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편 소 설

인생의 교향곡

                                    량 흥 일

1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해살은 신록이 짙어가는 정원을 붉게 물들인다. 싱긋한 숲내가 확 풍겨든다.

《첨벙- 첨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산책하시던 걸음을 멈추시였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가?

그래, 양어못에서 울리는 소리다!

《첨벙- 첨벙-》

못가에선 잉어며 기념어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저마끔 수면우로 솟구고있다. 그것들은 두해전에 그이께서 손수 새끼고기때에 구해넣으신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저렇게 팔뚝만 하게 자라 곤충사냥에 여념이 없는것이다.

문뜩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욕심사나운 한놈이 어쩌자고 힘껏 솟구쳤는데 그만 물밖으로 떨어지고말았다. 물고기는 푸들쩍푸들쩍 요동쳤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급히 다가가 두손으로 그 물고기를 잡으시였다. 그런데 두어키로는 실히 잘될 금빛도는 잉어는 구원의 손길을 엇드레질로 대했다.

《허, 성미가 꽤 급한 놈이로군!》

그이께서는 끝내 그놈의 대가리와 꼬리를 잡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못가에 살며시 놓아주시였다. 그제야 자기의 살 곳을 되찾은 잉어는 물속으로 꼬리를 저으며 사라졌다.

활기있게 헤염치는 물고기들을 한동안 바라보시는 수령님의 안색은 금시 흐려졌다.

《윤이상! …》

눈앞에는 새벽녘까지 보신 그의 문건들과 록음을 통해 들으신 윤이상이 창작한 음악선률들이 떠오르신다. 고향을 남해기슭에 둔 윤이상, 그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안고 선률창작에 심신과 넋을 깡그리 바쳐온 예술가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도 큰 상처의 덩어리들이 웅얼져있다.

그이의 귀전으로는 그의 비탄에 젖은 절규가 가슴아프게 들려오신다.

《내 나서자라 조국이라고 부르는 저 남쪽땅엔 정든 집이 없다. 외세와 매국노만이 살판치는 인간도살장, 죽음의 감옥만이 있을뿐이다. 언제이건 꼭 돌아가고저 했던 땅, 태묻고 자란 보금자리를 이제는 나에게서 영영 앗아갔으니…

아, 나야말로 집없는 방랑아, 조국을 잃은 망명객이 아닌가! 아무리 날이 무덥고 그늘이 좋은 밤나무가 있다한들 어찌 그밑에 자릴 펼수 있으랴! …》

망명객의 설음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수령님이시다. 조국을 잃은 사람은 밥을 먹어도 목이 메고 노래를 불러도 눈물을 머금는 법이다. 제 땅에서 당하는 아픔이 살점을 에인다면 타향에서 당하는 아픔은 뼈를 깎는다. 어느 한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역땅을 헤매는자에게는 낮은 층계도 오르기가 숨이 차고 입에 넣은 빵도 쓰겁기만 하다.》고…

자신께서도 눈덮인 저 이국의 광야에서 강도 일제와 싸우면서 고향 만경대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우등불 타오르는 밀영의 그밤에 유격대원들과 함께 《사향가》를 부르며 깊은 추억속에 그리고그려온 고향집이다. 참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의 조국은 더없는 행복의 보금자리다. 생의 행복과 보람을 안겨주는 삶의 터전을 잃고 낯설은 해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저 물고기처럼 쉽게 보금자리를 잡아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록음이 짙은 정원, 한껏 우짖는 새들, 신선하게 흐르는 대기…

자연의 아낌없는 이 선사물은 언제나 마음과 기분을 맑고 상쾌하게 해주는 법이다.

한밤을 지새우고 이 정원길에 나서면 쌓인 피로가 한순간에 가셔지고 마음이 거뜬해짐을 느끼던 수령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슬맺힌 나무잎새를 살며시 만져보시며 밤새 비준하신 문건들을 되새겨보시기도 하시였다. 그럴 때면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마음껏 웃으며 뛰노는 우리 어린이들의 밝은 모습, 새형의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비롯한 농기계들을 받아안고 농악소리 높이 울리고있을 우리 농민들의 모습이 어려와 소리없는 웃음을 지어보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왜서인지 오늘만은 예전처럼 마음이 가볍지 않으시였다. 오직 윤이상에 대한 생각뿐이시였다.

아직 단 한번도 만나본적 없는 그다. 하지만 수난과 고욕의 길을 걸어온 망명객인 그의 시름겨운 모습이 어려와 도저히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없으시였다. 가슴속에 아픔만을 무둑히 안고있는 그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가. 과연 무엇으로…

조심스레 흐르는 새벽기류에 자연은 소리없는 큰숨을 내쉬고있다. 지칠줄 모르는 숨결은 새날에 대한 환희를 깊이 간직하고있다. 그속에 잠에서 깨여난 새들이 마치 겨끔내기라도 하듯 저마끔 자기의 고유한 목청을 돋구며 이 나무 저 나무의 우듬지로 날아옌다. 자연의 맥박은 그대로 하나의 교향악을 펼쳐놓는다. 지휘자가 없는 연주회요, 또 제마끔 자기의 악기를 불어대는 연주가들인지라 한선률안에서도 강박과 약박의 주기적인 변화의 흐름을 어기고있다. 하나의 화성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 엇박자를 내고있었으나 이 연주회는 자연의 풍만한 정서를 한층 더 돋구어주고있다. 자연의 이러한 선률은 고요하면서도 그 어떤 힘있는 박력을 암시하는듯싶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사색을 이어가시였다.

그러시다가 문뜩 떠오르는 생각에 잠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래, 그래! …

그이께서는 좋은 생각이 짚이신듯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런데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길가? 그렇지, 그가 아주 적임자인것 같아. 그는 윤선생과 한고향에서 태여났고 해방전 일본에 가서 그와 함께 음악학원에서 음악리론과 작곡공부도 했다고 했지. 그리고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울에서 음악활동도 같이한적이 있고… 그 동무가 가장 적합할것 같애.

집무실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다소 가벼워진 기색으로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2

잔파도는 기슭으로 밀려와 백사장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윤이상과 바다는 너무도 깊은 인연을 이어주고있다. 바다가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에게 있어서 파도소리는 고향의 정다운 울림이였으며 푸른 물결은 고향집의 따스한 아래목이였다.

하지만 그는 오늘 이 바다를 외면한채 백사장에 외롭게 앉아있다. 그의 얼굴엔 쓸쓸한 기색이 비껴있다. 서도이췰란드(당시)에서 살고있는 그가 이곳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방문차로 평양비행장에 내린것은 열흘전이였다. 그의 평양행은 하루이틀사이에 내린 결심이 아니였다. 그는 이번 길에 자기의 인생소원을 꼭 이룰 생각이였다.

과연 그 소망이 이루어지겠는지…

그는 이런 조바심을 안고 평양에로의 걸음을 떼였다. 하지만 비행장에 내려 자기를 맞이해주는 조성민을 보는 순간 다소 마음이 안정되였다.

조성민으로 말하면 그의 죽마고우였다. 그런 그가 지금 공화국북반부의 유명한 국립교향악단에서 부단장으로 있다고 하니 능히 자기의 인생소원을 풀어줄수 있을것만 같았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나갔다.

윤이상은 승용차안에서 그에게 자기의 의향을 내비쳤다.

조성민은 대답대신 흔연한 웃음만을 지어보였다.

《이 사람, 왜 말이 없나. 그래 할수 있겠지?》

그러면서 그는 조성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내려먹였다.

《난 자네가 꼭 해주리라고 믿네. 아니, 무조건 해야 해. 이건 내 인생의 최대소원이자 자네에게 하는 마지막부탁이야!》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그가 거절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위구심이 내비치였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는 이미 지난해 남조선의 어느 한 음악단의 지휘자로 있는 제자에게 자기의 의사를 표시한적이 있었다. 자기가 창작한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우리 조선사람들이 연주하게 해달라는것이였다.

제자는 스승의 심정이 리해된다고 하면서 자기가 지휘자로 있는 악단에서 그것을 연주하겠다고 총보까지 요구하였다.

