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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직장 확장공사를 위한 협의회는 오래도록 계속되였다. 공장기술부 설계실에서 작성하여 제기한 확장공사의 규모가 참가자들의 의혹을 자아냈던것이다.
현존능력의 근 2배로 확장되는 확장공사는 3단계에 걸쳐 1년 기한으로 끝내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타산해도 그 방대한 공사를 벌릴만 한 자재와 설비가 보장될것 같지 못했다. 설비와 자재도 문제지만 공사를 끝내놓은 후 전력은 제대로 투입되겠는지. 지금도 전력이 모자라 발전소와 신경전을 하고있는 형편이다. 협의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공장의 능력과 실태를 뻔히 알고있는 기술부 기사들과 공정기사, 직장장들이라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자못 흥분되여 설계안을 해설하고 앉아있던 쉰살쯤 돼보이는 설계실장이 또다시 일어났다. 그는 이번에 작성한 설계안은 새로운 착상을 수십건 도입한것으로서 이보다 더 합리적인 안은 없을것이라고 중언부언했다.
《설계실장동무는 앉소. 그렇게 반복해설하지 않아도 여기 앉은 동무들은 다 알고있소. 자, 동무들, 생각들은 그만하고 어서 토론들 합시다.》
지배인 방하철이 설계실장에게 면박을 주고 좌중을 바라보며 독촉했다.
《이번 확장공사는 그 규모와 기일로 보아 매우 아름찬 과제라고 할수 있소.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표를 수행해야 하오. 문제는 해야 한다고 설정해놓고 토론들 합시다.》
이때 구석쪽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신경질을 냈다.
《거 담배들을 작작 피우구려. 하라는 토론은 하지 않구 염소들처럼.》
《이런 땐 맞불질을 하구려.》
《그런 재간이 있다면 그렇게 앵앵거리겠나. 바지가 아깝지.》
《허허…》
앉아있기 따분해하던 좌중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쪽에선 무슨 잡담이요. 일감이 뻐근해서 숨조차 쉬기 바쁜 형편인데.》
업무부지배인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힐책했다.
《설계실장동무, 한가지 물읍시다.》
업무부지배인뒤에 앉아있던 1전해직장 공정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장안대로 한다면 전해 하나만 해두 1. 7배로 늘어나는데 전력두 그만큼 더 받을수 있습니까?》
《동문 그걸 몰라서 나한테 묻소? 우리 설계실이 발전소까지 설계하는가?》
설계실장이 벌떡 일어서며 내쏘았다. 확장공사를 벌려놓게 된것이 마치 설계실에 책임이 있듯이 따지고드는데 화가 난 모양이다.
《신경질을 왜 냅니까? 내가 뭐 설계실이나 걸고들자구 그러는줄 아오. 하두 답답해서 그럽니다. 설계실에만 앉아있지 말구 우리 하나전해에 좀 와보시오. 전력때문에 올리뛰고 내리뛰구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요. 이불깃 봐가며 발펴라는 말 있지 않소.》
《그건 또 무슨 말이요. 공정기산 확장공살 그만두자는 립장이요?》
방하철이 표표해진 눈길로 엉거주춤 서있는 공정기사를 뚫어지게 보았다.
어떤 질문이라도 다 받을 자세가 되여있다는듯 그의 얼굴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제가 왜 반대하겠습니까? 확장공사를 해두 목에 급한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때문에 제 생각엔 지금 벌려놓은 설비개조에 더 힘을 집중하여 끝내자는겁니다. 물론 그것도 현재 애를 먹고있지만 해놓으면 전기걱정은 안하게 될게 아닙니까.》
설비개조란 말에 좌중은 호기심을 띠며 웅성거렸다. 어깨를 으쓱해보인 공정기사는 반쯤 몸을 돌리더니 목소릴 높였다.
《우리 직장설비는 어느것이나 환갑이 지났습니다. 일본놈들이 도망치며 파철더미처럼 만든데다 전쟁때 파괴된걸 중보수, 대보수해서 그냥 돌리고있습니다. 그러니 두꺼비 파리잡아먹듯 전력을 투입하는대로 넙적넙적 받아먹지요. 해파리처럼 맥은 못추면서, 우선 이런 설비부터 골라서 개조하면 여기서도 많은 전력예비가 나올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지배인동지와 여러차례 방도토론도 했고 개조할 계획도 가지고있습니다. 때문에…》
《공정기사동무-》
툭 내지르는듯 한 방하철의 목소리가 그의 말허리를 토막쳤다.
《그만하고 앉소. 동무들, 오늘 협의회 의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시종 강조하지만 확장공사는 에누리없습니다. 이건 우리 공장의 결심이 아니라 성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겁니다. 때문에 좀전에 제기된 전력문제도 성에서 통일적으로 조절해줄겁니다. 이 자리에는 공장의 초급일군들과 해당 부문 기술자들이 거의 다 참가했습니다. 나는 동무들이 다음번 협의회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좋은 안들을 내놓으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협의회는 그만합시다.》
방하철은 오늘 협의회는 그 취지를 정확히 인식시키는것으로 결속하기로 했다.
참가자들이 막 일어서려는데 키가 꺽두룩한 직맹위원장이 연단에 뛰여나가며 두손을 높이 들어 그들을 꽉 눌러놓았다.
《지배인동지, 확장공사에 대한 현상응모를 조직하자고 합니다. 합리적인 작업방법이라든가 새 기술 착상 등 온 공장의 지혜를 발동해보고싶습니다. 직장, 작업반별 경쟁을 걸고 천리마운동을 세차게 벌리자고 합니다.》
《그건 직맹의 결심대로 하오.》
《동무들, 들었습니까? 래일 점심시간에 각 직장 직맹위원장들은 우리 방으로 모이도록 전달해주십시오. 시상도 크게 하자고 합니다. 이것두 있구요.》
키 큰 사람 싱겁기마련인듯 그는 자기 지체에 맞지 않게 두손을 입에 대고 마시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자 역시 직맹이 할줄 안다고 웃고 떠들어댔다.
