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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탐구의 길에서

 

 

봄이 왔다. 1860년의 새봄이 왔던것이다.

리제마가 포태골에서 3년간 무술을 닦고 집으로 돌아온지 어언 2년세월이 흘렀다.

그 2년동안 리제마는 의술에 전념하였다. 그사이에 무과시험이 없은것은 아니였지만 기로사는 그에게 서두르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일렀다.

리제마도 흔연히 그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원래 기로사는 리진사의 뜻대로 제마를 벼슬길에 내보내려 하였다.

그래서 문과에로의 길이 막혀버린 그를 무과에라도 급제시켜보려고 포태에 들어가 무술을 닦게 한것이였다.

그렇다고 무술을 닦은 그길로 곧장 무과에로 내보낼 생각은 아니였다. 무술을 배워놓은 다음 보다 더 의술을 련마하면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다가 전란이 닥쳐올 때 무과에 나가 급제하고 나라를 지키는 장수가 되게 하자는것이였다.

게다가 제마가 포태골에 가있는 동안 숱한 사람들이 《함흥명의》가 어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여 기로사는 귀동이라는 어린 제자 하나를 달고 돌아온 제마에게 사람들에 따라서 같은 약의 효험이 있고없음을 밝혀내려 한 애초의 그의 뜻을 지지해주면서 당장은 병치료에 전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이로써 제마는 또다시 의술에 몰두하게 되였다.

리제마는 귀동이에게 의술을 배워주면서 고향사람들의 병치료로 바쁜 나날을 보냈고 사람들에게 맞는 약처방의 비법을 밝혀내려고 고심분투하였다.

고금의 의서들도 다시 펼쳐보고 북관일대의 오랜 의원들도 만나보았지만 《만능처방》에 대한 그 어떤 실마리도 찾아쥘수 없었다.

과연 《만능처방》은 사람의 재주로써는 이룰수 없단 말인가.

고심끝에 제마는 그 뜻을 이루자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의들을 찾아보아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허나 말이 쉽지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야 바라는바를 알수 있고 또 언제까지 집을 떠나 세상을 떠돌아다녀야 하는지는 도무지 기약할수 없었다.

리제마가 앞일을 결정짓지 못하고있는데 하루는 기로사가 《북포》(함경도의 가는 베)를 사러 온 경상(서울상인)한테서 들은 소리라면서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한성에 명의로 알려진 혜암 황도연(1808-1884)이란 의원이 있다. 몇해전 《부방편람》이란 의서를 쓴 명의인데 못 고치는 병이 없다는것이였다.

이 말을 들은 제마는 목마른 사람이 샘을 찾은 심정이였다. 황도연을 만나면 여러해동안 애를 쓰며 풀려고 한 비법을 알수 있을것 같았다.

한옥이도 그의 생각을 지지하여주었다. 그리고 제마가 언제 집을 떠날가 망설이는 며칠사이 돈을 마련해놓고 여기 걱정은 말고 어서 한성길을 가라고 하였다.

하여 제마는 몇달동안 황도연을 만나고 오리라는 마음을 먹고 귀동이와 함께 집을 떠나게 되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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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나케 한성길을 재촉해가던 리제마는 오늘 하루만은 가라말을 기르막골 주막집의 마구간에 매여두고 송도를 돌아보고있었다. 황도연을 만나보러 가는 바쁜걸음이래도 옛 고려의 도읍지인 송도에만은 며칠 묵으면서 고적들을 돌아볼 작정이였다.

어린시절 력사책들을 읽으면서 고구려를 이은 나라, 고려의 도읍지에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소원을 풀고싶기에 한성으로 곧추 가는 안변-평강의 강원도 지름길이 아니라 곡산-토산간의 에도는 황해도길을 택한 제마였다.

그러나 로상에서 목격하는 백성살이는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만 하였다. 어데 가나 하나같이 누덕누덕 기운 베옷을 걸친 늙은이들, 몽당치마바람의 아낙네들, 조겨죽을 상음식인줄 아는 아이들…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한결같이 짙은 병색이 돌고있었다.

