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편 소 설

비 슬 나 무

                                    조 창 근

1

어뜩새벽에 잠을 깬 김구는 오랜 세월 굳어진 일과대로 산책길에 나서려고 마당으로 나왔다. 려관의 마당복판에는 반세기전에 보았던 비슬나무 한그루가 예대로 서있었다. 비슬나무도 사람처럼 세월의 갖은 풍파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곧추 자라지 못하고 아름드리 밑둥줄기가 이리 뒤틀리우고 저리 꼬이면서 터슬터슬 갈라진 거무틱틱한 껍질을 뒤집어쓴채 4월 하순인데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움틀념을 못하는것 같다. 해방년에 심은듯 한 담장가의 어린 살구나무들에는 벌써 연분홍빛꽃이 피여 나비를 부르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했다.

김구는 하늘중천을 검스레하게 가리운채 묵묵히 자기를 내려다보고있는 비슬나무 우듬지를 흘낏 쳐다보고는 정문을 나섰다.

몇해만에 보는 평양의 산천경개인가. 우유빛의 부드러운 안개속으로 멀리 모란봉은 선녀같은 우아한 모습을 드러냄이 예나 다름없고 대동문과 련광정아래 대동강물소리 또한 예대로 유정하다.

산천은 옛 모습그대로 늙은 아들을 반겨주건만 심기는 편안치 못하였다. 려관의 잠자리가 불편했던가. 북쪽사람들의 눈초리가 쌀쌀했던가. 잠자리는 비단이부자리에 십장생도의 병풍까지 둘러있고 온돌은 뜨뜻하였으며 맞아주는 사람들의 눈초리는 제가 북에 들여보낸 테로단의 총에 자식들을 잃은 목사까지 적의가 아니라 따뜻한 진정으로 반겨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김구는 하얀 조선바지저고리를 입고 안경을 번뜩거리며 유정한 산천을 둘러보다가는 머리를 떨구기도 하고 연두빛머리채같은 가지들을 치렁치렁 드리운 강변의 버드나무숲속길로 뜨적뜨적 걸음을 옮기군 하였다.

뒤따르던 비서 안우생이 조심스럽게 재빨리 다가왔다.

《두령님, 어디 편찮으신건 아닙니까?》

김구는 대답대신 머리를 우쩍 쳐들고 활개를 크게 치며 씨엉씨엉 걸었다. 높이 쳐든 상고머리, 좌우 거치장스러운것들을 쳐갈기는듯 한 힘찬 활개짓, 70고령치고는 빨리 걷는 활달한 걸음씨…

안우생은 김구의 산책모습만 보고도 주인의 건강과 기분상태, 오늘 일의 길흉을 예감하고 그에 맞게 돌봐주는 충실한 비서이다. 리승만은 도끼질로 운동을 하고 안창호는 도수체조로 운동을 한다지만 이 백범은 걷기로 운동을 한다. 태고적 하늘이 사람을 만들 때 짐승과는 달리 두발을 하사한것은 두발로 직립보행을 해야 사람이 되기때문인즉 네바퀴 차가 달리는 오늘에도 걷기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는 생활신조를 꿋꿋이 지키고있는 김구이다. 상하이(상해)조계지에서나 서울의 경교장에서나 첫새벽의 이 산책걸음씨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떤 풍파에도 흔들림이 없는 김구의 정치적신조, 누구한테도 머리숙이지 않는 도고성, 저돌적인 완강성이 체질화된 산책걸음씨임을 안우생은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평양에 와서 김구의 새벽산책은 점점 어딘가 모르게 안심치 않아보였다. 안경을 낀 얼굴이 아래로 숙어졌다가는 다시 들리고 걸음속도도 멈칫했다가는 놀란듯 빨라지고… 평양행을 단연코 하겠다는 성명을 내고 하지와 대판싸움을 벌린 그날 새벽에도, 어중이떠중이들이 한사코 앞을 막아나서며 가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하던 그날 새벽에도 걸음씨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더 도고하고 꿋꿋해보였다. 분노하고 고민을 해도, 사색을 하고 한탄을 해도, 슬픔과 기쁨을 당해도 하늘을 우러러 이마를 높이 쳐든 새벽산책의 자세와 걸음씨만은 흐트리지 않던 김구였다. 안우생은 대답없는 김구의 옆얼굴을 슬쩍 살펴보았다.

《두령님,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김구는 또 대답없이 씨엉씨엉 앞서나갔다. 묻지도 말고 상관도 말라는 태도이다.

안우생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리해되지 않는 일이였다. 안우생은 김일성장군님의 서기 김종항과 함께 김구의 숙소를 잘 꾸리는데 각별한 관심을 돌렸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서기까지 김구에게 붙여주시면서 늙은이들은 잠자리가 바뀌면 깊은 잠에 들기 힘들수 있다고, 서울저택의 침실과 꼭같이 꾸려주라고 당부하셨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서울 경교장 침실의 크기며 형식, 침구류와 가구에 이르기까지 어찌나 캐묻고 성의를 다하는지 안우생은 진땀이 날 정도였다.