회의실은 잠간사이에 텅 비였다.
방하철은 기사장과 부지배인들, 지령장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 실무적인 문제들을 심화시키고싶었다. 그가 지배인실에 들어서자마자 전화종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왜 그러오?》
《아까부터 부상동지가 찾으셨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곧 련결하라고 했습니다.》
교환수처녀는 제잘못이라도 되는듯 기여드는 소리로 말했다.
방하철은 뒤따라 들어온 일행에게 앉으라고 손짓해보인 후 전화를 받았다.
《지배인동무요?》
수화기에서 빠르면서도 청높은 부상 남주혁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회의가 그리 오래 걸리오?》
《전해직장 확장공사를 토의했습니다.》
《뭐라구요?! 내 요전날 전화로 그만큼 중요성을 강조하고 독촉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요? 석달전에 준 과업을 오늘에야 토의했다니 뭐가 잘못되지 않았소.》
《대상설계가 며칠전에야 끝났습니다. 그래서…》
《한다 하는 지배인이 그렇게 앉아뭉갤줄은 뜻밖이요. 그래 좋은 안들이 나왔소?》
《뭐 별루… 이틀후에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좋소. 나두 그 문제를 료해하자던참이요. 전화론 안되겠소. 래일 내 직접 내려가겠소. 그만 합시다.》
방하철은 삑삑- 소리가 나는 송수화기를 그대로 들고있다가 털썩 놓았다.
《뭐라구 합니까?》
기사장이 긴장해서 물었다.
《래일 부상이 내려오겠다오. 확장공사정형을 료해하자구.》
《차라리 잘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실태를 정확히 보고하고 성의 방조를 좀 받읍시다.》
업무부지배인과 지령장도 그것이 좋겠다고 했다. 방하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손을 내밀어야 빤드름한 형편에 성에서 도와줄 힘도 없거니와 설사 도와주겠다고 해도 어떻게 하든 자체로 해놓고싶었다.
《이제는 실무적인 문제를 토의해야겠기에 따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방하철은 자리에 앉으며 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내놓았다. 담배를 피우면서 여유있게 토론해보자는 뜻이다.
《방금 부상의 전화추궁도 있었지만 확장공사준비에 빨리 착수해야겠습니다. 때문에 확장공사를 조직집행할 지휘부를 내오고 력량을 편성해야 할것 같습니다. 생산부지배인동무는 각 직장들의 실태를 재확인하고 동원될수 있는 로력과 자재를 짜봐야겠소. 그래 이틀이면 되겠지요?》
《손금처럼 뻔한데 이틀까지 걸릴게 있습니까?》
생산부지배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게 두부모 짜르듯 떼낼순 없습니다. 확장공사가 끝날 때까지 본직장들에서 완전히 떨어져나와야 되니 잘 타산해보시오.》
《옳습니다. 직장장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을겁니다. 특히 기술자들이야 내놓으려고 합니까.》
《또 오미자시롭을 마셔가며 말씨름을 해야지요.》
몸이 뚱뚱한 지령장이 늘어지게 맞장구를 쳤다.
《지금 말씨름이나 하고있을 때가 아니요. 담당한 부문들에서 안들을 빨리 만들어 제출하시오. 자재, 로력, 시공, 지휘성원 등 구체적으로 세우시오. 지배인 지시로 떨구겠소. 그러면 지령장이 오미자시롭을 축내지 않아도 되오.》
지령장은 그만 면구스러운듯 더수기를 긁었다.
《그런데 한대식연구사가 하고있는 발생로는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기사장이 웃는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그건 왜 묻소?》
《예비는 거기에 있는것 같아 그럽니다. 지금 제일 바른것이 전력인데 가스화야말로 이 문제해결의 요진통이 아닙니까?》
《정말 굴러들어온 떡이 있는줄 깜빡 잊었군요. 이번 기회에 발생로를 집중해서 생산에 물려봅시다.》
지령장은 비로소 제할몫을 찾았다는듯 환성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다.
《발생로는 없었던것으로 생각하오.》
《?!…》
기사장과 지령장은 너무도 돌변한 지배인의 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아직 발생로작업반이 해체된줄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그쯤들 알고있소. 더 론의할 문제가 없다면 그만합시다.》
방하철은 다른 말을 붙여볼 사이도 없이 칼로 베듯 말하고 모임을 결속했다.
사무실에 혼자 남은 그는 전해직장확장설계도면을 책상우에 가져다놓고 한장한장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볼수록 방대한 작업대상이라는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쯤 됐는지. 골이 핑 돌고 빈혈이 오는것 같았다. 피곤이 엄습해왔다.
그는 바람벽에 붙여놓은 쏘파에 가서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요즘처럼 고달파보기는 처음이다. 문건결재와 계획작성, 사업포치, 전화지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현지협의 등 이른아침부터 늦도록 분주히 뛰고있는데 일은 더 많아지고 튀는 고리가 생기군했다. 일감이 많을수록 앙양되던 자신이다. 그런데 왜 최근엔 이처럼 의도대로 안되는가. 능력부족인가 아니면 열도의 부족인가. 때없이 불쑥 찾아드는 정신적빈곤은 어디서부터 산생되는지…
어디선가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꿈결처럼 들려오는 그 소리는 상념의 세계에서 벗어날수 없게 했다. 문두드리는 소리가 또 울렸다. 그때야 방하철은 눈을 뜨며 천천히 웃몸을 바로가졌다.
문을 열고 사무실안에 들어선 사람은 합숙관리원 리숙이였다.
