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하루사업포치를 마치고 지배인실을 나서려던 방하철은 잠시 지체하지 않을수 없었다.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던 사람들이 문이 터지게 쓸어들었던것이다. 아침 결재시간이였다.

《이러면 안됩니다. 순서대로 만나세요.》

중키에 몸이 퍼지기 시작한 중년의 기요원이 큰소리로 주의를 환기시켰으나 그의 목소리는 왁작 떠들어대는 소요속에 가뭇없이 묻히고말았다.

대체로 황해도와 평안도쪽에서 비료를 받으러 온 출장원들이였다. 려관방에서 수십일씩 틀고앉아 업무부와 판매과를 드나들며 씨름하다가 끝내 해결을 보지 못하고 지배인을 찾아온 그들이라 한두마디에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방하철은 전표쪽지를 흔들어대며 떠밀듯 다가드는 그들을 향해 두손을 번쩍 들고 선언하듯 말했다.

《여러분, 미안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만나지 못하겠습니다. 오후 첫시간에 와주시오. 여기로 올 때 판매과와 업무부 지배인을 꼭 경유하십시오.》

그의 말은 끓는 가마에 물붓기였다. 잠시 즘즘했던 방안은 또다시 죽가마끓듯 했다.

《거기엔 벌써 열두번나마 갔댔습니다. 우린 지배인동지의 결론이 요구됩니다.》

《난 이 공장에서 해마다 사과를 가져다먹는 청계협동조합 부위원장입니다. 초봄에 약속한걸 주십시오.》

《이 공장에선 천리마운동 안합니까?》

《천리마를 탔으면 저렇게 쩔쩔매겠나? 우리 차라리 어느 천리마작업반에 찾아가서 호소해보세나.》

방하철은 눈에 열기들이 올라 앞을 막아서는 출장원들을 겨우 헤가르며 지배인방에서 빠져나왔다.

몇몇 검질긴 축들은 복도를 지나 아래층 현관까지 따라내려오며 빠른 말로 열심히 무엇인가 호소했다.

방하철은 곧장 발생로 현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지런히 걸음발을 놓던 그는 우뚝 멈춰섰다. 자신이 직접 제정한 엄격한 결재시간을 무시하고 이처럼 경황없이 발생로로 향한 까닭이 무엇일가하는 의혹이 떠올랐던것이다.

아무리 따져봐야 실상 발생로에 반드시 가야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제 정신없이 서두를가?…

방하철은 이때야 비로소 발생로의 운명을 놓고 자신이 몹시 불안해하고있으며 로의 불을 끄고 연구사를 당장 올려보내라는 남주혁부상의 조야한 지시를 그대로 받아물어서는 안된다는 반감이 꽉 차있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실 그는 어제밤 리숙이에게 그 누구한테도 말한적 없는 생의 한토막을 꺼내보인 후 잠들지 못했다. 잠 못든것은 추억이 가져다주는 가슴 아픈 상실감때문만이 아니였다. 누가 엿볼세라 깊숙이 숨겨오던 가슴속상처를 불쑥 꺼내보일만큼 자신에 대한 불만과 번민을 누를수 없었다는 그 괴로움이 더 컸던것이다.

그 괴로움은 밤이 깊어질수록 자신에 대한 쓰디쓴 경멸과 남주혁에 대한 불길같은 반발로 번져졌다. 우선 발생로문제부터 바로잡자. 그다음 남주혁이와 마주앉아 명백히 계선을 가르자.

방하철은 이런 번민과 결심들로 잠자리에서 모대겼고 사무실에 나오자 하루사업포치가 끝나기 바쁘게 발생로현장으로 발길이 향해졌던것이다.

한대식연구사를 어서 만나야 되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달려갔는데 현장에서는 뜻밖의 정황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마침 저기에 지배인동지가 오시누만.》

그가 발생로가까이 갔을 때 앙바틈한 턱을 쳐든 로익두가 활개짓을 해가며 마주다가왔다.

《지배인동지, 이런 무법천지가 어디 있습니까?》

《왜 그러오?》

《저 령감이 대관절 우리 공장에서 뭐길래 이 자재과장한테 삿대질까지 합니까. 내 이때까지 나이대접을 하느라고 머리를 숙이고 존대했더니 이제는 상하도 모른단말입니다.》

《그 말본새부터 고치오. 온 공장 종업원이 좌상으로 받드는분 보구 령감이 뭐요. 그래 무슨 일이요?》

《발생로설비를 해체해가려구 왔는데 저 령감이… 아니 석아바이가 떡 막아선채 오히려 호령질이 아닙니까.》

방하철은 대뜸 사태의 진상을 알수 있었다. 저쪽옆에 화물차 두대가 서있고 대여섯명의 자재과성원들이 웅기중기 서있었다. 석근수는 로상부에 올라가서 이쪽을 등지고 로안을 살피고있었다.

