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리제마가 스승집에 장가든지 며칠이 지나서였다.
기로사는 그를 불러 이제는 문과에 나갈 때가 되였으니 함흥감영에서 치는 향시에 나가라고 하였다.
향시에서 급제해야 다음해 봄 한성에서 열리는 복시에 참가할수 있었다.
어느때건 한번은 과거장에 나가야 한다고 결심하고있던 제마는 스승의 분부를 쾌히 받아들였다.
기로사는 제마를 향시에 내보내기에 앞서 그의 자를 《무평》이라고 지어주었다.
원래 선비들이나 무인들에게 붙여주는 자는 관례식때 부모나 스승이 지어주게 되여있지만 기로사는 깊은 의미를 담아주고싶어 당분간 미루었었다.
생각끝에 기로사는 리제마에게 심어준 큰뜻을 자나깨나 잊지 말고 그를 힘써 이루는 충신이 되라는 의미에서 그의 자를 무평이라 한것이였다.
그런데 향시가 리제마에게 그토록 마음의 상처를 입혀놓을줄 기로사는 생각지 못하였다.
리제마가 함흥감영에 나가 향시에 응시할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시험장안에 들어가앉았는데 뜻밖의 일이 생기였다.
글쎄 판관이라는자가 시험장에 들어와 리제마의 이름을 불러 일으켜세우고는 당장 나가라고 을러멨다. 그것도 그냥 나가라고 을러멘것이 아니라 서자인 주제에 룡꿈을 꾼다고 모욕하였다.
리제마는 참을수 없어 그 자리에서 붓을 꺾어던지고 시험장을 뛰쳐나오고말았다.
기로사가 이 사실을 알고 판관에게 달려가 시비를 따지니 그는 호적대장을 보여주는것이였다. 호적에는 제마가 리반오의 서자로 올라있었다.
기로사가 제마는 리진사집 장손이라며 사정이야기를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로써 리제마에게는 영영 문과에로의 길이 막혀버렸다. 기로사는 제마의 앞길이 영영 막혀버린것이 너무도 통분하여 침식을 제대로 할수 없었다.
헌데 며칠 지나며 기로사가 살펴보니 리제마는 인차 분기를 가시고 그 일을 꿈만해하였다. 어찌 보면 차라리 잘되였다 하는 눈치였다.
언제인가 《무병장생은 만민지복락》이 자기의 꿈이라고 했는데 이제 와서 의술로써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자기 한생의 뜻으로 여긴 모양이였다.
허나 기로사는 제마를 그대로 내버려둘수 없었다. 그 길이 리진사와 김씨가 바란 길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기때문이였다.
제마를 기어이 벼슬길에 내세우자면 무과에라도 내보내야 하였다. 서자들에게는 무과에로의 길만은 열려져있었다.
그러나 제마가 당장 무과에 나가 급제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였다.
지금껏 집안에 들어앉아 책이나 읽은 그가 어떻게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고 창으로 찌르는 무술시험을 치를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가는 세월에 제마의 장래를 맡겨둘수 없었다.
기어이 제마에게 무술을 배워주어야 한다. 아직은 제마가 젊은 나이이니 무술을 배우기에 늦지 않았다.
제마에게 무술을 배워줄 스승을 찾아내야 한다. 마침 제마에게 무술을 배워줄 스승이 있었다. 백두산부근의 심심산골 포태골에 은둔하여 살고있는 《포태선생》이였다.
대대로 무술을 전해오는 집안에서 태여나 한생 무술로 늙은 《포태선생》이니 얼마든지 제마를 제자로 받아줄것이다.
《포태선생》에게 소개신을 써주어 제마를 포태골로 떠나보내자.
그러나 기로사는 그 일을 서두르지 않았다.
신방에 든지 얼마 안되는 외손녀부부의 신혼살이를 생각해서였다. …
겨울이 가고 새봄이 왔다.
향시에 나갔다가 서자인것으로 하여 받은 심한 모욕을 잊어버린(일부러 강심을 먹고 잊긴 하였지만) 제마는 오로지 《무병장생은 만민지복락》에 뜻을 두고 고향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기에 날이 가는줄 몰랐다.
