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편 소 설
해 빛 삼 천 리
허 문 길
1
꽤 물쿠는 날씨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팥죽같은 땀이 돋고 가슴이 홧홧 달아오른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도 오히려 열풍이 되여 습기와 열기를 몰아와 온몸을 척척하게 해준다.
복더위치고도 제일 그악스러운 말복계절이라 만물은 마치도 가마안에서 쪄낸듯 시들고 늘어지고 청청한 기운을 잃어버린것 같다.
해외교포들과의 사업을 맡아보는 정용진부장이 수령님을 뵈오러 온것은 아직도 더위가 수그러들지 않은 오후 다섯시경이였다.
수령님께서는 토막시간을 내시여 시험포전에 계시였다.
《한소나기 쏟을려나?》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혼자소리로 외우시며 자루긴 호미를 잡으신 손에 힘을 주시였다.
수령님곁에는 정원의 시험포전일을 도와드리는 홍진풍이 자주 땀에 젖은 수령님의 옆모습을 조심스럽게 넘보며 부지런히 이랑에서 흘러내린 흙을 춰올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갈로 엮은 농립모밑으로 땀방울이 도글도글 굴러내리고 속내의가 화락하게 땀에 젖어올랐으나 여전히 퍼붓는 뙤약볕과 내기라도 하시듯 열풍이 고시랑거리는 콩포기들의 북을 돋구시며 줄기와 가지며 잎새들을 주의깊게 살피시였다.
대가 실하고 가지가 많으며 꼬투리가 다람다람 많이 열린 콩포기들을 보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시종 흐뭇한 미소가 감돌고있었다.
몇해전에 지방의 어느 한 농업대학연구사가 재래종콩보다 훨씬 수확량이 높은 콩종자를 만들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수령님께서는 콩종자개발에 일생을 바쳐온 학자를 친히 만나주시고 애국자라는 고귀한 칭호로 높이 평가하시였으며 농업과학원에서 시험재배를 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자신께서도 한줌정도 시험포전에 심으시고 애지중지 키워오고계신다.
농민들에게 널리 보급하기 전에 자신께서 직접 재배하여 보시면서 경험과 교훈을 찾아보고싶으시였던것이다.
그런데 첫해에 콩꼬투리가 재래종보다 어방없이 많이 달리기는 하였으나 초가을에 잡아들면서 줄기와 가지들이 콩꼬투리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여 부러지는통에 콩알이 잘 여물지 못하여 수확고가 푹 떨어졌다.
농업과학원에 알아보시니 거기도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래 올해에는 줄기와 가지를 충실히 하기 위한 방향에서 카리비료의 시비량을 늘이여 두벌김매기때부터 주기 시작하시였다. 그랬더니 이렇게 콩대가 실해지고 가지와 잎새들도 충실할뿐아니라 뿌리가 땅속으로 깊이 뻗어내리여 이 8월 염천에 다른 작물들과 나무잎새들은 더위를 탔지만 이 콩포기들은 푸르싱싱하다.
줄기와 가지가 이쯤되면 재래종콩의 세배나 되는 꼬투리가 랑패없이 여물게 할것 같다.
그렇게만 되면 다섯톤은 문제없을것 같다.
다섯톤이라는 수자는 농사물계가 환한 저 홍진풍의 타산이니 정확할것이다.
콩이 정보당 다섯톤이면 대단하다.
콩이 그 정도로 나와준다면…
우선 인민들의 식탁을 기름지게 할수 있다. 콩으로 만든 된장, 간장이 들어가고 거기에 기름까지 푼푼히 들어가면 아무 찬거리든 맛스러워지고 영양가도 높아지기마련이다.
지금은 콩이 부족해서 장의 원료로 도토리를 많이 쓰는가 하면 밀이나 강냉이까지 쓰니 떫고 쓴맛을 피할수 없다.
된장, 간장뿐이랴.
콩이 풀리면 아이들에게 콩우유도 마음껏 마시게 할수 있다.
영양분석을 해보면 콩우유가 소젖에 못지 않다고 하는데 이제 이 종자를 심어 콩뒤주를 가득히 채우면 탁아소나 유치원아이들에게만 주던 콩우유를 대학생들에게도 줄수 있고 병사들에게도 공급할수 있다.
지방의 식료공장들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공사를 벌려나가야 한다.
콩우유생산기지를 지방에 더 꾸리는 사업도 미리미리 밀고나가야 할것 같다.
수령님께서는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도 인민을 위한 공상과 사색을 즐겁게 이어가시였다.
《수령님, 이젠 손을 떼십시오. 제가 마저 하겠습니다.》
홍진풍이 일어나 수령님의 옆모습에 걱정어린 눈길을 보내다가 간청하였다.
《어, 됐소. 잠간이면 끝내겠는데…》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헌헌한 어조로 대답하시며 그냥 고랑을 타고 나가시였다.
부관의 뒤에서 발소리를 죽여가며 조용히 걸어오던 정용진은 긴 호미를 잡으신 수령님을 뵈옵자 자기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수령님! 이 복더위에 이렇게…》
정용진은 이렇게 급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그제야 수령님께서는 일손을 멈추시고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게 생긴 정용진을 돌아보시였다.
《정부장이 왔구만. 가만, 저기 느티나무밑에 가서 땀을 좀 들이오. 마지막이랑이요. 내 얼른 끝내고 그리로 가지.》
수령님께서는 이 더운 날 넥타이까지 받쳐 꼼꼼하게 제낀깃양복차림을 한 정용진의 차림새를 여겨보시며 가까이 있는 느티나무를 가리키시였다.
《수령님, 남은 이랑은 제가 하겠습니다. 땀을 좀 들이십시오.》
정용진은 서둘러 호미를 찾아들고 황황히 수령님께서 잡으신 고랑에 들어섰다.
《아바이도 수령님을 모시고 밭에서 나가십시오.》
부관도 이렇게 한마디 하면서 홍진풍에게 호미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수령님께서는 허리춤에 찌른 수건으로 이마와 량볼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시였다.
《허, 우리 신사부장이 호미를 드는건 좀 어울리지 않는다. 반자루도 안되는 품을 들이고 주석네 콩밭김을 다 매주고 왔노라고 소문내자는게 아니요? 어서 호미를 내놓소. 괜히 옷을 덞지 말고…》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롱조어린 말씀에 진정을 담으시며 산뜻한 회색양복차림에 가벼운 향수내까지 풍기는 정용진을 만류하시였다.
정용진은 수령님께서 무척 아끼고 중히 여기시는 일군이다.
박식하고 언변이 좋으며 필력이 뛰여날뿐아니라 외교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귀재이다. 생활에서는 솔직하고 소탈하고 스스럼없어 무척 정이 간다.
그런가 하면 타고난 끼끗한 용모와 필요에 따라서는 그 어떤 상대도 함부로 거접하지 못하게 하는 거방스러운 틀거리로 하여 교포들과 외국인들속에서 《공화국의 신사》라고 불리우는 로련한 일군이다.
수령님께서는 정용진의 자질과 성품을 사랑하시여 젊은 시절부터 품을 들여 키우시여 책임일군으로 내세우시였는데 언제나 맡겨진 사업을 손색없이 감당하여온다.
《수령님, 제 이래뵈도 오가산 막바지에서 감자를 심어먹으며 뼈를 굳혀온 감자바우입니다.》
《허허, 정부장이 화전을 뚜지며 살아온 두메산골내기라는걸 내가 몰라서… 아무튼 좋소. 땅내가 다 빠지지 않았는지 어디 솜씨를 봅시다. 허허…》
수령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정용진은 용기를 얻어 호미질을 시작하였다.
정말 수령님앞에서 솜씨자랑을 하고싶은 동심같은 심리가 발동되였던지 다부진 콩포기들을 이쪽저쪽으로 솜씨있게 제끼며 살진 이랑을 다기차게 허벼갔다.
수령님께서는 아직도 손에 배여있는 정용진의 호미질솜씨를 굽어보시다가 또 한번 크게 웃음을 날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용진이 자신의 곁에 따라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다가 다시 콩숲에 허리를 묻으시였다.
《과시 농사군자식이 맞구만. 하기는 사람이란 누구나 땅과 벗하구 살아야 하오. 땅에다가 자기 땀을 묻기도 하구 몸에 땅기운을 쏘이기도 하면서… 그래서 예로부터 문장가들이 땅을 가리켜 하는 멋진 말이 있지.》
《예, 어머니대지라고 불러옵니다.》
《그렇지, 어머니대지지.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는 말도 있구… 그럴사한 말이요. 참으로 땅이야말로 만물의 어머니지. … 콩이 어떻소?》
《예? …》
너무도 베찬 복더위속에서 시험포전에 땀을 뿌리고계시는 수령님을 뵙고 커다란 놀라움과 이름짓지 못할 송구스러움에 휩싸여있던 정용진은 수령님께서 불쑥 꺼내신 물음을 받고서야 자기가 가꾸고있는 콩포기들을 여겨보았다.
실한 줄기며 가지마다 다람다람 열린 콩꼬투리들을 살펴보던 그의 큰 눈이 대번에 뎅그래졌다.
한두포기뿐아니라 시험포전의 콩들이 하나같이 일매지게 푸르싱싱하고 풍만하다. 소시적에 산골에서 주로 콩과 감자를 심어본 정용진은 이렇게도 소담한 콩농사를 해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용진은 잠시 호미질을 멈추고 이 찌는듯 한 더위속에서도 가지가 부러지도록 맺힌 콩꼬투리를 떠안고 굳건하게 서있는 콩대들을 신기하게 보며 무등 감개에 젖어들었다.
《수령님! 저는 이렇게 대가 굵고 꼬투리가 많이 달린 콩을 처음 봅니다. 이쯤되면야 열톤은 먹어놓은 당상일것 같습니다.》
《허허… 정부장이 대포를 쏘는군. 이 정도를 놓고 열톤을 부르기는 일러. 음, 내 저 홍동무와 짐작을 해봤는데 다섯톤은 문제없을것 같아.》
《다섯톤이라도 그건 기적입니다. 옛날 콩농사 하면 정당 500키로그람, 잘돼야 6, 7백을 불렀습니다.》
《하, 정부장이 콩농사에는 그닥 문외한이 아니구만. 그래, 그렇단 말이요.》
수령님께서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시며 흐뭇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래서 말이요. 내 정부장이 오기 전에 혼자 궁냥을 하던중이였소. 지금 미국이 콩마저 제재항목에 올려놓고 압력을 가한다고 하오. 그런데 콩농사를 이쯤하면 남을 쳐다볼것도 없고 콩걱정도 하지 않게 된단 말이요. 농장마다 열정보가량 뚝 떼서 콩을 심는다고 보기요. 그러면 쉰톤이야. 농장마다 쉰톤이면 나라적으로는 얼마나 나오는가. 그가운데서 10만톤은 기름과 된장생산에 돌리고 10만톤을 가지고서는 콩우유를 만들어 먹이자는거요. 내 여든해를 살아오면서 소원이 두루두루 많은데 그가운데 하나가 우리 인민들에게 고기와 기름을 마음껏 먹이는거요. 그리고 우리 애들을 다 포동포동하게 키워내는거요. 이제 이 콩이 그 소원을 풀어줄것 같구만. 어떻소, 정부장? 내 꿈이…》
《수령님!》
정용진은 목메여 부르며 부지불식간에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한가지 일을 궁리하여도 인민을 위하여 시작하고 만가지 일을 하여도 인민을 위하여 벌려나가시는 우리 수령님!
수령님의 마음속엔 언제나 그저 인민이 꽉 차있구나!
수령님의 꿈속에는 언제나 인민의 행복이 송이송이 꽃피고있구나!
정용진은 뜨거운 감동에 젖어 말씀드리였다.
《수령님, 저는 수령님의 소원이 꼭 성취되리라는걸 믿습니다. 수령님께서 마음쓰시는 일이 안되는적이 있었습니까?!》
《허허, 무슨 소리… 돌아보면 해놓은 일보다 소원으로 남아있는 일이 더 많다오. 하여튼 정부장이 좋은 소릴 해주니 나도 기분이 좋구만.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소동도 이런식으로 제압해야 하오. 빈소리로 허장성세하지 말고 실속있게 우리 주먹을 키워 맞서서 이겨야 하는거요. 내 자주 말하지만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야. 자, 이젠 김도 다 맸으니 손두 씻구 랭수도 한그릇 마시면서 땀들을 들이기요. 정부장이 이렇게 선통이 없이 달려왔을 때는 무슨 긴한 일이 있어 왔겠는데. 거, 최금호라는 기업가 일때문이 아니요?》
수령님께서 이렇게 시원스러운 어조로 화제를 돌리시자 금시 정용진의 서글서글하던 얼굴빛이 흐려지며 고개가 떨어졌다.
2
정용진이 이렇게 수령님께 찾아뵙는다는 기별도 없이 달려온것은 사실 긴한 일이 생겨났기때문이였다.
그 긴한 일이란 수령님께서 헤아려주신것처럼 최금호라는 교포기업가때문이였다.