(선손을 썼군. 삽살개같은 녀석.)

《누가 발생로를 해체하라고 했소?》

《어제밤 부상동지가 지시하지 않았습니까. 오늘아침 당장 불을 끄고 여기 설비들을 확장공사에 돌리라구.》

순간 방하철은 밸끝에서 장대같은것이 뻗치면서 낯이 화끈 달아올랐다.

《당신은 도대체 어디 사람이요? 지배인이 아직 지령을 떨구지 않았는데 왜 제멋대로 소란을 피우는가?》

《아니 무슨 말씀 그렇게 합니까? 어제 총화모임때 지배인동지두 동의하구 이제 와서 손바닥뒤집듯…》

《뭐 내가 동의했다구?! 두말 말고 당장 돌아가시오.》

《다 당장… 돌아가라구요? 좋습니다. 부상앞에 단단히 책임질줄 아시오.》

몽탁한 턱을 받쳐들고 눈 한번 깜빡이지 않던 로익두가 씹어뱉듯 뇌까렸다.

《썩 사라지오. 직분에 맞지 않는 월권행위를 하지 말라구 내 몇번이나 충고했는데 언제가야 그 버릇 떼겠는가. 이렇게 날치는 본심이 뭐요?》

《이건 정말 억울합니다. 나라의 자재가 아까와 이렇게 애쓰는데 본심을 밝히라구요. 상급의 지시를 깔아뭉개는 지배인동지의 속심은 뭡니까? 일제기관에 복무한 친일분자이며 자본가의 자식인 연구사를 끼구도는 목적이 어디 있는가말입니다.》

《음, 당신이 그런 인간이였군. 내 오늘에야 당신의 본심을 알게 된것이 분하오. 당장 과장사업을 인계하오. 당신같은 인간은 우리 공장에 있을 자리가 없소.》

방하철의 두눈에선 시퍼런 불이 펄펄 일었다. 끔쩍할줄 알았던 로익두는 도리여 이발을 사려물더니 《나를 그렇게 박대하구 어디 후회하지 않나 두고봅시다.》하고 한마디 물어뜯고야 꽁무니를 뺐다.

석근수가 방하철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배인, 이게 도대체 어찌된 판이요? 오늘부터 발생로를 인계받기루 하지 않았소?》

방하철은 대답이 궁해졌다. 석근수를 어떻게 리해시켜야 할지 진땀이 났다.

《아바이, 문제가 좀 심각해졌습니다. 부상은 당장 발생로의 불을 끄고 연구사선생을 올려보내라는겁니다.》

《지배인두 저 로익두처럼 부상소린가? 부상이 뭐 자네들 할애빈가? 그 사람이 발생로와 무슨 관계가 있다구 이래라저래란가? 그래 지배인은 그런 소릴 듣구 가만 있었소. 그 세차다는 주견머리는 어디다 건사하구 여기루 왔는가말이우?》

석근수는 숨을 헐떡거리며 노성을 터뜨렸다. 이렇게 성이 나서 건욕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방하철은 변명 한마디 할수 없었다. 오히려 좀전까지 부상에 대한 반감과 로익두의 방종한 태도로 하여 부글부글 끓던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보다 더 맵짠 매를 맞아야 할 자신이였다.

《아바이, 무슨 추궁을 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연구사선생은 왜 보이지 않습니까. 그를 빨리 만나야겠는데.》

우선 한대식을 만나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연구사선생은 어제 그 길루 룡성에 갔수다.》

여전히 심사가 꼬인투다.

《끝내 떠났단 말입니까? 그 선생은 자존심도 없답니까? 내 여기서도 할수 있다고 그만큼 당부했는데.》

방하철은 한대식이한테까지 랭대와 배신을 당하는것 같아 버럭 신경질을 냈다.

《자존심? 그 선생이 여기 없었기 다행이지 지배인이 머리 쳐들수 있었겠소? 그래 지배인이 제몸처럼 귀히 여기는 자존심은 대체 어떤거요?》

《?…》

방하철은 낯이 벌겋게 되여 대답을 못했다. 괜히 우뚤했던것이다. 그가 자기말처럼 했었더라면 얼마나 더 큰 옹색을 당할번 했던가.

《내 지배인한테 꼭 해주고싶은 말이 있었는데 오늘은 해야겠수다. 지배인은 왜 그리 자기 주견만 옳다구 하오? 다른 사람들을 왜 그렇게 허술히 보는가말이웨다. 심장이 그렇게 차면 지배인커녕 사람대접도 못받는단 말이우다.

