니다.》

《저건 웬 놈들이냐?》

그때 동네의 좌상들임이 분명한 늙은이 서넛이 들어와 뜰에 무릎을 꿇었다.

형방의 낯은 새까맣게 질리였고 사또는 말문이 막혀 붕어처럼 입을 쩝쩝거리며 어느새에 몰려와 관가밖에서 웅성거리는 백성들의 무리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또께옵서 부디 의원님께 벌을 내리지 말아주시오이다. 우리 공주고을의 수많은 병자들의 목숨이 저 의원의 손에 달려있소이다. 그가 없으면 우리 공주땅에 떼죽음이 나게 되오이다. 부디 죄를 다스리지 말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동네좌상로인들이 간청했다.

리제마는 눈굽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타지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백성들이 이렇게까지 도와나설줄은 몰랐다.

사또가 눈만 데룩거리고있는데 귀동이 한걸음 나서며 야무지게 말했다.

《사또님! 우리 선생님은 한성에서 명의로 알려진 혜암선생님의 제자인줄 아오이다. 혜암선생님은 령의정대감, 령돈녕부사대감과 같은 조정대감들과 절친한 사이옵니다.》

리제마는 그만 기분이 잡쳐 《그만하지 못할가?》 하고 소리쳤다. 아무리 헤여나올수 없는 궁지에 빠졌대도 불의한자들의 추한 이름을 내대면서까지 위험을 면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열려진 귀동이의 입은 막을수 없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걸음은 환재 박대감어르신께서도 알고계신줄로 아옵니다.》

사또는 자기를 빤히 쳐다보며 들이대는 귀동이를 피해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제마를 내놓으라고 웅성대는 백성들의 모습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상대를 잘못 골라 잘못 다친셈이다. 웬만큼 배짱이 센 놈도 관가에 끌려오면 초죽음을 당한것처럼 후줄근해지기마련인데 저 사람들은 고을관가쯤은 개잘량으로 아는지 기품이 여간 당당하지 않다. 확실히 뒤가 든든해보인다. 공주사또는 땅에 엎드려있는 늙은이들에게로 시선을 내리웠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말했다.

《너희들의 말대로 내 알아들었으니 돌아들 가라.》

그것은 리제마와 귀동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리제마와 더 말해본댔자 본전도 건지지 못할것 같았던것이다.

《어서 돌아들 가라!》

그는 손을 내젓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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