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과학원 부원장 강지창이 떠난 그 이튿날부터 혜련은 공장병원 약국에서 일하게 되였다. 약국은 그의 마음에 들었다. 약국에는 동의사로 림상에 오래동안 있은 환갑나이의 늙은 약국장을 포함하여 네명밖에 없었다. 우선 단출하니 좋았고 찾아오는 환자가 많지 않아 조용해서 자체로 연구사업을 얼마든지 할수 있었다. 혜련에게는 외국어에 밝고 큰 병원에 있었다고 하여 시병원에서 약품을 접수해다가 약종별로 분류해놓는 일감이 차례졌다.
어느날 점심무렵이였다. 시간이 좀 생겨서 약장안의 약병들을 다시 정리해놓는데 접수실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밤색원피스를 입은 풍만한 몸매의 녀인이 손을 흔들며 반기고있었다. 로익두의 처 강난실이였다.
《오래간만이군요. 어떻게 여길 다…》
접수실옆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혜련이도 반색을 지었다.
《나야 심장병때문에 노상 병원출입이라오. 왔던 길에 그냥 지나갈수 있어요. 그래 재미가 어때요?》
강난실의 비둔한 몸에선 향수내가 물씬물씬 풍겼다. 허여멀끔한 얼굴에 화장까지 진하게 하여 살결이 여간만 싱싱해보이지 않았다. 심장병환자치고는 특이한 체질이라고 할수 있었다.
혜련은 얼른 자리를 뜰것 같지 않아 그를 데리고 약국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아무도 없음을 알자 강난실이 혜련의 두손을 덥석 쥐며 아양을 떨었다.
《이젠 됐어요. 덩실한 주택에 집들이했겠다, 혜련선생두 약국에 척 틀구앉았겠다, 우린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미안해죽겠어요. 우리가 뭐라구 그런 큰집을 쓰구 살겠어요. 이사한 날 밤엔 잠을 다 못잤어요.》
《선생두 참, 그런 집에서 살만 하니까 주는거죠뭐. 지금 하는 연구사업만 성공하면 국가에 숱한 리득을 준다는데 그전같으면 벼락부자가 되지요. 그러니 조금두 미안할게 없어요.》
《그런 말 마세요. 이때까지 손해를 준것만 해두 머리를 쳐들구 다닐수 없다구 해요. 그리구 연구사업이야 그이의 본분이 아닌가요.》
혜련은 강난실의 말이 듣기 거북하여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받자하다가는 무슨 말이 튀여나올지 몰랐다. 했으나 강난실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얄팍한 입술에 미묘한 미소를 그리며 창밖을 힐끔 살폈다.
《자신들을 너무 낮추지 마세요. 솔직히 혜련선생이 그전 세월같으면 그 알량한 집을 쳐다나 봤겠어요. 지금두 그렇지요. 서울에만 나가면 고대광실에 매일 환락만 즐기실 두분이 아닌가요. 그런데두 애국심이 높아 부모님들과 절교하구 여기서 고생만 하는걸 보면 두손에 떠받들만하죠뭐.》
《?!…》
《저두 고향이 이남이예요. 막 그리워 죽을지경이예요. 우리 서로 친척처럼 의지해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 집 지체가 하두 요란해서… 우리 주인이야 보잘것 없는 보짐장사가 아닌가요.》
《이보세요. 그런 말만 하겠으면 여기서 나가세요.》
혜련은 더 듣고만 있을수 없어 툭 쏘아주었다.
《내가 실없는 소리를 한것 같군요. 미안해요. 난 가겠어요. 후에 또 들리겠으니 심장에 좋은 약이 나오면 좀 주세요. 신세는 톡톡히 갚을테니. 호호…》
강난실이 축 처진 볼에 애교를 담으며 살갑게 웃었다. 그가 물함지같은 엉뎅이를 내흔들며 호기스럽게 나가자 방안은 갑자기 싸늘하고 어두워보였다.
귀가 뗑하고 머리가 지긋지긋했다. 한동안 그대로 우두커니 앉아있던 그는 억지로 일어나 약장앞으로 가서 다시 일손을 잡았다. 그러나 약병을 자꾸만 헛갈리게 놓군 하여 약장을 정리할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점심녘이 가까왔다.
