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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로에서 일어난 사고는 상상외로 놀라운 파문을 일으켰다. 드넓은 공장구내 한쪽 변두리에서 극소수의 인원이 조심스레 해오던 시험연구를 많은 종업원들이 모르고있었다. 언젠가 지배인이 발생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적극 내밀어줄 때 전해직장과 그리고 가스와 련결된 부분에서 흥미를 가졌으나 작업반이 해체되고 공장에서 외면해버리자 봄소나기 잦아들듯 기억에서 사라졌었다.

그랬던 발생로인데 하루이틀사이에 모르는 종업원들이 없게 되였다. 항시 좋은 말보다 나쁜 소식이 급파되기십상인데 수군수군 퍼져나가는 여론은 점점 험악해졌다. 연구사라는 사람은 원래 나쁜 사람인데 교묘하게 위장하고있었다느니 무연탄가스화가 설사 성공한다 해도 로동자들을 죽도록 고생시킨다는 등…

그런데다 현실적으로 안전원들과 검찰소일군들이 사고현장에 드나들며 한대식연구사를 단속해가자 모이는 곳마다에서 발생로에 대한 관심과 우려와 동정으로 술렁술렁했다.

《그런데 그 발생로라는게 뭔가?》

《글쎄 제철소에 그런것이 있는것은 알고있지만 무연탄가스발생로는 첨 들어보는 소리네.》

《하여튼 전기 없이 비료를 생산한다니 신기한 일이네.》

《그건 다 뒤가 께름한 연구사의 인기전술이랍디다. 세상에 무연탄가스로 비료를 생산한 나라가 없다고 합데다.》

사고심의는 이틀후 공장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직장장들과 작업반장, 기간부문 로동자들까지 참가하여 회의실은 꽉 찼다. 확대공개심의였다.

이번 사고심의를 기회로 공장내 질서를 세우며 경각성을 높이게 하자는 부상의 주장으로 이렇게 크게 조직했다.

지배인 방하철의 견해는 달랐다. 발생로의 사고는 어디까지나 연구를 위한 시험단계에서의 사고며 또 그 당자가 종업원이 아니므로 소규모에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우자고 요구했다. 방하철의 이 제기는 단마디로 묵살되고말았다.

회의실주석단에는 남주혁과 방하철이 앉았는데 이런 의견상이로 하여 그들은 소 닭보듯 멀찍이 떨어져앉아 좌중만 내려다본다. 남주혁은 앞좌석에 앉은 부원장 강지창이가 보기 뭣하여 주석단에 나와앉으라고 거듭 권고했으나 그는 부디 마다하고 한대식의 옆에 그냥 앉아있었다.

과학자대표단을 데리고 외국에 갔다가 엊그제 돌아왔는데 이곳 소식을 듣고 아침차로 내려온 강지창이다.

사고심의는 기사장의 사고실태보고로부터 시작됐다. 뒤이어 사고원인규명이 있었다. 심의위원들은 이미 사고조사를 하는 과정에 그 내막을 알고있어서 더 물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속이 달아난것은 남주혁이다.

《내 한가지 묻겠소. 발생로는 당장 해체하기로 결론했는데 왜 룡성기계까지 돌아다니며 소동을 피웠소. 그 부추긴자는 누구며 그 목적은 뭐요. 로폭파의 련루자가 누군가 말이요?》

《…》

《왜 대답을 피하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솔직히 내놓소.》

《…》

입을 꾹 다물고있는 한대식의 이마와 목덜미에서 땀이 흘렀다. 숨소리도 점점 가빠졌다.

한대식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초점잃은 그의 시름 가득한 눈길이 좌중을 향했다. 그의 사색은 한 인간에게 집중되고있었다. 한대식의 눈길이 회의실중간쯤에 멎었을 때다. 무엇에 찔리기라도 한듯 흠칫 몸을 떠는 사람이 있었다. 로익두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찰나이고 로익두는 천연한 자세로 한대식을 핥듯이 쏘아본다. 한대식은 물론 로익두가 어디에 앉아있는지조차 알수 없는 경황이였다.

그는 지금 사고심의위원회앞에 밝힌 자신의 진술을 다시금 하나하나 검토해보고있는중이다.

한대식은 로폭파사고가 난 후 즉시에 발생로와 그 현장을 샅샅이 조사분석해봤으며 금희와도 구체적인 담화를 나누었었다. 이 과정에 그는 로안에 폭발물질이 들어있었다는것과 전날밤에는 로익두가 발생로현장에 잠간 왔다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 순간 로익두란 인간이 번개처럼 뇌리를 때렸다. 지난날 로익두는 불신과 반감만을 주던 안개속같던 인물이였다. 초면부지의 안해를 자기집에 초대하던 일로부터 시작하여 얼마나 많은 의혹을 던져주던 로익두였던가. 원인 모르게 희박해졌던 점결제의 농도문제며 두번씩이나 발생로를 해체하려고 교활하게 날뛰던 일 특히는 출신과 경력까지 들춰내여 옛 상처를 사정없이 긁어대던 그 혐오스럽던 행동들이 새로운 하나의 표상으로 안겨왔다.

한대식은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분명 죄를 진것 같았다. 자신은 지난날 로익두의 그런 모해와 압력과 간교한 술책을 짐작하면서도 누구한테 내비친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을 의심하거나 뒤를 캐는것과 같은 그런 행동은 심히 점잖지 못한 소행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한대식은 사고심의위원회앞에 자신의 이런 심중을 밝히면서 엄한 벌을 달라고 제기했다.