윤이상은 더없는 기쁨속에 즉시 총보를 남조선으로 보냈다. 최종회답이 오기를 기다리는 기간은 그에게 있어서 불안과 기대의 엇갈림이였으며 하루가 천날맞잡이였다. 기다리고기다리던 회답이 왔다. 그러나 윤이상은 아연해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미안하지만 전 선생님의 요구를 접수할수 없습니다.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는 순전히 우리 정부를 반대하는 음악이라는것을 저는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제발 부탁인데 그 교향곡을 취소해주십시오. 무엇때문에 선생님은 우리 정부의 신경을 자극하는 음악을 작곡하시는겁니까? 저는 도무지 리해할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 땅은 선생님의 조국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제자는 더이상 윤이상이 이 교향시곡을 고집한다면 사제간의 의리를 의절할수밖에 없다고 했다.

《뭐라구?!》

윤이상은 제자의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아무리 키워주고 내세워준 제자라 할지라도 이 스승의 마음을 알아주는 놈은 하나도 없구나. 정녕 나의 꿈을 받아줄 땅이 영영 없단 말인가.

이런 통분속에 고독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이였다.

공화국북반부를 다녀온 한 해외동포가 윤이상을 찾아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윤선생, 공화국북반부를 찾아가보십시오. 그곳에 가서 제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면 그 땅이 어떤 곳인가를 알게 될겁니다. 인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자기의 소원을 마음껏 이루고있는 땅, 외세가 없고 자주적으로 부강해가는 사회라는것을 말입니다.》

그때부터 윤이상의 마음은 공화국북반부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혹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줄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생각끝에 그는 밑져야 본전이라 이번 방문을 결심하였던것이다. …

조성민은 윤이상이 내미는 총보를 받으며 허거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 자네 제 생각을 남에게 내려먹이는 버릇은 아직 여전하네그려.》

그때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그러나 조성민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혹시 이들도 나의 교향시곡을 달가와하지 않는가? 하긴 십분 그럴수 있다. 나의 교향시곡은 순전히 서유럽의 현대음악을 바탕으로 하여 창작되였다. 하지만 공화국북반부의 음악가들은 서유럽의 음악가들과 서로 다른 음악관을 가지고있지 않는가. 아마 조성민이도 나에게 그것을 말하기가 따분해서 내앞에 나타나지 못할것이다.

막연한 생각은 윤이상에게 불안과 조바심을 몰아왔다.

이때 뜻밖에 안해인 리수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눈길을 돌려보니 저쯤 나무그늘밑에 언제 왔는지 조성민이 안해와 함께 웃으며 서있었다.

아니?! … 허, 범 제 소리 하면 온다더니…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저 사람이 어떤 소식을 가지고 왔을가?

윤이상은 그가 오면 여직껏 자기가 품고있던 생각을 툭 터놓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렇다저렇다하는 말을 시원하게 들어야만 속이 후련할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조성민이 사람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의 웃음비낀 모습을 대하는 순간 윤이상은 차마 벼르던 말을 할수가 없었다. 여느때 같으면 이렇게까지 갑자르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왜서 오늘은 선뜻 말을 하지 못하고 그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걸가. 비행장에서 호텔로 오는 길에서는 자기의 의사를 내려먹이듯 했지만 이 시각엔 자기의 기대와는 상반되는 말이 그의 입에서 떨어질것만 같아 두려웠다.

윤이상의 이런 속마음을 알리 없는 조성민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히 앉아있나? 자네야 물을 보면 오금을 못 쓰질 않나?》

별수없이 윤이상은 조성민의 말에 무뚝뚝하게 응수했다.

《상대가 없어서 그러네.》

《하긴 그게 없이야 재미가 없지. 그럼 내가 그노릇을 해볼가?》

그러자 윤이상은 앙천대소하였다.

《뭐-어?! 임자가…》

《아니, 왜 그렇게 놀라나? 혹시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건 아닐테지.》 하며 조성민은 벌써 슬슬 자기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여보게, 제발 그만두게. 해보나마나 자넨 망신밖에 당할게 없어. 개헤염이나 겨우 치는 임자가 어떻게 이 물개한테 이겨보겠다고 그래.》

그러나 조성민이도 만만치 않은 태도로 나섰다.

《뭐? 개헤염! … 좋아. 그럼, 오늘 정식으로 겨루어보자구.》

《어랍쇼, 배짱은 아주 좋은데… 해보세.》

두사람은 의기가 양양하여 옷을 벗어 모래불에 던졌다.

얼마후 기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수면우에는 두개의 반점이 떠있었다. 활활 량팔을 휘저으며 파도를 헤가르는 그들을 두고 누가 예순을 넘긴 사람들이라고 하겠는가.

… 두사람은 가쁜숨을 몰아쉬며 바다기슭으로 나왔다.

《이보라구, 오늘은 어떻게 된건가? 혹시 물개가 수영경기에서 무참하게 패했다는 전설을 만들셈인가.》

조성민이 손베개를 하고 맥없이 모래불에 누운 윤이상의 옆에 앉으며 빈정거렸다.

《물개도 늙어서 기운이 빠지면 그럴 때도 있는거야. … 임자도 내 나이가 되여보라구!》

《뭐… 뭐라구?! 나보다 석달이나 늦게 세상구경을 한 주제에 이젠 형님구실을 하려든다?》

윤이상은 한숨섞인 소리로 대꾸했다.

《물론 우린 한해도 차이없이 함께 늙어왔지. 하지만 난 이젠 다된 고목이야. 육체도 정신도… 그러나 자네는 달라. 아직 청춘이 아닌가, 청춘! …》

《자넨 또 그 <상처입은 룡>타령을 할셈인가?》

《아니, 그건 나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였어! 그것을 뒤집어보자고 채찍질하며 여생을 달렸지만 세월은 이 윤이상의 진정을 받아들이질 않네그려.》

그는 모래불에 사발만 한 구멍이라도 낼듯 긴 한숨을 토해냈다.

태몽에 대한 이야기는 조성민이도 잘 알고있었다.

윤이상을 임신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룡꿈을 꾸었다고 한다. 룡이 마을의 정면에 높이 솟아있는 지리산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꿈틀거리는것을 보고 어머니는 신비감을 금할수 없었다. 그런데 웬 일인지 룡은 창공높이 날지 못하고 안타까운 비명소리를 지르며 모지름을 쓰는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소스라쳐 놀라며 깨여났다. 미구에 태여날 아기의 운명을 암시하는 꿈이라 가슴은 활랑거렸고 온몸은 땀으로 화락하니 젖어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잉태한 녀성이 룡꿈을 꾸면 출생하는 아이는 특별한 운명을 가지고 나온다고 믿고있었다. 그런데 그 룡이 하늘로 날아올랐으면 좋으련만 몸에 난 상처로 나래를 펼치지 못하니 이것은 참으로 불길한 징조가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윤이상은 이 이야기를 자주 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한숨짓군 했다. 그런데 황혼기에 이른 오늘날에 와서도 그것이 자기의 어길수 없는 운명의 계시였다고 인식하고있는것이 아닌가. 하긴 윤이상이 당한 일들은 하늘높이 나래치려는 그의 날개에 굵직굵직하고 묵직한 사슬만을 얹혀주었을뿐이다. 아무리 벗어던지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항력적인듯 벗어날수 없었다. 오죽하면 서도이췰란드(당시)의 녀류작가 루이저 린저조차도 윤이상과의 대화를 《<상처입은 룡>과의 대화》라고 하였겠는가. …

윤이상은 조성민의 무릎을 손으로 툭 치며 탄식조로 말했다.

《이 사람, 태여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제 운명앞에 순종할수밖에 없는것이 바로 숙명일세.》

《…》

윤이상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젠 그런 말은 그만하구 우리 다시 겨루어보는게 어떤가. 수영에선 내가 패했으니 이번엔 낚시경기를 하자구. 아무렴, 내가 이번까지 자네한테 떨어질가!》

《아니, 난 그만두겠네. 또 패해서 자리에서 아예 일어서지 못하는 그 꼴은 보고싶지 않네.》

《정말인가?》

《그렇네!》

조성민은 어쩌나 볼 심산으로 아예 등을 돌려대고말았다.