《?…》
《늦도록 들어오시지 않아서…》
방하철은 그때야 밤이 퍽 깊었으며 자기가 저녁전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전화로 알려준다는게 그만, 어서 이쪽 안으로 들어오시오.》
리숙은 감히 사무실까지 찾아오게 된것이 죄스러운듯 웃몸을 숙이고 원탁앞으로 갔다. 그는 세련된 동작으로 잠간사이에 들고온 보자기를 풀고 그릇들을 챙겨놓았다.
《어서 식사를 하십시오.》
리숙은 보온병을 기울여 오갈피차를 고뿌에 가득 부어놓고 원탁에서 물러났다. 갑자기 시장기를 느낀 방하철이 원탁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광택이 번뜩이는 놋바리의 하얀 밥에서 더운 김이 몽실몽실 피여올랐다. 잘근잘근 썰어 알맞춤이 띄운 오이랭국에는 풋고추와 후추를 뿌려 첫술에 찡하고 상쾌한 맛을 준다. 시원한 랭국과 쌉살하나 개운하고 특이한 향기로 구미를 돋구는 산채들을 정신없이 입안에 넣던 그는 부지중 허무룩한 감이 들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너렁청한 방안에 자기 혼자서 숟갈을 놀리고있었다. 소리도 없이 어느새 갔는가 하고 허전한 생각이 들어 출입문을 열어보았다. 대기실 한쪽에 고즈넉이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있는 리숙이가 눈에 띄였다. 창문으로 불어드는 바람이 동실한 어깨너머에 드리운 긴 옷고름을 가볍게 흔들어놓는다.
흘러내린 귀밑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땀을 들이고있는 리숙의 뒤모습이 현실아닌 그 어떤 딴 세계의 모습으로 시야에 안겨들면서 허무룩한 심정을 따스하게 덥혀주었다. 그는 슬며시 문을 닫았다. 그러자 눈앞에 그 어떤 장벽이 막힌듯 막막함과 고적감이 회리바람처럼 온몸을 휘감는다.
그는 알지 못할 깊은 심연속에서 헤여나오듯 걸음을 옮겨 맞은쪽 창문가로 갔다. 창밖 저 멀리에 별천지인양 전등불들이 깜빡이고있었다. 주택지구였다.
지금쯤 하루의 지친 몸을 비스듬히 눕히고 오손도손 이야기들을 나누고있을 로동가정들의 단란한 모습이 보이는듯하다. 굳어진듯 창밖을 넋없이 바라보던 그는 이윽해서야 책장우에 포개얹었던 모포를 꺼내 의자우에 펴기 시작했다.
몇시간 눈을 붙여야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린듯이 서서 귀밑머리를 쓸어올리던 리숙의 단아한 뒤모습이며 별무리 내려앉은것처럼 반짝이던 주택지구의 정가로운 불빛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겠지.)하고 모포를 뒤집어썼으나 복잡하게 뒤설레는 마음을 누를수가 없었다.
다음날 중낮 화학공업성 부상 남주혁이 급행렬차로 흥수에 내려왔다. 그는 도착하는길로 지배인실에 틀고앉아 실태를 료해하기 시작했다. 이미 전화를 통해 대충 알고있던 그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설계실장과 계획과장 등 확장공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지배인실로 연방 불리워갔다. 확장공사가 언제 포치되고 계획되였으며 설계는 언제부터 착수했는가. 성의 지시를 뒤늦게 받아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를 따지고들었다. 상대를 위압하는듯 한 빠르고 높은 목청과 거방진 몸으로 하여 마주앉았던 사람들은 단번에 초절임을 당하군 했다. 점심까지 날라다 먹으며 들볶아대던 그는 해질무렵에야 방하철을 찾았다.
《거기 좀 앉소.》
지배인의자에 젖바듬이 몸을 싣고있던 그는 방하철이 들어서자 앞에 있는 의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방하철은 죄인을 대하듯하는 그의 태도가 불쾌했으나 어쩔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한가지 묻기요. 지배인동무는 성의 지시에 무슨 의견이 있소?》
《별로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솔직하지 못하구만. 내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그들에겐 잘못이 없는것 같소. 확장공사를 늦잡은건 전적으로 지배인때문이란말이오. 왜 오그랑수를 쓰오. 이건 무슨 삿대질인가?》
남주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버럭 어성을 높였다. 첫마디부터 신경질을 부리며 걸고드는 품이 심상칠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전해설비를 개조하는 방법으로 능력을 더 조성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요?》
《네, 그런 말을 할수 있습니다. 제가 그건 맘먹구 시도해보는 예비안입니다.》
《음, 알만하오. 그러니 상부의 지시가 마이동풍이지. 그래 개조한 설비는 있소?》
《아직 얼마 안됩니다.》
《거 이상한데, 난다긴다하는 지배인이 왜 맥을 못출가?》
야유인지 조소인지 말꼬리를 길게 끌며 얄팍한 입술에 미묘한 웃음을 하늘거리던 남주혁이 갑자기 높은 목청으로 기관총 내쏘듯했다.