그는 세면대야에 손을 씻고 위생복을 벗은 후 밖으로 나왔다.
기분이 건뜻해졌다. 높이 뜬 정오의 태양이 따가운 볕을 정수리며 어깨에 쏟아놓는다. 병원문을 나선 그는 행길 한옆을 따라 스적스적 걸었다. 포장도로가 화끈 달아 확확 열기를 뿜었다.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발은 더위에 늘어졌고 길옆 랭차매대앞에는 오구작작 떠드는 소리로 요란했다.
얼마 걷지 않아 땀발이 서기 시작한 혜련이 저도 모르게 랭차매대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흠칫 섰다.
사람들속에 풍만한 몸매의 밤색원피스가 얼른거렸던것이다. 순간 얄팍한 입술에 하늘거리는 웃음을 담고 자기를 빤드름히 쳐다보던 미묘한 눈길이며 비둔한 몸을 이리저리 꼬며 친절과 동정을 표시하던 살가운 모습이 떠오르자 선뜩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의 감정은 생각지도 않고 제기분에 놀아나는 그 저급하고 경망한 행동이 혐오감을 주었다. (그가 왜 그처럼 친절을 보였을가?)
불쑥 이곳에 처음 내려오던 날 화물차까지 타고나와 반겨주던 로익두의 앙바틈한 모습이 떠올랐다. 로익두는 그때 피아노 잘 타는 원산 감나무집 따님을 만났다고 무척 반기며 극진한 환대를 했으나 혜련은 초면이라 할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들부부는 자기 집 래력을 잘 알고있으며 로익두와 친정아버지와는 깊은 인연이 있는것 같았다. 그렇다면 인척없는 낯선 고장에서 그들과 가까이 의지해 살아가면 좋은 일이지 나쁠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강난실이한테 정이 붙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선생님-》
혜련은 누군가 찾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얀 면브라우스에 풀색스카트를 받쳐입은 오동통한 처녀가 손수레를 끌고 새물새물 웃으며 다가왔다.
《선생님이 옳군요. 뒤모습이 낯익다 했는데.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리 해요?》
고개를 까딱해보인 처녀는 솜털이 보잇한 동실한 볼의 땀을 손수건으로 꼭꼭 눌러대며 두눈을 반짝였다. 남편이 앓고있을 때 그를 담당했던 허초순간호원이였다. 그를 알아본 혜련은 반색을 지으며 몇걸음 마주 다가갔다.
《수고하는군요. 정말 오래간만이예요.》
《우리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데 왜 우리 구급과에 오지 않구 그리루 갔어요. 내가 알았더라면 당장 끌어왔겠네.》
《배운것이 그것뿐이니 어찌겠어요.》
《선생님은 그저 엉큼하다니까. 난 그때 주사놓으러 갔다가 망신당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두 막 분해 죽겠어요.》
《그런 일 있었던가?》
《아유, 시치밀 딱 따시네. 또 햇병아리 뿅뿅 잘은 놀아난다고 하겠군요.》
《호호…》
혜련은 그때 생각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고말았다. 티하나 없이 청초하고 발랄한 모습을 보니 좀전의 울적하던 기분이 사뭇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때 바람을 일쿠며 달려오던 화물차 하나가 연방 경적을 울리더니 손수레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그와 동시에 운전칸쪽 창문으로 반고수머리가 쑥 나왔다.
《동무, 정신있어. 길가운데 떡 막아서서.》
화들짝 놀란 초순이 인도로 깡충 뛰여오르며 고개를 획 돌린다.
《왜 떡떡거려요. 이 수레도 당당한 차도운행증이 있단 말이예요.》
《허참, 얼굴 아깝다. 따벌이군.》
손수레가 비켜서자 반고수는 운전칸문을 후려닫으며 윙- 달아났다. 초순은 그뒤에 종주먹을 흔들어댔다. 혜련은 손수레의 한쪽을 잡아끌며 짐짓 정색한 표정으로 나직이 타일렀다.
