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덕중의 의리
리조 영조시기였다.
한양 서학재에 리덕중이라는 사람이 살고있었다. 그는 여러해동안 과거에 응시하려고 열심히 공부만 하고있었다. 그러다보니 조상이 물려준 살림은 점점 줄어들어 손님이 와도 밥 한그릇 대접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해 과거시험이 있다는 방이 나붙었다.
그것을 보고온 덕중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로 이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지금껏 공부를 해오지 않았는가. 내 어떻게 하든 이번 과거에 장원급제해서 그간 집안살림을 혼자 떠맡고 고생해온 안해에게 기쁨을 듬뿍 안겨주리라.
그날 그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있는 사람이 또 있었으니 그는 다름아닌 덕중의 안해였다. 남편은 과거보는 날이 눈앞에 닥쳐왔다고 기뻐하지만 주부인 그의 속은 까맣게 타들고있었다. 잘사는 집들에서는 그날이면 떡치고 돼지를 잡는다지만 평시에도 빈곤한 살림을 근근히 이어오던 그로서는 남편에게 대접할 쌀 한줌도 없는것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아, 저 하늘에서 함박눈처럼 쌀이 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가?
호- 하고 한숨을 나직이 내긋는데 옆에 누운 남편이 물었다.
《왜 그러오?》
안해는 입술만 감빨뿐 대답을 못했다. 그대신 그의 눈굽에는 안타까움이 떠올린 맑은 이슬만이 살풋이 고여올랐다.
그제야 안해의 심중을 들여다본 덕중은 우선우선하게 말했다.
《걱정마오. 난 맹물을 마시고라도 급제할수 있소. 허허…》
남편의 시원스러운 대답을 들으며 안해는 다시금 근심의 우물속에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말이 그렇지 어떻게 과거보러 가는 남편에게 맹물을 대접할수 있단 말인가.
드디여 과거시험전날이 다가왔다.
안해는 열번스무번 생각하다가 체면을 무릅쓰고 이웃에 찾아갔다.
이웃집도 넉넉치 못한 살림이였지만 그 사정을 알고는 한그릇도 안될 정도의 쌀을 내주었다.
덕중의 안해는 고마워 거듭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옆집에서 꾸어온 쌀을 나무그릇에 담아두었다.
다음날 새벽 쌀을 정히 씻어 가마에 안치고 아궁앞에 쪼그리고 앉은 안해는 저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고말았다. 그런데 꿈에서 나무그릇안의 쌀알들이 모두 룡이 되여 하늘로 올라가는것이 아닌가.
안해는 그만 놀라 깨여났다.
(대체로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꿈에 길할 조짐이 보인다고 하던데…)
조금후에 가마사이로 하얀 밥김이 씩씩 뿜어져나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구수한 밥냄새는 부엌을 가득 채우면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안해의 갸름한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그려졌다. 그만해도 다행이였던것이다. 비록 반찬은 없어도 밥 한그릇이나마 남편에게 대접할수 있게 된것이다.
밥이 거의 잦을무렵이였다.
밖에서 누군가 찾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 있나?》
안해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방에 있던 남편이 먼저 문을 열었다.
찾아온 사람은 시골에서 사는 팔촌형인 태중이였다.
《이게 얼마만이요? 헌데 갑자기 어떻게 오셨소?》
태중은 씩 웃고나서 대답했다.
《과거를 보러 왔네. 자네두 알지만 나야 여태 공밥만 먹으며 글공부만 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헌데 아침밥은 드셨수?》
태중은 게면쩍게 웃었다.
《어제 밤 늦게 도착하다보니 성밖 주막집에서 새우잠을 잤네그려. 지금 막 성안으로 들어오는 길일세.》
《그러니 식사를 못했군요. 마침 나도 오늘 과거보려고 가려던 참인데 아침이나 함께 하고 갑시다.》
덕중은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러던 그는 무춤 굳어졌다. 안해가 아궁앞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던것이다.
《왜 그러오?》
안해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런걸 난 또… 참, 결성에 있는 팔촌형님이 왔소. 그 형님도 과거보러 왔다오. 얼른 밥을 주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안해가 고개를 소곳이 숙인채 대답이 없었다.
덕중은 안해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하지만 모처럼 찾아온 친척을 그냥 돌려보낼수 없었다.
《일없소. 있는대로 주오.》
그런데 안해의 대답이 뜻밖이였다.
《이 밥만은 결코 나누어 자셔서는 안돼요.》
리덕중은 안해의 말에 의아해하며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안해는 간밤의 꿈이야기를 남편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렇다고 내 혼자 먹고 형님을 굶긴단 말이요? 그런 마음을 품으면 하늘이 필경 돕지 않을거요.》
리덕중은 빨리 상을 들여보내라고 하였다. 안해는 할수없이 상을 차려 방으로 들여갔다.
덕중은 밥상을 태중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형님, 시장하겠는데 어서 드시우.》
태중은 놀랐다. 밥상에는 밥이 한그릇밖에 없고 국이라고는 멀건 소금국이 전부였기때문이다.
태중은 그것이 덕중의 아침식사라는것을 모를만치 눈치없는 사람은 아니였다.
《이 사람, 내가 이걸 먹고나면 자네와 제수는 어떻게 하겠나.》
덕중은 막무가내로 태중의 손에 수저를 쥐여주었다.
《형님, 그래도 우리야 주인이 아니요.》
태중은 얼굴이 뻘개서 뻗치였다.
《난 안 먹겠네.》
그때까지 부엌에서 그 모양을 지켜보던 덕중의 처는 할수없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시아주버님이 오랜만에 오셨는데 변변치 못해도 어서 드세요.》
태중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한듯 밥상을 덕중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자네나 들게.》
덕중은 덕중이대로 밥상을 팔촌형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형님, 난 일없수다. 먼길을 걸어오느라 시장하겠는데 어서 드시우.》
이렇게 밥상은 태중에게서 덕중에게로, 다시 덕중에게서 태중에게로 몇번이나 왔다갔다하였다.
마지막에 태중은 이렇게 말했다.
《좋네, 정 그러면 우리 둘이서 절반씩 나누어먹는게 어떻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가겠네.》
그는 정말 일어날것처럼 몸을 움쭉거렸다.
덕중과 안해는 마지못해 응하고말았다.
결국 한사발이나 겨우 되는 밥을 허우대가 큰 장정 두사람이 사이좋게 나누어먹었다. 그런 다음 흔연히 과거보러 떠나갔다.
다정하게 웃으며 멀어져가는 그들을 바라보는 덕중의 안해는 쓰린 가슴을 부여안고 두사람 다 과거에 급제하였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그의 소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그날 과거시험에서는 기쁘게도 두 형제가 다 급제하였다.
후에 그날 아침 덕중의 집에서 있었던 사연을 안 한양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 위해주면 그만큼 일이 잘된다고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그들을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