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편 소 설
크나큰 재보
류 원 규
1
집무실안은 고요하였다.
이따금 종이장넘기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려올뿐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탁우에 놓인 탁상시계의 바늘이 새벽 2시를 향해 부지런히 뜀박질하는것도 잊으신채 마지막문건을 보고계시였다.
청춘거리의 어느 한 부지에 제8차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한 현대적인 종합봉사망을 건설하려고 한다는 문건이였다. 그에 의하면 수백명의 외국선수들이 리용하게 될 그 종합봉사망은 나라에 적지 않은 리익을 줄수 있다고 한다.
문건을 올린 단위는 체육부문을 담당한 정무원(당시)의 한 부서였다.
리익을 준다. … 그 리익이란 곧 국가의 경제관리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의미한다. 그러지 않아도 현재 진행하고있는 제3차 7개년인민경제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자면 상당한 자금이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윽고 표지 웃쪽에 《부결》이라고 쓰신 수령님께서는 오후내껏 끼고있던 돋보기를 벗어 집무탁우에 내려놓으시였다.
몸을 뒤로 젖히자 기다리고있은듯 푹신한 걸상등받이가 부드럽게 와닿는다. 그 감촉은 감감 잊고계셨던 휴식에 대한 강렬한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눈을 좀 붙여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나신 그이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다가 무춤 멈춰서시였다. 미처 마무리 못한 일감을 남겨둔것 같은감이 드시였던것이다.
그게 뭘가? …
다음순간 마치 세발의 신호탄처럼 한사람의 이름이 망각의 수풀속에서 불쑥 솟구쳐올랐다.
최홍희!
그 이름을 곱씹으며 무심히 아래쪽에 눈길을 주시던 수령님께서는 그만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어느새 출입문손잡이를 쥐고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발견하신것이다.
이른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서해안지대농장들에 대한 현지지도와 그후 쉬임없이 이어진 집무로 하여 과로해진 심신은 휴식을 원하고있었다. 정말 이 시각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푹 쉬고싶으시였다. 누가 말했던가. 잠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정다운 간호원이라고.
수령님께서는 지꿎게 몰려드는 피곤을 털어버리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돌아서시였다.
집무탁으로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생각에 잠기시였다.
최홍희가 조국에 온것은 열흘전이였다. 그사이 그는 해당 일군의 안내를 받으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준비로 들끓는 평양시를 돌아보았다.
그 대상들가운데는 5월1일경기장도 들어있었다. 그때 그곳에서는 평양시 5만여명의 청소년학생들이 출연하는 집단체조 《오늘의 조선》관통훈련이 한창이였다.
최홍희를 반갑게 맞아준 사람은 그가 조국에 올적마다 회포를 나누군 하는 정무원일군인 장성국이였다.
성국은 그의 소꿉시절친구이기도 하였다.
최홍희는 옛친구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집단체조를 관람하였다.
감정표현에 린색한 최홍희였지만 그때만은 국제태권도련맹 총재의 위엄도 잊고 감탄을 터치기도 하고 때로는 소학생처럼 호기심에 넘쳐 열심히 캐묻기도 하였다.
마침내 관람이 끝나자 최홍희는 몹시 흥분했다.
《이건 세계 어디에도 없는 대걸작이네. 우리 단군민족의 재보란 말일세!》
그러다가 문득 정색한 어조로 《여보게, 집단체조에 태권도를 넣어줄수 없겠나?》 하고 간청했다.
장성국은 예견치 못했던 부탁에 저으기 놀랐으나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어려울것 같네.》
수령님께서 그 사실을 아신것은 며칠후였다. 그이께서는 온종일 그 일이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으시였다. 그래서 그날저녁 성국을 불러 우리가 좀 힘들더라도 최홍희의 부탁을 들어주자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이렇게 되여 총시연회를 마치고 대기중에 있던 집단체조에 태권도종목이 새롭게 보충되였다.
후날 5월1일경기장에 찾아온 최홍희는 땀을 철철 흘리며 훈련하는 태권도선수들을 보자 감격하여 수령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몇번이나 당부했었다. 그랬었는데 어제 아침 성국을 찾아온 그가 갑자기 태권도종목을 뽑아달라고 제기한것이다.
성국이가 그 리유를 묻자 최홍희는 함구무언했다고 한다.
(그가 어째서 그런 제기를 했을가?)
장성국의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최홍희특유의 변덕이라는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도리머리를 저으시였다. 변덕이란 신념이 없는 인간들의 생존방식이다. 자신께서 알고계시는 최홍희는 신념이 강하고 의리가 깊으며 조국의 은혜를 한시도 잊지 않고있는 량심적인 해외동포이다. 그런 사람이 변덕을 부릴수는 없는것이다.
불현듯 10년전 5월의 아침이 어제일처럼 삼삼히 떠오르시였다.