《그러면 되겠어요. 얘기바람에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나요.》
《그렇다구 그저 고분고분하면 저런 심술쟁이들이 어쩌는줄 알아요. 우리같은 햇병아리들은 제 주머니속 손칼처럼 가지구 놀자고 한답니다. 그래서 본때를 보여줬죠뭐. 호호.》
혜련은 따라웃고말았다. 단순하고 구김살 없고 그러면서도 사회생활의 첫걸음부터 자기를 지켜나가려는 처녀의 자유분망하고 곧은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 수레에 실은 통은 뭐예요?》
《탄산수통이예요. 로동자들이 이걸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우리 민청원들두 짬을 내서 좋은일 하기루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탄산수가 모자라 야단이예요. 요즘같은 철에 탄산수가 수도물처럼 좔좔 나왔으면 얼마나 좋겠나요.》
《동무들이 정말 좋은 일을 하는군요. 이 탄산수는 어디서 가져와요?》
《로보로 공급되는겁니다. 비교적 힘든 부문만. 아이참, 얘기장단에 선생님한테 그만…》
손수레를 멈춘 초순은 몹시 미안해하며 혜련을 밀어내려 했다.
《나두 좋은 일을 좀 해보자요.》
하고 소매로 이마의 땀을 문댄 혜련은 손수레를 놓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공장정문을 지나 서쪽으로 치우쳐있는 공무직장쪽으로 향했다.
혜련은 단조장앞에서 초순이와 갈라졌다.
혜련은 노르스름한 가스가 하들하들 피여오르는 류안직장건물너머로 발생로가 있는쪽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고싶지 않았다.
남편은 요즘 몹시 바쁘게 지내는 몸이였다. 명색이 새집들이지 한두끼를 집에서 하고는 들어올 생각조차 안했다.
대낮에 남편일터를 찾아다니는것이 별스러워 머리를 수굿한채 발생로쪽으로 다우쳐가니 현장은 조용했다. 점심때가 되여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것 같다.
소형용광로처럼 검은 동체를 드러내놓고 우뚝 솟은 로를 눈앞에 보니 얼마전 불꺼진 로를 주먹으로 때리며 몸부림치던 남편이 떠올랐다.
그는 조심히 휴계실문을 열었다. 휴계실안은 텅 비여있는데 옷걸개며 긴 책상우에 놓여있는 재털이가 반반했다. 썰렁한 느낌이 들면서 사람거접이 전혀 안보였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옆에 붙은 남편의 연구실에 들어서던 그는 눈살을 찌프리고말았다. 원탁우에 쌓여있는 원서들과 자료카드들, 구석에 되는대로 뭉그려 틀어박은 작업복과 뚜껑조차 닫지 못한 늄남비… 못볼것을 본것만 같아 외면하고말았다. 가슴노리가 짜릿했다. 분명 여기서 숙식을 하는것 같았다. 출퇴근시간이 아까와서 다시 공장합숙에 나가겠다고 하기에 그런줄로만 알고있었다. 조건이 허락치 않는다면 몰라라 곁에 집과 안해가 있는데 왜 부디 사서 이 고생을 하는지. 고집스럽다할 그 결곡한 성미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이건 너무 지나친 행동이다. 하루이틀에 끝날 연구사업이 아닌데 이런 비정상적인 생활로 한생을 보낼수는 없지 않는가.
이때 런닝그바람의 한대식이 땀을 철철 흘리며 연구실로 들어왔다.
《당신이 어떻게 왔소? 약제사가 왕진오진 않았겠는데.》
아무 생각없이 들어서던 그는 초연히 서있는 안해를 보자 짐짓 롱말을 걸었다.
《…》
혜련은 따가운 볕을 받아 벌겋게 익고 온몸이 땀주머니가 된 남편을 보니 더욱 억이 막혔다.
《날씨가 여간 덥지 않군.》
한대식은 창턱에 놓인 주전자의 물을 꿀꺽꿀꺽 마시더니 목에 건 수건으로 얼굴과 가슴을 천천히 문대며 혜련의 눈치만 봤다. 눈을 내리깔고 어깨숨을 내쉬던 혜련이 이윽하여 구석에 있는 바께쯔를 집어들었다.