하여 그렇게 보고싶던 송도에 이르렀지만 제마의 마음은 썩 즐겁지 못했다.

기르막골 주막집 주인은 리제마가 송도를 돌아보겠다고 하자 길안내를 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서 심부름군총각을 붙여주었다.

리제마는 심부름군총각을 《기르막골총각》이라고 불렀다.

그 총각의 안내를 받아 정작 옛 도읍지를 돌아보니 실로 감회가 컸다.

송악산 서쪽기슭의 넓은 터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만월궁터며 수창궁터, 수덕궁터들…

만월궁터앞에서는 고려의 문하성이며 중서성이며 추밀원, 한림원, 례빈성, 어사대 같은 중요관청터들을 볼수 있었고 궁성의 동문이였다는 광화문터라든가 로근교부근의 김부(고려로 귀순해온 신라의 마지막임금 경순왕)의 집 정승원터도 그대로 남아있는것을 볼수 있었다.

오정문으로 가는 길가에서는 강감찬장군의 집터를 볼수 있었고 류암산기슭의 국자골에서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려의 국자감터까지 찾아볼수 있었다. 그리고 송악산 동쪽기슭에 있는 부산동어구에서는 구재학당(고려최초의 사립학교)자리도 볼수 있었다.

그 고적들을 돌아보느라 리제마는 장거리에서 지짐 몇개로 점심을 굼때고 부지런히 기르막골총각을 따라다녔다.

그런데도 그 총각은 송도장안에만도 돌아본 고적보다 돌아보지 못한 고적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라의 유구한 력사를 알려면 마땅히 고구려의 도읍이였던 평양과 함께 송도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하여 리제마를 놀라게 하였다.

주막집에 매여 술심부름이나 하는 총각정도도 송도에서 사는 자부심이 이렇게 큰데 다른 사람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리제마는 날이 어둡도록 하루종일 성심으로 고적들을 안내해준 기르막골총각을 그냥 집으로 돌려보낼수 없어 송도음식을 잘한다고 하는 큰 거리의 이름난 음식점으로 그를 이끌었다.

음식은 하나같이 처음 먹어보는 별식이였다. 달달한 떡이라고도 할수 있는 경단이며 추어탕도 있었고 밥을 다 먹은 다음에 시원하게 마신다는 식혜(감주)도 올라있었다.

그것들이 다 개성특식이라는것이였다.

찹쌀막걸리를 서너사발 마시고 취기가 오른 기르막골총각은 자기는 천곡 송상현이 태여난 마을에다 태를 묻었다고 자랑하였다.

리제마는 그 총각을 통하여 비로소 송상현의 고향마을이 송도의 기르막골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송상현이라면 임진왜란때 동래부사로서 왜적들에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릴수는 없다.》고 하며 동래성을 끝까지 지켜싸우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애국충신이다.

기르막골총각의 말은 리제마에게 해야 할바를 기어이 그것도 더 빨리 하라고 독촉하는것으로 들렸다.

애국충신들과 명인재사를 많이 낸 송도땅을 밟았으면 응당 그들의 넋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리제마는 첫새벽에 주막집에서 요기를 하고 서둘러 귀동이와 함께 성을 나섰다.

한걸음이라도 한시라도 더 빨리 가자. 그것이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다. 이런 훌륭한 땅에서 사는 백성들이 장생을 누리고 만복을 누리게 해야 할것이다.

멀어져가는 송도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바라보는데 문득 말이 멈춰섰다.

앞으로 시선을 주니 견마잡은 귀동이 말고삐를 당기고 서서 길옆의 밭에서 조를 뿌리는 농사군들에게 소리치고있었다.

《말 좀 물읍시다.》

리제마는 미간을 찌프렸다.

어제 하루 한성길을 지체한걸 봉창하자고 마음먹고 이른새벽에 길을 나섰는데 뭘 물으려고 걸음을 늦잡는것인가.

