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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근수의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듣고 한대식이 격한 심정을 다잡지 못하고있던 그 시각 지배인실에서는 전해직장확장공사를 위한 중간총화모임이 단대목에 오르고있었다.
모임은 지배인이 집행하고있었으나 실제상 주인은 남주혁부상이였다.
남주혁은 공사준비 책임자인 부지배인으로부터 자재지도원에 이르기까지 한사람한사람 일쿼세워 무섭게 다몰아댔다.
그가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것은 확장공사준비가 예견보다 어방없이 미진된것이다. 현지에 틀고앉아 수완과 완력을 보란듯이 시위해보려 했는데 오히려 크지도 않은 공사준비를 놓고 쩔쩔 맨다는 소문이 날 형편이다.
《한가지 묻기요. 황철에 간 라석호기사한테는 아직두 소식이 없소?》
《네, 자재를 구하면 전보를 치기로 약속했는데…》
자재과장 로익두가 앙바틈한 턱을 쳐들고 어름어름했다.
《그렇다면 알아봐야 할게 아니요. 황철이 뭐 아라사땅이나 되는가? 자, 보시오. 전탕 이 본새요. 지금 누가 이걸 갖다쓰시오 하구 섬겨바치는 사람이 있는줄 아오. 모든것이 긴장하단말이요. 그래서 내 늘 말하지 않는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혁명성을 발휘해야 한다구. 사회주의건설두 전쟁 못지 않은 치렬한 혁명투쟁이란말이요.》
머리를 푹 숙인 좌중은 숨소리 하나 없다. 남주혁은 자기 발언의 효과성을 확인하듯 가느스름히 뜬 눈길로 방안을 쭉 훑어보더니 손바닥으로 책상을 톡톡 치며 어성을 낮추었다.
《내 동무들의 사업에 교훈이 될것 같아 한마디 하겠소. 지배인앞에서 좀 거북한 일이나 발전을 위해 아니말할수 없소. 내가 초봄에 여기 내려왔을 때였소. 한 연구사가 무연탄가스로 비료를 만드는 연구사업을 한다고 하기에 그만두라고 말을 했었소. 왜냐면 그것은 파악도 없는 생소한 감투끈인데다 전해법으로 비료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석탄을 주무른다는것은 우리 화학을 아득히 퇴보시키는 사변으로 되기때문이였소. 그런데 사태는 어떻게 됐는가? 내 그후에도 알아들을만큼 간곡히 타일렀는데 지배인은 여기에 그 무슨 예비가 있는것처럼 작업반까지 조직해주고 우리 성도 모르게 암암리에 부추겨왔소. 화학공업이 가장 앞섰다는 나라에 가서 류학까지 했다는 사람이말이요. 결국 꼴이 어떻게 됐소. 련속 실패에 사고까지 나니까 그때야 지배인은 아이쿠했소. 그랬으면 응당 교훈을 삼고 덮어버려야겠는데 한 연구사의 한생에 대한 문제이니 결속이나 보도록 하자구 나한테 드립다 제기하오. 그때 내가 단호히 짤라야 되겠으나 그만 한걸음 양보했소. 그 양보한 값을 마침내 오늘 낮에 톡톡히 받았소. 기술과장동무, 현장에 가서 직접 본 인상을 어디 객관적립장에서 말해보오. 실용가치가 있소 없소?》
맨뒤에 앉아있던 기술과장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생산공정이 복잡하고 품이 많이 드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앉소. 다들 들었지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소. 내가 왜 오늘 이 말을 하는가? 우리 일군들이 상급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일할 때 이처럼 무서운 후과를 초래할수 있다는거요.》
《부상동지, 무연탄발생로를 그렇게 볼수 없습니다.》
곁에 앉은 방하철이 듣고만 있을수 없다는듯 나직하게 반박했다.
《뭐라구요? 아직두 거기에 미련을 가지고있단말이요? 지배인이 제 정신이 아니구만. 좋소. 그 문젠 따로 계산합시다. 비판으로만 끝날 성격이 아니니까. 오늘 모임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확장공사이니 그것을 놓고 더 심화시킵시다.》
그러나 회의는 남주혁이 의도대로 더는 진척되지 않았다. 그는 오늘 모임을 통하여 무연탄가스화의 불합리성을 로출시켜 폭로함으로써 최근 발생로에 호감을 가지고 거기에 쏠리는 여론을 짓뭉개버리는 한편 확장준비에 박차를 가하려 했는데 뜻밖에 지배인이 반박해나서자 그것이 발화점이 된듯 좌중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점차 흐지부지되자 남주혁은 낯이 벌거우리 달아올랐다.
이때 앞좌석에 앉아 재피씨 같은 눈알을 굴리며 회의분위기를 살피던 로익두가 난딱 일어섰다.