열흘전에 평양비행장에 멀리 대양너머에서 온 한 백발의 로인이 지팽이를 짚으며 내렸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기업활동을 크게 벌리고있는 교포기업가였다.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한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행사를 코에 걸고 제재요, 검증이요 하면서 국제적인 판도에서 포위환을 형성하고 분주탕을 피우고있는 시기에 용감하게 제재의 울타리를 뚫고 공화국에 날아든것으로 하여 최금호의 공화국방문은 떠날 때부터 세인의 관심을 모아왔다.
최금호는 비행장에서 떠나는 마지막순간까지 길을 막아나서는자들에게 조선사람다운 담력을 가지고 배짱드세게 선언하였다고 한다.
《길을 비키지 못할가?! 지금 못된 놈들이 작당하여 내 고향을 삼키겠노라 헤덤비고있다. 헌데 조선사람인 내가 어떻게 너희들이 앞을 가로막는다고 어려움을 당하고있는 고향집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만 있겠는가. 나는 고향땅에 죄많은 인생이다. 떠나온 길은 하루길이였으나 찾아가는 길은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내 이제야 철들어 조상잊고 살아온 불륜죄를 씻고저 하는데 왜 이리도 다사다난한가? 당신네들 조선사람 숫보지 말아. 이 최금호 간다면 가는 사람이다. 김장군 뵈오러 가는 길이니 길을 비켜라!》
최금호는 그래도 그냥 찧고 까부는 모략가들에게 추상같이 호령하였다.
《이 기회에 나는 워싱톤과 서울에 경고해둔다. 최근 나의 평양방문을 앞두고 사설정탐들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워싱톤과 서울에서는 나의 기업활동을 봉쇄하기 위한 모의가 벌어지고있다. 경고하건대 백해무익한 어리석은 일이다. 내 기업이 깨지면 미국과 남조선에 있는 적지 않은 자매기업들과 하청업체들이 무사치 못할것이다. 그로부터 수많은 실업자와 류랑걸식자들이 생겨나 거리를 휩쓸것이니 그 사람들이 던지는 돌팔매가 어디로 날아갈것인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무산자의 싸움에 여러가지 방식이 있다는것을 워싱톤과 서울은 이미 쓰디쓴 체험을 하였을것이다.》
이렇게 거물급기업가답게 세상을 들썩거리며 조국에 들어선지 벌써 열흘이 되여온다.
수령님께서는 느티나무밑에 가시여 긴 나무걸상에 앉으시였다. 그리고는 부관이 가지고 온 부들부채로 바람을 일구시며 정용진의 긴장된 모습을 인자한 눈길로 더듬으시였다. 정용진은 눈길을 땅에 떨군채 자못 무거운 기색으로 송구스럽게 서있을뿐이였다.
《말해보오. 무슨 일이요? 시간이 없으니 여기서 이야기합시다. 내가 모레쯤에 시간을 내겠다고 했더라? …》
수령님께서는 먼저 조용한 음성으로 정용진의 착잡한 속을 다독여주시듯 말씀하시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문제때문에…》
정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괴로운 심정으로 마디마디 가까스로 이어가다가 끝내 뒤말을 흐리마리하고말았다.
《하하, 정부장도 우물쭈물할 때가 있구만. 공화국의 신사가 여간 배짱꾸러기가 아니라는 말이 남조선출판물들에도 여러번 들락날락하던데… 앉소, 앉으시오.》
수령님께서는 분명 정용진이 대단히 난처한 문제를 들고온것 같다고 판단하시였으나 크게 내색하지 않으시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제야 정용진은 자리에 앉으면서 자못 죄스러운 어조로 보고드리였다.
《사실 최금호기업가가 래일 아침에 조국을 떠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래일 아침에? 힘들게 찾아온 고국인데 그렇게 빨리 떠나다니… 그러니…》
수령님께서는 자못 놀라마지 않으시며 만면의 미소를 거두시였다.
《…》
《떠나가겠다는거지…》
수령님께서는 못내 서운하신 어조로 혼자말씀처럼 조용히 되뇌이시였다.
정용진의 고개가 더욱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두툼한 입술새로 가느다란 한숨이 새여나왔다.
수령님께서는 정용진의 모습에서 전에없이 소심해진 기색을 측은한 눈길로 살피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혹, 동무들이 그 사람을 섭섭하게 만든건 아니요? 그동안 동무들의 사업정형을 보면 다른 문제가 없었던듯싶은데… 내 동무들에게 자주 말하지만 고국을 찾아온 동포들을 잘 맞아주어야 하오, 어머니의 심정으로. 동무들은 그들앞에서 조국을 대표하거던. 개중에는 길을 잘못 들어 오랜 세월 고민하던끝에 무거운 걸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겠는데 어쩌겠소. 지나간 일이니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을 너그러이 용서해주고 속크게 품어주어야 하오.》
《수령님, 저희들이 확실히 최금호기업가와의 사업을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떠나올 때 훼방군들이 몰려들어 길을 막으니 길을 비켜라, 김장군 뵈오러 간다고 호통을 쳤다는 사람이 아닌가. 비행장에서 내놓았다는 그 배짱있는 선언도 마음에 흠뻑 들었는데…》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실망스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정용진은 미처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입술만 감빨았다.
그럴수록 수령님의 심중에 그늘을 지어드리고 떠나가는 최금호가 야속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최금호와의 사업을 수령님의 뜻대로 폭이 넓고도 아량있게 하지 못하여 예정된 방문일정까지 당겨서 떠나게 한 자신이 수령님앞에서 죄송스럽기 그지없었다.
원래 정용진은 최금호의 조국방문과 관련하여 수령님께 그의 접견요청에 대하여서는 보고하지 못하고 망설여왔었다.
최근 우리 나라를 둘러싼 정세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접경으로 치닫고있는 사정과 관련되였다.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엄중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고령의 몸으로 불철주야로 사업하고계시였던것이다.
정용진은 거듭되는 최금호의 제기를 그저 묵살하여버릴수가 없어 어제 저녁에야 다른 사업을 보고드린 끝에 조심스럽게 내비치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조국이 어려움을 겪고있는 시기에 용감하게 조국의 대문을 두드렸는데 만나주는게 도리라고 흔쾌하게 받아주시였다.
최금호의 조국방문일정이 끝나는 차제로 시간도 푼푼히 내보겠노라고 각별한 은정을 베푸시기도 하시였다.
그래 정용진은 오늘 발걸음도 가볍게 그가 류숙하고있는 양각도호텔에 나갔다.
헌데 안내일군이 뜻밖의 말을 하는것이였다.
최금호가 래일중으로 조국을 떠나겠다고 비행기표를 예약해놓도록 데리고 온 비서에게 이미 지시하였다는것이다.
최금호를 만나서 방문일정을 당기는 리유를 여러 말로 물어보았으나 그는 무겁게 한마디 할뿐이였다.
《저는 가야 합니다.》
안내일군에게 그동안 최금호에게 심적변화를 일으킬수 있는 일이 있지 않았느냐고 엄하게 따져물었다.
그 일군은 전혀 그런 일은 없었노라고 대답하였다.
정용진은 수령님께 이러한 말씀을 올리고나서 한통의 두툼한 문건철을 드리였다.
그안에는 최금호의 조국방문과 관련한 자료가 자상히 기록되여있었다.
《음, 그렇게 됐단 말이지.》
수령님께서는 정용진으로부터 문건을 받아드시고는 혼자 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시계를 보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였군. 10분후에 군사위원회가 열리게 되니 이만합시다. 어쩌겠소, 떠나가겠다는 사람의 길이니 굳이 막지 말아야지. 헐치 않은 길을 헐치 않게 왔다가 방문일정까지 당기면서 떠나가는 사람의 속이 아무튼 편치 않을거요. 그러니 동무들이 나무람을 하지 말고 속을 잘 풀어주도록 하시오. 그 무슨 옥맺힌 한이 있는것 같으면 그것도 시원히 풀어주어 거뜬해서 돌아가도록 해주시오.》
수령님께서는 절절히 당부하시고 몇걸음 옮기시다가 다시 정용진에게로 돌아서시였다.
《그 사람에게 내 인사도 전해주오. 그가 해외에서 조선사람의 량심과 본분을 지키고저 모대기고있고 이번 조국방문길에도 조국을 돕기 위해 마음을 쓴데 대하여 내가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해주시오. 그리고 내가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겠노라고 전하시오.》
수령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집무실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시였다.
정용진은 수령님께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드리고나서 오래도록 자리에 굳어져있었다.
수령님께서 옮겨가시는 걸음이 전에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갑자기 느티나무의 잎새에 숨어서 복더위에 지쳐 숨을 돌리고있던 매미들이 약속이나 한듯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하였다.
《맴- 맴- 맴-》
청비린 그 소리가 정용진에게는 례사롭지 않게 들렸다.
3
군사위원회는 밤이 퍽 깊어서야 끝났다.
일군들과 함께 늦은저녁을 치르시고 잠시 휴식을 하고나신 수령님께서는 고요가 깃든 집무실을 조용히 거닐고계시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세계제국주의련합세력의 제재소동을 짓부시기 위한 정책적대응조치가 중요하게 토의되였다.
놈들은 지금 우리 나라가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한것을 걸고 공화국을 아예 질식시키려 하고있다.
심지어 관광은 물론 일반려행자들마저 평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외교적봉쇄와 금융제재를 가하고있다.
미제는 공화국과의 경제적련계를 가지는 일체 국가, 기업소, 개인들에 대하여서는 해당한 제재를 가하는 전대미문의 극악한 책동으로 제놈들의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며 우리로 하여금 손을 들게 하려고 꾀하고있다.
이것은 대외적련계가 확대되여가고있는 우리 공화국에 있어서 사실상 적지 않은 장애와 혼란을 조성하고있다.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붕괴도 우리의 경제전반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있었다.
제국주의자들의 강권과 압력소동에 어떻게 대처할것인가.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의 열띤 론의에 매듭을 지으시면서 간곡한 어조로 강조하시였다.
《동무들, 동무들이 지금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책임졌다는 사명감으로부터 제국주의의 제재소동을 보다 강한 맞대응으로 짓눌러버리자고 한결같이 주장하고있는데 배짱도 좋고 의기도 좋고 담력 또한 좋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제재를 무서워할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어떤 환경속에서도 우리 인민이 당해야 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것입니다. 우리 인민의 안녕과 행복-이것이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우리 혁명의 불변의 가치라는것을 잊지 마시오. 우리의 사회주의는 그것을 위해 태여났고 그것으로 하여 빛나는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대담무쌍한 제안을 내놓던 일군들의 미더운 모습을 다시 떠올리시였다. 그리고는 제기된 문제들을 하나하나 더듬으시며 사색의 심연을 조용히 저어가시였다.
하지만 아까부터 무엇인가 놓친 빈구석이 있는듯싶어 그냥 허우룩한 심정이시였다.
문득 그이의 눈앞으로 오후시간에 찾아왔던 정용진부장의 신수가 시원스러운 얼굴에 그려졌던 무거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렇지. 최금호… 돈부자이면서도 죄많은 인생이라고 속죄의 한숨을 털어보지 못하고 미구하여 어머니조국을 구슬프게 떠나야 하는 운명…)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쩌릿해지시여 집무탁에 무겁게 놓여있는 두툼한 문건을 손에 드시였다.
뚜껑을 번지니 백발의 로인이 수심에 잠긴듯 한 눈으로 그 무슨 하소연이라도 하고싶은듯 쳐다보고있다.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 애끓는 호소가 어린듯싶기도 하고 혹은 그 어떤 련민을 불러일으키는듯싶은 로인의 사진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시였다.
그리고는 열두시를 알리는 탁상종의 음악소리를 들으시며 그 인간의 한생의 만단사연이 응축되여있는 페지들을 넘기기 시작하시였다.
…
(출생년도가 1912년이라, 임자년이라구… 허허… 그러니 바다건너에서 동갑이가 찾아왔군.…)
수령님께서는 두번째 페지에 있는 두번째 행을 더듬으시다가 이렇게 혼자소리로 뇌이시며 즐거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최금호의 고향은 북변의 바다가마을이였다.
해방이 되자 도 신민당의 책임자로 건국사업에 나섰다가 당시 공산당 도책임자와 대판들이싸움이 벌어졌는데 이게 빌미로 되여 종당에는 서울에 갔다고 한다.
《그래, 해방후에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 그때 공산당안의 당직을 세도자리로 생각하는 나쁜 놈들때문에 38°선을 넘은 사람들이 여럿이였지. 이 사람도 그런자들의 희생물이였는가.》
수령님의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준엄한 년대들이 이렇게저렇게 달라지는 최금호의 운명에 어울려들어 그이의 눈앞에서 흘러갔다.
…
하지만 권세가들은 서울에서도 좌익조직의 상좌에 틀고앉아 못된짓을 더욱 파렴치하게 벌리고있었다.
박헌영, 리승엽일파들이 정의와 원칙을 주장하는 최금호를 곱게 봐줄리가 만무였다.
그자들과 리념적으로, 조직적으로 결렬되자 최금호는 자기의 정치활동에 쓰디쓴 막을 내리고 기업활동에 종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리승만일당의 감시와 핍박이 그의 걸음걸음에 감겨들었다.
여우를 피하니 승냥이를 맞다든 격이다. 그놈들은 《북조선이단자》가 되여버린 최금호를 제놈들의 무리에 끌어들여 반북, 반공화국모략의 더러운 제물로 만들어보려고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큰 감투로 당겨도 보고 《남파간첩》이라고 감옥에 처박기도 하였다.
