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이웃
리조시기 부평이라는 고을에서 있은 이야기이라고 한다.
이 고을에는 송단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있었는데 살림이 몹시 가난하여 온 가족이 당장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날 피골이 상접해서 누워있는 자식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그는 한숨을 꺼지게 내쉬다가 아까부터 눈굽을 연신 훔치고있는 안해에게 말했다.
《여보, 집을 팔기요.》
안해가 깜짝 놀라며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었다.
《아니, 집을 팔다니요?》
송단은 맥풀린 어조로 대꾸했다.
《별수 있소? 그렇다고 애들을 굶겨죽일수야 없지 않소.》
안해는 나른해서 누워있는 아이들과 도적이 들어와도 가져갈것 하나 없는 텅 빈 집안을 한참동안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더는 어쩔수 없게 된 송단은 집을 팔았다. 그리고 수중에 들어온 몇푼 안되는 돈으로 식량을 사서 꺼져가던 자식들의 목숨을 건져냈다.
하지만 그것은 궁여지책인지라 얼마 못 가서 돈주머니는 텅 비여버렸다.
송단은 할수없이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 비바람이나 가리울 작은 초막을 짓지 않으면 안되였다.
송단의 이웃에서 살고있는 리인석이 그 일을 안것은 얼마후였다.
그길로 산에 오른 인석은 무작정 송단이네 초막을 와락와락 헐기 시작했다.
송단의 량주는 뜻밖의 일인지라 얼나간 사람처럼 지켜보기만 했다.
《자, 이젠 우리 집으로 가세.》
인석이가 송단의 막내아들을 등에 업으며 던진 말이였다.
그제야 그의 마음을 안 송단은 몸둘바를 몰라하다가 《자네 마음은 정말 고맙네. 하지만 임자네 살림살이도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렴치를 불구하고 그렇게 하겠나?》 하며 급기야 인석의 앞을 막아나섰다.
사실 인석에게는 아버지가 물려준 얼마 되지 않는 가산과 집이 있었다. 허나 그의 살림도 송단의 처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 마음씨 착한 송단으로서는 설사 굶어죽는다고 해도 이웃에 페를 끼칠수는 없었던것이다.
어떻게나 고집을 부리는지 인석은 끝내 송단을 설복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인석은 잠들지 못하고 궁싯거리기만 했다. 낮에 본 송단이네 모습이 아프게 밟혀왔던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안해가 그에게 물었다.
《여보, 무슨 일이 생겼길래 그러세요? 내가 알면 안되나요?》
인석은 한숨을 내쉬며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었다.
《당신도 알겠지만 송단이네 집형편이 말이 아니요. 이웃인 내가 그걸 알고 어떻게 가만있겠소. 그래 그 사람을 우리 집에 데려오려고 갔댔는데 도무지 응하지 않더구만.》
그제야 남편이 잠들지 못하고있는 사연을 알게 된 안해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참, 그 말을 왜 진작 하지 않았어요. 걱정마세요. 마침 우리 집은 두채로 되여있으니 건너편 채에 들게 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도록 하자요.》
인석은 안해의 진정어린 그 말이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언제 한번 싫은 기색없이 남편과 자식들의 시중을 들어온 그에게 부담을 주게 된것이 마음에 걸리였다.
하지만 이웃의 불행을 못 본체 할수 없는 인석이였다.
인석이네 부부는 다음날 아침 송단의 초막에 찾아가 가장집물을 수레에 싣기 시작했다.
물론 송단은 못 가겠다고 버티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짐을 다 싣고난 인석은 그를 나무랐다.
《이 사람아, 내가 자네보고 집값을 달라던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송단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자네 마음을 모르겠나?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자네 집에 들어간단 말인가.》
인석은 빙그레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별걱정을 다하네.》
옆에 있던 인석의 안해도 한마디 했다.
《아주버니, 섭섭하군요. 그 집에서 말끝마다 이웃이라고 하던것이 거짓이였는가요?》
송단은 꿈틀 놀랐다.