고집스러운 그 모습에 윤이상은 제 성격을 드러냈다.

《싫든좋든 무조건 해야 하네.》 하며 그는 조성민의 팔을 잡고 막무가내로 끌어당겼다.

《허, 이건 아예 강짜로군.》

그들은 울적한 기분을 털어버리고 낚시대를 잡았다. 벼랑앞에 뿌리박은 자그마한 바위우에 서로 등을 돌려대고 걸터앉아 낚시질에 여념없어보이는 두사람.

하지만 음악계에 이름있는 이들은 서로가 엇갈린 생각에 잠겨있었다.

조성민은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조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자기 생각에 잠겨있었다.

윤이상은 나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친근한 벗이다. 함께 음악세계를 탐구하던 나날엔 서로 생활에서나 악보에서나 언제나 하나의 선률만을 울려왔다. 허나 오늘날엔 그의 음악과 나의 음악은 넘을수 없는 큰 계선을 가지고있다. 그의 음악은 동방음악과 서방음악을 배합한 음악이다.

하지만 조성민자신은 공화국의 품에 안긴 그때로부터 우리 인민의 미감과 감정에 맞는 우리 식의 민족음악을 창작하여왔다. 윤이상은 조국에서가 아니라 서유럽의 음악세계에서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고있다면 조성민은 자기 조국, 자기의 민족에 든든히 발을 붙이고 우리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작곡가, 지휘자로 되였다.

그러니 이 두 친구는 비록 한꼬투리에서 튀여나온 씨앗이지만 서로 다른 음악적리념을 지니고 서로 상반되는 예술의 토양에 뿌리를 박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더우기 중요한것은 윤이상이 작곡한 교향곡들은 우리 인민이 리해하기 힘든 12음계법으로 형상되여있다.

완고한 고집쟁이인 저 사람이 나의 요구를 어떻게 대할가? 상쾌함과 끝없는 열정, 랑만을 안겨주는 이 파도의 선률처럼 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다감하고 너그럽다면 얼마나 좋으랴!

윤이상은 또 그대로 자기 생각에 묻혀있었다.

조성민의 예고없는 이번 행보는 분명 나의 교향시곡과 련결되였을것이다. 그런데 왜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는걸가? 혹시 나의 교향시곡을 연주할수 없어서 그러는게 아닐가. 하긴 서방음악계에서도 형상하기 힘든 교향곡으로 알려진 나의 음악을 이들이 연주하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우기 저 사람이야 원래부터 민족음악에 정통하질 않았는가. 저 사람과 나의 작곡법은 상반되는 차이점을 가지고있다. 참, 저 낚시대를 당기는것만 좀 보라! 물고기가 물린것 같으면 천천히 우로 살짝 채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힘을 적게 들여 당기질 않는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음정인가. 단번에 낚시대를 잡아채는 나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래, 나는 한옥타브안에서 급진적인 비약으로 음정들을 변화시키지만 저 사람은 서서히 정서적으로 승화시킨다.

《또 잡았다!-》

조성민이 환성을 터쳤다. 팽팽해진 낚시줄을 따라 팔뚝만한 우레기가 요동을 치며 올랐다. 아이들처럼 입이 함박만 해진 그는 윤이상이 보란듯이 잡은 고기를 자기 망태기안에 넣었다.

윤이상은 그를 한번 흘기고는 자기의 낚시대에 눈길을 주었다. 마음이 조급해났다. 그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듯 낚시줄이 팽팽해지면서 손에 힘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여났다.

《나도 잡았다!-》

환해졌던 윤이상의 얼굴은 대번에 어두워졌다.

그의 낚시줄엔 손바닥만 한 가재미가 매달렸다. 조성민이 잡은것에 비해 자기것은 너무도 보잘것없었던것이다. 자기가 잡은 가재미보다도 조성민이 잡은 팔뚝만 한 우레기에 신경이 더 갔다.

(허, 이러다가는 또 지겠는데…)

조성민은 기분이 붕- 떠서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낚시코에 미끼를 물리고있었다.

자기 일에 여념없는 그의 뒤모습을 보는 윤이상의 얼굴에는 장난기어린 웃음이 슬며시 스쳐갔다.

그는 살금살금 조성민의 그물망태기를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자기가 잡은 가재미를 거기에 넣었다. 대신 구럭안에 있는 물고기들중 제일 큰것을 세마리 골라 자기 망태기에 슬쩍 밀어넣었다.

《자, 이젠 배도 출출해오는데 나가서 어죽이나 끓이자구!》

윤이상은 자기의 배를 슬슬 쓸면서 조성민에게 말했다. 낚시대와 물고기들이 푸들쩍거리는 그물망태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쉬운 표정으로 자기의 망태기를 들던 조성민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지금까지 잡은것에 비해 물고기의 량과 무게가 매우 덜해보였던것이다.

윤이상은 벌써 저쯤에서 걸어가고있었다. 그의 구럭은 별로 커보였다.

조성민은 머리를 기웃하며 그의것과 자기것을 번갈아 보고 나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허, 그놈의 고약한 승벽심은 여전하군!

나무숲이 우거진 모래불에서는 윤이상의 안해인 리수연이 음식그릇들을 펼쳐놓고 기다리고있었다.

《자, 낚시질에서는 내가 이겼지?》 하며 윤이상은 호기있게 말했다.

《아주머니, 그새 이 사람의 낚시질솜씨가 상당히 늘었구만요!》

《에이구, 저이가 언제 한번 물에 낚시대를 담근적이 있는줄 아세요.》

리수연이 물고기들을 받아들며 미덥지 않다는듯 윤이상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니웨다, 절대로 허술히 볼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바다의 물고기가 아니라 남의 그물망태기안에 있는것을 낚아서 그렇지, 영 엉터리는 아니더란 말입니다!》

윤이상은 조성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귀신몰래 한짓인데 어떻게 알았을가? 그래도 한번 끝까지 버텨보리라.

《허, 이젠 자네가 강짜를 부리는군. 낚시질에선 두말할것없이 내가 이겼어. 암, 그렇지 않구.》

조성민은 수염을 말끔히 밀어버린 턱을 손으로 내려쓸며 자못 위엄을 돋구었다.

《어험, 이 조성민의 뒤통수에도 눈이 있다는걸 네 여직 몰랐더냐? 내 너의 그 고약한 승벽심을 잘 알고있는데도 아직 토설하지 않을셈이냐?》

그러자 윤이상이 그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이구, 용서하시오이다. 소인의 이 눈이 어두운통에 로인장의 선견지명을 보지 못했소이다. 제발 용서해주시오이다.》

그들의 장난기어린 행동에 리수연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고 한참이나 웃었다.

《이젠 그만들 하세요. 꼭 애들 같애요.》

윤이상도 자기들의 행동이 우스웠던지 한동안 허허 큰 웃음을 지었다.

《난 아이가 되고싶소. 철없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싶단 말이요.》

리수연은 남편의 심중이 리해가 되는듯 얼굴을 외로 돌렸다.

식사가 끝나자 그들은 내려쪼이는 해볕에 몸을 맡기고 모래불에 누웠다. 달아오른 잔모래알들은 등가죽을 한껏 지져주었다. 구름 한점 없이 파아란 하늘이 눈우에 펼쳐졌다.

《끼륵- 끼륵-》 하며 갈매기들이 넓고넓은 창공을 훨훨 날아예고있다.

느닷없이 윤이상이 모래불에서 잔등을 떼며 일어나 앉았다.

《이 사람, 나에게 솔직히 말해주게. 그래, 자네도 나의 교향곡을 연주할수 없다는거겠지?》

조성민은 윤이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물었다.

