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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마가 포태골에서 무술을 닦고있은지 어언간 3년이 흐른 봄날이였다.
봄이라고 하지만 하늘아래 첫동네라는 포태골에서는 여전히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있었다.
이날도 리제마는 아침밥을 먹기 바쁘게 두터운 얼음장이 뒤덮인 포태천을 따라 말을 달리면서 창으로 찌르고 활을 쏘는 무술을 련마하고있었다.
개울뚝에 서서 그의 무술솜씨를 주의깊게 눈여겨보던 강무가 손을 쳐들었다.
《그만하고 이리로 오게.》
리제마는 말우에서 뛰여내려 개울뚝에 앉은 강무앞에 가섰다.
강무는 온몸이 땀투성이인 제마를 자기앞에 눌러앉히였다. 그러는 그의 얼굴에 심각한 빛이 어려있었다.
《이보게, 자넨 래일 떠나야겠어.》
《예?》
리제마가 놀라워하자 강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술을 그만 닦고 집으로 돌아가라는것일세.》
리제마는 놀라서 부지중 언성을 높였다.
《선생님! 소생은 아직 무술을 채 닦지 못한줄 아오이다.》
《허? 무술은 그만큼 배웠으면 됐네. 무과에 급제하기엔 넉넉하네. 그리고 무술이란건 전장에 나가야 더욱 다듬어지고 세련되는것이라 만족이란 있을수가 없네.》
리제마가 이제는 포태골안의 험한 산판을 나는듯이 달리는데다가 권법에도 능하고 말을 몇마리 가지런히 세워놓고 뛰여넘을수도 있으며 말타고 활쏘기든 창칼쓰기든 막힘이 없다. 힘을 모아쓰는 기합술도 괜찮다. 아무 손가락이나 제 하고싶은대로 꼬나들고 한치 두께쯤의 나무판자에 맞구멍을 낼수 있다.
정신을 집중하여 온몸의 기력을 몸의 어느 한 부위에 깡그리 모으면 자기가 가진 힘밖의 다른 힘도 빌려쓸수 있다는것이 기합술의 묘리이다. 헝클어지는데가 없는 일사불란의 정신통합, 무적필승을 념원하는 정신이 넘쳐나면 보통사람들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엄청난 큰 힘을 낼수 있는 기합술을 리제마는 터득하였다.
거기에다 리제마는 머리가 남달리 비상하여 조선병서들은 말할것도 없고 《륙도》, 《삼략》 같은 다른 나라 병서들도 통달했다.
그러니 무과시험에 나가 대적 못할 적수는 없을것이다.
허나 강무는 리제마에게 권법의 비술을 깨끗이 물려주지 못한 아쉬움을 금할수 없었다.
정말이지 저 리제마 같은 제자에게 조선권법의 비법들을 다 물려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선권법의 비법이라 할 때 이름난 화공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고 리덕무, 박제가들이 쓴 《무예도보통지》에 들어있는 권법정도가 아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우리 나라 봉건시기의 무예 24종류를 소개한것뿐이지 그안에 숨겨있는 비법들까지는 써넣을수 없었다.
세상에 조선권법처럼 비법이 많고 날카로운 권법은 없을것이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조선권법의 틀거리나 소개한 정도였다. 왜냐하면 병서의 서술에 이름난 권법가들이 관여하지 않았고 보다는 그들이 조선권법의 오묘한 비법들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아서였다.
조선권법의 비법들은 구전이 아니라 실기로 자손들이나 총애하는 제자들에게 전수되는것으로서 그 기밀이 엄수되여왔다.
강무네 집안만 보더라도 조상대대로 권법의 비법을 물려오면서 언제 한번 종이에 남겨놓은적이 없었다.
하기에 비법을 전수받을 사람은 힘도 좋아야 하지만 머리도 좋아야 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리제마는 조선권법의 비법을 물려주는데서 더없이 맞춤한 적임자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리제마는 한생을 무술가로 살 사람이 아니였다. 그에게는 이미 다른 길로 나가야 할 소임이 정해져있었다. 그도 그렇지만 조선권법의 비법을 다 물려받자면 한두해를 더 묵어야 한다.
