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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안으로 발생로를 인계하고 과학원에 올라가려던 한대식의 의도는 그만 난관에 봉착하게 되였다. 화입한지 일주일이 지나서부터 로안상태가 시원치 않았는데 열흘계선에 올라서자 간과할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던것이다. 가스화의 주원료인 알탄이 제 모양을 유지못한채 흩어져 서로 엉켜붙었고 골고루 퍼져야 될 불길이 로벽쪽으로 쏠리며 내화재에 융착되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긴 작업봉으로 엉켜붙은 알탄을 헤쳐놓고 융착된 슬라크를 까냈으나 그때뿐이지 한시간도 못되여 그런 현상이 반복되군 했다.

로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반응과정을 구체적으로 관찰했으나 그 원인을 알수가 없었다. 화입해서 며칠간은 알탄이 딸릴 정도로 성능좋던 로다. 그랬던 로가 체기를 만난 사람처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니 이상한 일이였다. 로운전에서 초기와 달리한것은 원료투입량과 송풍압을 점차 높인것뿐이다. 이렇게 하는것은 시험로를 생산에 투입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왜냐면 단위시간당 가스생산량과 유효성분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 생산성이 담보되기때문이다. 만약 로의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원료량과 송풍압을 높인 결과로 초래됐다면 곧 실패를 의미한다.

그러나 한대식은 그렇게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실패라는 그 어마어마한 타격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초기 며칠간은 상태가 아주 좋았던 로라는데 믿음이 갔던것이다. 물론 화학반응이란 미세한 요인에 의해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놓고볼 때 이번에 세운 중간시험로는 반토굴집 뜨락과 휴계실 옆 연구실벽에 붙여놓은 물초롱만 한 소형시험로에 대비도 안된다. 우선 용적이 수천배로 늘어났고 압력, 온도 등 반응 매질들도 엄청나게 다르다. 이런 차이나는 요인들을 놓고 음미해보면 십상 실패라고 할수 있겠으나 화입 당시 잘되던 반응이 반응층이 높아지고 송풍압이 세진다고 급격히 와전될리는 없었다.

여기에는 분명 그 어떤 요인이 작용한것 같았다. 그 요인이 무엇인지 아무리 모대기며 쥐여짜보았으나 실머리를 찾을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로운전작업조는 말할것도 없고 알탄작업조와 원료보장조성원들은 손맥을 놓고 한대식연구사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퇴근고동이 길게 울리자 작업조성원들이 우울한 낯으로 휴계실에 모여들었다. 작업반장 오일규는 하루작업을 총화하고 래일 작업조직을 해야 되겠으나 한대식의 눈치만 보면서 입을 열지 못했다.

로가 계속 이런 상태면 작업조들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는것이다.

《선생님, 무슨 용단을 내려야지 이렇게 그냥 또 하루를 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누구보다 공정기사 라석호가 제일 안타까와했다. 한대식은 라석호를 한번 쳐다볼뿐 대답을 못했다.

《선생님, 로를 시원히 해체해보지 않겠습니까?》

한대식이 대답이 없자 그는 자기의 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엄지손가락처럼 굵게 만 마라초를 뻐금뻐금 빨고있던 석근수가 한마디 퉁을 주었다.

《여보게 기사, 로가 무슨 버선목이라구 뒤집어보겠나. 로실안에 들어있는 알탄이 자그만치 넉t이 넘네. 기술자가 기술적방법으로 풀 방도를 찾아보게나.》

《기사동무두 안타까와 해보는 소리겠지요.》

오일규가 이렇게 분위기를 늦춰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수고들이 많았습니다. 래일 작업조직은 아침시간에 다시 하겠으니 퇴근들 합시다.》

작업총화가 너무 간단해서 그런지 누구도 일어설념을 안했다.

