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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을 기다리는 마음은 방하철역시 다를바가 없었다. 합숙에 들어와 짬짬이 보군 하는 화학원서를 펼쳐들었으나 손목시계에 더 자주 눈길이 갔다. 괜히 서둘러 먼저 들어온것이 민망했고 이렇게 무료히 보내는 시간이 더없이 아까웠다. 혹시 종업원식당으로 가지 않겠는가 하는 예감이 피뜩 들었으나 설마하고 부정해버렸다. 조용히 인사나 나누자고 한 첫 부탁이고 한발 먼저 들어오면서 뒤따라 올것을 부탁까지 해놓은 부상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지배인한테 집이 있더라…》하고 껄껄 웃던 부상의 목소리가 재생되며 불쑥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더 무료히 앉아있을수 없어 송수화기를 들어 교환을 찾았다.
《부상동지가 지금 어디 계시는지 알아봐주오.》
전화는 인차 종합지령실에 련결되였다. 수화기에서 비둔한 몸에 비해 좀 덤비는축인 지령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배인동지, 부상동지는 좀전까지 전해하나에 가있었습니다. 곧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저녁 여덟시부터 하기로 한 10일총화는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지금 모여서 기다리고있습니다.》
《?!…》
방하철은 얼른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10일총화란 방하철자신이 세워놓은 직장장급이상 지휘관들의 사업총화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군!…)
《내 곧 나가겠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우선 량해부터 해주.》
송수화기를 놓자 벽에 걸린 모자도 쓸새없이 문을 나섰다. 절제있는 규률과 시간을 철칙으로 말끝마다 외우는 자신이 이보다 더 큰 랑패가 없었다.
그는 발끝에 걸리는 돌부리를 걷어차며 공장쪽으로 반달음쳤다.
이런 일이 있는줄 전혀 알수 없는 리숙은 손님이 오기만 애타게 기다리다가 부엌문을 나섰다. 지배인방은 불이 환히 켜져있었다. 발끝걸음으로 문앞까지 다가서서 한참 서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기척이 없었다.
《지배인동지-》
리숙은 용단을 내려 나직이 불러본다. 대답이 있을리 없었다. 그때야 방이 비였음을 알고 방문을 열어보았다. 원탁우에 펼쳐놓은 외국문책이며 벽에 걸린 작업모가 보이는것으로 어디 먼곳에 간것 같지는 않았다. 그대로 문을 닫고 나서려는데 의자옆에 무슨 보따리같은것이 눈에 걸렸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작업복을 뭉그려 보에 싸놓은것이였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세탁소신세를 지고 자신이 직접 빨래를 해입는 방하철의 습성을 알고있는 리숙이라 보따리를 들고나왔다. 본인이 없을 때 빨래감이 띄운것이 다행한 일이였다. 부엌에 나와 설설 끓는 물을 대야에 퍼서 작업복을 담가놓았다. 작업복은 엊그제 손질해입은것 같은데 보기 처참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우두커니 손님만 기다릴수 없게 된 그는 빨래감을 들고 수도가로 나갔다.
《아유, 무슨 빨래를 이렇게 어두운데서 하세요?》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리숙은 못할짓을 하던 사람처럼 흠칫했다.
차금희가 생긋이 웃으며 뜰안에 들어서고있었다.
《금희동무가 여길 다 어떻게…》
《나같은 로동잔 간부들 합숙에 올 자격이 없는가요? 아주머니가 우리 지배인동지를 얼마나 공대 잘하나 보러 왔어요.》
《이 동무가 정말…》
리숙은 활달하고 개방적인 금희의 롱말인줄 알면서도 황황히 지배인방쪽을 바라보게 되였다.
《겁나서 그러지 마세요. 지배인동진 지금 사무실에서 10일총화를 하느라고 한창 열을 올리고있을거예요.》
《?!…》
《우리 발생로작업반에선 라석호공정기사가 참가했어요. 새로 온 그런 청년기사가 있어요. 그래서 로의 실패원인을 놓고 작업반협의회를 하려 했는데 못하고말았죠뭐. 난 차라리 잘됐구나 하고 여기로 막 달려왔답니다. 아주머닌 지금 지배인동지랑 또 다른 한 사람을 기다리고있지요?》
《아, 아니… 그저 좀 할일이 있기에… 그런데 금희동문 왜 여기로 달려왔나?》
《내가 왜 여기 왔는가구요? 안올수 있게 됐어요. 호호…》
금희는 흰 목을 뒤로 젖히고 동실한 어깨를 들까불며 호들갑을 떤다.
