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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탄중간시험로가 서고 발생로의 화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는 소식은 한두입씩 건너 종업원들속에 파다하게 퍼졌다. 석탄가스화에 대한 파악이 없는 사람들은 새 기술혁신을 또 하나 했겠지 하고 심상히 여겼으나 기술자들속에서는 여론이 분분했다. 과연 석탄에서 나오는 가스를 가지고 어느 정도의 실효성으로 암모니아를 생산하겠는가가 첫째고 시작부터 마감공정까지 전기를 동력으로 쓰고있는 비료공장에서 석탄에 의한 새로운 공정체계를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등 고개를 기웃거리는 축들도 많았다.
그러나 라석호의 견해는 달랐다. 고중때부터 연료화학에 야심을 둔 그는 화학공대 고분자학부에서 자기 꿈을 키웠고 졸업당시 학부에 연료화학과가 새로 나오자 자습으로 이 학과목을 통달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의 목표는 원유가 없는 우리 나라에서 고체연료 특히 석탄을 종합처리하여 원유를 대신하는것이며 내심 노리는것은 우주정복에 필요한 로케트연료를 만들어내는것이다. 쏘련에서 첫 인공위성을 쏴올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선코를 떼운것 같아 며칠간 잠을 못잤다.
이처럼 야심만만한 라석호인지라 발생로의 화입소식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과 호기심을 주었다.
그는 이미 석탄가스화에 대해서도 폭넓은 리해를 가지고있었다. 문헌자료에 의하면 가스화의 력사는 1800년초부터 시작되였다. 처음엔 원시적인 토법으로부터 점차 기계화된 발생로에로 이행 발전했다. 그 면모는 빠른 속도로 고정층식가스발생로를 뛰여넘어 회전하는 발생로를 산생시켰다. 기계화가 도입되고 장치구조물이 완성됨에 따라 증기발생장치, 로자케트(동체 중간부분 랭각물집)와 회전하는 불판에 의한 재배출, 자동원료투입 등 현대적인 발생로들로 발전완비되였다.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화학공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가스화에 대한 연구가 더욱 심화되였다. 갈탄, 력청탄이 많이 매장된 도이췰란드에서 가스화의 연구성과가 제일 많이 도입됐는데 2차대전시기 파쑈히틀러놈들은 부족되는 원유의 많은 량을 석탄가공에 의한 액체연료합성으로 충당했던것이다.
이처럼 가스화의 력사가 깊고 화학공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우리 나라의 무연탄과 같은 그런 탄으로 가스화했다는 실례는 없으며 무연탄가스로 비료제조를 했다는 나라는 없었다.
라석호의 놀라움은 그래서 더욱 컸다. 우리 나라 무연탄에 의한 화학비료생산, 이것은 확실히 연료화학에서 변혁이 아닐수 없다. 연료화학은 바로 이처럼 우리 나라에 무진장한 무연탄을 기초로 해야 한다. 우리의 자원, 우리의 힘과 기술로 우리 식의 화학공업을 일떠세우려는 그 지향이 얼마나 고귀한가.
라석호는 고중시절과 대학기간에 이미 한대식연구사의 소론문들을 읽어본적이 있었다. 짤막한 론문들이였으나 그 내용이 풍부했고 참신했다. 특히 민족성이 뚜렷하고 주장이 명백한것이 특징적이였었다. 그래서 내심 존경해왔고 언젠가 꼭 만나보리라 별러왔는데 이처럼 또다시 강한 충격으로 자기 마음을 사로잡을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서 연구사선생을 만나보자.)
라석호는 이른아침 발생로를 찾아갔다. 발생로는 구내 변두리의 한적한곳에 자리잡고있었다. 로곁에 허리구붓한 웬 로동자 하나가 곽삽으로 흩어진 탄덩이들을 모으고있었다. 라석호는 소문을 크게 낸 발생로가 이처럼 외진곳에 버림받듯 자리잡고있는것이 우선 이상할 정도였다.