《나 본인은 방하철이란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오. 총명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결패스런 일군인줄 알았는데 영 암둔하기 짝이 없소. 지금이 어느때게 설비개조요. 여기가 뭐 독일땅인가? 외국에 가서 기술을 배워오랬지 그런 롱간질을 배워오랬소. 동무는 참으로 엄중한 과오를 범할번했단 말이요. 그 설비가 어떤 설비들이요. 동무가 외국에 가서 셈평좋게 공부하고있을 때 이곳 로동계급들은 그 설비 하나를 위해 자기의 귀중한 목숨을 바쳤소. 시한탄이 박혔을 때 생명을 내건 사람두 있었고 불붙는 설비를 살려보겠다고 뛰여들었다가 희생된 동지들도 있소. 그 고귀한 넋과 피가 스민 설비를 꺼리낌없이 뜯어낼수 있는가. 그건 동무가 몰라서 그렇다치기요. 지금이 어떤 때요. 우리가 〈절약하여 증산하자!〉는 구호를 왜 가는곳마다 내건지 아오. 나사 하나, 벽돌 한장이 귀한 때요. 설비 하나가 금싸래기같단 말이요. 이런 때 전해설비가 좀 낡았다구 개조하자니 제정신이 있는가. 왜 그걸 보수하고 정비를 더 잘해 가동률을 높일 생각은 안하구 뜯어 없앨 생각부터 하오. 이건 단순한 기술문제가 아니라 관점문제란말이요.》
안정을 못하고 사무실이 좁다하게 왔다갔다하며 열을 올리던 그는 관점이란 말에 력점을 찍으며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엄중한가? 아주 엄중하오. 이건 범죄란말이요. 이번에 내가 내려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왔더라면 어쩔번했소. 지배인을 내세우고 보증한 나도 문제가 서겠지만 동무는 고의적인 당정책 기피죄로 재판대에 올라야 했을거요.》
어마어마한 감투에 방하철의 가슴은 후두두 뛰였다. 그럴듯 한 론박과 사세의 분석앞에 대가 세고 론리적사고가 몸에 밴 그도 일언반구 반박할 틈이 없었다.
이때까지 남주혁에 대한 방하철의 평가는 언제나 모순속에 있었다. 어느 지방 화학공장 기사장으로 있을 때 우연히 알게 된후부터 자기를 적극 내세워주고 지배인으로까지 제발시켜준 숨은 노력은 고맙게 여기면서도 어딘가 일군답지 못한 조폭성과 특히는 과학과 기술을 차요시하는 그를 대할 때마다 환멸을 금할수 없게 했다. 그런데 오늘의 남주혁은 그렇게만 대할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감투를 씌워서만이 아니라 그의 말은 다 진실을 내포하고있었던것이다.
낡았다고 버리려던 그 설비 하나하나가 그토록 귀한줄을 심장으로 깨닫지 못하고있은 자신이다. 전해직장에 나가 설비개조문제를 제기했을 때 동의는 표하면서도 석연해하지 않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설비개조가 힘이 들어 그러는줄만 알았지 그들의 내면까지 알려 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돌이킬수 없는 약점이며 과오다. 그러나 당정책을 고의적으로 기피했다는것은 너무하지 않는가. 설비개조가 어렵기는 하겠지만 공업의 현대화를 위해선 불가피하다.
이것을 무시한다면 우리의 공업은 한걸음도 전진할수가 없는것이다. 이 문제만은 앞으로 타협할수 없다. 부상이 언제가야 이 의도를 리해해주겠는지.
남주혁은 고개를 떨구고있는 방하철이 깊이 반성해보는줄로 알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타이르듯 말했다.
《실태가 한심하여 좀 흥분했소. 이번 일을 심각한 교훈으로 삼으시오. 설비개조같은거야 상부와 합의를 봐야 할게 아니요.》
《예, 참작하겠습니다.》
《문제는 확장공사를 빨리 착공하는거요. 설계두 나왔구 조직사업두 했겠다 이제 내각에서 비준만 되면 나팔을 불어대며 와닥닥 해보잔말이요. 바람이나 쏘일겸 공사부지나 나가봅시다.》
그들은 지배인실을 나왔다. 남주혁은 방하철이 숙어들자 기분이 밝아져 활개를 치며 앞서 걸었다.
보기 드문 흰 나이론샤쯔에 회색 캬바직바지를 받쳐입고 역시 회색 캡을 눌러쓴 그의 거쿨진 몸은 틀스러운 걸음새에 잘 어울렸다.
그는 방하철의 안내를 받으며 전해직장옆 공지쪽으로 향했다. 확장공사부지로 되여있는 이 공지는 설비창고와 하조장건물이 있었는데 폭격에 허물어지자 정전후 대충 정리해놓은 어수선한 곳이였다. 어제밤 협의회후 가급적으로 오늘 아침부터 붙인 작업이라 아직 일자리가 나지 않았으나 두대의 불도젤이 시꺼먼 연기를 뿜어대며 흙밥을 밀어내고 한쪽에선 로동자들이 왁작 떠들어대며 삽질을 하고있어 분위기는 좋았다.
허리에 두손을 올리짚고 젖바듬이 웃몸을 제낀 남주혁이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현지에 내려와 저렇게 일하는걸 볼 때마다 손발이 근질거려 못견디겠거든. 막 뛰여들고싶단 말야. 지배인도 이곳 로동자출신이라면서?》
《이 공장은 아니지만 〈징용〉에 나가기 전까지 신흥화학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일제때를 생각하면 신물이 나오. 마소보다 못했지. 하루 살기가 끔찍했소. 그래서 우린 로동조합을 뭇고 맞섰소. 그런데 그런 식으로 통하오. 그래서 철저히 준비된 프로레타리아트로 지하조직을 꾸리고 투쟁대오를 확대했소. 한창 열혈청년이던 나는 무서운것이 없었소. 지금두 우리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생생하오. 한번 들어보겠소?》
남주혁은 감회깊은 눈길로 방하철을 슬쩍 쳐다보더니 입속으로 흥얼거렸다.