부지런한 꿀벌들이 연분홍살구꽃사이를 기운차게 날아예던 그날 수령님께서는 집무실 현관에 서계시였다.
잠시후 미끄러지듯 다가온 승용차에서 곤색양복차림을 한 사나이가 내렸다. 키가 작고 몸집이 체소해서 얼핏 보면 국제태권도련맹 총재가 옳긴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갱핏한 얼굴에는 태권도거장의 위엄이 당당히 어려있고 몸가짐에서도 록록치 않은 강기가 다분히 느껴졌다.
그렇지만 뒤짐을 지고 거연히 서계시는 수령님을 뵈옵자 그의 몸에서 내뻗치던 위엄과 강기는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주석님!》
황황히 달려와 인사를 올린 최홍희는 수령님과 회담탁을 사이 두고 마주앉은 후에도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괴뢰군련대장, 사단장, 군단장, 말레이시아주재 남조선대사…
자기의 과거는 아무리 너그러움을 품고 대한다고 해도 도저히 용서할수 없었다.
그를 보시는 수령님의 가슴속에 련민의 정이 그득히 차오르시였다. 예로부터 숙인 머리는 베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의 황혼기에나마 잘못을 깨닫고 찾아와 용서를 비는 사람을 놓고 새삼스럽게 과거를 따져서는 뭘 하겠는가. 아쉬운 일이다. 이 사람이 순간의 충동으로 38˚선을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을텐가.
다행스러운것은 그가 남조선당국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태권도의 기술발전과 보급을 위해 애쓰고있는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그가 여생이나마 민족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할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고싶으시였다.
《최선생, 우리 지나간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새 출발합시다.》
불미스러운 과거와 희망찬 래일을 압축한 그 말씀은 본인조차 용서를 바랄수 없었던 죄과를 력사의 이끼속에 덮어버렸고 그의 앞길에 푸른 신호등을 켜주었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무려 세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을 내시여 최홍희의 과거지사를 들어주시였으며 태권도로 민족의 존엄과 슬기를 빛내이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뿐만아니라 그가 10년동안 고심하여 집필한 《태권도백과사전》이 자금사정으로 출판되지 못한것을 아시자 전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량의 책을 우리 말과 영어, 프랑스어, 에스빠냐어 등으로 출판하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인쇄잉크냄새가 물씬 풍기는 《태권도백과사전》을 받아안던 날 최홍희는 수령님께 정중히 말씀올렸다.
《주석님, <태권도백과사전>을 출판하는것은 저의 평생소원이였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소원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바로 김일성주석님께서 하느님도 풀어주지 못한 저의 평생소원을 풀어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주석님을 친어버이로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랬던 최홍희가 자신에게 한마디 선통도 없이 태권도종목을 취소했을뿐아니라 그 리유마저 터놓지 않고있는것이다.
한 인간이 마음의 창문을 열지 않을 경우를 이것저것 가늠해보았지만 종시 짚이는것이 없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한숨을 내그으시였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께서 무소불능한 존재처럼 어떤 어려운 문제도 척척 풀어나간다고 보지만 그것은 잘 모르는 생각이다. 자신께서도 만경대의 추녀낮은 초가집에서 태여나실 때부터 당총비서로, 국가주석으로 타고나신것은 아니였다. 두어깨우에 걸머진 조국과 민족, 인민의 운명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하여 애쓰시였을따름이다. 바로 그것이 파란만장의 시련과 고난을 헤치며 조선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비결이면 비결이라고 할수 있었다.
최홍희문제도 그렇다. 그는 원체 자존심이 강하고 하늘소 뒤발통처럼 고집이 세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지 않는가. 우리가 진정을 기울이면 그는 반드시 속을 터놓을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쳐드시였다.
어느덧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고있었다.
새날이 시작된것이다.
2
대동강유보도 화강석의자에 두사람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둥그런 얼굴에 몸이 부한 사람은 장성국이고 흰샤쯔에 자주빛넥타이를 산뜻하게 받쳐맨 갱핏한 사나이는 최홍희였다.
그들은 태권도문제를 놓고 심중한 이야기를 나누는 참이였다.
《자네가 처음 태권도를 넣어달라고 했을 때 내가 왜 들어주지 못했는지 알고있나? … 평양축전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세계적인 축전이네. 공화국이 창건된이래 이번처럼 큰 축전은 없었지. 우린 그동안 많은 품을 들여서 축전의 얼굴이라고 할수 있는 집단체조를 완성했고 엊그제는 총시연회까지 마쳤네. 그런데 자네의 부탁대로 태권도종목을 넣었다가 당일날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나?》
최홍희는 친구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있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힘들더라도 그 제기를 들어주자고 하시면서 태권도종목을 넣어주셨지. 그때 자넨 얼마나 고마워했나. 그런데 이제 와서 태권도종목을 뽑아달라고 하니 대체 어쩌자는건가?》
《…》
상대가 명성높은 군사가이든 일국의 대통령이든 언제 한번 허리굽힌적 없다는 최홍희였지만 오늘은 웬 일인지 뻐꾹소리 한마디 없었다. 다만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질뿐이다.