《이른아침부터 수고하십니다.》
라석호는 둘레를 살피며 허리구붓한 로동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예, 어서 오슈.》
그는 여전히 허리도 펴지 않은채 석탄이 담긴 곽삽을 저쪽 더미쪽에 홱홱 뿌렸다. 그때마다 까만 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라석호는 할수없이 한걸음 물러섰다.
《저… 연구사선생은 아직 출근안했습니까?》
그때야 허리를 편 로동자는 뜨아한 눈길로 라석호를 바라보았다. 량볼이 훌쭉 들어가고 등까지 약간 굽은 체소한 늙은이나 두눈에선 맑은 정기가 뿜어져나와 그 어떤 위압감을 주었다. 공장당위원이며 종업원들이 좌상으로 여기는 오랜 기능공인 석근수아바이였다.
《자넨 대체 누군가?》
《얼마전 대학을 마치고 전해직장 공정기사로 배치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긴 뭣하러 왔나?》
《연구사선생님을 좀 만나보려구 그럽니다.》
《아침부터 찾아다니며 시비질할 생각인가?》
석근수는 혼자말처럼 뇌이더니 긁어모은 석탄무지에 곽삽을 쿡 박아세우고 휴계실쪽으로 가버렸다.
《?!…》
라석호는 터무니없는 힐책에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기술자들속에서 여론이 분분하다는 생각이 들자 리해가 갔다.
《기사동무, 우리 아바이를 탓하지 마십시오. 시험발생로가 일어서고 화입까지 해놓으니 닭무리에 오리가 끼여든것처럼 소란하게 떠들어대니 그래본겁니다. 연구사선생은 밤을 새우고 방금전에 들어갔으니 좀 기다리면 나올겝니다.》
어느새 뒤에 와 서있던 처녀가 미안한듯 나직이 속삭였다. 차금희였다.
《…그런데 처녀동문 여기서 무슨 사업 보십니까?》
《무슨 사업 보는가구요? 호호…》
차금희는 대답대신 고개를 젖히며 까르르 웃더니 휴계실쪽으로 뛰여갔다.
늘씬한 다리를 상큼상큼 놀리는 처녀의 동실한 등어깨우에서 소담하게 땋은 외태머리가 춤을 추었다. 무슨 처녀가 초면에 부끄럼도 탈줄 모른다고 생각한 라석호는 연구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맘 먹고 작업장을 두루 살펴보며 서성거렸다. 휴계실안에서는 먼저 들어간 아바이가 무슨 말인가 하는지 처녀의 청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기사동무! 이리 오세요.》
어느새 작업복으로 바꿔입은 처녀가 휴계실문턱에서 손저어 불렀다.
라석호는 처녀가 부르는 휴계실로 갔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를 주의깊게 살펴보던 차금희의 두눈에 이상한 광채가 반짝 빛나더니 가느다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니?!… 순복이 오빠 아니세요?》
《?!…》
라석호는 환희에 차서 부르짖는 처녀의 희맑고 갸름한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환희에 반짝이는 크고 검은 두눈이며 부드럽게 흘러내려 안성맞춤 자리잡은 코와 반쯤 열린 빨깃한 입술 등은 청신한 호수가를 들여다보듯 시원한 느낌을 줄뿐 기억에 없는 처녀였다.
《아이참, 대학까지 나온 기사가 그렇게두 기억력이 없어요. 군대에 가는날 달리는 렬차창문으로 들꽃묶음까지 안겨줬는데.》
차금희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자 어떻게 상기시켰으면 좋을지 몰라 발을 구르며 안타까와했다. 라석호는 그 말을 듣자 불현듯 동생 순복이와 헤여지던때가 떠올랐다.
전쟁의 두번째 해인 52년도 초여름 산기슭에 있던 림시가교가 놈들의 폭격에 흔적도 없이 불타버리자 그만 분을 참을수 없어 다음날 전선을 탄원했다.
고중졸업반의 많은 청년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역두에서 환송나온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졸업을 몇달 앞두고 전선으로 떠나는 그들이기에 하급생들과 가족들이 더 열렬히 바래주었다. 나팔이 울리고 석별의 목청들이 높아가는 가운데 렬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이때였다.