《그래, 꼭 연주해야겠나?》

《임자, 그것도 말이라고 하나. 나한텐 사랑하는 자식들인 수십편의 작품들이 있네. 그것들은 서유럽은 물론 미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절찬을 받고있지. 하지만 작곡가인 이 몸은 조선민족의 피줄을 타고난 이 나라의 백성이 분명할진대 아직 그 어느 작품도 제 나라 사람들이 연주한적은 한번도 없었네. 단 한번도 말일세!》

그는 한숨을 내쉬며 발밑에 깔린 모래들을 한웅큼 잡고는 스르르 내려떨구었다. 그러기를 그 몇번… 모래는 삼각형모양의 뾰족봉을 이루며 흘러내렸다. 하지만 높아지지 않고 몸통만 더 비대해진다.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없이 쓸쓸했다. 어찌 보면 힘껏 나래를 저으며 창공으로 날아오르려고 모진 애를 써도 날아오를수 없는 《상처입은 룡》인 윤이상자신을 보는것만 같았다.

조성민은 상심과 침통에 잠긴 윤이상의 손을 덥석 잡았다.

《허, 서유럽에서 한다하는 음악가로 소문난 자네의 죽지가 오늘 영 말이 아닐세그려.》

《부러진 죽지지! … 내 나라, 내 땅에서는 날개쳐보아도 쓸모도 없어. 무용지물이란 말이야.》

조성민은 웃음을 터쳤다.

《맥빠진 소리는 그만하게. 용을 쓰게 만들면 될게 아닌가.》

《?! …》

《이 사람, 실은 며칠전부터 우리 교향악단에서는 자네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에 대한 연주훈련을 하고있네.》

《뭐라구?! 임자네들이 정말 나의 교향시곡을 연주한단 말인가? 그러면 그렇겠지. 조성민이가 누구라구…》

얼마나 바라고바라던 소원인가. 서방의 음악세계에서 태여난 자기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공화국북반부에서 우리의 음악가들이 연주하게 되다니…

정말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마음은 벌써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숙명을 저주해온 자기의 운명이 소생의 고고성을 울리는것인가.

희열에 뜬 윤이상을 바라보며 조성민은 나직하니 물었다.

《참, 그런데 내 한가지 물어도 좋겠나?》

《뭔가?》

조성민은 천천히 담배를 붙여 물었다.

조바심이 난 윤이상은 그를 다우쳤다.

《아, 갑자르지 말구 어서 말하라구.》

조성민은 그를 마주보기가 어색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윤이상은 그에게서 야릇한 감정을 느꼈지만 시종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조성민의 마음은 괴로웠다.

얼마나 조국에서 자기의 음악을 연주하고싶었으면 저리도 기뻐하랴. 나는 저 윤이상의 괴로움과 아픔, 그의 소원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그러한 내가 윤이상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이란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가 우리 인민들의 사상과 감정에 맞게 훌륭히 연주될수 있게 해주는것이다. 그런데 저 사람이 나의 요구를 접수하겠는지…

《자네, 쇼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느닷없는 물음에 윤이상은 놀라는듯 한 눈길로 조성민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쇼뺑에 대한 이야기는 왜 하나?》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게.》

《그는 자기 조국을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몸부림친 음악가이지. …》

쇼뺑은 프랑스가문의 자손이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태여난 뽈스까를 조국으로 인정하였으며 그 땅을 위해 노래를 지었다. 그런데 그 땅은 침략자의 칼부림속에서 무참히 짓밟히고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서 짜리로씨야를 반대하는 뽈스까인민들의 봉기소식과 1831년에 와르샤와가 함락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쇼뺑은 그때 조국에 드리운 비운에 대한 자기의 슬픔을 담은 피아노련습곡 《혁명》을 창작하였다. 그후 그는 비분을 품은채 빠리에 눌러앉았다. 그의 창작에서 주되는 주제는 자기 조국인 뽈스까였다. 비록 조국과 멀리 떨어졌으나 언제나 그 땅을 안고 몸부림친 그였기에 생의 말년에 왜서 작품을 쓰지 않는가고 하는 친구에게 《나의 예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의 심장은 무엇을 하고있는지, 조국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느껴지니 더는 쓸수 없다.》고 통탄하였다.

조성민은 윤이상의 모습에서 쇼뺑을 보는듯 한감을 느꼈다. 저 남쪽땅에서 배척받은 몸이지만 그 땅에서 신음하는 조국동포들을 위해서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창조한 그였다. 그러나…

《그렇다면 내 한가지 말해두 일없겠나?》

《어서 이야기하라니까.》

조성민은 자기의 속생각을 터놓았다.

《난 자네가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몇년전 저 남조선의 광주에서 사회의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군사독재정권과 맞서싸운 애국적인 청년들과 인민들을 위해서 썼다고 생각하네.》

《그야 물론이지.》

《그런데 지금 자네가 작곡한 <광주여 영원히!>를 우리 인민들이 듣고 리해할가?》

《뭐-어?!》

윤이상은 놀랐다. 자기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것이다.

《그래, 연주가 불가능하다는건가?!》

《참, 사람두… 누가 불가능하다나.》

《그럼, 뭔가?》

《난 그저 자네의 총보를 좀 수정했으면 하네. 안되겠나?》

《뭐- 뭐라구? 수정을 한다구!》

윤이상의 표정은 금시 쌀쌀해졌다. 그는 매정한 목소리로 씹어뱉듯 말했다.

《안돼! 그건 절대로 안돼.》

악보를 수정한다는것은 또 무슨 당치않은 소린가. 나의 넋과 심혼을 다 쏟아 창작한 교향시곡을 수정하다니… 안돼, 절대로…

《나도 임자에게 그런 말을 하기가 무척 괴롭네. 자네에게 작품을 수정하자고 요구한것자체가 창작가로서의 량심과 도덕에 어긋난다는것도 알고… 하지만 문제를 외곬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리성적으로 생각해보게.》

조성민은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전문창작가들도 리해하기 힘든 자네의 교향시곡을 듣고 우리 인민들이 아무러한 정서적감흥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어디에 있겠나. 그렇게 되면 비록 자네의 교향시곡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이 땅에서는 자기의 생명력을 잃은것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바로 여기 자기의 조국땅에서 말일세.》

《?! …》

비록 목소리는 크지 않아도 호되게 후려치는 말이다.

과연 저 사람의 말대로 나의 교향시곡을 리해하지 못할가? 하긴 그 말이 맞을수도 있다. 음악의 형상에서 서방의 현대음악과 일정한 차이를 두고있는 공화국북반부의 인민들이 유럽의 음악을 리해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조성민은 어떤 속심으로 저 말을 하는걸가? 나의 요구를 친구의 의리로써 거절하지 못하겠으니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물러서라는걸가?

윤이상은 새삼스러우면서도 한벌 기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그건 임자의 생각인가, 아니면…》

조성민은 여전히 진지한 태도였다.

《오해하지 말라구. 지금 우리 연주가들은 이 시각도 훈련을 하고있네. 이건 단지 내 개인적의견이야.》

무거운 침묵속에 두사람은 덤덤히 앉아있었다.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만이 고르로운 선률로 울려왔다. 이따금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마치 관현악이나 취주악에서 고음성부나 기본선률을 담당하여 밝고 화려하며 류창하게 울리는 트럼베트의 소리로 자연의 선률을 더해주는듯싶었다.

여느때 같으면 자연의 아름다운 선률속에 잠겨있었을 윤이상이건만 지금만은 그럴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다.

리성적인 사고로 볼 때 조성민의 말은 참으로 고마웠다.

아직까지 내앞에서 감히 작품을 수정하자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해줄리는 없는것이다. 저 사람은 지금 나를 위해서, 나의 소원이 훌륭히 이루어지게 하려고 힘든 말을 하는것이다.

윤이상과 조성민은 해방전 멀리 일본땅에서 고학으로 음악공부를 하였다. 그들은 음악학원에서 첫자리를 다투는 음악수재들이였다. 윤이상은 서양음악, 조성민은 민족음악분야에서 저마끔 자기의 주장과 리론을 놓고 론쟁하였다. 그럴 때면 항상 윤이상쪽에서 먼저 높은 언성이 튀여나오군 했다. 완고한 고집불통인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의 견해를 조성민에게 내려먹이려고 했다.

기름뿌린 섶의 불길과 같은 그의 성격과는 달리 조성민은 조용하면서도 침착한 형이였다.

