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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마는 자기 집에 어떤 불상사가 났는지 알수 없었다. 한성에 도착한 그는 며칠째 황도연을 만나지 못해 속을 태웠다. 한시라도 걸음이 지체될가봐 서둘러 왔는데 황도연의 집앞에서 팔짱을 끼고서서 무료하게 세월을 보내고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허참, 이다지도 그를 만나기가 구중궁궐속의 임금을 알현하는것만치나 힘들단 말인가.
황도연의 집은 남산골에 있었다. 한성에서 몰락한 선비들이 모여사는 가난한 남산골이라지만 그의 집만은 고관대작집 못지 않게 크고 요란했다.
나라에 알려진 명의의 집이니 그럴만도 할상싶었다.
그런데 황도연은 집을 나간지 여러날이 지났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집 하인이 하는 말이 쩍하면 집주인은 고관집들에 불려가서 병을 보아주는데 어떤 때는 열흘나마 나가있다고, 정 만나볼 의향이면 마음을 눅잦히고 앉아 기다리는것이 상수라는것이다.
마음을 눅잦히고 앉아 기다리라.
리제마는 장탄식을 하였다.
생각하다못해 리제마는 황도연의 집근처에 있는 객주집에 려장을 풀어놓고 그를 찾아나섰다. 속수무책으로 앉아 기다리다가는 열이 터져 죽을것 같았다.
황도연이 불리워간 마을은 조정을 쥐락펴락한다는 안동김가들이 모여사는 장동이라 하였다.
장동에 어찌나 많은 안동김가들이 모여사는지 그들을 가리켜 《장동김가》라고도 한단다.
리제마는 한성에 처음 와보지만 생각밖에 별로 품을 들이지 않고서도 황도연이 가있다는 령의정 김좌근네 집을 제꺽 찾을수 있었다.
김좌근이라면 장동의 우두머리로서 임금까지도 제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조정의 실권자이다.
알고보니 김좌근의 마누라가 어찌나 몸이 비대해졌는지 손발을 놀리기 힘들어하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데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나서 황도연을 불렀다는것이였다. 그것도 살을 아프게 하는 침이나 뜸은 물론 먹기 괴로운 약도 쓰지 말고 병을 낫게 해달라고만 한다니 황도연이 그 집에서 늦장을 부릴수 밖에 없을것이다.
가난한 집 녀인들은 끼식을 제대로 에우지 못해 뼈에 가죽만 씌웠는데 량반집 마님들은 살이 남아 야단이다.
김좌근네 집앞에 이른 리제마는 이만저만 놀라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탐관의 우두머리라지만 이거야 궁궐이지 어디 신하가 사는 집인가.
집은 백간, 아니 그보다 더될것 같았다.
아찔하게 높은 추녀며 웅장한 솟을대문은 임진왜란에 불타버린 경복궁터를 비웃는듯… 기와 한장한장에도 서까래 한대한대에도 8도백성들의 고혈과 피땀이 스며있는듯 했다.
솟을대문앞에는 눈초리가 불량해보이는 두사람이 방망이를 하나씩 들고 서서 낯선 사람들은 가까이로 다가오지도 못하게 눈알을 부라리고있다.
하는수없이 리제마는 그 집 솟을대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밑에서 황도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인왕산너머로 떨어졌는데도 황도연의 그림자조차 볼수 없었다.
맥이 진해 객주집으로 돌아온 리제마는 다음날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또다시 장동으로 갔다.
김좌근네 집앞에 이르렀을 때는 동이 트고있었다.
대문밖으로 마당을 쓸려고 나온 그 집 하인에게 물어보니 황도연은 간밤에 김흥근네 집으로 불려갔다는것이다. 어쩜 일은 점점 꼬여만 가는지…
김흥근이라면 이전에 령의정을 한바 있는 령돈녕부사이다.
그의 집을 찾아가보니 역시 김좌근네 집 못지 않게 크고 화려했다.
장동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의 천지였다.
요란하게 큰집들을 쓰고사는 큰 도적이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쇠진해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죽어간다.
마침내 리제마는 황도연이 집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느라 허송세월을 할수 없어 한성거리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한성사람들이 하는 말이 장안의 경치로는 삼청동이 첫자리이고 인왕동이 두번째며 쌍계동, 백운동, 청학동 등이 그 다음이라고 하였다.
돌아보니 한성이 송도만 썩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삼청동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볼만 하고 구불구불한 골짜기에 맑은 시내가 흐르는 인왕동의 경치가 기이하다고 해도 송악산기슭의 지하동이며 부산동에는 미치지 못한것 같았다.
돌아보니 한성이란데는 숨막히는 곳이였다.
벌써 한옥이 애써 마련해준 로자가 바닥이 나고있다. 그만한 로자면 반년이상은 넉근히 쓰고도 남을줄 알았는데 한성인심이 여간 각박하지 않아 마실 물까지 사먹다보니 그렇게 되였다.
시골에서는 어느 집이나 끼식때 찾아들어가면 죽이나마 꼭같이 나누어주고 어두워 들어가면 잠자리를 내준다.
한성인심이 이렇게까지 각박해진것은 다 탐관오리들때문일것이다.
물까지 사마셔야 하는 인심이 각박한 한성에서 로자가 떨어지면 죽은 목숨이다 하고 생각하니 은근히 황도연에 대한 반감까지 생기였다.
명의라는 사람이 무엇이 모자라서 량반것들에게 굽신거리며 노복처럼 끌려다닌단 말인가. 날마다 벼슬아치들의 병시중이나 들어주는 사람이 무슨 의원이란 말인가. 황도연이 의술을 밥벌이수단으로 여기는게 분명하다. 과연 그런 사람을 만나가지고 득이 있을가.
리제마는 한성까지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수 없다는 생각에서 며칠 더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