《오빠-》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바래워줄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 제일 먼저 렬차에 올라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있던 그는 와뜰 놀라며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농촌문화사업으로 촌에 나가있던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 순복이가 발꿈치를 고이며 두리번 거리고있었다.
《순복아, 나 여기 있다. 이쪽으로 오라-》
그때야 오빠를 발견한 순복이가 붐비는 사람들을 헤치며 뛰여왔다. 그러는새 렬차는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사람 저사람에게 부딪치며 빠져나오던 순복이는 멀어지는 렬차를 보며 《오빠-》하고 안타까이 소리만 쳤다.
이때 웬 녀학생이 순복이가 들고있던 들꽃묶음을 가로채더니 나는듯이 렬차를 따라왔다.
《순복이 오빠, 순복이가 주는 꽃묶음을 받으세요. 그리구 잘 싸우고…》
녀학생은 들꽃묶음을 안겨주는것과 동시에 중심을 잃고 비츨거리다가 겨우 몸을 다잡아세웠다. 그랬으나 라석호의 눈에는 녀학생의 어깨너머로 두손을 높이 들고 목청껏 웨치는 순복이의 모습만 보였다.
《순복아, 잘 있거라!》
이렇게 헤여진 순복이를 다시는 만날수 없었다. 눈만 감으면 목청껏 웨치며 손들어 바래주던 동생의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은데 바로 그날에 바람처럼 달려와 들꽃묶음을 안겨주던 중학생처녀가 눈앞에 서있는것이다.
라석호는 생각에서 깨여나며 처녀의 모습을 다시금 뜯어보았으나 옛 표상을 전혀 살려낼수가 없었다.
《아마 순복이 오빤 절 모를거예요. 순복이 딱친구였던 중학동창 차금희라고 합니다.》
라석호가 두눈을 가느스름한채 아무 말 없자 차금희는 실망해서 말했다.
《아니 왜 알아보지 못하겠소. 얼굴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그때 난 동무가 안겨주던 들꽃묶음이 아직도 눈에 선하오.》
《정말이예요?》
《그런 거짓말도 하겠소. 몇역을 지나자 그처럼 싱싱하던 꽃들이 자꾸만 시들지 않겠소. 그걸 보니 맘이 좋지 않더구만. 그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괜히 렬차원만 못견디게 굴었지요.》
라석호는 그때의 생각이 또다시 솟구쳐서 코등이 찡해졌다. 자꾸만 시들어가는 들꽃묶음이 왜그런지 동생 순복의 모습처럼 보였는데 전쟁이 끝나기 두달전 건설장에서 일하던 동생이 끝내 시한폭탄에 잘못됐던것이다.
《지금 순복인 어디 있어요? 정말 보구파 죽겠어요.》
《이제 차차 만나게 되겠지요.》
《그래요?! 그런데 왜 나한테 소식 한장 없을가… 지금 어디에 있어요? 당장 편지를 하겠어요.》
《허허, 정말 급하구만. 내가 순복이한테 욕해주지요. 편지 한장 안했다구요. 그런데 연구사선생은 매일밤 새우시오?》
라석호는 아픈 상처에 잔침질당하는것만 같아 화제를 다른데로 돌렸다. 했으나 차금희는 순복이 생각을 하는지 하늘 저쪽만 멍하니 바라본다.
《둘이 아는 사인가?》
목욕을 하고 나오는지 목에 수건을 건 석근수가 그들앞으로 다가왔다.
《예, 알고보니 저하구 중학교 동창이던 순복이 오빠군요.》
차금희가 상긋 웃으며 대답했다.
《거 반가운 일이군. 그럼 얘기들 하라구. 내 제꺽 집에 갔다오겠네.》
여전히 무뚝뚝한 눈길로 라석호쪽을 힐끔 바라본 석근수가 차금희에게 한마디 이르고 휴계실을 나갔다.
석근수가 저쯤 멀어졌을 때 라석호가 한마디 했다.
