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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불식간에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 리숙이 아궁앞에 쪼그리고앉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있을 때 방하철은 벌써 한대식연구사가 있을 발생로로 향하고있었다. 그는 잠시나마 자가당착에 빠져 합숙에까지 피해왔고 목가적인 기분에 잠겨있은 자신을 경멸했다. 합숙이 아니라 한대식을 찾아가 그에게 실태를 말해주고 리해시켰어야 했다.

짐작했던대로 숨죽은 발생로현장은 괴괴했다. 저쪽 저탄장이며 알탄작업장 그리고 로둘레가 별로 으쓸해보이는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썰렁해진 현장을 지나 휴계실옆의 연구실로 들어가니 방은 텅 비여있었다. (음, 아무리 진득한 사람이라두 여기 앉아있을 경황이 없겠지.)

어디 사람들 없는 외진곳에 가서 한숨만 쉬고있을 연구사가 눈앞에 그려지자 미안하고 죄스러운 감을 금할수 없었다.

작업일지며 실험기구들이 너저분히 널려있는 비좁은 한대식의 연구실을 쓸쓸한 눈길로 훑어보고난 그는 발길을 돌려 휴계실로 나섰다.

사람을 띄워 찾아보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발생로곁을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가느다란 흐느낌이 들려왔다. 그는 흠칫 자리에 굳어졌다. 숨죽어 더욱 으쓸해보이는 거뭇한 로동체며 되는대로 휘저어버린듯 나뒹구는 알탄과 탄재들이 어지러이 보일뿐 더는 아무소리도 없었다. 착각인가 하고 다시 발을 옮기는데 로상부에 등을 이쪽에 돌려대고있는 웬 녀인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흰 브라우스를 입은 동그스름한 녀인의 등어깨가 보일듯말듯 들먹이고있는데 흐느낌소리는 거기서 난것 같았다.

뜻밖의 녀인이 하도 이상하여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두걸음 쇠층계를 밟고 로상부로 올라갔다. 인기척을 느낀 녀인은 팔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황황히 눈굽을 훔치며 자세를 다잡았다. 처음보는 녀인이였다.

《부인은 뉘신지요? 제 여기 지배인입니다.》

녀인은 트레머리를 푹 숙여보이더니 몸을 약간 모로세우며 목안의 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한대식연구사의…》

무척 힘들게 입을 떼는 녀인은 박혜련이였다.

《??…》

방하철은 공교로운 상봉에 다시한번 놀랐다. 주택건설과 관련하여 복잡한 문제가 야기되였을 때 몹시도 궁금중을 불러일으키던 녀인이였다. 그때는 남편한테 묻어다니는 갱충머리없는 녀인으로 예감했는데 그런것 같지 않았다.

류행에 앞선 알맞춤한 트레머리와 웃몸을 부드러이 감싼 흰 브라우스에 하늘색 스카트를 받쳐입은 단정한 옷차림과 내심의 격정을 얼른 다잡고 긴 속눈섭을 차분히 내려뜬채 상대를 대하는 그 세련된 몸가짐은 은연중 지성과 교양을 엿보게 했다.

방하철은 뒤늦게나마 인사를 차리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 공장에 내려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번 기회를 마련해서 만나자고 했었는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제가… 지배인동지, 정말 면목이 없게 됐습니다.》

혜련의 진정어린 말에 방하철은 입맛만 다셨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마주 서있을수록 피차 옹색한 말만 나올것 같아 화제를 딴데로 돌렸다.

《그런데 아주머닌 어떻게 되여 여기 올라와 있습니까?》

《…》

혜련은 급기야 당황해하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방하철은 묻지 말아야 할것을 물은것 같아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철판층계를 내려서려 했다. 그러자 혜련이가 앞으로 한발 나섰다. 그의 눈두덩은 발깃하게 부어올랐고 시름가득한 커다란 눈에 간절한 요구가 비발쳤다.

《지배인동지, 우리 철이 아버지를 좀 도와주세요. 그이는 이 로안에서 나오질 않고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로안에는 왜 들어갔답니까?》

뜻밖의 말에 방하철은 몸을 돌리며 혜련을 뚫어지게 보았다.

《…》

혜련은 대답을 못한채 가슴만 높이 들먹였다.

