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큰일이라구

 

이 이야기는 리조 현종시기 어느 한 고을에서 있은 일이다.

령의정 허적의 집에 렴시도라는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는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운 사람이였다.

어느날 저녁 그는 낮에 채 하지 못한 주인의 집일을 거두어주려고 집을 나섰다.

한참 걷는데 갑자기 뭔가 발부리에 걸려 하마트면 넘어질번 했다.

눈을 크게 뜨고 발치를 내려다보니 환한 보름달빛에 불룩한 비단주머니가 보였다. 그는 얼른 비단주머니를 주어들고 열어보았다.

순간 렴시도는 망두석처럼 굳어졌다. 그안에 은전이 가득 들어있었던것이다. 눈짐작으로 보아도 오륙백냥은 실히 돼보였다.

(누가 이 많은 돈을 떨구었을가?)

렴시도는 난생처음 이런 큰돈을 본지라 한참 망설이다가 이제라도 돈임자가 뛰여오지 않을가 해서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그러나 종시 돈임자가 나타나지 않자 할수없이 다음날 찾아보기로 하고 허적의 집으로 향했다.

허적은 사랑문을 활짝 열어놓고 부채질을 하다가 마침 들어서는 렴시도를 알아보았다.

《임자 인차 오겠다더니 왜 이렇게 늦었나?》

《저, 오다가 일이 생겨서…》

그제야 허적은 그의 손에 들려있는 비단주머니를 보았다.

《자네 그게 뭔가?》

《소인이 길가에서 주은것이오이다.》

《뭔데?》

렴시도는 비단주머니를 보여주었다.

《은전 수백냥이올시다.》

《뭐, 그게 사실인가?… 허허, 자네 오늘 큰 횡재를 했군 그래.》

그러자 렴시도는 펄쩍 뛰였다.

《아니오이다. 이걸 돈임자한테 돌려주어야 하오이다. 지금 돈임자가 얼마나 속이 타겠소이까.》

허적은 렴시도의 착한 마음씨를 잘 알고있었지만 그를 생각해서 이렇게 말했다.

《렴서방, 오가다 길가에서 얻은 돈을 어떻게 찾아준다고 그러나. 자넨 살림도 넉넉치 못한데 차라리 보태여 쓰게나. 이 일을 자네와 나만이 알고있으니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렴시도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렇게 할수 없소이다. 제 굶어죽을지언정 어찌 남의 재물을 제것으로 만들겠나이까?》

허적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확실히 렴시도는 언제 봐도 정직한 사람이였다.

다음날 낮에 허적은 렴시도를 불렀다.

《그래 돈임자를 찾았나?》

《아직 못 찾았소이다.》

허적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 오늘 아침에 듣자니 호조판서댁에서 말을 구하려고 하인에게 돈 600냥을 준 일이 있다는데 혹시 거기에 알아보게.》

그 말을 듣자 렴시도는 몹시 기뻐했다.

《그럼 곧 가보겠소이다.》

렴시도는 그길로 호조판서 김석주의 집으로 갔다.

김석주는 령의정 허적이 무슨 급한 기별을 띄웠는가 해서 허둥지둥 나왔다.

렴시도는 그에게 공손히 물었다.

《혹시 대감어른께서 말을 구하려고 누구에게 돈준 일이 있지 않소이까?》

《그렇네. 우리 집 하인에게 은전 600냥을 주었었네. 오늘까지 구해오라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구만. 그런데 임자 그건 왜 묻나?》

《다름아니라 소인이 엊저녁 길가에서 은전 600냥을 얻었사온데 그 돈이 혹시 이 댁 돈이 아닌가 해서 그러오이다.》

《그런가? 가만있게.》

김석주는 그 자리에서 강서방의 집에 사람을 보냈다.

얼마후 나이지숙한 사람이 헐레벌떡 마당에 들어섰다.

《강서방! 자네 말을 구해왔나?》

강서방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 사실은… 사실은…》

김석주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임자 돈을 잃어먹은게 아닌가?》

강서방은 금시 울상이 되여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놈이 죽을죄를 지었소이다.》

김석주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렴시도를 바라보았다.

《실은 소인이 고향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는데 취한 나머지 그만 돈주머니채로 잃어버렸소이다. 사방 다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소이다. 제발 용서해주소이다.》

그의 주름진 두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때 렴시도는 품에 넣고있었던 비단주머니를 슬그머니 꺼내여 강서방에게 보였다.

《형님, 이걸 좀 보시우.》

《아니? 이게 어떻게?!》

강서방은 렴시도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급히 비단주머니를 풀었다. 그러더니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였다. 그안에는 은전 600냥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던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렴시도는 얼굴에 웃음을 짓고 말하였다.

《엊저녁 길가에서 얻었수다. 밤새 돈임자를 찾으려고 했는데 어디 나타나야지요. 이젠 주인을 찾았으니 난 마음이 놓이우다.》

《정말… 정말 고맙네.》

강서방은 렴시도의 두손을 와락 잡더니 무릎을 꿇고 절하려고 했다.

렴시도는 당황해서 《그만두시우, 그만두라는데두요. 다른 사람이라도 나처럼 했을것이우다.》하고 그를 일으켜세웠다.

그때 김석주가 렴시도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 살다 자네같은 사람은 처음 보네. 헌데 말일세. 이 돈으로 말하면 잃었다가 내 손에 다시 돌아온것이니 우리 공평하게 절반씩 나누세. 보아하니 자네 살림도 시원치 않은것 같은데…》

렴시도는 큰일이나 난것처럼 펄쩍 뛰였다.

《이러지 마소이다. 전 그저 돈임자에게 돈을 찾아주었으면 그만이오이다.》

《그래두 그런가. 어서 받게.》

김석주가 돈을 내여주자 렴시도는 껑충 물러나더니 대문을 나섰다. 집밖에 모여있던 강서방의 식구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일이 또 어데 있겠소?》

《아저씨가 아니면 우리 아버진 끝장났을거예요. 오죽 속상했으면 아버지가 서슬을 잡숫고 죽을 생각까지 했겠어요?》

강서방의 안해와 자식들은 자기 남편과 아버지의 생명의 은인인 렴시도앞에 꿇어앉아 절을 하며 울었다.

그러자 렴시도는 어쩔바를 몰라했다.

《이거 너무 그러지들 마시우. 그게 무슨 큰일이라구.》

뒤따라 달려온 강서방도 렴시도를 잡아끌었다.

《여보게, 내 은인을 잊으면 사람이 아닐세. 자, 우리 집으로 가세.》

하지만 렴시도는 굳이 사양했다. 강서방네 살림형편도 자기보다 더 낫지 못하다는것을 잘 아는지라 페를 끼치고싶지 않아서였다.

그 일이 있은 후 고을사람들속에서는 렴시도의 착한 마음씨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오래 전해졌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