(무슨 처녀가 이렇게 괄량이람?) 하면서도 이 처녀와 마주서면 절로 흥겨워지고 무겁던 정신이 깨끗해지는게 이상했다.
《글쎄 이 괄량이가 끝내 일을 저질렀지요뭐.》하고 금희는 낮에 발생로해체작업장에서 있었던 일을 흥이 나서 말했다. 손짓, 몸동작을 해가며 어찌나 생동하게 표현하는지 까만 먼지투성이인 방하철지배인이 물벼락을 맞고 어쩔줄 몰라하는 광경이 선하게 안겨왔다.
리숙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갔다.
《그래서 어찌겠어요. 민청회의에서 비판은 후에 받기루 하구 지배인동지가 공장에 나간 기회에 그 작업복을 빨아드리자고 달려왔죠뭐.》
《그러니까 빨찌산식이군요.》
《빨찌산이요? 호호… 옳아요. 빨찌산식이 아니면 빨래감이 나한테 차례지겠나요. 지배인동진 세탁소 아니면 재밤중에 자신이 직접 빨래 한다지요.》
《금희,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금희와 같은 빨찌산이 여기도 있으니까.》
《아니 그럼 이 빨래감이?!… 그럼 난 어떡하나요. 옳지 않아요. 아주머닌.》
리숙은 막내동생의 귀여운 응석같아 큰소리로 웃었다. 기분이 흥떠워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지배인이 발생로아래까지 들어가 그 모색을 알수 없을 정도로 먼지를 들쓰고 땀을 흘렸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금희와 같은 로동자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지배인의 합숙관리원이란 자부심이 떠올라선지 즐거웠다. 그래서 그는 부엌에서 기다리고있는 자기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공장에 나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이나마 섭섭하게 생각했던것을 후회했다. 오죽 경황이 없었으면 모자를 못쓰고 보던 책도 그대로 둔채 달려나갔으랴.
《아주머니, 난 그만 돌아가겠어요.》
《아니, 좀 얘기나 더 하다가 가지.》
《언제 말장단 칠새가 있어요. 우리 발생로는 지금 뿔빠진 황소가 됐답니다. 앞으로 든든한 새 뿔이 돋아난 다음 아주머니의 그 유명한 음식솜씨를 배우러 오겠어요. 하여튼 우리 지배인동지를 잘 돌봐주세요. 일밖에 모르는분이 아닌가요.》
웃는 말속의 부탁이였으나 가슴뜨겁게 안겨들었다.
금희가 대문밖을 나서려는데 뜻밖에 로익두가 숨을 헐떡거리며 뜰안에 급히 들어섰다.
《무슨 일이 생겼어요. 외삼촌?》
로익두는 그 말을 들은척도 안하고 지배인방을 힐끔 쳐다보더니 《에이참, 차가 고장나는바람에…》하고 입속말로 툴툴거리며 락심해했다. 그의 뒤로 젊은 청년 하나가 사과지함만 한 목통을 안고 들어와 퇴지에 올려놓았다.
《그게 뭐예요?》
리숙이가 퇴지우에 놓은 목통을 가리키며 물었다. 청년은 자기 알바 아니라는듯 로익두쪽을 힐끗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함주벌 끝 감탕논에서 잡아온 붕어입니다. 술안주엔 이것 이상 없습니다.
부상동진 이 함주벌 붕어라면 오금을 못써요. 그런데 자동차때문에 이렇게 늦어졌으니 이런 큰 실책이 어디 있겠소.》
리숙의 곁으로 바싹 다가서며 무슨 비밀이라도 대주듯 중얼거린 로익두는 힘이 진한듯 퇴지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 낮 부상이 내려왔다는 말을 전해들은 그는 무릎을 치며 서두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공장에 내려왔던 부상에게 붕어회를 대접해서 인기를 끈후부터 그와 얼마간 면식이 있게 된 로익두였다.
한갖 공장자재과장이 부상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대접할 용단을 내릴수 있은것은 그럴만 한 까닭이 있었다.
그전세월 로익두가 장사물계에 발을 갓 들여놓았던 오래전의 일이였다. 무슨판인지 빚만 자꾸 늘어나 부모가 물려준 가산을 다 팔아 벌려놓은 잡화상이 파산직전에 처하게 되였다. 시뻘건 차압딱지가 붙어 두손털고 한지에 나앉게 된 막다른 어느날이였다. 원산에서 마음후한 큰 장사군이 왔는데 묻지 않고 고리대를 준다는것이다. 귀가 번쩍 뜨인 로익두는 원산장사군이 들었다는 려인숙으로 갔다.