《이보게, 자네가 지닌 권법정도면 족하다고 보네. …
나도 기선생처럼 자네가 당장 무과에 나가는것은 바라지 않네. 앞으로 반드시 오랑캐란이 일어나 나라가 위태해질수 있으니 그때에 무과에 나가도록 하게.》
리제마는 강무의 말뜻을 인차 리해할수 없어 눈만 껌벅이였다.
《자네 집에 돌아가거들랑 이전처럼 의술에 전심해주게. 무술도 잊어먹지 않도록 틈틈이 숙련하고…
내 기선생에게서 다 들었네. <무병장생은 만민지복락>이라 하지 않나.
자넨 사람들의 어떤 체질에나 맞을 처방과 비방을 찾으려 한다지.
우선 그 뜻을 이루도록 하게. 난 자네가 그 뜻을 이루는 길에서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믿네.》
리제마는 입을 딱 벌렸다.
《선생님! 그걸 다 알면서 소생에게 힘써 무술을 가르쳐준 까닭은 무엇이오이까?》
강무는 잠시 버드나무잎모양의 흰구름이 드문드문 떠도는 하늘을 쳐다보고나서 대꾸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많고 박식하더래도 몸이 허약해가지고서는 큰일을 칠수 없네. 무술을 익히면 몸도 튼튼해지고 마음도 굳세여져 진짜 사내대장부구실을 할수 있지.
난 자네가 어느때건 무과에 급제하여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일에서 한몫하리라고 믿네. 머지않아 그런 때가 꼭 올걸세.
그건 그렇고 자넨 력사도 통달했고 의술에다 무술까지 겸비했으니 자기를 수양했다고 할수 있네. 난 자네가 기선생이 지어준 무평이란 자에 심어진 뜻을 꼭 펼치길 바래서 <동무>라는 호를 주고싶네.》
《선생님!》 …
다음날이였다.
둥근 해가 밀림속의 이름모를 나무잎새들을 헤치고 동산마루로 둥실 머리를 내밀자 약속이나 한듯 포태골의 이집저집들에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섰다.
강무의 집 앞마당으로 모여들었는데 얼굴들에는 누구라 없이 서운해하는 빛이 비껴있었다.
오늘은 한식솔처럼 정이 든 리제마가 포태골을 떠난다.
포태골사람들은 리제마를 잠시 무술을 배우러 온 사람이 아니라 심심산중에 세상을 등지고사는 자기들의 병을 한생토록 고쳐주러 온 귀인이라 여기고있었다.
한옥이 새로 지어보낸 흰 바지저고리우에 역시 하얀 두루마기를 단정히 차려입은 리제마는 강무와 함께 방을 나섰다.
마당에 기다리고 섰던 사람들이 와? 소리를 치며 리제마를 에워쌌다.
강무는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머나먼 길로 친혈육을 떠나보내는 심정이여서 리제마의 손을 잡고 놓을줄 모르는 마을사람들의 한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는 눈에 흙이 들어간대도 잊지 않으려는듯 리제마를 보고 또 보았다.
무술을 배우겠다고 처음 찾아왔을 때에는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몹시 약했었는데 지금은 구리빛얼굴에 떡 버그러진 넓은 가슴으로 하여 여간 다부져보이지 않는다.
아쉽게도 키가 크지 못한것이 흠이라고 할수 있다. 태여나 석달만에 어머니를 여의여서 젖을 변변히 얻어먹지 못한데다 어려서부터 골방에 들어앉아 책을 읽은때문일것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강무에게로 다가온 리제마는 한무릎을 꿇고앉았다.
《선생님!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뵙게 될런지…》
리제마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강무의 두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동무! 난 꿈결에서도 자네가 뜻을 성취하는 날을 그려보겠네.》
강무는 리제마를 손잡아 일으킨 다음 그의 다리에 두손을 가져다댔다. 새로 옷을 갈아입었건만 그의 다리에는 일시 마음이 흔들리여 집에 갔다온 그 며칠을 제외하고는 3년동안 어느 하루도 떼여놓은적 없는 쇠각반이 그대로 있었다.
쇠각반을 어루만지는 강무의 손이 떨리였다.
그는 리제마의 량쪽다리에서 쇠각반을 풀어냈다.