문득 최홍희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강물우에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거울처럼 미끈한 수면우에 금발머리의 모습이 방불히 그려졌다.
…
《총재님, 태권도가 코레아의 정통무도라는것이 옳습니까?》
《그럼 당신은 태권도가 어느 민족의 정통무도라는거요?》
《제 생각엔 일본이…》
금발머리는 말꼬리를 꿀떡 삼켜버렸다.
총재의 작은 눈에서 섬광이 번쩍거렸던것이다.
《당신은 잘못 알고있소. 태권도는 명실공히 조선민족의 정통무도요.》
금발머리는 숙어들지 않았다.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최홍희는 굳어졌던 얼굴을 풀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조선에서는 예로부터 수박이라는 무술이 출현하였는데 그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시기에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소.》
그는 어느덧 열정적인 웅변가로 되여버렸다.
상무기풍이 가장 강했던 고구려사람들은 씨름, 수박과 같은 경기를 많이 하였다. 수박은 고려시기에도 성행하여 무술훈련의 중요한 종목으로 되였으며 무사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까지 되였다. 조선의 옛 문헌들에는 수박에 대하여 전하면서 한번 주먹을 휘둘러 기둥을 쳤더니 서까래가 움직이고 벽을 치니 구멍이 뚫렸다, 사나운 범도 맨주먹으로 때려잡고 황소의 등을 힘껏 쳤더니 등뼈가 바스러졌다고 기록되여있다.
수박은 리조시기에 이르러 리론적으로 더욱 전개되고 방법이 보다 체계화되였으며 그후 택견, 날파람으로 발전하여왔다.
최홍희는 문득 유럽에서 자란 이 금발머리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단군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과연 리해할수 있을가 하는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할수 없다. 어쨌든 그의 잘못된 인식만은 바로잡아주고싶었다.
《난 이러한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민족무도를 만들고 그 이름을 태권도라고 달았던거요.》
《태권도… 코레아…》 하고 곱씹던 금발머리는 싱긋 웃으며 물러갔다.
최홍희는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혹 다른 사람들도 태권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있지 않을가.
아닌게아니라 금발머리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명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때부터 최홍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조선의 정통무도에 대한 옳은 인식을 심어줄것인가 하고 고심했다.
그러던중 때마침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출연할 집단체조 《오늘의 조선》을 관람하게 되였다.
최홍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젠 됐다. 집단체조에 태권도종목을 넣으면 축전에 참가하는 외국사람들이 태권도가 조선민족의 정통무도라는것을 알게 될것이 아닌가.)
…
《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였는가?》
얼핏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성국은 부드럽게 재촉했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 갚는다는데 이젠 좀 말해보게. 어째서 태권도를 뽑아달라고 했는지.》
돌부처처럼 굳어져있던 최홍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행여나 해서 그를 건너다보던 성국은 저으기 놀랐다.
최홍희가 넥타이매듭을 꼭 조여맸던것이다.
《?!》
성국의 뇌리에 피뜩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몇해전 최홍희가 유럽의 어느 한 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 나라에서는 자국의 태권도수준을 높이기 위해 국제태권도련맹 총재와의 회담을 예견하고있었다.
그런데 회담을 하루 앞두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회담당사자가 온다간다 소리없이 사라진것이다.
사달은 그날 아침 최홍희가 참관했던 어느 한 태권도훈련장에서 일어났었다.
그때 그곳 훈련생중 서너명은 《경례》, 《시작》 등의 태권도단어들을 규정대로 하지 않고 저희네 모국어로 발음하고있었다.
총재는 눈살을 쪼프린채 조선말로 할것을 요구했다.
《조선말이 익지 않아 그럽니다.》
훈련생들의 느려빠진 대답이였다.
《이제부터 익히면 되지 않는가?》
훈련생들은 히죽히죽 웃었다.
《총재님, 그건 후에…》
《뭣이?》
총재의 눈에서 시퍼런 불찌가 튀여나왔다.
너덜거리던 훈련생들은 전기에 감전된것처럼 꼿꼿해졌다.
그들은 숨을 죽였다. 방종한 성미때문에 존엄높은 총재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 훈련생들은 사나운 표범의 발톱밑에 놓인 가련한 토끼신세였던것이다.
잠시후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총재가 묵묵히 넥타이매듭만을 조여맨것이다.
