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라석호가 황철로 떠난지 열흘째 되는 이른아침이다.

로상부에서 밤을 꼬박 밝힌 한대식은 휘훤히 트이는 동녘을 향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신선한것이 페장깊이 꽉 들어차며 욱신욱신하던 몸이 거뿐해지는것 같다. 연분홍노을은 어느새 주홍색으로 변하더니 광막한 대공을 황금빛으로 만들어버린다. 청명할 징조다. 로조작과 반응상태를 관찰하느라고 충혈진 그의 눈에도 황금빛노을이 어리더니 따스한 미소가 피여난다. 좀처럼 볼수 없던 그윽한 미소였다.

《연구사선생-》

로아래에서 석근수가 한손을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로장의 직무를 맡고있으나 인원이 없다보니 재배출과 송풍조절까지 담당하고있는 석근수다.

《이젠 좀 내려오게.》

한대식은 층계를 콰당거리며 로밑으로 뛰여내려갔다.

《아바이, 송풍압을 떨쿠지 않았지요?》

《떨쿠다니. 벌써 열두시간째 변동이 없네. 저 계기를 보게나.》

석근수는 성급히 뛰여내려온 그의 행동이 이상하여 두눈이 긴장해졌다. 피끗 계기에 눈을 주고난 한대식이 석근수의 두손을 꽉 그러잡았다.

《이젠 된것 같습니다. 로가 제구실을 합니다. 아바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난 또 허허… 선생이 된것 같다면 됐겠지 내가 뭐 아우.》

《로상태야 로장인 아바이가 책임져야지요.》

《선생두 그런 롱을 다 할줄 아슈. 허허…》

석근수는 유쾌한 소리로 껄껄 웃었다. 한대식이도 느슨히 따라웃었다.

그들은 이 순간 성공했구나! 하는 환희의 감정에 사로잡혔으나 감히 그 격정을 터치지 못했다.

이 시각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간고하고 참기 어려운 나날을 보냈던가.

잠시 그들은 차고넘치는 격정과 생각들로 묵묵히 발생로만 바라보았다.

이때 가벼운 발자국소리와 함께 금희가 나타났다.

《안녕들 하세요. 밤새 수고들 많았겠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이런 인사의 말이 죄송스러웠던지 그의 낯빛은 금시에 발그시 물드는데 노을빛까지 받아 활활 타는듯 싱싱해보였다.

《오늘은 금희가 더 이뻐보이누나.》

더욱 옹색을 느낀 금희는 석근수를 곱게 흘겨보더니 한대식의 곁으로 가서 낮으나 빠른 말로 물었다.

《선생님, 밤새 다른 파동은 없었습니까?》

어제밤 성공의 예감이 보여 들어가지 않겠다는것을 떠밀어 집에 보냈던 금희다.

《로는 어제밤 그대로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아바이 그것이 사실입니까!》

금희의 커다란 눈에 맑은것이 핑 고였다. 석근수가 흐뭇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희, 우리 조급히 결론부터 내리지 맙시다. 우선 어제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생산된 가스의 유효성분량을 따져봐야겠소.》

한대식의 목소리도 저으기 흥분되여있었다.

《알겠어요. 제꺽 분석해보겠어요. 전 꼭 이렇게 될줄 알았어요.》

금희는 하얀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활짝 웃었다.

금희의 출현은 한껏 격양된 로현장에 싱그럽고 향긋한 훈풍을 몰아온것 같았다.

그들이 목욕을 하고 휴계실에 들어서는것과 동시에 분석수치를 든 금희가 바람을 일쿠며 달려왔다.

《선생님. 분석결과가 나왔어요. 어제밤 12시전보다 가스의 유효성분량이 3%가 더 올라갔어요.》

석근수는 의례 그러리라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흡족해했다.

《다섯시간전부터 유효성분량이 점차 높아져 지금은 60%를 훨씬 넘고있어요.》

분석수치가 기록된 종이를 받아든 한대식의 두눈엔 환희의 불꽃이 튀였다.

석탄가스중 유효성분이 60%를 넘으면 얼마든지 생산에 도입할수 있다. 로운영에서도 일주일간의 실태를 봐서 신뢰성을 담보할수 있다. 결국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알탄에 의한 무연탄가스화가 성공했다고 말할수 있다. 그렇다. 이것은 틀림없는 성공이다. 그는 가빠지는 환희의 격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선생님, 이제는 성공했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지요. 그렇지요?!》

《넌 뻔한것을 다짐받누나. 연구사선생, 속시원히 한마디 하시구려.》

석근수도 은근히 속이 달아했다.

《우리 시험조에서 목적한 소기의 테타는 잡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세상에 공개할 일이 못됩니다.》

《아니 뭐가 아직 불미한 점이 있수?》

《첫째루 로운영의 지표를 확정해야 하구 중요하게는 생산에 도입하는 문제입니다. 중간시험단계의 성공은 완전한 의미의 성공이 아닙니다.》

그러나 활기찬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쯤한것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는 석근수와 금희였다. 금희는 자신의 앙양되는 기분을 주체할수 없는지 코노래를 부르며 또다시 발생로쪽으로 힝 달려간다. 처녀의 들뜬 모습을 애무에 넘쳐 바라보던 석근수가 은근히 물었다.

《연구사선생, 이젠 어쩔셈인가요?》

《글쎄요.》

한대식은 어정쩡히 대답했다. 망설임은 이 순간에 생긴것이 아니였다. 성공이 예감되는 이삼일전부터 심사숙고해온 문제였다. 무연탄가스화를 인정하지 않을뿐아니라 지어 반감까지 가지고있는 부상이 있는 이 공장에서 생산에 도입한다는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이제 자리를 옮겨 다른 공장에 찾아간다는것도 말이 안된다.

《연구사선생의 심정을 알만 합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마슈. 세상에 없는 이 좋은 발명을 해놓구 도입을 못한다니 말이 됩니까. 내 이 길로 지배인을 찾아가겠수다.》

석근수가 분연히 일어서며 당장 떠날 차비다.

《아바이, 좀 진정하십시오. 좀 다른 방도를 모색해봅시다. 지배인한테 가봐야 헛걸음이나 칠겝니다.》

《다른 방도가 있을수 없수다. 이날이때까지 고생한 목적이 뭡니까. 가스화는 지체없이 우리 비료공장에 도입해야 하우다. 지배인두 아마 직접 와서 보면 생각이 달라질거우다.》

《…》

《연구사선생은 여기서 눈이나 좀 붙이시오. 내 얼른 갔다오겠수다.》

한대식은 더 만류하지 않았다. 만류한다고 하여 아니갈 석근수가 아니며 또 현재 다른 출로도 없는것이다.

석근수가 바람을 일쿠며 지배인을 찾아가자 한대식은 그만 휴계실 한쪽에 놓인 긴 의자에 쓰러지고말았다. 몰려드는 피곤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가스의 유효성분량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로반응상태가 순조로와지자 이틀밤을 로상부에서 지새운 한대식이다. 환희의 그 기대감이 확정된 이 순간 초긴장이 확 풀리며 온 육신이 풀김치처럼 노그라졌던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누군가 소곤대며 밝게 웃는 소리에 그는 눈을 떴다. 손목시계를 보던 한대식은 펄쩍 놀라며 밖으로 나갔다.

《이제야 깨나셨군요.》

휴계실밖에서 금희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던 안해가 마주 다가왔다. 한대식은 로상부부터 살폈다.

《금희동무, 지배인실에 간 아바이는 아직 안돌아오셨소?》

《아마 어디 좀 들린것 같습니다. 방금전 지배인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배인동진 가스성분량을 몇번씩이나 곱씹어 확인하더니 적은 인원으로 아주 용케 해냈다구 몹시 기뻐하시면서 만사를 제끼구 곧 나오겠답니다.》

《지배인동지가 그랬단 말이지?!…》

한대식은 정신이 맑아지며 가슴이 설레였다.

