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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연과 겸상을 하고난 리제마는 자기의 생각이 너무도 짧았음을 자인하였다.

황도연의 집은 크고 요란해보이는 바깥과 달리 안은 소박하였다. 어느 방을 보아도 가장집물이 보통것이였고 방의 태반은 병자들을 들이는 방이였다. 먹는 음식도 수수하였다. 고기붙이 같은 기름진 음식은 없어도 산채며 남새반찬들이 하나같이 정갈하고 입에 붙었다.

등창을 처치받은 녀인의 늙은 어머니가 슬그머니 귀띔하기를 자기네는 병이 나면 이 집을 찾아오는데 그것은 혜암선생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눅게 약을 내주고 어떤 때는 병을 거저 보아주기때문이라고, 인심이 낭끝인 한성에서는 실로 쉽지 않은 어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황도연을 오해한셈이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물은 건너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내보아야 안댔는데 황도연이 안동김가와 같은 벼슬아치들을 찾아다니는것만 보고 속단했다.

차를 마시고난 황도연은 장죽에 불을 붙여 물었다. 한모금 맛스럽게 장죽을 빨고난 그는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의원은 담배를 태우지 않으려나?》

《예, 소인은 배우지 않았소이다.》

《그런가,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면 피우지 않는것이 좋지. 사실 이 담배란게 심심할 때 좋은것 같지만 사실은 괜한 군일일세.

그건 그렇고, 아까 등창을 째면서 생각한것이 있으면 말해주겠나?》

그러지 않아도 그에 대한 생각을 꺼내려던 참이였다.

《선생님! 제가 종기를 째며 속으로 한탄한것은 일찌기 등창으로 붕어하신 효종대왕(리조 17대임금, 재위기간 1650-1659)때문이였소이다. 그때 의원들이 자기 구실을 바로하였더라면 어찌 등창따위로 임금을 잃게 하였겠소이까.

사람의 몸에 큰침을 대면 안된다는 페단이 나아가서는 지존의 옥체에서 피를 흘리게 하는것은 불충불의한짓이라는 무서운 공리공담으로 번져져 종당에는 나라가 손실을 보았소이다.》

효종대왕의 붕어한 죄는 사실 의원들에게가 아니라 조정벼슬아치들에게 따져야 한다. 바로 그들이 임금의 몸에 칼을 대는것은 대역죄라 떠들어대는 바람에 어의들은 감히 손을 쓰지 못한것이였다.

《다음은 좀 복잡한건데… 창상이나 종기를 고치는 비방은 대체로 명백하여서 여러 병자들에게 그 효험이 별로 차이가 없소이다. 침이나 뜸의 효험도 이와 다를바가 아닌줄 아오이다.》

리제마는 숨이 가빠 잠시 말을 끊었다.

이제 꺼내자고 하는 말이 한성걸음의 기본알맹이라고 할수 있다. 그 알맹이에 대한 해답을 들으려 애타게 황도연을 찾아다닌것이였다.

《선생님! 소인이 여러해동안 의술을 하면서 도저히 풀지 못한 문제가 있소이다.

약에 대한 효험이 같은 병인데도 병자들에 따라 다른데 왜서 그러한지, 그리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약처방을 알고싶소이다.》

《…》

담배불이 꺼진 대통을 재털이에 대고 털고난 황도연은 리제마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그러나 입은 얼어붙은듯 열리지 않았다.

《선생님! 가르치심을 받고저 하옵니다.》

리제마의 조급해하면서도 간절한 말에 황도연은 길게 한숨을 쉬고나서 입을 열었다.

《안됐소만… 난 그대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줄수 없소그려.》

《?!…》

리제마는 황도연의 이 말이 진실임을 알수 있었다. 결코 자기가 터득한 비결을 대주기 싫어서 대답을 피하는것은 아닐것이다.

하다면 그를 찾아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이번 걸음이 과연 헛걸음이였단 말인가!