《왜들 이러고 앉아있소? 그전처럼 알탄작업조는 얼마요 운전공, 조절공, 분석공은 뭘 잘했소 하고 칭찬들이 없어 그런가. 그런 칭찬들은 후날 받기루하고 오늘은 어서 가서 좋은 꿈들이나 꾸라구. 이녀석, 넌 왜 두눈을 지리감고 돌부처상을 하고있냐?》

석근수는 이러며 옆에 있는 재배출공 남수의 엉뎅이를 철썩 때렸다. 그러자 남수는 금시 죽는소리를 내며 엉뎅이를 붙들고 뱅글뱅글 돌더니 라석호의 앞에 펄쩍 앉아 하소연을 했다.

《기사형님,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 발생로실패원인이 요 목에까지 떠올라와 막 붙잡으려는 순간에… 아니 형님, 왜 웃습니까? 난 억울해죽겠는데.》

《이 싱검둥이야, 그럼 실패원인을 찾지 못한 책임을 내가 지란 말이냐?》

하고 석근수가 또다시 다가서며 팔을 쳐들자 어디 잡아보라는듯 한눈을 찔끔 감으며 토끼처럼 깡충 달아났다.

작업반원들은 석근수와 손자벌되는 남수의 노는 모습이 우스워 《와하-》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무거운 기분에 눌려있던 처녀들도 입을 싸쥐고 깔깔거리며 탈의실로 달려갔다.

잠시후 휴계실에는 늘 뒤떨어져 남군 하는 한대식과 라석호, 석근수, 오일규가 마주앉았다. 처녀들이 뿌려놓은 청신한 웃음소리마저 잦아들자 분위기는 다시 따분해졌다. 그들은 묵묵히 담배만 태웠다.

《연구사선생, 그렇게 망설이지만 말구 속에 있는 방안을 내놓으슈.》

아까부터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는 한대식이 보기 민망한듯 석근수가 탁한 목소리로 침묵을 깨쳤다. 귀가 먹은듯 한대식은 여전히 땅밑만 굽어본다. 사실 그의 생각은 복잡했다. 실패의 원인을 찾지 못하는 현상태에서 제일 쉬운 방법은 로를 해체해보는것이다. 좀전에 공정기사인 라석호가 제기한 의안이 옳았다. 그렇지만 불을 끄고 로를 해체하자는 말을 어떻게 할수 있는가.

《연구사선생, 분명 할말이 있는것 같은데 속시원히 내놓고 토론해봅시다.》

오일규까지 몸달아 독촉하자 한대식은 입을 다물고만 있을수 없었다. 그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였다가 나직이 말했다.

《로를 세우는길밖에 없습니다.》

《로를 세우다니요?》

《로의 불을 끄고 화입을 다시 하면서 원인을 찾자는겁니다.》

《그게 최종적인 방안이유?》

《…》

한대식은 온몸에 진땀이 쭉 내돋았다. 기대와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없는 무능력에 대한 수치감으로 얼굴을 들수 없었다.

다시 침묵, 얼음처럼 썰렁해진 침묵이였다. 막대한 로력과 시간 그리고 귀중한 원료의 탕진… 침묵의 또 다른 하나의 의미는 이 문제는 자신들이 결심할수 없다는 사정이다. 중간시험로는 지배인의 지시하에 움직이고있었다.

오랜 침묵끝에 석근수가 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발생로의 주인이 그렇게 결심했다면 나는 반대할 생각이 없수다. 자네들 의향은 어떤가?》

《…》

라석호가 석근수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좀전까지만 해도 로를 당장 해체해보자고 주장했으나 막상 그것이 현실적인 문제로 나서자 가슴이 떨리는것 같았다.

《다른 의견들이 없다면 연구사선생의 결심대로 합세. 당위원회에 이 실태를 보고하겠으니 반장동무도 지배인의 승낙을 받도록 하세.》

이렇게 락착을 본 그들 넷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대식은 휴계실옆 연구실로 들어갔다. 며칠간 잠 못 이루며 모색해온 문제를 끝내 이렇게 락착짓고보니 앞이 캄캄해지는것 같았다. 또다시 받게 될 비난과 손가락질은 둘째치고 모든것이 바르고 귀한 때 로를 해체하고 새로 화입을 하라고 할것 같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은 석근수가 연구실안을 기웃하더니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또 밤을 새우시려고 그러우. 자, 오늘밤은 맘 푹 놓고 어서 들어갑시다.》하고 한대식의 팔꿈치를 잡았다.