《여기 물나오는곳 없어요?》
《물은 왜?》
《그 몸을 씻어야겠어요.》
《역시 녀편네가 녀편네군. 길어올것 없이 함께 가기요.》
그들은 밖으로 나왔다. 공장급수탑에서 보내는 수도는 발생로옆에 있었다.
언젠가 지배인 방하철이 물벼락을 받던 곳이였다. 한대식은 웃옷을 훌훌 벗었다.
《제창 목마를 끼얹어주오.》
《정신있어요. 누가 보면 어쩔려구.》
혜련은 얼른 사위를 둘러보며 덴겁을 했다.
《뭐 못할짓을 하나. 생각같아선 목욕을 했으면 시원하겠는데.》
할수 없이 허리를 굽힌 남편의 잔등에 고무호스를 가져다댄 혜련의 마음은 별로 흥그러워졌다. 요즘 몰라보게 달라진 남편이다. 그처럼 완고하던 새집들이며 병원입직에 선선히 응해나선것은 둘째치고라도 하루 한마디면 족하던 그의 입에서 롱말이 나오고 표정과 행동에서도 활력이 느껴진다. 그 까닭을 딱히 알수 없으나 강지창부원장이 왔다간후부터 생긴 변화가 분명했다. 이 달라진 모습이 얼마나 지속되겠는지?… 혜련은 그것이 발생로의 운명과 련결되여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앞날을 락관할수가 없었다.
잠시후 그들은 발생로옆에 있는 버드나무아래 나란히 앉았다. 한낮의 뜨거운 볕에 나무잎들이 윤택을 잃고 휘줄근했다.
한대식은 몸이 거뿐했다. 시원한 물을 맞고 그늘아래 앉으니 땀이 쑥 들어갔다. 그는 나무우듬지에 앉아 귀따갑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흥겹게 듣고있다가 안해쪽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 병원이 어떻습디까? 꽤 재미를 붙일만 하오?》
《처음엔 말투가 세고 거친것 같아 으쓸했는데 지내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이 고장 사람들은 성미가 격렬한것 같아요.》
《옳게 봤소. 처음 붙이기가 힘들지 일단 사귀여놓으면 바지까지 벗어줄 사람들이지. 그 약국장아바이가 동의에 그렇게 밝다면서?》
《그런데 이보세요. 오늘 점심부터 집에 들어가 식사하자요.》
혜련은 일부러 수선을 떠는것 같은 남편의 말을 막으며 아까부터 하자던 말을 꺼냈다.
《제집을 곁에 두고 뭣때문에 구접스레 여기서 끼식을 하세요.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요전번 부원장동지가 오시여 그만큼 조건을 풀어주고 가셨는데 아직두 맘놓이지 않으세요?》
《…》
한대식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부원장이 왔다간후 달라진것이란 발생로시험을 이 공장에서 계속할수 있게 됐다는 그것뿐이였다. 작업반은 물론 이미 방조자로 붙였던 금희까지 떼버렸다. 하고싶으면 혼자서 해보라는 식이다. 그러나 한대식의 속은 든든했다. 비록 조건과 환경은 더 나빠졌다해도 강지창부원장은 참으로 귀중한것을 남기고 올라갔다.
정녕 마음대로만 할수 있다면 지난날의 그 모든것을 령으로 선언하고 인생도 과학도 새로 시작하고싶은 간절한 심정이였다.
한대식은 비장한 각오를 했다. 공장의 방조를 더는 받을수 없게 된 상황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혼자 맡아야 했다. 언제 집에 들어가서 안해가 가져다주는 밥상을 받겠는가. 일이 안될 때라 석근수도 자리를 뜨고 없었다. 분계연선지대에서 복무하는 막내아들의 편지를 받고 떠났던것이다.
한대식은 이런 형편을 안해한테 말해줄수가 없었다. 안해가 안다고 해서 형편이 달라질것은 없는데 괜히 그의 마음만 괴롭히고싶지 않았다. 듣기 좋은말로 타이르는것이 상책인데 생각이 궁했다.