《한가지 제기할것이 있습니다.》
《어서 말해보오.》
《지금 종업원들속에서 연구사부부에 대한 좋지 못한 여론이 떠돌고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그것이 근거없는 말들 같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런 의견 제기하겠으면 앉소.》
방하철이 그의 말허리를 걸어채듯 맵짜게 내쏘았다.
《어디 들어봅시다. 그래도 일하자구 애타게 뛰는 사람이 자재과장이요. 어서 계속하오.》
남주혁은 방하철의 말을 꾹 눌러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더욱 의기가 뻗친 로익두가 기세를 올렸다.
《방금 부상동지의 명철한 분석의 말씀을 듣고보니 항간의 여론을 듣고만 있을수가 없다고 봅니다. 확실히 여기엔 연구사의 딴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때문에 제 의견은 아까운 자재가 더 탕진되지 않게 발생로의 불을 당장 껐으면 좋겠다는겁니다.》
《옳소, 역시 자재과장이 살림군이요. 여기 모인 동무들도 자재과장처럼 주인다운 태도를 가져야겠소. 아마 제집 부엌의 탄을 누가 가져갔다면 야단이 날거요. 그런데 수십t이 넘는 탄이 연구사의 주머니에 들어가는걸 구경만 하고있거든. 각성을 높여야겠소. 계급적눈을 크게 뜨란말이요. 내 아까 발생로현장에 가서도 한마디 했지만 래일 당장 로의 불을 끄시오. 지배인동무, 그렇게 합시다.》
《그 문젠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주혁은 못마땅한 눈길로 방하철을 한참 쏘아보다가 할수 없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모임을 결속했다. 남주혁은 주먹을 흔들어대며 또다시 한동안 열을 올렸다. 모임은 열두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지칠대로 지친 참가자들은 기지개를 켜며 느릿느릿 흩어졌다. 맨 나중에 나가던 로익두가 무슨 말을 할듯 집행석앞으로 다가와 부상의 눈치를 살폈다.
남주혁이 그를 가까이 불러 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소?》
《예, 저… 따로 말씀드릴게 있어서…》
《밖에 나가 기다리오. 내 지배인동무와 잠간 토론할 문제가 있소.》
《그럼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로익두는 앙바틈한 고개를 갑신거리며 웃몸을 송구스레 가드리고 발끝걸음으로 나갔다.
창문 두개를 활짝 열어놓고 한쪽에 선풍기까지 돌았으나 사무실안에는 담배연기가 자오록했다. 누군가 미처 건사하지 못한 땀에 푹 젖은 손수건 두개가 의자우에 걸려있었다.
《자, 우리 단둘이 허심탄회하게 말좀 해봅시다. 내게 무슨 의견이 있소?》
두사람만 남게 되자 남주혁이 따지듯 물었다.
《…》
《솔직히 말해보오. 왜 모임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놓소? 발생로문제가 심중하기때문에 그걸 좀 상정시켰는데 아래사람들앞에서 지배인을 내놓고 비판했다고 그러우?》
《잘못했으면 응당 비판을 받아야지요.》
《그럼 왜 그리 찌붓해서 오만상이요? 까놓고 말해서 발생로문제가 비판이나 하고 끝날 사건인가? 그건 고의적인 범죄란말요 범죄. 그러나 다름아닌 지배인이 여기에 관여했기때문에 백번 양보해서 문제를 크게 걸지 않았소. 그런 아량을 알기나 하구 불만이요?》
《저는 발생로를 놓고 부상동지와 견해를 달리합니다.》
《아니 뭐라구?!…》
《저는 오늘 발생로현장에 가보고 내가 큰 과오를 범할번 했구나 하고 자신을 깊이 돌이켜봤습니다. 무연탄에서 그만한 량의 유효가스를 얻어낸다는건 사실 놀라운 일입니다. 때문에 나는 즉시에 시험로를 인계받아 생산에 도입하자고 생각합니다.》
《그만두시오. 내 언젠가 모든 문제를 당적안목으로 보라구 강하게 추궁한 일을 또 잊었소. 그 알량한 가스때문에 우리의 귀중한 로동계급을 석탄먼지속에 혹사시키겠는가. 나라의 자재는 또 얼마나 탕진되오. 화학공업발전은 또 얼마나 손해를 보구? 이런 간과할수 없는 치명적약점을 지배인이 볼줄 모른단말이요?》
《앞으로는 그런 결점들이 극복될겁니다.》
《정신을 차리시오. 지배인은 이날 이때까지 그 연구사한테 리용당했단말이요. 그 연구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하오? 아까는 사람문제이기때문에 대중앞에서 공개하지 않았는데 그 내막을 알면 끔쩍 놀랄거요.》
《저도 모든걸 알고있습니다.》
《언제부터?》
《그를 만나는 첫순간에 그는 일제때 내가 일하던 공장에도 몇번 왔다간 노구찌재벌놈의 동해지구연구실 과장을 하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렇게 알면서도 리용당했단말이요?》