《오늘은 지배인동지보다 그렇게 반대하던 부상동지가 꼭 나와야 제격인데. 아마 자기 눈으로 직접 보면 꿈이 아닌가 해서 두눈이 당장 이렇게 뒤집힐거예요. 호호…》

금희는 두눈을 뒤집는 시늉을 해보이며 까르르 웃었다. 혜련이도 그 모양이 심통하여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며 따라웃었다.

《선생님, 어서 아침식사부터 하세요. 사모님이 벌써 두시간나마 기다렸어요. 로상부엔 제가 올라가있겠어요.》

금희가 춤추듯 로상부쪽으로 달려가자 한대식과 혜련은 휴계실로 들어갔다.

《당신이 끝내 견뎌냈군요. 금희한테 다 들었어요. 정말 큰 고개를 넘겼어요. 이게 몇년만이예요. 무슨 일이나 끝이 있긴 있군요.》

밥보자기를 풀어놓던 혜련은 흥분을 누르지 못해 목멘 소리로 말했다.

《다들 도와준 덕이지. 그동안 당신도 수고많았소.》

《그런데 오늘 지배인동지랑 나와본 다음엔 어떻게 되나요?》

《공장에서 시험로를 정식 인계받아 생산에 투입하는 한편 국가계획에 물려 발생로직장을 건설하게 되오.》

《그러세요?!… 이젠 됐어요. 만사가 풀렸어요. 여보, 어서… 어서 식사를 하세요.》

솟구치는 내심의 환희와 격정을 참는듯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한대식은 천천히 절을 놀렸다. 여느날과 같은 식찬이였으나 별스레 구미가 당겼다. 잠간 사이에 사발밑굽까지 말끔히 낸 그는 그때까지 말 한마디 없는 안해가 이상하여 고개를 돌렸다. 의자 한귀퉁이에 소곳이 앉은 안해의 눈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아니 당신 왜 그러오?》

그 소리에 혜련은 웃몸을 흠칫하더니 얼른 미소를 그려보였다.

《제가 뭐 어쨌나요?》

《그런데 눈물은 왜 흘리오?》

그때야 혜련은 급급히 눈굽을 찍었다.

《사실은 지나간 일들이 자꾸 떠올라서… 여보, 철이가 얼마나 안타까이 기다리고있을가요. 여보, 여기 일을 빨리 결속하구 어서 집으로 올라가자요.》

《집이라니?…》

《이젠 당신 할일이 더는 없는데 왜 하루인들 지체하겠나요. 전 오늘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어요.》

《물론 연구사로서의 몫은 없다고 할수 있소.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많아.》

《무엇이 또 안심찮아 그러세요?》

혜련은 무엇에 찔리기라도 한듯 놀란 소리로 물었다.

《내 말을 좀 듣소. 지금 공장에서 본격화되고있는 전해확장준비를 당신도 봤을거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겠소. 그것은 나를 비롯한 우리 연구사들이 지난날 일을 쓰게 못했기때문이요. 그래서 나는 시험로가 은을 내여 전해확장대신 발생로계통으로 생산공정을 바꿀 때까지 여기를 떠날수 없소.》

무슨 말인가 하여 귀담아듣고있던 혜련의 눈가에 점차 실망의 그늘이 비꼈다.

《여보, 오늘은 저도 말좀 하겠어요. 당신이 이날이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별의별 일을 다 맡아안고 고생한것만두 끔찍한데 아직 뭐가 부족해서 그러나요? 전 당신이 어느 하루 집안에서 발편잠을 자는것을 보면 한이 없겠어요. 이젠 철이가 아버지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형편이예요. 당신은 자신이 과학자라는걸 부디 잊지 마세요. 전해확장대신 발생로계통을 하는거야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할수 있지 않나요. 그런 일때문에 귀중한 시간과 땀을 또 흘리겠나요. 전 가끔 10여년간 당신이 바친 그런 땀과 정력으로 서재나 연구실에 앉아있었다면 분명 이름높은 박사가 됐을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군 해요.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당신의 목표가 성취됐는데 한가족이 모여 살고싶은 저의 소원마저 그런 리유로 들어줄수 없단 말이예요? 정말 야속해요. 너무해요. 고진감래라는 말도 당신한테는 정녕 맞지 않는군요. 그런 맘을 먹구있었으니까 얼마전엔 철이까지 데려오자고 하셨군요.》

《그만하오.》

한대식이 버럭 역성을 냈다. 그냥 듣고있다간 그 푸념과 하소연이 끝이 없을것 같았다.

《난 당신이 그렇게 약한줄은 몰랐소. 그렇게 자기만을 생각하는 집안의 아낙네로 살고있는줄 몰랐단 말이요.》

《그건… 그건 너무 혹독하시군요. 당신이 어쩜…》

혜련은 원망이 가득한 야속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북받치는 설음을 참느라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한대식은 속이 텅 빈듯 쓰렸다. 그 어떤 배신을 당한것같은 아픔과 허무감이 명치끝을 찌르고들었다. 했으나 솟구치는 오열을 참느라고 세차게 들먹이는 안해의 등어깨를 바라보는 순간 자기가 너무했다는 후회가 났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안해의 어깨에 한손을 얹으며 안타까이 타일렀다.

《여보, 내가 지나치게 말한것 같은데 용서하오. 이날까지 당신한테 대접만 받아오는통에 남편구실을 제대로 못했구려. 이것보오. 당신은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찾아하는것처럼 여기는데 그건 심히 잘못된 견해요. 오늘 우리의 과학자들은 단순한 연구사가 아니라 적극적인 실천가이며 당정책의 관철자라는걸 알아야 하오. 더구나 석탄가스화는 내 필생의 넋과 같은데 어떻게 이만한 성과에 손털고 나앉겠소. 이런 내 마음을 당신이 그래 모른단 말이오?》

한대식의 목소리는 한껏 부드럽고 진지했다.

《철이 아버지. 그만하세요. 저도 그렇고 또 당신두 너무 지친것 같아서… 이제 더는 그럴 힘이 없을것 같아 겁이 났댔어요. 솔직히 아무리 굳세고 완강해도 사람인이상 한도가 있지 않나요. 전 그 한계점이 넘었다고 봤어요.》

한대식은 내성적이고 소심하기만 하던 안해가 주저없이 속을 드러내보이는 그 달라진 모습이 반가웠으나 마음은 그닥 가볍지 못했다. 안해는 여전히 종전의 그 미련과 낡은 생활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여보, 무슨 일이나 결심이 힘들지 일단 결심만 하면 이 세상 두려운것도 못해낼 일도 없소. 여보, 우리 그런 결사의 각오로 살아갑시다. 내 엊그제 우리 철이문제를 석근수아바이한테 말했더니 아주 잘 생각했다구, 다문 한달을 여기 와서 살아도 그 이상 좋은 일이 없다구 합디다. 그러니 적당한 기회에 당신이 한번 올라갔다오오.》

《다들 그렇다니… 좀 생각해보겠어요.》

낯빛이 창백해진 혜련이 고개를 푹 떨쿤채 가늘게 대답했다.

《자, 이젠 어서 들어가보오. 시운전을 보러 지배인동지랑 여기로 나오실거요.》

오후 4시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지배인일행이 현장에 나타났다. 마치 회의장주석단에 나오듯 맨앞에 하얀 와이샤쯔에 초물중절모를 쓴 부상이 거쿨진 몸을 비둔하게 움직이는데 갱핏한 키의 지배인이 무슨 말인가 설명하며 그의 옆에 따라왔다. 그뒤로 기술과장을 비롯한 기술과 성원들이 줄레줄레 보였다. 한대식은 좀 당황해졌다.