최금호에게는 떠나온 북쪽땅도, 몸을 담게 된 남쪽땅도 더는 정을 붙일수 없는 한서린 땅이 되고말았다.
《에잇, 살아가는게 시끄럽다! 이쪽저쪽 눈치보지 말고 씨원스럽게 떠나자. 내게도 에덴동산이 차례질지 뉘 알랴!》
이국살이가 시작되였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에덴동산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기대와 실망, 성취와 좌절, 고독과 설음, 주림과 헐벗음…
인생의 수난이 파도치듯 지겨운 운명을 간단없이 후려때렸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다음에는 오세안주로, 거기서 다시 북아메리카지역으로 지구를 한바퀴 휘돌며 삶을 위한 처절한 모지름이 눈물겹게 이어졌다.
방랑객의 설음에 지치고 멍들어 두번세번 대양의 검푸른 파도가 소란스럽게 울부짖는 절벽우에 서서 구차스러운 인생을 물속에 수장시켜버릴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멀리 저 한끝에서 손저어 부르는 부모처자가 그의 발목을 거머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살아보자, 어찌하든 살아보자! 초라한 내 인생 이대로 끝내버리면 세상은 너무도 공평치 못한게 아닌가. 살자, 살아서 이 최금호 세상에 삐져나온 흔적이라도 남기자!》
마침내 그는 한 젊은 미망인인 교포녀성이 사장으로 있는 자그마한 원유가공회사에 정착하게 되였다.
불행은 사람을 현명하게 하며 고난은 인간을 강하게 벼려준다고 한다. 인생의 풍파많은 길에서 삶을 위한 의지가 백배하여진데다가 원체 영민하고 명석한 두뇌회전덕분에 미구에 회사의 전무자리까지 차지하게 되였다.
몇해가 지나 녀인의 끈덕진 요청과 만리타향에서 얽혀진 한 피줄이라는 동포애의 후더운 정에 끌려 그와 결혼하고 회사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내 기어이 돈으로 흰둥이노라 거들먹거리는 양놈들의 건방진 코대를 꺾어놓으리라! 이제 네놈들이 조선사람이 무서운줄 알게 되리라!》
야망과 배짱으로 돈자리를 넓혀나가는 새로운 피어린 싸움이 벌어졌다.
기업경쟁이자 자본주의생리이기도 한 그 전쟁판에서 승리하는 길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잠시 눈 팔고있어도 코 떼가고 귀 베가는게 자본사회다.
그러나 끝내 최금호는 무서운 담력과 지칠줄 모르는 근기로 승리자가 되였다.
그의 회사는 일약 그 나라의 원유업계에 커다란 영향권을 행사하는 대기업으로 번창해졌고 최금호는 세계기업인인명사전에도 오른 거부가 되였다.
하지만 돈낟가리우에 올라앉았다 해서 결코 성공한 인생이 아니였다.
맘편히 살아갈 팔자를 찾은것도 아니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떠나온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괴롭혔다. 살기가 좋다고 조국이 되는것도 아니요, 돈이 많다고 행복한 인간이 되는것도 아니였다.
일찌기 등지고 침뱉고 달아빼온 조국은 세월의 년륜이 감길수록 그에게 더욱 아릿한 향수를 불러냈다.
올해에는 가리라, 래년에는 기어이…
한해, 두해 미루어오던 고향길이 10년으로, 20년으로 아득해갔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의 가슴에는 고향을 잃고 다시는 그 땅에 들어설수 없는 나그네의 설음과 눈물만이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아메리카지역은 물론 동남아시아며 유럽 등지로 이어간 출장길에 펄펄 날리는 람홍색공화국기발이 자기를 어서 오라 부르는듯싶어 조국대표부의 정문에 저도 모르게 다가선적이 그 몇번이였던가.
(아서라, 내 무슨 체면에… 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나라족속임을 속이구 박쥐살이하다가 조국땅이 소리치며 살만하니깐 기신기신 찾아든단 말이냐. 사람의 법도가 돼있는것이냐. 더구나 한생토록 나라 등져온 죄많은 이놈을 어떻게 고향이 받아준다더냐?!)
그렇게 돌아설 때면 눈물이 그렁하여 공화국기발을 우러러 통한을 터뜨리군 하였다.
(아, 고향아! 가고싶은 내 조국아! 내 죽어 뼈라도 묻힐수 있다면 대양이 막아선들 어떠랴, 천만산악이 가로선들 어떠랴. 바다는 헤염쳐 건느고 산은 기여넘더라도 가지 못할가.)
수십년세월 안타깝게 조국의 대문을 마음속으로 두드려온 최금호에게 용기를 백배해준 사변이 터졌다.
조국땅에, 고향땅에 전쟁의 구름이 몰려가는것이다.
량심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제국주의의 오만한 공세에 맞서 혈투를 벌리는 조국땅을 불안스럽게 보면서 걱정하고 념려하고 비명을 지르고있다.
공화국의 존재가 《태풍전야의 사상루각》이라는것이다.
(가자! 가자! 나도 조선사람이다! 대양너머에 있다고 해서 고향의 재난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해서야 내 무슨 조선사람이랴.)
자기 손발처럼 믿고 아끼는 비서를 내세워 3국에 가서 조국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려보았다.
그런데 비서가 꿈같은 대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라! 어머니는 제 품을 찾아드는 자식의 죄를 묻지 않는다.》…
최금호가 근 50년만에 고향땅을 찾아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상여론이 야단스럽게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놀라움!
회유!
협박!
지지!
여기저기에서 매일같이 회사들이 기우뚱거린다고 떠들어댔다.
그의 앞길에 천근만근 차단봉을 가로질러놓았다.
그러나 최금호는 복잡다단한 싱갱이끝에 끝내 조국으로 향한 하늘길에 오르고야말았다.
…
수령님께서는 삼경이 지난지도 이슥하였으나 그냥 문건의 페지들을 천천히 넘기며 한 인간의 파란곡절많은 운명사를 더듬으시였다.
문건에는 최금호의 조국체류기간 그의 극적인 심리를 엿볼수 있는 대목들도 짤막짤막히 적혀있었다.
• 전쟁시기 미제의 폭격만행에 비명횡사한 부모들의 묘소에 가서 슬프게 울었다.
《내가 불효막심하다. 돈벌이에 눈이 꺼매서 이제야 부모님령전에 제주를 붓다니…》
• 평양의 거리를 저녁마다 걸어다니며 웅장하게 일떠선 건물들과 기념비들을 보면서 크게 감동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소리처럼 말하군 하였다.
《아, 내가 죄많은 놈이다. 조국땅이 이렇게도 천지개벽하였는데 난 이 땅을 위해 땀 한방울, 피 한방울 흘린게 없구나. 돈 한푼도 바친게 없으니 이 훌륭한 거리를 밟고 다닐 체면이 없어.》
• 신미리에 있는 애국렬사릉에 가서 한 통일애국투사의 묘비를 부여잡고 오래도록 울었다.
《이분은 해방후에 나와 함께 나라의 통일운동에 나섰던 분이라우. 헌데 이분이 이렇게 너무도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영생촌에 자리잡고 영생을 누리는데 난 돈벌레가 되여 이렇게 기나긴 인생살이를 곡절많이 엮어오는구려. 아, 성형! 죄많은 최금호 당신에게 뭘로 속죄할고.》
•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을 돌아보고 최금호는 크게 흥분하였다.
《난 참 량심없는 인간이다. 주석님 뵈오러 오면서 그분께 올릴 선물은 생각조차 못했으니… 이 땅에 태를 묻었을진대 내 혼에는 이 땅의 정기가 사라진지 오랬구나.》
그때 동행하였던 아들이 한마디 했다고 한다.
《아버님, 저는 정말 아버지가 리해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큰 부자라고 하는데 그래 우리 수령님 뵈오러 온다고 하면서도 빈손으로 오는게 마음에 걸리지 않았습니까?》
《후- 내 떠나올 때 하두 간다만다 곡경을 치르는통에 그 생각을 놓쳤구나. 사실 고향길이 헐치 않았다.》
《참, 아무리 그렇기로 놓칠 생각이 따로 있지요. 우리가 아버지없이 이렇게 살아온게 어느분의 덕인데…》
《후-》
…
수령님께서는 이 대목을 훑어가시다가 혀를 차시며 한마디 하시였다.
《원, 안할 걱정… 빈손에 오면 어떻다구… 이렇게 곡절속에 살아오다가 나라가 위기를 당하고있을 때 불쑥 나타난것만 해도 그게 그대로 큰 선물이지…》
그이께서는 부자지간에 오갔다는 이야기가 저으기 마음에 드시지 않아 다소 격한 어조로 뇌이시며 인차 그 페지를 넘기시였다.
그러나 수령님의 속을 쓰리게 하는 이야기는 다음페지에도 있었다.
오늘 아침 최금호는 아들, 며느리를 앉혀놓고 작별을 고하면서 돈봉투를 꺼내놓았다고 한다.
《얘들아, 난 래일 아침에 평양을 떠나려고 한다. 언제 온다 기약할수 없지만 내 꼭 돌아오련다. 이걸 애비의 성의로 알고 받아다오.》
헌데 아들, 며느리는 돈봉투에는 눈 한번 주지 않고 볼이 부어가지고 사절하였다.
《아버지, 이건 거두어주십시오. 아버지는 이 돈으로 일일천추로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이제는 더 기다리지 말거라 하며 애끊는 한숨을 남기고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간 어머니의 한을 풀어줄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남으로 간 아버지의 치욕을 피로써 씻는다며 열여섯살 나이까지 속이고 전선에 나갔다가 락동강에서 돌아오지 못한 형님의 피를 이 돈으로 보상할수 있습니까?》
《음-》
최금호의 두터운 입술새로 부지중 피를 토하는듯 한 한숨이 새여나왔다.
《내 할 말이 없구나.… 하지만… 얘들아, 이 죄많은 애비도… 좀 생각해주려마. 너희들은 남의 처마밑에서 비를 긋는 방랑객의 눈물을 생각해본적이 있느냐?》
수령님께서는 이 대목에 이르러 명치에 쿡 쑤셔드는 모진 아픔을 느끼시며 문건에서 눈길을 드시였다.
(음- 이건 아버지를 믿고 하는 자식의 말이라지만 너무 야박하구나. … 원, 사람들두. 하필이면… 아! 나라의 분렬과 수난많은 과거사가 만들어놓은 이 눈물겨운 한을 언제 가면 다 가셔낼가.)
수령님께서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오시였다. 방안의 공기가 무거워진것 같으시였다.
한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사에 비낀 너무도 가슴아픈 사연들이 그이의 심중을 괴롭히였다.
수령님께서는 잠시 쏘파의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시고 눈을 감으시였다.
최금호… 교포기업가의 불안에 젖은 초상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 어떤 이름할수 없는 련민의 정이 그이의 가슴을 가득 채우며 밀물처럼 그냥 밀려들었다.
음, 정말 최금호의 혈붙이들이 남의 처마밑에서 비를 긋는 방랑객의 구슬픈 설음을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짐작할수 있을가.
최금호는 수난의 력사가 뿌려놓은 불행한 과거의 사생아이다. 그가 지금 뭘 생각하고있을가. 고통에 몸부림치고있지 않을가.
…
이 깊은 저녁도 쓰라린 상처를 헤집으며 잠들지 못하고있을 그 인간의 처량한 모습이 측은하게 그냥 가슴에 젖어들었다.
《동갑이, 미안하오. 하지만 후손들의 감정도 리해하여주오. 아마도 그네들이 당신의 탈가로 해서 마음속의 상처를 입었을테지.》
수령님께서는 지나간 혁명의 년대들을 거슬러오르시며 마음속으로 속삭이시였다.
《나라가 분렬되니 새라새로운 걱정거리가 늘어났지. 일부 편협한 사람들이 부모들의 죄를 그 자손들에게 넘겨씌우는 일이 드문히 있었다오. 내가 기회가 있을적마다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는데 사람들의 감정을 휘여잡는 일이 워낙 전쟁을 이기는 일보다 더 힘들었다우. …》
수령님께서는 쏘파에서 일어나시여 방안을 천천히 거니시며 그냥 최금호의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주시며 심중의 고백을 괴롭게 터치시였다.
말년에 이르러 드디여 찾아온 조국-한생토록 고향땅에 대한 향수를 묻어두고 모진 고뇌를 겪다가 이러저런 바람새를 다 뿌리치고 달려온 고향길.
온갖 훼방군들이 제재요, 벌칙이요 뭐요 하면서 팔꿈치를 잡고 가랭이에 매달릴 때 주먹으로 땅을 치며 불호령을 내렸다는 그 담대한 인간이 혈붙이들의 지청구 몇마디에 누데기처럼 엉망이 되여 조국의 품에서 슬피 울고있다.
수령님께서는 넘겼던 페지들을 다시 번져 훑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한 대목에 이르시여 눈길을 멈추시였다.
그것은 최금호가 평양을 향해올 때 출발에 앞서 앞길을 가로막는 기자들과 기자의 탈을 쓰고 까다롭게 걸고들며 까부는 미국과 남조선의 모략가들에게 던진 선언이였다.
마디마디에 거부의 자존심과 조선사람다운 담기를 짚어보게 하는 소리였다.