그가 금희의 련락을 받고 현장에 나왔을 때 남편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로앞에 멍청히 앉아있었다. 흩어진 머리칼과 옷자락에는 먼지가 뽀얗게 올랐고 손등에는 꺼멓게 말라든 피딱지가 붙어있었다. 그는 안해가 옆에 와 선것도, 손잡아 일으켜세우는것도 느끼지 못하는듯 굳어진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입속으로 신음소리를 삼키며 돌연히 쇠층계를 딛고 로상부로 치달아올랐다.

혜련은 엎어질듯 달려가 로안에 몸을 들이미는 남편의 허리를 붙들었다.

《이보세요. 불꺼진 로안에 들어가선 뭘하겠어요. 진정하고 어서 나오세요.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겠나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혜련이 부르짖듯 애절하게 호소했으나 그를 막아낼수 없었다. 로안은 천길심연속처럼 캄캄했다. 겁이 더럭 난 그가 로벽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안타까이 소리쳤으나 대답이 없었다. 얼마후에야 정대로 로벽을 쪼아대는 마치소리가 아츠럽게 들려왔다.…

《아주머니, 너무 걱정말고 이젠 들어가보십시오. 내 연구사동무와 할 말이 있습니다.》

방하철은 가슴만 들먹이며 대답을 못하는 혜련이가 측은해보일수록 자신이 민망스러워졌다.

혜련은 무슨 부탁할 말이 있는듯 애잔한 눈길로 방하철을 조심스레 올려보다가 용기가 나지 않는듯 다시 고개를 떨구며 쇠층계를 내려갔다.

방하철은 혜련이가 휴계실 저쪽으로 멀어지자 허리를 굽히고 로안을 들여다봤다. 칠흑처럼 캄캄하기만 했다. 이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는것이 믿어지질 않았다.

《연구사선생-》

《…》

《연구사선생, 내 지배인이요. 밖으로 좀 나오우.》

얼마후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뒤이어 성냥불이 드윽 그어지더니 두억시니 같은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한대식이 천천히 로상부로 몸을 내밀었을 때 방하철은 그만 골살을 찌프리고말았다. 반짝이는 두눈과 형체가 있어 사람이지 움직이는 까만 석탄덩이와 같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한대식의 어조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좀 마주앉아 허심탄회하게 론하자고 했는데 지금은 안되겠습니다.

어서 가서 목욕을 하시오. 내 후에 부르겠소.》

《죄송합니다. 공장의 기대에 보답못하고 이런 몰골이 된 저를 욕많이 해주십시오.》

탄가루에 목이 탁 멘듯 한 그 음성은 처연하게 울렸다. 방하철은 속이 쩌릿해짐과 함께 알지 못할 반발심이 불끈했다.

《그런 말 아예 마시오. 용서는 응당 내가 빌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솔직히 선생이야 그동안 가능한껏 다 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발생로가 이렇게 된데는 이 지배인의 잘못이 크지요.》

《지배인동지, 공장에서 그 이상 어떻게 더 도와주겠습니까. 전 만족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난 화학기계전문가입니다. 때문에 발생로현장에 나가 볼 때마다 그 설비가 영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막 불안했지요. 했지만 선생의 그 높은 지향과 강한 의지에 충격을 받군 하여 한마디 조언도 못주었습니다. 그랬는데 발생로가 이 지경 되고보니 후회가 막심하군요.》

한대식은 긴장해진 눈길로 방하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모처럼 찾아와 진심으로 위로하기에 크게 감심했는데 그 의도가 점점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나직이 따져물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발생로설비를 가지군 곤난하다는겁니까?》

《정확히 말하면 아까운 시간과 정력만 소비하는것 같습니다. 아직 로내이상현상도 밝히지 못했지요?… 그런 설비에선 앞으로 무슨 현상이 또 일어날지 예상할수 없습니다. 난 같은 화학전문가로서 선생을 더 이상 고생시킬수 없습니다.》

방하철의 태도는 진지했다.

《이상현상의 원인은 알아냈습니다. 점결제의 농도가 희박했던것이 그 원인이였습니다. 물론 앞으로 더 난해한 점들이 제기될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전 모든것을 각오하고있으니 그 측면에 대해선 안심해도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지배인동지답지 않게 왜 그런 약한 말만 합니까?》

방하철은 한대식의 눈길을 피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막다른 곤경에 처했다고 볼수 있는 한대식이 몇마디 하면 심중히 돌이켜볼줄 알았는데 조금도 그런 티가 없었다. 그래서 힘든 말이지만 까밝혀 말했다.