지배인 한사람만 조용히 초청하여 보인 다음 로운영조작에 필요한 인원을 보충받아 시운전할 계획이였었다. 지금의 세명으로선 무연탄가스화의 전반 공정을 도저히 보여줄수 없는것이다.

《부상은 왜 갑자기 끼여드는지 모르겠군요?》

한대식이 부지중 근심어린 소리로 물었다.

《차라리 잘됐쉐다. 부상이 장벽처럼 막아서는데 지배인 혼자 와서 보면 뭘하겠수?》

하긴 석근수의 말처럼 어떤 측면에선 잘된것 같았다. 무연탄가스화가 이 공장에만 국한된것이 아니라 미상불 다른 비료공장들과 화학공업에 시급히 도입해야 할 현실적문제인것만큼 부상을 납득시키는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만약 부상의 지지를 받는다면 빠른 시일안에 전국적판도에서 가스화를 실현하게 될것이다.

지배인 일행은 곧장 발생로앞으로 오더니 로를 향해 빙 에둘러선다.

《부상동지가 직접 발생로의 운전조작과 가스생산공정을 보겠다고 해서 왔습니다.》

지배인이 한대식의 옆으로 다가와 나직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느 공정부터 보시겠는지… 다르게 생각진 마십시오. 현재 세명의 인원을 가지고는 알탄성형과정을 비롯한 여러 공정을 동시에 보여줄수 없기때문에 부득히 량해를 구하는겁니다.》

방하철은 묻는듯 한 눈길로 부상 남주혁을 쳐다본다. 틀스레 서있던 남주혁은 대범한듯 헌헌한 태도를 보이였다.

《여기 온 사람들은 지배인을 비롯해서 모두가 기술자들인데 첫공정부터 시시콜콜 다 봐야 맛이겠소. 그러니 유효가스가 나오기까지의 공정을 대충 설명해보구려.》

한대식은 남주혁의 말뜻을 미처 알수가 없어 송구스레 다시 물었다.

《요구하시는 취지의 뜻을 다시한번 말씀해주십시오.》

《이런 변이라구. 듣구두 모르면 야단 아니요. 지배인이 좀 설명해주오.》

남주혁은 입이 쓰겁다는듯 중절모를 벗어 부채질을 활활 했다.

《가스생산공정을 리론적으로 설명해보라는 뜻이요. 침착해서 말해보시오.》

한대식은 속이 불끈했다. 현장에 나와서까지 생산공정을 직접 보지 않고 리론적설명을 듣겠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고심참담한 창조물이 여지없이 무시당하고 롱락되는것 같아 의분을 금할수 없었다. 마뜩잖은 눈길로 땅굽만 내려다보는 그의 태도가 심상찮아 보였던지 방하철이가 바싹 다가서며 귀속말로 독촉했다.

《왜 말이 없소? 우선 리론적인 파악이 있어야 생산공정을 제대로 볼게 아니요.》

한대식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부상 남주혁의 쏘는듯 한 눈길과 마주쳤다.

그 눈길을 외면한채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가스화에 대한 일정한 견해가 있는것만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들이 이번에 완성한 발생로는 알탄에 의한 가스화공정입니다. 그런데 알탄성형기가 완전기계화되지 못해 알탄제조에 일정한 애로가 있습니다. 알탄만 있으면 가스는 얼마든지 생산할수 있습니다. 물론 로조작운영에서 아직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 점들이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숙련이 필요한만큼 문제로 되지 않습니다. 현재 로내반응층은 1.5m이며 가스의 유효성분량은 60%를 넘고있습니다. 때문에 생산에 도입할수 있는 궤도에 확고히 들어섰다고 봅니다.》

《가만, 내 한가지 물읍시다.》

남주혁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만하면 생산에 도입할수 있다는데 수지바란스는 어떻게 타산했소?》

《구체적인 타산은 못해봤습니다. 아직 시험단계고 알탄성형기를 비롯한 설비들이 완비되지 못해 품은 많이 듭니다. 한마디로 현재 수준에서는 전해법에 의한 비료생산보다 원가가 많이 먹고 작업조건도 나쁩니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발생로가 첫시작이라는겁니다. 지금의 부족점은 시간이 해결해줄것이며 원천이 풍부한 무연탄의 종합적리용은 우리 화학공업에서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될것입니다.》

한대식은 어느덧 흥분되여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에는 무연탄가스화에 의한 화학공업의 종합적인 발전면모가 보이는것 같았다. 그때가면 무연탄이 그대로 비료더미로, 화학의 중요한 기초물질로 될것이며 가스로 제철제련을 하고 가스로 밥을 짓고 난방을 보장하여 생활이 또한 문화적일것이다. 그가 한창 열에 떠서 설명하는데 두번째로 남주혁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런 공상은 후에 듣기로 합시다. 지배인동무, 이젠 그만하지 않겠소?》

남주혁이 초물중절모를 꾹 눌러쓰며 방하철을 돌아본다.

《좀더 들어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혹시 지배인두 공상가가 된게 아니요? 오지 않겠다는 이 부상을 부진부진 끌구오더니 내가 정신착란이라두 일으켜야 시원하겠소. 듣겠으면 혼자서나 듣소.》

비둔한 몸을 홱 돌려 몇걸음 가던 남주혁이 한대식을 향해 한마디 했다.

《연구사동무, 그만했으면 소기의 연구목적이 실현된것 같소.》

《?!…》

《이젠 맘놓고 어서 과학원에 올라가보시오.》

한대식은 속에서 불덩이같은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원래 부상이란 인간을 좋지 않게 보아왔으나 공업화단계에 이른 오늘까지 이처럼 랭혹하게 대할줄은 몰랐다.

그는 솟구치는 흥분을 누를수 없어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부상동지, 묻고싶은게 있습니다.》

《어서 말하오.》

《부상동진 처음부터 무연탄가스화에 대한 견해가 다른것 같은데 그 까닭이 어데 있습니까?》

《연구사선생, 무슨 그런 말을 하오?》

낯색이 달라진 한대식의 표정을 불안하게 주시하고있던 방하철이 얼른 그를 눌러놓았다.

《그냥 놔두. 이때까지 발생로 하나만을 붙들고 살아왔으니 그럴수 있겠지. 동무도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질문을 하는것 같은데 여기있는 지배인이나 기술자들한테 좀 물어보오. 자, 누구 한번 속시원히 답변해주시오.》

《…》

《그럼 내가 말해주지. 해방직후나 전쟁때라면 동무의 그 발생로가 하나의 발명으로 지지를 받을거요. 그러나 지금은 50년대 말이요. 온 나라가 천리마로 세차게 내닫는 비약의 시기란 말이요. 이 시대적명분앞에 우린 누구나 충실해야 하오. 자기라는 개인을 잊어야 한단말이요. 그런데 동문 자기가 붙든 연구쩨마라고 해서 그냥 고집하면 되겠소. 발생로가 좋다면야 왜 여기 있는 지배인이나 기술자들이 고개를 기웃거리겠는가 말이요. 내 언젠가 동무를 처음 만났을 때 물은적이 있지요? 동무의 그 생활방식이 리해되지 않는다구.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전의 그 낡은 생활습성을 대담하게 버리시오. 나라의 과학발전을 위해 진심으로 힘써줄것을 내 다시한번 충고하오.》

한대식은 숨이 컥 막히였다. 만날 때마다 느껴왔지만 부상이 이처럼 현실에 암둔할줄은 생각밖이였다. 더우기 무연탄가스화를 어느 한 과학자의 연구쩨마로만 치부하고 롱락하는데 대해선 의분이 끓어올라 견딜수 없었다.