《자네 신색을 보니 경기가 말이 아닌것 같군그래.》
아무리 박대를 해도 두무릎을 꿇고서 기어코 만나리라 강심을 먹고 문고리를 잡았는데 오히려 쓸쓸한 동정까지 받고보니 너무 고마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얼른 손수건을 꺼내 눈굽을 훔치는데 공교롭게도 은사슬 시계줄이 묻어나와 데룽데룽 매달렸다. 회중시계는 이미 저당잡히고 멋을 내느라 때가 반질반질한 세루조끼주머니에 걸고 다니는 시계줄이였다. 원산장사군은 그 모양이 가긍했던지 슬며시 눈을 감아버린다.
《자네 차후 원산세거리 감나무집으로 한번 오게.》
《그게 정말입니까?!》
그날저녁 로익두는 손이야 발이야 해서 원산장사군을 집으로 끌고가는데 성공했다. 하루낮동안 이리저리 뛰며 정신없이 준비했으나 음식상은 초라했다.
로익두는 자기 운명의 순례자와 같은 장사군앞에 낯이 벌겋게 되여 발뒤축을 고인채 땀만 흘리고있었다.
《이건 어디 붕어횐가?》
원산장사군은 상가운데 무뚝 담아놓은 붕어회를 한점 맛보며 물었다. 타올수건 세개를 주고 함주벌 농민한테서 가져온 붕어였다.
《함주벌에서…》
《자네 물세는 밝구만. 정월달에 함주벌 붕어회 이상 좋은 술안주는 없다네. 여보게, 잡화상을 당장 그만두고 래일부터 나하구 손잡아보세.》
이런 우연한 행운이 있은 다음부터 로익두는 자기에게 필요한 대상이라고 생각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접근하여 요진통을 찔러보는 솜씨가 있었다.
재작년 늦가을 공장에 내려왔던 부상이 종업원식당에서만 식사를 하고 로동자들과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자 로익두는 대담하게 접근해볼 맘을 먹었다.
화학부문의 큰 간부와 사귀여두는것이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쉽게 부상을 집에 이끌수 있었는데 부상은 서너잔 술이 들어가자 수태를 머금고 술잔을 부어올리는 안해 강난실을 정도이상으로 애무해주었다.
강난실이도 그때의 인상이 깊었던지 오늘 점심때 집에 들어가니 안달이 나서 들볶아댔다. 부상이 내려왔는데 어서 빨리 특색있는것을 마련해보라고. 안해의 부추김까지 받게 된 로익두는 화물차를 몰고 함주벌로 내달렸다. 봄철 붕어잡이란 조련치 않았다. 싣고간 비료 한가마니를 뿌려주고 두사람을 겨우 내세웠는데 아직 기동이 없는 때라 고기가 그물에 걸려들지 않았다. 물녘에서 속이 달아 돌아치던 그는 참을수 없어 바지를 입은채 물속에 뛰여들었다.
찌르는듯 한 랭기가 온몸을 당장 얼쿨것만 같았다. 아래턱이 제멋대로 들까불며 새로 끼워넣은 금이발을 자꾸만 올리받는다. 셋은 입술이 새까맣게 얼어가지고 그물질을 했다. 말하자면 사생결단이다. 이렇게 간고하게 잡아온 붕어를 시간이 늦어 헛물로 되고만것이다.
리숙은 로익두가 너무 락망하는것 같아 한마디 튕겨주었다.
《너무 서운해마세요. 손님은 아직 공장에서 오지 않았어요.》
《그렇소?! 하마트면 오늘밤 잠을 다 못잘번 했수다.》
어깨를 축 떨구고있던 로익두가 벌떡 일어서며 환성을 올렸다.
《잘됐습니다. 실은 이렇게 촐촐했다가 상을 마주해야 그 진미를 알지요. 금희야, 너두 손걷고 나서라. 아주머니, 제꺽 회를 쳐봅시다.》
금희가 어처구니없다는듯 나직이 깨우쳤다.