《이런것도 고려해보시오. 우리 사회에선 어떤 문제이든 국가적견지에서 론의할것을 요구합니다. 지금 형편에서 발생로를 더 붙들고있다는건 나라와 사회앞에 죄로 됩니다. 때문에 공장에선 발생로작업반을 해산하기로 했습니다.》

《?!…》

한대식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히 제기될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도 깊이 생각하고 내린 결심이니 현실적으로 리해해주기 바랍니다.》

《…》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서로 눈길을 피했다.

《지배인동지, 제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한대식이 딱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거야 스스로 결심해야지요. 명심할건 모든 문제를 과학자답게 현실적으로 타산해달라는겁니다. 이 말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심각한 교훈입니다.》

《…》

《물론 발생로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는게 아닙니다. 무연탄가스화는 꼭 해야 합니다. 좋기는 공장에서 시비년도 증산과제나 한다음 마음놓고 다시 해보자는겁니다. 선생, 괴롭더라도 좀 기다렸다가 그렇게 합시다.》

방하철이 사정하듯 간절히 권고했다. 그러나 한대식의 눈빛은 점차 결연해졌다.

《전 그렇게 환경과 설비조건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합니다. 지배인동진 문제를 현실적으로 타산하라고 당부하는데 무연탄가스화야말로 우리 현실의 절박한 요구가 아닙니까. 지배인동지, 발생로작업반문제를 다시한번 고려해주십시오. 작업반 없이야 제가 한걸음인들 움직일수 있습니까?》

한대식의 절절한 간청에 방하철은 속이 흠칠흠칠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을 흔들어놓지는 못했다.

《연구사선생, 너무 고집을 세우지 마시오. 난 그래두 현 실태와 공장의 딱한 형편을 터놓고 의논하면 쉽게 합의될줄 알았는데 우리들의 견해가 너무 판이하군요. 어쨌든 우리 공장에선 선생을 더 도와줄수 없습니다. 이 거듭되는 충고를 듣지 않고 기어코 발생로를 놓지 않겠으면 다른곳에 가보도록 하시오.》

숨결이 거칠어지고 낯이 불깃이 달아오른 방하철이 쇠층계를 콰당거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

한대식은 두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너무도 랭혹한 결별이였다. 이처럼 단호하고 완강하게 나올줄은 참으로 생각밖이였다.

물론 지난날에도 주관이 강한듯 한 불만은 있었으나 그것은 일욕심 많고 불같은 그 성미에 있을수 있는 옥의 티로 보아왔었다.

그런데 오늘 보여준 그의 행동은 그렇게 스치고 넘어갈 약점만이 아니였다.

지배인에게는 상대를 무시하고 제나름으로 척척 평가를 내리고 처리하는 혹심한 독단이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것이 맺고 끊고 전개력있는 일군의 풍모로 나타나고있으나 실상은 소총명에 뿌리를 둔 자기본위의 간과할수 없는 생활관이였다.

한대식은 지배인을 대할 때마다 그의 불같은 요구가 옳은것 같으면서도 알수 없는 불만을 자아내던것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 이런 땐 과연 어쩌면 좋단말인가. 이젠 작업반까지 없으니 곁에서 도와줄 사람조차 없다. 유독 나혼자다. 그러니 여기서는 로를 살릴 가망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본원에 이런 실태를 제기하고 다른곳으로 옮긴다?… 아니 무슨 생각을. 숨죽은 발생로를 그대로 두고 다른곳으로 간다는것은 나자신을 버리는것이나 같지 않는가!)

두팔을 힘껏 벌려 발생로를 부둥켜안은 그는 로체에 볼을 비비며 넋없이 뇌이였다. 불꺼진 로동체는 차고 선뜩선뜩했다. 아무리 쓸어만져도 부드러운 살폭처럼 포근히만 느껴지던 그전날의 촉감을 맛볼수가 없었다.

(이 로가 과연 언제 다시 살아나 열풍을 뿜을수 있겠는지…)

한대식은 로와 한몸이라도 된듯 오래도록 움직일줄 몰랐다.