서로의 상반되는 성격적차이로 하여 그들의 다툼은 하루도 번지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도 언 밥덩이를 입김으로 녹여 나누어 먹으며 한장의 낡은 이불아래서 서로 껴안고 잠을 청하군 하였다. 어려운 나날에 맺어진 두사람의 우정은 더없이 두터웠다.

조성민에게 큰소리를 친것이 미안했다.

《고맙네. 아직까지 나는 제 친구를 위해서 그렇듯 힘든 말을 해주며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여직 보지 못했네. 그리고 나의 음악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음악전통은 희박하고 서방의 음계가 더 짙다는것도…》

윤이상은 눈길을 들어 멀리 바다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네. 나는 절대로 수정할수 없네.》

《그게 정말인가?》

조성민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윤이상이 저 정도로 나오면 아무리 귀에 대고 나팔을 불어도 끄떡하지 않을 사람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다.

그의 얼굴에는 실망과 노여움이 비껴있었다.

《그럼 좋네. 하지만 이것만은 잘 생각해보라구. 자네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는 윤이상이라는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는것을 말일세. 그것은 당연히 내 나라, 내 조국의것이여야 한다는것을! … 인민과 결합되면 고기가 물을 찾은것으로 되지만 리탈되면 나무가 뿌리를 끊기운것과 같은 법이야!》

그는 자기의 웃옷을 집어들고 실망어린 눈길로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잘 있게.》

《아니, 아주버니!-》

리수연이 막아섰으나 조성민은 그냥 걸음을 옮겼다.

순간 윤이상은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는듯 한감을 느꼈다.

내가 지내 자기 고집만을 주장한게 아닌가. 그래도 저 사람은 나를 생각해서 힘든 말을 했는데…

리수연이 혀를 끌끌 차며 푸념했다.

《내 생각에두 성민아주버니의 말씀이 옳은것 같수다. 조금 수정한다구 무슨 큰일이 나겠소.》

윤이상은 자리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배 한척이 떠있었다. 외롭고 쓸쓸해보이는듯 한 그 배는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가고있는것만 같았다. 그 배처럼 향방없이 흘러온 자기의 인생이 화면처럼 펼쳐졌다. 《간첩》루명을 쓰고 남조선의 정보부에 의해 불법으로 랍치되여 서울에서 사형구형을 세번이나 받던 재판정, 출옥하여 제 나라, 제 땅을 버리고 또다시 비행기에 몸을 싣던 괴로움과 고통, 자기의 교향곡의 연주를 거절하고 의절을 선언한 제자들과 친우들의 랭대, 《윤선생은 자기의 국적을 어디로 밝히려고 합니까?》라고 묻던 외국기자들…

생각할수록 뼈점을 에이는 아픔들로 이루어진 인생행로였다.

그런데 생의 마지막기대를 안고 왔던 여기 공화국북반부에서까지 이 윤이상이라는 존재를 거절한다면…

그는 나락으로 정신없이 꺼져들어가고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방금전까지의 한가닥 려명이 돌이킬수 없는 종말로 되였다는것이 믿어지질 않았다. 이 순간 모든게 끝나고 자신은 황량한 바다에 버려진 한척의 쪽배처럼 외로웠다.

윤이상은 자리에서 일어서 천천히 거닐었다.

조성민의 목소리가 귀전을 친다.

《자네의 교향시곡은 마땅히 유럽사람들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우리 인민들을 위한것으로 되여야 한단 말일세.》

그래, 나는 그 교향곡을 누구를 위해서 창작했던가? 우리와 피부색도 풍습도 다른 유럽인들만을 위해서 지은것은 아니다. 나의 교향시곡은 파쑈독재정권을 반대하여 광주의 하늘가를 투쟁의 불길로 타오르게 한 영웅들, 그들과 숨결도 뜻도 같이하여 온 세상에, 조선민족에게 드리는 내 심장의 분출이였고 노래였다. 그런데 정말 저 조성민의 말처럼 조국인민들이 나의 음악을 리해하지 못한다면… 제 태줄이 조국땅에 묻혔다고 해서, 피줄에 조상이 넘겨준 피가 흐른다고 하여 조국의 아들이 되는것은 아니며 마음속에 언제나 간직하고있다고 모든 행동이 민족을 위한것으로 되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오직 그대의 박동에 숨결과 맥박을 같이하며 그대의 륭성번영을 위해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탤 때 진정 그 땅을 두고 제 나라, 제 조국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이 아닌가. 하다면…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을 주저하는가.

 

3

《아주 훌륭해. 마음에 꼭 들거던.…》

허리에 두손을 얹으시고 만족해하시는 김일성동지의 안광에는 기쁨이 한껏 어렸다.

2층으로 지은 건물은 아담하면서도 훌륭하였다. 주변에는 잣나무와 참나무, 오리나무를 비롯한 아름드리나무들이 꽉 차있었다. 마당 한복판에는 두 아이의 아름으로 안을 황목련나무가 서있어 더 이채로워보였다. 건물의 뒤켠에 있는 낭떠러지밑에는 넓은 강이 흐르고 그속에 고기떼들이 은비늘을 자랑하듯 솟구치며 춤을 춘다.

《허, 여기에 앉아 낚시대를 드리우면 펄펄 뛰는 생선은 떨구지 않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단히 흡족하신 표정으로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였다.

시종 웃음을 담고계시는 그이의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마음은 봄날처럼 개운해졌다.

사실 이 건물에 대한 건설은 김일성동지께서 직접 그들에게 주신 과업이였다. 그이께서는 건물의 위치를 몸소 잡아주시고 설계도안이 나왔을 때에는 미흡한 점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여러차례 건설현장에 전화를 걸어 공사를 최대한으로 앞당길수 있는 방도도 제시하시고 력량을 집중시켜주시였다.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그이의 의도를 받들어 짧은 기간에 건물을 훌륭하게 완공하였다.

오늘 현지에 나오시여 이토록 만족해하시는 그이의 모습을 뵈옵게 되니 그들의 기쁨은 더없는것이였다. 한생 혁명동지들을 위해서 좋다는것은 다 마련해주시고 사소한 세부에 이르기까지도 마음을 써가시며 모든것을 다하시는 수령님께 전사로서의 도리를 조금이나마 하였다는 긍지감이 가슴을 휩싸안았다.

조성민의 마음도 그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뜻밖에도 수령님께서 함께 이 집을 보자고 하실 때 그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였다. 그것은 자기 사업이 건설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부단장동무 생각에는 이 집이 어떻소?》

그이의 물으심에 조성민은 당황했다.

《수령님, 저야 뭐…》

《뭐니뭐니해도 난 음악가인 부단장동무의 의견을 듣고싶소.》

조성민은 주택의 내부와 외부, 로대에 이르기까지 다시금 세밀히 돌아보았다. 마치 수십종 악기들의 서로 다른 음색에서 미세한 불협화음을 찾아내는 심정으로…

그야말로 절찬을 받을만 한 건물이였다.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는 더 말할것도 없고 사색과 휴식을 자유로이 배합할수 있는 조건이 원만하게 갖추어졌다.

《수령님, 저로서는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무가 좋다면 나도 좋소. 휴식을 하기도 좋고 또 사색을 하기에도 그저그만이니 정말 내 마음에 꼭 드오.》

수령님께서는 흐뭇하신 마음으로 다시금 건물의 전경을 여기저기로 위치를 옮겨가시며 살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갑자기 《가만… 아무래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것 같애!》 하시며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일군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있었다.

주위는 나무숲의 설레임과 새들의 지저귐뿐이였다.

일군들은 물론 조성민도 귀를 강구었다. 아닌게아니라 그의 청각으로도 고요한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미세한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는 도무지 가늠할수 없었다.

《수령님, 무슨 소리가 들리는것 같습니다.》

《그래… 여기 어디 가까운 곳에 양수장이 있질 않소? 분명 양수기가 돌아가는 소리야!》

그제서야 일군들은 강건너 논벌에 있는 양수장이 머리속에 짚이였다.