남주혁은 여전히 자기 생각에만 잠겨있는 한대식을 넘겨다보며 버럭 어성을 높였다.

《앉소… 앉으란 말요. 과학 하나밖에 모르는 당신같은 사람이 이제와서 무슨 할말이 있겠소. 저런 사람이 과학자대렬속에 있다는 자체가 큰 수치요. 정말 참을수 없단 말이요.》

《부상동지, 전 이미 사고심의위원회앞에 다 말씀드렸습니다. 더 할말이 없습니다.》

순간 남주혁의 주먹이 앞탁에 꽝-하고 떨어지며 육중한 몸이 벌떡 솟구쳤다.

《여기까지 와서 변명하는거요. 누가 그런 홀림수에 넘어갈줄 아는가. 개꼬리 석삼년가도 황모될수 없다지만 당신은 너무도 지독하오. 똑똑히 듣소. 내가 뭐 로폭파원인이나 밝히자고 이렇게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한줄 아오. 당신같은 어리석은 생활관이 어떤 후과를 빚어내는가 하는 교훈을 찾자는데 그 목적이 있소.

난 이미 당신의 그 인생관이 틀렸다는것을 알고 여러차례 조언도 주었고 며칠전에는 강한 추궁과 단호한 조치까지 취했소.

그런데 당신은 내 말을 귀등으로도 듣지 않았단 말이요. 그래 당신이 그처럼 완강히 주장하는 발생로를 이처럼 재가루로 만드는것이 우리 현실의 요구이며 당의 뜻이요? 뭐 저희들을 믿고 전해확장공사를 하지 말라구. 어디서 그런 오만한 배짱이 생겼소? 과연 당신의 안중에 시대적명분이 꼬물만큼이라도 있소? 우리 로동계급을 어떻게 보는가 말이요. 여러분, 격분되지 않습니까. 우리 로동계급이 뼈심을 들여 한푼두푼 모아들인 재부를 땀 한방울 흘려보지 않은 이런 사람이 제주머니 먼지 털어버리듯한단 말입니다.》

《저한테 언권을 주십시오.》

좌중의 가운데서 한손을 추켜들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정수리가 불빛에 번들거리는 목이 앙바틈한 로익두였다.

《좋소. 어디 군중의 공정한 목소리를 들어봅시다.》

남주혁의 목소리는 푹 가라앉아 부드럽게 울렸다.

《전 그냥 앉아있을수 없어 일어섰습니다. 연구사선생.》

《선생이란 말은 하지도 마오.》

남주혁이 야차하게 가시를 먹였다.

《동무, 사람이 그래두 량심이 있어야지요. 공장에서는 연구를 잘하라구 너렁청같은 문화주택을 지어준다 작업반을 무어준다 하며 있는껏 다해주지 않았소.》

《바로 거기에두 문제가 있소. 청맹과니들처럼 연구사의 장단에 춤을 췄단 말이요. 자재과장두 집짓는데 한몫 했다면서?》

《네, 그때는 제가 눈이 멀어서… 제 잘못은 후에 법의 공정한 판결을 받겠습니다. 그런데 연구사는 왜 그렇게 지독하오?》

로익두의 목소리가 갑자기 게사니목청으로 변했다.

《여기 앉아계시는 부상동지가 얼마나 안타까이 권고했소. 무연탄으로 비료를 만들수 없으며 또 만든다 해두 락후하기때문에 쓸데 없다구말이요. 그런데두 바람벽처럼 고집을 썼지요. 저 사람이 얼마나 도고하게 란동을 부렸는지 압니까. 내가 한번은 발생로의 설비를 해체하러 갔던 일이 있는데 저 사람은 나를 개처럼 천대하며 쫓아버렸습니다. 부상이 벌려놓은 확장공사는 나라앞에 죄악으로 된다면서 말입니다.》

로익두는 얼른 주석단쪽의 남주혁을 바라보았다.

《음, 계속하오.》

남주혁이 고개를 끄떡일뿐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전 부상동지가 정말 큰 간부답게 도량이 넓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연구사의 속이 새까맣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시험을 계속하도록 기회를 또 줬단 말입니다. 당장 쫓아버리지 않구요. 그렇다면 응당 귀잡구 절해야겠는데 생산에 도입까지 하겠다구 미친듯이 날뛰였지요. 그것이 뜻대로 안되니까 그 복수심으로 로와 설비들을 폭파해버리려구…》

《무슨 허튼 소리요. 당신은 왜 그처럼 연구사선생을 물어뜯지 못해 미친듯이 날뛰오?》

방하철이 칼날처럼 찌르고들었다.

《지배인동문 왜 그러오? 군중의 목소리를 막지 마시오.》

남주혁이 제법 점잖게 타일렀다.

《저런 인간이 무슨 군중이요. 난 당위원회에 저런 사람은 공장에 있을 자리조차 없다고 정식 제기했소. 그런데 연구사선생이 사고심의위원회에 진술한 내용까지 듣고보니 로폭파의 장본인이 바로 저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건 뭐요. 왜 위협하오?》

방하철은 남주혁의 말은 들은척도 안하고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의 지시로 발생로를 해체하러 갔댔소? 그리구 무연탄가스로는 비료를 만들수 없다고 한건 누구요? 우선 이 두가지만 대답해보오? 당신이 아무리 말재간이 좋다 해두 오늘은 빠져나갈수 없소. 꼬리가 길어지면 잡힌다는것을 알고있지?》

《저, 그건 사실…》

낯이 까맣게 전전긍긍하던 로익두는 대머리에 손을 얹으며 남주혁쪽을 얼핏 바라봤다. 여기저기서 수군수군했다.