《동무! 이 쇠각반을 잘 건사해두게.》
쇠각반을 받아든 리제마는 형언할수 없는 격정에 말을 못하고 잠시 고개를 숙이였다.
이윽고 머리를 쳐든 리제마는 귀동이에게 다가갔다.
포태골에서 강무 다음으로 헤여지기 힘든 사람은 귀동이였다.
서당에서 한두해 함께 글공부를 한 사람도 생전 잊을수 없다는데 3년동안이나 눈보라 세찬 강추위를 이겨내면서 무술을 함께 닦은 귀동이를 어떻게 잊으랴.
리제마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입을 열지 못하는데 귀동이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
언제나 그러하듯 《선생님》이라 깍듯이 불러주는 귀동의 부름에 리제마는 더욱 당황해졌다. 온 포태골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그런 부름소리는 처음이다.
《저에게 의술을 마저 배워주사이다. 절 제자로 받아주사이다.》
다시금 울리는 귀동이의 목소리에 리제마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제자라니? 의술로 보나 무술로 보나 아직은 남에게 물려주기는커녕 스승을 모시고 더 배워야 하는 처지인데…
귀동이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리였다.
《난 선생님을 따라가겠소이다. 허락해주사이다.》
리제마는 정색하여 머리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정든걸 생각하면 헤여지고싶지 않지만 너까지 고생을 사서 하게 할수는 없다. 포태골이 인적드문 심산벽촌이긴 해도 탐관오리들의 꼴을 보지 않으니 오죽 좋은가. 이 좋은 고장에서 몇해 더 무술을 닦는게 좋을것이다.
리제마가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귀동이의 어머니가 두손을 모아잡으며 간청했다.
《선생님! 제발이지 우리 귀동일 제자로 받아주사이다. 철부지를 맡겨 미안하기 그지없사오나 이녀석을 사람 만들어주사이다. 의원으로 만들어 불쌍한 병자들을 살려주는 의로운 일을 하게 해주사이다.》
리제마는 강무쪽에 구원을 청하는 눈길을 주었다. 언제 끌어왔는지 푸르르- 하고 투레질을 하는 가라말의 고삐를 잡은 강무는 뜻밖에 그 고삐를 귀동이의 손에 들려주었다.
《귀동아, 잘 생각했다. 오늘부터 너는 이 고삐를 잡고서 선생님을 말로써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하여 받드는 좋은 제자가 되여야 한다.》
《?!》
강무의 거쿨진 큰손이 리제마의 손을 움켜잡았다.
《동무! 귀동이를 받아주게. 지금 당장은 부담스러워도 녀석이 똑똑하고 심지가 굳어 좋은 제자가 될걸세.》
《…》
《동무! 내 그대의 마음을 모르는바 아닐세. 독불장군이라고 아무리 뛰여난 인재라도 혼자서는 아무 일도 칠수 없네. 뜻을 같이하고 받들어주는 벗이 많을수록 큰일을 할수 있는것이 아니겠나. 그러니 오늘은 참 뜻깊은 날일세.
귀동아, 선생님에게 제자로서 절을 드려라.》
《선생님!》
깊숙이 허리굽혀 절을 차리는 귀동이를 굽어보며 리제마는 한동안 못박힌듯 움직일줄 몰랐다.
격정으로 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생사고락을 함께 할수 있는 제자가 생겼으니 오늘부터 리제마는 혼자가 아니다.
《귀동아!》
리제마는 귀동이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가 친동생처럼 여겨졌다.
리제마는 번쩍 귀동이를 들어 가라말우에 올려앉혔다. 그들을 지켜보는 포태골사람들의 얼굴마다에 기쁨이 가득했다.
말고삐를 틀어잡은 리제마는 포태골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선생님! 귀동이 어머니! 그리고 다들… 다들 부디 건강하시고 복을 누려주십시오.》
눈물을 머금고 인사를 차린 리제마는 결연히 돌아섰다.
강무도 귀동이 어머니도 포태골사람들도 가라말우에 귀동이를 태우고 멀어져가는 리제마를 오래도록 바래워주었다.
둥근 해를 향해가는 두사람의 앞길에 어떤 고초가 가로놓여있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