승용차에 오르는 총재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가 화려한 고급호텔에 돌아가 좀전에 잡쳤던 기분을 말끔히 털어버리고 회담에 참가할것이라고 짐작했다.
미구에 그 예측이 대단한 착오였다는것이 밝혀졌다.
《가자!》
태권도훈련장을 떠난 총재의 차는 곧추 비행장으로 나갔던것이다.
세계가 죽가마끓듯 했다. 변덕쟁이! 고집불통! …
그러거나말거나 최홍희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자기를 에워싼 사진기와 음성마이크, 록화촬영기앞에서 짤막하게 언명했다.
《태권도는 나, 나는 곧 태권도요.》
이를테면 태권도를 모욕한것은 곧 자기자신을 모욕한것이라는 뜻이다.
그후 그 나라에서 체육상과 외무상이 줄줄이 나서고 나중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회담재개를 요구했지만 최홍희는 끝내 조여맨 넥타이매듭을 늦추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넥타이매듭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무훈담처럼 파다하게 퍼졌다. …
성국은 쓴입을 다셨다. 최홍희가 일단 넥타이를 조여맸으니 설사 지구가 깨여진다고 해도 요지부동일것이다.
별안간 첨벙- 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성국은 수면쪽에 시선을 던졌다. 행운의 기회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는 낚시군들을 비웃듯 기세좋게 솟구쳐올랐던 잉어가 불그레한 배때기를 번뜩이며 물속으로 사라지고있었다.
잠잠하던 수면이 부서지면서 무수한 파문이 일어났다.
그것을 바라보는 성국의 가슴속에서도 또 하나의 파문이 일고있었다.
최홍희를 만나기 한시간전에 그는 자기가 주관하여 수령님께 올렸던 문건이 부결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딴에는 나라에 리익을 주려고 한 일이지만 결국은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린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했는가?
두개의 파문은 그의 뇌리속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점차 합쳐지더니 커다란 파문으로 변했다.
성국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내쉬였다.
3
평양시주변농장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활기에 넘친 걸음으로 집무실에 들어서시였다.
수령님의 존안에는 만족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오전에 돌아본 농장들의 농사작황도 어제 가셨던 서해안지대 농장들처럼 퍼그나 좋았던것이다.
우쭐우쭐 자라는 푸른 벼모들, 실한 강냉이포기들, 호미로 슬쩍 뒤지기만 해도 데굴데굴 굴러나오는 주먹만 한 감자들…
쌓였던 피로가 금시 사라지는것 같으시였다.
(올해에도 장훈을 불러야지. 아무렴.) 하고 기분좋게 뇌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안색을 흐리시였다. 수심에 잠긴 최홍희의 얼굴이 떠오른것이다.
이즈음 그이의 가슴 한구석에서는 늘 최홍희가 자리잡고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에게 전화를 걸고싶으시였다.
《최선생, 우리사이에 털어놓지 못할 일이 뭐가 있소?》
자신께서 따져물으면 최홍희는 태권도 취소리유를 터놓을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도이든지 그 요구는 존엄을 생명처럼 여기는 최홍희에게 있어서 일종의 강요로 될것이다.
(그래, 억지로 딴 감은 떫은 법이지.)
수령님께서는 전화로 최홍희의 안내를 담당한 일군을 찾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요즘 최홍희가 어떻게 지내는가고 물으시였다.
《주체사상탑과 인민대학습당, 평양산원을 비롯해서 평양시대상들을 참관하고 어제는 묘향산에도 갔댔습니다. 그런데…》
《어서 말하오.》
《왜 그런지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처음 조국에 왔을 때에는 기분이 좋았더랬는데 며칠전부터는 저기압입니다. 그래 제가 왜 그러는가고 물으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만 어쩐지…
참, 오늘 오전에 최선생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최덕신선생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때 선생은 자긴 말로만 결초보은을 떠들었지 보태준것이 없다면서 오히려 조국에 부담을 줄번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나직이 외우시였다.
《조국에 부담을 줄번 했다? …》
한가지 생각이 그이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수령님께서는 전화기번호를 꾹꾹 누르시였다.
《성국동무요? 태권도훈련은 어떻게 하고있소?》
《현재는 중지하고 지시를 기다리고있습니다.》
《훈련을 중지했단 말이지. 동무 생각엔 어쨌으면 좋겠소?》
성국은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듯 주저없이 대답올렸다.
《제 생각에는 본인의 요구대로 해주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은근히 놀라시였다.
《그건 어째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남은 며칠동안에 태권도종목을 완성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태권도종목을 뽑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
그런즉 성국은 이 기회에 억지로 삼키던 떡을 뱉아버리자는것이 아닌가.
수령님께서는 진중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동문 그가 왜 태권도종목을 뽑아달라고 한것 같소?》
《그건 아직… 그렇지만 그는 본시 독한 사람입니다. 나무사건만 봐도…》
수령님께서도 그 나무사건을 알고계시였다.