《뭘 주저하오. 그건 나의 의도가 아니요. 그래 지배인동문 아직도 무연탄발생로에 그 무슨 기대를 가지고있소?》

남주혁은 방하철을 쏘는듯 바라보았다.

《전 과학적테타를 통해 발생로야말로 대단히 가치높은 발명이라고 인정합니다. 며칠전 시험운전때 나온 가스의 유효성분량을 분석해본 후 자료작업을 해보니 경제적바란스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장 생산에 도입할 결심입니다. 저는 지배인으로서 우리 공장에 확장공사가 아니라 시급히 발생로직장을 건설할것을 강경히 주장합니다.

겸해서 말할것은 연구사선생을 함부로 헐뜯지 말라는거요. 저는 진심으로 연구사선생을 존경합니다. 지난날 제가 연구사선생을 잘못 보았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저는 선생이 지닌 그 인생관의 깊이를 다 모르고있습니다. 그러나 연구사선생처럼 사는 사람만이 참다운 인생이라는것을 잘 알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제 가슴이 더 아픕니다. 제가 제때에 정신차리고 관심을 돌려줬더라면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았을것입니다. 로폭파사고의 실제적책임은 바로 저한테 있습니다.》

죄책감에 잠긴 방하철의 꾸밈없는 목소리는 절절하게 울렸다.

《음, 그랬댔구만… 이 공장에 보다 큰 심각한 문제가 있소. 상급의 지시가 우야무야되는 원인을 이제야 찾았소. 전해직장확장준비를 하라구 벌써 초봄에 떨궜는데 설비개조요 뭐요 잡소릴치며 질질 끈 본질적요는 바로 여기에 있단 말이요. 여러분, 정신을 차립시다. 이 공장은 지배인의 공장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 로동계급이 주인이요. 이날까지 발생로가 살아있은것두 이 지배인이 끼구돌았기때문이요. 지배인은 이 엄중한 후과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도 마오. 내가 왜 오늘 로동자들까지 참가시켜 사고심의를 크게 벌렸는가? 우리 프로레타리아트의 투철한 안목과 예지를 다시금 확인하자는데 있었소. 방하철동문 지배인자격이 없소. 이 시각부터 사업을 인계하고 단단히 검토받을 준비나 하시오. 배은망덕해두 유만부동이지.》

남주혁은 씨근거리며 방하철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배인문제는 후에 사건화하여 따로 보겠습니다. 오늘의 취지는 발생로문제니만큼 더 심화시켜봅시다.》

좌중은 잠짓했다. 지배인문제가 심각히 제기되자 어리둥절했던것이다. 누구도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남주혁이 입을 열었다.

《사고심의를 결속하기전에 한마디 강조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혁명적경각성을 부쩍 높여야겠다는겁니다. 이번 사고가 단순히 연구사의 학식부족이나 그 어떤 실수에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길주팔프자재지도원한테서 온 신소장이 있습니다. 자기 공장에서 점결제를 줄수 없다고 하니까 별의별 행패질을 다하며 탕크에까지 들어가 도적질해갔다고 합니다. 다 아는것처럼 점결제로 쓰는 팔프페약은 화학공업을 비롯한 광산들과 세멘트공업, 알콜생산 등 없어서는 안될 아주 요긴한 원료입니다. 이런 귀한 자재를 아무 꺼리낌없이 물쓰듯 한 목적이 어디 있는가?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문제이기때문에 내 이때껏 로출시키지 않았는데 오늘은 좀 까밝히자고 합니다.

한대식연구사로 말하면 그의 아버지가 일제때 관리노릇까지 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일본일류급대학을 나온 그는 노구찌재벌놈의 연구실심복과장으로 복무하다가 우리 당의 관대정책에 의해 연구사로 되였습니다. 그랬으면 응당 한몸 바쳐 고군분투해야 옳겠으나 철저히 개인주의에 물젖은 이 사람은 건국초기부터 자기 하나밖에 몰랐습니다.

한가지 실례만 폭로하겠습니다.

온 나라가 건국으로 들끓던 46년도 가을 이 사람은 월남도주한 애인을 데리러 서울까지 나가 수십일 있었는데 떠나올 때는 강릉경찰서장놈과 사흘동안이나 술놀이를 했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그러니 서울에 있는 장인과 역시 양주공장을 세개씩 가지고 흥떵거리는 자기 매부네 집에서 무슨짓을 하며 어떻게 지냈는가는 그 누구도 알수 없습니다. 이렇게 서울에 나가 재미를 본 이 사람은 그다음 해에 또 나갔댔습니다. 나는 이자리에서 두번씩이나 서울에 나갔던 과거를 캐묻자고 하지는 않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사실앞에 회의실안은 설설 끓었다.

참가자들은 항간에 떠돌던 여론이 과연 헛소문이 아니라는것과 저런 험한 사람이 아직도 과학자대렬에 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는것 같다. 성미가 급한축들은 한대식을 향해 팔을 뻗쳐 손가락질하며 무엇이라고 떠들어댔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앞에 앉았던 강지창이 불쑥 몸을 솟구치며 좌중을 향해 두손을 쳐들었다.