《저 아바이 성미가 보통아니구만. 떨떨했다간 한대 얻어맞겠소.》
《맞게 굴면 맞아야죠뭐. 그러나 사람은 지내봐야 안답니다.》
차금희가 제법 훈시조로 말했다. 언행 하나하나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처녀였다. 활달하고 자기 감정을 숨길줄 모르는 이 순진한 처녀에게 호감이 갈수록 동생 순복이에 대해서 계속 숨길수 없겠다는 위구심이 들었다.
한대식연구사는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나왔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언덕진 이마아래 사색과 예지가 담긴 조용한 눈매의 중년사나이였다. 무심히 휴계실에 들어서던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라석호를 보자 묻는듯 차금희에게 눈길을 보냈다.
《선생님을 만나보러 온 전해공정기사입니다.》
《찾아주어 감사합니다. 저기 연구실로 갑시다.》
한대식은 실무적인 어조로 한마디하고 곧장 휴계실옆에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차금희가 어서 따라가 보라는듯 눈을 끔뻑해보이며 퇴근시간에 찾아가겠으니 꼭 기다려달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한대식이 연구실이라고 부르는 휴계실옆에 붙은 방은 10㎡도 못될 비좁은 방이였다. 먼저 들어선 한대식이 용접불찌로 뿔을 만든 쇠말뚝에 옷을 벗어걸어놓더니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방안에는 쇠의자 두개와 사무용원탁 하나 그리고 바람벽에 붙여놓은 물초롱만 한 크기의 시험용 소형발생로 네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처럼 큰 발명을 한 연구사의 연구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했다. 지난날의 간고성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그 어떤 련민의 감정이 욱 치받친 라석호는 격한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연구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러자 한대식은 중떠보듯 지그시 바라보더니 《그런 말하러 찾아왔다면 더는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타이르듯 뇌이더니 쇠말뚝에 걸린 작업모를 벗겨들었다.
라석호는 한대식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가슴이 세차게 오르내렸다.
《선생님은 왜 저의 진심을 외면합니까?》
한대식은 떠밀듯 막아선 라석호의 흥분된 모습을 바라보다가 쇠의자를 가리켰다.
《여기 앉으시오.》
그들은 말없이 마주앉았다. 잠시 침묵만이 흘렀다. 얼마후 한대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용건을 말해보시오.》
《선생님, 저는 엊그제 시험발생로에 화입을 성공적으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료화학에 남다른 뜻을 둔 제가 그 소식을 듣고 가만있게 됐습니까?》
《언제부터 이 공장에서 일하오?》
《화학공대를 마치고 4일전에 여기 왔습니다. 지금은 전해공정기사로 배치받고 학습중에 있습니다.》
한대식은 마주앉은 라석호를 다시금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가 누구든 새로운것, 과학과 기술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덮어놓고 마음쏟고싶은 한대식이다.
열망으로 번뜩이는 라석호의 눈빛에서 강직성이 느껴지는 그 거센 숨결과 목소리에서 한대식은 바로 청년기사의 무게를 짐작했던것이다.