《전 오늘에야 부상동지의 견해를 잘 알게 됐습니다. 정말 상상밖입니다. 무연탄가스화를 어떻게 그렇게 홀시할수 있습니까. 부상동지가 중시하는 그 시대적명분이란 과연 뭡니까. 무연탄가스화야말로 우리 현실의 절박한 요구가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당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힘을 넣고있다고 봅니다. 화학공업의 중책을 지니신분이 우리 당의 이 의도를 잘 아시겠는데 왜 그렇게 외면하는가 말입니다.》

순간 남주혁의 그 유들진 아래턱이 부르르 떨리고 작을사 한 세모진 두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칼끝같은 긴장이 사람들의 가슴을 써늘하게 했다. 그러나 잠시후 울려나온 남주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동문 과학자답지 않구만. 과학자야 과학자답게 현실적인 론거로써 상대를 납득시켜야지 그런 식으로 자기를 변호하면 쓰오? 지배인동무, 어서 갑시다.》

남주혁은 더 마주서고싶지 않다는듯 지배인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가지만 더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한대식이 황급히 그의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의분으로 끓고있던 그의 눈빛은 어느덧 초조와 긴장으로 변했다. 부상과 이렇게 헤여질수 없다는 절박한 의무감이 내심의 흥분을 눌러버렸던것이다.

그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절절히 말했다.

《부상동지, 부탁합니다. 발생로에 대해 다시한번 잘 생각해주십시오. 그리구 현재 벌려놓은 전해확장공사를 좀 고려해주면 좋겠습니다.》

《?!…》

무슨 생뚱같은 소리냐는듯 남주혁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사실 제가 일을 쓰게 못해 아직 공장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신이 생깁니다. 빠른 시일안에 발생로를 더 잘 완비해서 시비년도전으로 증산과제를 풀어보겠습니다. 그러니 전해확장문제를 심중히 토론해주시길 바랍니다. 간절한 부탁입니다.》

《?!…》

남주혁은 입을 약간 벌린채 한대식의 얼굴만 쳐다봤다. 자기가 무엇인가 잘못들은것 같았던것이다.

《부상동지, 저희들을 믿어주십시오. 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꼭 해내겠습니다.》

마침내 남주혁이 지배인쪽으로 고개를 픽 돌리였다.

《지배인동무, 내 그때 뭐랬소? 쓸데없는 동정이 사람 못쓰게 만든다구. 과학자를 아껴주고싶거든 똑똑히 도와줘야 할게 아니요. 더 큰 과오를 범하기전에 당장 발생로를 해체하시오.》

성칼스레 쏘아붙인 남주혁이 황황히 현장을 떠나고 말았다.

《지배인, 저 부상이 도대체 제정신이 있소? 이게 어찌된 일이요?》

사람들 어깨뒤에 서있던 석근수가 아연하여 넋없이 서있는 지배인에게 들이댔다. 방하철은 육박하듯 다가드는 석근수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분해요. 이건 너무해요. 어쩌면 그렇게 매몰스러울수 있어요? 세상에 그렇게 차거운 사람이 어데 있어요?》

금희가 남주혁이 사라진쪽을 향해 눈물을 뿌리며 부르짖었다. 어리벙벙 서있던 기술과장과 그 성원들이 저희들의 잘못이기라도 한듯 당황하여 자리를 피했다.

이윽하여 방하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금희, 너무 락심마오. 내 책임이 크오. 사전에 조직사업을 잘해서 빈틈을 보이지 말아야 했는데 웬걸 하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댔소.》

이렇게 푹 꺼진 소리로 말한 그는 한대식의 곁으로 다가갔다.

《연구사선생, 난 오늘 기쁩니다. 선생은 실천으로 나에게 호된 매를 안겼습니다.》하고 그의 두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럼 지배인은 부상과 견해가 다르단 말이우?》

석근수가 여전히 쏘는듯 한 눈길로 반신반의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종래의 고집을 주장하던 자존심 강한 지배인이였었다.

《아바이, 솔직히 제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불과 세명의 적은 인원으로 이처럼 높은 성분량의 가스를 만들어냈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바이,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금희도 참 어려운 일을 해냈소.》

방하철이 흥분되여 말했다. 일단 옳다고 보면 체면이나 틀같은건 생각지도 않는 그 불같은 성미다. 그때야 석근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배인이 그렇게 인정해주니 내 마음이 흐뭇하웨다. 연구사선생, 지배인의 말을 들었지요. 선생은 끝내 해내고야 말았소.》

했으나 아까부터 깊은 생각에 잠긴 한대식의 눈빛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연구사선생, 이젠 맘놓고 발생로를 공장에 정식 넘겨줄 기술준비나 해주시오. 발생로를 인계받을 작업반은 래일중으로 조직하겠소. 황철에 간 라석호도 곧 소환하고 오일규반장이랑 종전의 성원들을 기본으로 더 크게 묶자고 하오. 내 부상동지와 그렇게 합의를 보겠소.》

방하철의 어조에는 내심의 강단이 비껴있었다. 라석호를 소환한다는 말에 금희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지배인동지, 고맙습니다. 그러나 아직 발생로를 공장에 넘겨줄 생각이 없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말에 방하철의 눈이 심각해졌다. 석근수와 금희도 믿어지지 않는 눈길로 한대식을 뚫어지게 봤다.

《난 선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혹시 부상동지때문에 그러오 아니면 한때 동요하면서 막아나섰던 이 지배인이 못미더워서 그러오?》

《지배인동지, 그런게 아닙니다. 다만 제 량심이 허락치 않아 그럽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이요. 누가 선생의 그 량심을 의심한단 말이요?》

방하철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어성을 높였다.

《지배인동지, 알탄성형기와 점결제 등 제가 꼭 해결해야 할것들이 남아있습니다. 며칠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순간 한껏 긴장해있던 방하철이며 석근수, 차금희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그랬댔구만. 이때까지 내가 설비설비하면서 주저하고 막아나섰던것만은 사실이요. 그러나 이젠 내가 졌다고 방금전에 말하지 않았소. 그런건 우리 공장에서 맡아할테니 더는 걱정마오. 아바이, 래일부터 공장에서 정식 인계받도록 합시다.》

《알겠수다. 암, 어서 그래야지요.》

석근수가 흔연히 대답했다. 방하철은 당면하여 발생로운영에서 제기될수 있는 문제들을 료해한 후 현장을 떠났다.

부상 남주혁의 조폭한 처사로 잠시 썰렁했던 시운전현장은 방하철의 허심한 리해와 적극적인 태도로 분위기가 급전되였다.

한대식의 마음은 기쁨으로 설레였다. 누구보다 자존심과 주견이 강한 지배인 방하철의 사고방식을 바로잡아주는것이 산악을 떠안은것만큼 어렵게 생각했는데 오늘 드디여 그런 결심과 조치까지 취해주니 다행스럽기 그지없었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듯 온몸이 홀가분했다. 그래서 그는 이미부터 가지고있던 자기의 결심을 석근수에게 터놓았다.

《아바이, 전 이길로 룡성기계에 가봐야 하겠습니다. 그 공장에 가서 알탄성형기를 만들어오려고 합니다.》

석근수가 뜨아한 어조로 물었다.

《알탄성형기야 우리 공무에서도 만들수 있지 않수?》

《물론 만들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전문기계공장에 가서 보다 잘 만들자고 합니다. 그리구 부상이 있는 여기서는 아무래두 말썽이 생길것 같아 그럽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석근수는 금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 금희야. 발생로에 좀 올라가봐라. 난 선생하구 이 일을 더 의논해봐야겠다.》

《알겠어요, 선생님, 이제부턴 발생로를 제가 맡아볼테니 선생님은 맘놓구 어서 다른 일 보십시오.》

금희가 한대식을 향해 생긋 웃어보인 후 발생로상부로 뛰여오르자 석근수는 자못 심중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연구사선생, 잘 생각해보시우, 선생이 알탄성형기때문에 룡성에 꼭 가야겠수? 지금이야 발생로를 하루빨리 생산에 도입하는게 급선무가 아니슈. 오늘의 이 순간을 앞당기자구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고비를 참고 견디여왔는가말이요. 룡성에 정 가야 한다면 다른 사람을 보냅시다. 선생은 이젠 너무 지쳤단말이우다.》

석근수의 태도는 완강하고 절절했다.