《한대식연구사에 대한 대답은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과학원 부원장 강지창이라고 합니다.》

떠들며 소리치던 좌중이 휘둥그래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대식연구사가 건국 초시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삼엄한 38선을 넘어 남쪽에 두번씩이나 갔다온것은 당에서 필요해서 보냈던겁니다. 그는 두번에 걸쳐 남조선에서 삶을 찾아 헤매던 많은 과학자, 기술자들을 데려왔습니다.

그후 한대식연구사는 온갖 지혜를 다 바쳐 당시 절실히 필요했던 석면파킹을 비롯해서 석탄에서 양초와 뻬크라이트를 만들어내는 등 나라에 막대한 리득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미 10여년전에 석탄으로 비료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무연탄가스화연구를 시작했는데 저를 비롯한 우리 과학원에서 잘 도와주지 못해 아직 끝을 보지 못하고 숱한 손해만 끼치게 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는 여러분들과 당앞에 과학원을 대표하여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마땅히 법앞에 나설 준비가 되여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석탄가스화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기를 쓰지 않고 더 많은 비료를 생산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바로 이공장에 오시여 석탄으로 비료를 생산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며 그 문제를 풀어보라고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뜨겁게 호소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호소를 우리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한대식연구사는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실현하기 위해 10여년을 하루처럼 애써오고있습니다.》

너무나 상반되는 두 견해와 사실앞에 사람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잠짓해졌다.

강지창이 주석단쪽으로 돌아서며 격하게 추궁했다.

《부상동무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대식연구사의 인격을 모욕합니까?

그리구 화학공업의 중책을 맡은 동무가 무연탄가스화에 의한 비료생산이 우리 당의 방침이라는걸 몰라서 그렇게 헐뜯고 짓뭉개려고 합니까?》

남주혁이 발끈 성을 냈다.

《부원장은 나한테 따지자는거요? 내 명백히 말하지만 우리 화학에선 발생로신세를 지지 않고도 비료를 얼마든지 생산할수 있소. 군중앞에서 야박한것 같지만 원칙적문제여서 똑똑히 계선을 그읍시다. 석탄가스화에 대한 정책은 그 내용에서 포괄적이며 또 전망적인 요구요. 특히 무연탄가스로 비료를 만들면 좋겠다는것은 어디까지나 당의 방향적시책이요. 때문에 해당 실태에 맞게 집행하면 된단 말이요. 아무려면 정책적눈이야 부원장보다야 내가 더 예리하지 않겠소. 부원장은 그런 정치를 론할것이 아니라 과학일군답게 과학의 추세나 정확히 보시오. 지금이 어느때게 석탄발생로에 매달리오? 원유가 모든것을 결정하는 원유화학의 시대란 말이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 엄연한 현실을 왜 외면하고 한대식의 더러운 야욕을 감싸고도는가? 그 의도가 뭐요?

우린 해방직후부터 부원장과 한대식의 남다른 깊은 연고관계를 잘 알고있소. 아무리 밀착된 관계라고 해도 근본문제에서까지 이렇게 탈선할수 있는가. 부원장은 나라의 과학을 어디로 끌고가자는거요? 엄중하오. 아주 위험하단 말이요. 로동계급적인 투철한 관점을 가지시오.》

이때 회의실뒤문으로 한사람이 급히 들어와 손바닥만한 글쪽지를 앞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그 글쪽지는 사람들의 어깨를 넘더니 주석단의 지배인을 거쳐 남주혁에게 전달되였다.

글쪽지를 읽어보던 남주혁의 불깃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사납게 이그러졌다.

《공장병원약국 박혜련이가 누구요. 여기에 왔소?》

앞에 앉은 누군가 참가대상이 아니여서 참석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때 뒤에서 《제가 박혜련입니다.》 하는 기여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좌중이 의아해서 뒤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일어선 녀인은 틀림없는 혜련이였다.

집에서 앓고있던 석근수가 사고심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어코 참가하겠다고 강경히 나서는바람에 그를 부축해서 좀전에 들어와 앉아있던 혜련이다.

《음, 동무였구만. 한가지 확인합시다. 동무가 자체로 탄산수를 만들어 작업장들에 공급했소?》

《네…》

《언제부터?》

《처음엔 시험삼아 발생로에만 주었는데 요즘엔 점차 고열작업장들에…》

《그 의도가 뭐요? 어디 여기 군중앞에서 솔직히 말해보오.》

《의도라니요?!…》

혜련은 문초를 당하는것 같아 억이 막혀 말을 못했다. 좌중은 너무도 뻔한 사실을 캐여묻는것이 수상쩍어 남주혁과 혜련을 번갈아보았다.

《전탕 이런판이요. 부부일심동체라구 어쩌면 그렇게 신통하오. 정말 한바리에 실어도 짝지지 않겠소. 동무, 고개를 쳐들고 정신차려듣소. 동무가 만든 탄산수를 먹고 두명이 사경에 처해 병원에 실려가고 여러명이 배를 그러안고 돌아간다는 련락이 왔소. 동무 눈엔 우리 로동자들이 뭘루 보이오. 그전 세월 2층양옥집에서 부려먹던 하녀들같소? 동무들, 내가 왜 이런 말까지 하는가? 며칠전 청진에서 파괴암해책동을 악랄하게 해오던 〈흑백단〉이란 반동단체가 적발됐는데 하나처럼 전복된 계급의 잔당들이라는거요. 이런 사실을 놓고볼 때 이번의 발생로사고며 탄산수작간을 우연한것으로 볼수 없소. 이 공장안에도 우리 제도를 어째보려는 그런 암해분자가 박혀있단 말이요.》

어리둥절했던 회의장이 다시 회리바람을 맞은듯 뒤채이기 시작했다. 그 소음속에 《아!-》 하는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비통하게 울리며 혜련의 몸이 옆으로 기우뚱했다. 펄쩍 놀란 석근수가 그의 허리를 황급히 붙잡았다.