《아바이, 지배인동지랑 승낙해줄가요?》

《언젠 뭐 허락을 받구 연구사업을 했습네까.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거지요.》

《그전에 소형로에서 할 때 하군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승낙을 받도록 해야지요. 이게 어디 연구사선생의 혼자 일입네까. 자, 그 문젠 우리한테 맡기구 어서 들어갑세다.》

석근수는 기어코 끌고갈셈인지 그의 팔꿈치를 놓지 않았다. 한대식이 사정하듯 말했다.

《아바이, 저도 오늘은 꼭 들어가겠으니 먼저 가십시오.》

석근수는 할수 없다는듯 번열이 올라 불깃해진 한대식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를 떴다. 그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지자 한대식은 빈혈이 온듯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얼마동안 까딱안하고 그러고있다가 흩어진 머리칼을 둬번 쓸어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맥을 놓고있을 때가 아니였다. 이제라도 로를 세우지 않고 실패원인을 찾을수 있는 묘안이 있을수 있지 않는가. 래일 아침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있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화입한후 10일간 운전공, 조절공, 분석공들이 세시간에 한번씩 기록한 일보철을 꺼내들었다. 수십번도 더 훑어보고 확인한 일보철이였다. 먼저 발생로작업조의 기록을 펼쳐들었다. 이 기록은 공정기사 라석호와 한대식이 직접 로반응상태를 관찰한것으로서 매 시간당 변화가 상세하게 반영되여있었다. 발생로의 구체적인 작업공정과 로실안의 반응상태에 대한 관찰자료를 세심히 검토하고 난 한대식은 그다음 알탄작업조의 일보철을 펼쳐들었다.

이때 연구실문이 펄쩍 열리며 석근수가 들어왔다.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늙은이의 말이라구 그렇게 하대할내긴가요?》

석근수는 진정 노여워했다.

《아바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잠간 자료를 확인하고싶어서…》

《잠간이 뭔가. 지금이 몇신데?》

《?!…》

손목시계를 본 그는 입을 벌리고말았다. 벌써 밤 10시가 넘어서고있었다.

더는 변명할 말이 없게 되자 황황히 일보책을 덮어놓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냥 앉으슈. 이제 어디 가서 밥 달라겠소. 내 뭘 좀 들구온것이 있으니 대충 굼때구려.》

석근수는 손에 들고있던 보자기를 원탁우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옹쳐맨 보자기가 잘 풀리지 않는지 한참 끙끙 갑자르며 입안으로 누군가를 탓했다. 매듭이 풀리자 그릇들을 꺼내놓는데 노란 강낭쌀이 다문다문 박힌 밥 한그릇에 토장국냄새가 물씬 풍기는 해묵은 배추시라지국, 고등어 한토막이 나왔다.

《이것이 우리 집 꼴이네. 그러나 합숙에 들어가지 않은 벌칙으로 주는것치구는 이것두 너무 과남해. 허허…》

석근수는 자기로서도 게면쩍었던지 두대나 빠져 휭해보이는 이몸을 드러내며 껄껄 웃었다. 언제봐야 토장국처럼 텁텁해보이나 가슴을 쩡하게 울려주는 웅심깊고 뜨거운 아바이였다.

《어서 식기전에 드슈.》

석근수가 들려주는 숟갈을 받아들고 더운김이 모실모실 피여오르는 밥그릇을 내려다보니 불현듯 1년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가 이 공장에 내려와서 최악의 진통을 겪던 때라 할수 있다. 물초롱만 한 소형시험로를 놓고 수십번 반복시험을 하던끝에 일정한 테타를 잡을수 있었다. 이제는 그 테타에 기준해서 보다 실용성있는 큰 로에서 시험해보고싶었다. 그런데 누가 선뜻 자재와 원료를 대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기술부와 자재과에 수차례 제기도 하고 철판과 내화재가 있을만 한 곳엔 다 돌아다녀봤다.

벽돌한장이 귀한때라 아무 담보도 없는 그에게 선의를 베풀리가 없었다.