최홍희가 열살 나던 해였는데 그때 그는 어머니 몰래 나무를 팔아 살금살금 돈을 모으고있었다.
어느날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성이 독같이 나서 밤새 회초리로 종아리를 쳤지만 어린 최홍희는 종시 토설하지 않았다.
그후 며칠이 지나 최홍희는 불쑥 당목 한감을 꺼내놓았다. 알고보니 변변한 치마 한벌 없는 어머니를 위해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마련한것이였다.
기가 막힌 어머니는 아들을 와락 그러안고 그렇게 억울한 매를 맞으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은 독한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좀전에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짐작이 비로소 확연해진것이다.
그이께서는 한결 거뿐한 마음으로 화제를 바꾸시였다.
《참, 최선생과 옥류관에랑 가보았소?》
《저, 바빠서…》
수령님의 안광에 서운한 빛이 어렸다.
《음, 그래도 해외에서 찾아온 친구한테 그가 좋아한다는 국수 한끼 대접하지 않았다니 잘된것 같지 않구만.》
《수령님, 제가 그만…》
《내 동무에게 과업을 주겠소. 뭔고 하니 오늘 점심에 최선생이랑 옥류관에서 식사를 하는거요. 옛친구를 푸대접했으면 그쯤한 보상이야 해야지.》
《수령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태권도훈련은…》
《난 태권도훈련을 중지하라고 한적이 없소. 출연자들에게 알려주오. 반드시 태권도종목을 완성해야 한다고, 내가 부탁한다고 말이요.》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였던 수령님께서는 전화로 경애하는 장군님을 찾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장군님께 최홍희가 집단체조에서 태권도종목을 뽑아달라고 한 리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수화기에 귀를 기울이던 그이의 안색은 환히 밝아지시였다.
《내 생각과 신통히 꼭같구만. 그래서 성국동무한테 태권도훈련을 계속하라고 했소.》
그 다음 두분께서는 청춘거리에 있는 어떤 건설부지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시였다.
《그럼 당에 보고한셈 치고 청춘거리에 나가겠소.》
통화를 끝내신 수령님께서는 책임서기를 돌아보시였다.
《오후일정은 어떻게 됐소?》
책임서기의 말을 듣고나신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시였다.
《일정을 좀 바꾸기요. 먼저 청춘거리에 나가겠소. 나머지는 원래대로 하오. 가만, 성국동무네가 식사를 끝냈으면 청춘거리로 데려오시오.》
4
옥류관 식탁을 마주하고 앉은 최홍희는 먹음직스러운 쟁반국수를 보자 감개무량해하였다.
《자넨 내가 메밀국수를 좋아한다는걸 여태 잊지 않았구만.》
장성국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수밖에 없었다.
최홍희가 은근하게 물었다.
《생각나나? 어릴 때 우리 어머니가 말아주는 메밀국수를 둘이서 먹군 하던 일 말일세.》
《생각나구말구. 난 한그릇이면 그만이지만 자넨 늘 곱배기를 했었지.》
최홍희는 성국의 손목을 다정히 잡았다.
《고맙네. 역시 자넨 내 친구라니까.》
얼굴이 뜨거워난 성국은 서둘러 최홍희에게 권했다.
《자, 국수발이 풀어지기 전에 어서 들게.》
최홍희는 군침이 도는지 입을 다시며 버섯과 꿩고기, 과일쪽 등을 솜씨있게 헤집어 골고루 섞었다. 그리고는 보는 사람이 흐뭇할 정도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눈깜빡할 사이에 한그릇을 비운 그는 욕심사납게 두번째 쟁반을 끌어당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성국은 우습기는 고사하고 죄스러웠다.
이런 일은 응당 이미전에 자기가 했어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집단체조가 바쁘다면서 관심을 돌리지 않다보니 나중에는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린것이다. 만약 최홍희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두번째 그릇까지 말끔히 비운 최홍희는 국수를 먹는둥마는둥 하는 장성국을 보자 피식 웃었다.
《자넨 여전하구만.》
옥류관을 나선 두사람은 시원한 그늘이 드리운 청년공원으로 들어섰다.
공원에서는 유희기구를 타려고 온 사람들로 붐비고있었다.
《여보게, 우리도 한번 타보지 않겠나?》 하고 최홍희가 회전비행기를 가리켰다.
장성국은 속으로 놀랐다. 몇시간안팎에 다른 사람처럼 변한 친구였다.
그 변화를 가져온것이 두그릇의 메밀국수에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었다. 국제태권도련맹 총재의 직분을 가진 최홍희로서는 동서방의 이름난 고급료리들을 적지 않게 맛보았을것이다. 하다면…
성국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 심장에서 심장에로 통하는 길은 진실밖에 없는것이다.