《아주머니, 우리가 보증하니 너무 상심마슈. 어서빨리 병원에 가서 사태를 알아보슈.》

석근수는 실신한듯 의자모서리를 잡고 늘어진 혜련의 몸을 겨우 일으켜세워 밖으로 내보냈다. 금시 쓰러질듯 겨우 몸을 가누며 뒤문으로 나가는 혜련의 뒤모습을 추연히 바라보던 그가 자리에서 움씰 일어섰다.

《여보시오 부상, 당신이 도대체 뭐길래 이 사람 저 사람한테 함부루 감투를 씌우오. 연구사선생이나 저 부인은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이요. 그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 귀중한 보배들인지 당신이 알기나 하는가?》

석근수의 격노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저 령감이 어따대고 삿대질이야. 지배인, 저 령감을 왜 참가시켰는가?》

《…》

《내 발로 왔소. 발생로사고심의는 나를 빼놓고 할수 없소. 발생로의 주인은 우리모두란 말이요. 똑똑히 듣소. 당신이 발생로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없애려고 아무리 발광해도 어림없소. 발생로가 뭔지 알기나 하오? 당신같은 인간은 알수가 없소. 발생로는 우리의 심장속에 있소. 그래 심장깊이 간직한 넋과 같은 발생로를 없앨것 같은가. 썩 물러가시오.

당신은 우리 로동계급의 눈앞에 서있을 인간이 못돼!》

급해맞은 남주혁이 일어섰다앉았다 하며 게거품을 물고 노발대발했다.

석근수는 그 정상이 가소로운듯 쓰겁게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이 공장에는 아주 위험한 크릅이 있소. 상부의 지시를 깔아뭉갤뿐아니라 상부를 모욕하는 이 크릅은 종파적행동이요. 난 경거망동한 이 행동들에 대해 성을 대표해서 중앙에 즉시 반영하겠소. 그리고 발생로에 대한 실태와 그 처리문제도 그대로 건의하겠다는것을 엄숙히 선포하오.》

사고심의결속에 의하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국가의 귀중한 재산을 1년가까이 소모탕진한 연구사 한대식에게 조직적으로 출당을 제기하며 최고검찰소에 넘겨 법적형벌을 받게 한다는것이다.

회의참가자들은 리성을 잃고 기염을 토하는 남주혁의 결론에 그 누구도 반박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의견이 없다면 연구사 한대식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라.》

남주혁은 사형수에게 마지막기회를 주듯 득의양양해서 뇌까렸다.

한대식은 천천히 일어나 좌중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앓고난 사람처럼 창백했다.

《저는 마땅히 법적제재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이 공장에 와서 끼친 손실액을 모두 합친다면 실로 막대합니다. 국가에서는 모든것이 긴장한 이때 충분한 연구조건과 분에 넘친 생활을 보장해주었는데 저는 아직 발생로를 생산에 도입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무연탄가스로 비료를 생산하는것은 우리 당의 방침입니다. 당의 이 방침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한 저의 엄중한 과오는 그 어떤 수자로도 계산할수 없을겁니다. 그리고 더욱 가슴아픈것은 우리 당에서 그처럼 바라시는 발생로가 저기 앉아있는 몽매하고 우직한 부상과 같은 인간한테 우롱당하고 짓밟히고있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현실과 우리 인민의 요구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남의것만 넘겨다보는 저런자가 있는 한 나라의 과학은 발전할수 없으며 우리 당 정책이 제대로 집행될수가 없습니다.》

《닥치지 못할가. 저놈을 당장 끌어내라!》

《말을 막지 마시오.》

《연구사선생의 말을 끝까지 들어봅시다.》

《옳소. 부상은 왜 말을 못하게 하는가?》

여기저기서 비수같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좌중은 폭풍을 안은듯 바싹 긴장되여 뒤설레였다.

남주혁은 뜻밖의 분위기에 기가 질린듯 갈고리눈만 깝작거렸다.

《여러분, 우리 나라는 지하의 보물이 풍부한 나라입니다. 특히 석탄은 그 어디 가나 땅밑에 쭉 깔렸습니다. 저기 북단의 두만강지구로부터 시작된 석탄은 동해안을 걸쳐 중서부지대들인 강동, 순천, 덕천, 안주지구 그리고 삼척, 녕월, 담양 등 조국땅 어디에나 무진장 매장되여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나라는 석탄우에 올라앉아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가 더욱 부강해지고 인민들이 더 잘 살려면 바로 이 석탄을 잘 써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일찌기 석탄을 종합처리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건국 초시기에 벌써 우리의 화학은 석탄과 석회석에 기초하여 발전시켜야 그 어떤 예속도 구애도 받지 않고 배심있게 마음먹은것을 척척 생산할수 있다고 하시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도이고 주장이며 화학의 주체라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이 가르치심에는 우리의 자원과 힘으로 우리의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시려는 다함없는 배려와 사랑이 담겨져있습니다.