(허, 이런 사람이…)
온 세상의 악마들을 향하여 배짱있게 도전장을 던진 사나이가 용기백배 가슴펴고 들어섰던 조국에서 그 의기, 그 배짱이 졸지에 무지러져서 몸부림치며 행장을 꾸리고있다.
인생의 한을 덜고저 찾아온 고향이, 조국이 그의 가슴에 오히려 더 무거운 압박감과 죄책감을 얹어준게 아닐가. …
수령님께서는 부지중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으시였다.
(이래서는 안되겠는데… 이래서는…)
수령님께서는 그 무엇인가 자신의 가슴에도 죄여드는 사명감과 책임을 절감하시며 되뇌이시였다.
종시 수령님께서는 마음속에 그들먹이 차드는 까닭모를 비분과 동정을 이겨낼수가 없으시여 집무실을 나서시였다.
잠자리에 드시기를 여러차례 간청하던 부관도 수령님의 무거운 안색을 찾아보고는 말없이 조용히 그이를 따라 문을 나섰다.
그는 수령님의 사색을 저어할세라 발소리를 죽여가며 기척없이 정원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는 수령님을 따라섰다.
《남의 처마밑에 비를 긋는 방랑객의 고달픔이라…》
수령님께서는 최금호가 했다는 말을 되뇌이시였다.
그 한마디에 반세기 가까이 세상을 만경창파에 던져진 일엽주처럼 헤맨 최금호의 수난많은 이역살이가 다 실려있는듯싶다.
수령님께서는 억만의 별들이 도글거리는 하늘을 쳐다보시다가 은하수를 따라 그 한끝으로 이어가시였다.
그 하늘밑에서 처량한 물결소리가 들려오고 물결우로 한척의 매생이가 떠가고있다.
멀어져가는 산천에 물기어린 눈길을 주고있는 학생옷차림의 나어린 소년…
수령님께서는 헤쳐오신 년대들을 거슬러 감회깊은 추억으로 노를 저어가시며 자신도 어쩔새없이 그날의 노래를 나직이 불러보시였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
아, 내 그날 생각했지. 내가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내가 자라나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
수령님의 눈가녁이 축축히 젖어올랐다.
그이께도 남의 처마밑에서 비를 긋는 방랑객이 안아야 했던 처절한 체험이 있었다.
야오잉거우(요영구)와 둥강(동강)회의, 반《민생단》 미친 바람을 휘몰며 동만에 있는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라고 터무니없이 목에 피대를 돋구던 민족배타주의자들.
그 모욕적이며 치명적인 공세에도 꿋꿋이 맞서 혁명만세를 부르며 형장에서 쓰러져간 불굴의 혁명전우들.
부지중 그이의 뇌리에 자신의 곁을 떠나간 유명무명의 전사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비껴갔다.
망국노의 울분을 참을길 없어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소영각같은 통곡을 터뜨리던 의로운 모습들중에는 일찌기 중국의 황푸(황포)군관학교 교관으로 있다가 북만에서 군장으로 조선혁명가의 불굴의 기개를 떨친 투사도 있다.
《김일성장군님, 더는 참아내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백두산에 와서 장군님의 평대원으로 있어도 좋으니 받아만 주십시오.》
…
《음-》
수령님께서는 확확 달아오르는 속을 식히고싶으신듯 정원속의 서늘한 공기를 달게 마시며 다시 최금호의 초상을 눈앞에 떠올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최금호의 여린 마음을 슬그머니 받아안으시고 여럿의 비난으로부터 보호해주시려는듯 그냥 마음을 쓰시였다.
최금호를 저대로 다시 이역땅에 돌려보내서는 안될것 같다.
《최금호선생!》
그이께서는 저도 모르게 측은한 어조로 부르시였다.
무엇이 크게 잘못된것 같다. 어떻게 그를 위해 손을 써야 되지 않을가. 도리로 보나 인정으로 보나 저렇게 놔두어서는 안될것 같다.
그런데 래일 떠난다니 문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는 로숙한 전문가라고 하는 정용진이마저 손털고 물러섰으니 그 사람의 속을 풀어주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것 같다.
그러나 여하튼 맺힌 속을 거뿐하게 풀어주어 하늘길에 올려주는게 조국사람들의 인정이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바가 아니다. 아, 그래그래…
이 일은 아마도 내가 해야 할 일일것 같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그와의 사업을 자신이 맡아안아야 할 하나의 중대한 책무라고 결심을 굳히시였다.
그이께서는 큰소리로 부관을 부르시였다.
《강동무, 뒤에서 숨박곡질하지 말고 이리 오라구.》
그러자 인차 부관이 어둠속에서 뛰여왔다.
《래일 오전일정이 어떻게 됐더라?》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인민무력부장 접견, 10시부터 11시까지는 총리와 면담, 11시 20분부터 12시까지 소년궁전어린이들의 서예작품을 봐주시게 되여있습니다.》
부관은 거침없이 래일 오전일정에 대하여 내리엮었다.
《후- 그렇지.》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시였다.
틈새가 있을세라 빳빳하게 짜진 일정이다.
모든 사업이 필요하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수 없고 늦출수 없다.
그래… 하는수 없지… 점심시간에…
그이께서는 이렇게 래일 오전일정을 더듬어가시며 다시 깊은 상념에 잠기시였다.
갑자기 머리우에서 후두둑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시니 어느새에 부관이 넓은 우산을 펴들고있다. 굵은 비방울이 떨어지고있었다.
그동안 그이의 사색을 저어하여 기다려온듯 그제서야 날카로운 번개가 먼곳에서 어둠을 째고 뒤이어 둔중한 우뢰소리가 들려왔다.
별들이 바글거리던 하늘에 삽시에 시커먼 구름장이 깔리고 정원의 숲이 비구름을 몰아오는 질풍에 와슬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소낙비에 콩밭이 상하지 않을가?》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저으기 걱정을 하시며 잠시 날씨를 가늠해보시듯 하늘을 쳐다보시다가 집무실로 향하시였다.
4
방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인차 송수화기부터 드시였다. 교환수더러 정용진부장을 찾으라고 하시였다.
정용진은 최금호가 체류하고있는 숙소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째 아직도 쉬지 않소? 내가 혹 잠에 취해든걸 깨운게 아니요? … 나 말이요? … 난 괜찮소. 이제는 습관이 되였거던. 나이들면 이 생각 저 생각 많아져서 쉬이 잠들지 못한다오. 허허… 그런데 말이요. 최금호… 기업가선생이 어떻게 하고있소?》
《수령님, 최금호선생에게 수령님의 은정깊은 말씀을 다 전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웁니다. 지금 침실에 증손들을 눕혀놓고 그냥 잠들지 못하고 울고있습니다.》
《울고있다고? … 그래? … 내 지금껏 동무네가 가져온 최금호 자료를 다 보았소. 한마디로 가슴이 아프오. 우리 조국이 거쳐온 수난사가 그 인간의 인생사에 비껴있더구만. 동무들이 나라형편을 생각해서 그 무슨 무리한 부탁을 한게 아니요?》
수령님께서는 아버지를 궁지로 몰아간 아들의 한맺힌 비난이 아직도 가슴을 알알하게 해서 엄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자신이 평양시와 남포시안의 공장들을 돌아보고나서 늦게나마 자기 도리를 다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음, 동무들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니 좋소. 자식의 재산을 갉아내서 살쪄보자는 부모는 없소. 부모자식간에는 리윤이 아니라 오직 사랑만이 있을뿐이요. 그런데 이것 보오, 정부장. 그 사람을 그대로 돌려보내서는 안되겠소. 고민이 크다지?》
《예, 저희들도 그것때문에 많이 애를 쓰느라고 했습니다. 어제날을 돌아보지 말고 앞을 내다보며 살자고 여러 말로 위로하였지만 잘 먹어들지 않습니다. 죄많은 인생이라고 자기를 타매하면서 자꾸 울기만 하니 안내일군들도 속상해합니다.》
《조국에 왔다가 울면서 돌아가게 해서야 안되지. 자료를 보니 여기저기 참관하면서 속죄를 남기군 하는데 그 해묵은 마음의 빚을 조국의 맑은 산수와 고향의 후한 인정으로 다 씻어주어서 보내주어야 하오. 뭐 묘책이 없을가? … 음… 동무들이 이젠 손털고 나앉았으니 이제는 내가 맡아줘야 할가 보오.》
《그럼 수령님께서…》
《그렇소. 그러니 래일 나한테 그 사람을 데리고 오오. 나도 그 사람의 속을 풀어줄 그 무슨 비방이 생겨서 만나자는건 아니요. 그저 만나고싶구만. 그 사람이 한을 묻어가지고 되돌아간다니 나도 속이 좋지 않소. 정부장… 전쟁후에 말이요. 유럽에서 나를 만나던 일이 생각나오?》
《예, 수령님. 생각납니다.》
정용진의 목소리에 대뜸 물기가 어렸다.
정용진이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목메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수령님! 어찌 저희들이 그때 일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음… 잊을수 없겠지… 나도 종종 생각하군 하오. 그때 동무네는 조국을 떠나 고작해야 5, 6년이 되였지. 그런데… 최금호는 해방직후부터 지금껏 근 50년이란 말이요. 반세기… 인생의 절반도 넘는 세월이지. 그 기나긴 세월에 망향의 설음을 깨물다가 찾아온 조국이란 말이요. 그저는 못 보내. 그래서는 안돼. … 그러니 말이요. 최금호에게 전해주오. 내가 꼭 만나고싶어한다고, 내가 래일 점심시간에 기다리겠다고… 비행기예약도 취소시키도록 해보오.》
《알았습니다. 제가 꼭 그렇게 마음을 돌리도록 해보겠습니다.》
《그 사람의 출생년도가 임자년이더구만. 나도 임자년생이니 우린 동갑내기인셈이요. 정으로 사는게 사람이야. 인간세상은 인정의 세계란 말이지. 동갑끼리 마주앉아 회포를 푸느라면 뭐 그 사람의 꽉 잠긴 마음의 대문도 열리지 않을가? … 좋소, 그렇게 해주오. 이미 래일 오전일정이 빠듯이 맞물려있으니 나에겐 점심시간밖에 없구만. 그러니 그 시간을 맞추어오도록 하시오. 그 사람이 뭘 좋아한다고 했더라?》
《가만히 여겨보니 고향이 북변의 동해가마을이 되여 그런지 명태순대를 제일 맛나게 들었습니다. 몇십년만에 맛보는 고향특식이라며 여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함경도 특산물식당에 가서 배워가지고 명태대가리순대까지 여러번 해갔는데 매번 맛스럽게 들더라구 합니다.》
《허허, 명태순대라. 그거 야단이군. 우리 료리사는 평안도 료리에 능통한 사람이라 명태순대에 북변동해가의 맛을 내겠는지 걱정이군. 하여튼 좋소. 명태순대도 사람이 만들어내는것인즉 우리 료리박사에게 주문하면 해낼거요.》
《그렇지만 최선생은 다른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는 타고난 걸구가 돼서 먹성이 좋다고 자랑하군 하였다고 합니다.》
《허허, 먹성이 좋다 자랑한다구… 그건 자랑할만 한 좋은 면이요. 왜냐면 식성이 좋은 사람은 말이요, 대체로 성격도 좋은 법이거던. 자, 이젠 잠자리에 들어보기요. 이런, 벌써 새들이 깨여나 우짖기 시작하는군. … 고맙소, 잘 자오.》
수령님께서는 전화를 끊으신 다음에도 최금호의 백발의 모습을 그려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계시였다.
5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나어린 재간둥이들이 그린 그림들과 서예작품을 보아주신 수령님께서는 점심무렵이 되여서야 오전 일정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시험포전앞을 지나시다가 자동차에서 내리시였다.
어제 한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소낙비에 콩포기들이 상하지 않았는지 념려되시였던것이다.
그리고 새 품종의 콩대와 가지들이 그 정도의 비바람에 얼마만큼 견디여낼수 있는가 하는것도 확인하고싶으시였다.
벌써 시험포전은 알뜰히 손질이 되여있었다.
홍진풍이 앞질러 손기빠르게 해놓은것이다.
홍진풍이 소낙비가 무너뜨린 배수로의 감탕을 파올리느라고 땀에 미역을 감고있었다.
《쉬염쉬염 하오. 어떻소, 콩포기들이? …》
《수령님, 끄떡없습니다. 콩꼬투리 하나 떨어진게 없습니다.》
《그래?! … 이제 늦장마만 견디여내면 문제없겠는데.》
수령님께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고 콩포기를 세세히 살펴보시였다.
그이께서는 홍진풍이 점심시간이 다되였다며 만류하였으나 호미를 드시고 비에 흘러내린 이랑들에 고랑의 흙을 긁어올려 북을 돋구시고 늘어진 잎새들에 게발린 감탕을 털어주시였다.
정용진부장이 풍채좋은 백발로인을 안내하여 나타난것은 이무렵이였다.
《수령님, 최금호선생이 왔습니다.》
《최금호선생이? … 그럼 대기실에 모실거지…》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미안쩍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부관이 드리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시며 청사정문앞에 들어서는 승용차쪽으로 고개를 돌리시였다.