원래부터 귀동은 성미가 조급하고 장난이 세찬 축이다.

게다가 응석도 심했다. 귀동이 응석받이로 된것은 기로사의 탓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두벌자식은 무턱대고 고와한다더니 두벌제자도 그런것 같았다.

기로사는 귀동이 하루 읽을 책장을 다 번지지 못했어도 왜서인지 그저 곱다고만 어루만졌다.

귀동이 마을쪽을 가리키며 농사군들에게 물었다.

《저기 저 큰 나무들은 무슨 나무들이오이까?》

농사군들중 젊은 녀인이 송도특유의 부드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아유, 거긴 멀리서 오는 길손인가부네.》

귀동이 눈이 둥그래서 소리쳤다.

《그걸 어떻게 아오이까?》

녀인은 생긋 웃으며 대꾸했다.

《목청이 다투는 사람들처럼 높으니까요. 게다가 감나무도 모르지 않나요.》

게면쩍은지 귀동은 초립을 쓴 뒤더수기를 긁적대다 반죽좋게 물었다.

《감나무는 어떤 나무오이까?》

녀인은 북관내기와 말을 주고받는것이 재미있는지 일을 멈추고 대꾸했다.

《곶감을 자셔보았어요? 쫄깃쫄깃하면서도 달달한 곶감을? 아유, 대답이 없는걸 보니 금시초문인가보네. 그럼 감쪽같이란 말은 알겠죠? 저 나무들이 바로 그 감쪽들이 달리는 감나무예요.》

리제마는 그냥 늦장을 부리는 귀동이를 보다못해 말에서 뛰여내렸다.

《아주머니! 가르쳐주어 고맙소.》 하고는 귀동이를 억지로 떠밀어 말에 태웠다.

말을 때려몰아 얼마쯤 갔는데 귀동이 또 입이 근질대는지 말을 걸었다.

《선생님! 감쪽같이란건 무슨 뜻이오이까?》

리제마는 허허? 웃었다. 웃지 않거나 입을 놀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미다. 아마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냥 졸라댈것이다.

리제마는 입을 열었다.

《옛날 어느 한 마을에 린색한 부자가 살고있었단다. 부자집울안에는 감나무가 있었는데 가을이면 가지들이 휘여지게 감이 주렁주렁 달리군 하였지. 린색한 부자는 곶감을 만들어 비싸게 팔아먹을 심산에서 하인을 불러 감껍질을 벗겨 말리게 했다는거다. 곶감을 한번도 먹어본 일없는 하인은 어느날 말라가는 감쪽 하나를 입에 넣어보았지. 그랬더니 아! 쫄깃쫄깃하면서도 달달한 맛이란 둘이 먹다 하나가 잘못되여도 모를 지경이거던.

하인은 그만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면서 꿀맛같은 곶감을 몽땅 먹어버렸구나.

며칠 지나 지금쯤은 감쪽들이 다 말랐을거라고 생각하며 뒤울안에 들어온 부자는 그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자 미친것처럼 성을 냈다는거다.

<이놈아, 감쪽들이 다 어데로 갔느냐?>

하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술만 감빨았다던지…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어떤 물건을 흔적도 없이 날쌔게 없애버렸다거나 어떤 일을 순식간에 해제낀것을 보면 <감쪽같이>란 말로 통하게 되였단다.》

흥미있게 이야기를 듣고난 귀동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리제마는 말우에서 두리번거리는 귀동이 또 무슨 말거리를 찾는것 같아 먼저 입을 열었다.

《귀동아, 의술에서 네가 가진 장끼는 뜸을 괜찮게 뜰줄 아는거다.

난 네가 뜸의 우점을 얼마나 터득하고있는지 물어보고싶구나.》

귀동은 한번 본때를 보이고싶어졌는지 큰소리로 냅다 말했다.