《외삼촌두 참, 리숙아주머니 솜씨를 잘 알면서두 그래요? 우린 손님이 오기전에 빨리 사라지기나 하자요.》
《제게 맡겨주세요. 자재과장동무가 정말 요긴한 대목을 막았어요. 아닌게 아니라 첨 대하는 부상동지때문에 여간 걱정하지 않았답니다.》
로익두는 금희한테 이끌려가면서도 붕어가 든 목통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들을 바래주고난 리숙은 목통을 열고 몇마리를 꺼냈다.
황금빛에 가까운 검누레한 비늘이며 동삼이 지났으나 퉁퉁한것으로 보아 진감탕속에서 섭생했다는것이 알렸다. 로익두가 자랑할만도 한 특효가 기대되는 오지짜리 붕어였다. 리숙의 손이 잽싸게 움직였다.
칼도마우에 붕어를 올려놓고 얼핏 가늠해보는것 같은데 어느새 내장이 갈라지고 비늘 벗겨진 하얀 살점들이 절편크기만 하게 연방 떨어져나왔다.
해맑은 붕어살점을 식초와 사탕가루에 재우고 발깃한 색갈을 내고있는데 전화종이 길게 울렸다. 리숙은 그 전화종소리가 아무래도 이때까지 기다리고있던 손님접대와 관련된것 같아 방안으로 들어갔다. 전화는 지배인 방하철이한테서 왔다. 오늘밤 회의가 늦어질것 같다는것, 그리고 손님은 이미 화학공장으로 떠나갔으니 더 기다리지 말라는것이였다. 순간 리숙은 송곳같은 그 어떤 예리한것이 가슴을 꾹 찔러대는감을 느꼈다. 그는 송수화기를 놓을 생각도 못하고 호-하고 가는 숨을 내쉬였다.
한편 지배인합숙에서 나온 차금희는 부디 잡아끄는 로익두를 뿌리칠수 없어 자동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갔다.
《아유, 우리 금희가 오래간만이구나. 왜 점점 발길이 떠지나?》
으슥해보이는 마당안에 들어섰을 때 강난실이 문을 열어제끼며 반가와했다.
《어디 짬이 있나요. 요즘은 밥먹는 시간까지 아까운데.》
《옳아, 이젠 맘에 드는 신랑감이 생겼단 말이지. 한창 눈이 맞아 돌아갈 땐 정신없지. 호호…》
《신랑감이요? 나같은 괄량이를 누가 거들떠본대, 흥-》
별로 얼레발을 치며 살틀히 구는 강난실이가 돌변스러워보였다. 로익두보다 17년이나 아래인 강난실을 금희는 외삼촌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다.
이마에 잔주름 하나없이 밴밴하고 히멀건 살이 피둥피둥한데다 노상 얼굴치장을 진하게 하고있어 처음보는 사람들은 로익두의 딸인가 한다. 본처가 50년도 재진격당시 두자식을 데리고 남으로 나간후 정전이 되던 그해가을 후처로 맞아들인 녀자다. 항간에서는 강원도 이주민출신으로 어느 미장원에서 일한다는 처녀나 다름없는 새파란 녀인에게 장가든 로익두를 보고 쉬쉬했다. 금희도 처음엔 남보기 창피스러워 로익두네 집에 발길을 안했다. 그러나 한두해가 흐르고 홀어머니의 강박에 못이겨 어쩌다 심부름을 시작했는데 후처로 들어온 강난실이 제 살점까지 떼줄것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다. 그랬으나 도무지 정이 붙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전후 환경에 맞지 않게 풍족히 누리는 생활 즉 진품으로 갖춘 가구며 먹는 음식이며 생활방식 등이 눈에 거슬리는데도 있었지만 젊고 건강한 강난실이 후처로 들어앉자마자 집에서 하는것 없이 빈둥빈둥 놀고있기때문이였다.
금희는 보고만 있을수 없어 로익두에게 싫은 소리 했다.
《외삼촌, 지금이 어느땐데 집에서 그냥 놀리고있어요. 아무 일이나 시키세요.》
《네가 잘 몰라서 그러누나. 그 사람이 보긴 멀쩡해두 심장병이 심하단다. 일은 고사하구 기분나쁜 소릴 한마디 해두 며칠동안 앓는 형편이다.》
정말 심장병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일이 있은후 금희는 로익두도 그닥 좋게 보지 않는다.
《여보, 금희만 그렇게 붙들고 서있으면 어떻게 하오. 어서 상을 차리오.》
마루방에 올라선 로익두가 한초가 급한지 강난실을 내려다보며 버럭 소리를 친다.