그런데 승용차문이 열리더니 예닐곱살이 됨직한 어린 소년, 소녀가 《대원수님!》 하고 꾀꼬리처럼 짜랑짜랑한 소리로 부르며 수령님께로 달음박질하여왔다.
《하, 저애들이… 승용차안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정용진부장이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설명하였다.
《최금호선생의 증손자, 증손녀들입니다. 체류기간 저애들이 늘 선생곁에 붙어다니였습니다. 수령님 뵈오러 간다니 하두 졸라서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거 잘했소. 어, 얘들아! 넘어질라… 천천히, 천천히! 넘어지면 무릎을 상하니라…》
수령님께서는 달려오는 아이들을 향해 두팔을 벌리시였다.
그애들은 달려오던 기세그대로 수령님품에 담쑥 안긴다. 애들은 너무 좋아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인사를 드리였다.
《아버지대원수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그래…》
수령님께서는 두 아이를 한품에 꼭 끌어안으시고 아이들의 토실토실한 볼을 다독여주시였다.
《얘들아, 먼 나라에서 오신 로할아버지를 만나니 좋니?》
수령님의 물으심에 아이들은 유리알 구르는 소리같이 맑고 챙챙한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예!》
《좋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애들에게 넌지시 물으시였다.
《어째서 좋으냐?》
《저-》
사내애가 인차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듯 입을 열다말고 귀뿌리를 살살 긁는데 소녀애가 당돌하게 대답하였다.
《우리 할아버지니깐 좋습니다.》
《허허, 우리 할아버지니깐 좋다구? … 그래그래, 네 대답이 만점짜리다. 할아버지니깐 좋지. 아무렴, 피줄이란 그런거다. …만가지 리유를 다 제쳐놓고 그 하나면 좋다는 리유가 되고말구, 허허…》
수령님께서는 즐거운 어조로 소녀의 대답을 긍정해주시면서 승용차에서 내려 긴장한 모습으로 굳어져있는 최금호에게로 눈길을 옮기시였다.
그이의 정찬 눈길을 받은 최금호가 허둥지둥 빠른 걸음으로 수령님께로 다가왔다.
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을 품에서 내려놓으시고 최금호를 맞으시였다.
둥글둥글한 얼굴에서 수북하게 자란 은빛의 장미가 백발의 머리에 어울려 인상적이였다.
《아, 최금호선생! 기다렸습니다.》
《주석님! 일찌기 조국을 버리고 도망갔던 이 죄많은 인간이 세상천지를 돌고돌다가 이제야 비로소 주석님께 문안을 드립니다.》
최금호는 벌써 눈앞을 가리는 눈물을 날리며 오랜 세월 마음속에 또박또박 새겨오고 아껴온 인사를 올리였다.
《반갑습니다. 선생이 서방것들이 벌리고있는 제재의 포위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국으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애국적인 장거입니다. 환영합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애국자만이 결행할수 있는 배심있는 의거입니다.》
《주석님, 지나친 과찬입니다. 저라는 소인배에게는 원체 애국이라는 말이 가당치 않습니다.》
최금호는 너무도 예상치 않았던 수령님의 치하에 몸둘바를 몰라하다가 수령님의 옷자락을 꼭 잡고 그냥 수령님곁에서 맴도는 애들이 눈에 걸려 한마디 급하게 타일렀다.
《얘들아, 주석님께서 힘드시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수령님의 품에 안긴 행복을 쉽사리 내놓고싶지 않은듯 최금호에게 곱게 눈을 빨고는 몸을 흔들며 어리광을 부리다가 오히려 수령님의 옷섶안으로 숨어들어갔다.
《아 참, 이애들이…》
《허허, 놔두시오. 난 애들과 있을 때가 제일 좋습니다. 애들의 친구가 돼서 함께 지내느라면 젊어지는것 같습니다. 내 방금전에도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 가서 우리의 어린 재간둥이들이 내놓은 그림을 봐주고 오던 길입니다. 유럽에서 진행된 국제어린이미술축전에서 우리 아이들이 1등을 했지요. 내가 아무리 바빠도 그애들 등을 두드려주지 않고서야 호주구실이 되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기쁨에 넘치시여 환하게 웃으시였다.
《자, 볕이 뜨거운데 방으로 갑시다.》
수령님께서는 머리에 빨간 리봉을 나풀거리는 소녀와 그보다 주먹 하나는 큰 소년의 손목을 잡으시고 청사를 향하여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정용진과 최금호도 수령님의 뒤에서 따라섰다.
《그런데 저건…》
최금호는 그이께서 방금전에 호미를 들고계시던 모습이 의아스러워 정용진부장에게 나직이 물었다.
《수령님께서 몸소 가꾸어오시는 시험포전입니다. 세상에 유명한 주체농법이 실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였습니다.》
《예, 농업과학원에 있는 우리 아들이 주석님께서 몸소 농사일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직접 맡아보신다고 하더니… 참, 콩포기들이 소담합니다.》
《예, 우리 과학자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다수확품종인데 수령님께서 몇해째 풍토순화시킬겸 종자의 특성과 재배법을 확인해보고계십니다. 저도 어제 여기 포전에서 수령님을 뵈웠는데 수령님께서는 이 콩을 전국에 널리 보급하여 기름문제와 된장, 간장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아이들에게 콩우유를 공급할 구상을 하고계시였습니다. 지금은 콩생산량이 여의치 못하여 지방의 어린이들에게는 콩우유를 주지 못하고있는데 수령님께서 이 문제때문에 여러차례 가슴아파하시였습니다. 미국이 눌러놓은 제재품목에는 콩도 있습니다.》
《예- 그렇군요. …》
최금호는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자그마한 단편적인 사실에 깃들어있는 거창한 의미를 새겨보며 크게 감심되여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런데… 사실인즉 지금 계절은 피서계절이라 저쪽 사회에서는 산과 바다에 불티가 나지요. 대통령은 물론 회사직원들까지도 더위를 피해 피서지에 몰려간답니다. 그런데 주석님께서는 여전히 집무실을 뜨시지 않고 시험포전까지 보살피고계시니 그 로고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들도 늘 걱정이지요. 수령님을 충정을 다해 모시자고 말은 하면서도… 자, 빨리 갑시다.》
정용진은 자기들이 사업을 잘 보좌하지 못한탓으로 오늘 점심의 휴식마저도 또 파하게 했다는 죄책을 금치 못하며 왔는데 최금호의 피서소리까지 듣고보니 더구나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6
넓고 시원스러운 방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최금호에게 자리를 권하시고는 아이들을 옆자리에 세워주시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꼬마손님들을 뭘 대접해야 좋을가? 그렇지, 부관동무, 이애들에게 집구경을 시켜주는게 어떻소? 정원구경도 시키고… 거기서 첫물왕다래를 딸수 있는데 그걸 꼬마들에게 대접하오. 그런데 한시간후면 점심시간인데 너무 많이 먹이지는 않도록 하오. 왕다래는 산기가 많은 열매여서 공복에 많이 먹으면 탈을 만날수도 있소. 가만… 우린 아직 통성을 못했구나. 누구부터 시작할가?》
수령님께서는 함뿍 미소를 지으시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사내애가 선손을 놓칠세라 나선다.
《옛, 제 이름은 최룡이. 여덟살입니다.》
《최룡이, 똑똑해! 뒤머리가 멋있게 나온게 박사감이군.》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칭찬하시는데 그의 녀동생이 오빠에게 뒤질세라 또랑또랑하게 자기소개를 하였다.
《저는 최룡화입니다. 여섯살입니다. 륙교유치원 높은반입니다.》
코망울이 앵두알같고 눈이 새물거리는게 여간 이쁘지 않다.
《음, 룡화는 참 귀엽게 생겼구나.》
《저는 륙교유치원에서 피아노를 칩니다. 전국유치원축전에 나가서 2등을 했습니다.》
《2등을?! 하하- 룡화가 대단하구나. 훌륭한 음악가가 되겠구나. 다음번에는 꼭 1등을 해라… 자, 그러면 너희들은 저 아저씨와 같이 구경을 하거라. 그래야 이제 너희 동무들을 만나 얘기해줄 자랑거리가 생길게거던. 그동안 난 너희네 로할아버지와 이야기를 좀 나누겠다.》
《야, 좋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두손을 번쩍 쳐들고 부관에게로 깡충깡충 뛰여갔다.
그런데 부관의 손목을 잡고 문가로 다가가던 소년이 다시 수령님께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수령님의 귀전에 바투 나팔주둥이처럼 오그린 작은 손에 입을 대고 귀속말로 속삭이였다.
《대원수님, 우리 로할아버지를 욕하지 마십시오. 로할아버진 울보야요. 자꾸 울어요.》
《엉? … 로할아버지가 울보라구… 그런데 내가 왜 로할아버지를 욕한단 말이냐.》
《우리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소년은 자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수령님께 고해바치다가 어린 소견에도 무엇이 념려스러웠던지 최금호를 힐끔 돌아본다.
《하하… 원, 그럴리 있나. 걱정을 말거라. 사실 너의 로할아버지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이번에 숱한 나쁜 놈들이 길을 막는걸 다 쳐버리고 조선사람의 기개를 과시하였거던. 하여간 내 룡이부탁을 명심하마, 하하…》
수령님께서는 룡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크게 웃으시였다. 그제야 소년은 마음이 놓이는듯 방긋 웃으며 문가로 뛰여갔다.
정용진도 최금호도 어쩔수없이 몸을 흔들며 웃었다.
최금호는 웃으면서도 벌써 눈언저리가 벌깃해지고 좁쌀알같은 물방울들이 눈귀에 매달려 파들거렸다.
《애들이 참 양기있고 똑똑합니다. 이 큰집에 와서 주석을 만나고도 주접이 들지 않고 저들이 할 소리는 다합니다. 난 저렇게 여무지고 영특한 애들을 볼 때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저런 애들이 자라나 이 나라의 주인이 될 때를 생각해보시오. 조국은 또 얼마나 훌륭해지겠습니까. <미래를 사랑하라!> 난 언제나 우리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하군 합니다. 땀을 들인만큼 농사가 되고 품을 들인만큼 우리 애들의 몸과 마음이 커집니다.》
《주석님, 그 말씀이 참으로 금언입니다. 풍요한 땅에서 알찬 열매가 주렁지듯 좋은 사회, 훌륭한 제도가 없이야 저렇게 아이들이 자랄수 있겠습니까. 제 며칠동안 저애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실은 깨닫는바가 큽니다. 우리 자손들이 저렇게 훌륭하게 자라나도록 조국땅을 가꾸어주신 주석님로고에 고마운 인사를 어떻게 드렸으면 좋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최금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이 꺾어 인사를 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최금호의 진정에 넘치는 인사에 손을 내저으시였다.
《그게 어찌 주석 한사람의 수고로 이루어진것이겠습니까.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허리띠를 죄여가면서 간고분투한 결과이지요. 내가 한 일이란 그저 길잡이를 했다는 정도입니다.》
수령님의 한없이 겸허하신 말씀에 더욱 감동된 최금호가 다시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칭송의 말씀을 드리고저 하는데 그이께서 화제를 돌리시였다.
《기업가에게 있어서 시간은 곧 돈이라 했는데 선생의 걸음을 지체시켜서 미안합니다.》
《주석님, 황송합니다. 나라에 보탬이 없이 한생에 죄많은 얼룩점이 가득한 초라한 인간을 위하여 주석님께서 귀한 시간을 내주시였는데 그저 송구스럽고 고마울뿐입니다.》
《최선생, 그렇다면 좋습니다. 한데 내 우리 정부장동무한테서도 듣고 이자 방금 애들도 나더러 부탁까지 했는데 선생이 평생에 무슨 큰죄를 지었다고 자꾸 자신을 학대합니까. 나는 나라가 어려움을 당하는 시기에 제 고향땅이 걱정스러워 나쁜 놈들의 갖은 도발을 다 이겨내고 조국을 찾은 그 하나만 가지고도 선생의 애국적량심과 조선사람다운 호호탕탕한 기상을 높이 평가하고싶습니다. 그러지 마시오. 선생의 걸음이 비록 때늦기는 했어도 온 나라가 생사존망을 건 조국수호, 민족수호전에 떨쳐나선 시기에 찾아온것으로 하여 우리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고 그래서 선생에 대한 좋은 감정도 가지게 하였습니다.》
《주석님말씀에 정말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죄를 지은게 많습니다.》
《하, 최선생이 자꾸만 죄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그 말이 정말이였군요. 정 그렇다면 어디 들어봅시다. 아마 그래야 최선생이 내앞에서 속풀이를 시원스럽게 할것 같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자기의 옥맺힌 설분을 털어놓고싶어하는 최금호의 절절한 심중이 짚이워 롱조로 쾌히 승낙을 하시였다.
너그러운 미소를 만면에 담으시고 자기를 고무해주시는 수령님을 우러러 최금호는 드디여 수십년세월 서리고 맺히고 활활 타버리고 재가 되고 다시 순간순간마다 잉걸불이 되여 온몸을 지지리도 괴롭혀온 만단사연을 터쳐놓자니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목이 꽉 잠겨들었다.
최금호는 목구멍을 틔워놓으려고 건기침을 두세번 하였다.
《제 인생의 첫번째 죄목은…》
최금호는 드디여 두툼한 입술을 무겁게 열었다.
