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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주막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차령고개를 넘는 리제마는 큰 기대로 하여 가슴이 울렁거렸다.

사흘걸음에 공주지경에 들어섰으니 늦어도 래일 오후쯤엔 사람의 5장6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속속이 안다는 《공주기인》을 만나게 될것이다. 고재봉이라는 사람인데 습벽도 괴이하여 반드시 술을 동이질해야만 자기의 재주를 보여준다니 술 취해야 명화를 그리여 호까지 취옹이라 불리웠다는 김명국(17세기 화가)과 비슷한 사람일게다.

가라말을 끌고 산발을 바라보는 리제마는 한성을 떠나오면서 함흥으로 가는 인편에 공주로 향하게 된 사연을 적은 글월을 집에 보내기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그 글월을 받아보면 한옥이 집떠난 사내의 일에 대하여 마음이 좀 놓일것이다.

리제마는 기분이 좋아져서 타고가는 말의 잔등에 실려있는 두개의 부담짝을 내려다보았다.

황도연이 고재봉에게 보내는 천필이며 약재들이 담긴 부담짝이다.

말을 견마잡은 귀동이 앞을 가리키며 물었다.

《선생님! 저기 저앞에 멀리로 보이는 높은 산이 공주고을의 명산인 계룡산이 아니오이까?》

귀동이의 물음에 리제마는 눈길을 들어 앞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계룡산일게다.》

그때 앞에서 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제마도 귀동이도 놀라 소리나는쪽을 바라보았다.

언제 고개길을 내려왔는지 서쪽의 이름모를 산기슭에 마을이 있었다. 초가집들이 줄잡아 수십채 들어앉은 마을인데 온 마을이 벌둥지를 쑤셔놓은듯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여기저기에서 개짖는 소리, 쫓겨다니는 닭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거칠고 걸죽한 욕설소리,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대뜸 눈에 띄우는것은 삽짝문들을 마구 짓뭉개며 종횡무진으로 마을을 뛰쳐다니는 무리였다. 하나같이 손에 방망이를 들었는데 흑의를 걸치고 패랭이를 쓴걸 보면 라졸들이다.

리제마는 분이 치받쳐서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주인의 마음을 엿보았는지 가라말이 뚝 멎어섰다.

라졸놈들이 후려치는 방망이에 얻어맞아 머리가 터진 사람들, 그놈들의 발길질에 채워 쓰러진 녀인들, 무서워 벌벌 떠는 늙은이들, 울부짖는 아이들…

백성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백주에 라졸들이 달려들어 저러는걸가.

임금을 저주하는 무슨 대역죄라도 지었는가.

리제마는 《제발 이것만은 남겨주사이다.》 하는 녀인의 울부짖는 소리에 정신이 곤두섰다. 리제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량볼따귀에 강엿덩이를 문듯 심술궂게 생겨먹은 라졸놈이 부엌에 뛰여들어 솥을 뽑아들었는데 녀인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그놈의 팔에 매달려 소리치고있었다.

《거긴 누이도 없수?》

《누이? 누인 또 뭐 말라빠져죽은 귀신이야? 내라는걸 제때에 내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하라는게 사또님의 분부시란 말이야!》

리제마는 치를 떨었다. 그러니 관가에서 백성들의 집을 털어내는 악행을 백주에 저지르고있구나.

라졸놈이 녀인을 사정없이 발로 걷어찼다.

《아이쿠?》

녀인은 모재비로 부엌구석에 나가넘어졌다.

《뭘 꾸물거려? 빨리빨리!》

어디서 나타났는지 《명주바지저고리》가 녀인이 쓰러진 집앞에서 소리쳤다.

새로 지은듯 한 명주옷을 쭉 빼입은걸 보면 고을사또의 턱밑에 붙어 가렴주구로 백성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구실아치가 분명하다.

부추기면 승기를 부린다고 솥을 뽑아든 라졸놈은 기가 살아서 다시 일어나 팔에 매달리는 녀인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밖으로 질질 끌어냈다.

리제마는 그 순간 한평생 고된 농사일로 골병들어 쓰러져버린 외가집어른들이 생각났다.

저런 악꾸러기들때문에 나라를 먹여살리는 백성들이 제명을 못살고 쓰러진다.

그냥 두면 안된다. 백두산기슭에서 닦은 무술로 백성들을 짓밟고 욕보이는 악한들을 이런 때 징벌하지 않으면 어디에 쓰라는거냐.

리제마가 두팔을 걷어붙이는데 《이놈아!?》 하는 야무진 소리가 곁에서 울리며 귀동이가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귀동이의 발길이 번쩍하자 녀인의 머리채를 움켜쥔 라졸놈이 악!? 소리를 지르며 상통을 싸쥐였다. 재차 귀동이의 주먹이 그놈의 명치로 날아들었다.