자정이 가까와올무렵 합숙문턱을 넘어서던 그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지고말았다.

길주에서 보낸 긴장과 발생로의 사고 그리고 지배인으로부터 받은 정신적타격이 끝내 허탈상태에 빠뜨린것이다. 혜련은 찬물수건을 남편의 이마우에 연방 갈아대며 침대모서리에 앉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자 고열이 좀 떨어지고 헛소리도 점차 뜸해졌다. 림상에 어느정도 조예가 있는 혜련은 근심이 놓였다. 그대신 남편의 앞날이 막연하게 생각되였다. 과로에서 온 남편의 허탈상태는 안정과 섭생으로 회복될수 있으나 전도가 막힌 연구사업은 방도가 묘연한것이다.

이길로 석근수아바이한테 달려가 하소연해보고싶었으나 지배인이 마다하는것을 아바이라고 바로잡을순 없을것이다. 혜련은 앞길이 막막해져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른아침이였다. 피곤에 지쳐 침대모서리에 볼을 대고 솔곳이 눈을 감고있는데 석근수가 찾아왔다. 출근차림이였다. 혜련은 구원자라도 만난듯 무등 반가왔다. 석근수는 깊이 잠든 한대식의 손목을 잡고 이윽히 앉아있다가 혜련을 밖으로 불러냈다.

《연구사선생의 몸에 열이 있는것 같수다.》

《처음엔 고열이 나고 헛소리까지 쳤는데 새벽이 되면서 열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저렇게 곤히 자고있답니다.》

《다행이구만. 우린 아주머니만 믿수다. 옆에서 잘 돌봐주슈. 지금 연구사선생은 힘든 고비를 겪고있수다. 길주에 가서 숱한 고생을 하구 왔는데 여기선 또 사고까지 났지. 그런데다 일부 사람들은 발생로에 확신이 없어하지. 아마 제정신이 아닐거우다.》

《저… 아버님, 이젠 발생로를 그만두기로 했습니까? 솔직히 말씀해주십시오.》

《누가 그런 소릴 합데까?》

석근수는 두눈을 크게 뜨며 놀라와했다. 그 소식이 합숙에 앉아있는 혜련의 귀에까지 들어간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였다.

《저도 발생로작업반이 해산된다는걸 알고있어요. 어제 저녁 철이 아버지가 지배인동지를 만난후 영 기분이 좋지 않아하더군
요.》

《지배인이 찾아왔습디까?》

《어제 철이 아버지가 발생로안에 들어가 무엇인가 하구있는데 오셨더군요.》

《음…》

석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떤 말이 오갔는지 짐작할수 있었다.

《아버님, 그이는 발생로를 그만두면 살지 못합니다. 이날이때까지 그것 하나만 바라고 애써온분이 아닙니까. 아버님-》

석근수는 자기의 두손을 잡고 울먹거리는 혜련의 고뇌와 시름이 가득한 부석부석한 얼굴을 련민의 눈길로 바라보다가 힘을 주어 말했다.

《아주머니, 그렇게까지 락심하지 마시우. 물론 작업반을 해산하구 무연탄가스화를 그만두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수다. 그렇다구 반드시 해야 할 일인데 중도에서 물러서겠수.》

《…》

《우리 이렇게 합시다. 래일 아예 새로 지은 문화주택으로 이사를 합시다.》

《이사를요?!…》

혜련은 너무 뜻밖의 제의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지금 형편에 이사가 다 뭔가. 속이 상하니 해보는 말이겠지 했는데 점점 가슴 울렁거리는 소리만 했다.