《아바이, 저도 하루처럼 오늘의 이 시각을 기다려왔습니다. 하지만 부상동지가 수지바란스를 따지며 완강히 반대하니 속이 좋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당의 의도가 아직 원만히 관철되지 못했다는걸 의미합니다. 더구나 알탄성형기문제는 저때문에 아직 기술부설계실에 묻혀있지 않습니까?》

《선생은 아직두 로동계급들처럼 대범하지 못한게 탈이군요. 내 한마디 싫은 소릴 합세다. 발생로를 인정부터 하지 않는 그 부상이란 량반의 말에 더 신경쓰지 말라는거요. 그리구 힘든 작업공정때문에 맘 놓지 못하는데 우리 로동자들이 언제 그런걸 타산하는줄 아시우. 우린 당에서 의도하고 바라는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수다. 항차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발생로를 왜 하루인들 지체시키겠수? 까놓구 말해서 선생보다 내 마음이 더 급하우다.》

한대식은 안타까이 권고하는 석근수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 얼마나 진실하고 뜨거운 믿음인가. 그는 목멘 소리로 사정하듯 말했다.

《아바이, 저도 이젠 우리 로동계급을 잘 압니다. 그래서 더욱 룡성으로 가고싶습니다. 과연 우리 로동자 한사람한사람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아바인 해방직후 이 공장에 오신 수령님을 제일 먼저 만나뵈운분으로서 우리 수령님께서 로동자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신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그런 로동자들에게 자그마한 불편이라도 준다면 제가 무슨 수령님의 뜻을 받든 연구사라고 하겠습니까?》

순간 안타까이 굳어졌던 석근수의 우묵한 눈확에 따스한 회억의 미소가 어렸다. 그는 한대식의 두손을 꽉 그러잡았다.

《고맙쉐다. 내 미처 그 깨끗한 속을 몰라봤구려. 선생이 이처럼 수령님의 뜻을 충직히 받들려고 애쓰는것을 보니 문득 해방직후의 나날들이 눈앞을 꽉 채우는군요…》

《아닙니다. 전 아직 수령님의 뜻과 의도를 충성으로 받들자면 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미흡하나마 발생로시운전을 해놓고보니 지나온 생활이 떠오르면서 수령님의 영상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집니다. 아바이, 아바인 수령님을 만나뵙던 해방직후의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계시겠지요?》

열기띤 그 음성은 그리움과 경모에 한껏 젖어있었고 사색적인 그 눈은 환희로 번쩍였다. 추억에 잠긴 한대식의 감회어린 얼굴은 감히 건드릴수 없을 정도로 엄엄해보였다. 그 모습을 얼마간 바라보던 석근수가 감격어린 소리로 뇌였다.

《참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난 정말 뜻밖에 그런 행복을 받아안았구려. 수령님께서는 나의 이 손을 꼭 잡으시고 아바이의 손은 나라의 쌀독을 마련하는 귀한 손인데 왜 이처럼 험하게 됐는가고 자꾸만 쓸어주시는것이 아니겠수. 수령님께서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던 음성이 지금두 들려오는것만 같쉐다…》

한대식은 북받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석근수의 두손을 더욱 꽉 그러쥐였다.

《어서 그날의 일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때 일을 한번 더 듣고싶습니다. 오늘은 왜 그런지 그날의 수령님모습이 눈물이 나오도록 간절해집니다.

아바이도 알고계시지만 제가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난 복받은 날이 진정 그 뜻깊은 날이 아닙니까. 아바이!》

석근수는 고개를 크게 끄떡이며 한대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과시 옳은 말이웨다. 그날은 선생같은 과학자들뿐아니라 나라의 화학공업이 새롭게 창시된 력사적인 날이기도 하지요. 자, 우리 저쪽에 가서 좀 앉읍세다. 그러지 않아도 선생한테 꼭 말해주고싶었수다.》

그들은 발생로앞 쇠란간에 가서 나란히 앉았다.

《…그때가 45년도 12월초 어느날이였수다. 해방된지 몇달이 지나갔으나 공장은 파괴된 그대로 있었지요. 그런데다 못된놈들이 어찌나 날치는지 대낮에도 구석진곳에서 피살된 시체가 드문이 발견되여 사람들을 놀래우던 아주 험한 때였수다.…》

이렇게 말머리를 뗀 석근수의 목소리는 어느덧 감회에 푹 젖었고 우묵한 눈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봄아지랑이마냥 떠올랐다. 복구와 류혈이 치렬하던 어느날 이른아침이였다. 무장자위대성원들과 함께 또 한밤을 밝힌 석근수는 날이 훤해지자 손달구지를 끌고 로동조합사무실로 향했다. 암모니아합성탑을 지나 양철지붕을 씌운 단층 사무실앞에 이르렀을 때다. 웅성웅성하는 말소리와 함께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사무실마당앞을 지나 류안직장쪽으로 걸어가고있었다. 웬 사람들인가 하여 그들을 살펴봤다. 지난밤에 손바닥두께만큼 내린 흰눈이 그들의 모습을 뚜렷이 대조시켰다. 공장사람들이 아니였다. 맨뒤에 장총을 멘 자위대원청년 하나가 긴장해서 서있는것으로 보아 그가 손님들을 여기로 안내해온것 같았다.

《마침 저기 누가 나타났소.》

손님들속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일행은 방향을 꺾어 석근수가 서있는쪽으로 다가왔다.

《수고합니다. 이른새벽부터 무슨 손수레를 끌구다닙니까?》

좀전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것과 함께 키가 후리후리한 건장하신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연한 풀색의 닫긴형옷을 입고 그우에 회색외투를 가볍게 걸친 매우 인자해보이시는분이였다. 그이의 미소와 음성이 어찌나 따스하고 부드러운지 석근수는 밤새 얼었던 몸이 한순간에 녹는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내심 자랑어린 목소리로 대답을 드렸다.

《밤에 경비를 서면서 버럭을 좀 뚜져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다지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까. 어디 나두 좀 구경합시다.》

그분께서는 부쩍 흥미를 느끼시며 손수레우에 덮은 거적을 손수 벗기시더니 용접봉이며 석면바킹, 나트와 볼트 등 자질부레한것들을 일일이 만져보시였다.

《이거 정말 노다지를 얻었군요. 동무들도 어서 와보오. 대단하오.》

그분이 몹시 기뻐하시자 함께 온 일행이 손수레를 에워쌌다. 석근수는 그만 게면쩍었다.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구접스레 긁어모아서야 언제 공장을 복구하겠는가고 시비질하기에 보란듯이 큰소리쳐봤는데 이 손님들은 자기 이상으로 기뻐하지 않는가.

《아니 아직도 홑옷을 입고계시는군요… 자, 이것을 어서 걸치십시오.》

송구스레 서있는 그를 유심히 살피시던 그분께서 자신의 회색외투를 벗으시여 석근수의 어깨우에 씌워주시였다.

《이러면 안됩니다. 전 습관돼서 괜찮습니다.》

당황해난 석근수가 외투를 벗으며 손사래를 떨었으나 그분께서는 부디 그의 몸에 다시 외투를 입혀주시였다. 그리고 석근수의 손을 꼭 감싸쥐시였다.

《아바이는 공장을 어서빨리 복구하겠다고 홑옷을 입은채 손끝에서 이렇게 피가 나도록 언땅을 뚜지며 애쓰고계시는데 저는 빈손으로 찾아왔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가슴아프신 안색으로 긁히고 째져 피딱지가 붙은 석근수의 험한 손을 자꾸만 쓸어만지셨다.