이날 한대식연구사로부터 석탄가스화의 연구과정이며 시험발생로의 가동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 라석호는 온종일 들뜬 기분상태에 있었다. 간단히 몇마디로 스치고 지나가는 연구사의 말속에 기술문헌자료에서는 도저히 얻을수 없는 귀중한 경험과 착상이 있었으며 드팀없는 지향이 느껴졌다. 그런데다 호기심을 더 부쩍 일으킨것은 시험로운전작업반을 새로 조직하기로 되였는데 여기에 공정기사가 필요하다는것이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였다. 일주일동안 전해직장생산공정과 그 실태를 료해하며 로동안전교양을 받고있는 이 기간에 자리를 옮겨야 했다. 무엇이라고 제기할가? 나는 이미 연료화학에 뜻을 둔지 오래되였다고 솔직히 말해볼가. 하지만 배치되자마자 다른곳에 일터를 옮겨달라고 할수야 없지 않는가. 아무리 간절해도 지배인에게 그런 실망을 줄수 없다. 그렇다면?…
그의 생각은 길게 울려오는 전화종소리에 끊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했는지 방안에는 자기 하나밖에 없었다. 할수없이 송수화기를 드니 녀자의 쟁쟁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여보세요. 거기가 하나 전해기술학습실입니까?》
《…》
《여보세요. 왜 대답이 없을가. 전화가 고장났나?…》
《어서 말씀하시오. 듣고있습니다.》
《야참… 그런데 미안하지만 누구세요. 듣지 않던 목소리같은데…》
《새로 온 공정기사입니다.》
《그러세요! 전 차금희예요. 마침 퇴근 안하셨군요. 정문에서 기다리겠으니 얼른 나와주세요.》
《난 더 있어야겠는데…》
《그래요?… 할수 없군요.》
저쪽에서 전화끊는 소리가 났다. 라석호는 그때야 퇴근시간에 꼭 찾아가겠다고 속삭이듯 말하던 오늘 아침 일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일어서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일터를 옮기는 문제를 결심하지 않고서는 그 어데도 움직이기가 싫었다. 또다시 방안을 서성거리며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봤으나 얼굴만 뜨거워질뿐 결심이 서지 않는다. 몇년되지 않는 짧은 군사복무기간이였으나 명령과 지시에 습관된 그는 끝내 지배인을 납득시킬만 한 구실과 타당성을 찾아낼수가 없었다. 그는 뒤늦게야 학습실을 나왔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정문을 벗어나려는 때였다.
《순복이 오빠-》하고 소리쳐부르며 정문경비실에서 뛰여나오는 처녀가 있었다.
차금희였다. 라석호는 걸음을 멈추고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니, 아직 안가고있었소?》
《제가 어떻게 그냥 집에 가겠어요. 그런데 순복이 오빤 집이 어디 있어요?》
《집은 왜 묻소?》
《그래야 행군방향을 정하지요. 오늘 주인공은 순복이 오빠니까요. 호호…》
차금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까르르 웃었다.
《난 어디로 가든지 좋소.》
《그렇다면 제가 안내하지요. 우리 종업원들이 좋아하는 저기 청년공원쪽으로 가자요. 어때요?》
라석호는 복잡하던 머리가 거뜬해지는것 같았다. 그들은 큰길을 벗어나 포석을 대충 깔아놓은 좁은 길에 들어섰다.
《전 오늘 아침 순복이 오빠를 만난 다음부터 온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아 혼났어요.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 그래서 우리 아바이한테 두번씩이나 꾸지람을 받았답니다.》
차금희는 크고 검은 두눈에 생기를 뿜으며 빠른 말로 말했다. 사실 그는 라석호를 만나는 순간 순복의 얼굴이 떠올랐고 해방후 5년간 한 책상에서 친자매처럼 다정히 지내던 순복이를 만나게 됐다는 기쁨으로 환희에 차있었다.
오빠를 전선에 바래워주던 그해 여름 간성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병간호로 떠난후 만나지 못한 순복이였다. 한고장에 있다면 이래저래 행처를 알수 있겠는데 그렇게 헤여진 순복의 소식은 바이 알수가 없었다. 야속하고 고까운 생각은 세월이 흐를수록 불안의 그림자를 던져주었다. 소식 한장 없을리 없는 순복이였다. 그랬던 순복인데 뜻밖에도 그의 오빠가 나타난것이다.