그럴수록 최홍희와 함께 옥류관에 가도록 해주신 수령님의 깊은 뜻이 헤아려져 가슴이 뜨거워올랐다.
성국은 금방 착륙하여 손님들을 내려놓고있는 회전비행기에 눈길을 던지며 물었다.
《여보게, 한가지 물어봐도 일없겠나?》
《얼마든지.》
마치 노래를 부르듯 유쾌하게 응대하는 최홍희였다.
《아직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나? … 태권도문제 말일세.》
최홍희의 얼굴에서 맴돌던 웃음발이 손수건으로 훔친것처럼 사라졌다.
《허 참,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솟았다 했지.》
성국은 속이 답답했다. 사람이 어쩌면 제 생각만 한단 말인가.
부득불 자기가 베푼 급작스러운 성의가 다름아닌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라는것을 알려줄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최홍희는 불에 덴것처럼 펄쩍 놀랐다.
《그 말을 왜 인제야 하나?》
《자네가 태권도종목을 뽑아달라고 한것때문에 수령님께서 얼마나 마음쓰시는지 알기나 하나? 털어놓고 말해서 수령님이 아니면 오늘의 자네가 있을상싶은가 말일세. 사람이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조국의 은혜야 잊지 말아야지.》
최홍희의 뻣뻣하던 고개가 손칼접히듯 아래로 숙어졌다.
《주석님께서 그때문에 심려하실줄은 몰랐네. …》
그는 자기가 어째서 태권도를 뽑아달라고 했는지 토설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밤, 숙소로 돌아가던 최홍희는 불빛이 환한 5월1일경기장을 띠여보고 그곳으로 차를 돌리게 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던 그는 저으기 놀랐다. 저녁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출연자들이 땀을 비오듯 쏟으며 태권도동작을 완성하느라 여념이 없었던것이다.
불쑥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즉흥적인 제기때문에 조국은 너무도 많은 품을 들이고있었던것이다.
망연히 서있는데 앞으로 담가를 든 의사들이 지나갔다.
최홍희는 웬 일인가 해서 담가에 시선을 박았다.
땀에 푹 젖은 태권도복을 입은채로 담가에 누운 청년이 절절히 애원하고있었다.
《절 좀 내려놔주십시오. 예?》
《동문 안정해야 해. 며칠동안 꼬박 새우며 훈련을 했다니 무쇠인들 견디겠소.》
태권도선수는 두손을 허우적거리다가 담가에서 굴러떨어졌다.
《제발 부탁입니다. 제가 훈련을 마저 할수 있게 해주십시오.》
최홍희는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아, 저 청년은 조국을 위해 자신을 깡그리 바치고있는데… 난 불효자식이구나!)
온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최홍희는 다음날 아침 장성국을 찾아가 태권도종목을 뽑아달라고 했던것이다.
성국은 후회했다. 그런줄도 모르고 난…
《정말 태권도를 뽑아도 일없겠나?》
《태권도이자 곧 나일세. 아무렴 이 최홍희가 조국에 부담을 주겠나.》 하고 말한 최홍희는 국수를 먹느라고 조금 풀어놓았던 넥타이매듭을 조여맸다.
《!》
성국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며 알릴듯말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청년공원입구에 승용차 한대가 도착한것은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5
덩지큰 고층살림집들과 멋쟁이봉사망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광복거리를 따라 살같이 달리는 차안에는 두사람이 타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의 부르심을 받은 최홍희와 장성국이였다.
영광의 시각을 눈앞에 둔 그들의 얼굴표정은 놀랄만치 판이했다. 최홍희는 마치 수십년만에 부모를 뵈우러 가는 철부지자식처럼 기뻐했지만 성국의 기색은 밝지 못했다. 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부결맞은 제의서가 고드름처럼 매달려있는것이다. 게다가 수령님앞에 나선다고 하니 그 죄의식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안타까운것은 아직까지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린 리유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칠골립체다리를 지나 청춘거리에 들어선 승용차는 오른쪽에 펼쳐진 넓은 공지에 스르르 멎었다.
차가 멎기 바쁘게 최홍희가 뛰여내렸다.
성국은 영문을 알수 없었다.
최홍희의 뒤를 쫓던 그는 그제야 공지 한가운데 뒤짐을 지고 서계시는 수령님을 알아보았다.
불시에 얼굴빛이 밝아진 성국은 급히 최홍희를 따랐다.
그들은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수령님앞으로 달려갔다.
하여 그들이 후날 두고두고 추억할 행복한 경주가 시작되였다.
《최선생, 천천히 오시오. 성국동무도… 그러다 넘어지겠소.》
수령님께서 걱정스러우신듯 손짓하신다.