《뜸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의 장끼라고 할수 있소이다. 벌써 수천년전에 우리 선조들은 쑥잎으로 뜸을 뜨면 백가지 병을 고칠수 있다고 하였소이다. 그때 선조들은 목숨을 부지하는데서 쑥을 태우는것이 으뜸이고 약을 먹는것은 그 다음이라고 하였소이다. 대체로 병에 약이나 침이 어쩌지 못할적에는 뜸을 떠야 하오이다.

하기에 우리 선조들은 <뜸봉 한장의 힘은 장년의 힘과 같다.>고 하였소이다.

아니?! 선생님! 저기 저 마을… 저 사람들이…》

귀동이 하던 말을 마무리하지 못한채 손을 들어 가리키는 길가 마을의 초입새 집마당에서 사람들이 소편자 신기는 나무틀에 황소를 묶어놓고 소의 입에 무엇인가를 쑤셔넣느라 애를 쓰고있었다.

이상한 일이였다.

대관절 왜 저럴가.

리제마는 마음이 끌려 그곳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좀 보고 가자. 소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짐작은 빗나가지 않았다.

가까이 가보니 농사군들이 빙 둘러선 가운데서 건장한 로인이 쩍 벌려놓은 황소의 입을 들여다보며 입천장의 《ㅅ》모양으로 좀 두드러진데 나있는 작은 구멍에다 저가락같은 나무가지를 꽂아넣고있었다. 나무가지의 한끝이 보일락말락하게 다 밀어넣은 로인이 손을 털고 물러났다. 소임자인듯 한 사람이 한걸음 나서며 《정말 고맙소이다.》 하고는 황소의 아가리에 가로질렀던 팔뚝같은 나무토막을 뽑아냈다. 그리고 나무기둥에서 황소의 다리들을 비끄러맸던 삼바줄을 풀어냈다.

소가 무슨 병에 걸렸기에 입천정의 구멍에다 나무가지를 꽂아넣었을가.

그것이 궁금하여 리제마는 로인에게 물었다.

《로인님! 소가 무슨 병에 걸렸소이까?》

로인은 흘낏 돌아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뭐 그리 큰 병은 아니고 헛배가 불렀기에 비구개공이라고 하는 소의 침혈에다 나무침을 꽂아주었네.》

리제마가 신기해하자 소고삐를 쥔 사람이 자랑조로 말참녜를 하였다.

《이 집 어른은 소병이든 말병이든 귀신처럼 고친다오. 그래서 아근사람들이 늘 찾아오지요.》

리제마는 호기심이 바싹 동했다. 소의 입천정에 난 비구개공이라면 코와 입이 서로 통하는 구멍이란 소리인데 거기에 나무가지를 꽂아주면 헛배부름증이 낫는다니 이야말로 신기한 일이다. 소도 사람처럼 헛배가 부르면 큰 병에 걸릴수 있다.

《로인님! 비구개공에 나무가지를 꽂아주면 그게 무슨 조화를 부리기에 헛배부름증이 낫소이까?》

로인은 리제마의 행색을 훑어보더니 이번에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촌늙은이가 뭘 아는게 있겠소만 소도 5장6부를 가진 짐승이여서 음양조화가 문란해지면 병이 들게 된다오. 헛배가 불러 뚱뚱하게 보이는건 양기가 허함이요, 이런 땐 음기를 숙여주고 양기를 돋구어주어야 하오. 몸뚱이에 비해 우에 있는 대가리는 양이라 그 양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는 입안은 음이니 바로 어두운 입안의 비구개공을 자극해주면 양기를 돋구어줄수 있는거라오.》

리제마는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소를 부리는 농사군들도 이렇듯 사리정연한 주장과 론리가 있는데…

《로인님! 잘 배웠소이다.》

리제마는 깍듯이 인사를 차리고 돌아섰다.

해는 벌써 하늘중천에 떠올랐는데 아직도 송도지경을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허나 마음은 평온하였다. 이르는 곳마다에서 배우고 느끼는것이 있는데 이런 걸음을 어찌 피해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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