《차라리 리용이라도 당했더라면 오늘처럼 문제가 복잡해지진 않았을겁니다.》
《?!…》
《사실 난 지금의 그런 락후한 발생로설비를 가지고는 가스화를 할수가 없다고 이모저모로 막아나섰댔습니다. 그런데 그는 끝내 성공했을뿐아니라 생산에 도입할수 있는 확고한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음…문제가 있군. 여기엔 심각한 문제가 있단말이요.》
남주혁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런 말하기 부끄럽지 않소. 일제시기처럼 자기의 연구목적을 위해 또다시 로동자들을 혹사시키려는 그 야심을 성공으로 본단말이요? 한심하오. 계급의 눈과 심장은 뒀다 어따 쓰자는거요?》
《그건 야심이 아니라 자기 사업에 대한 헌신성이며 드팀없는 신념이라고 봅니다. 부상동지, 그 사람 본인이 어떻든간에 과학적성과앞에선 애정을 가지고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보, 무슨 허튼 소리요. 과학의 성과라고 무턱 손벽칠수 없소. 어떤 과학인가? 누구를 위한 과학인가? 문제는 이렇게 서오. 지배인은 확실히 변질됐소. 외국류학 몇년사이에 녹이 쓸었단말이요. 내가 지배인을 잘못봤소. 지난날 고생두 하구 현대지식을 배우고왔기에 지배인으로 내세웠는데 속이 텅 빈걸 보지 못했단말이요.》
《…》
《두말할것 없이 래일 당장 발생로의 불을 끄고 연구사를 올려보내시오. 그리구 이번 기회에 자신의 사상동향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자체총화해보오. 지배인은 지금 쓸데없는 동정을 베풀고있단말이요. 만약 그런 사상적동요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수천명 우리 종업원들이 지배인을 용서치 않을거요.》
《…》
방하철이 여전히 대답 한마디 없자 자기나름으로 해석한 그는 좀 누그러진 어조로 타이르듯 말했다.
《좀 거칠게 말한것 같은데 지배인이 남같지 않아서 그랬소. 지배인이 일을 잘해야 지배인을 성앞에서 보증한 내 마음도 좋을게 아니요. 그렇게 리해해주. 괜히 엇뚜질을 하지 말구. 그래 더 할말이 있소?》
《…》
《그럼 난 가보겠소. 지배인두 밤이 깊었는데 어서 들어가보오.》
방하철은 쏘파에 몸을 깊숙이 묻은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남주혁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벅벅 문질러대더니 책상우에 놓인 소가죽가방을 옆에 끼고 성큼 일어섰다.
그때까지 아래층 현관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던 로익두가 남주혁을 향해 뿌르르 다가왔다.
《지배인동지는 안내려오십니까?》
《왜 그러오?》
《오늘이 중간총화날이 아닙니까. 우리 집에서 간단히 피로연을 하자구…》
《그것때문에 따로 만나자구 했소?》
《예…》
《그렇다면 만날 필요가 없소. 난 합숙으로 가겠소.》
남주혁은 앞에 막아선 로익두를 떠박지르듯 내밀며 성급히 현관밖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아직도 그의 몸에선 열기가 확확 풍겼다.
《부상동지, 그러지 마십시오. 이제 합숙에 가시면 곤히 잠자는 식모를 깨워야 되겠는데 뭣때문에 그런 실례를 하시겠습니까.》
《…》
《제 말을 들으십시오. 후에 저녁 굶었다구 후회하지 마시구.》
《과장동무네 집이 얼마나 머우?》
《부상동지두 참, 지난해 늦가을 한번 가보지 않았습니까.》
《아, 그렇지. 붕어생선국이 생각나누만. 그래 그 젊은 부인은 여전하오?》
《잊지 않으셨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집사람두 그때 부상동지가 오셨던 일을 그냥 외우고있습니다. 자 이쪽으로요. 거긴 길이 험합니다.》
로익두는 어느새 남주혁의 한팔을 끼며 왼쪽길로 꺾어들었다.
《가만, 그렇다면 지배인두 함께 갈걸. 그 사람두 합숙생이 아닌가?》
남주혁은 우뚝 멈춰서며 행정청사 2층을 올려다보았다. 2층 지배인실에는 불빛이 환했다.
《물론 그래야지요. 제가 모셔오겠습니다.》
《가만. 그냥 가기요. 그 사람이 따라올 경황이 없을거요.》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두 있었습니까?》
《아무것두 아니요.》
이때 방하철은 쏘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채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그러한 그를 불러일으키듯 전화종이 길게 요란히 울어댔다. 했으나 깊은 사념속에 잠긴 그의 두눈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간격을 두고 독촉하듯 울어대던 전화종도 그만 지쳐버린듯 잠잠해진다.