《룡지리농장 양수장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그 양수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되겠소? 아무래도 그 소리가 사색에 방해가 될것 같애.》

조성민은 놀라웠다. 전문음악가인 자기도 미처 감촉해내지 못한 미세한 잡음을 찾아내시고 대뜸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를 식별하시는 수령님의 밝으신 음감에 놀라움과 경탄을 금할수가 없었다.

과연 누구를 위해 마련하신 집이기에 저리도 마음을 쓰시는것일가. …

 

4

윤이상이 평양방문의 나날을 보낸지도 이제는 어느덧 한달이 되였다. 그동안 그는 공화국북반부의 명승지들과 력사유적들을 돌아보았다. 이 나날 그는 사회주의건설에 떨쳐나선 조국인민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한구석은 여전히 묵직했다. 그것은 자기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의 연주에 관한 문제였다. 그때 동해의 휴양지에서 헤여진 조성민은 여직 이렇다할 소식이 없었다. 방문의 나날이 흐를수록 윤이상은 실망감을 금할수 없었다. 그때 윤이상은 조성민의 뒤를 쫓아가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말을 하고싶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하자니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교향시곡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던것이다. 불현듯 모든것을 다 잃은듯 한 허탈감이 온몸을 휩쌌다.

정말 공화국북반부에서도 나의 교향시곡이 연주될수 없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팠고 또 후회되였다. 그의 말대로 수정을 하자고 했을걸…

하지만 그것은 때늦은것이다. 앞날을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식견은 항상 후환만을 낳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를 찾아가 부탁하자고 하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리수연은 며칠전부터 돌아가자고 재촉이다. 그도 남편의 교향시곡의 연주는 불가능하다는것을 짐작하였던 모양이다.

《내가 뭐라고 했어요. 당신의 음악은 서유럽에서나 환영을 받지 조국에서는 달가와하지 않는다고 말이예요. 그래, 당신이 이들을 위해 땀을 한방울 흘린적 있나요, 아니면 좋은 말한마디 해준적이 있나요. 한뉘 타향에서 조국인민들이 리해하기 힘든 음악이나 창작한 령감이 뭐이 곱다고 그들이 시간을 허비하며 그 교향시곡을 연주하겠다고 하겠어요. 어서 짐을 싸가지고 베를린으로 돌아가자요.》

안해를 탓할것도 못되였다.

조성민이조차도 이젠 머리를 내밀지 않고있지 않는가.

아, 이 윤이상은 어델 가나 《상처입은 룡》의 신세를 면치 못하는구나. 이 몸은 영영 제 조국에서 버림받은 인생이 되여 바람세찬 타향에서 속절없이 사라지고마는가! …

현실은 인생의 락을 돈과 재물, 명예로 얻을수 없다는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듯싶었다.

그는 안해의 제의를 따르기로 했다. 이제 더는 기대할것이 없었다. 그는 어제 안내원에게 출국신청을 부탁하였다. 래일은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로 떠나면 되는것이다.

오늘 밤이 조국에서 보내는 마지막밤으로 되겠구나.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땅이다. 그래, 어머니가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자식은 영원히 어머니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법이다.

아니아니할수록 마음속아픔은 넝쿨을 뻗고 마디를 치면서 걷잡을수 없이 번져나가며 윤이상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작별을 앞둔 이 마당에서야 갈라져서 살수 없는 남다른 정이 자기의 가슴깊은 곳에 숯불처럼 묻혀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쏘파에 망연히 앉아 웬만해서는 피우지 않던 담배를 꺼내물었다.

리수연은 남편의 모습을 보기가 괴로운지 아예 돌아서서 방의 이구석저구석을 뒤지며 짐을 싸고있었다. 그의 눈시울은 촉촉히 젖어들면서 맑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남편의 괴로움이자 자신의 괴로움이였으며 그의 아픔이자 자기의 아픔인것이다.

이때 가볍게 문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누구도 선뜻 대답할념을 하지 않았다.

다시 문두드리는 소리가 울려서야 윤이상은 담배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미 낯을 익힌 한 일군이 문앞에 서있는것이였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일군은 윤이상에게 인사를 하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리수연이 꾸려놓은 짐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아니, 어데 가시렵니까?》

윤이상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피했다.

《아… 아니, 그저 좀… 그런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오늘 국립교향악단에서 음악연주회가 있는데 함께 가시질 않겠습니까?》

《예-에? 국립교향악단에서 음악회를 말입니까?》

그는 평양방문의 나날 예술공연, 음악회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빠짐없이 찾아가군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왜서인지 기분이 나질 않았다. 국립교향악단이란 소리에 조성민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던것이다. 더우기 래일이면 떠나야 하질 않는가. …

《제가 꼭 참가해야 하겠습니까?》

《선생님, 특별한 일이 없으시다면 저와 함께 가십시다. 지금 어버이수령님께서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시려고 기다리고계십니다.》

《예-에?! …》

윤이상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이자 뭐라고 말했는가. 아니, 그럴수 없어. 분명 내가 잘못 들은것이 분명해. …

《저-어, 무슨 말씀이신지? …》

일군은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진정하십시오! 지금 수령님께서 선생님을 기다리고계신단 말입니다.》

《그게 참말입니까?!》

그제서야 윤이상은 자기가 꿈이 아니라 현실에 서있다는것을 의식하였다. 나같은 인간이 뭐라고 나라일에 그토록 바쁘신 주석님께서 이 윤이상을 만나주시려 기다리신단 말인가.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윤이상을 태운 승용차가 국립교향악단 마당에 들어서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현관으로 걸어나오시였다.

그이를 뵈옵는 순간 윤이상은 숨이 꺽 막히는듯 하였다.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꿈결에도 뵈옵고싶던 그분이시다. 우리 겨레는 물론 온 세계 인류가 그토록 흠모하고 신뢰하는 분이시다. 이 마음이 대번에 확 끌려들게 하는 저 태양같은 미소… 내가 오늘 정녕 꿈속에 헤매이는것은 아니겠지. …

《아, 윤이상선생! 이렇게 만나게 되여 정말 반갑습니다.》

윤이상은 그이께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김일성주석님! 안녕하십니까? 이 불청객이 뭐라구 이렇듯 바쁘신 시간을…》

《불청객이라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내 이미전부터 선생을 만나보려고 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해 오늘에야 이렇게 만나니 량해하시오.》

《고맙습니다. 주석님!》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오늘 이곳 동무들이 윤선생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준비한 모양인데 함께 보고싶어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윤이상은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저… 저의 교향시곡을 말입니까?》

자기가 김일성주석님앞에 서있는것이 제발 꿈이 아니기를 바랬는데 그이께서는 방금 자기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는가.

그의 뒤에 서있던 리수연은 《여보!-》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있다.

…극장안은 벌써 관중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이미 면목을 익힌 음악가들과 예술인들, 문화예술부문 일군들의 얼굴도 보였다.

조국방문기간 윤이상은 관현악과 합창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와 《내 고향의 정든 집》, 《문경고개》를 비롯한 여러편의 교향곡공연에 초대되였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공화국북반부의 주체적음악발전에 대하여 못내 탄복하군 하였다. 그에 따르는 감흥 또한 긴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주석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조국의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자기의 교향시곡을 관람하게 되니 흥분된 마음을 금할수가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와 리수연을 자신의 옆자리로 이끄시였다.

그이의 너그러움과 자애로운 인정미에 윤이상은 몸둘바를 몰랐다. 수령님과 나란히 앉은 그의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의문들이 맴돌았다. 과연 어떻게 되여 나의 교향시곡이 오늘 이 무대에 오르게 되였는가. 조성민이 작품에 대한 수정안을 가지고 왔다가 실망하여 돌아갔는데… 혹시 자기의 생각대로 수정하였을가? … 아니, 그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야. 설사 수정했다면 어떠랴. 김일성주석님과 조국인민들의 마음에만 든다면 더 바랄것이 뭐겠는가. 그런데 그렇듯 어려운 이 곡의 연주를 단 한달동안에 어떻게 완성했을가. 총보를 수정하는데 며칠, 게다가 백여명이나 되는 연주가들이 악보와 연주에 정통하려고 해도 한달은 실히 걸릴것이다. 개별파트와 파트종합, 군종합과 전체종합훈련까지 완성하려면 여러달 잘 걸려야 하지 않는가.