《금희동문 언제부터 가스화연구조에서 일하게 됐소?》
《무슨 말씀인지요?》
순복이 생각에만 옴해 걷던 금희는 얼른 그가 묻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언제부터 연구사선생과 함께 일하게 됐는가말이요?》
《네, 그것말인가요? 반년전이였어요. 하루는 석근수아바이가 우리 실험실에 와서 〈금희야, 오늘부터 네가 한대식연구사를 좀 도와줘야겠다. 그렇게 토론이 있었다.〉하지 않겠어요. 전 그때 기술부 실험실 실험공이였어요. 뭘 보구 날 연구사선생님한테 소개했는지 모르겠어요. 처녀애들이 날 막 부러워하더군요.》
《나두 금희동무가 부럽소.》
《부러우면 오면 되지뭐 망설일게 있어요. 마침 발생로작업반이 새로 조직된다는데.》
《그래도 될가?… 그런데 난 이미 전해에 배치받은 몸이 돼서…》
《순복이하군 영 딴판이군요. 그앤 자기가 맘먹으면 기어코 해내고야마는 이악쟁이였어요. 그래서 공부도 학급에서 제일 잘했죠 뭐. 전 그때도 지금처럼 덜렁거리길 좋아했구요. 아마 이렇게 망설이고있는 오빠를 본다면 그앤 분명 가만있지 않을거예요. 그런데 순복인 지금 어디서 뭘해요?》
금희의 목소리는 그리움에 콱 젖어있었다.
라석호는 속이 띠끔했으나 솔직히 말해주리라 결심했다. 순복이를 그토록 잊지 못해하는 이 처녀에게 그 어떤 미련을 준다는것이 죄를 짓는것 같았다.
《순복인 이 세상에 없소. 미국놈들의 폭격에…》
순간 낯이 하얗게 질린 차금희는 넋나간 사람처럼 라석호를 멍해서 바라보다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그랬군요. 어쩐지 순복이 오빠를 만난 순간부터 불안하기만 하더니… 흐흑-》
《너무 괴로워마오. 온 나라가 그런 아픔을 당하지 않았소.》
《그래두… 그래두… 그앤 너무도 일찍…》
차금희의 흐느낌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아침에 라석호를 만났을 때부터 마음조이던 소식이라 그 상실의 아픔과 슬픔이 몇배로 더 컸던것이다. 라석호의 가슴도 쓰렸다. 그는 갈린 소리로 위로했다.
《금희동무, 우리 저 공원에 가서 좀 앉읍시다.》
《아니예요. 전… 그만 가보겠어요.》
다른 말을 해볼사이도 없이 처녀는 몸을 돌렸다. 얼굴을 싸쥔채 어깨를 들먹이며 달려가는 처녀의 몸은 금시 쓰러질듯 비틀거렸다. 한참 달려가던 그가 문뜩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이쪽을 향해 뛰여왔다. 라석호는 웬일인가 하여 그의 거동만 살폈다. 몇발자국 앞에 다가온 금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빠른 어조로 말했다.
《발생로작업반에 오는 문제말이예요. 제가 석근수아바이한테 말씀드려 보겠어요. 그 아바이 말이라면 아마 지배인동지두 반대안할거예요.》
라석호는 가슴이 뭉클했다. 참을길 없는 내심의 슬픔과 괴로움을 꽉 누른채 상대의 념원부터 먼저 헤아리는 처녀의 눈물에 젖은 눈동자를 바라보느라니 마치 친동생을 대하는것 같았다.
《그래도 될가?…》
《기사동문 아직 아바이를 잘 몰라서 그래요. 석근수아바이는 해방직후 우리 공장에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을 제일 먼저 만나뵈운 그런 영광과 행복을 받아안은 분이랍니다. 그래서 종업원들모두가 아바이를 무척 존경하고있어요. 그리구 지배인동지하구는 해방전에 어느 화학공장에서 함께 일한적도 있다는 말이 있어요.》
《어쩐지 첫 인상이 범상치 않다 했더니 그런 훌륭한분이였구만. 금희동무, 하여튼 발생로에 가는 문제는 내 알아서 할터니 너무 걱정마오.》
《어떻게 해서라도 순복이 오빤 우리 발생로에 꼭 와야 해요.》
그루박듯 다짐하는 그 강한 요구에는 감히 주저하거나 뿌리칠수 없는 뜨거움이 있었다. 라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동요하던 마음이 철석같이 굳어짐을 느꼈다.