끝내 성국은 최홍희에게 선코를 떼우고말았다. 왕년의 기력을 적지 않게 보유하고있는 태권도 9단소유자가 소꿉시절친구를 아득히 떨구고 수령님께 먼저 인사를 올린것이다.
뒤미처 당도한 성국은 최홍희쪽에 대고 눈을 흘겼다.
《허허, … 손자들이 보면 웃겠습니다.》
그들이 한숨 돌리도록 동안을 두신 수령님께서는 최홍희에게 시원히 트인 공지를 가리키시였다.
《어떻습니까?》
《앞이 확 트이고 풍치도 수려한게 백만장자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명당자리입니다.》
《욕심이 없습니까?》
최홍희는 황송한 자세로 두손을 앞에 모아쥐였다.
《제가 어떻게 감히…》
수령님께서는 짐짓 놀라신 기색을 지으시였다.
《난 태권도대장이 통이 크고 욕심도 이만저만 아닌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졸장부로구만.》
《예?》
최홍희는 교원의 훈시를 리해 못한 소학생처럼 어리벙벙했다.
《우린 이곳에 태권도전당을 세우자고 합니다.》
《태권도전당말입니까?》
최홍희의 두눈이 커졌다.
그의 곁에 서있던 성국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여기에 종합봉사기지를 세웠으면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국가가 많은 리익을 볼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린 이 부지에 태권도전당을 건설하자고 합니다. 아무리 억만금이 귀중하다고 해도 민족의 재보인 태권도와 바꿀수는 없습니다.》
순간 성국은 가슴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울리는것을 느꼈다.
《!》
그때에야 성국은 수령님께서 무엇때문에 자기들이 올린 제의서를 부결하셨는지 깨달았다.
(억만금과 민족의 재보…) 하고 몇번이고 곱씹는 그의 얼굴은 금방 구어낸 벽돌처럼 붉어졌다.
성국의 머리우에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들려왔다.
《최선생, 내 그동안 생각해본것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두손으로 허공에 건물을 그려보이시였다.
《앞으로 일떠설 태권도전당말입니다. 이렇게 건물정면에는 지구우에 억센 주먹을 내민 부각장식을 해주고 웃부분은 곡선과 곡면, 직선을 재치있게 결합해서 경쾌하고 우아한 조선식지붕으로 처리한단 말입니다. 그리고 기본건물에는 경기홀이랑 관람석이랑 만들어주고… 어떻습니까? 기본이야 집주인이 마음에 들어야지요.》
최홍희는 꿈을 꾸는듯 한 표정이였다.
《주석님, 그게 정말입니까?》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럼 최선생 말고 누가 주인이겠습니까?》
최홍희는 믿어지지 않는듯 눈을 끔뻑거리다가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주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몇해전 선생이 조국에 왔을 때 태권도선수권대회를 열 장소가 없어 속상할 때가 많다고 했지요? 그게 늘 가슴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더란 말입니다.》
최홍희는 열적게 웃었다.
《그게 언제적 일이라구…》
《이제 평양축전이 끝난 다음 와닥닥 달라붙어 이삼년안에 건설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선생의 또 한가지 소원이 풀릴것입니다.》
최홍희는 딱한 기색을 지었다.
《주석님, 태권도전당이 일떠서면 전 조국에 또 큰 빚을 지게 됩니다.》
수령님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하하, … 아닙니다. 선생은 이미 그 빚을 물고있습니다.》
최홍희는 어리둥절했다.
《선생이 이렇게 민족의 정통무도인 태권도를 빛내이는것이 바로 빚을 무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색한 웃음을 짓던 최홍희는 갑자기 피고석에 선 죄인처럼 고개를 푹 떨구었다.
《주석님, 사실 전 주석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의아해하시였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최홍희는 주밋거리다가 고백했다.
《전 어머니가 힘들어하는줄도 모르고 무작정 잔등에 업히려던 불효자식입니다.》
《말뜻을 알만 합니다. 집단체조에 태권도를 넣은 문제때문에 그러겠지요?!》
최홍희는 꿈틀 놀랐다.
《주석님께서 그걸 어떻게…》
《벗과 노래는 오랜것일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가 안지도 10년세월이 지났는데 최선생에 대해 어찌 무관심할수가 있습니까. 비록 선생이 털어놓지 않았지만 난 조국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태권도종목을 뽑아달라고 한 그 마음을 다 압니다.》
최홍희는 송구스러운듯 두손을 마주 비볐다.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잠시 량해를 구하신 후 성국을 돌아보시였다.
《참, 태권도종목은 어떻게 됐소?》
성국은 정중히 대답올렸다.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받은 태권도선수들이 래일까지 무조건 완성하겠다고 결의했습니다.》
최홍희는 펄쩍 뛰였다.
《주석님,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수령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였다.