《어서 그렇게 하세요. 외삼촌은 온몸이 꽁꽁 얼었어요.》
《아니, 어쩌다 그렇게 동태가 됐어요?》
로익두의 아래도리를 띄여본 강난실이 놀란 소리를 했다.
《젠장 남좋은 일 해주다 내 배가죽이 등에 가붙겠다.》
《당신은 그게 탈이예요. 다른 사람 위해선 제 뼈 부러지는줄도 모른다니까.》
방안에 들어선 로익두는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털썩 주저앉았다.
참으로 그는 오늘 고욕을 치른 셈이다.
잠시후 아래방에 상이 차려졌다.
《자, 어서 쭉 마시구 몸을 덥히세요.》
강난실이 로익두의 겨드랑에 딱 붙어앉으며 술이 담긴 놋차관을 기울여 잔이 찰찰 넘치게 붓는다. 단숨에 서너잔을 연거퍼 마신 다음에야 로익두가 카- 하며 입을 열었다.
《그저 이런 맛에 힘든것두 꾹 참고 견딘단 말이야. 금희야, 너두 이젠 괄량이란 말 듣지 말구 곰상곰상 굴어라. 네 나이가 이젠 몇이냐.》
앉은책상을 마주하고 그 무슨 잡지를 펼쳐보고있던 금희가 발칵했다.
《내 나이가 어쨌다는거예요. 한창때 제 하구싶은대루두 못할가. 그런데 누가 그따위 뒤소릴 해요?》
《당신은 괜히 얌전하게 앉아있는 애한테 트집이군요. 한대식연구사선생은 저 애 없으면 일할 재미가 없다고 한답디다.》
《허허, 하긴 우리 금희가 덜렁거리긴 해두 연구사선생의 조수노릇만은 썩 잘하구있지. 사실은 그래서 오늘 널 데리구 집에 왔다. 그래 요즘 연구사선생이 어떻더냐. 로를 해체해놓구 맘고생하지?》
로익두는 벌써 술기운이 피는지 네모진 얼굴이 불깃불깃해졌다.
《외삼촌하군 말 안해요.》
기분이 잡쳤던지 금희는 씽-바람을 일쿠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금희야?-》
급해맞아 따라일어서는 강난실의 치마꼬리를 슬쩍 당긴 로익두가 한눈을 찔끈해보인다. 안심하라는 뜻이다. 아닐세라 좀 있더니 건넌방에서 레코드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옹헤야》의 흥취돋구는 선률이 울렸다.
《보라구요. 얼마나 눈치빠른 앤가. 우리 둘이 마주앉아 술 마시라구 반주음악까지 울려주는걸 보우. 자, 흥이 나게 한잔 들라구.》
강난실은 샐쭉해 보이더니 아무 사양없이 술잔을 쪽 소리가 나게 마셨다.
로익두는 술잔을 든 강난실의 포동포동한 손등과 희멀끔한 목덜미며 쟈케트앞자락이 터질듯 솟구친 젖가슴을 쳐다보면서 후- 하고 큰숨을 내불었다. 녀편네는 서른다섯의 한창때라 더 원숙해지고 나날이 기운을 더 쓰는데 마음대로 할수 없으니 그게 한스러웠다.
(아직 멀었다.) 하고 신경질적으로 상우에 놓인 술잔을 거머쥐는데 강난실의 포동포동한 손이 그의 팔을 꼭 잡는다. 그와 동시에 상우의 술잔은 어느새 빨간 연지가 묻은 입술사이로 흘러들고말았다.
로익두가 두눈이 떼꾼해서 쳐다보자 강난실이 그에게 숟갈을 들려주었다.
《당신은 더 마시면 안돼요.》
《자, 왜 이래. 내 주량이야 잘 알지 않나.》
《술마실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있어요. 이젠 식사를 하구 금희한테 가봐요. 자, 어서 이 숟갈을 받아요.》
나직이 뇌까리는 말이였으나 로익두는 단번에 기가 죽어 숟갈을 받아들었다.
《젠장, 이불속에서나 서방이지 이 집 주인은 누구인지 모르겠단 말야!》
한생을 장사로 보냈기에 상대를 휘여잡고 능갈치는데 남다른 솜씨가 있다고 자부하고있건만 젊은 녀편네한테는 옴짝할수 없는게 이상하다.
가끔 그 어떤 요녀한테 홀리워 살지 않나 하고 의심도 해보지만 그때면 어떻게 눈치가 빠른지 떡반죽 주무르듯 흐뭇이 해놓군하여 그 맛에 살아간다.