난 요즘 무슨 일을 하나 해도 사람부터 먼저 보고 사람을 위해 하라 하신 수령님의 교시의 정당성과 크나큰 생활력을 한대식연구사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더욱 깊이 체험하고있수다.

지배인두 어제 말했지만 발생로는 지금상태로 공장에 얼마든지 넘겨줄수도 있수다. 그러나 연구사선생은 로동자들에게 티끌만 한 불편도 줄수 없다면서 기어코 룡성으로 갔소. 이처럼 고결한 맘을 그 어떤 자존심에 비기겠수? 그의 맘속엔 사람을 그토록 아끼고 귀중히 여기시는 우리 수령님의 뜻만이 가득차있었네. 그 지칠줄 모르는 힘과 지혜와 의지가 바로 여기서 나온단 말이요. 그런데 지배인은 이때까지 발생로만 보아왔지 이 뜨거운것을 보려 하지 않았단말이우다. 문제는 사람들과 현실을 대하는 그 심장이 차겁기때문이요. 심장이 그렇게 차면 커지는건 주관과 욕망뿐이라는걸 명심하슈.》

《?!…》

석근수는 아무 대답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는 방하철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휴계실로 향했다. 그런데 빈혈이 오는지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무수한 동그라미가 떠오른다. 그는 밤길을 가듯 허청허청 옮겼다. 점점 온몸이 그대로 아득한 심연속에 빠지는것 같다. 밤을 꼬박 밝힌데다 로밑 재를 털어내던중 허벅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은 후유증 같았다. 어제밤 남편의 저녁식사를 가지고왔던 혜련이가 그 상처를 보고 당장 입원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병원으로 잡아끌었으나 발생로를 뜰수 없어 구급치료를 받은 후 그냥 버티고있었는데 아무래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느껴졌다. (연구사선생도 없는데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한편 방하철지배인은 내심의 고통을 씹어삼키듯 천천히 휴계실로 멀어지는 석근수의 뒤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걷잡을수 없이 괴로왔다.(내가 과연 사람들과 현실을 대하는 눈이 이처럼 어두워졌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방하철은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했으나 반박하면 할수록 최근에 있었던 심리적충격들이 다시금 살아오르며 번거로운 생각을 몰아오는것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생활을 긍정하고있다. 때문에 자신들이 자각하고 결심한 생활은 언제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 생활이 얼마나 보람있는가, 또 그 목표가 얼마나 정확하며 어디까지 도달했는가 하는것은 가끔 돌이켜볼수 있으나 그것을 도중에서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생은 파탄을 가져온다.

방하철은 자신의 생활관을 이때까지 의심해본적도 없으며 매 시각 자부와 긍지를 느끼며 살아왔다. 그런데 문뜩 그 생활관에 간과할수 없는 균렬이 있었다는것을 발견하게 됐던것이다.

이것을 직감적으로 느낀것은 발생로시운전때다. 그 락후한 설비를 가지고도 끝내 생산성이 담보되는 발생로를 성공시킨 한대식의 강철같은 의지와 부상 남주혁을 찌르듯 다몰아대던 무서운 기상은 그 어떤 초인간의 모습을 련상케 했다.

과연 그에게 무슨 배심과 정신력과 신념이 있기에 그처럼 자기의 존엄을 완강히 지켜낼수 있었던가. 그것은 흔히 말하는 이름있는 과학자들의 그런 의지와 신념만이 아니였으며 더구나 자존심 강한 사람의 배짱만이 아니였다. 여기에는 한대식에게만 있는 그런 넋이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방하철은 그 넋을 알수가 없었다. 지난날 자신은 한대식을 보면서 남다른 탐구자세와 지칠줄 모르는 의지를 높이 사면서 쉽지 않은 과학자로만 여겨왔었다. 그 과학자다운 진지한 자세가 귀중하여 발생로가 아닌 보다 세계적발명의 다른 연구쩨마를 잡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던것이다.

확실히 자신은 한대식이라는 인간을 잘못 보았다. 진정 그가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넋이 무엇인지?… 한대식의 그 초인간적인 형상이 눈앞에 떠오를수록 자신이 여지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뒤설레이는 마음을 도저히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운전이 있은 그날저녁 누가 알세라 숨겨오던 아픈 추억까지 저도 모르게 리숙에게 토설하면서 안정을 찾으려 했으나 그 파동은 더더욱 큰 진폭으로 마음을 괴롭혔다.

이것은 분명 자신의 생활관이 잘못됐다는것을 의미하는것으로써 실로 무서운 발견이 아닐수 없었다. 방하철은 온몸에 심한 전률을 느끼며 뜨거운 열풍을 뿜어대는 발생로곁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한편 룡성기계공장 설계실에서 하루밤하루낮을 보낸 한대식은 홀가분한 맘으로 공장정문을 벗어나고있었다.