《여보, 내 걱정은 마오. 나야 10년을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소. 그리구 당신두 살림을 하러 여기 내려온 사람은 아니구. 그러니 하루라두 앞당기자는 의도야.》
《저두 당신맘을 모르지 않아요. 그러나 이건 너무하지 않는가요. 그전에는 조건이 허락치 않아 할수 없이 고생했다지만 지금 형편에서 왜 부디 자신을 혹사하는가 말이예요. 내가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자구 철이를 남의 집에 맡기구 여기에 내려온줄 아세요. 쫓겨난 홀아비처럼 끼식을 제손으로 끓이면 사람들이 절 뭘루 알겠어요. 끼식만이라두 집에 들어와 하세요.》
혜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고집스럽다할 그 진득한 성미에 이제는 막 지칠 정도다. 한대식은 안해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좋은 말로도 안해의 여린 마음을 위안할수 없었다. 이전에는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하여 조심스레 넘겨다보며 속으로만 왼심을 쓰던 그가 내놓고 불만을 표시할 정도로 됐은즉 한걸음 양보할수밖에 없었다.
《그럼 끼식은 집에 들어가 하겠소. 그러면 되겠지, 자. 이젠 당신두 가보오. 난 합숙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겠소.》
한대식은 더 앉아있어야 옹색한 칭원만 받을것 같아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다. 내가 다 알고있으니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듯 잠시 그쳤던 매미가 또다시 귀따갑게 울어댔다.
남편의 태도가 석연치 않았으나 혜련은 일어나는수밖에 없었다. 이 길로 남편을 집으로 데리고가 점심을 대접하고싶었으나 그나마 확답받은 약속마저 취소할것 같아 참고말았다. 아닐세라 이날저녁 한대식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늦도록 기다리던 혜련은 가는숨을 내쉬며 밥보자기를 싸들고 직장으로 나왔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아직 퇴근전이여서 일터가 들썽할줄 알았는데 어둠에 잠긴 발생로주위는 너무도 조용했다. 어디선가 달그락거리는 삽질소리가 나기에 그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철기둥에 매단 간데라불빛아래 누군가 탄더미에서 삽질을 하고있었다. 남편이였다.
《이보세요.》
한대식은 무슨 못할짓을 하던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허리를 폈다.
《아, 당신이요? 그런데 왜 이밤중에 또 나왔소?》
혜련은 눈물이 콱 솟구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비로소 사태의 진상을 알아차렸던것이다. 육감이 틀림없었다. 아까 왔을 때 별로 썰렁하고 조용하던 현장휴계실이며 없는 말재간으로 자기를 위안해주려 수선을 떨던 남편의 심상치 않던 행동들이 우연치 않았다.
남편은 여전히 지배인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있으며 해산된 작업반원들이 여기에 나타날리가 없었다. 그는 외톨이신세가 된셈이다. 남편의 처지가 마치 저기 철기둥우에 매달린 간데라불처럼 보였다. 바람부는대로 불꼬리가 흔들거리는 저 간데라가 언제 꺼질지 아심아심하기만 하다.
불현듯 간데라불을 막아줄 사람은 안해인 자기밖에 없다는 눈물겨운 현실앞에 혜련은 오연히 고개를 쳐들었다. 걱정이나 하고 타발만 할 때가 아니였다.
남편의 일손을 도와야 했다. 발생로현장에 뛰여들어 석탄 한삽이라도 떠옮겨야 하고 한㎏의 알탄이라도 직접 만들어줘야 한다. 눈굽에 고인 눈물을 남편 못보게 팔소매로 눌러버리고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당신두 거짓말 할 때가 있군요?》
《아, 끼식때마다 집에 들어간다는 약속? 생각이야 했지. 그런데 도중에 한 친구가 잡아끌어서 특식을 대접받았구만. 오늘 자기네 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 판정검열에서 합격이 됐다누만.》
한대식이 허리춤의 수건을 뽑아 얼굴을 문대며 미안해했다. 태연한 그의 표정을 보니 정말같기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확인해볼 필요가 없게 된 이상 아무런들 무슨 상관이랴. 굶었다는 소리보다 듣기가 좋았다.