방하철은 지금 남주혁이란 한 인간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재평가해보고있었다. 남주혁과 첫 상면이 있은 후 인상깊은것은 중책을 지닌 점잖고 전개력있는 쉽지 않은 일군이라는 점이였다. 그 인상깊은 믿음은 기업관리경험도 없는 자기를 큰 공장의 지배인으로 내세워주었을 때 존경심으로 승화되였었다. 대담하고 통이 크지 않고는 그런 용단을 내릴수 없었다.
사실 자신은 남주혁의 눈에 들려고 일부러 애쓴것도 없으며 더구나 지배인이 될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어떤 측면을 좋게 보고 그런 용단을 내린줄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라의 화학공업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려는 강한 지향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초봄에 전해직장확장공사문제가 상정됐을 때도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물고말았다.
남주혁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걷잡을수 없이 뒤흔들리기 시작한것은 무연탄가스화에 대한 그의 완고한 관점이다. 초기에는 실패를 거듭하고 사고를 련발하기에 혹시 잘못 볼수 있으나 그 효과성이 확고히 내다보이는 오늘까지 그처럼 편협한 견해와 조폭한 행동을 한다는것은 단순히 과학을 모르기때문만이 아닌것 같다. 온전한 사고력을 가진 일군이라면 그 가치의 무게를 가늠해볼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본인의 경력과 출신이 좀 어둡다 하여 듣기조차 거북한 요란한 딱지를 붙여 짓뭉개버리려 하니 이런 일군이 어떻게 나라의 화학을 발전시킬수 있는가. 그 발명을 누가 했던 그것이 나라와 인민의 리익에 부합되고 기술발전에 보탬을 준다면 색안경을 끼지 말고 두손들어 환영해야 한다.
방하철은 숨쉬기가 가빠지는것 같았다. 이처럼 편협하고 극좌적인 부상밑에서 공장의 기업관리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높은 생산목표가 제기될 때마다 확장공사를 벌리는 식으로 생산량을 굼때버린다면 공장의 설비는 몇해를 가지 못해 지리멸렬하고말것이다. 진정 나라의 기술발전을 생각한다면 낡은 설비를 그대로 복사확대하는 식의 확장공사는 그만둬야 한다. 이제라도 문제를 다시 상정시키자.
《지배인동지-》
방하철은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두눈을 스르시 떴다. 웬 녀인이 문턱에 송구스런 자세로 서있었다. 그 녀인이 합숙관리원 리숙임을 알아본 방하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에 전화를 해도 나오지 않아 혹시나 하고…》
《예, 제가 깜빡 졸은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찾아까지 나왔습니까?》
방하철은 미리 알려주지 못한것이 죄스러웠다.
《저… 그런데 식사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두 들어가셔야 하겠기에…》
《괜찮습니다. 초저녁에 요기를 좀 했습니다. 그래서 밤두 깊었드라니 여기서 그냥 잘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수고스레 왔는데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집으로 가보시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고개를 약간 숙이는것으로써 자기 결심을 강조했다.
《저…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리숙은 무슨 부탁을 할가 하다가 고개를 다수굿해 보인 후 밖으로 나갔다. 출입문이 소리없이 닫기고 방안에 정적이 깃들자 또다시 번거로운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쏘파에 앉을 생각이 없어진 그는 활짝 열린 창문가로 다가갔다. 저 멀리 주택지구는 깊은 잠에 취한듯 불빛 한점 보이지 않고 전해직장 변류기에서 흐르는 전류소리만이 고르롭게 들려왔다. 불쑥 알수 없는 불안이 온몸을 쩌릿하게 훑어내렸다. 자신도 어딘가 남주혁부상의 허물과 일맥상통한데가 있다는 지각이 뇌리를 강하게 때렸던것이다.
남주혁의 모습에서 자신의 초라한 꼴을 본다는것은 얼마나 허망하고 슬픈 일인가.
그랬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부인할 근거가 없었다. 발생로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부상이 발생로를 정면으로 부정해왔다면 자기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하여 막아나섰던것이다. 실패만 거듭하는 발생로가 맘놓이지 않았고 그런 보잘것없는 로설비를 가지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태도는 경력과 출신이 좀 어둡다 하여 그의 고귀한 창조물까지 가차없이 짓뭉개려는 부상과 큰 차이가 없는 행동이였다.
진정 부끄러운 일이다. 혐오스러웠다. 리해할수 없는것은 이런 허물을 자신이 이때까지 전혀 느낄수조차 없었다는 사정이다. 과연 나의 안목과 감각이 이처럼 무뎌졌던가. 어떻게 이처럼 자신에 대해 린색해졌는지. 이것이 바로 한대식이 추궁하던 그 소총명이나 주관의 결과가 아닐가. 그렇다면 이 너절한것들이 언제 어디서 움텄단말인가.
방하철은 머리를 싸쥐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꿎게 떠오르는 어지러운 환영들로 하여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였다.
마음의 안정을 잃고 방안을 서성대던 그는 벽에 걸린 작업복을 황황히 벗겨들었다. 현장에 나가 땀이라도 흠뻑 흘리지 않고는 고통스런 이밤을 무사히 넘길것 같지 못했다.