제가 10여년간 모대겨오면서도 오늘까지 발생로를 완성할수 없었던것은 인민들을 그처럼 사랑하시는 수령님의 그 높으신 뜻을 자기의 체온처럼 감수하지 못한데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탄성형기며 대용점결제를 만들어낸 라석호기사나 발생로를 자신의 심장처럼 소중히 여겨온 석근수아바이를 보면서 더 똑똑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저보다 아는것이 많거나 그 어떤 의무감때문에 그런건 아니였습니다.

이분들은 발생로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것을 자신들의 맥박처럼 순간마다 느껴왔기에 그런 기적과 헌신성을 발휘했던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현실이 요구하고 우리 혁명에 절실히 필요한것을 해결하는것이 곧 우리 인민을 그처럼 귀중히 여기시는 수령님의 뜻이며 우리의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의 놀라운 변혁을 창조할수 있은 천리마의 세찬 원동력이 있었고 남보다 더 빨리 내달릴수 있는 비약의 열쇠가 있습니다.

이 말이 법정앞에 나서면서 여러분에게 하고싶은 저의 심정입니다.》

회의실은 숨막힐듯 고요해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과격한 웨침과 칼날같은 타매와 가슴을 압박하던 불안이 서서히 풀리고 신선하고 따스한 공기만이 스며드는것 같았다.

좌중의 분위기가 돌연 역전되자 이에 당황망조한 남주혁은 이미 결론된 사고심의는 조금도 변동이 없다는것을 빠른 말로 씹어뱉듯 말하고 황황히 자리를 떴다.

강지창은 심중한 기색으로 앉아있었다. 이제는 그 어떤 과학적 론리나 원칙을 가지고 남주혁을 납득시킬 때가 지났음을 통절히 절감했다.

여기 내려올 때마다 그리고 화학부문 연구사들의 불만스런 반영이 제기될 때마다 느끼군 하던 남주혁에 대한 좋지 못한 표상이 명백해지는것 같았다.

확실히 남주혁은 지도일군의 자격을 상실했을뿐아니라 이제는 우리 혁명과 사회앞에 해독을 주는 위험한 존재이다.

당의 방침을 접수하는 태도며 그리고 극단한 혁명적언사들로 시대와 사람들을 규정하는 그 조폭한 태도, 과학과 기술에 대한 몰리해는 순간도 방관시할수 없는 위험한 현상들이였다. 한때는 간단치 않은 일군이란 평판이 돌던 그가 어떻게 되여 이처럼 무섭게 변질될수 있는가.

그 요인은 발전하는 현실을 외면해온데 있는것 같았다.

지금은 해방직후나 전쟁때도 아니며 복구건설시기와도 다르다. 사회주의제도가 서고 사상, 기술,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천리마의 대고조가 일어나고있는 변혁의 시대다. 이 벅찬 현실은 새로운 인간 다시말해 사고와 활동, 생활방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것을 요구하고있다.

그렇지만 현실에 암둔하고 과학과 기술에 무식한 남주혁은 자기의것을 허무적으로 대하면서 여전히 종전의 자기 안목과 관료적사고방식으로 남의 나라를 넘겨다보고있으며 역시 그런 관점으로 사람들을 대하고있는것이다.

실로 남주혁의 변질과정은 과거경력이 좋고 제아무리 하고싶은 욕망이 높다 해도 발전하는 현실에 자신을 부단히 따라세우지 않을 때 어쩔수 없이 사대주의에 물젖어 당의 사상과 의도도 모르게 되며 청맹과니가 되여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초래한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있었다.

강지창은 이 엄중한 실태를 지체없이 당조직에 보고하기 위해 그날밤으로 공장을 떠났다.

사고심의결과를 듣고 제일 놀란것은 금희였다. 발생로사고가 있은 날부터 불안과 공포와 절망에 빠져있던 그는 결과가 이처럼 험하게 락착되자 정신이 나갈 지경이였다. 한대식연구사는 며칠안으로 법적판결에 따라 구형되며 검찰소예심중인 그의 부인도 남편처럼 처리된다니 이게 어디 말이 되는가.

너무나 가혹했다. 그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사람이 자신이다. 이번 사고는 절대로 연구사가 책임질 문제가 아닌것이다.

금희는 사고심의위원회와 검찰소일군앞에 자기의 이러한 견해를 강경히 주장했었다. 그들도 한대식연구사와 오래동안 함께 일해왔으며 사고현장의 첫 목격자인 금희의 증언을 심중히 대했고 십분 그것이 옳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번의 사고는 분명 외부의 불순한 작간이 틀림없는데 짐작되는 점이 없는가고 물었다.

금희는 그 순간 로익두가 짚이였다. 사고 전날밤 열시가 좀 지나서였다. 뜻밖에 생과자를 들고나온 로익두가 반시간정도 앉아있다가 간 일이 있었다. 석근수아바이가 앓아눕게 되자 그대신 금희가 밤마다 두세시간정도 로관리를 하면서 연구사를 휴계실에서 잠재우군 했는데 공간은 이때뿐이였다.

이런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쳤지만 금희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사태가 너무 어마어마했고 로익두에 대한 예감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건처리가 전적으로 연구사에게만 들씌워지고 그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소식을 듣자 금희의 두눈엔 피가 맺혔다. 이대로 가만있을순 없었다.

지난날 연구사부부에 대한 로익두와 강난실의 변화무쌍한 태도에 짙은 의혹과 반감을 가지고있던 금희는 이번 일도 미상불 그들의 작간 같았다.