《고맙소. 내 이 길로 지배인동지를 만나보겠소.》
라석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빨리 걸었다. 눈물에 젖은 처녀의 눈길이 자기의 뒤를 지켜보는것만 같았다. 행정청사 2층에 있는 지배인실에서는 무슨 사업토의중이였다. 복도의자에 앉아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두시간 실히 앉아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라석호는 기회를 놓칠세라 담배연기가 뽀얀 지배인실로 들어섰다. 어딘가 장거리전화를 하고있던 방하철이 라석호를 보자 손을 들어 의자를 가리켰다.
송수화기를 바싹 당겨쥔 그는 목청을 높였다.
《곤난하다는 말이 되우. 어려울 때 도와주는게 진짜 벗이 아니요. 여보시오. 기사장동무, 내 오죽하면 그쪽에 두손 내밀겠소. 동무도 알겠지만 우리가 벌려놓은 설비갱신이라는게 어디 간단하오.… 그러게말이요. 꼭 좀 도와주시오. 최대한 넉달은 넘기지 말아야겠소.… 단번에 될수 없으면 몇번 꺾어서… 옳소. 그럼 부탁합시다.》
송수화기를 철컥 내려놓고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몇번 문댄 그는 원탁 앞으로 가서 물을 두 고뿌씩이나 쭉 들이킨다.
《그래 요새 재미가 어떤가. 우리 공장에 온 후회는 없겠지요?》
라석호의 앞으로 다가와 빙긋이 웃는 말로 묻는 방하철의 불깃한 얼굴엔 지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라석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차렷자세를 취했다. 군대에서 습관된 동작이였다.
《후회가 아니라 맞춤한 때 온걸 다행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맞춤한 때라니 그건 무슨 뜻이요?》
《지배인동지, 전 오늘아침 발생로에 가봤습니다. 그걸 보구 가만 있을수 없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전 대학때부터 연료공학에 뜻을 두고있었습니다.》
《그러니 발생로에 보내달라 그 말이군, 자 앉소.》
방하철은 라석호의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힌 다음 뒤짐을 진채 천천히 방안을 거닐었다. 다시금 긴장이 느껴진 그는 앉을 생각도 못하고 방하철의 얼굴만 뚫어지게 지켜봤다.
《그래 전해설비가 어떻습데. 새로운 눈으로 보는 맛이 다르겠는데.》
지배인의 생각은 딴데 가있는듯 했다. 라석호는 한순간 실망을 느끼며 지배인의 묻는 말에 나직이 대답했다.
《지배인동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해설비들이 시원치 못합니다. 원가가 너무 많이 먹는것 같습니다.》
《옳게 봤소. 전기가 너무 아까와. 내가 화학기계전문가가 돼서 그런지 정말 눈에 차지 않소. 늙고 병들고 전쟁때 상한것들이 드문하오. 한마디로 성한것이 별로 없지. 노구찌란놈이 여기다 공장을 앉힌 때가 언제요. 30년이 넘었소. 늦어도 7~10년 주기로 갱신해야 할 설비들이 몇대쯤 살았다고 할수 있소. 그래서 난 이 공장에 온 첫날 설비갱신부터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렇소. 우리가 한단계 더 뛰여오를수 있는 디딤돌이 바로 여기에 있소. 이번 내각협의회에서 증산과제까지 받아안고보니 이 문제가 더 절박해지더란 말이오. 그런데 정작 벌려놓고보니 설비갱신이 쉽지 않구만. 방금전에도 인수원들이 가있는 대상공장들에 전화를 해봤는데 지금 당장은 줄 자재들이 없다는거요. 기사동무도 이런 실태를 알고 나를 좀 도와주오.》
《지배인동지,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서 말해보오.》
《지금 형편에서 설비갱신안이 꽤 가능하겠습니까?》
방하철은 걸음을 멈추며 어딘가 록록치 않은 느낌을 주는 청년기사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라석호는 그 눈길에 몸이 가다드는것 같았으나 내친김에 속에 있는 말을 했다.