석근수는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고 불덩이같은것이 욱 치밀어올라 그만 《헉…》하고 오열을 터쳤다. 손님들앞이여서 참자고 강잉히 혀끝을 깨물었으나 솟구치는 격정을 누를수가 없었다. 어깨가 세차게 들먹이고 두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샘솟듯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 맑고 뜨거운 눈물은 꼭 감싸쥔 그분의 손등우에 연방 떨어져내렸다.

철들기전부터 온갖 천대와 고역과 수모만 받아온 그에게 손은 가장 천하게 버림받은 로동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 버림받아온 손을 이처럼 다심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쓸어만져준 사람은 아득한 그 세월 자기를 낳아 열두살까지 키워준 어머니 한사람뿐이였다. 바로 이 순간 눈앞에는 생존의 어머님 영상이 우렷이 떠올랐고 한없이 자애롭고 따스한 어머님의 체온이 온몸으로 사품쳐 흘러들고있음을 그는 무아의 행복속에 감수했다.

석근수는 다함없는 흠모를 금할수 없어 그분을 우러러 목멘 소리로 불렀다.

《손님은 대체 누구십니까! 어디서 오신분이십니까?!》

《저는 아바이처럼 이 나라를 빨리 세우자고 애쓰는 근로자의 한 사람입니다. 저는 김일성이라고 합니다.》

《아?!… 장군님!!》

석근수는 목이 꺽 메여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이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아, 이런 무엄한 일이 어디 또 있는가. 만민이 우러러모시는 그분을 몰라보다니.

하늘이 낸 걸출한 위인이신 우리 장군님을 모르다니. 일제의 백만관동군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탁월한 령수 백두산의 장수가 이처럼 소박하고 겸허하실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과연 장군님이시야말로 인민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민이시고 가장 평범한 공민이시고 근로자이시구나!

품에 안겨 세차게 들먹이는 석근수의 앙상하게 여윈 어깨를 조심스레 다독여주시는 수령님의 숙연해지신 안색에도 맑은 물기가 맺혀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도내 여러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기 위해 수행원 몇명을 데리고 어제밤 청진행렬차에 오르셨다. 렬차는 예언할수 없게 자주 연착됐고 번잡하기 그지없었다. 수령님께서는 빼곡이 들어찬 려객들틈에 꼬바기 앉으시여 긴긴밤을 지새웠고 도착하는 그길로 이곳 비료공장으로 오셨던것이다.

이때 등뒤에서 《장군님-》하는 격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마가 훤칠한 한 사나이가 엎어질듯 다가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기사장 강지창이 인사드립니다.》

《아, 동무가 강지창기사장이구만.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소.》

수령님께서는 강지창의 두손을 와락 그러잡으시며 세차게 흔드시였다.

《김책동무한테 다 들었소. 고향을 떠나 이 먼곳에 와서 큰일을 맡아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뭐라구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만.》

《장군님, 저같은게 뭐라구 그런 말씀하십니까. 저는 장군님의 품에 안긴 최근에야 진정 삶의 보람을 느끼고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소. 아마 기사장동무가 일하기 무척 힘들거요. 파괴가 너무 혹심하거든.》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드시여 푸름푸름 밝아오는 어수선한 공장구내를 바라보시였다.

《장군님, 장군님 뵙기를 정말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강지창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그런데 난 아무것두 가져온것이 없소. 아바이한테도 말씀드렸지만 난 빈손이요. 그렇지만 잠이 오지 않아 찾아왔소. 해방된 땅에 당장 씨를 뿌려야겠는데 비료가 있어야 하지 않소. 비료는 쌀이고 쌀은 곧 건국이요. 그러니 건국의 시작점은 바로 여기라고 할수 있지. 자, 어디 공장을 좀 돌아봅시다.》

강지창이 옆에서 수령님을 안내해드렸다. 그는 자주 걸음을 헛짚었다. 솟구치는 눈물로 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번잡한 렬차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으시여 밤새 부대끼며 오신 수령님이신데 그 로고도 풀어드릴사이 없이 험하게 뚜져놓은 구내길로 모시자니 큰죄를 짓는것 같았다.

류안직장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생산공정을 일일이 살펴보시며 합성탑에 오르셨다.

이때 함께 온 한 일군이 유해가스가 많고 계단이 미끄러워 올라갈수 없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너그러이 웃으시며 《백두산보다는 가파롭지 않겠지.》라고 하시며 앞장서시였다.

아직 배풍장치가 회복되지 않아 노란 아류산가스가 눈을 뜰수 없게 찔러댔고 불비한 설비들로 하여 작업장은 여간 엉성하지 않았다. 그런데다 추위가 닥쳐와 철판으로 된 발판이 얼음판처럼 변해버렸다.

합성탑꼭대기에 오르신 수령님께서는 싸락눈처럼 쏟아져내리는 류안을 만족하게 바라보시다가 손을 내미시며 한줌 받아쥐시였다.

《이것이 쌀이요. 농민들이 우리 로동계급이 만들어낸 이 비료를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소. 그래 류안직장을 얼마동안에 살려냈소?》

《한달만에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불비한것들이 많아서…》

강지창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모든것을 다 갖춰놓고 생산할수는 없소. 이런 식으로 빨리 생산에 들어가야 하오. 그래야 로동자들의 생활도 안착시킬수 있고 래년도 농사도 보장할수 있소.》

합성탑에서 내려오신 수령님께서는 전해직장과 야외가스탕크들, 바다쪽으로 뻗은 출하장이며 외진곳에 자리잡은 변전소까지 샅샅이 돌아보시였다.

태양은 어느새 장바 한기장만큼 솟았고 수령님의 신발과 바지가랭이에는 까만 먼지가 다보록이 올랐다.

수령님께서 입혀주신 회색외투를 벗어 한손에 받쳐들고 뒤따르고있던 석근수는 다보록이 오른 까만 먼지를 털어드리지 못하는것이 여간 안타깝지 않았다.

공장구내를 구석구석 돌아보시고 다시 단층 사무실에 이르신 수령님께서는 곧 협의회를 조직하시였다.

공장의 지휘성원들과 기술자, 핵심로동자들이 여기에 참가했다. 회의참가자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나누신 그이께서는 우선 공장관리운영에서 애로되는 점들을 친근하게 물으시였다. 환희와 흠모와 감격으로 격랑세찬 바다처럼 끓어번지던 좌중은 그 물으심에 잠짓해졌다.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온 나라의 산업이 페허로 되고 진통을 겪고있는데 무슨 말씀을 드리랴.

더우기 철저히 식민지략탈대상으로 되였던 이 공장의 실태는 더 한심했다. 일제의 고률리윤대상이던 비료공장은 종주국의 괴멸과 함께 종말상태에 처했던것이다.

1900년 초부터 산업계에 진출한 청소한 자본가 노구찌는 교활한 사기협잡으로 몇년안가서 자본 2천만원의 거부로 되였고 1차대전시기에는 교전국들과의 전시무역을 통해 막대한 초과리윤을 획득할수 있었다.

원래 일본 구주에 크지 않는 석질공장과 수력발전소를 경영하고있던 노구찌는 자본이 축적되자 이딸리아에서 방금 성공한 한가자례식 암모니아합성법특허권과 설비들을 수입하여 현대적인 화학공장들을 신설하기 시작했다.

자국내에서 독버섯처럼 솟아난 노구찌는 일본군벌들이 흔들어대는 침략의 지휘봉에 따라 제일선참 조선땅에 기여들었다.

당시 다나까내각군벌은 소화천황에게 보내는 상주문에 이렇게 뇌까렸다.