《아주머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 말이 진심이라면 이웃의 도움을 받을줄도 알아야지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송단의 두볼로는 두줄기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렇게 되여 송단이네 가족은 인석이네 집에 얹혀살게 되였다.
그후 두집은 가난한 속에서도 서로 도와주고 위해주며 한식솔처럼 화목하게 지냈다.
이렇게 몇년이 지났다.
그런데 인석이네 집도 날이 갈수록 살림은 계속 어려워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장에 나갔다가 우연히 집을 팔 흥정을 하게 되였다. 막상 집으로 돌아와보니 가슴이 덜컥했다. 자기가 급한 나머지 미처 송단네 가족을 생각하지 못한것이다. 며칠후 이사를 하게 될 집은 단칸짜리로서 두 가족이 모여살기는 힘들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 사연을 안 안해는 심중한 낯빛을 지었다.
《여보, 자기만 생각한다면 무슨 이웃이겠어요? 그 집에서도 그전에 집을 판 돈으로 우리한테 쌀을 사주지 않았나요. 그러니 좀 힘들더라도 송단아주버니네 집을 사주는게 어떨가요?》
인석은 그제야 어두웠던 얼굴색을 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은 생각이구만. 그렇게 하기요.》
인석은 그날중으로 수소문하여 송단의 집을 사놓고 그를 찾았다.
《내 자네한테 죽을죄를 지었네.》
아닌밤중에 홍두깨인지라 송단은 의아해했다.
《내 그만 제 욕심만 차리다보니 자네와 의논도 없이 집을 팔았네.》
송단은 씩 웃었다.
《난 또… 그거야 자네네 집인데 뭘 하나? 그러지 않아도 우린 미안한 생각뿐이네.》
그러면서 송단은 인차 자기네도 이사짐을 꾸리겠다고 했다.
인석은 그를 만류했다.
《내 말을 마저 듣게. 그래 내 안해와 의논하고 자네네 집을 한채 마련했네.》
송단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래일 아침에 이사를 하세.》
인석의 말에 송단은 불맞은 황소처럼 펄쩍 뛰였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의지가지할데 없던 우리 가족을 건사해주었고 또 몇해동안 집에서 살게 해준것만도 고맙기 그지없는데 또 페를 끼친단 말인가?》
인석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이웃간에 뭘 그러나. 다른 생각말구 그렇게 하게.》
그러자 한동안 씩씩거리던 송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난 그렇겐 못하겠네.》
인석은 송단을 나무랐다.
《한번 바꿔놓고 생각해보게. 자네가 내 처지에 있으면 가만 내버려둘수 있겠나. 사람은 정으로 살지 돈으로 살지 않네.》
그러나 송단은 종시 인석의 성의를 뿌리쳤다. 그리고는 그날 밤 안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이튿날 아침 그 사실을 안 인석은 입을 쩝쩝 다셨다.
(원 사람두…)
그는 안해와 함께 며칠동안 송단네 가족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단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끝내 그가 한양에서 살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인석은 너무 기뻐 집에 들어서자마자 안해에게 알려주었다.
《여보, 글쎄 그 사람이 한양에서 산다지 않소?》
안해도 무척 반가워했다.
《아이참, 사람들두…》
그러는 안해에게 인석은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여보, 당신한텐 좀 미안하지만… 우리도 한양에 올라가는게 어떻소?》
남편의 말에 안해는 기다렸다는듯이 응수했다.
《그러자요.》
얼마후 인석은 집을 팔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한편 송단은 그때 남의 집 웃방에 얹혀살고있었다.
하루는 밖에서 누군가 자기를 찾는 소리가 나기에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인석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서있는것이 아닌가.
《아니? 자네가 어떻게…》
인석이 너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라니? 우리야 이웃이 아닌가. 자네와 함께 살자고 이렇게 찾아왔지.》
송단은 인정미가 확 풍기는 그 말에 그만 목이 메여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
그후 두 가족은 이전처럼 처마를 맞대고 오래동안 사이좋게 살았다.
그 사연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은 가난속에서도 서로 도와주고 위해주며 화목하게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