생각에 옴해있던 금희는 부엌설겆이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서는 어머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머니, 외삼촌은 어떤 사람이예요?》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냐? 요즘 네가 고민거리가 생긴것 같더라니 외삼촌이 네 새서방감이라도 골라놨다더냐?》

《어머닌 참, 난 진정으로 묻는 말예요?》

《외삼촌이 외삼촌이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겠냐. 수완있구 삽삽하구 우리에겐 참으로 잊을수 없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직 금희가 세상에 태여나기 이전 어머니와 로익두는 오로군의 어느 자그마한 산간마을에서 서로 알게 되였다. 그때 원산과 함흥의 도회지에 드나들며 장사에 열을 올리고있던 로익두는 마음 어지고 착한 어머니네 집을 위탁지점으로 정하고 희귀한 약재들을 긁어갔다. 어머니는 《누님 누님》하고 곰살궂게 개여올리는 로익두가 싫지 않았고 융숭한 사례금을 주는 그를 인정 많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퍼그나 흘러 함흥에서 그를 다시 만났는데 로익두는 여전히 누님이라고 친절히 대하며 남편을 잃고 어렵게 살아가는 금희 어머니의 살림살이를 이모저모로 돌봐주며 친척처럼 지내자고 했다.

밭은 혈붙이 하나없이 외롭게 살아가고있던 어머니는 성숙한 딸에게 구태여 그런 사연을 까밝혀 말해줄 필요가 없었다.

금희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로익두를 만나 직접 결판을 보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다.

초생달이 기운 밖은 그의 마음속처럼 캄캄했다. 그랬으나 그는 조금도 무서운 감을 느끼지 못하고 로익두의 집을 향해 잰걸음을 놓았다.

이 시각 빗장이 든든히 꽂힌 로익두의 으슥한 안방에서는 술상을 가운데 놓고 로익두와 그의 처가 마주앉아있었다. 제놈들의 성공적인 모략을 축하해서 이틀째나 벌려놓은 술판이다. 방 한쪽에 틀어놓은 전축에서는 음탕한 쟈즈곡이 흘러나오는데 희멀쑥한 젖가슴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속치마바람의 강난실이 찰찰 넘치는 술잔을 로익두의 입에 연방 쏟아넣었다.

《여보, 이젠 남으로 나갈 때가 됐지? 난 약속대루 당신 시키는 일 다했소.

내 소원을 어서 풀어주. 빨리 이남에 가잔 말야. 여기선 더 못살겠소. 한대식이가 나를 고발한것 같소. 이젠 그놈을 보기만 해두 무섭단 말이요. 그놈이 그렇게까지 지독할줄이야.》

술잔을 든 로익두가 손을 후들후들 떨며 넉두릴 해댔다.

《겁내지 말아요. 누가 그런놈 말을 인정이나 한대요. 하여튼 우리 목적을 달성했으니 기회를 봐서 여기를 뜹시다. 이남에서두 우릴 박대하진 않겠지요. 그처럼 극성스럽던 한대식년놈들이 감옥신세가 된다니 난 밥먹지 않아도 살찔것 같아요. 이제 두고보지. 이 소문이 쫙 퍼지는 날에는 뒤가 깨끗치 못한 사람들은 벌벌 떨거란 말이야. 아무리 열성을 부려야 이 세상에선 한대식부부꼴이 되누나 하구 통탄할거란 말이야.》

《그런데 당신 무슨 재간을 부렸기에 그 마음씨 고운 약국 혜련이를 그렇게 궁지에 몰아넣었소?》

《닥치세요. 내가 언제 당신 한 일을 꼬치꼬치 묻습디까? 우린 서로 결과만 알고 기억해두면 된단 말이예요.》

《왜 이렇게 팔딱거려. 혜련이가 암해분자혐의에 걸렸단 말야.》

《호호…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것이거든.》

강난실이 어깨를 달싹거리며 깔깔거렸다.

《이 맹추야, 청진에서 〈흑백단〉이란 반동단체가 들장났는데 우리 공장에서두 그런 암해단체가 있는것 같다는거야. 당장 들추겠대.》

《누가 그래요?》

《당신의 그 피둥피둥한 몸뚱이에 반해버린 부상어른이 단단히 벼릅디다.》

《흥!…제놈들끼리 실컷 싸우래지. 난 뒤에서 더 크게 박수를 치게 됐군.》

이때였다. 밖에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화달짝 놀란 강난실의 두눈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뭘 꾸물거려요. 난 자리에 눕겠어요.》

찾아온 사람은 다행히 금희였다. 로익두는 후-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를 데리고 사랑채로 들어갔다. 로익두의 몸에서 역한 술내가 나자 금희의 낯은 대뜸 새초롬해졌다.

《몸살이 나서 땀을 내려고 한잔 마셨다. 그런데 이 어두운 밤에… 어떻게 왔니?… 으억!》

로익두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속에서 치받치는것을 겨우 참고있었다.

금희는 그냥 돌아설가 하다가 이왕 왔던차라 물어보기로 맘먹었다.

《발생로사고때문에 왔어요.》

《오, 그것말이냐. 어찌겠니. 너무 걱정 말라. 너야 한갖 조수가 아니냐. 넌 집에 들어와 밥도 먹지 않구 근심한다구 어머니가 그러더구나. 글쎄 이렇게 될것 같아 거기서 손을 떼라구 내 얼마나 안타깝게 말했니.》

금희는 로익두의 그 수다스런 동정이 역겹기만 했다.