출입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서던 그는 우뚝 굳어지고말았다. 복도 창문가에 리숙이가 그린듯이 서있지 않는가.
《왜 가지 않고 아직 여기 서있습니까?》
《그냥 갈수가 없어서…》
리숙은 잘못이나 저지른듯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몹시 당황해했다.
그는 지배인이 이밤 쉽게 잠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방안에 있으면서 전화종소리도 듣지 못하는 그런 지배인을 처음 본 리숙이였다. 그는 솔곳이 고개를 들고 간곡히 부탁했다.
《지배인동지, 저녁도 자시지 않고 어떻게 현장에 나가신다고 그럽니까. 어서 합숙으로 가십시다.》
《?!…》
방하철은 가슴이 뭉클했다. 자기의 심중을 환히 꿰뚫어보는듯 한 리숙의 눈동자를 마주볼 용기가 없었다. 더없이 맑고 끝없이 자애가 느껴지는 그런 눈이였다. 바로 그 그지없이 고요히 빛나는 눈동자속에 리숙이란 녀인이 있는것 같았다. 방하철은 그 어떤 엄숙한 요구가 깃들어있는것 같은 그 눈길을 감히 뿌리칠수가 없었다.
잠시 주춤거리던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 작업복을 벗어놓고 나왔다.
그들 둘은 공장정문을 퍼그나 벗어날 때까지 잠잠히 걸음만 옮겼다. 먼저 말을 떼야 할 사람은 방하철인데 그는 좀전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이런 때는 리숙이쪽에서 아무 말이나 건네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련만 그것은 바랄수도 없는 일이였다.
지난 시기 언제 한번 먼저 말을 걸어온적 없는 녀인이였다. 말은커녕 늘 송구스러운 자세로 자기를 대해왔고 외동딸인 선화까지 엄하게 단속해왔었다.
방하철은 비로소 리숙에 대하여 자기가 너무 무관해왔다는것을 느꼈다. 그것은 무관심정도가 아니라 인격에 대한 무시라고 해야 할것이다.
좀전의 일만 놓고봐도 그렇다. 지난 시기 얼마나 인정없이 대했으면 지배인을 찾아왔던 그가 차마 그냥 갈수가 없어 복도에서 기다리고있은것뿐인데 그것을 무슨 큰 잘못한 일처럼 몸둘바를 몰라하겠는가.
솔직히 지난날 자기는 리숙을 합숙관리원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혹독히 말하면 밥시중군으로만 치부했던것이다. 더우기 커피를 부탁했다가 그에게 옹색을 준 이후부터는 될수록 그와의 교제를 피해온 자신이다.
그러나 생활은 다르게 흘러왔었다. 리숙은 지배인이 어떻게 대하든 자기의 모습그대로 조심스레 그리고 온갖 성의를 다 바쳐왔다. 어느 시각에든 따끈한 밥과 구미가 당기는 찬이 마련되여있었고 어떡하든 밝은 기분을 안겨주려 방안이며 꽃밭에 이르기까지 세심히도 왼심을 써오고있었다.
이런 소행을 어찌 합숙관리원의 례의로만 여기겠는가. 이는 단순히 직무에서 오는 례의적감정만이 아닌것이다. 그가 누구든 아껴주고 받들어주고싶어하는 그 성품그대로의 순직한 진심일것이다.
이런 다함없는 성의와 보살핌이 있었기에 생활상 아무런 불편도 없었고 종종 합숙생이란 관념마저 잊은것 같았다.
오늘저녁 이렇게 찾아나온것도 이 녀인만이 할수 있는 행동이 아닐수 없다.
전화도 받을 경황이 없는 지배인의 심중을 포착했을것이고 그래서 가란다고 하여 쉽게 돌아서지 않은것이다.
만약 그가 이처럼 합숙으로 이끌지 않았다면 자기는 발끝까지 내려훑던 그 고통을 털지 못한채 온밤 공장구내를 헤매야 했을것이다.
이 시각 역시 리숙이와 함께 걷느라니 그처럼 무겁던 머리가 시원한 샘물을 마신듯 생신해지고 부드럽고 따스한것이 온 체내에 새암새암 퍼져나가는것 같았다.
확실히 이 녀인에게는 상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더없이 밝고 따스한 눈이 있고 그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특이한 친화력이 있었다.
방하철은 슬며시 뒤를 돌아봤다. 리숙은 여전히 발끝만 내려다보며 마치 훈풍처럼 소리기도 없이 따라오고있었다.
리숙이 보기가 민망스럽고 죄스러웠다. 무슨 말로든지 어서 용서를 빌고싶었으나 그 적중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주머니, 집에 딸 선화는 요즘 어디 갔는가요?》
방하철은 전혀 왕청같은 말이 튀여나가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그렇게 묻고보니 느닷없이 그 오목눈의 귀여운 선화가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선화를 볼 때마다 사랑하는 딸과 안해의 모습이 방불히 그려지군 하여 마음이 이상스레 훈훈해지군 하던 자신이였다. 그런 선화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발길을 딱 끊고말았던것이다.