아득한 세월의 저 끝에서 시작된 그 인간의 고난에 찬 행보가 엮어져갔다.
그것은 눈물의 시내였다. 고행의 난바다였다.
굴욕과 설음을 씹으며 헤매여온 집잃은 나그네의 한숨과 치욕과 구슬픔이 서리서리 엉켜있는 불우한 운명의 서사시였다.
최금호는 아직은 그 누구에게도 비쳐보인적 없었던 평생의 리면사까지 다 털어내여 낱낱이 아뢰였다.
약자의 하소에 그 누구도 악어의 눈물만 한 동정도 보이지 않는 그 사회에서 허세와 처세가 없이는 자신을 지켜낼수 없어 속깊이 고여놓고 밝아오는 뙤창을 괴롭게 노려보던 그 숱한 밤과 밤들에 잠자리에 쏟아놓던 소리없는 곡성이 그의 입에서 쏟아붓는 물처럼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눈물겨운 인간수난사에 당자도 흐느끼고 정용진도 울었다.
수령님께서도 자주 눈언저리에 손수건을 올리시였다.
《… 네번째로 제가 지은 죄는 이 땅우에 전쟁이라는 큰 란리가 벌어져 숱한 떼주검을 내고 재더미만 남은 땅우에 복구건설의 힘겨운 진군이 벌어졌을 때도 이놈은 조국을 등진채 돈벌이에만 눈이 벌개 돌아간것입니다. 량심은커녕 조선사람의 혼까지도 돈주머니에 저당잡히고 모국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으니 저야말로 도척같은 인간패륜아였습니다.》
최금호는 숨을 돌리려는듯 잠시 말을 그치고 손수건으로 목덜미에 질벅하게 내밴 땀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수령님께서는 해점도록 끝없이 이어져갈 한 인간의 피눈물에 젖은 수난사를 주의깊이 들어주시다가 조용히 그를 위로하시였다.
《왜 자꾸 죄라구 이름을 달아 내놓습니까? 지금까지 최선생이 털어놓은 죄라면 거 뭐 구태여 죄라고 할만 한게 못됩니다. 그건 죄가 아니라 나라분렬의 파도에 휘감겨든 수난이 틀림없습니다. 그건 죄가 아닙니다. 더구나 그 죄라는것도 지나간 옛말입니다. 나도 곁방살이의 설음을 너무도 가슴에 사무치게 절감하였던 체험이 있습니다. 내 옛말 하나 해볼가요. 50년대에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동유럽의 어느 나라에 갔다가 그곳에 보냈던 우리의 전재고아들이 걱정되여 찾아갔지요. 그런데 글쎄 그애들이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어디 놔줍니까.
<원수님, 우리들을 데리고 가주십시오.>
하, 이거 야단이 아닙니까. 당장 날 따라서겠다는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애들더러 <얘들아, 조금만 참아라. 내 몇해후에는 꼭 데려가마. 지금 조국은 복구건설을 하느라고 힘들게 지낸다. 거기 가면 고작해야 좁쌀밥이나 피죽인데 그것마저 배곯게 먹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배가 불러 지내지 않느냐.> 하고 달래였습니다.
그러자 그애들이 하는 말이 기가 막혔습니다. <배를 곯아도 좋습니다. 피죽을 먹어도 좋습니다. 빵을 더는 먹지 못하겠습니다.> 이러며 그냥 따라오겠다고 품을 파고드는겁니다. 난 그때 그애들을 와락 끌어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단단히 다짐을 했습니다.
<내 다시는 우리 인민들을, 우리 후손들을 곁집살이를 시키지 않을테다. 이제 나라를 합쳐놓고 산지사방 흩어져간 우리 사람들을 다 데려다가 고생을 겪어도 함께 겪고 복락을 누려도 함께 누려가자.>
그때 아이들이 지금 나라의 간부가 돼서 이따금 만나기도 하는데 그 시절 이야기를 자주 외우며 지금도 아이적 마음이 되여 내 팔을 부여잡고 엉엉 울군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시여 축축히 젖어오는 눈가녁으로 올리시였다.
그런데 최금호의 옆에 앉아있던 정용진이 삽시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수령님! 정말 못견디게 조국의 모든것이 그리웠습니다.》
정용진이 이렇게 울대를 움씰거리며 갈린 어조로 말씀드리였다.
《최선생, 저 부장동무로 말하면 그때 내 품에 안겨 몸을 떨던 그 소년이였습니다.》
《예?!》
최금호도 더는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누를수가 없어 눈길을 접고있다가 정용진에 대한 말씀까지 듣자 그만에야 두볼을 눈물로 적시였다.
7
《이역땅에 가서 10년도 살지 않았던 저 부장네가 그러하였거늘 반세기나 살길을 찾아 이역만리를 헤맨 최금호선생이야 여북하겠습니까. 난 이역땅에서 찾아온 동포들을 자주 만나군 하는데 그들이 내 가슴에 안겨 울 때마다 한폭의 그림을 생각하군 합니다. 그 그림을 네데를란드사람이 그렸다고 했는데 제목이 아마 <불효자식 돌아오다>로 되였던것 같습니다. 집을 뛰쳐나갔던 자식이 세상을 돌아가다가 거지꼴이 되여 집에 돌아왔지요. 한데 그를 맞아주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그동안에 쌓였던 노여움이나 질책기는 없고 그저 기다려온 자식을 드디여 품에 안은 애정과 행복감만이 어려있었습니다. 무엇때문이였겠습니까. 아까 룡화가 로할아버지가 온것이 왜 좋으냐고 물으니 우리 할아버지니깐 좋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어찌보면 철없는 소리같지만 어린 동심이 비낀 대답이 솔직하고도 명백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니깐 좋다는것은 바로 그 무슨 다른 설명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혈친의 사랑과 그 무상함을 명료하게 표현한 대답입니다. 아마 그 명화를 그린 화가는 자기의 그림을 통하여 이것을 주장하고싶었을것입니다.》
《주석님!》
드디여 최금호는 속에서 끓고있는 뜨거운 격정을 더는 주체할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길고 흰 장미를 푸드득 떨며 목이 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꼼꼼히 닦아내고는 떠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주석님, 고맙습니다. … 주석님께서는 지금 저의 평생의 아픔을 너무도 속속들이 헤아리시고 쓰다듬어주십니다.
제 스무해 가까이 허기진 구복을 채워보려고 동냥살이하다가 서른해전부터는 돈주머니가 늘어나기 시작하니 양놈들의 거들거리는 코대를 돈으로 꽉 눌러버릴 승벽내기로 미친놈처럼 뛰여다녔습니다.
황혼을 맞고보니 자나깨나 다시는 돌아보지 말자고 했던 조국이 못견디게 그립기만 하였습니다. 까마귀도 제고장 까마귀라면 반갑다는 말이 가슴을 저리게 하였지요. 하지만 무슨 체면에 선뜻 걸음을 옮기겠습니까. 저의 집에 가면 바로 주석님께서 방금 회고하신 그 그림이 벽에 걸려있습니다. 깨여나면 그 그림이 맨 먼저 저를 지켜봅니다. 제 이번에 조국으로 올 때도 그 그림앞에서 여러 시간 앉아있었습니다. 수십년 방랑끝에 다행으로 거지꼴은 면했다 해도 마음은 숭숭 뚫리고 너덜거리는 정신의 람루를 걸친 이 늙은 방랑객을 저렇듯 자애로운 품에 받아줄 거룩한 어버이가 있을가. … 저는 지금껏 종교는 믿지 않지만 그림속의 로인은 이승에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세상만물을 사랑으로 안아준다는 하느님일거라고 생각하여왔습니다. 그런 하느님이 정말 내게도 나타날수 있을가… 답변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팽이를 벗삼아 수천수만리길을 헤쳐오면서도 저의 가슴은 그냥 편안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진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제가 꿈결에도 바랄수 없었던 도량으로 죄많은 인생에 사랑의 향연을 베풀어주십니다.》
《하, 최금호선생, 또 죄많은 인생이라 하신다. 차라리 죄라고 이름을 붙이지 말고 실책이라고 해둡시다. 내게는 뭐 오늘에 이르도록 후회라는게 없었는줄 압니까. 그래 다시는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자신을 가다듬는것입니다.》
《주석님, 제가 알고있는 주석님의 평생은 해방전에도 해방후에도 백승을 수놓아오신 백전로장의 영광스러운 무훈사입니다.》
최금호는 가슴 한복판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을 고여 큰소리로 말씀을 드리였다.
그의 이야기에 수령님께서는 손을 내두르시였다.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도 이따금 평생길을 돌아보느라면 아픔도 많고 눈물도 많고 후회도 많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만면에 추연한 빛을 담으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방안을 거니시다가 창밖의 하늘 멀리에로 시선을 보내시기도 하시였다.
이윽토록 방안에는 그이의 발자국소리만이 그 무슨 숭엄한 추억을 불러내며 조용히 들리였다.
잊지 못할 혁명의 년대들, 뼈저린 고뇌와 슬픔이 빼곡이 이어져온 준엄한 세기가 그이의 심중을 저저이 괴롭히며 흘러가고있었다.
평생을 다하시여 조국사에 아로새긴 불멸의 무훈이련만 그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은 얼마나 엄혹하였으며 그 간고무쌍한 길에 휘뿌려온 눈물과 슬픔은 그 얼마랴.
문득 그이의 추억속에 눈보라이는 백두의 설령이 멀어져가고 스무해만에 찾으셨던 만경대의 자그마한 사립문이 다가서는것이였다.
버선발로 허둥지둥 달려오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 두고 너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 하시며 너무 애통하여 오열을 터치던 할머니의 가냘픈 어깨에 얼굴을 묻을 때 정녕 무엇을 생각하였던가.
내 정말 효도와 정을 더 각근히 기울였다면 이역땅에서 너무 일찍 생을 마친 부모님과 삼촌과 동생이며 사랑하는 전우들을 다 앞세우고 이 사립문에 들어설수 있지 않았을가. …
그이께서는 지금도 그날의 쓰라린 회한을 되짚어보시며 비감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어찌 그뿐이랴. …
파도치듯 이어지는 쓰라린 사연들에 휘말려드시던 수령님께서는 이윽고 최금호에게로 다가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최금호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굽어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최금호선생, 이제 우리는 황혼을 맞은 사람들입니다. 지나간 일을 두고 한숨이나 쉬고 눈물이나 흘리기에는 시간이 아깝지요. 인생에서 과거란 추억이나 감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디딤돌입니다.
옛 문인들이 이르기를 청춘기에는 종달새와 같은 아침노래를 가져야 하고 로년기에는 꾀꼴새와 같은 저녁노래를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너무 랑만적이지요. 하지만 그래도 인생을 가꾸어가는데는 쓸모가 있는 명구라고 생각합니다.
자, 용기를 내시오. 인생의 노을을 아름답게 물들여갑시다. 조국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시름겹던것이 다 풀릴것입니다.》
수령님의 진정에 겨운 곡진한 타이름에 최금호의 가슴은 마냥 뜨겁게 부풀어올랐다.
마음속을 어지럽히며 뒤채이던 동요와 허겁지레한 티검불들이 창졸간에 사라지고 마음속이 한없이 깨끗이 정화되여가는듯싶었다.
그러나 받아안은 충격이 크고 젖어드는 따스한 정에 가슴이 후더워질수록 인생의 허물을 한점 남김없이 말끔히 털어 내놓고싶은 절박한 심정은 곱으로 커졌다.
끝내 최금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고야말았다.
《주석님! 주석님께서 하해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시니 꼭 이 자리에서 주석님께 이실직고해야 할 큰죄가 있어 이렇게 또 감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 또 죄입니까? 좋습니다. 오늘은 최선생의 날이니 다 들어봅시다. 저 부장동무더러 판사가 돼서 어디 형량을 매겨보라 합시다. 허허…》
수령님께서는 커다란 감동에 벌겋게 타오른 최금호의 얼굴을 굽어보시였다. 그의 애바른 심경을 너누룩이 해주고싶으시여 그냥 이어지는 이실직고를 쾌히 받아주시며 껄껄 웃으시였다.
8
나들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부관이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어데 있소?》
《대기실에서 그림구경을 하고있습니다. 점심상이 준비되였습니다.》
《허, 벌써… 어쩐다? … 가만, 아이들은 배고프겠으니 우리를 기다릴게 없이 먼저 먹이도록 하오. 우린 좀 천천히 가겠소. 미안하오. 아직은 최선생과 회포를 다 풀지 못했거던. 상봉주 한잔 들자고 찾았는데 술맛이 달자면 속부터 후련해야 한단 말이요.》
《수령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관이 우스개소리로 하시는 수령님의 말씀에 물러나려고 하는데 최금호가 바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석님, 미거한 저때문에 점심시간까지 다 미루시다니. 안될 말씀입니다.》
《미안할게 없습니다. 강동무, 그렇게 하자구.》
《알았습니다.》
부관이 물러가자 수령님께서는 최금호에게로 돌아서시였다.
《최금호선생, 사무실이 답답하지요? 속도 답답하구요? 정원에 나가서 숲의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는게 어떻습니까. 나는 이따금 그 무슨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는 숲속을 걸어봅니다. 그러면 숲의 청청한 기운에 오리무중이 되던 머리가 거뿐해지고 좋은 묘안이 떠오르군 합니다. 나와 함께 숲속에 나가 속마음의 마지막앙금까지 다 씻어봅시다.》 하시며 수령님께서는 먼저 집무실을 나서시여 나무가 울창한 후원의 숲길에 들어서시였다.