황도연은 실망의 빛이 력력한 리제마의 눈길을 피하며 뜨직뜨직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그대의 물음에 해답을 줄수 있는 의원은 아마 우리 나라에, 아니 동양에도 서양에도 없을거요. 단언하건대 구암선생(허준)이나 로중례선생이 살아계신대도 그에 대해서만은 뭐 별루 신통한 가르침을 기대하기 어려울거요.

아, 내 나이 10년만 젊었어도 그대와 손을 잡고 한번 파고드는건데… 늙은것이 한스럽소.》

황도연은 안타까워 가슴을 쳤다.

사실 그는 그때 의서 《의종손익》을 집필하고있었다. 몇해안으로 빛을 보게 할 작정이였다.

그는 그 책의 마지막 13권에다 수백종에 달하는 약재들을 서술할 작정이였다. 약재들의 이름도 알기 쉽게 우리 말로 붙여주고 약효며 법제하는 방법이며도 누구나 다 알기 쉽게 가사(약성가)형식으로 써낼 생각이였다.

이 책이 백성살이에 도움이 되는만치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데 사실말이지 황도연은 사람들에 따라 약의 효험이 달라지는것은 알고있었으나 그 원인이며 처방 같은것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그런데 리제마는 젊은 나이에 의술에서 반드시 밝혀내야 하는 가장 긴요하고 가장 어려운 일감을 찾아내였다.

이것만 보아도 그의 의술을 짐작할수 있다. 어떻게 해야 그를 도울수 있겠는지…

《<함흥의원>! 내가 해줄수 있는 말은 이게 다요. 지금 실정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지. 하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장죽에 다시 불을 붙여무는 황도연의 생각은 착잡하였다.

리제마가 등창난 녀인을 치료하는것을 보면서 보배덩이가 저절로 굴러들어왔다고 생각했고 그를 수하에 두리라 마음먹었었다. 리제마같이 쟁쟁한 젊은 의원을 수하에 데리고 다니면 그 어떤 병자래도 자신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상대해보니 리제마는 어느 한 자리에 붙들어둘수 있는 인물이 아니였다. 남달리 머리에 의문이 가득하고 탐구심이 강한 사람은 한자리에 묶어둘수 없다. 무엇으로든 돕고싶었다.

황도연은 문득 충청도 공주에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고향인 경상도 창원고을에서 어린시절 한 스승으로부터 함께 글도 의술도 배운 그 친구는 젊어 한때 의금부에서 라졸을 지낸바 있는 괴짜였다.

의금부는 임금과 나라를 배반한 대역부도죄인들만 다스리는데로서 6조보다 중시하는 관청이다. 어느 하루도 의금부의 남간뜨락에서는 옥관자, 금관자를 갓에 단 고관대작들로부터 남의 집 종에 이르기까지 대역죄에 몰린 범인들의 비명소리가 그칠새 없다.

원래 의술을 배운데다 호기심이 많은 친구는 목이 잘리고 사지가 떨어져나간 범인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소임을 오래동안 하다보니 사람의 겉만 보고서도 그 사람의 5장6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맞춘다.

친구의 재주가 아까워 한성으로 부르려고 했으나 날마다 술을 동이채로 마시는데다 주정까지 심한 까닭에 손을 들고만 황도연이였다.

리제마가 그 친구를 만난다면 소득이 될수 있지 않을가. 그한테서 뭔가 꼭 도움을 받을수 있을것이다.

황도연은 때마침 공주친구를 생각해낸것이 흡족하여 입을 열었다.

《<함흥의원>! 마음을 푹 놓고 내 집에서 좀 지내게.》

《선생님!》

《물론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네만… 내 집에 머무르라고 하는것은 그대가 의술에 남다른 큰뜻을 둔 의원이기에 한성사람들과 낯도 익히고 나라형편도 아는것이 나쁘지 않을것 같아서이네. 그리고 그사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르고…》

리제마는 코허리가 시큰하였다.

황도연과 같이 허심하고 남의 재주를 아껴주는 사람은 결코 빈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혜암선생님! 고맙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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