선화가 나타나지 않는 합숙은 생기가 없는 절간처럼 적막해보여 드문히 공장합숙에서 점심을 먹게 되였다.
《요즘은 방학을 해서 집에서 놀고있답니다.》
《그럼 왜 놀러보내지 않습니까. 그전에는 자주 와서 화단이랑 알뜰히 가꾸던데.》
《큰 사업보시는 바쁘신 지배인동지신데 언제 그애 어리광까지 받아줄 계제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단속하지 말고 래일부턴 꼭 보내주시오. 나두 그 애가 보고싶습니다.》
《그래도 사업에 지장이 없으시다면…》
《!!…》
방하철은 리숙이와의 사이에 이처럼 커다란 간격이 있다는것을 다시금 느끼자 자기가 저주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마치 자기를 범접 못할 딴세계의 사람으로 보고있었다.
생각할수록 당연한 귀결이였다. 이런 질문을 받는것이 너무도 응당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맵짠 질책이였다.
방하철은 자신을 경멸하듯 거칠게 내뱉었다.
《아주머닌 마치 이 지배인을 딴세상사람처럼 치부하는데 나도 딸을 가진 아버지였습니다. 그 애가 살았다면 지금쯤 선화만큼 컸을겁니다.》
순간 리숙이 웃몸을 주춤했다가 가느다란 숨을 내톺았다.
《그랬었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초생달이 이미 기운지라 사위는 칠칠야밤이다. 어디선가 파란 용접광이 동화속의 장수가 거대한 장검을 휘두르듯 캄캄한 대공을 이리저리 썰어번지고있었다.
《지배인동지, 한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예, 어서…》
《지배인동지의 그 어린 딸이 어떻게 되여 잘못되였는지 말씀해주실수 없습니까. 물론 괴로우실테지만…》
《…》
방하철은 흠칫 몸을 떨었다. 명치끝을 쿡 찌르는듯 한 아픔이 느껴졌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아물지 않고 수시로 동통을 주는 상처였다. 그가 오늘까지 독신으로 살아온데는 재취할 정신적여유가 없는데도 있지만 아물지 않는 그 상처때문이였다.
방하철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리숙은 면구스러워 낯을 붉혔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묻지 말아야 하는건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래서가 아닙니다. 그 말을 해야 아주머니의 마음까지 상할것 같아서… 이젠 다 지나간 일인걸요. 나는 극력 잊으려 하고있습니다.》
《슬프든 괴롭든 지나간 일을 잊으면 안된다고 봐요. 과거가 있기에 오늘이 더 깊은 의미를 가지지 않을가요. 때문에 과거를 잊지 않고 종종 추억하는것도 이를테면 산 사람들의 의리라구 전 생각해요. 외람된 말씀 드린것 같은데 너그럽게 리해해주세요.》
《?!…》
방하철은 은근히 놀랐다. 무엇인가 깨우쳐주는듯 한 이 녀인의 말속에는 무시할수 없는 생활의 철리가 비껴있었다. 그런 범상치 않은 말을 너무도 쉽게 하는 리숙이가 새삼스러워보였다.
어느덧 그들은 합숙에 이르렀다. 한발 먼저 뜰안에 들어선 리숙은 잰걸음으로 부엌을 향했다. 방하철이 얼른 그를 불러세웠다.
《아주머니, 여기 의자에 와서 좀 앉읍시다.》
《?…》
《좀전에 물었지요. 우리 딸애에 대해서.》
《지배인동지, 제가 주책없이 굴었는데 그런 일이 없었던것으로 잊어주세요. 몹시 시장하시겠는데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이제는 밥먹을 생각도 없습니다. 물이나 한그릇 떠다주십시오.》
리숙은 어쨌으면 좋을지 잠시 망설이다가 할수 없는지 무거운 걸음으로 부엌에 들어갔다.
어떻게 보관했는지 그가 떠온 물은 얼음처럼 쩡 하고 특이한 향기까지 풍겨 단숨에 쭉 들이켰다. 땀이 쑥 들어가고 밸굽까지 시원해져 기분이 상쾌해진다.
《랭수에 산열매 서너가지를 담가두었군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맞힙니까?!》
《왜 모르겠소. 이래뵈두 강원도 산골내기가 돼서 그 계통은 꽤 박식하답니다.》
《?!…》
《원래 강원도 산골태생은 아닙니다. 〈징용〉으로 끌려가기전에야 신흥화학공장에서 소년로동을 했으니까?》
《지배인동지가 소년로동까지 하셨단말입니까?》
《왜 믿어지지 않는가요?》
《아, 아니예요… 그런데 강원도 산골에선 언제 뜨셨습니까?》
리숙은 말을 더듬으며 부쩍 호기심을 나타냈다. 듣는 말마다 믿기 어려울정도다.