어쨌든 조성민이 정말 고마웠다. 친구인 이 윤이상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았는가.

어느덧 음악회가 시작되여 무대막이 올랐다. 연분홍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성소개자가 관중들의 눈길을 모으며 나섰다.

《오늘 음악회에서는 해외동포인 윤이상선생님이 작곡한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하겠습니다.》

마음을 잠시도 진정할수가 없었다. 윤이상은 무릎우에 놓았던 두손을 가슴에 대고 서로 엇걸어 팔짱을 지었다. 그래도 편안치 못해 몸을 들썩이며 앉았다가 무릎우로 다시 손을 가져갔다. 몸가짐만 부자연스러운것이 아니다. 심장은 마치 무엇에 쫓기우는지 활랑거리기만 한다.

나이가 예순이 넘도록 윤이상은 세계음악계에서 이름이 있다고 하는 숱한 음악회에 참가하였다. 또 거기서 자기가 작곡한 음악들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리 흥분된 마음을 진정할수 없는것인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윤이상의 마음을 늦추어주시려는듯 그의 손을 꼭 잡으시였다.

그이의 뜨거운 체취가 윤이상의 심장으로 세차게 흘러들었다.

관중들의 요란한 박수소리에 이어 무대에는 국립교향악단의 백여명 연주가들이 민족악기들과 서양악기들을 들고 앉아있었다. 그들의 얼굴마다에서는 긴장감이라군 한점도 찾아볼수 없었다.

이어 지휘자가 나와 객석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아니, 저 사람이?! …》

그는 바로 조성민이였다. 조국의 음악계에서 이름있는 민족관현악의 작곡가이며 편곡가, 지휘자이기 전에 국립교향악단의 부단장인 그가 이렇게 직접 지휘봉을 잡다니…

윤이상은 정말 그가 고마웠다. 자기의 교향시곡을 연주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써주고 또 오늘은 이렇게 직접 나서질 않았는가.

그의 이런 마음을 헤가르듯 조성민이 지휘봉을 든 오른손을 허공으로 힘차게 내려그었다. 그러자 수십종의 악기들이 자기들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음색들을 하나의 선률에 맞추어 울리기 시작하였다.

윤이상의 머리속에는 갈래없이 얽힌 생각들로 꽉 차있었다.

아직까지 서방의 현대음악이라고는 한번도 연주해보지 못한 저들이 과연 제대로 연주해낼수 있을가? 삼관편성으로 무어져 자기들이 창작한 관현악과 교향곡, 기악작품들과 유럽의 고전작품들을 기본으로 하여 연주해온 국립교향악단이 최고로 복잡한 리듬과 박자 그리고 심한 조약, 저들에게 처음이라고 할수 있는 악상기호들로 이루어진 나의 음악을 어떻게 리해하며 연주한단 말인가. 오죽하면 몇달동안 연주훈련을 하여 《광주여 영원히!》의 초연을 지휘한 서도이췰란드(당시)의 이름있는 라지오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히로시 와까스끼도 출연을 끝내고 자기는 여직껏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지휘해보기는 처음이라고 하였겠는가. 더우기 《광주여 영원히!》는 남조선을 피로 물들인 군사파쑈무리들의 군화소리, 땅크소리, 총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 피를 흘리면서 비참하게 쓰러져있는 시체를 보고 우는 까마귀소리, 애국적인민들의 정의와 자유를 위한 새로운 결의들을 최고의 기교로써 매 악기의 특성에 맞게 음의 어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작품을 완성하여 이렇게 무대우에 올려놓지 않았는가. 도저히 믿을수가 없다. 아무리 이름있는 서방의 교향악단들도 이 교향시곡을 몇달동안 훈련을 하고서야 연주하군 하였다. 그런데…

윤이상은 마치 자기가 지휘봉을 든듯 처음부터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속은 한줌으로 졸아드는것만 같았다. 제발 자그마한 실수도 없기를 속으로 빌고빌었다. 더우기 김일성주석님을 한자리에 모신 이 자리에서…

허나 공연한 걱정이였다. 언제 연주가 끝난지는 알수 없었으나 그는 전기간 미세한 불협화음도 찾을수가 없었다. 너무도 놀랍고 상상을 초월하는 연주였다. 단 한점의 흠도 없었다. 최상의 수준이였다. 더우기 놀라운것은 수정되였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교향시곡이 원작그대로 연주되였다는 사실이였다.

윤이상은 자기의 온몸이 땀으로 화락 젖어있다는것을 의식했다. 자기 음악이 이렇듯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의 마음속에 너무도 큰 폭과 깊이를 가지고 자리잡고있을줄은 생각 못했다. 방문기간 공화국북반부의 음악발전에 대해서 탄복도 많이 하고 느끼는 점도 컸지만 이들이 서유럽의 이름있는 교향악단들을 훨씬 릉가하는 연주기교와 기량을 가지고있다는데 대해서는 너무도 상상 못했다.

우리 조선민족의 음악예술이 이렇듯 높은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과연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유럽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에 가서 자기의 교향곡을 연주하기도 하고 또 그 나라의 음악들을 수없이 들어보았다. 하지만 연주가들이 저렇듯 마음과 마음, 호흡과 호흡을 하나로 맞추어 훌륭한 연주를 하는것은 본적이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였다.

극장안에는 떠나갈듯 한 박수소리로 꽉 차있었다.

《그래 연주가 마음에 드십니까?》

《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 오늘에야 저의 평생소원이 풀렸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기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매우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며 지휘자를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달려온 조성민을 가리키며 말씀하시였다.

《윤선생, 이번에 이 동무들이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윤이상은 조성민에게 다가가 그의 두손을 꼭 잡았다.

《이 사람, 정말 고맙네!》

《이러지 말라구. 자네의 소원을 풀어주신분은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야.》

《뭐? … 뭐라구! 아니 그럼, 김일성주석님께서…》

순간 가슴에는 전류같은것이 찌르르 흘렀다. 너무도 상상 못한 현실이라 도무지 믿어지질 않는 대해같은 사랑에 이 윤이상이 실려있었단 말인가!

모든것이 꿈이였다.

 

5

윤이상은 길게 그것도 여러번 심호흡을 하며 크게 숨을 내쉬였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모란봉의 저녁바람도 화독을 품은듯 달아오른 가슴을 도저히 식혀주질 못했다.

《윤선생!》

우렁우렁하신 김일성동지의 음성이 울려왔다.

《주석님!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윤이상은 그이께 큰절을 올렸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량팔을 잡아 일으키시였다.

《허, 이러지 마십시오. …》

김일성동지께서는 멀리 저녁노을을 바라보시였다.

《윤선생, 나는 이미 선생이 지은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세번씩이나 들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좋은 곡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부 수정하자는 안을 반대했습니다. 한 교향시곡을 놓고 어떻게 유럽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다르고 우리 나라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다를수 있겠습니까.》

조성민은 자책감에 감겨 머리를 들수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모란봉의 미풍이 그이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나는 선생의 교향시곡에 아무런 의견도 없습니다.》

조성민은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윤이상을 바라보았다.

윤이상이 유럽의 현대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1950년대말은 세계음악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기였다. 당시 현대음악이라고 하는 서방의 작곡계는 한창 전통의 파괴, 극심한 추상성의 추구와 개성의 부인, 기법에서 고도의 지능화를 요구하였다. 그러면서 무한한 전위적태도와 음의 계산화를 내세우고 민족성, 인간성과 같은 용어들은 배척하였다. 따라서 그 어느 음악가를 막론하고 순수 민족성만을 주장하면서 유럽의 음악계에 들어간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이런 속에서 윤이상도 서방작곡계에서 자기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12음기법으로 작품을 써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조성민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선생이 유럽작곡계에 발을 붙인 후 처음으로 작곡한 관현악곡은 <바라>였지요. 그 관현악곡에서 선생은 제목을 우리 나라 민족타악기의 일종인 바라의 이름을 그대로 달았고 또 음악형상에서도 민족성을 확고히 고수하였습니다.》

《아니, 주석님께서 그걸 어떻게? …》

천만뜻밖의 말씀에 윤이상은 놀라운 눈길로 그이를 우러렀다.