이곳 설계실에서는 그가 온 목적을 알자 저저마다 달라붙는통에 오히려 황송할 지경이였다. 욕심이란 검질긴것이여서 시작한바에 한단계 더 높은 완전히 자동화된 성형기를 만들고싶었다. 이런 둥뜬 결심을 안고 그는 지금 도서관으로 가고있었다.

부지런히 걸음을 놓던 한대식은 길옆 공원으로 들어갔다. 사색을 좀더 심화시키고싶었던것이다.

(최신성형기의 크기와 경제적효과성은?…)

물론 간편하고 능률적이며 먼 후날에도 손색 없어야 할것이다. 문제는 착상이며 설계다. 제작은 걱정없을것이다. 어떤 대상이든 맘먹은대로 척척 만들어내는 룡성이다. 그들은 요즘 그렇게 어렵다던 8m타닝반을 끝내가고있으며 뒤이어 3천t프레스까지 만들 계획밑에 온 공장이 흥분의 도가니처럼 끓어번지고있지 않는가.

《아저씨, 내 비행기 밟지 마세요.》

갑자기 쨍하고 소리치며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는 어린애가 있었다.

한대식은 그때야 상념에서 깨여나며 아래도리를 꼭 붙잡고 머루알처럼 까만눈에 겁을 담고 자기를 올려다보는 어린애를 굽어봤다.

정말 자칫하면 밟힐번 한 종이비행기가 구두코숭이앞에 있었다. 어린 사내애는 천만다행이라는듯 종이비행기를 냉큼 집어들더니 생긋 웃어보였다.

사내애가 깡충거리며 달려가는 화단저켠에 트레머리를 한 젊은 부인이 송구스러운 미소를 피워올리며 한대식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러고보니 여기저기 놓인 의자들과 노란 잔디우에 화려한 색갈의 옷을 입고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한대식은 그 어떤 속박감을 느끼며 사람들의 눈길이 없는 방울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촘촘히 들어선 나무우듬지들에선 이름모를 새들이 경쟁이나 하듯 울어댔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에 실실이 늘어선 수양버들이 하느적거리며 희롱하고있었다.

인적이 없을줄 알았던 숲속깊이에는 처녀총각들이 쌍쌍이 붙어앉아 누가 곁에 다가서는줄도 모르고 열에 떠서 속삭이고있었다. 감히 엿보지도 범접할수도 없는 청춘들의 신성한 환락의 세계였다. 몸을 맡길만 한 조용한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속삭임과 웃음과 애무로 가득찬 공원은 해풍에 설레이는 실버들처럼 생의 환희로 화락하게 젖어있었다.

한대식은 마치 낯선 고장에 들어선것 같아 거북하기만 했다. 오래동안 연구사업에만 몰두해온 격페된 생활은 이러한 풍경이 생소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 숱한 사람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어 해빛밝은 대낮에 한가로이 노닐가, 이들에게도 과연 시대적인 자각과 숨결이 있는가 하는 터무니없는 언질까지 걸어보고싶었다.

그러나 공원을 빠져나와 길가에 나섰을 때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뉘우치지 않을수 없었다. 거리의 량옆으로는 기중기들이 수풀처럼 솟았고 벽돌이며 부재들을 가득 실은 화물차들이 끝없이 꼬리를 물었다. 불도젤과 굴착기들이 시꺼먼 연기를 뿜어대며 지대정리와 굴착작업에 용을 쓰는데 드넓은 건설장에 색낡은 군복의 제대군인건설자들이 가마니로 만든 목고를 메고 와와 소리치며 내닫고있었다.

그들의 충천한 기상을 말해주듯 탑식기중기허리에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불사르라!》라는 대형포스타가 눈부리에 확 안겨왔다.

한쪽에선 가두에서 지원나온듯 벽돌을 한임씩 이고진 각양각색의 옷차림들이 벅적 떠들어대는데 그들의 발걸음에 박차를 더해주듯 붉은넥타이를 멘 소년단가창대가 소고채를 요란스레 두드리며 《천리마 타고서 번개처럼 달린다…》하고 목청을 뽑아댔다.

눈부리 아득히 펼쳐진 건설장은 쇠물처럼 설렁설렁 끓어번졌다. 참으로 그 장쾌한 창조의 숨결은 보는 사람까지 들썽들썽하게 만들었다.

한대식은 부지중 전류에 감전된듯 더는 움직일수가 없었다. 리성으로써는 도저히 누를수도 막을수도 없는 흥분과 사색의 분출이 온몸의 마디마디에서 용암처럼 세차게 솟구쳤다.