《든든히 틀고앉아야 연구사업을 계속할게 아닙네까. 그리구 아주머니두 공장병원에 입직하는게 좋겠수다. 시병원에 있었다지요?》

《시병원 약국에 있었어요. 그런데 저를 받아줄가요?》

《받아주다마다. 큰병원 약제사인데 환영곡을 울리면서 어서 오라 할거우다. 내가 당위원회하구두 토의하겠수다.》

《글쎄요…》

혜련은 병원이란 소리에 벌써부터 속이 방망이질하듯 높뛰였다. 평양에서 사직서를 낼 때 알찌근한것을 다잡을수 없었던 자신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활터전이 있고 거기서 생의 복락을 찾는다. 일찌기 의학에 뜻을 두고 약학을 전공한 혜련은 준약제사란 직종에서 부럼없이 생활을 누려왔다. 했으나 그는 남편을 위해 그 생활을 희생시키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향유하는 생활보다 남편의 생활이 더 소중했고 남편의 기쁨속에 안해의 락을 찾는것이 더 크고 보람있다고 생각한 혜련이였다. 그러나 생활은 역시 생활이다. 남편이 안해를 대신해줄수 없듯이 며칠이 지나지 않아 혜련은 갑자기 공기가 희박한것을 느꼈고 시간의 흐름이 떠지고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텅 빈 합숙방에 홀로 앉아 출근길에 분주한 공장지구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야릇한 상실감이 가슴밑바닥에서 어쩔수 없이 부그그 괴여오른다. 그 감정은 하루가 다르게 흉벽을 툭툭치며 솟구쳐올랐으나 자신이 결심한 일이라 입밖에 내비칠수가 없었다.

석근수의 권고는 막혔던 보뚝에 실금을 내준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헤집고 나갈수 있는 물길로 되겠는지 발생로의 성공과 함께 분명 여기를 떠나버릴 림시거주자인 자기를 누가 온곱다고 병원에서 받아준단 말인가. 설사 오라고 해도 받아달라고 할 체면이 없다.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걱정은 남편이다. 그러지 않아도 어서 평양에 올라갈것을 권고하던 남편이 아닌가. 그는 병원이요 이사요 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길길이 뛸것이다. 혜련은 잠시나마 석근수의 솔깃한 말에 귀를 버쩍 열어놓은 자신이 여간 부끄럽지 않았다.

《아버님, 아무래두 제 생각이 짧았던가 봅니다. 저는 다시 평양으로 올라가야 옳을것 같습니다.》

《아니 그건 갑자기 어떻게 하는 말이슈?》

석근수는 너무도 뜻밖의 소리에 두눈이 긴장해졌다.

《제가 여기 내려오는 통에 얼마나 복잡한 문제들이 생겨났습니까. 없는 자재루 집을 짓느라고 밤마다 고생시킨걸 생각하면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생각일랑 아예 마슈. 아주머니 같으면 세간난 자식한테 집한채 마련해주는것두 그래 고생으로 여기겠수?》

《아버님, 그래서만이 아니예요. 솔직히 우리 같은 처지에 그런 집을 쳐다나 볼수 있겠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철이 아버지 말이 전적으로 옳은것 같아요. 저는 여기 내려와서 세대주를 도와준것이 아니라 오히려 덧짐만 지어놓았어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작업반까지 해산되고 세대주가 헤여날길없는 곤경에 처한것을 보니 정말 낯을 쳐들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허락두 없이 내려온 그 경망한 행실이 이처럼 큰 일을 저질러놓을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

석근수는 시름가득한 혜련의 얼굴을 생각깊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리도 지극하고 갸륵한가. 남편만을 위해 숨쉬고 남편만을 위해 살아가는듯 한 극진한 그 성품은 더없이 귀한데 자기가 안해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한 성원이라는것을 왜 자각하지 못하는지. 안해의 의무감만이 아니라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발생로를 끝까지 도와주는 여기에 그 세태적감정에 대비도 안되는 더 큰 보람과 삶이 있다는것을 언제가야 알수 있겠는지.

《난 아주머니가 이렇게까지 외곬으로만 생각할줄 몰랐수다. 직장두 그만두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떼놓고 내려왔기에 과시 그 남편에 그 안해가 다르구나 하고 여겼는데 오늘 보니 내 속이 텅비는것 같구려.》

《??…》

《아주머닌 남편에 대해서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구있수다. 물론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있었고 발생로일이 힘들게 꼬인것만은 사실이웨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라시는것을 해결해 보겠다는 그 결곡한 남편의 성미를 누구보다 아주머니가 더 잘 리해하고 받들어줘야 할게 아니겠소. 아주머니. 쓸데없는 잡생각은 말고 연구사선생을 곁에서 더 힘껏 도와주슈. 난 그것이 남편에 대한 참다운 사랑이라구 보우다.》

고개를 푹 떨군 혜련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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