《헉?》

라졸놈은 배를 끌어안고 푹 꼬꾸라졌다.

갑작스레 일어난 봉변에 어리둥절해섰던 《명주바지저고리》가 《얘들아, 저놈을 묶어라.》 하고 소래기를 질렀다.

여기저기에서 달려온 라졸놈들이 고함을 지르며 귀동이를 에워쌌다.

귀동은 성난 맹호마냥 펄펄 뛰며 달려드는 놈들을 걷어차고 후려친다.

백두산기슭에 태를 묻고 무술을 닦은 그의 재주인데 어찌 헛발이 있으랴.

우르르 달려들던 라졸놈들이 연방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낯이 새파래서 서있던 《명주바지저고리》가 악에 받쳐 땅바닥에 나딩구는 방망이를 주어들었다.

《명주바지저고리》가 살기를 내뿜으며 귀동이를 겨누고 방망이를 높이 추겨들 때 리제마는 땅을 한번 차고 몸을 날려 어느새 그놈의 손목을 잡아쥐고 힘껏 비틀었다.

《아악?》

귀청을 째는 새된 비명을 지르는 《명주바지저고리》의 손에서 방망이가 툴렁 떨어졌다. 리제마가 어찌나도 세차게 비틀었는지 구실아치는 살가죽이 벗겨진 손목을 싸쥐고 아우성을 쳤다.

리제마는 땅바닥에서 가지처럼 생긴 돌멩이를 왼손에 집어들고 오른손으로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뻑!? 소리와 함께 돌멩이는 쇠메로 내리친듯 두동강이 났다.

그것을 본 라졸놈들은 와들와들 떨었다.

리제마는 두동강이 난 돌멩이를 흔들어보이며 소리쳤다.

《이놈들! 어떤 놈이든 함부로 날뛰다간 이 돌멩이꼴이 될줄 알아라.》

리제마는 《명주바지저고리》를 노려보며 엄하게 물었다.

《이놈아, 어이하여 백성들을 략탈하는거냐?》

피가 밴 손목을 싸쥐고 《명주바지저고리》는 벌벌 떨었다.

《저, 마을놈들이… 아니, 이 마을 백성들이 몇해째나 군포를 내지 않았소이다.》

리제마는 발을 꽝 굴렀다.

《이놈아, 군포를 턱대지 말아. 자고로 봄에는 나라가 어렵더래도 쌀고간을 열어서 백성들에게 농량을 꿔주게 되여있다.

그런데 네놈들은 백주에 마을에 달려들어 농사일에 바쁜 백성들을 략탈하다 못해 솥까지 뽑아내니 이게 나라님께 충정을 바치는 일이냐?》

귀동이한테 얻어맞고 너부러졌던 라졸놈들이 기신기신 일어나 울상이 된 《명주바지저고리》의 곁에 몰켜들었다.

《똑똑히 듣거라. 다시한번 이따위짓을 하면 누구든 가차없이 큰칼을 씌울테다.》

큰칼을 씌우겠다는 호통소리에 《명주바지저고리》가 자라목이 되였다.

라졸놈들은 저희들끼리 술렁거렸다. 어느놈이 먼저 《저이가 암행어사 아니요?》 하고 수군대자 다른 놈들이 맞장구를 쳤다.

리제마는 차라리 잘되였다고 생각하였다. 권세밖에 무서운줄 모르는 저런 놈들에겐 암행어사로 행세하면서라도 혼쌀을 내는것이 나쁘지 않을것이다.

《너 이놈! 아직도 저 솥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게 하지 못할가?》

《명주바지저고리》가 급해맞아 볼따귀가 축 처진 라졸놈을 쏘아보았다. 그놈의 눈찌에 덴겁을 한 라졸놈이 황황히 덤벼치며 솥을 안고 부엌으로 뛰여들어갔다.

리제마는 손을 털며 저력있게 소리쳤다.

《에끼, 이놈들! 보기도 싫다. 썩 사라지지 못할가.》

리제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아날 구멍수만 찾던 《명주바지저고리》가 먼저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놈의 뒤를 따라 라졸놈들이 큰길로 냅다 줄행랑을 놓았다.

그 꼴을 보며 리제마는 소리없이 웃음을 지었다.

리제마는 귀동이와 함께 큰길로 말을 몰았다.

점점 멀어지는 마을을 돌아보며 리제마는 암행어사란 말이 생각나 이를 사려물었다.

《춘향전》의 리도령이처럼 암행어사가 되여 탐관오리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한다면 얼마나 통쾌할가. 하긴 나라고 암행어사가 못된다는 법 없다. 이제 과거에 나가 급제만 하면 제마 자기도 장차 암행어사로도 될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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