《마침 잘됐군요. 괜히 눈빠지게 기다렸죠. 어쨌든 손씻고 이쪽으로 좀 와서 앉으세요. 제 성의도 좀 생각해줘야지요.》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더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전 아직두 식사전이예요. 막 배고파 죽겠어요.》
《허허. 앞집 총각 믿고있다가 시집 못간다더니 당신 괜히 배를 곯았구만.》
꾸밈과 거짓을 가장 속된것으로 치부하던 그들부부가 어쩌면 이렇게 자신들을 속이는 말이 슬슬 나오는지 그것을 체감하는 순간 그들은 서로 눈길을 피하며 낯을 붉혔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가장 저렬하고 속된것으로 치부되던 그 거짓과 위선이 상대방을 더 깊고 진실하게 알수 있게 한다는것이였다.
혜련은 더 권고하지 않고 탄더미에 꽂힌 삽을 뽑아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뭘하세요?》
알탄성형기손잡이를 돌리고있던 한대식이 낯색이 굳어지며 안해를 만류하려다 그만둔다.
《알탄을 만들고있소. 이것이 수동식알탄성형기라는거요.》
혜련은 점결제를 혼합해놓은 가루탄을 조금씩 떠서 알탄성형기에 넣었다.
천천히 돌아가는 성형기밑으로 성냥곽크기만 한 알탄이 떨어져나왔다.
그들은 묵묵히 일손만 놀렸다. 한대식의 얼굴에선 땀이 철철 흘렀다. 혜련은 손수건을 꺼내여 그러한 남편의 이마며 목덜미를 자주 씻어주었다.
《이보세요. 그전에 라석호기사가 가져왔던 알탄성형기도면은 어떻게 됐어요? 그것만 되면 알탄은 문제 없다구들 하던데요.》
《…》
한대식은 간절한 기대로 쳐다보는 안해의 땀에 젖은 얼굴을 피해 손잡이만 더 힘껏 돌렸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라석호가 착안했고 그처럼 기대가 컸던 완전기계화된 알탄성형기도면은 지금 기술부 서류함속에 묻혀있다.
강지창의 혹독한 추궁을 받은 날 한대식은 잠을 이룰수 없었고 며칠간 자신의 생활을 깊이 돌이켜봤었다. 지난날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고 전혀 무관심했던 일들이 뜻밖의 의미로 재생되였을 때 그는 몹시 당황했고 부디 반박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부에 떠맡긴 알탄성형기도면문제가 상기되자 수치감과 환멸을 금할수 없었다. 그 설계도면을 당장 찾아다 완성하든가 아니면 라석호앞에 무릎꿇고 사죄하고싶었으나 아직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해 기다리고있는중이였다.
남편이 대답을 피하며 일손만 더 세차게 놀리자 혜련은 호- 하고 가는 숨이 절로 나갔다. 혼자서 이런 식으로 발생로를 해서야 언제 끝장을 보겠는가. 생각할수록 막연했다. 지꿎은 불안과 그 어떤 알수 없는 반발심이 솟구쳐오른 그는 알탄성형기 손잡이를 더 세괃게 돌렸다. 했으나 그것은 마음뿐 연약한 팔은 얼마를 못가서 기진해버렸고 목에선 단내가 확확 풍겼다. 걷잡을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때문에 눈이 쓰렸고 온몸은 미역을 감은듯 함씬 젖어버렸다.
좀 쉬구했으면 좋겠으나 남편은 묵묵히 성형기에서 떨어지는 알탄을 한쪽옆에 쌓아나갔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는지 문뜩 쩝쩔한 해풍이 휘힉- 하고 땀에 화락한 그들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새벽시간마다 어김없이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이였다. 바람멀기는 점차 잦아지고 세차졌다. 그러자 철기둥에 매달려 희미한 빛을 뿌리던 간데라불이 위태롭게 하늘거리다가 끝내 꺼지고 만다. 순간 사위는 먹물을 뿌린듯 캄캄했다. 새까만 어둠속에 알탄성형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가락맞게 들렸다.
