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부를 버리고 빈을 취하겠소》

 

정광의라는 사람은 해주사람으로서 집살림이 어려웠으나 언제 한번 내색을 않고 안해의 일손을 도와 늘 화목하게 살았다.

그는 짬만 있으면 책을 손에서 놓은적이 없었다. 약간의 밑천이 생기면 그것으로 서가를 만들고 책을 한권두권 장만하여 쌓아두고 보군 하였다. 그리고는 친구들이 집에 오면 며칠간이나 묵으면서 책에서 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주고받군 하였다. 정말 책은 그의 더없는 친구였다. 안해도 그의 취미를 리해했는지 군말없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너무도 잘해 사람들은 크면 큰사람이 될것이라고 하였고 그의 친구들도 과거에 나서라고 여러번 권고를 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내 글공부를 하는것은 그 무슨 벼슬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리치를 깨쳐 백성들의 리를 도모하기 위해서요.》

이렇게 글공부에만 여념이 없다나니 집안살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어느날 안해는 견디다못해 남편에게 말하였다.

《이보세요, 전 여직껏 당신이 하는 일을 리해하고 간참하지 않았는데 집안이 돼가는 꼴을 보니 더는 참을수 없군요. 그래 당신은 여태 그 책들을 끼고 다니면서 무슨 벼슬을 얻었나요, 돈을 마련했나요?》

이 말을 들은 정광의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허허, 그래 당신 보기엔 다른 사람들은 뭐 나보다 굉장한것이라도 얻은것 같소?》

《그래도 당신보다야 낫지요. 하다못해 낮은 벼슬이나 재산이라도 얼마간 있지 않나요. 헌데 당신은 벼슬은 고사하고 재산이 있어요, 그렇다고 집살림에 크게 보탬을 준것이 있어요?》

안해는 울어도 씨원치 않겠는데 남편이 웃는것을 보자 야속하다는듯 곱지 않게 눈을 흘겼다.

《여보, 당신 겉만 보지 말고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오. 왜 내가 가진것이 없다고 하오? 아마 나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없을게요.》

남편의 얼토당토한 말에 안해는 얼굴을 찡그리였다.

《어디 당신이 자랑하는 그 재산을 봅시다. 나두 한번 세상에 소리쳐보게 말이예요.》

정광의는 머리를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책상에 눈길이 마주치자 얼른 다가가 붓과 종이를 가지고 안해의 곁으로 왔다.

《내 그럼 당신에게 보여주지. 그럴것 없이 저리 내 글로 써주겠소. 잘 보소.》

그리고는 즉시 일필휘지로 호기있게 두 글자를 써서 안해에게 보여주었다.

안해는 천천히 고개를 약간 숙이고 시선을 아래로 향하였다.

《冊 友》

《책, 벗… 내 어쩐지 당신이 자신심있게 말한다고 했지요. 이거야 글공부한다고 하는 선비들의 취미에는 맞을런지 몰라도 쌀이나 땔나무론 되지 않아요. 당신이 자부하는 이 책과 친구들이 어떻게 큰 보물이 될수 있고 우리 살림에 무슨 도움을 줄수 있나 말이예요?》

정광의는 안해의 빈정대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웃으면서 말하였다.

《여보, 나도 당신의 심정을 모르는게 아니요. 그러나 결코 부와 귀가 생활의 전부는 아니요. 사람마다 부와 귀를 바라지만 부와 귀를 정당하게 취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오? 벼슬이 없을 때에는 걱정만 하다가 벼슬에 들어서면 온갖 탐욕을 일삼으며 권세와 아부아첨에 여념이 없고 돈에 환장이 되여 재물을 긁어모으면 의리도 정도 모르는 추물이 되여 사람들에게 불행과 고통만을 주군 하오. 하지만 책은 지식을 주어 모르는것도 알게 하고 또한 친구들이 많으면 서로 도와 화목하게 지내며 살아갈수 있소.》

안해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가 너무 지내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도 살림이 하두 쪼들려가니 속상해서 한번 해본 소리예요.》

그제야 정광의는 안해의 손을 다정히 잡고 말하였다.

《그 마음이야 알고도 남지. 그러니 당신이 나에게 시집을 온게 아니요. 사람은 죽을 먹어도 세상리치는 알아야 하고 친구가 많아야 사는 보람도 있는것이요. 이게 바로 내가 말하는 재산이요. 하기에 이제라도 나를 보고 부와 빈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애당초 부를 버리고 빈을 취하겠소. 왜냐하면 이게 그 어떠한 부귀보다도 오히려 나에게는 더욱 귀중한 보배로 되기때문이요.》

안해는 남편의 청렴결백한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며 다정히 바라보았다.

이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제야 안해는 남편의 줌안에 들어있는 자기 두손을 뽑으려고 했다.

《이봐요, 밖에 사람이…》

그럴수록 정광의는 안해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뭘 부끄러워서 그러오. 우리야 부부지간인데 남들이 보면 뭘하오.》

밝게 웃는 그들부부의 얼굴에선 가난으로 찌든 한점의 시름도 찾아볼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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