이러한 어느날 볼이 훌쭉하고 체소한 아바이 하나가 손달구지에 철판과 내화벽돌을 싣고 왔다. 그 아바이가 오랜 축로공 석근수였다.

석근수는 며칠전에야 연구사선생들이 내려와있다는것을 알게 됐다면서 왜 우리 로동자들을 찾아오지 않았는가고 섭섭해했다. 그날부터 여러명의 로동자들이 한대식연구조의 실험실에 나왔고 낡은 철판이며 발브들을 모아왔다. 자재와 설비들이 준비되자 곧 발생로제작에 착수했다. 그러나 사금을 줏듯 수집한 낡은것들이라 로의 기술적요구가 보장되지 않았다. 로제작이 여러차례 반복되자 연구조에서는 동요가 일어났다. 소형로에서 테타가 확인된 이상 발생로가 있는 황철이나 김책으로 옮기자는 의견이였다. 그곳에는 콕스를 쓰는 발생로들이 있었다. 원래 과학원에 있을 때부터 시험장소문제를 놓고 심각한 론의가 있었는데 한대식의 주장으로 이곳에 내려온 그들이다. 만약 콕스발생로를 쓰는 경우 그것은 남의 솥에 밥짓는 격이므로 항차 성공한다 해도 생산에 도입하자면 또 한차례의 반복과정을 거쳐야 하기때문이다. 그랬으나 시험로제작이 점점 막연해지자 실태를 료해한 본원에서는 정 할수 없으면 철수할것을 허락했다. 머리를 싸쥐고 방도를 모색하던 한대식은 본원의 요구대로 할것을 결심했다. 세명의 방조성원들을 먼저 올려보낸 그는 시험과정에 쓴 자재와 설비, 로력비 등을 산출하여 공장후방부에 제기하고 역을 향했다. 머리를 푹 떨쿠고 큰 길가에 나서는데 다급히 달려오는 발자국소리와 함께 갑자기 왁살스런 손아귀가 배낭끈을 힘껏 잡아챘다. 꺼지게 숨만 내쉬며 맥없이 걸어가던 그는 순간적인 완력에 몸의 균형을 잃고 비칠거리다가 그만 길옆 풀밭에 넘어지고말았다.

《어디로 도망가오!》

한대식의 앞에는 등이 약간 굽은 체소한 석근수가 배낭끈을 거머쥔채 불길이 펄펄 이는 눈으로 그를 쏘아보고있었다. 밭고랑같은 이마의 주름이며 살빠져 훌쭉해진 볼과 목덜미, 등굽은 좁은 어깨의 섬약한 이 로인이 장대한 체구의 자기를 순식간에 넘어뜨렸다는것이 믿어지질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따위 문서장이나 써놓고 달아나면 어쩔테요. 하늘로 올라가겠소, 땅속에 잦아들겠소?》하고 손에 들고있던 낯익은 계산용지를 갈가리 찢으며 벼락같이 꾸짖었을 때야 그는 온몸에 전률을 느끼며 석근수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바이, 이곳에서 더는… 발생로가 있는 딴곳에 옮기자고 합니다.》

《그럼 왜서 애당초 여기로 내려왔수? 난 그래도 선생이 남다른 뜻이 있는줄 알았는데 그것이 거짓이슈?》

《…》

《쉬운곳을 찾아다니며 그 무슨 지참품이나 얻자는 사람은 우리한테 필요없수다. 어서 썩 사라지우.》

석근수는 입이 쓰거운지 들고있던 배낭을 한대식의 앞에 던지고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몇걸음 가지 못해 한참씩 서있군 하는데 숨이 가쁜 모양이다. 한대식은 풀밭을 쥐여뜯으며 오열을 터쳤다.

아, 이런 땐 정녕 어떡하면 좋단말인가. 떠날수도 남아있을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그지없이 가긍했다.