《내가 남강원도 송계골안을 떠난것은 47년도 가을이였소. 그때를 생각하면 참… 시세에 얼마나 어두웠던지 2년이 넘도록 일본놈들이 망한걸 모르고있었군요…》
방하철은 쓰겁게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였다.
그 모습은 대번에 그를 10년은 더 늙어보이게 했다.
이렇게 되여 리숙은 우연하게 그 누구에게도 내비친적 없는 방하철의 가장 참기 힘겨웠던 생의 한토막을 알게 된 첫 사람이자 마지막 사람으로 되였다.
소나무가 많고 골안이 깊다 하여 송계라고 이름붙은 이 고장은 사냥과 약초를 캐서 생계를 유지하는 초막 몇채가 바위벼랑밑에 달팽이처럼 박혀있을뿐 마을이라 할 형편이 못되였다.
이 깊은 골안에서 방하철이 6년나마 숨어살고 오늘 마침내 북행길에 오르게 된다.
머루, 다래, 찔광이 등 산열매 익는 냄새가 골안을 진동하고 소태, 단풍, 산초 나무들이 진홍색으로 물든 마가을의 아침이다. 길 떠날 행장을 갖춘 방하철이 퇴지에 걸터앉아 새벽일찍 옹노를 보러 나간 장인령감을 기다리고있었다.
발에는 장인이 200리가 넘는 삼척장마당에 나가 사온 까만 지하족을 신었고 그우에 칡으로 각반을 둘렀다. 우에는 노루가죽 등거리를 입고 역시 칡으로 중동을 질끈 맸는데 여불없이 사냥군차림이다.
안해는 그만 지쳐버렸는지 가냘픈 소리도 내지 못하고 가만가만 눈굽만 훔쳐내고있었다. 초산한지 닷새밖에 안되여 얼굴이며 온몸이 부등부등했다. 그러한 안해를 두고 떠나자니 자연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를 넘긴다는것이 천년맞잡이다.
나라가 해방됐다는 소식이 이 골안에 날아든것은 한달전이다. 삼척장마당에 갔던 장인이 그 소식을 들고 왔을 때 방하철은 너무 기뻐 방바닥을 두드리며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안해도 옷고름으로 눈굽을 씻었고 장인령감은 잔기침을 연방 톺아올리며 북받치는 격정을 참아내지 못했다.
그날저녁 장인은 움속에 깊이 보관했던 사슴고기며 희귀한 산채들로 성찬을 차렸으나 방하철은 전혀 먹을 생각이 없어 뒤골안 폭포터로 올라갔다. 열길남짓한 폭포는 물이 말라 가는 줄기로 변했으나 예나 다름없이 골안에 유정한 정기를 불러일으켰다.
폭포수의 소연한 소리를 듣노라니 뜨거운것이 울컥울컥 치밀어올라 눈물을 콱 쏟고야말았다. 이 폭포수만 아니라면 이미 저승에 있을 자신이였다.
6년전 징용으로 부산부두까지 끌려갔던 그는 현해탄을 건너가기 전날밤 일본사병놈을 까눕히고 겨우 탈출할수 있었다. 결사의 각오로 부두를 빠져나왔으나 어디 갈데가 없었다. 그는 시내 하수도에 들어가 하루낮을 보낸 후 어둠을 타서 태백산줄기에 몸을 숨겼다. 그날부터 닷새를 꼬박 굶으며 정신없이 톺아오른것이 이 골안이다. 폭포수의 소연한 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의식을 잃고말았다. 깊은 골안이라는 안도감이 초긴장으로 지탱해오던 마지막 의지를 앗아간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는 오목할사 한 까만눈의 처녀가 그를 수심어린 눈길로 내려다보고있었다. 처녀는 가느스름히 뜬 방하철의 눈길과 마주치자 화닥닥 놀라며 《아버지!-》하고 환희에 찬 목소리를 내며 밖으로 달려나가는데 동그스름한 등어깨에 소담하게 땋아내린 외태머리가 츠렁츠렁 흔들렸다.
그 처녀가 바로 지금의 안해다. 사냥나왔던 박로인이 폭포터에 정신잃고 쓰러진 그를 업어다 방에 눕혀놨던것이다.
방하철은 운신할수가 없었다. 벼랑에서 떨어질 때 상한 허벅다리뼈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들 부녀의 간호는 극진했다. 알고보니 지주놈의 등쌀에 안해를 잃고 땅까지 떼우자 그놈의 집에 불을 지른 후 어린 딸을 데리고 솔가 은신해 살아가는 세상을 등진 불쌍한 부녀였다.
두달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고향을 찾아 떠나려 할 때 박로인이 그의 두팔을 꽉 붙들었다. 가지 말고 서로 의지해가며 살아가자고. 방하철은 뿌리칠수 없었다. 정작 《징용》도피자로 갈곳도 없거니와 고향에 간들 반겨맞아줄 살붙이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였다. 그것이 더욱 기가 막혀 피눈물을 뿌리며 울분을 토했다.
