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리제마는 며칠째 고재봉의 집 웃방에서 그가 넘겨준 책을 보고있었다.

100매가 넘는 참지를 묶어만든 두터운 종이뭉테기였다.

지금껏 고금의 의서들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고재봉이 쓴것과 같은 책은 본적이 없었다.

이런 책은 동양에든 서양에든 있어보지 못했을것이다.

리제마는 벌써 몇번이나 읽어본 책의 서두를 다시 펼쳐놓았다.

고재봉은 서두에 이 책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된 동기를 서술하였다. 그 동기가 흥미진진하기 그지없었다.

고재봉이 의금부 라졸로 뽑혀 한성에 올라간지 한해가 지난 어느 여름날이였다.

그날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된 우참찬 서유구(1764-1845)의 집에 불려가게 되였다.

워낙 인정이 헤프고 의술이 좋은 그는 군사들과 의금부주변 마을사람들속에서 인기가 있었다.

병자가 있으면 제 집 식솔처럼 여기고 뛰여다니며 고쳐주니 의금부의 관리들까지 그를 자기 집으로 청해가군 하였다.

그날도 고재봉은 서유구의 손녀가 갑자기 앓으니 병을 보아주라는 의금부 도사(종5품)의 분부를 받은것이였다.

고재봉은 한달음에 서유구네 집을 찾아갔다.

의정부(리조시기 최고통치기관)에서 우참찬의 높은 벼슬을 지내는 서유구는 이전에 리조판서, 병조판서를 력임한바 있어 권세가 대단했다.

고재봉의 걸음이 가벼워진것은 이번 기회에 한번 솜씨를 보여주고 벼슬을 얻어볼가 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쌓은 서유구의 공적에 마음이 끌려서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구마로 끼식을 에우면서 서유구를 생각했고 그를 오늘의 문익점이라고 칭찬들을 했다.

일찌기 호남과 령남의 여러 고을들을 순행하면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처지를 가슴아프게 여긴 서유구는 어떻게 하면 흉년을 구제할가 고심하던중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한 친구에게 소출이 높다는 고구마를 부탁하여 들여오게 하였다. 그리고 여러해동안 갖은 애를 다 써서 가져온 고구마의 풍토순환을 성공시켰다.

고구마는 맛도 괜찮고 근기도 있는데다 보다는 다른 작물들보다 가물이 들고 큰물이 져도 소출이 많이 나서 흉년에 가난한 사람들을 살려줄수 있었다. 고구마야말로 흉년에 백성들을 구제하는 귀물이였다.

서유구는 고구마농사에 대한 농서 《종저보》까지 써내여 백성들의 생활에 기여하였다.

이런 사람이 진짜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중시하는 충의지사가 아니겠는가.

서유구네 집에 가보니 대여섯살 난 계집애가 배를 그러안고 태질하고있었다. 새우젓밖에는 별다른 음식을 먹인것이 없는데 갑자기 배를 그러쥐고 게우며 설사한다는것이였다.

고재봉은 제꺽 계집애가 곽란(식중독)에 걸렸다는것을 알아차리고 지체없이 양버들나무(뽀뿌라나무)의 가지를 꺾어다 한줌 달여먹였다.

아이는 약물을 받아마신지 한시간쯤 지나자 언제 배를 아파했던가싶게 일어나서 뛰놀았다.

서유구네 집 식구들은 그것이 너무도 신기하여 고재봉의 손을 잡고 명의중의 명의라고 치하하였다. 사랑방으로 고재봉을 불러들인 서유구는 의술을 닦는데 도움이 될거라면서 의서 한책을 내주었다. 서유구의 친구가 청나라에 갔을적에 사온 책이라는것이였다.

의금부로 돌아온 고재봉은 그 책을 펼쳐보았다. 서방의원들의 전기를 묶은 책인데 고재봉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고재봉은 서방이 천하의성이라고 하는 히포크라테스(그리스의 의학자, B. C. 460년경-B. C. 377년경)의 의술업적을 읽고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인체해부로부터 병을 진단하고 약물의 적용, 병자를 대하는 의원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60여편의 방대한 의서를 남기였다니 어찌 탄복하지 않을수 있으랴.