전문음악가도 아닌 김일성주석님께서 어떻게 나의 음악에 대해서 이리도 자상히 알고계시는걸가?

조성민도 경탄을 금할수가 없었다. 수령님께서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계신다는것은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서유럽의 현대음악에 대하여, 윤이상의 음악창작경위에 대해 그처럼 잘 알고계실줄은 몰랐던것이다. 그이의 결론은 아주 명철한것이였다. 윤이상이 창작에서 의거하고있는 《정중동》은 바로 안정성, 불안정성과 같은 량극적범주를 선행시키고있었다. 때문에 그의 음악은 구조가 다성음악인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일원적이라고 볼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없이 밝으신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선생의 <광주여 영원히!>를 처음 듣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곡을 지은 윤이상선생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낳은 재능있는 음악가, 민족의 장한 아들이라고 말입니다.》

《예-에?》

윤이상은 놀랐다. 너무나도 황송했다. 심장은 후두둑후두둑 세차게 고동치고있었다. 크나큰 감격에 목이 꽉 메이기만 했다.

《남들 같으면 자기에게 수난과 고통, 망명객의 설음만을 강요한 저 남쪽땅을 수십번이나 침을 뱉고 등을 돌려댔을것입니다. 하지만 선생은 자기 겨레들이 그 땅에서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었으며 우리 조국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바라며 거기에 자신의 음악을 바쳐왔습니다. 바로 선생과 같은 사람이 참된 애국자입니다!》

윤이상은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재능있는 음악가! 참된 애국자!

너무도 과분한 평가, 상상해보지 못한 믿음과 사랑이다. 내 음악이 서방에서 절찬을 받고있지만 나는 그것을 한갖 진정한 대지를 잃은 방랑객의 서글픈 노래, 방황하는 선률로만 여겨오지 않았던가. 더우기 저 남쪽땅은 이 윤이상에게 《간첩》루명을 들씌워 사형까지 언도하며 배척하였고 또 이국땅에선 나를 국적을 잃은 망명객음악가로 치부하질 않았는가. 정녕 안길래야 안길 품이 없고 음악의 나래를 활짝 펼칠래야 나래칠 창공이 없었으며 이끌어줄 스승이 없었던 나의 인생이였다. 그런데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 방랑자의 최대의 소원을 풀어주시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참다운 애국자로, 우리 민족이 낳은 재능있는 음악가, 세계적인 음악가로 값높이 내세워주시고 그토록 바라고 갈망하던 진정한 조국의 품을 되찾아주시질 않으셨던가. 그동안 이 윤이상에게로 향한 삶과 행복의 문은 굳게 닫겨져있었다. 그런데 그 문을 오늘 주석님께서 비로소 열어주시였구나!

《주석님! 저는 자신을 물기빠진 고목으로만 여겨왔습니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제가 서방에서 아무리 좋은 곡들을 써냈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저에게는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주고 인정해줄 진정한 토양, 조국의 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그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아 어린애마냥 어깨를 하염없이 들먹이였다. 참고참아오던 울음이였다. 마음껏 울고싶었다. 수십년동안 쌓이고쌓인 그 모든 설음, 하소연하고싶어도 할수 없었던 그 만단사연을 다 터놓으며 소리높이 어린아이처럼 울고싶었다. 눈물이란 슬픔만이 아니라 그 어떤 맑고 그윽한 감정의 북받침이기도 한 모양이다.

하염없는 눈물을 쏟는 윤이상의 모습을 보시는 김일성동지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내배였다.

얼마나 마음속고충이 컸으면 이러겠는가. 그동안 그 모진 아픔을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고 홀로 묵새기자니 가슴속엔 재만이 가득할것이다. 실컷 우시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개운해질거요. …

불어오는 바람에 모란봉 푸른 숲도 세차게 흐느끼며 설레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두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여 그에게 내밀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조성민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부단장동무, 우리는 무엇을 하나 보고 대해도 그것을 창작한 인간의 애국심을 먼저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이의 말씀을 새겨안는 조성민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수령님으로부터 윤이상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할데 대한 과업을 받고서 그이의 깊으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경솔한 행동을 한 죄책이 가슴에 저며들었다.

수령님의 슬하에서 참다운 민족음악을 터득한 자신이 아직까지 음악의 선률과 리듬만을 볼줄 알고 그속에 담겨진 창작가의 선률, 애국애족의 선률은 볼줄 모르는 눈뜬 소경이였으니… 이 불효막심한 인간을 어서 매질해주십시오. 사정없이… 사정없이…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고 조성민에게 말씀하시였다.

《부단장동무, 나는 윤이상선생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온 나라 인민들이 다 보고 듣도록 텔레비죤과 방송으로 널리 방영하자고 합니다. 윤이상선생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윤이상은 자애로운 어버이의 영상을 우러렀다.

아, 이 윤이상은 결코 불행아가 아니였구나. 이렇듯 뜨거운 인간애와 사랑을 지니신분, 위대한 민족의 어버이의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속에 사는 이 윤이상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행복자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피뜩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허, 우리가 이야기바람에 시간가는줄을 잊었구만! 자, 윤선생, 어서 선생의 집으로 갑시다.》

윤이상은 저으기 놀라운 표정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집이라니? 나한테 무슨 집이 있다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시며 윤이상의 손을 잡으시였다.

《참, 내 여직 선생에게 이야기해주지 못했군요. 우리 동무들이 선생을 위해 새 집을 한채 마련했습니다.》

그러시며 그이께서는 조성민에게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참, 부단장동무도 이미 돌아봐서 알고있을게요.》

그제서야 조성민은 며칠전 자기가 본 집이 머리에 짚이였다.

《아니, 그럼?! …》

《왜 그렇게 놀라오. 윤이상선생은 수십년간이나 제 나라, 제 땅에 자기 집도 없이 망명생활을 했소. 조국에 찾아온 윤선생에게 집을 마련해주는거야 응당한 일이 아니겠소.》

《?! …》

윤이상은 통 믿어지질 않았다. 해외에 국적을 둔 이 윤이상이 자기 조국땅에 제 집을 가지게 되다니…

《윤선생, 선생은 여직껏 제 나라 제 땅에 자기의 집을 가지지 못하고 타국에서 생활해왔습니다. 그래서 마련한 집인데 선생의 마음에 들겠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방하신 그이의 음성은 윤이상의 마음을 세차게 울렸다.

《아니, 아닙니다. 저같은게 뭐라구…》

《집들이잔치를 단단히 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이의 허물없는 말씀에 윤이상과 조성민은 그만에야 웃음을 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윤이상의 손목을 잡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윤선생, 그 집은 우리 인민들이 선생에게 지어준 집입니다. 이젠 아무때든지 조국에 오십시오. 그 집을 고향집처럼 여기고 사색도 창작도 마음껏 하란 말입니다. 우리는 선생의 요구를 무엇이나 다 들어주겠습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승용차가 서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조성민과 나란히 그이의 걸음을 따라서는 윤이상의 얼굴에는 더없는 생기와 열정이 차고넘쳤다. 가슴속엔 온통 그의 심장의 웨침이 고패치고있었다.

(나는 오늘에야 나의 선률이 힘차게 나래칠 오선지, 내 음악의 참다운 스승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모두가 안겨살아야 할 품, 우리 겨레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김일성주석님의 품이다!)

윤이상은 자신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아니, 진정하고싶지 않았다. 자기가 평생동안을 그토록 갈망하던 순간, 가장 행복한 이 순간이 사라질가봐 두려웠다. 가슴속엔 온통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매혹과 흠모, 고마움의 감정만이 꽉 차있었다.

위대한 태양의 빛발을 받아 신심과 활약에 넘쳐있는 《나래펼친 룡》을 태운 승용차는 대지를 박차며 힘차게 달려갔다. 그앞에는 넓고넓은 대통로가 한껏 펼쳐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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