삼송과 잣나무, 이깔과 수삼나무가 꽉 들어찬 수림이였다.
서늘한 기운이 서린 숲속에 들어서니 뙤약볕이 내려쬐이는 말복더위 같은것은 아랑곳할바 없다.
숲속에서 목청껏 울어예던 매미들이 대자연의 주인을 알아봤는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친다.
그러자 귀가 멍멍하도록 소란스럽던 숲속에 갑자기 적막이 깃들고 나무잎새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듯싶다.
불쑥 나무우에서 무엇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떨어진것은 주먹보다 큰 잣송이다. 쳐다보니 한마리의 앙증스러운 재빛청서가 잣송이를 떨구어놓고는 무엄한짓에 용서를 빌듯 새까만 눈알을 또록또록 굴리며 불안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본다.
《허, 우리 숲의 장난꾸러기이군. 저놈은 장난도 세차지만 욕심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지금도 제가 떨구어놓은 잣송이를 우리가 슬쩍 할가봐 걱정스러운 모양입니다. 자, 빨리 자리를 피해줍시다.》
수령님께서는 청서를 향해 정겨운 미소를 남기시고 걸음을 빨리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무성한 숲길을 걸으시다가 자그마한 정각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시였다.
《여기가 어떻습니까?》
수령님께서는 최금호를 돌아보시였다.
최금호는 그저 고마움이 서린 눈길에 《주석님께서 좋으시다면 저는 이의가 없습니다.》 하는 의미를 담은 행복의 미소를 담을뿐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정각에 들어서시여 참대로 엮은 걸상에 다가가 앉으시며 최금호에게도 맞은편 자리를 권하시였다.
최금호가 자리에 무심히 앉았다가 어쩐지 흔들이걸상생김새에 맞게 자기의 몸자세가 뒤로 제껴지는것이 송구스러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령님께서 어느새 그의 불편한 심기를 헤아리시고 《편히 앉으시오. 앉아서 이야기하라는데.》 하시며 손짓을 하시였다.
그러나 최금호는 그냥 선자리에서 아까 방안에서 꺼내놓았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주석님, 다름이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돈낟가리를 쌓아놓고는 제가 태를 묻고 제 혈붙이들이 눈이 시퍼래 사는 고향땅에는 한푼 전하지 않으면서 남조선에는 숱한 돈을 뿌린것입니다. 그런즉 주석님의 백성된 도리를 지키지 못한 제가 어찌 고양이상판이라고 주석님 뵈올 면목이 있겠습니까. 저라는 소인은 이런 부실한 놈입니다. 실은 그래서 더구나 제가 평생토록 흠모하여마지 않던 주석님을 만나뵈올 영광마저 미루고 조국을 떠나고저 했습니다. 돌아가서 우선 남에다가 뿌려놓은 돈부터 거두어들이고 어떻게 하든지 그보다 몇배가 될 재력으로 주석님의 뜻을 받든 후에 주석님을 뵙고저 했던것입니다.》
《음… 그랬구만요. … 그것때문에…》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정용진에게로 눈길을 보내시였다.
정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차 솔직하게 말씀드리였다.
《수령님, 저희들이 최금호선생의 그런 속깊은 마음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용진이 이렇게 자신을 심심히 뉘우치자 최금호가 급해맞아 그의 말을 받았다.
《주석님, 그런게 아닙니다. 제가 일을 치르기 전에 말부터 앞서는 실속없는 허풍쟁이가 될가봐 말을 굳이 꺼내지 않은겁니다. 헌데 주석님께서 너무도 저의 속깊이까지 헤아려주시여 이렇게 입빠른 말을 저도 어쩔새없이 입에 담았습니다.》
《음- 그러니 남조선에 투자한 돈을 다 회수한다는거겠습니다?》
최금호는 수령님의 사려깊은 물으심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흔들며 더는 드틸수 없는 반석같은 무게를 담아 대답을 드리였다.
《주석님, 이건 제가 어제오늘에 생각해낸게 아닙니다. 이번 방문길에 그 결심이 천만번 정당하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습니다. 내 조국에 오니 민족의 얼이 쟁쟁합니다. 저의 돈은 이 민족의 얼을 지켜내는데 마땅히 바쳐져야 합니다. 하지만 저 남쪽의 통치자들은 서방것들과 짝자꿍이를 하면서 공화국제재에 앞장서서 날뜁니다. 민족의 얼을 팔아먹는 그 혐오스러운 놈들에게는 돈이 아니라 징벌의 철추를 던져주어야 합니다. 늦더라도 이 큰죄는 반드시 씻어야 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최금호는 저도 다잡을길 없이 말꼬리가 높아져갔다. 어쩔새없이 두주먹이 불끈 틀어잡혔다.
《음, 최선생의 결심이 여간이 아니구만.》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나직하게 응수하시며 걸상에서 일어나 정각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숙연한 눈길로 최금호를 잠시 지켜보시다가 길게 숨을 내그으시였다.
그리고는 명백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최금호선생, 난 방금 최선생이 내놓은 문제들에 대하여 지지할수 없습니다.》
《예? …》
최금호의 낯빛이 졸지에 컴컴해졌다.
그는 성급하게 자기의 흥분을 드러내놓았다.
《그러면? … 주석님께서 저의 속죄를…》
최금호의 목소리는 나직하였으나 절망에 잠겨 떨고있었다.
깊은 회오와 자책끝에 그리고 공화국체류과정에 받아안은 벅찬 감동으로부터 시작된 자기로서는 일생일대의 대용단이 주석님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다니.
그것은 최금호의 일생에서 가장 비상하고 파격적인 선택이였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뜻깊은 용단이였다.
최금호는 그것으로 조상들앞에서 속죄의 아픔을 다소나마 덜수 있을것이라고 저으기 흐뭇하게 속구구하여왔다.
그런데 주석님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다니.
내 조국과 내 고향에 고이고저 하는 성의를 그이께서 마다하신다면, 내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건 운명적인 결단을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내 80년 찾아헤맨 삶의 빛을 어데서 찾아낼것이냐.
최금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오르는 가슴미여지는 호곡을 짓씹으며 조심스럽게 눈길을 들다가 수령님의 근엄한 눈길과 마주치자 모든것을 체념해버린듯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자 저 멀리 추억의 먼 기슭으로부터 어지러운 매연이 그물그물 맴돌면서 그의 눈앞을 가리웠다.
9
…
란리통같은 리윤짜내기쟁탈전에 뛰여들어 마침내 성공의 탑을 쌓아올릴무렵부터 기업가 최금호에게는 새로운 고뇌와 위험이 끈질기게 뒤따르며 괴롭혔다.
그에게로 서울이 추파를 던지며 접근하여왔던것이다.
초청장이 날아들고 서울에서 사람들이 뻔질나게 아첨기어린 웃음을 빼물고 찾아왔다.
미구에는 서울집권자까지 나서서 《친서》를 전해오고 특사를 보내왔다.
남조선에 있는 처가켠의 사람들까지 《각하》들의 령을 받고 찾아와서는 울며불며 그의 소매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수십년 고국에 등을 지고있던 최금호의 억척보루같던 심장이 그들의 눈물과 애걸에 마침내 엿가락처럼 휘여들고야말았다.
어느해 그는 남조선집권자가 보내온 《특별사절》들의 안내를 받으며 집권자의 전용기에 몸을 싣고 서울에 들어섰다.
집권자가 얼굴을 내민 성대한 연회가 련일 벌어지고 그 뒤끝에는 그의 돈주머니를 옭아내려는 공세전이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다.
어느날 최금호가 풍치수려한 진해만의 《대통령》별장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였다가 호화스러운 침실에 들어서니 미녀 한무리가 기다리고있었다.
최금호는 갖은 아양을 다 부리며 담쟁이덩굴처럼 감겨드는 미녀들을 떠박지르고 호통을 쳤다.
《미친짓일랑 거두고 돌아가지 못할가. 돌아가 너희들을 여기 보낸 작자들에게 전해라. 내 이젠 한물진 초로인생이다. 난 그저 초청을 받았으니 달콤한 안식으로 고국의 산수를 즐기다가 떠나고저 한다.》
녀인들은 한줄에 꿰여 섬기는 햇물딸기를 마다하는 이런 못난 두상태기 처음이라고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다가 겨끔내기로 몸을 꼬며 연지바른 입을 나불거렸다.
《선생님, 이대로 쫓겨나면 저희들은 물볼기를 맞게요.》
《저희들을 한번 가엾게 여겨주세요.》
《선생님, 서울의 공산명월을 화끈하게 즐기세요.》
그 야즐거리는 수작질에 최금호는 진저리를 치며 추상같이 대답했다.
《흥, 알만 하다. 돌아가서 너희들을 여기 들이민 작자들을 보내라. 요구하는대로 돈을 주겠다고 전해라. 그러면 물볼기는커녕 너희들 크게 상을 탈거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침실문이 열리더니 남조선의 고위인물들이 서류가방을 들고 벌쭉거리며 들어섰다.
이렇게 되여 최금호에게서 거액의 돈이 흘러들어 남조선의 동서쪽 바다가에 각각 규모가 큰 공업단지가 만들어졌다.
그후로 최금호는 더는 서울에 가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보내준 돈이 통치자들의 뒤주머니에 흘러들어 그놈들의 치부에 도용되지 않도록 자기의 대표를 상주시켜 감독하게만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최금호에게 새로운 정신적부담거리를 만들어내고 고향에로 가는 길을 멀어지게 할줄은 그때로서는 상상할수 없었다.
일후에 서울쪽에서 《대통령》감사장을 보내온다, 그 무슨 최고훈장을 준다, 설마다 축하엽서와 선물을 가져온다 야단법석들이였던것이다.
게다가 서울의 언론들이 자기를 영웅으로, 애국자로 극구 개올리며 찬사를 소낙비처럼 퍼부었다. 서울신문과 잡지들에는 이른바 《특등공신자》로 최금호의 초상과 그의 기업이 대서특필로 소개되군 하였다.
《이 최금호 돈으로 넋을 팔아먹었구나. 서울놈들의 <영웅>이 되다니…
제 고향, 제 혈붙이들에게는 피전 한푼 보태주지 못하면서 저 치사한 놈들의 <애국자>가 되다니.
이 일을 어찌하노…》
이번에 최금호가 신미리 애국렬사릉에서 옛 동지의 모습을 보며 크게 오열을 터친것도 바로 그 훌륭한 인간을 비명횡사시킨 서울집권자들과 술잔을 찧으며 종당에는 돈까지 섬겨바친 자신의 불민한 과거에 대한 환멸이였고 의분이였다.
(마땅한 벌이지. … 난 그것만 가지고도 백번천번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다.)
최금호는 이제 주석님께서 내리시는 초달이라면 그 어떤것이라도 달게 받아들이리라 숨을 크게 내쉬고 하회를 기다렸다.
정용진도 최금호가 꺼내놓은 이야기와 수령님의 무거운 안색을 조심히 살피면서 그 어떤 야릇한 불안에 갈마들었다.
기실 최금호의 조국방문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그의 책상우에는 최금호의 《공적》을 야단스럽게 소개한 남조선출판물들이 한아름 쌓여있었다.
일부 일군들은 그 일을 거들면서 고개를 기우뚱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용진은 조국에 속죄의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과거를 묻지 말고 손을 잡자는것이 수령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이다, 대문을 열어주자고 일부 일군들의 편협한 소심성을 일축하였던것이다.
하지만 막상 수령님앞에서 최금호가 그 사실을 두고 자신을 랭엄하게 타매하고 그의 이야기를 접한 수령님의 안색이 무거워짐을 육감으로 느끼자 어쩐지 자기도 덩달아 속이 팽배해지고 긴장해졌다.
이제 어떤 대답을 주실가. 무한히 넓고 무한히 깊은 웅심의 세계를 안으시고 만사를 사랑과 아량으로 받아들이시는 세상에 다시 없을 인정의 화신이시지만 혁명의 원칙앞에서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는분이시다.
수령님께서 제재놀음에 날뛰는 남조선집권자들의 회유와 압력에 넘어간, 그자신이 큰죄라고 타매한 사실을 스쳐보내실수 있을가? …
그는 몇해전에 있었던 일들이 문득 떠올랐다.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 자본주의의 복귀로 사회주의시장체계가 허물어진탓으로 나라가 경제적으로 커다란 난관에 직면했을 때였다.
아시아의 어느 한 지역과 중동의 한 나라에서 우리 나라의 공식인물들과의 비밀접촉을 그 지역에 가있는 교포들을 내세워 끈덕지게 요망하여왔다.
그들은 우리 나라에 대한 수십억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지원을 약속하면서 대표부나 무역사무소정도의 국가관계를 가지며 중동지역의 반제반미적나라들에 대한 지지를 동결시켜줄것을 요구하였다.
아시아의 어느 한 지역의 전권을 위임받은 대표는 만약 북조선이 정치적인 고려로부터 무역사무소개설도 현 단계에서 시기상조라면 북조선총리와 자기들과의 면담이라도 실현하여주며 접촉이 있었다는 한줄짜리 보도문과 기념사진만 세상에 공개하게 하여달라고 애걸하였다.