고재봉이 큰 충격을 받은것은 영국의 의학자였던 하비(1578-1657)가 내놓은 혈액순환에 대한 리론이였다.

죽은 사람의 몸에 칼을 댈수 없다는 국법을 무릅쓰고 시체들을 남몰래 해부해본 하비는 의서 《심장의 운동》을 내놓아 서방에서 천년이상이나 법처럼 물려온 갈레노스(그리스의 의학자, 129-199)의 리론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갈레노스는 사람의 몸에서 피는 저절로 동맥과 정맥을 통하여 온몸에 흘러 심장으로 돌아오는데 좌우심실사이의 격벽을 통하여 그 피가 좌심실로 들어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비는 이를 부인하고 심장이 자기스스로 줄어들며 이때 줄어드는 힘에 의하여 피가 심장에서 동맥으로 밀려나가서 모세동맥으로부터 모세정맥으로 흐르며 정맥변의 작용으로 피가 이동한다는 혈액순환의 정설을 내놓았다.

고재봉은 서방에서 사람의 몸에 피가 도는 리치를 알아냈다면 자기는 사람의 5장6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으며 보다는 그 기능이 어떠한가를 알아내고싶었다. 그것을 알아낸다면 병을 일으키는 원인도 그 치료비방도 밝힐수 있을것 같았다. 고재봉이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데는 자신이 있어서였다.

의금부의 옥에는 숱한 죄인들이 갇혀있었다.

어느 하루도 의금부에서는 죄인들의 울부짖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고재봉에게는 심문을 당하는 죄인들의 상처를 보아주고 죽은 죄인들의 시체를 매장하는 일감이 맡겨졌다.

태반이 머리나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시체들이였다.

고재봉은 시체들을 매장하기에 앞서 해부하여보고 그 실태를 빠짐없이 적어두었다. 동시에 그는 목을 치게 되여있는 죄인들과 접촉하여 그들의 체격이며 용모, 살갗상태, 성격 하다못해 좋아하는 음식만이라도 알아내여 써놓았다.

리제마는 글줄의 한 대목에 눈길을 주었다.

《나이 31살, 체격은 큰편이다. 하체는 실하고 상체가 허했으나 옥살이로 몸이 쇠약해졌다. 목은 짧고 가늘며 동작은 굼뜬편이다. 얼굴은 검고 듬직해보인다. 살갗은 두껍고 땀구멍이 크다. 참고 견디는 의지가 세서 매를 칠 때에 비명이 적다. 본인이 하는 말은 맵고 더운 음식, 고기와 술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죽은 다음 배안을 보니 다른 사람보다 간은 크나 신장과 비장은 엇비슷하고 페는 작았다.》

다음대목은 이러했다.

《나이 35살, 체소하고 하체가 실하나 상체는 허하다. 엉뎅이가 크고 가슴통이 좁다. 얼굴은 둥글고 아련하며 얌전하게 생겼다. 살갗은 부드럽고 살발이 가늘다. 성질은 온순하고 조용하며 곁을 잘 주지 않는다. 대체로 더운 음식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신장이 크고 비장은 작으나 간과 페는 비슷했다.》

리제마는 비로소 5장의 크기가 체격이 크면 크고 작으면 작은것이 아님을 알수 있었다.

5장의 크기가 상체와 하체의 실한가 허한가에 따라 좌우된다는것은 실로 가치있는 발견이 아닐수 없었다.

고재봉은 책의 마감에 자기가 세운 뜻은 5장6부의 구체적인 기능을 알아내여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처방을 찾아내는것이였는데 그만 가난에 빠져 그끝을 보지 못한것이 한스럽다고 썼다.

이것만 보아도 고재봉이 의술에 얼마나 뜻을 높이 세웠던가를 알수 있다.

책을 보면 볼수록 고재봉의 남다른 수고가 헤아려져 머리가 숙어졌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