아, 이것이 진정 우리 인민의 감정이고 지향이 아니던가. 전쟁을 이겨낸 영웅적인민, 페허우에 일떠선 저 거창한 창조물들,그 기상, 그 기세로 더 빨리, 더 높이 내달리려는 민족의 열화같은 하나의 념원. 그렇다. 그 넋, 그 숨결이 바로 저기 쌍쌍이 미래를 속삭이는 청춘들의 애무와 미소속에 그리고 불바람 일으키는 저 건설장마다에 맥맥히 굽이치고있으리.

정녕 력사의 갈피속에 언제 이런 변혁, 이런 환희, 이런 창조가 있었던가?

과연 어떤 담력, 어떤 령도가 그 어느 민족보다 막다른 식민지밑바닥에서 허덕였고 더구나 전쟁의 페허만 남았던 이 땅우에 이처럼 훌륭한 사회, 이런 보람찬 생활, 전광석화와 같은 이런 천리마의 속도를 낳았는가!

순간 한대식은 심장을 치는 분발심을 느끼며 고개를 젖히고 힘찬 걸음을 내짚었다. 유독 자기만이 시대의 락오자로 세찬 흐름의 변두리에서 맴돌고있은것 같은 자격지심이 들었던것이다.

그의 발길이 멎은곳은 도서열람실이였다. 한대식은 곧 자료작업에 온 정력을 쏟았다. 분초가 새로왔다.

발생로에만 몰두해오던 페쇄된 의식속에 강한 방전을 일으킨 룡성땅의 그 거창한 숨결과 호소가 눈앞에, 귀전에 그냥 공명을 일으키며 끝없는 사색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누군가 슬며시 다가와 팔굽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고개를 드니 뜻밖에도 비료공장 책임설계원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대식은 멍하니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참고자료에 온 정력을 쏟고있던 그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선생님, 어서 밖으로 좀 나갑시다. 급히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한대식은 그때야 자신이 룡성도서실에 앉아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 그의 낯이 핼쓱하니 변했다. (아, 끝내…)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책임설계원이 왜 이 룡성에 나타났는가. 왜?…) 부상 남주혁의 사납게 이그러졌던 얼굴이 떠오르며 여기로 올 때부터 탕개처럼 조이던것이 마침내 왔구나 하는 예감이 발끝까지 내리훑었다.

《발생로에 혹시 무슨 일이?!…》

한대식의 목소리는 신음소리처럼 떨렸다.

《연구사선생, 발생로는 괜찮습니다. 지배인동지가 선생을 도와주라고 저를 여기로 보냈습니다.》

《?!…》

《설계를 빨리 다그칩시다. 도면만 떨어지면 제작은 2~3일내에 끝내주겠다고 이곳 동무들이 우리 지배인동지와 약속까지 했답니다.》

한대식은 여전히 자기 귀를 의심하며 멍히 서있다가 낯색이 풀리며 책임설계원의 손을 으스러지게 꽉 그러쥐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완성된 설계도면을 가지고 룡성기계공장에 도착하니 현장에서는 이미 특별히 무어진 성형기제작돌격조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성형기제작은 이틀만에 끝났다. 대형화물차에 완전히 자동화된 성형기를 싣고 돌아오는 한대식의 심정은 몹시도 설레였다. 지배인이 어떻게 맘먹고 이런 용단을 내렸는지 만약 부상의 동의까지 얻었다면 모든것이 풀리게 된다.

이러한 기쁨은 예전과 다름없이 고르로운 숨결을 뿜고있는 정상상태의 발생로를 보자 더 이름할수 없었다. 로의 성능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아진것 같았다.

《아바이!-》

한대식은 목멘 소리로 웨치며 철판층계를 서너개씩 뛰여넘어 로상부에 있는 석근수한테로 달려갔다.

《왔구만! 자동화된 멋들어진 성형기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수다. 이젠 정말 만사가 풀린것 같수다.》

로안상태를 관찰하고있던 석근수는 장한 일을 하고 돌아온 아들을 대하듯 몹시 흡족하여 한대식의 어깨를 자꾸만 두드려주었다.

《다리에 화상까지 당하셨다는데 왜 이렇게 나와있습니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금희를 시켜 불이나 죽지 않을 정도로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괜찮네. 나야 아무런들 뭐라우. 자, 어서 로안을 봐주슈. 맘뿐이지 선생이 없으니 한지야. 허허.》

석근수는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한대식은 가슴이 뭉클하여 흡족하게 웃고있는 석근수의 얼굴을 뜨겁게 바라보았다. 떨어져있은지 비록 사흘밖에 안되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는것만 같다. 훌쭉한 두볼과 앞이가 없어 후훵하게 들여다보이는 입천정이며 잔주름이 몰려들어간 우묵한 눈확은 예전의 그 모습인데 왜 이처럼 다함없는 육친의 정과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지.