저 멀리서 렬차의 기적소리가 길게 울렸다. 했으나 그는 풀밭에서 일어설념을 못했다. 어디선가 분노에 찬 석근수아바이의 목소리가 우뢰처럼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굳어진듯 꼼짝않고 앉아있던 그는 사위가 어둑어둑해질무렵 공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누가 볼세라 슬몃슬몃 걸음을 옮기는데 길녘에 망두석처럼 서있던 한사람이 앞을 막아섰다.

석근수였다.

《난 연구사선생이 여기를 뜰수 없다는걸 알구있었네. 배낭을 이리 주게.》

석근수는 집을 버렸던 불효자식이 속죄를 하고 돌아온것만큼 반가와했다.

《연구사선생, 어서 갑세다. 선생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잘 모를거웨다. 그런 귀한분이 우리한테 한마디 말도 안하고 떠나가니 너무 분해 로망을 부렸수다. 지나가던 령감이 푼수없이 망녕을 부린것으로 삭여주시우.》

한대식은 석근수의 좁은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목메여 불렀다.

《아바이!-》

불덩이같은 뭉치가 콱 치받쳐올라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세상의 고초를 혼자서만 다 겪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자기보다 더 가슴아파하고 안타깝게 여겨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뜨거운 눈물이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아니, 왜 밥먹을 생각을 하지 않구 멍해 앉아있나?》

담배쌈지를 꺼내놓고 마라초를 말던 석근수가 의아해했다.

《그만 지난 일이 떠올라서…》

한대식은 생각에서 깨여나며 들고있던 숟갈을 밥그릇에 가져갔다.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라니까. 선생, 너무 걱정마슈. 내가 방금 당위원회에 오늘 실태를 보고했더니 발생로의 주인들이야 동무들인데 동무들의 결심이 그렇다면 그대로 해보라고 합디다.》

《그대로 해보란 말이지요?!…》

한대식은 맛스레 담배를 빨아대는 석근수를 기쁨에 넘쳐 바라보다가 밥을 푹 떠내 입으로 가져갔다. 석근수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래기토장국이 여간 꿀맛이 아닌데요.》

《토장국이 뭐 고기국만이야 하겠나. 하여튼 많이 드슈.》

《아닙니다. 구수한게 고기국이상인데요 뭐.》

《허허… 정말 그렇다면 오늘밤 로친네 잔등을 좀 긁어줘야겠군.》

《하하…》 한대식은 어쩔수 없이 웃음이 나오는바람에 입안의것을 겨우 넘기고 어깨를 들썩였다.

다음날 중낮때였다. 뜻밖에 지배인 방하철이 발생로현장에 내려왔다. 그의 출현은 작업장을 단번에 썰렁하게 만들었다. 일을 해도 절제있고 정연한것을 좋아하는 결패있는 지배인앞에 불꺼진 로의 처참한 모습을 보인다는것이 시한탄을 보는것만큼 마음을 조이였다. 방하철은 표표해진 눈길로 현장을 휘익-일별하더니 곧장 철판계단을 딛고 로상부로 올라갔다. 굴속처럼 컴컴해진 로안에서 무엇을 찾아내려는듯 한참 고개를 숙이고있더니 허리를 펴며 로대에 붙은 계기며 가스배출구, 알탄반카(저장고) 등을 세심히 살핀다. 이윽하여 로상부에서 내려온 그는 알탄작업장이며 송풍기실로 갔다. 로해체작업을 하느라고 왁짝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숨소리를 죽여가며 지배인의 거동만 슬쩍슬쩍 살폈다. 현장을 샅샅이 돌아보고난 방하철은 뒤에 차고다니던 수갑을 끼고 곽삽을 잡더니 로밑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두세발자국 떨어져 따라다니던 오일규가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너무나 예상을 뒤집어놓는 지배인의 행동에 갈피를 잡을수 없는 모양이다.

《반장동무두 거기 서있지 말구 삽을 가지고 여기로 오시오. 재를 빨리 처리해야 로안의 탄을 뽑아내지 않겠소.》

오일규는 추궁인지 깨우쳐주는 말인지 분간해볼 사이도 없이 《로가 아직 식지 않았기에…》하고 급급히 변명하며 곽삽을 찾아들었다.