《한가지 물어보고싶은게 있어요. 발생로사고 전날밤말이예요. 외삼촌이 생과자를 가지고 왔다가 집으로 곧장 오셨지요?》

《그건 왜 갑자기 묻니?》

《글쎄 이상하지 않나요. 그날 저녁 왔다간 사람은 외삼촌밖에 없는데.》

억척으로 취했던 로익두의 두눈이 말똥해졌다.

《그럼 넌 날 의심하니? 누가 그따위 소릴 줴치더냐?》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저 확인해보고싶어서 그래요.》

《뭘 또 확인해. 사고원인이야 이미 판명됐구 그래서 해당한 형벌까지 받게 됐는데.》

《아니예요. 절대루 그럴수 없어요.》

《네가 뭘 안다구 법에서 하는 일을 의심하며 분별없이 날뛰냐?》

《분해요. 원통해요. 외삼촌은 그분들이 억울하지두 않나요?》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제 근본들도 모르고 날치더니 잘됐지. 난 꼭 그렇게 될줄 짐작했다.》

《뭐라구요?!…》

금희는 자기 귀를 의심하며 로익두를 쏘아봤다. 얼음을 쪼아박은듯 까딱 움직이지 않는 랭랭한 두눈이며 사기와 협잡이 여울치는 팽팽히 처진 볼과 정수리까지 빠진 머리는 도저히 산 사람이라고 볼수 없었다. 그래도 이 집 문턱에 들어설 때만 해도 설마-하고 애써 부정해보던 한가닥 미련마저 산산이 부서지자 금희는 《아!-》 하고 얼굴을 싸쥐며 정신없이 뇌이였다.

《바보, 내가 바보였어. 이제 그분들을 무슨 낯으로 본담. 그분들앞에 다시는 나타날수 없어. 석호동무, 용서해줘요. 절 용서해주세요. 흐흑-》

금희의 두어깨는 돌이킬수 없는 자책과 쓰디쓴 회오로 하여 세차게 들먹였다. 금희의 몸부림에 얼떠름해있던 로익두는 뒤늦게야 눈치를 채고 황황히 사위를 휘둘러봤다.

《금희야. 진정해라. 너야 떳떳하지 않니.》

순간 고개를 번쩍 든 금희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킨듯 파르르 떨었다. 두눈에선 불길이 펄펄 일었고 가슴노리에 꽉 틀어쥔 종주먹이 후들후들했다.

《아직두 뭐가 부족해서 훈수질이요. 당신은 내 가슴에 어떤 못을 박아놨는지 알기나 하는가?》

《너… 너 정신있니. 외삼촌한테 무슨 말본새냐?》

《외삼촌? 당신은 장사군습성을 놓지 못하더니 끝내 다시는 용서받지 못할 반역의 구렁텅이에 빠지고말았소.》

금희는 오연히 고개를 쳐들고 밖으로 나갔다.

《저년이!…》

붙잡을듯 몇걸음 따라서던 로익두는 문지방에 이마를 찧으며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는 당장 캄캄한 천길나락에 떨어지는것 같아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갔어요?》

로익두는 흠칫 놀라며 어둠속을 살폈다. 검은 잠옷을 몸에 휘감은 강난실이가 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로익두는 밤고양이처럼 늘 자기 뒤를 밟는 요사스럽고 스산한 그 모습에 다시한번 몸서릴 쳤다.

《왜 왔댔어요?》

《금희가 아무래두 눈치챈것 같소.》

《그렇다면 그년을 없애야지요.》

《없애다니?!…》

로익두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너무나 천연스럽게 내뱉는 소리라 자기가 잘못 들은것 같았다.

《그럼 반동으로 몰려 총살당하겠나요?》

《그건 또 무슨 당치 않은 소리요. 내가 무슨 총살감이란 말야?》

《발생로를 못쓰게 폭파하구 열성빨갱이들인 연구사부부에게 루명을 씌워 처형을 받게 한것이 그래 총살감이 안될줄 아나요?》

로익두는 두눈이 뒤집힐듯 휘둥그래지며 입을 쩍 벌렸다.

《흥, 이남에 나가서 재산을 잡겠으면 어서 이 약이나 받으세요.》

《그… 그건 뭐요?》

《수면제예요. 그 량에 따라 며칠 또는 수십일후에 효과가 나타나니 겁낼건 없어요. 금희란 계집은 이 세상에 없어야 돼.》

《그 애는 내 조카요. 그 애만은 안돼.》

《흥, 장사에 미쳐돌아가던 옛날 산골에서 가다오다 만난것두 친척이요? 그만큼 등을 쳐먹었으면 됐지 아직두 성차지 않아. 자, 어서 이걸 받지 못하겠어?》

독기를 풍기는 강난실의 매서운 눈이 신장대처럼 후들후들 떠는 로익두의 까맣게 죽은 얼굴을 벗겨낼듯이 훑어내렸다.

《우리가 살길은 이 길밖에 없어요. 이 일이 마지막이예요. 당신의 소원대루 거사가 끝나면 이남으로 갑시다.》

로익두는 억지로 쥐여주는 약봉지를 받아들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만약 딴 생각을 했다간 귀신도 모르게 죽을줄 아세요.》

이때 시퍼런 불빛이 중천을 쫙 가르며 번쩍하더니 뒤이어 벼락이 떨어지는듯 《꽈꽈 꽈르릉-》하고 우뢰소리가 천지를 진감했다. 밤소나기가 오려는것 같다. 시퍼런 번개는 더 자주 밤하늘을 태우며 요란한 우뢰소리를 몰아왔다. 캄캄하고 음산한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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