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신하
권절은 세종이 신임하던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국왕 세종은 그가 글을 잘 지을뿐아니라 힘이 세고 활도 잘 쏜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과인이 듣건대 그대가 문무를 겸하고있다고들 하니 글공부와 함께 무술훈련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라.》
《예, 어명대로 하겠나이다.》
이렇게 되여 권절은 사복시 직장이라는 벼슬에 올랐고 단종때에는 교리벼슬에 임명되였다.
어느날 수양대군이 권절의 사람됨을 잘 아는지라 장차 단종을 몰아내는데 리용하려고 그를 찾았다.
《여보게, 자네 보기에는 정국이 어떤가? 조정의 일이 그전처럼 잘 안되는감이 들지 않나.》
《?》
권절은 처음에는 수양대군이 임금의 삼촌이라 무심하게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이상야릇한 감촉을 받게 되였다. 그래서 그 물음에 무슨 의도가 숨어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수양대군을 빤히 쳐다보았다.
수양대군은 권절의 거동을 보고 자기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임금은 춘추(나이)가 너무 어리여 나라의 정사를 보기에는 힘에 부치네. 자기의 주견을 가지지 못하고 대감들의 손끝에서 놀아나고있으니 나라의 꼴이 정말 한심하오. 그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나든지 해야지 이러다간 장차 나라가 어느 지경으로 굴러떨어지겠는지 알수 없소.》
권절은 수양대군의 말을 듣는 순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임금의 삼촌되는 사람이 조카를 잘 도와 나라의 정사를 바로잡겠다는 마음은 없고 임금을 은근히 헐뜯으며 왕위를 찬탈하려는 속심을 가지고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권절은 수양대군이 자기를 찾은 리유가 무서운 정변음모에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권절은 저도 모르게 자기를 가리키며 손을 설레설레 저었다.
이번에는 수양대군이 어안이 벙벙했다.
권절의 뜻밖의 행동은 그의 마음을 종잡을수 없게 하였다. 권절의 얼굴표정은 긴장된 기미는커녕 여느때와 같이 평온해보였다.
수양대군은 초조하여 물었다.
《갑자기 웬일인가?》
그래도 권절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
수양대군은 언성을 높이였다.
《귀가 안 들리오?》
이때라고 생각한 권절은 수양대군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 기회를 타서 머리를 끄덕이며 떠듬떠듬 말하는 흉내를 내였다.
《예, 예…》
그러자 수양대군은 아까보다 좀 큰소리로 말하였다.
《그래, 지금 그대는 나라의 형편을 어떻게 생각하오?》
이번에도 권절은 머리와 손을 가로저으며 안 들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양대군은 입만 쩝쩝 다시더니 그냥 돌아가버리고말았다.
그후에도 수양대군이 여러번 찾아왔으나 권절은 귀가 안들린다고 손이나 머리를 젓기만 하였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후 권절에게 벼슬을 주어 나오도록 하자 그는 갑자기 미친 시늉을 하면서 끝내 벼슬을 받지 않았다. 그처럼 그는 선왕만을 진심으로 받들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