《언제 로가 다 식기를 기다리겠소. 시간 귀한줄을 이렇게들 모르고있으니…》

방하철은 개탄하듯 입안의 소리로 뇌이더니 탄재를 푹 떠서 휙 뿌렸다.

로밑은 순식간에 뽀얀 재가루속에 묻히고말았다. 어디 갔다가 뒤늦게야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석근수가 황황히 달려왔다.

《지배인, 이젠 그만 나오슈. 지배인이 그러니 우리 동무들이 어디 맘놓구 일하겠수.》

방하철은 석근수의 목소리를 못들었는지 아니면 한번 본때를 보이려는지 그냥 삽질만 해댔다. 그는 석근수가 재차 소리를 쳐서야 삽을 옆에 쿡 박으며 허리를 폈다. 어깨가 시큰거리는지 주먹으로 툭툭 치며 로밑을 나오는데 처녀들이 그를 보자 허리를 끌어안으며 까르르 웃어댔다. 땀과 먼지를 들쓴 그 모습이 굴뚝에서 기여나오는 곰처럼 보였던것이다. 그러나 석근수의 눈은 더욱 심각해졌다.

《지배인, 이게 웬일이요. 우리들의 종아리를 때리겠으면 정정당당하게 눈앞에 세워놓구 때릴것이지 이렇게 옆으로 찔러대야 속이 씨원한가?》

《아바이, 오해마십시오. 그전엔 이보다 더 험한 일을 하던 제가 아닙니까. 저를 잘 알면서두 괜히 노여워하시는군요.》

《그럼 일군답게 이신작칙한것으로 생각하란 말이지.》

《지배인이 이렇게 땀이나 흘리는 식으로 이신작칙해서야 됩니까. 그저 맘뿐이였습니다. 삽질 몇번에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아픈게 어디…》

방하철은 또다시 주먹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벙긋 웃어보인다.

그의 언행에서 진정을 느낀 석근수의 우묵한 눈가에 잔주름이 모였다.

《그 마음이 천금같네. 지배인이 삽을 놓은지가 언제라구. 얘 금희야!》

지배인쪽을 슬쩍슬쩍 바라보며 처녀들속에서 키득거리고있던 차금희가 자기를 찾는 소리에 금시 자라목이 된다.

《거기에 있는 물고무호스를 빨리 끌어와라.》

차금희는 별치 않은 심부름이라 잽싸게 달려가 까만 고무호스를 끌구오는데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긴 속눈섭이 파르르 떨렸다. 솟구치는 웃음을 참는지 입술을 꼭 감쳐물고 두눈을 내리깐채 고무호스를 넘겨주던 그는 펄쩍 놀랐다. 석근수가 붙잡는줄 알고 놓아버린 고무호스에서 세찬 물줄기가 뿜어나오면서 옆에 있던 방하철의 몸에 들씌워졌다.

《어이쿠-》 방하철이 얼결에 껑충 뛰며 두손을 들어 물줄기를 막았다. 석근수가 얼른 땅에 떨어진 고무호스를 거머잡았다. 얼굴을 싸쥐고 두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바를 몰라하던 차금희는 《난 몰라요. 아바이가 책임지세요.》하고 냅다 꽁무니를 뺐다.

방하철이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을 팔소매로 벅벅 문대며 어이없어했다.

《이거 정말 안됐쉐. 지배인한테 주는 우리 발생로의 첫 인사라고 생각해주게나. 허-》

석근수가 미안해하며 어줍게 웃었다.

《인사치군 너무 맵짜군요. 허허… 아무래두 목욕을 해야겠는데 차라리 잘됐습니다.》

《하긴 그렇군. 그럼 어서 목욕탕으로 갑세다.》

지배인이 선선히 나오자 송구해하던 석근수의 낯색이 한결 밝아졌다. 방하철은 목욕탕으로 가면서 이런 당부를 했다.

《아바이, 발생로를 빨리 살려야 되겠습니다. 로력을 열명쯤 더 보충해주겠으니 연구사더러 이삼일안에 화입하라고 하십시오.》

《알겠수다.》

석근수는 속이 흐뭇해져 공장기술부에 올라간 한대식연구사가 오기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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