돌이켜보건대 감회로운 추억들이 이루 셀수 없이 많다. 손바닥만 한 철판들과 관들을 모아 중간시험로를 일떠세우고 그리도 만족해하던 일이며 덩실한 문화주택을 지어놓고 끝내 집들이를 시키던 일, 멀리 길주까지 따라와 살틀히 보살펴주던 잊을수 없던 일…

아바이는 발생로중간시험조에 망라된 단순한 방조자가 아니라 실제적주인이였고 이날까지 변함없는 자세로 이끌어주고 보살펴준 생활의 훌륭한 안내자이며 보호자였다. 이런 뜨거운 보살핌속에 한생이 끝날 때까지 연구사업을 할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아, 이것이 바로 로동계급의 변함없는 진심이고 량심이며 사랑이 아닌가! 나는 언제 가야 이런 진심, 이런 량심과 사랑을 간직할수 있겠는지.…)

《왜 그렇게 쳐다만 보구있소. 어서 로안을 살펴보슈. 발생로때문에 한순간인들 맘을 놓았겠소.》

석근수가 다시 독촉해서야 한대식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주머니에서 보안경을 꺼내들었다. 로안상태는 임의의 시각에 가스를 배출할 정도로 좋았다. 이것은 그동안 로운전지표를 정확히 지켰다는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아바이, 이건 놀라운 일입니다. 로안반응상태는 정확히 기준치에 있습니다.》

한대식의 입에서 부지중 탄성이 튀여나왔다.

《그럼 됐수다. 그동안 살얼음을 타는것만 같았네. 허허.》

석근수는 흡족한듯 또다시 껄껄 웃더니 이런 말을 했다.

《사실 내 혼자서야 어림두 없지. 그래서 어찌겠나. 그전에 작업반장을 하던 오일규랑 재배출공 남수녀석이랑 끌어왔지. 그동안 금희가 연구사선생대신 혼났수다. 큰소 나가면 작은소가 어미구실한다구 제법 훈시를 잘합디다. 드문드문 눈물을 좀 짰지만.》

그가 웃는 낯으로 흥겹게 말하고있으나 하루하루가 이들에겐 얼마나 긴장하고 불안했겠는가를 너무도 잘 알수 있었다.

한대식은 진정 사죄의 말을 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고생들만 시켜서…》

《무슨 말을, 주인이 와서 그런지 이놈의 로가 더 버쩍 열을 내누만. 뜨거운데 여기서 땀을 뽑지 말구 어서 휴계실로 내려갑세다. 선생한테 기쁜 소식을 전해줄것이 있수다.》

석근수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한대식은 이때 발생로의 열기보다 석근수의 몸에서 풍기는 열풍이 몇십배나 더 뜨겁다는것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들은 로상부에서 내려와 휴계실로 향했다.

《자, 이 편지를 받으슈. 선생이 애타게 기다리던 황철에서 온 편지웨다. 내맘이 급해서 먼저 뜯어봤는데 석호 그 녀석이 끝내 대용점결제를 만들었군요.》

《그렇습니까?! 단단히 결심하구 가더니 결국 성공했군요.》

한대식은 두눈을 확 빛내이며 편지를 쥔 석근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편지를 보니까 여기서 떠날 때 선생이 준 연구자료를 가지고 했답디다. 자기는 단지 그 자료에 기초하여 실험실에서 몇번 확증한 후 발생로에 도입해봤는데 예상외로 결과가 좋다는게 아니겠수.》

한대식은 서둘러 편지의 속지를 뽑아들었다. 편지에는 금야탄을 주원료로 한 대용점결제의 제조과정과 성분분석치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여있었다.

(끝내 금야탄으로 성공했단말이지!)

한대식의 충격은 비할바없이 컸다. 이것은 참으로 큰 발견이였다. 원천이 풍부하고 공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금야탄으로 그것도 적은 원가로 점결제를 만들었다는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다.

한대식은 흥분어린 소리로 웨쳤다.

《아바이, 이것은 대단합니다. 석호동무가 정말 큰 고리를 풀었습니다.》

석근수의 두눈에도 노상 흡족한 웃음이다.

《아바이, 제가 곧 황철에 가서 석호기살 만나보겠습니다. 이 귀중한것을 하루인들 묻어둘수 없습니다.》

《나두 그 생각입네다. 그렇지만 연구사선생이야 여기를 뜰수가 없지 않수. 지배인한테 제기해서 석호를 아예 소환해오도록 합세다.》

《그게 가능할가요? 석호기산 부상이 직접 보낸 사람인데…》

《부상이 뭐길레 공장사람을 좌지우지하겠소. 석호기산 나한테 맡겨두슈.》

이때였다. 박혜련이 숨을 가쁘게 내쉬며 휴계실로 들어왔다.

