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기이한 운명
리제마는 19세기 동방의술의 대표자의 한사람이며 고려의학발전에서 특출한 성과라고 할수 있는 4상의학의 창시자이다.
항간에서는 그를 가리켜 당장 숨져가던 병자도 소생시켰다고 하는 설경성(고려시기 명의)이나 그 어떤 중병일지라도 척척 고쳤다는 고려의학자인 허준처럼 귀신같은 의술을 지닌 명의중의 명의라고 일러주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용모와 체격, 장부와 같은 육체적면과 성격, 정서, 행동 등 정신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세밀하게 관찰한 기초우에서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의 네가지 상으로 나누어 사람의 체질을 가장 합리적으로 분류하였을뿐아니라 그에 맞는 약처방을 내놓아 만병을 다스릴수 있게 하였다는데 바로 의학자로서의 리제마의 뛰여난 공적이 있는것이다.
리제마의 4상의학은 오늘도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널리 보급되고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고있다.
세계적인 의학자인 리제마를 키운 조부모들의 뜻은 사실 의술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그들은 리제마를 벼슬길에 내보내여 나라의 운명을 돌보게 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널리 구제하는 일에 기여하도록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이하여 리제마는 벼슬길과 거리가 먼 의술길에 나섰으며 또 어떻게 고려의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수 있었는가.
그것을 알려면 마땅히 리제마의 기이한 출생담부터 들어보아야 할것이다.
1
1837년 3월 19일(음력).
함경도 함흥부 지락마을의 리진사집에 경사가 났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에게 자식이 생기지 않아 근심많던 집안에 장손이 태여났던것이다.
리진사(리제마의 할아버지)는 안해 김씨가 깨우는 바람에 여느날과 달리 꼭두새벽에 일찍 눈을 뜨지 않으면 안되였다.
《령감, 방금 생남했다는 전갈이 왔수다.》
《뭐, 생남? 그게 정말인가?》
리진사는 무릎을 철썩 치더니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저고리를 입는다, 망건을 쓴다 부산을 피우며 덤벼쳤다.
그는 어느새 방을 나와 발에 갖신을 꿰고있었다.
매사에 꼼꼼하게 의관정제를 하고다니던 옷주제가 이때는 말이 아니였다. 너무 덤벼치다보니 갓도 쓰지 못한 머리에서는 망건이 삐뚤서하고 두루마기는 옷고름을 매지 않아 앞이 항 제껴져있었다.
《령감!》
리진사는 김씨가 내주는 갓을 받고서야 자기가 너무 덤벼쳤다는것을 깨닫고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령감, 뭘 잊은게 있수?》
리진사는 방 아래목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밖에 대고 소리쳤다.
《마누라, 어서 들어오우.》
령감의 분부라 김씨는 급한 마음을 누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마누라, 한생을 거의다 산 내가 일일천추로 고대하던 장손이 태여났은즉 어떻게 빈손으로 그앨 보러 찾아가겠나. 장손의 이름이라도 지어가지고 가야지.》
김씨는 얼굴이 환해져서 령감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에그, 정말 그래야지요.》
리진사는 눈을 내리감았다. 하지만 인츰 맞춤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길을 나서면 개울건늘 차비를 하랬다는데 가문의 대를 잇는 《거사》를 앞에 놓고서도 이름 하나 지어놓지 않은것이 후회되였다.
리진사는 한해전의 일을 돌이켜보았다.
지난해 초봄 리진사는 환갑상에 마지못해 나앉았었다.
슬하에 무자식인 외아들이 부어주는 술잔을 받았을 때 그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리였다.
대체로 사람이 마흔고개에 이르면 누구나 두벌자식을 거느리기 마련이다. 환갑나이가 되도록 무릎우에 앉힐 손자녀석이 없으니 가문의 대가 끊어질 처지에 무슨 재미로 상을 받는단 말인가.
그래서 걷어치우려고 했는데 자식도 없는 아들 리반오가 부모공대도 제대로 못하는 불효자식이라고 동네흉을 당하게 할수 있다면서 김씨가 나서는 바람에 마음을 고쳐먹은 리진사였다.
리진사가 환갑상을 물린지 며칠 지난 어느날이였다.
친척이 없는 리진사네 집은 환갑잔치를 보러 왔던 동네사람들이 돌아간 날로 쥐죽은듯 잠잠해졌다.
리진사는 고독한 기분을 달랠길 없어 후원뜨락을 발이 가는대로 거닐고있었다.
여러 조상들의 신주(죽은 사람의 이름과 벼슬이름 등을 적은 나무패)를 앉힌 사당을 바라보느라니 눈가에 절로 눈물이 글썽거림을 어찌할수 없었다.
간신히 이어오던 리씨가문의 대가 끝내는 아들대에 와서 끊어질수도 있다는 한스러움에서였다.
그런데 문득 조상들의 신주앞에 꿇어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여와 그를 놀라게 하였다.
소리없이 다가가보니 마누라가 사당안에서 쑤얼대고있었다.
《여러 선친조상들께옵서 굽어살펴주시옵소서. 글쎄 무슨 재앙을 입어서인지 며느리는 혼례한지 스무해가 돼오도록 태기 한점 없사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소실을 얻어주려 하옵니다.
소실될 녀인은 같은 동네의 대추나무집 딸이온데 초년과부가 되여 지금 본가집에 와있나이다.》
리진사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안해가 제 마음대로 아들에게 소실을 얻어주다니, 그것도 먼데 녀인도 아닌 한동네에 사는 과수(과부)를 데려오겠다니 망녕이 든게 아니야.