게다짝과 마우라 하오리놈들아
채찍에서 흐르는 피땀 즐기지 말라
팔뚝과 팔뚝이 서로 합칠 때
삼천리강산에 붉은기 펄펄
공장도 우리의것 되리라
《대체로 이렇소. 지금두 이 노래를 부르며 팔과 팔을 끼구 공장주놈한테 육박하던 장쾌한 때가 선하구만. 물론 강약이 부동으로 쟁의는 진압되고 조직자의 한사람이던 나는 감옥살이를 했지만.》
《부상동지두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그런 고생이야 뭐라오. 참을수 없은것은 나라없던 설음이였소. 우리가 왜 쪽발이놈들한테 짓밟혔겠소. 락후했던탓이요. 부국강병의 기치를 들었던 렬사 김옥균의 부르죠아개혁만 성취했어도 형편은 달라졌을거요. 나는 지금두 힘이 들 때마다 나라없던탓에 감옥에 갇혀 피눈물을 뿌리며 통탄하던 일이 생각나서 마음을 다잡군하오. 난 어제밤 지배인동무와 전화를 한후 잠을 못잤소. 그런데 현지에 내려와보니 더 한심하더란말이요. 그러니 내 마음이 어떻겠소.》
《…》
《지배인동무가 임명되여 여기로 내려올 때 내가 한 말을 잊지 않았겠지. 젊고 패기만만한 동무가 내려가서 시급히 한단계 추켜세우라던 말.》
《그 말을 잊을수 있습니까?》
방하철은 그때 무슨 말을 했던지 잘 기억되지 않았지만 자감상태에 빠진 그를 섭섭하게 할 필요가 없어 듣기 좋게 대답했다.
《잊으면 안되오. 우리는 한시도 자기의 명분을 잊어선 안되오. 우리는 어떡허나 화학공업을 조속한 기간에 선진국대렬에 세워야 하오. 초봄부터 신경을 써오던 원유계약이 며칠내로 락착될것 같소. 우리 성의 생명선이 거기에 달려있단 말이요. 이제 두고보오. 이 남주혁이 화학공업을 어느 높이까지 끌어올리나.》
제흥에 겨운 남주혁이 한팔을 머리우 높이까지 쳐들어보이며 호기를 부렸다.
그는 기분이 사뭇 유쾌한듯 자주색 싼다루에 먼지가 뽀얗게 오르는것도 모르고 공지변두리를 바싹 에돌았다.
《부지가 이만하면 괜찮소. 그런데 저기 흥부네 집 같은 초라한 건물은 뭐요?》
《저탄장으로 쓰던 건물인데 미처 보수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헐어버리구 거기까지 부지를 쭉 늘쿠시오. 오늘저녁 간부협의회를 소집해주오. 부지는 넓은데 이렇게 소극적으로 해서 언제 끝내겠소.》
변두리에 있는 오물장까지 다 돌아본 그들은 류안직장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왔던 길에 류안직장을 보자는것이다.
이때 웬 녀인 하나가 흥부네 집 같다고 가리킨 그 낡은 저탄장건물안에서 나와 이쪽길로 다가왔다. 적십자표식의 위생가방을 멘 녀인은 박혜련이였다.
발끝만 내려다보며 걸어오던 그는 앞에 서있는 지배인과 풍채좋은 낯선 손님을 보자 일순 당황한 표정이나 피할수 없는 외통길이라 고개를 소곳이 숙여 례의를 표하며 한쪽옆에 비켜선다. 윤기가 흐르는 트레머리와 시원하게 트인 이마며 그아래 살풋이 내리깐 잔잔한 눈매 그리고 부드럽게 흘러내린 연청색치마저고리차림새는 첫눈에 단아하고 현숙한 느낌을 주었다. 이채로운 녀인의 옆모습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그의 앞을 지나 몇걸음 옮기던 남주혁이 주춤 멎어선다.
《저 흥부네 집엔 웬 사람들이 있소?》
방하철은 갑자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뗄수 없었다. 아까는 어물쩍 넘겼는데 혜련이가 거기서 나올줄은 뜻밖이다. 말이 막혀 궁해있던 그는 은근히 자격지심이 솟구쳐 사실대로 말했다.
《과학원에서 내려와있는 한대식연구사 한사람이 있을겁니다. 이 앞으로 지나간 저기 가는 녀인이 바루 그 연구사의 부인입니다.》
《무연탄가스화한다는 연구사말이요?》
《네.》
《뭐요? 내 그만큼 여러차례 명백히 말해줬는데 그 연구사가 왜 아직두 여기 있소? 지배인이 언제부터 그렇게 자비심 많은 성자가 됐소.》
남주혁은 치마폭을 날리며 탄력있게 멀어지는 혜련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낯이 화끈해진 방하철이 한대식연구사가 남아있게 된 불가피한 사연을 조심스럽게 설명해주었다.
《제법 살림까지 차려놨단 말이지. 아주 흥미있는 연구사요. 한번 만나봅시다.》
큰소리로 힐책할 대신 호기심을 나타내는 남주혁의 그 엷은 미소를 보자 속이 띠끔했다. 무연탄가스화란 말만 들어도 펄쩍 뛰던 그가 연구사를 좋게 대할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하던 연구사업이나 끝내고 인차 철수할 사람인데 그만 돌아가자고 권고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먹이를 본 매처럼 걸음발이 더욱 날렵해진다.
흥부네 집이라고 표현한 낡은 저탄장건물에 도착하니 한대식연구사는 발생로밑에 들어가 불판을 조절하고있었다.
《수고합니다. 내 부상이요.》
성큼성큼 발생로곁으로 다가선 남주혁이 큰소리로 자기를 소개했다.
한대식은 불판에서 뛰여내려 벗어놓았던 작업복상의를 입고 례의를 표했다.
《그래 연구사업이 잘 진척되오?》
남주혁은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우뚝 솟은 발생로며 저쪽 알탄작업장들을 둘러보았다.
《실패의 원인을 서너가지로 찾았습니다. 그리고 로운전테타들도 비교적 정확히 쥐게 되였습니다. 이젠 확신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한대식은 진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여하튼 이 외진 구석까지 찾아와준 그 성의가 고마왔던것이다.
《그것 참 기쁜 소식이군요. 그런데 한가지 물어봅시다. 난 원래 에둘러 말하길 좋아하지 않소.》
한대식은 진지한 표정이 되여 몸가짐을 바로했다.