한대식이 얼른 달려가 철기둥에서 간데라를 벗겨 성냥불을 가져다댔다. 팍- 하고 불꽃이 붙어야 되겠는데 왜 그런지 잠잠했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성냥불을 거듭 켜댔으나 여전히 불꽃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두세요. 바람이 이렇게 세찬데 붙인들 간데라불이 견뎌내겠어요.》
혜련이 보다못해 침울한 소리로 한마디 했다. 아까부터 철기둥에 외롭게 매달린 간데라불이 어딘가 남편의 처지와 비슷하다 했는데 희망도 없는 그것을 되살려보겠다고 애쓰는 남편을 보니 금시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았다.
《보이지도 않는데 이젠 좀 쉬구려. 내 제꺽 고쳐놓겠소. 이제보니 간데라에 물이 말랐구만.》
어둠속에서도 간데라의 뚜껑을 열고 재를 털어낸 다음 물을 부어넣는 한대식의 동작은 여간 잽싸지 않았다. 잠시후 팍-하는 소리와 함께 비자루모양의 세찬 불길이 어둠을 확 밀어냈다.
《자, 이젠 어떤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을테니 맘 푹 놓소.》
한대식은 근심이 콱 실린 혜련의 침울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간데라를 다시 철기둥에 매단 한대식은 안해와 함께 알탄성형기앞에 나란히 앉았다.
《좀 쉬구 합시다. 여보, 힘들지?》
《…》
《아마 이런 일이 처음이지?》
한대식은 땀에 촉촉히 젖은 안해의 귀밑머리며 잔등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저야 아무런들 뭐라나요. 전 당신이 걱정돼요. 당신의 처지가 왜 그런지 저기 외롭게 매달린 간데라처럼 생각되는게 막 불안하군요. 여보, 공장에서 정 도와줄수 없다면 본원에 제기해서 방조성원들을 요구하세요. 부원장동지두 이곳 실태를 잘 알고 가셨으니 쾌히 승낙하실거예요.》
혜련의 목소리는 불안과 안타까움에 젖어있었다.
《만약 당신이 제기하기 뭣하면 제가 부원장동지에게 편지하겠어요. 사태가 이렇게 험하게 된줄 전 오늘에야…》
혜련은 흐느낌을 삼키듯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여보, 너무 심각해서 그러지 마오. 사실은 방조성원을 보내주겠다고 하기에 내가 극력 반대했소.》
《그게 정말이예요?…》
《물론 그때 사태가 이 지경으로 될줄은 예측 못했지. 그렇다구 이제 와서 주저하거나 물러설수야 없지 않소. 내 몸이 열두쪼각난다 해두 발생로는 꼭 해야 하오.》
《이보세요. 제가 당신 뜻을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예요. 누가 감히 당신의 그 굳은 마음을 의심하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혼자의 몸으로야 어떻게 발생로를 하시겠어요. 그러단 며칠 못가서 당신 몸이…》
한대식은 고개를 들어 철기둥에 매단 간데라를 바라보았다. 물을 보충받은 간데라는 훅훅 불어오는 해풍에 맞서기라도 하듯 손가락처럼 굵은 불줄기를 세차게 내뿜고있었다.
《당신 말이 옳소. 무슨 일이든 혼자서야 할수가 없지. 이 단순한 진리를 난 왜 그렇게 힘들게 깨닫게 됐는지… 얼마전까지 난 과학사업은 어디까지나 과학자자신만이 책임지고 할수 있지 그 누가 대신할수 없다고 생각해왔거든. 그래서 난 평양에서 여기 내려온 당신을 못마땅해했고 작업반원들의 도움도 뜨겁게 대하지 못했소. 그랬으니 석근수아바이나 석호기사랑 나때문에 얼마나 속을 태웠겠소. 내가 아직까지 그런 생활관에 있다는것을 알게 된 강지창부원장은 너무 안타까와 몸둘바를 몰라하더군. 아마 친동생이라면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을거요. 그날밤 난 잠을 이룰수가 없었소. 어떻게 되여 아직까지 일제시기의 그런 낡은 습성이 남아있었는지 내자신이 막 저주스럽더란 말이오.》
한대식의 나직한 음성은 뼈아픈 자책으로 간간이 끊어졌다. 강지창부원장이 왔다간 후 남편의 생활이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던 혜련은 이처럼 깊은 자책에 모대기고있은줄은 미처 몰랐다.