《아버님은 어쩌자고 현장에 또 나오셨어요. 어서 집으로 들어가십시다.》

혜련은 무작정 석근수의 어깨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켜세웠다.

《너무 걱정마슈. 난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 않은게 뭐예요. 지금 아버님의 몸상태가 어쩐지 아십니까. 이제 조금만 더…》

혜련은 너무 안타까와 울먹거렸다. 한대식은 그때야 석근수가 화상당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이마를 짚어봤다.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겁이 더럭난 그는 얼른 안해의 얼굴부터 살폈다.

《아바이,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이러시면 정말 안됩니다.》

혜련이 눈물이 그렁하여 석근수의 어깨를 부축하자 그는 더 어쩌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사선생, 후야근교대가 끝나면 오일규반장하구 남수가 올거웨다. 그들을 박대하지 말구 잘 가르쳐주슈. 나두 주사나 몇대 맞구 곧 나오겠수.》

혜련의 부축을 받아 저쯤 나가던 석근수가 고개를 돌리며 하는 말이였다.

한대식은 가슴이 널뛰듯 했다. 어떡하나 로의 정상가동을 보장하려고 화상당한 몸으로 로앞에서 몇밤을 보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왔겠는가. 그렇게 마지막 기력까지 다 소모한 아바이가 다시는 일어날것 같지 못한 불안이 불쑥 떠올랐던것이다.

(여보, 아바이를 잘 돌봐주오. 그분이 있어야 발생로를 끝까지 해낼수 있소.)

한대식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했으나 석근수는 끝내 자리에 눕고말았다.

고열이 나면서 헛소리까지 한다는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한대식의 감정은 극도로 격증되였다. 알탄성형기와 대용점결제가 해결되여 바야흐로 생산에 도입할수 있게 된 이때 석근수의 병상은 아픈 상실이 아닐수 없었다.

한대식은 석근수아바이의 몫을 자신이 담당하리라 결심했다. 물론 아바이의 위치에 오르자면 아직도 부족점이 많겠으나 맘먹기에 달렸다고 그는 비상한 각오를 다지였다.

중낮이 좀 지나서였다.

등어깨가 땀에 푹젖은 오일규와 남수가 반달음치듯 달려왔다. 후야근교대가 끝나는길로 달려온것 같았다.

그들은 로상부에 있는 한대식을 보자 머밋거리며 몹시 거북해했다. 석근수의 일로 하여 마음이 무겁던 한대식은 아래로 뛰여내려가며 반갑게 소리쳤다.

《어서들 오시오. 이렇게 와줘서 정말 반갑습니다.》

《연구사선생 볼 면목이 없구만요.》

오일규가 어줍은 미소를 지으며 기죽은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비겁한놈이였습니다. 오늘에야 찾아온 절 용서해주십시오.》

《아니 왜들 이럽니까? 그때야 제가 잘못한탓으로 행정에서 취한 조치가 아닙니까.》

《말두 마슈. 난 석근수아바이한테 사등뼈가 부러지는줄 알았수다. 언제가야 그 주대두 없이 두리뭉실하게 살아가는 습성을 없애겠는가구.》

오일규가 낯이 벌겋게 되여 진심으로 사과했다.

《내가 맞아야 할 매를 반장동무가 맞았군요. 의리도 인정도 없는 놈은 바로 저였습니다. 그렇지 남수?… 아니 그런데 남수는 왜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됐나?》

한대식은 고개를 푹 숙인채 얼굴 한번 들지 못하는 남수의 등어깨를 철썩 때렸다. 그때야 그는 더수기에 손을 올리며 비죽이 웃었다.

오일규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렇게 시원시원 용서해줄줄 알았다면 좀 큰소리치며 올걸 그랬수다. 연구사선생 말투가 우리들처럼 터벅한게 그전하군 영 딴판이군요.》

《여기 내려온지 벌써 이태가 넘는데 로동자들을 닮지 않구 별수가 있습니까. 난 요즘 어느 작업반에 가입해야 천리마휘장을 먼저 탈가하구 망설이는중이랍니다.》

《무슨 말인지 통, 허허-》

그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자기 담당개소들을 차지했다. 오일규는 작업반장을 할 때 퍼그나 익혀둔 로운전을 했고 남수는 본래대로 재배출을 맡았다.

그들은 시련과 곡절로 하여 오랜기간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는 야릇한 회심과 기쁨으로 하여 작업을 보다 더 긴장하게 했다.

한대식의 기쁨은 더할나위없이 컸다. 그는 지난 기간의 간고했던 그 모든 일은 잠간 스쳐버린 꿈이였고 현실에는 보다 완성되고 세련된 로운전공들이 곁에 있으며 자신도 무척 현명해지고 더욱 신심이 넘쳐나는것만 같았다.