《저도 낡은 설비를 갱신하는것은 아주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몇가지 의문이 있어서 그럽니다. 현재 우리의 공업 특히 화학기계공업은 그 초창기나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또한 기술이나 자재 등 모든것이 부족한 때입니다. 이런 실태에서…》
《알만 하오. 동무의 판단이 십분 옳소. 그렇다고 앉아서 때를 기다릴수야 없지. 그건 우리의 성미뿐아니라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아. 그리구 내가 하자는 설비갱신이란 개념을 너무 요란히 생각하진 마오. 지금 쓰고있는 설비를 완전히 교체하는게 아니라 더 보강하고 혁신적인 안을 받아들여 최대한의 효률을 얻자는것이요. 말하자면 설비개조안이라고 할수 있겠지. 물론 이것 역시 대단히 어렵다고 보오. 그러나 맘먹기에 달렸소. 눈뻔히 뜨고 이런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건 죄악이요. 이것은 잠시도 뒤로 미룰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서 화학기계전문가인 나의 첫째가는 의무이기도 하오.》
방하철의 어조에는 드팀없는 결심이 어려있었다. 라석호는 자신의 견해를 더 론해보고싶었으나 너무 주제넘은것 같아 참고말았다.
《말씀을 듣고보니 리해가 갑니다. 그러나 지배인동지, 저의 생각에는 현조건에서 무연탄가스화에 힘을 집중하여 속히 공업화하는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예비라고 봅니다.》
《허허, 어느새 그렇게 무연탄가스화에 반해버렸소? 그러지 않아도 동무가 찾아와주니 내 마음이 한결 가볍소. 발생로는 선차적으로 관심을 돌려 빨리 끝내야 할 중요대상인데 그동안 내가 공장일에 파묻혀 미처 도와주지 못했더랬소. 기사동무, 동무의 소원대로 래일부터 발생로에 가시오. 이제 곧 발생로 운영작업반을 조직하자고하는데 작업반에서 동무가 주인이 돼야 하오. 그리구 연구사선생을 잘 도와주오. 내 좀 알아보니 그 선생이 무연탄가스화를 위해 오래동안 애써왔소. 과학자는 바로 그런 진지한 탐구자세를 가져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지배인동지.》
라석호는 긴장이 확 풀리였다. 아침부터 가슴조이며 모색하던 일이 너무도 쉽게 해결되는바람에 눈굽이 다 뜨거워졌다. 역시 발명의 새싹을 귀중히 여길줄 알고 기술자의 심리를 알아준다는 일군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하철이 이렇게 선선히 나오는데는 그럴 까닭이 있었다.
시험발생로 화입장에 나갔던 그는 상당한 수준에 이른 연구성과에 커다란 만족을 느꼈다. 이제는 시험발생로가 제 구실만 하면 거기서 나오는 가스로 암모니아를 생산할수 있는 가능성이 확고한데 이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예비가 아닐수 없다. 그런데다 무연탄가스화는 당에서 중시하는 대상으로서 마땅히 책임적으로 돌봐줘야 했다. 그는 즉시에 운전작업반을 조직해주고 적극 내밀어줄 마음을 먹었다.
이런 계획밑에 직장장들의 협의회를 조직했는데 뜻밖의 애로가 제기됐다.
로력은 얼마든지 뺄수 있는데 공정기사는 못내겠다는것이다. 직장안에 기사들이 금싸래기처럼 귀한 사정도 있겠지만 본인들이 싫어한다고 한다. 그들의 심리를 분석해보면 새로 조직된다는 몇명 안되는 작업반 공정기사로 가는것도 마음내키지 않는데다가 그 전망이 모호하고 그 기술설비자체가 락후한 발생로에 공정기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십상 그럴만 한 심리였다. 직장장협의회는 공정기사문제를 락착짓지 못한채 류산되고말았다.
이러한 때 라석호가 제발로 찾아온것이다. 맞춤한 대상자였다. 기술학습과 로동안전교양을 받고있는 기간이므로 그를 발생로에 배치했다고 하여 전해직장장이 앙앙불락하지는 않을것이였다. 이런 형편에 있었기에 라석호가 망설이며 힘들게 꺼낸 말이였으나 실상 방하철이로선 맺힌 고리가 저절로 풀린셈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