날이 갈수록 제마의 손에서 숱한 병자들이 병을 고치여서 그는 《함흥명의》로 평판이 자자했다.
요즘 그는 한가지 일로 고심하고있었다.
몇해전만 해도 제마는 그 어떤 병자도 병의 근원만 알아내면 얼마든지 고쳐낼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날이 많은 병자들을 상대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적지 않은 경우 같은 병증인데도 사람마다 약에 대한 효험이 달랐다. 같은 병을 앓는 어떤 사람은 같은 약을 몇첩 쓰자 병이 호전되는데 다른 사람은 쉰첩을 넘겨쓰고 지어는 백첩을 써도 전혀 효험이 없었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을 할노릇이였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한옥이에게도 사정은 같았다.
제마는 혼례식을 하고서야 한옥이 때때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럽고 팔다리가 싸늘해진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심비증(심장판막증)에 걸린것이였다.
그래서 즉시 보온탕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심비증에 걸린 다른 병자들에게는 괜찮게 말을 듣던 그 약이 한옥이한테는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왜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것일가.
의서들을 다시 뒤져보고 여러 의원들도 만나보았지만 그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물론 치료처방 하나 얻을수 없었다.
늙은 의원들은 아무래도 사람들에 따라서 약의 효험이 달라지는 원인과 치료처방은 젊은 제마가 밝혀내야겠다고 말하였다.
제마는 비로소 그 일을 자기가 맡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였다.
바로 이러한 때 기로사는 제마를 사랑방으로 불러들였다.
무슨 일인가 하여 자기를 쳐다보는 제마를 바라보는 기로사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정말 신혼살이 몇달만에 제마를 이 집에서 떠나보내야 한단 말인가.
아끼는 자식일수록 매로 기르랬다고 총애하는 제자의 장래를 위함이라면 이쯤한 일로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여보게! 자네 당분간은 의술을 그만두고 무술을 배워야겠네.》
제마는 기로사의 말뜻을 알수 없어 눈만 슴벅거렸다.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포태골에 자네에게 무술을 배워줄 스승이 있네.》
그제서야 제마는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스승의 말뜻을 알아차렸을 때 그 말이 청천벽력같아 몸을 흠칫하였다.
의술을 그만두고 왕청같이 무술을 닦으라니 무슨 말인가? 의술과는 하늘과 땅처럼 인연이 먼 무술을 배워서는 뭘 한단 말인가.
《이보게! 무술이란 나이들면 익히기 힘든 어려운 재주일세. 게다가 무술을 가르쳐줄 <포태선생>도 나이많은 늙은이라 언제 자리에 누울지 모르니…》
《…》
고개를 푹 떨구고있는 제마를 바라보는 기로사는 긴말을 아니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사람! 백성들을 구제한다는게 병마에서 건져내는 그런 일뿐일가? 병마는 사람의 씨를 다 말릴수는 없어도 오랑캐란이 터지면 온 겨레가 잘못될수 있네. 오죽했으면 나라잃은 사람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까지 생겨났겠나.》
제마의 어깨가 푹 처지였다.
그러는 제자를 바라보는 기로사의 속은 좋지 않았다. 허나 언제인가는 오늘일이 옳았다는것을 깨닫게 될거라고 생각하며 기로사는 엄하게 말했다.
《자넨 앞을 멀리로 내다보아야 하네. 오늘 주변나라들의 형세라든가 우리 나라의 형편을 놓고보면 누구나 무술을 닦아야 하네. 무술을 배워놓으면 앞으로 전란이 일어나는 경우 의병을 일으켜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길에서 한몫할걸세. 지금은 무술을 배우는 일이 급선무이니 몇해동안 포태골에 들어가있게. 의술도 있겠다, 무술도 배우고 장차 때가 되여 무과에 나가면 반드시 큰 일감을 맡아할수 있을걸세.》
허나 포태행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제마의 귀에는 기로사의 말이 들어올리 만무하였다.
《여러 말 말고 며칠후에 떠날수 있도록 차비를 잘 해두게.》
제마는 오금을 박는 기로사의 말에 더 대꾸를 못하고 머리를 수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