대추나무집 딸이라면 시집갔던 마을에 무서운 온역(급성돌림성열병)이 들이닥쳐 자식과 지아비를 한날한시에 잃었다는 녀인이다.
리진사의 속을 들여다본듯 김씨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쇤네는 이미 이웃의 향교마을에다 집을 한채 마련해놓았습니다.
내놓고 자랑할만 한 일이 못되기에 쇤네 혼자서 일을 꾸몄습니다.
여러 선친조상들께 고하옵나니 쇤네는 리씨집안의 대를 이어놓을수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으렵니다. 래일은 삼짇날(음력 3월 3일)이라 길한 날이오니 결단코 이날에 아들의 <집들이>를 하겠사옵니다.
부디 리씨가문의 자손에게 길복을 내려주시옵소서.》
리진사는 은근히 부아가 꿈틀거려올랐다. 어떻게 이런 중대사를 가장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있는데도 내인이란게 제 마음대로 행할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마누라의 다음말에는 욱 치밀어올랐던 성이 스르르 가라앉고말았다.
그는 조심히 사당으로 들어갔다.
《쇤네는 기어코 이 집 장손을 보고야 죽어도 죽겠으니 가문의 대만 이을수 있다면 어떤 벌을 내린대도 달게 받겠사옵니다. 그저 장손만 보게 해주시오이다.》
엎드려 비는 늙은 안해를 보느라니 리진사는 눈물이 고여올랐다.
인기척을 느낀 마누라가 돌아보고 깜짝 놀라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령감이 노발대발하여 무슨 야단을 칠지 몰라서였다.
그러나 리진사는 아무 말도 없이 마누라의 곁에 무릎을 꿇고앉아 신주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선친조상께옵서는 이 마음을 갸륵히 여겨주시고 부디 장손을 보게 해주소이다. 오늘 당장 대추나무집 녀인을 맞아들이겠소이다.》
마누라가 같이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쏟았다. 이렇게 한 뒤끝에 보게 된 장손이였다. …
《령감, 언제까지 그러구 앉아만 있을려우?》
리진사는 그제서야 자기 정신으로 돌아왔다.
《마누라, 좀만… 좀만 더 참아주그래.》
옛적 어떤 녀인은 하늘에서 오색구름들사이로 귀인들에게 둘러싸인 푸른 옷을 입은 아이가 자기 품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았고 또 어떤 녀인은 임신중의 꿈에 란초화분을 안다가 그것을 떨어뜨리고 놀라 깨여 아들을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태여난 아이들은 후날 다 명인이 되였다던지…
리씨가문의 장손도 명인이 못된다는 법은 없다. 명인이 되려면 이름부터 달라야 한다고 하였다. 뜻이 깊은 이름을 가진 아이일수록 그 아이의 장래는 더 밝아질수 있는것이다.
리진사는 문득 번개같이 떠오르는 몇달전의 꿈이 생각나 두손을 마주잡았다.
《마누라, 제마! 리제마란 이름이 우리 장손에게 제격이겠소.》
김씨는 한무릎 리진사에게 다가앉으며 물었다.
《제마란 무슨 뜻이우?》
《<건늘 제>자에 <말 마>자라…》
김씨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무슨 뜻인지 통 듣고도 모르겠수다.》
《아들애에게 소실을 얻어준 때로부터 꿈에서 자주 말을 보군 해 이상하다 했는데 그게 오늘 장손이 되여 나타난것이란 말이요.》
《나도 령감에게 들은 기억이 있수다.
그런데 <건늘 제>자라면 물 건너온 말이라는 뜻이요?》
《잘 들어두라구요. <제>자는 건는다는 뜻만 아니라 돕는다, 이룬다는 뜻도 있고 <말 마>자는 하루에도 천리를 내달린다는 준마, 룡마를 의미함이라, 사실 나의 뜻은 우리 장손이 백성을 널리 구제하는 길에서 룡마처럼 내달리라는거요.
고려의 명사 익재도 <건늘 제>자를 써서 리제현이라 했은즉 우리 애도 커서 자기 이름에 담겨진 뜻을 깨닫게 되면 반드시 큰일을 찾아할거란 말이요!》
김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듣구보니 정말 좋은 이름이구려.》
그러던 김씨의 얼굴이 금시 어두워졌다.
《마누라, 어디 몸이 말째우?》
김씨는 한숨을 내쉬였다.
《헌데, 애가 장손이긴 해도 서자이니…》
리진사는 고개를 저으며 저력있게 말했다.
《허참, 별걱정을 다 하오. 제마가 서자이긴 해도 외독자가문의 하나밖에 없는 장손이라 우리 집안을 당당히 상속받을수도 있고 글공부만 잘 시키면 떳떳하게 문과에도 나갈수 있단 말이요.》
《정말 그럴수 있을가요?》
《장담한다니까. 그전에도 외독자가문들에서 집안의 대를 이을 서자 하나는 문과에 나간 일이 드문하오. 내가 살아있는 한 우리 제마는 반드시 문과에 나가게 될거요.》
그만에야 김씨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리진사는 밝게 웃는 김씨를 보며 속으로 그를 칭찬해마지 않았다.
김씨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장손이 태여날수 있었겠는가. 집안의 대를 잇게 하려는 일념에서 아들에게 소실을 맞게 하였으니 마침내 장손을 보게 된것이다.
리진사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마누라, 이젠 가기요.》
리제마는 이렇게 소실의 몸에서 대가 끊어질번 한 고을량반가문의 장손으로 태여났다.
어머니는 소실이나 제마는 량반가문의 귀한 후손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