《만일 대화민족이 아시아대륙에서 출중하기로 원한다면 만저우와 몽골에 대한 지배권을 자기 수중에 장악하는것이 그의 첫걸음으로 될것이다. …우리 민족의 번영가운데는 생각컨대 조선의 부원을 깡그리 점탈 소유함으로써 전쟁에 필요한 수단을 조속히 확보하는것이다…》

일본군벌의 철저한 하수인 노구찌는 1927년 흥수땅에 기여들어 비료공장건설을 꾀하였다.

이놈이 노린 목적은 극도의 렴가를 지불하고도 얼마든지 구할수 있는 로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리용하여 조선 및 장차 점탈하게 될 광대한 중국시장에서 상품판로를 개척하며 점차 자기 기업을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화학공업으로 전환하여 막대한 전시초과리윤을 얻자는것이였다.

일제군벌은 노구찌를 무력으로 적극 떠밀어주었다. 이때 당시 식량난으로 아우성치던 일제는 자국에서 부족되는 식량을 식민지 조선에서 충당하려는 야욕밑에 대규모적인 《산미증식계획》을 짜놓고 쌀, 콩, 조 등 식량으로 지목되는것은 모조리 훑어가고있었다.

이렇게 되여 궁색은 하나 반농반어업으로 오붓이 생계를 유지해가던 흥수땅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한지에 쫓겨나게 되였고 40만평의 기름진 옥답이 노구찌재벌의 발밑에 들어가게 되였다.

이처럼 철두철미 노구찌재벌의 돈주머니를 채워주고 일제군벌의 군비확장에 리용되던 비료공장은 놈들의 패망과 함께 그 사명도 끝장을 보게 되였다.

제 소굴로 도망치면서 놈들은 중요한 설비는 뜯어갔고 그 나머지는 흔적도 없이 폭파했으며 기사, 기능공들까지 강제로 끌어갔다.

공장이 페허로 되자 로동자들이 일터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누구보다 공장의 이런 연혁과 실태를 잘 알고있던 석근수는 무릎을 마주하시고 간곡하게 물으시는 수령님께 우선 모자라는 로력을 더 보내달라고 제기할수도 있었다. 강지창은 설비 하나를 조립해도 기능공 한명이 없어 애를 먹고있는 안타까운 사연을 말씀드리고 흩어진 기술자, 기능공들을 시급히 데려올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씀드릴수 있었다. 그리고 지배인은 엄청나게 모자라는 전력형편에 대하여, 자위대장은 총을 더 달라고 간청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단정히 앉아 수령님만 우러러봤다. 말씀드려야 수령님의 가슴만 아프게 해드릴것이다.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오신 수령님께서 지금 얼마나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는가. 진정 초인간적인 강철의 의지와 천리혜안의 투철한 예지가 없으시다면 한시도 견디지 못하실것이다.

아직도 20성상 항일대전을 할 때 입고계시던 풀색 군복을 벗지 못하고계시는 수령님이시였다. 오죽 안타깝고 근심되시면 천여리 먼 이곳까지 달려오시여 아침식사도 건느신채 이처럼 뜨겁게 호소하시는가.

추녀낮은 단층집 자그마한 방안에는 오래도록 숭엄한 정적만이 흘렀다. 한없이 고귀한 침묵이였다. 그것은 수령과 인민들사이에만 오고갈수 있는 티없이 고결하고 다함없는 신뢰의 교감이였다.

자애깊은 눈길로 좌중을 훑어보고계시던 수령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의 심정을 알만 합니다. 그러나 동무들의 말을 듣고싶어서 불원천리 찾아온 내 마음도 리해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내 앞에서야 숨길게 뭐가 있습니까. 어서 말씀들 하십시오.》

《장군님, 말씀드릴게 없습니다.》

강지창이 좌중을 대표하여 정중히 말씀드렸다.

《왜 없겠소. 첫째로 전력사정이 급선무일게고 기술자, 기능공들이 없어 생산을 더 벌려놓지 못하는것이 둘째애로, 셋째로는 놈들의 파괴암해책동이 우심한거요. 내 생각에는 이 세가지 문제가 제일 걸린것 같소. 물론 로동자들의 생활을 시급히 안정시키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따로 토론합시다.》

순간 방안에는 탄성의 설레임이 세차게 굽이쳤다. 한마디의 말씀으로 공장의 실태와 자기들의 안타까움을 낱낱이 헤쳐보이시는 그 명철한 판단과 탁월한 분석앞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말못하던 좌중의 심정이 예견하신대로임을 확인하신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약간 끄덕여보이시더니 천천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문제를 내가 제기했으니 그럼 내가 먼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장군님, 어서 가르치심을 주십시오.》

《우린 장군님 말씀대로만 하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절절한 흠모와 불같은 호응의 목소리들이 일어났다.

《제일 절박하게 제기되고있는 전력문제와 기술자, 기능공문제를 토론해봅시다. 먼저 전력문제를 어떻게 풀것인가를 연구해봅시다. 실태를 료해한데 의하면 이 공장에서 당장 소요되는 전력이 수만㎾가 훨씬 넘습니다. 그런데 전기를 보내줘야 할 〈ㅈ〉강발전소도 여기처럼 혹심하게 파괴됐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도 인차 가보려고 합니다. 그곳 동무들에게 비료공장사정을 호소하면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요구되는 전기를 기어코 보내줄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력을 이런 식으로 해결한다는것은 수동적이고 안전치 못합니다.

동무들 생각해보시오. 지금 어디서나 요구되는것이 전기입니다. 오늘 형편에서 전기는 금보다 더 귀합니다. 전기가 있어야 공장이 일떠서고 먹을것도 입을것도 나옵니다. 전기는 사람의 몸에 있는 피와 같습니다. 이처럼 귀하고 절실한 전기를 이 공장에서 최소한 수만㎾나 써야 합니다. 〈ㅈ〉강발전소의 전기를 통채로 쓰고도 모자랄 형편입니다. 그럼 비료공장에서 왜 이처럼 막대한 전기를 쓰게 되는가?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략탈정책의 후과입니다. 노구찌놈이 흥수땅에 비료공장을 건설하게 된 직접적동기는 본국에서 모자라는 식량과 비료를 여기서 손쉽게 얻어내자는데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유리한 조건이 많았습니다. 우선 전력자원의 예비가 북부조선에 풍부했고 그 발전소들의 건설도 헐하게 할수 있었습니다. 중요원료들인 류화광석, 석회석, 무연탄산지가 곁에 있었고 생산물을 략탈해가기 쉬운 해안선도 가까이 있습니다. 옆에는 강을 끼고있어 공업용수와 배설물을 쉽게 처리할수 있었습니다.

이런 타산밑에 공장을 건설한 노구찌놈은 극도의 렴가로력을 투하하여 고률리윤을 짜냈습니다. 나는 산에서 싸울 때 흥수질소비료 로동자들의 비참상을 소개한 글을 보고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일제강도놈들은 우리 나라를 저들의 값눅은 략탈기지로 우리 인민을 영원히 노예로 부려먹자고 획책했습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망상이였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나라에도 예속될수 없으며 강력한 자주독립국가의 존엄을 온 세상에 떨쳐야 합니다. 그러자면 하루빨리 발전된 공업국으로 전변시켜야 합니다.