한가정이 된 그들 셋은 오붓이 살아갔다. 안해는 울창한 수림처럼 조용하고 속이 깊은 녀자였다. 근면하고 어진 그는 불쌍한 아버지와 외로운 남편을 위해 자기 한몸을 다 바쳤다. 해방을 맞아 남편이 고향에 가겠다고 하자 친정집에 가는것만큼이나 기뻐한 안해였다. 그처럼 비단결같고 순박한 안해를 두고 떠나자니 가슴이 뻐근했다.
새벽에 옹노자리에 갔던 장인은 장끼 두마리를 옆구리에 차고 들어왔다. 말이 옹노자리에 간다고 했지 실상은 딸사위를 한시간이라도 더 함께 두고싶어하는 늙은이의 웅심인것 같다.
《요즘 38선 넘기가 조련치 않다는데 몸조심하게.》
《알겠습니다.》
방하철은 골짜기아래까지 부디 따라내려오는 안해에게 목이 메여 말했다.
《인차 소식을 보내겠으니 아버지를 모시구 곧 따라들어오우.》
《그리하겠어요. 그런데 저… 애 이름을 뭐라고 지을가요?》
《내려오는 가풍대루 100날생일이나 쇤 다음 아버지 분부를 따릅시다. 그때 가면 우리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앉게 되겠지.》
방하철은 포단을 살그머니 들치고 딸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온통 발깃해서 누구를 닮았는지 알수 없는데 오목할사 한 까만 눈만이 제어머니모습을 방불히 그려놓았다.
이렇게 헤여진것이 마지막 리별이 될줄이야!…
38선을 넘다가 가슴에 부상을 당한 그는 오랜 기간 병원침대에 누워있었고 퇴원후에는 분계선장벽이 억척같아 안해와의 련락이 힘들게 되였다.
50년 여름 맨 선참 탄원한 그는 전선동부인 태백산줄기를 타고 남진의 길에 올랐다. 오대산을 넘고 대관령을 지나 송계골안으로 숨가삐 달려갔을 때 정든 옛 집은 텅 비여있었다. 살펴보니 얼마전까지 사람이 산 흔적이 여실했다.
희망을 가지고 가족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처절한 락동강 싸움터와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의 소요속에서도 눈앞에는 세상에 태여난지 닷새밖에 안되던 사랑하는 딸과 안해와 마음 무던하던 장인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그처럼 애타게 찾던 가족의 행방을 그는 전선에서 소환되여 외국류학을 가기 며칠전 정치공작대로 나갔던 전선위원회의 한 일군을 통해 알게 되였다.
비통한 소식이였다. 가슴 터지는 참사였다. 전쟁이 터지자 남편을 찾아 곧 북행길에 오른 안해는 험한 태백산줄기를 간난신고하며 넘고넘어 철원땅까지 들어왔는데 여기서 놈들의 폭격에 잘못됐다는것이다. 안해의 참사에 눈앞이 캄캄했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았다. 정녕 믿어지지 않았다.
그 어지고 근면하고 골계수처럼 맘씨 곱던 안해가 그렇게 빨리 저세상으로 갈수가 없었다.
방하철은 가슴을 치며 다시 전선으로 보내줄것을 강력히 호소했다. 원쑤를 갚지 않고는, 천백배로 복수하지 않고는 순간도 참아낼수 없었다.
혈육 한점 없는 그에게 안해와 딸은 삶의 전부였고 온넋이였다. 그 삶과 넋을 송두리채 앗아간 미제원쑤놈들을 그냥 두고 조국을 떠날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어디선가 남편을 부르며 아버지를 찾으며 이 원쑤를 갚아달라고 피타게 절규하는것만 같았다. 그들이 아직 남쪽 송계골에 생존 당시 남편과 아버지구실을 못해 늘 죄책감을 안고 모대기던 자신이였다. 며칠후면 만날수 있을것 같아 딸애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훌쩍 떠나온 자기였다. 마지막 림종의 그 시각, 이 못난 남편과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겠는가. 눈도 감지 못한채 원망하며 저세상으로 갔을 사랑하는 안해와 딸의 령혼이라도 내곁에 있어주렴.
그럼 한생이 다할 때까지 그대들의 령혼에 내 삶과 넋을 고스란히 바쳐가리…
밤하늘의 별들도 피맺힌 사연에 귀를 기울이듯 오구작작 모여들어 더욱 여무진 빛을 뿌리고있었다. 밤이 퍽 깊어진것이다. 그린듯이 앉아 혀끝을 꼭 깨물고있는 리숙의 하얀 볼우로 두줄기 맑은것이 그침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방하철은 속이 답답한듯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어깨며 머리우에 새벽이슬이 소리없이 내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