《여보, 난 지난날 헛살아왔소. 나 하나밖에 모르고 살아왔단 말이요. 의리도 인정도 아무것두 모르는 그런 골방선비였소.》
《여보, 자신을 너무 그렇게 탓하지 마세요. 당신이 언제한번 제집에서 편안히 발편잠을 자본적이 있었나요. 10년가까이 이렇게 외지에서 고생하지 않았나요.》
《그것이 위안으로 될수는 없소.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신념을 안고 사는가에 따라 삶의 진가가 평가되오. 나에겐 바로 그 기준으로 될수 있는 신념이 똑똑치 않았단 말이요. 요전날 강지창부원장이 그런 나를 놓고 그렇게도 안타까워하며 들려주던 이야기가 아직도 귀전에 쟁쟁하구만.》
한대식의 목소리는 점차 흥분으로 높아졌다.
《여보, 46년도 초가을 내가 당신을 데리러 서울에 나갔던 일이 생각나겠지?》
《하필 이런 때 아픈 허물은 왜 헤치세요.… 전 그때 당신의 권고를 뿌리치고 원산에서 서울로 나간것을 얼마나 후회하고있었는지 모른답니다. 만약 당신이 한두달만 더 늦게 서울에 왔더라도 전 울분에 못이겨 죽고말았을거예요. 그런데 왜 갑자기 그때 일을 물으세요?》
《여보, 그때 당신을 데려오게 하신분이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였다오.》
《수령님께서요?!… 그땐 말할수 없이 복잡한 시기였는데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관계를 어떻게 알고계셨을가요?》
혜련은 너무도 놀라운 말이라 정색한 표정이 되여 남편을 뚫어지게 지켜봤다.
《실로 누구나 상상키 힘든 일이요. 나도 처음엔 꿈을 꾸고있는것만 같았소. 글쎄 생각해보오. 해방직후의 그 어렵고 복잡한 때 나같은 존재가 뭐겠소.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나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자 인테리들의 마음속엔 한점의 그늘이라도 있으면 안된다고 하시며 어서 그 동무를 내보내여 애인을 데려오는게 좋겠다고 그래야 자신께서도 맘을 놓을수 있다고 하시였다오.》
흥분된 한대식이 두서없는 말을 옮기다가 문뜩 입을 다물었다. 이름할수 없는 환희와 감격에 젖은 안해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 오늘에야 비로소 그 존귀한 이야기를 해주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던것이다. 잠시 자신을 수습한 한대식이 강지창부원장이 하던 감격적인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그랬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야기를 다 듣고난 혜련이 목이 콱 잠긴 소리로 거듭 외웠다. 맑은것이 가득 고인 그의 두눈은 그 깊이를 알수 없이 그윽히 빛났다.
《여보, 우리가 모르고있는 일이 어디 그 하나뿐이겠소. 부모의 사랑을 다 아는 자식이 없다지만 이처럼 다심하고 깊은줄 그 누가 생각이나 할수 있겠소. 지난날 떳떳치 못한 우리이기에 조금이라도 주접이 들세라 그늘이 질세라 그토록 왼심을 써오시는 우리 수령님이시오. 친부모의 사랑인들 어찌 이보다 더 하겠소. 우린 수령님의 이런 각별한 은정과 배려에 한몸이 다 진할 때까지 충성으로 보답해야 하오. 그런데 발생로에 일시적인 난관이 조성됐다고 하여 과학원의 방조를 요구해서야 되겠소. 우린 절대로 외롭지도 않고 혼자라고 생각해도 안되오. 우리곁에는 석근수아바이랑 믿음직한 로동계급이 있소. 그리구 지배인동지두 우리를 리해하고 꼭 도와줄거요. 문제는 우리가 손맥을 놓지 않고 발생로를 하루속히 되살리는데 있소. 여보. 내 결심이 그러니 당신도 그런 각오를 가지고 힘을 내오.》
그들부부는 얼마후 다시 일손을 잡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앙양된 그들부부의 심정을 말해주듯 철기둥에 매단 간데라불이 더 세찬 불줄기를 내뿜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