《연구사동무가 여기다 살림까지 차려놓으면서 가스화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는데 그 진목적이 어디 있소? 좀 솔직히 말해주오.》
《?!…》
한대식은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잘못 듣지 않았나 하여 살폭이 팽팽한 남주혁의 얼굴을 쳐다보니 얄팍한 입술에 알지 못할 미소가 하늘거리고있었다.
유리를 쪼아박은듯 까딱 움직이지 않는 작을사한 두눈과 퍼질데가 더는 없어 두세개의 군살을 만들어놓은 흐들거리는 아래턱에는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안보여 가늠할수가 없었다.
《초면에 대답하기 바쁘면 그만두시오. 나두 연구사동무의 고충을 충분히 짐작할수 있습니다. 과학자의 한생에 대한 문제가 아니요. 그러나 공장측의 립장도 고려해줘야 합니다. 이 공장은 여기 서있는 지배인이나 어느 개인의것이 아니라 나라의 귀중한 재부입니다. 이런 재부를 한 연구사의 처지가 가긍하다고 물쓰듯할수야 없지 않소.》
《부상동지는 저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한대식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심심히 동정을 표하는 말속에 끝없는 질시와 모멸이 담겨있음을 너무도 잘 알수 있었다.
《나는 요구하는게 없소. 단지 량심에 호소하고싶었소. 참고로 알려드릴것은 래일부터 여기는 전해직장확장공사장이 된다는거요.》
《량심에 대해선 건드리지 마시오. 그리구 말씀의 취지가 여기서 연구사업을 그만두라는것 같은데 그것이 부상동지의 요구가 아니라 화학공업성의 의사입니까?》
《연구사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좀 진정하시오.》
불안한 눈길로 이들의 언쟁을 주시하고있던 방하철이 듣기 거북한 말만 튀여나오자 한발 나서며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신경이 몹시 예민해진것 같은데 우리가 리해해줘야지.》
얄팍한 입술에 하늘거리던 미소가 얼핏 사라졌던 남주혁이 방하철을 너그럽게 타일렀다.
《아무래두 연구사동무에게 똑똑한 인식을 줘야겠구만. 무연탄가스화는 당의 정책적요구요. 때문에 우리 성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다하고있으니 그렇게 함부로 성을 걸고 들지 마오. 물론 우리 성안에도 동무처럼 가스화로 비료를 해결해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난 단호히 반대해버렸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비료공장에서 석탄이요. 동문 내 말을 덮어놓고 고깝게 여기지 말고 이제라도 연구과제를 바꾸기오. 심사숙고하란 말이요.》
그것은 충고가 아니라 가차없는 위협이였고 랭혹한 선언과 같았다. 한대식은 내심의 전률을 느꼈다. 더욱 놀라운것은 그 충격적인 말을 하면서도 억양의 고저장단이나 표정의 변화를 전혀 느낄수 없는것이다. 누구도 따를수 없는 도고하고 로회한 사람이였다. 그는 서있을 힘조차 없어지는것 같아 옆에 놓인 쇠의자에 주저앉았다.
눈이 쓰렸다. 팔굽으로 눈굽을 훔쳤으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그칠줄 모른다. 그때야 그는 등이며 어깨며 전신이 땀주머니가 됐음을 알았다.
한대식은 남주혁과 방하철이 저쯤 갔을 때야 《지배인동지!-》하고 큰소리로 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을 그냥 보내서는 안된다는 절급한 그 무엇이 뇌리를 때렸던것이다.
걸음을 멈춘 방하철이 웬일인가 하여 몇걸음 마주 다가갔다. 남주혁은 뒤한번 돌아보지 않은채 꼿꼿이 멀어졌다.
방하철의 앞에 다가온 한대식은 잠시 가쁜숨만 몰아쉬다가 《지배인동지, 끝내 확장공살 합니까?》하고 압축된 공기가 뿜어져나오듯 안타까이 부르짖었다.
방하철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묻는바람에 의아해진 눈길로 그의 얼굴만 쳐다봤다.
《지배인동지!…》
그러나 더는 할말이 없음을 깨닫게 된 한대식이 입술만 꽉 깨물었다. 팥알같은 땀방울이 연방 솟아올라 굵은 줄기를 만들며 량볼로 흘러내렸다. 바랄수 없는 요구와 자신에 대한 무력감, 자책감으로 하여 몸부림치고싶은 한대식이 였다.
방하철은 그때야 그가 왜 이처럼 흥분되여있는지 짐작이 갔다.
《저도 연구사선생의 심정을 알만합니다. 그러나 다르게야 할수 없지 않습니까?》
《…》
《선생, 너무 조급해마시오. 내 전에도 말했지만 확장공사나 끝난다음 다시 력량을 집중해봅시다.》
《안됩니다. 지배인동지, 그렇게 해선 절대로 안됩니다. 발생로는 그렇게 때를 기다렸다가 할 문제가 아닙니다.》
한대식이 혼자말처럼 뇌이는 소리였으나 그 속에는 꺾을수 없는 굳은 의지가 담겨있었다.
방하철은 생각이 자못 무거워졌다. 그동안 한대식의 인간됨을 어느 정도 알고있는 방하철이였다. 말이 없고 언제나 사색속의 조용한 성미지만 그에겐 지칠줄 모르는 분발심과 드놀지 않는 높은 지향이 있었다. 그것은 과학자가 지녀야 할 더없이 귀중한 성품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성격이 너무 지나쳐 조건과 환경을 무시한다면 한갖 고집으로 되고만다.
바로 얼마전 발생로작업반 문제를 놓고 한대식이 그러한 고집을 쓰는바람에 자기와 좋지 않게 헤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대식은 아직도 그때의 주장을 조금도 버리지 않고있다. 아니 더 강해진것 같았다.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달라 작업반도 없고 도와줄 사람 하나없는데 무엇을 믿고 그러는지 도무지 리해가 안갔다.