《왜 안된다는겁니까? 태권도를 세계에 떨치려는것은 최선생의 큰 소원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태권도전당까지 지어주시는데… 정말 안됩니다.》
최홍희는 자기가 왜 태권도종목을 뽑자고 했는지 자초지종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손수건을 꺼내 땀이 질벅한 얼굴을 이리저리 훔쳤다.
수령님께서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게 최선생의 진심이겠습니다?》
최홍희는 절절히 말씀올렸다.
《제발 제 청을 들어주십시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최홍희는 가슴이 조여들었다. 내가 주석님께 무슨 노여움을 끼쳐드렸는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거리다가 구원을 청하듯 성국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도 조각처럼 굳어져있었다.
주위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깃들었다.
발자국소리가 멎었다.
《그럼 나도 좀 말합시다.》 하고 수령님께서는 활달한 어조로 말머리를 성큼 떼시였다.
《사실 선생의 제기를 들어주는건 간단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린 종전의 계획대로 축전행사를 무난히 치를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태권도종목을 뽑지 않았을뿐더러 더 완성하도록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
언제인가 난 최선생의 아들이 태권도를 상업화하자고 아버지를 찾아갔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일 그 권고대로 했다면 지금쯤 선생은 세계적인 거부가 되였을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고민끝에 자식과 의절했습니다.
어디 물어봅시다. 그래, 선생이 아들과 의절하면서까지 태권도를 버리지 않은것은 일개인의 체면때문이였습니까? <태권도백과사전>을 출판하기 위해 십년나마 고심참담한것이 자신만을 위해서였는가 말입니다.》
최홍희의 어깨가 가볍게 물결쳤다.
《주석님, 그건… 그건 아닙니다.》
《옳습니다. 그것은 태권도를 세상에 떨치고 후손만대에 전해가려는 뜨거운 민족애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민족의 재보인 태권도를 생명처럼 여기는 선생의 그 마음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난 최선생을 태권도대장이라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태권도를 취소한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내 마음이 이처럼 아프지 않을것입니다. 어쩌면 최선생이 그럴수 있단 말입니까?》
최홍희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수령님의 어조는 차츰 부드러워졌다.
《조국을 위하는 선생의 심정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도 민족의 재보를 지키고 떨치기 위한 길에서 발휘될 때 더 빛나는것입니다.
털어놓고 말하면 우리가 돈이 많아서 이르는 곳마다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을 일떠세우고 평양축전을 준비하고있는것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령토가 크지 않고 그나마 둘로 갈라진 나라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같은 성대한 축전을 겪는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린 큰 마음을 먹고 축전준비를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다 우리 조선민족의 귀중한 재보이기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태권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태권도와 같이 선조들이 창조하고 물려준 재보를 더욱 빛내이는것은 나나 최선생을 비롯한 우리 세대의 의무입니다. 우린 평양축전이 끝나면 와닥닥 달라붙어 동명왕릉도 개건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먼 후날 후손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최홍희는 채찍에 얻어맞은것처럼 가슴을 와락 움켜쥐였다.
아, 난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주석님의 그 높은 뜻도 모르고 제딴에 조국을 위한다면서 태권도를 뽑아달라고 하다니… 불현듯 마이크와 사진기, 촬영기의 숲앞에 당당히 서있던 자신의 모습이 아프게 떠올랐다. 그때 난 뭐라고 말했던가.
《태권도는 나, 나는 곧 태권도요.》
최홍희는 웅글은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이 최홍희는 소인이였구나!
늦게나마 주석님께 용서를 받고싶었다.
《주석님, 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끈으로 목을 조인것처럼 말이 나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턱밑에 손을 가져갔다. 딴딴한 넥타이매듭이 만져졌다.
매듭을 늦추려고 애썼지만 손만 후들거릴뿐이다.
성국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보았다. 일반적으로 넥타이매듭을 조이는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된다. 그렇지만 최홍희의 경우는 다르다. 그러나 지금은…
수령님의 은정이 얼마나 고마웠으면 넥타이매듭을 늦추려고 할가.
다음순간 성국은 소꿉시절처럼 순진한 미소를 머금은 최홍희를 보았다.
《주석님!》
최홍희는 온 우주의 대기를 한꺼번에 삼키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 페부에 시원한 공기가 들어차면서 가슴속에 세찬 폭풍을 일으켰다.
최홍희는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서계시는 수령님의 존안이 망막을 가득 채웠다.
《!》
머지않아 훌륭하게 일떠설 태권도전당을 그려보시듯 해빛같은 미소를 짓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정중히 우러르는 최홍희의 두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샘솟고있었다.
(주석님, 민족의 재보는 결코 태권도가 아닙니다. 배달민족의 크나큰 재보는 민족이 창조한 모든것을 귀중히 여기고 빛내여주시는 주석님의 위대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