로실안의 반응상태도 좋았다. 이런 반응속도와 효률높은 가스가 변함없이 지속된다면 생산에 도입하는것은 론의할 여지도 없었다.

이제 남은 마지막 일은 라석호가 만들어낸 대용점결제를 공업화하여 계렬생산에 들어가는것이다.

그는 전류처럼 온몸에 퍼져나가는 환희의 기쁨을 만족스레 체감하며 원료투입과 송풍압을 점차로 높여나갔다. 최대가속단계에서 로내반응의 안전성을 확인해야 했다. 로의 숨결은 몇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고르로왔다. 로의 안전계수는 확고했다.

한대식은 북받쳐오르는 흥분속에 언제 밤이 가고 새날이 시작되는지 느낄수 없었다.

다음날 이른아침이였다. 오일규와 남수는 자기초소로 돌아가고 밤늦도록 송풍과 가스분배기발브를 맡아 운전하던 금희는 출근전이였다.

안해가 가져온 밥을 먹고 로상부에 올라가 반응상태를 관찰하고있을 때였다.

로안에서 갑자기 굉장한 폭발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길이 작업구멍으로 확 쏟아져나왔다. 불의의 타격에 한대식은 얼굴을 싸쥐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다행히 보안경의 덕분에 얼굴에 약간의 화상이 있을뿐 눈은 괜찮았다. 벌떡 일어선 그는 재빨리 로의 매개 요소들을 살펴나갔다. 불길은 여전히 룡트림하듯 확확 쏟아져나왔다. (가스관?)하는 생각이 피뜩 뇌리를 치는 순간 철판층계를 껑충껑충 뛰여내려 가스출구 발브쪽으로 치달았다. 했으나 발브에 미처 손이 닿기전 《짝-》하며 가스관들이 엿가락처럼 꼬여 파렬되였다. 그것만이 아니였다. 가스관의 파렬음에 두눈을 꾹 감았던 그가 천천히 돌아서는데 로밑에서 《피식, 피유-》하는 소리와 함께 시꺼먼 증기가 솟구쳤다. 불판이 녹아내려 로안의 반응물이 랭각수가 있는 밑에 떨어지고있었다. 아뜩해진 그는 멍하니 서있었다. 모든 사고가 정지된것만 같았고 온몸이 그대로 천길나락속에 구겨박히는것 같다.

종합스위치를 제껴야 하겠는데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는 이를 사려물고 땅바닥에 두손을 짚으며 한치한치 배밀이로 기여갔다.

몇발자국밖에 안되는 그곳이 천리만리처럼 멀어보였다. 겨우 스위치손잡이를 잡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끼며 그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사고현장의 첫 목격자는 금희였다. 예전처럼 출근하여 휴계실로 가기전에 로현장을 살펴보던 그의 눈이 돌처럼 굳어지고말았다. 주먹같은 시뻘건 반응물이 툭툭 떨어지는 로밑에선 시꺼먼 증기가 타래쳐 솟구치고 엿가락처럼 꼬인 가스관들에서 칙칙 가스뿜는 소리가 요란했다.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맞다들리니 몸만 괃아들뿐 움직일수도 소리칠수도 없었다.

잔뜩 겁에 질린 두눈만이 현장의 구석구석을 더듬어나갔다. 연구사선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하는 짜릿한 전률이 발끝까지 내리훑는 순간 종합스위치앞에 쓰러진 낯익은 작업복이 눈에 띄였다. 《선생님!-》

금희는 엎어질듯 달려가 한대식의 상체를 잡아일으켜 무릎우에 눕혔다.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선생님-》

사색이 된 금희가 그의 어깨를 흔들어대며 안타까이 불렀다. 그러자 한대식의 두눈섭이 파르르 떨리더니 가느스름히 눈을 뜬다. 그와 동시에 웃몸을 솟구며 《스위치! 스위치를 떼시오.-》하고 소리쳤다.

《스위치는 뗐습니다. 선생님.》

금희는 정신없이 용을 쓰는 한대식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야 의식을 차린 그는 풀썩 주저앉으며 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선생님, 다친데는 없습니까? 얼굴은 왜 그렇게 됐습니까?》

걱정을 놓지 못하는 금희가 한대식의 험하게 된 모습을 보며 울먹거렸다.

첫 순간 작업구에서 쏟아져나온 불길과 석탄가루로 하여 한대식의 얼굴은 보기 끔찍할 정도로 새까맸다.

금희의 눈에 그렁하게 고였던 맑은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비로소 처참한 이 사태를 그 무엇으로 복구할수도 보상할수도 없다는 끝없는 절망과 분통함이 전신을 휩쌌던것이다. 처녀는 헉헉 흐느끼며 오열을 터쳤다.

한대식은 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꺼멓게 식어가는 발생로를 넋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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