만약 한대식이 계속 이런 자세로 나온다면 부상 남주혁은 가만있지 않을것이다. 방금전에 벌써 그런 상서롭지 못한 언쟁이 생기지 않았는가.
방하철은 자신이 그를 도와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집이 지나쳐서 그것이 탈이지 과학자로서는 나무랄데 없는 한대식이다.
《연구사선생, 지금 형편에선 선생이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확장공사가 끝날 때까지 주근주근 발생로의 약점들이나 퇴치해놓으시오.》
《…》
《진심으로 거듭 권고합니다. 자꾸 이렇게 고집을 쓰면 나도 이제 더는 선생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선생은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할 그런 정황에 있다는걸 왜 깨닫지 못합니까.》
순간 한대식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사색적인 그 두눈만은 여전히 고요했다.
《지배인동지, 전 그 누가 뭐라든 발생로를 중도에서 그만둘수도 없으며 이 공장에서 떠날수도 없습니다. 저에겐 더 물러설 자리가 없습니다.》
낮으나 드팀없는 그의 어조에 방하철이 낯을 붉혔다.
《선생, 너무 흥분해서 극단으로 끌고가지 마시오. 이것이 어디 감정으로 해결될 문젭니까? 내가 이미 발생로작업반 해산문제를 론할 때 얼마나 간곡히 권고했습니까. 문제를 현실적으로 보라구말입니다. 누구보다 사물현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과학자인 선생이 이렇게 한치의 양보나 리해도 하지 않으니 내 가슴이 막 타는것 같습니다. 혹시 선생은 발생로 하나에만 자기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한게 아닙니까?》
《옳습니다. 전 발생로를 못하면 더 살아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방하철은 흠칫하며 진심이 아니기를 확인하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묵직한 그 자세며 준절하고 엄엄한 표정은 범접키 어려운 기상이였다. 순간 그 어떤 강한것이 심장을 꽉 그러쥐는것 같았다. 그는 부지중 뜨겁게 공감했다.
《과학자의 자세와 신념은 바로 그래야 합니다. 그 측면에 대해선 나도 절대적인 동감입니다.》
《전 과학자가 돼서만 그러는것이 아닙니다. 발생로가 한시도 미룰수 없는 우리 현실의 절박한 요구이기때문에 저의 운명으로 받아들인겁니다. 지배인동지, 한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어서 말씀하시오.》
《전해능력확장문제 말입니다. 여기 공장이나 성에선 그것이 비료증산예비의 가급적이고 즉효가 보이는 방도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도처에 공장기업소가 수풀처럼 일떠서고 우리 공업이 비할바없이 커져 어디서나 전력을 요구하는 이 장엄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 발끝만 보며 전해능력을 확장하는것이 과연 옳은 립장일가요?》
《!…》
방하철은 두눈을 내리깔며 대답을 못했다. 너무도 뻔한 질문이였다. 그래서 얼마전까지 확장공사 기초안을 끌어왔던 자신이다. 말하자면 그가 제일 아파하는곳을 찔러댄 셈이다.
한대식은 그의 답변은 념두에 두지 않은듯 담담한 소리로 계속했다.
《지배인동지는 말끝마다 모든 문제를 현실적으로 보라고 권고하는데 과연 우리의 현실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해방직후 이 공장에 찾아오시여 우리 나라에서는 석탄과 석회석을 기초로 화학공업을 발전시키라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지배인동지도 알고있을겁니다. 저는 수령님의 이 강령적교시가 곧 우리의 현실이며 행동의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배인동지는 발등의 불이 급하다면서 이 현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있단 말입니다.》
《선생, 그건 너무 지나친 말이 아니요?》
눈길을 내리깔고있던 방하철이 격하게 반박했다.
《물론 저도 지배인동지가 가정도 꾸릴사이 없이 한몸바쳐 애쓰는 쉽지 않은 일군이라는걸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환경과 조건에 주저하고 동요하는것이 안타까워 그럽니다.》
낮으나 한껏 진정이 담긴 그 소리에 방하철은 괜히 큰소리로 탓했다고 후회했다. 그것은 쓸데없는 객기이고 위선이였다. 한대식의 그 한마디한마디에는 뜨거운 진실과 타이름이 있었다. 특히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자기 삶의 전부로 여기고 그것을 유일한 기준으로 현실을 감수하는 그 높은 세계는 심장의 피를 끓게 했다. 지난기간 과학하나밖에 모르는 성실하고 의지가 강한 보기 드문 연구사로만 알고지낸 한대식의 가슴에 이처럼 숭고한 넋과 신념이 자리잡고있는줄은 정녕 몰랐었다. 그가 돋보이면 돋보일수록 방하철은 발생로를 놓고 순간이나마 주저하고 동요했던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하여 마주 서있을수 없었다.
방하철의 이런 심적변화를 알수 없는 한대식은 심중해진 낯으로 급급히 자리를 피하는 지배인을 야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지배인의 뒤모습이 방금전 부상 남주혁이 걸어간 골목길로 사라지자 긴장이 확 풀리며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전해확장공사가 눈앞에 박두했다는 현실감과 함께 이를 막아나설 힘이 더는 없다는 절망이 뇌리를 쳤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나무 한대 없는 벌판에서 사나운 돌개바람과 맞선것 같았다.
예견했던 불안은 하루도 넘길사이 없이 그 다음날 아침에 찾아왔다. 안해가 싸들고 온 밥을 먹고 금시 로밑 불판조절을 시작했을 때다.