나라의 주인된 동무들앞에는 우리의 화학공업을 책임지고 떠메고나가야 할 중대한 임무가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화학공업을 발전시키는데서 반드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도 둘째도 우리 나라 자원과 원료에 기초하는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이 공장에 와서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 흥수비료는 〈ㅈ〉강에 목줄이 딱 매여있습니다. 〈ㅈ〉강에서 전기를 주면 숨을 쉬고 주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이렇게 계속 〈ㅈ〉강에 매여 숨가삐 살겠는가? 그럴수 없습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비료는 화학의 산물입니다. 화학은 못만들어내는것이 없습니다. 화학은 없는것도 있게 하고 못쓰게 된것도 유용하게 변모시킵니다. 앞으로는 화학의 시대입니다. 화학이 모든것을 해결할수 있습니다. 화학의 이 신비하고 위력한 힘을 리용하여 이 공장에서도 전기를 쓰지 않고 비료를 생산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할수 있다면 그것은 비료화학에서 일대 전환으로 될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현실성이 아주 풍부한 매우 흥미있고 해볼만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현실성이 어디 있는가? 우리 나라에는 그 어디를 가도 석탄과 석회석이 무진장 묻혀있습니다. 이 무진장한 석탄과 석회석을 잘 종합처리하면 못만들어내는것이 없을겁니다. 우리 나라 화학은 바로 이 석탄과 석회석에 발을 붙여야 하며 이것을 기초로 하여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의도이고 주장입니다. 그래야 지금처럼 전기때문에 애먹는 일도 없을것이며 앞으로도 다른 나라의 원료에 예속됨이 없이 언제나 배심있게 제볼장을 다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화학공업의 주체입니다. 나는 여기 모인 동무들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우리의 화학공업을 힘있게 떠메고나갈것을 호소합니다.》

순간 장내가 떠나갈듯 한 우렁찬 박수갈채가 일어났다. 박수는 오래도록 계속되였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고 또 쳤다.

《아바이, 답답하던 가슴이 탁 열리는것 같습니다. 정말 앞이 환해지는게 신심이 생깁니다.》

강지창이 석근수의 귀에 대고 열싸게 속삭였다.

요란한 박수가 오래도록 그칠줄 모르자 수령님께서 한손을 드시여 좌중을 진정시키시였다. 부드러운 미소가 떠도는 그이의 얼굴도 흥분의 열기로 불깃하게 상기되시였다.

《지금 공장운영에서 전력 못지 않게 긴급한 문제가 기술자, 기능공들이 부족한것입니다. 강지창동무, 그 대책으로 흩어진 기술자, 기능공들을 찾아오자구 제기했다는데 그게 사실이요?》

《예… 김책동지한테 말씀드린적이 있습니다.》

강지창은 고개를 들지 못한채 조심스럽게 대답올렸다.

《옳게 결심했습니다. 좋은 제기를 했습니다. 당면하게는 흩어진 기술자, 기능공들을 빨리 찾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공장을 돌릴수 있습니다. 화학공장은 다른 공장과 달리 기술과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것은 기술자들에 대한 관점을 바로 가지는것입니다. 내가 오늘 이 문제를 특별히 강조해야 하겠습니다. 해방과 함께 공장에 있던 숱한 기술자들이 왜 없어졌겠습니까. 물론 놈들에게 끌려간 사람들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겁을 먹고 숨어버렸습니다. 일부 편협한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기술자들은 자산계급출신이구 돈냥이 있어서 공부했기때문에 로동계급과 화합될수 없다고 하는데 이런 몰상식한 론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식민지인테리의 특성도 알지 못하며 민족감정도 없는자들입니다. 여기 앉아있는 강지창기사장두 려순공대를 졸업한 인테리입니다. 기술자를 존중하지 않고 과학을 차요시하는 사람들은 청맹과니들이며 일제놈들의 장단에 춤을 추는 반역행위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있는 실례를 하나 들어봅시다. 일제놈들은 수만명이 넘는 이 지구에 해마다 서른명 되나마나하게 받아들이는 도제공업학교(기술학교) 하나밖에 두지 않았습니다. 입학생 서른명가운데 조선사람은 겨우 2~3명밖에 받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실례를 들어봅시다. 이 비료공장에도 중요생산공정에는 조선사람을 직공으로 채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이처럼 지독한 우매화정책을 실시했습니까. 조선사람들이 아는것이 무서웠고 머리가 트이는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몽매한 노예로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 피눈물나는 민족의 과거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왜 극단한 편견에 치우쳐 만용을 부리는가.

우리는 과학자, 기술자들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과학자, 기술자 한사람한사람이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배들입니다.

때문에 흩어진 기술자들을 품을 들여 빠짐없이 찾아내여 그들이 맘놓고 일할수 있도록 최우선의 조건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한편 비료공장안에 기능공학교를 내오고 모든 근로자들이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곧 평양에 종합대학을 비롯한 각 부문의 대학들을 내오자고 합니다. 식민지로 뒤떨어진 우리가 빠른 시일안에 선진공업국으로 되자면 허리띠를 졸라매구서라두 과학자, 기술자들을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기초가 약하고 청소한 우리 나라의 화학공업실태를 분석하시면서 흥수비료가 화학부문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날 협의회를 끝마친 수령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마다하시고 흥남항과 도보안원훈련소를 비롯한 도내 여러부문을 현지에서 지도하시기 위하여 공장을 떠나셨다…

이야기는 끝났으나 그들은 평양쪽의 하늘가에 눈길을 준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돌이켜볼수록 가슴을 세차게 격동시키는 해방직후의 그날이였다. 페허만 남았던 황량한 구내길, 추녀낮은 단층집 회의실…

항일혈전의 그 나날에 입으셨던 풀색 군복도 벗을사이없이 찾아오신 수령님께서 무릎을 마주하시고 공장이 해야 할 일을 툭 터놓고 의논하시던 그 한없이 평범한 공민적풍모며 인테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귀중한 보배들로 떠받들어야 한다고 그 누구도 줄수 없는 크낙한 믿음과 사랑을 주시던 자애로운 영상이 하늘가득 떠올랐다.

《아바이, 전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지난 세월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에 다시한번 태여났으면 하는것이 가장 큰 소원이였습니다. 그래서 림종의 그 순간까지 하느님께 온갖 지성을 다 바쳐 기도를 드렸지요. 죽어서라도 다시 환생하여 생전에 못다 누린것을 꼭 성취해보겠다구 말입니다. 아마 이 간절한 기원이 과거 인류사가 남긴 풀지 못한 영원한 미지수라고 봅니다. 바로 그 소원을 우리의 수령님께서 풀어주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두번다시 소생시켜주셨을뿐아니라 남모르는 마음속 사연까지 다 풀어주시는 진짜 하느님이십니다.》

한대식의 열에 뜬 목소리는 몹시 흥분되여있었다.

《옳게 말했수다. 수령님이 안계셨다면 나같은 로동자들이 어떻게 오늘처럼 공장의 주인이 되여 사람들의 우대를 받으며 살겠수. 그래서 우리들은 수령님께서 오셨던 45년도 12월 6일을 영원히 잊을수 없어 자기들의 생일처럼 화학공업절로 정하고 해마다 뜻깊게 보내고있습니다.》

《어찌 잊을수가 있습니까. 그날은 우리의 민족공업이 자립할수 있고 영원히 부흥할수 있는 튼튼한 발판이 마련된 력사적인 날이 아닙니까.

일제놈들한테 무참히 짓밟혔고 3년간의 전쟁으로 재가루만 남았던 우리 나라가 오늘처럼 튼튼한 자립적민족경제를 가지게 된것은 전적으로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고 뜨겁게 아끼시는 수령님의 불같은 사람중심의 령도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수령을 모신 민족의 무궁토록 강성하는 힘을 당할자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멀지 않아 우리 민족은 세상에 대고 큰소리로 장훈을 부르며 살게 될것입니다. 지금 벌써 온 세상사람들이 천리마의 기상으로 무섭게 내닫는 우리 인민의 힘을 보고 얼마나 놀라와하고있습니까.》

격하게 부르짖는 한대식의 사색깊은 두눈에선 맑은것이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이 말은 이미 오래전 나라없던 설음이 피눈물이 되여 골수에 사무칠 때 언제인가 꼭 세상에 대고 격조높이 웨치고싶었던 넋이였고 희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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