로익두가 시무룩해서 밥을 먹고 일어서자 어느새 쟈케트를 벗은 강난실이가 희멀건 두팔로 그의 목을 꼭 그러안으며 뜨거운 입김을 볼에 불어넣었다.
《금희만 기분좋게 삶아놓으세요. 그럼 오늘 밤 당신을 10년은 더 젊어지게 만들어주겠어요.》
그가 건넌방에 들어서자 왕골지적우에 앉아 노래를 감상하고있던 차금희가 생긋 웃었다.
《외삼촌, 괄량이처럼 뛰여나왔다고 또 욕많이 했겠군요.》
《욕이 아니라 칭찬을 했다. 이렇게 흥취를 돋과주는 유성기까지 틀어놔서 촐촐하던 배를 잘 채웠다.》
앵돌아져 뛰쳐나간 금희의 기분을 어떻게 하면 돌려볼가 하고 들어서던 로익두의 입이 절로 벙글써해졌다. 역시 활달한 성격은 어디갈데가 없다.
《이쪽으로 좀 돌아앉아라. 내 너하구 긴히 할말이 있다.》
금희는 심중해지는 로익두를 대하자 축음기를 끄고 그와 마주앉았다.
《한대식연구사 말이다. 그 선생이 어떠터니? 이젠 반년나마 같이 일했으니 잘 알겠구나?》
《아이 참, 외삼촌은 뭐 그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같군요.》
《나야 알아도 그전부터 잘 알지. 그렇지만 너한테 아주 심중한 문제가 제기돼서 그런다.》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예요?》
금희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발생로 말이다. 그것이 상부의 의도가 아니더구나. 상부에선 생각지도 않더란 말이다.》
《뭐라구요?! 외삼촌이 제정신 있어요? 지배인동진 오늘두 발생로를 빨리 살려야겠다면서 두시간씩이나 우리와 함께 땀흘렸어요. 먼지구뎅인 로밑 재처리장에서.》
《바로 그 일때문에 부상한테 눈이 쑥 빠지게 추궁받았다구 하더라.》
《아니예요. 그럴수 없어요. 아무렴 연구사선생님이 그런걸 몰라서 그처럼 오래동안 애써왔겠어요?》
《나두 그 사람이 왜 그처럼 극성을 부려왔는지 오늘에야 알게 됐다. 하긴 그 사람처지가 딱하겐 됐더라. 그 사람 아버지두 그렇구 또 본인도 해방전에 일본놈들의 주요한 기관에 복무한 죄가 있으니 전적으로 발생로에 자기의 운명을 걸수밖에… 무슨 명예칭호라도 받아야 할게 아니냐.》
《누가 그런 허튼 소릴 해요? 사실이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우리의 과학자대렬에 있을수 있겠어요? 어림도 없어요. 이건 분명 나쁜 맘을 먹은놈의 책동이예요. 대체 그런 독설을 뿌리는놈이 누구예요?》
금희는 당장 달려갈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벌떡 일어섰다.
《너무 흥분하지 말어라. 그래서 너하구 의논하는게 아니냐.》
《의논할게 따로 있지 이건 사람문제와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란 말이예요. 당장 확인해봐야겠어요.》
가슴에 안은 폭약에 불을 달아놓은것처럼 당황해난 로익두가 황급히 금희의 어깨를 눌러앉히며 중언부언했다.
《그 사람문제는 네가 뛰여다니며 확인할 일이 아니다. 응당 우에서 조처가 있을게다. 만약 네가 참지 못하고 서뿔리 들쑤셔놓으면 연구사선생은 사람들의 버림을 받구 영영 매장되고말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입밖에 내지 말어라. 아직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
《가장 좋기는 연구사한테 떨어져나오는것인데 그 사람을 이 외삼촌보다 더 따르는 네가 그렇게는 못할게다. 그러니 연구사선생더러 발생로를 정 하겠으면 다른 공장에 가서 해보라고 여쭤보렴.》
《난 아무 말도 할수 없어요. 그건 모두 거짓말이예요. 난 연구사선생님을 믿어요. 그처럼 훌륭한분은 없단 말이예요.》
로익두는 입을 벌린채 두눈만 깜빡거렸다. 그러나 입술을 꼭 깨문 금희의 커다란 눈에 맑은것이 가득 고였다가 하얀 볼을 타고 소리없이 흐르는것을 보자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