의외로 로익두가 화물차를 타고 현장에 들이닥쳤다. 전동기를 비롯한 확장공사에 쓸만한 설비를 회수해오라는 지령을 받고 왔다는것이다. 한대식이 어정쩡해 서있자 그는 자기가 분해 죽겠다는듯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전동기를 뜯어오라는거야 선생의 숨통을 조이라는 소리와 같은데 난 차마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선생이 이날이때까지 고생한걸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터질 지경입니다. 연구사선생, 그렇게 서있지만 말구 다시한번 사정해보시오. 그 부상이란 사람두 사람이니 인정이야 있겠지요.》
한대식은 숨이 꺽 막히고 두다리가 뻣뻣해지는것 같았다. 어제 부상이 왔다간 다음부터 벼랑길을 걷는듯 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불안이 이렇게 빨리 현실로 될줄은 생각도 못했다.
로익두가 무슨 말인지 주먹을 흔들어대며 연방 해댔지만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체 말고 부상이란 사람을 만나야 했다. 소박받은 며느리처럼 뻐꾹 소리 한마디 못하고 그냥 물러설수는 없었다.
그가 낯이 컴컴해져 자리를 뜨자 목청높이 떠들어대던 로익두의 입가에 한가닥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다급한 마음이 되여 부상을 찾아갔으나 지배인실에서는 무슨 회의가 진행되고있었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빠르면서도 어딘가 찌르는듯 한 부상의 목소리가 가끔 문틈으로 새여나왔다. 대기실엔 아무도 없었다. 지배인을 만나러 왔던 사람들이 잠시 서성거리다가 가버리군 한다. 그냥 앉아있기가 멋적었다.
이제 부상을 만나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는 어제 현장에 왔을 때 자기의 견해를 명백히 밝혔다. 무릎꿇고 사정한다? 그런데 무엇을 사정한단 말인가. 자존심이 허락질 않았다. 이게 어디 사정해서 풀릴 문제인가. 설사 사정해서 풀린다고 해도 무릎을 꿇고 빌수는 없다.
이때까지 소중히 키워오고 지켜온 그 뜻에 조금이라도 손상주어서는 안된다.
어쨌든 부상을 만나보자. 그가 진정 인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일군이라면 나의 뜻을 리해할것이다. 과학적문제에서 의견대립은 십분 있을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소유한 지식과 안목의 격차에서 오는 필연인것이다.
회의는 두시간 실히 넘어서야 끝났다. 자욱했던 방안의 연기가 굴뚝처럼 창문밖으로 꾸역꾸역 몰려나가고있었다.
남주혁은 방안에 들어서는 그를 본체도 않고 원탁앞에서 무슨 하얀 알약 서너알을 목안에 넣더니 보온병의 물을 꿀떡꿀떡 마셨다. 고혈압증에 먹는 알약같았다. 그러더니 푹신한 쏘파에 기지개를 켜듯 두다리를 쭉 펴며 젖비듬히 몸을 싣는다.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고 나가라는 눈치다.
한대식은 책상앞에 있는 나무의자에 마주앉았다. 감정이 북받쳐오르면서 말이 나가질 않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가슴속의 소용돌이를 단번에 토설하겠는지 울대뼈만 오르내렸다.
《연구사동무는 어느 대학을 나왔소?》
《??…》
한대식은 왕청같은 질문에 남주혁을 얼떠름히 쳐다보았다. 뒤로 젖힌 머리를 쏘파등에 대고 두눈을 감고있는데 잠든 사람 같았다.
《내 알기에는 동경 물리과대학을 나왔다는데 맞는가요?》
《네…》
《그 대학은 일본에서두 수재급만 간다고 하던데 조선사람치구 용케 나왔소. 그런 일류급대학을 나온 연구사가 하필이면 석탄덩어리를 주무를건 뭐요? 더구나 출신두 그래 살아온 경력두 그래 새까만 탄속에 묻혀있을 재사가 아니지 않소. 난 암만 그래두 연구사의 생존방식을 리해할수 없단말이야. 우리 단둘이 마주앉았을 때 좀 허심탄회하게 말해봅시다.》
한대식은 두주먹을 꽉 그러쥐였다. 당장 달려들어 두눈을 감고 념불외우듯 중얼거리는 남주혁의 상통을 후려치고싶었다.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퇴매하고 야스꺼운가. 상대방의 고충과 아픈 상처만을 골라가며 박박 긁어대는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그런데 이상한것은 참기 어려운 격분도 이 사람앞에선 맘대로 터칠수 없다는 사정이다. 그것은 직급의 차에서 오는 위압감도 아니며 초면인사치레때문도 아니다. 확실히 남주혁에게는 대상의 약점과 허물을 용의주도하게 리용할줄 아는 비상한 수완이 있는것 같다.
아픈곳을 찔린 한대식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내놓고 묻는 말에 반격의 기회를 찾을수 없었다.
가쁜숨만 몰아쉬며 묵묵히 앉아있는 그를 가느스름히 뜬 눈으로 넘겨다보던 남주혁이가 드디여 고개를 쳐들었다.
《무엇때문에 날 만나자고 왔습니까?》
《…》
《짐작이 갑니다. 어제 현장에 가서 한마디 한것이 걱정되여 왔지요?》
《아닙니다. 정 여기서 할수 없다면 다른곳에 가서 하면 되지요. 제가 하고싶은 말은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가스화를 그렇게 홀시하지 말아달라는겁니다.》
《연구사동무, 너무 흥분해서 속단하지 마오. 발생로는 당분간 여기서 계속 하시오. 어제밤 협의회 뒤끝에 지배인이 어찌나 완강히 변론해나서는지 내가 지고말았소. 하여튼 동무는 지배인을 잘 만났소. 그렇게 놓고보니 인테리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모양같소.》
《?!…》
발생로설비를 뜯어가자고 자동차까지 보낸 부상의 이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닭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것과 같은 변덕에 한대식은 뗑해지고말았다.
《하여튼 시험을 빨리 끝내고 어서 올라가시오. 이제 두고보오. 이 남주혁이 결코 옹졸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걱정해줬다는걸 알 때가 있을거요. 이젠 가보시오.》
한대식은 떠박지르듯하는 남주혁의 말에 더 서있을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