사진 한장에 수십억딸라…
나라의 경제전반이 혹심한 피해를 입고 우리 일군들이 나라의 살림살이때문에 뛰여다니고있을 때 그것은 너무도 유혹적인 제안이였다.
정용진은 일군들과 함께 심중히 협의하고나서 수령님께 교포들이 들고온 문제를 보고드리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즉석에서 단호하게 언명하시였다.
《혁명의 원칙은 억만금과도 바꿀수 없소!》
…
정용진은 자신이 그 무슨 커다란 실책을 범하고있지 않는가 하는 불안과 우려가 가슴을 죄이기 시작하였다.
수령님께서 최금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최금호의 앞에서 한동안 자책에 잠겨든 그의 모습을 찬찬히 보시다가 담담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최선생, 하나 물읍시다. 우리를 위하여 남쪽에서 자금을 빼내면 그쪽 기업은 어찌됩니까? … 기업관리에서 돈은 곧 윤활유라고도 한다는데… 남조선이 지금 세계적인 대금융위기에 말려들어 신고를 겪는 판에 선생까지 자기의 투자금을 환수하면 가뜩이나 거품경제라고 비난받는 그쪽 사정이 어떻겠습니까?》
《예? … 그쪽 사정이 말입니까? 저… 저는 그에 대하여 책임질 아무런 법적의무도 없습니다. 투자자본의 환수문제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투자가의 권리문제이며 기업륜리에도 저촉되지 않습니다. 저는 남쪽일에 더는 상관하지 말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쪽을 도와주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짓인가를 이번 방문길에서 더욱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바깥도적놈과 짝이 되여 제 식솔의 가마솥까지 뽑아내자고 덤비는 인간추물들이 어데 있겠습니까!》
최금호는 수령님께서 불만을 느끼는 리유가 나름으로 짚이우자 다행스러운듯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러나 결패있게 주장을 폈다.
수령님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감돌아오르시였다.
상대방의 진가를 면바로 포착하신듯싶었던것이다.
고령임에도 쇠로 부어낸듯 다부지고 단단한 몸매, 석고를 깎아만든듯싶은 턱, 그런가 하면 고집스럽게 솟아오른 코마루… 지금의 최금호의 모습에는 동정을 자아내던 방랑객의 처량한 눈물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낼수 없다. 옳다고 인정된다면, 정의라고 믿는다면 머리가 스무쪼각 나도 망설임이 없이 결연히 자리를 차고 돌진하는 억세임이 퍼덕거린다.
《상관하지 않겠다구요? … 음…》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거두시고 또다시 정각을 천천히 거니시다가 최금호의 말을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저으기 격앙된 최금호의 모습을 일별하시다가 무겁게 고개를 저으시였다.
《상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남조선경제를 지켜주어야지 해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최선생이 돈을 뽑아오면 거기 기업이 도산이 될거구 그러면 숱한 실업자가 거리를 헤맬겁니다. 그런즉 최금호선생! 상관해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간곡한 어조로 재삼 마디마디에 력점을 찍으시며 타이르시였다.
《난 진심으로 최선생이 결심을 달리하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불만스러운것은 선생이 죄라고 한 그 투자와 관련한 립장과 평가입니다.》
《예? 저의 립장말입니까?》
최금호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져서 큰소리로 반문하였다.
벌써 최금호의 심장은 급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는 위인의 숭고한 심장의 벽에 부딪쳐 급기야 초라한 꼴을 드러내고만 자기 몰골을 느끼며 지금껏 접해보지도 상상도 할수 없었던 천상의 신비로운 리상세계에 들어서는 자신의 새 모습을 환희에 넘쳐 보고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선생이 밀어준 돈이 남조선경제에 도움이 되였으면 그것은 좋은 일이지 절대로 죄로 타매될수 없다는것입니다. 선생의 덕을 남조선사람들이 보고있는데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따라서 그걸 죄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벌써 민족적인 립장, 조국애라는 우리가 의거해야 할 근본정신에서 뒤걸음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 그럼 주석님께서는? …》
최금호는 아직도 수령님의 말씀과 그이의 만면에 넘치는 미소의 참의미가 선뜻 짚이우지 않아 그저 놀랍고 황홀한 기색으로 그이를 쳐다볼뿐이였다.
무엇인가 이 수림처럼 거창하고 청청하고 바다와 같이 심원한 진리와 고결한 뜻이 우뢰와 같은 거대한 진폭으로 심금을 흔들고있었으나 그것은 언뜻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번개처럼 명료하게 그려내기 어려웠다.
수령님께서는 문득 《나와 함께 전망대에 올라가볼가요.》 하시며 먼저 라선형으로 돌아간 계단을 천천히 오르시였다.
정용진이 수령님을 부축하여드리였다.
최금호도 수령님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전망대에 오르니 갑자기 시계가 확 트여 속도 시원하게 열리는것 같았다.
사위를 둘러보니 무성한 수림이 발밑으로 펼쳐졌다.
멀리로 평양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발들이 뿌잇하게 안겨들었다.
수령님께서는 란간을 잡으시고 동서남북을 둘러보시다가 북쪽으로 가까이 마주서있는 주작봉에 눈길을 박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후 최금호를 부르시였다.
《여기 내곁으로 오시오.》
최금호가 얼른 수령님곁에 가서 정중하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무엇인가 그이의 가슴속에서 사품치는 뜨거운것이 최금호에게도 흘러들어 인간숭고함의 상상봉에로 말없이 떠밀어주는듯싶었다.
《최선생, 저기에 나의 전우들이 모여있소.》
수령님께서는 손을 내뻗쳐 주작봉을 가리키시며 다소 비감에 젖어 말씀하시였다.
최금호는 수령님의 뜻밖의 말씀에 벌써 명치가 쩡- 저려들었다.
《예! 저도 엊그제 갔댔습니다.》
《김책동무, 강건동무, 김정숙동무… 하나같이 견결하고 마음씨고운 사람들이지요. 난 자주 이곳에 나와 우리 동무들과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누군 합니다. 저 주작봉에는 남쪽에 고향을 둔 동무들도 적지 않게 묻혀있습니다. 나도 전주김씨니 조상들은 아마도 전라도에서 살았을것입니다.
그들이 이따금 내게 묻습니다. <사령관동지, 저 남쪽은 어떻게 하렵니까?> 그러면 나는 쉬이 대답을 못하지요. 반세기나 갈라져있은 그네들의 고향을 두고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주석님!》
《수령님!》
최금호도 정용진도 가슴에 사무쳐드는 수령님의 고뇌에 눈굽이 축축히 젖어들어 목메여 불렀다.
《남녘도 내 땅, 내 나라, 한조상의 땅입니다. 남녘의 동포들도 나의 혈육, 나의 겨레입니다. 우리는 백두산시절부터 절대로 나라의 반쪽을 위하여 풍찬로숙하며 혈투를 벌려온게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난 더구나 그 땅에 큰물이 나도 가물이 들어도 쉬이 잠들수 없지요. 남쪽의 일부 못난 사람들이 행실 어지러운짓을 해도 분노에 앞서 가슴이 아프군 합니다. 최선생, 속을 크게 가집시다. 겨레와 조국을 통채로 안고 살아갑시다. 투쟁하면서도 단결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화해를 해서 온 겨레가 한조상의 땅에서 동고동락을 해갑시다! 어떻습니까. 최선생, 아직도 선생에 대한 나의 불만이 리해되지 않습니까?》
《주석님!》
최금호는 수령님의 위대한 도량과 민족애에 심취되여 수령님앞에 앞으로 구부러들었던 허리를 쭉 펴고 큰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그이께서 펼쳐가시는 너무도 경이적인 사상과 리념에 새롭고도 거창한것이 속깊이에서 출렁거렸으나 뭐라고 형언할수 없어 입만 크게 벌리고 굳어졌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계시는 거인의 위대한 넋에 심취되여 자신을 잃어버린듯싶었다.
수령님의 말씀은 사리정연하면서도 호방하고 기백에 넘치면서도 산같은 도량과 바다같은 정으로 하여 최금호의 온넋을 무아경으로 이끌어갔다.
최금호는 그 어떤 만년얼음산이 와그르 무너져내리는 통쾌하고 장엄한 광경을 체험하고있었다.
수령님의 말씀은 마디마디 명확한 진리이고 정의였으며 인간아름다움의 극치이기도 하였다.
어느 한마디도 알쏭달쏭하거나 난해한것이 없었다. 머리속에 쏙쏙 들어와 새겨지는 인간세계의 철리였고 이 땅의 열과 정의 고귀함을 다 모아 피워놓은 금상첨화였다.
불시에 최금호의 눈앞으로 주석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옵던 시험포전이 새로운 의미를 안고 펼쳐졌다.
그러자 그 시험포전이 이쪽으로 옮겨온듯 발밑으로 보이는 수림이 통채로 콩숲이요, 숲을 흔드는 바람새도 콩숲의 설레임소리처럼 느껴졌다.
이제 콩숲은 여기서 시작되여 해빛넘치는 북남삼천리로 끝없이 펼쳐질것이다. 주석님의 사랑이 그대로 빛발이 되고 주석님의 귀중한 땀방울이 그대로 단비가 되고 주석님의 로고가 그대로 자양분이 되여 가꾸어낸 그 고귀한 애국헌신의 숲이 세세년년 푸르러 설레려니 내 조국은 억년무궁하리라!
그는 한참후에야 수령님앞에서 굳어져버린 자신을 의식하고 그이앞에 정중히 서서 옷깃을 여미였다.
《주석님, 전 아까 콩밭에 계시는 주석님을 뵈올 때부터 놀랍기도 하고 가슴이 든든해지기도 하였습니다. 바깥에서는 제재요 뭐요 하면서 공화국이 다 넘어지게 됐다고 법석거리는데… 사실은 그래서 저도 급하게 달려왔는데 아, 글쎄 주석님께서는 콩밭에서 땀을 흘리고계십니다. 참, 저의 심정을 어떻게 다 아뢰야겠는지…》
《하, 놀랄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재를 할테면 해라, 전쟁을 할테면 한번 붙어보자. … 우리는 자기 할 일을 하는거지요. 허허…》
푸른 산악같은 무게와 장쾌함이 느껴지는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던 최금호는 불시에 대리석바닥우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흉중에서 쇠물처럼 이글거리는 감동을 터쳐놓았다.
《주석님! 제 이제야 우리 자손들이 주석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주석님은 과시 우리 민족의 대성인이십니다! 온 민족이 길이 받들어모셔야 할 민족의 어버이이십니다! 7천만겨레의 진정을 다 담아 감사의 큰절을 드리렵니다!》
《아, 원. 이러지 마시오. 어서 일어나오.》
수령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여 최금호의 어깨를 잡으시였으나 최금호는 그냥 수령님발치에 무릎을 꿇고 목갈린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수령님, 제가 여기로 올 때 남조선에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친서>라는걸 보내왔습니다.
고향에 인사하러 간다니 굳이 막지는 않겠지만 일거수일투족 근신하는게 좋을거라구, 특히 투자문제는 국제적인 제재라는 문제가 있으니 심사숙고하는게 좋을것이다고 썼습니다. 북을 도와주는 일에 나섰다가는 무사치 않으리라는 공갈이였습니다. 그런데 주석님께서는…》
《허허, 그쪽의 위정자들이 그런다고 우리까지 그래서야 되겠소. 난 남쪽인민들의 살림살이가 두루 펴난다는 소리가 들려왔으면 좋겠소. 쪽박차고 동냥다닌다는 소리보다 얼마나 듣기가 좋겠소. 여하튼 우리는 혈육지정을 가진 한조상의 자손들이 아닌가.》
《주석님!》
최금호는 그만에야 수령님의 부축임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의 넓은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실팍한 어깨가 수령님의 품에서 세차게 오르내리였다.
《됐소, 됐소, 동갑이가 이제야 내 마음을 받아주는구만.》
《주석님, 저를 그렇게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이제야 주석님품에 안긴 겨우 한살잡이올시다. 저는 이제야 제 나라, 제 민족의 참의미를 깨달은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나직이 속삭이며 수령님의 품에 맑고 더운 눈물을 좔좔 쏟았다.
수령님의 사랑으로 깨끗이 정화되고 따스해진 심장이 뿜어올린 맑은 구슬이였다.
80평생을 속박하며 그리도 두텁게 깔려있던 오욕의 구질구질한 버캐를 말끔히 씻어버린 새벽이슬이였다.
《허, 이러지 마시오. 우리 룡이가 로할아버지가 눈물흘리는것을 보면 나더러 약속을 어겼노라고 하겠소.》
《주석님, 이건 눈물이 아닙니다. 이건… 이건…》
최금호가 뒤말이 쉬이 생각나지 않아 떠듬거리다가 그만에야 얼굴 가득히 함뿍 미소를 머금고말았다.
《허허허-》
마침내 한점 그늘도 없이 활짝 밝아진 최금호의 모습을 보신 수령님께서는 그의 실팍한 허리를 안으신 팔에 지그시 힘을 주시며 높게 들린 푸른 하늘을 향해 만시름을 가신듯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유정한 그 울림이 꽃보라처럼 날려 수림속 저 멀리로 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