김구도 침실에 들어와보고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희한해하였다. 자기의 체온이 슴배였던 침실과 비슷하면서도 대비도 안되게 꾸려진 난생처음 보는 순 조선식의 최고급침실이였던것이다. 김구는 만족하여 잠자리에 들기 바쁘게 깊은 잠에 들었다. 먼 려로의 피곤도 피곤이려니와 원체 건장한 체질인지라 눕기 바쁘게 코를 고는것은 그의 습벽이였다. 일찍 자고 일찍 깨고… 정치세파에 부대껴 면역이 생겼는지 격노가 터진 날에도 변치 않는 잠이고 새벽산책이였다. 평양에서의 밤들도 대단히 만족하여 잠자리에 들었고 네활개를 펴고 깊은 단잠에 들었다.

그러니 마땅히 더 호기스럽고 의기양양해야 할 산책에 이상이 생기니 안우생이 머리를 기웃거리지 않을수 없게 된것이다. 안우생은 주인의 기분상태를 놓치지 말고 살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몹시 각성하지 않을수 없었다.

김구의 기분상태는 오늘 아침식사후에야 본래대로 되돌아온것 같았다. 식사후 김구는 대단히 흡족한 기색으로 입가심을 하고 손수건으로 입술을 훔치며 안우생에게 슬그머니 묻는것이였다.

《이보게 비서, 내 너무 체면없이 굴지 않았나?》

그것이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린지 그러잖아도 민망스러움을 느끼고있던 안우생이라 좀 온곱지 않게 말했다.

《그런것 같습니다. 아무리 녹두묵이 맛있다한들 접시밑까지 말짱 비우는건 어딘가 모르게 두령님의 체모에 손상이 가는것 같습니다. 외교례절이란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 허 참, 처음 먹어보는 청포맛도 아닌데 이눔의 손이 저절로 자꾸 가드라니…》

아침진지상에 파르스름하고 하들하들한 녹두묵도 한접시 올라있었다. 김구는 여러가지 진수성찬중에서도 청포에 손이 제일 많이 가군 하였다. 청포란 예로부터 궁중음식으로 수라상에 오르는 료리지만 매끌거리는 물건이여서 저가락으로 집기 힘들어 손님망신을 시키기 십상이다. 김구도 둬번 상에 떨구는 실수를 했으나 접시밑굽까지 반반히 냈다. 식탁손님들이 다 한독당 성원들이니망정이지 려관접대원처녀나 김종항이 보았더라면 무슨 망신인가. 그러잖아도 남쪽의 리승만이나 우익패들은 《림정거지떼》라고 멸시하는 판인데 그런 적수들의 눈에 띄였더라면 대자보나 신문에 만화로 크게 실릴것이다.

《연회상이 아니니 다행일세. 비서가 내 식성을 알려준건 아닌가?》

《식성까지 알리다니요? 원… 자존심이 깎일노릇 왜 하겠습니까.》

《흠-》

김구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청포야 적게 먹어보았나. 헌데 이번처럼 맛있게 먹어보기는 처음이야. 같은 음식도 손맛에 따라 다르다고 이 려관에 특등료리사가 있는게 적실하네.》

김구에게 있어서 녹두묵은 단순한 음식물의 한가지가 아니였다. 젊은 나이에 전봉준의 동학란에 참가하여 접주노릇까지 한 김구에게 있어서 녹두음식은 정치적색채를 띠고있었다. 이국땅에서 해마다 맞는 3월 1일 기념좌석에서 김구는 취기에 거나해진 목소리로 우국충정을 토하다가는 녹두장군의 노래를 부르군 하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말아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모란봉우로 아침해살이 퍼질무렵 김구는 려관응접실에 좌우 두줄로 정렬한 수원들에게 일장훈시를 하였다.

《에- 오늘부터 우리 한독당 대표전원이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게 되오. 그동안 여러 협의회들에서 말썽없이 수나롭게 일들을 잘 처리했소. 김일성장군은 우리의 도착이 늦어져 회의를 휴회했다고 하오. 도량이 큰분이시오. 우리 대표들이 처신을 잘해야겠소. 언행을 조심하고 타당, 사회단체들과의 의견충돌을 야기시켜서는 안되겠소. 갑론을박으로 책상을 치다가 흉기까지 휘두르던 해방전 정치무대와는 다르다는것을 알아야 하오. … 3.1의 피를 고수해온 림정의 인사들답게 자존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위신있게 행동해야 하겠소. 정견표명은 내가 다하겠으니 당신들은 각당, 각 단체들의 동향을 잘 보고 제때에 보고해야겠소.》

김구는 안우생에게 눈짓을 하였다. 안우생이 침실로 들어가더니 림정의 인장이 들어있는 함을 가지고 나와 김구에게 드렸다. 김구는 근엄한 표정으로 함을 받아 가슴우에 받들고 정중한 자세로 서있었다. 사방 한뽐정도의 크기를 가진 정방형의 인장함은 검은색옻칠을 하고 네 면에 금박으로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새긴 무게와 위엄을 갖춘 함이였다. 그안에는 록주석으로 사자머리를 형상한 손잡이가 달린 《대한민국림시정부》인장이 들어있었다.

수원들은 한사람씩 나와 그앞에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머리를 숙였다가 물러서군 하였다. 이것은 큰 사변이나 회의를 앞두고 림정의 법통앞에서 다지는 일종의 선서와 같은 의식이였다. 김구와 고락을 같이하며 갖은 풍파를 헤쳐온 민족주의인사들은 자못 숭엄한 감정에 싸여 인장앞에 서있다가는 물러나군 하였다. 김구보다 두살이나 우이고 머리가 새하얗게 센 운계는 인장앞에서 눈물까지 글썽해서 떠날념을 못하는것이였다. 의식이 끝난 다음 다들 김구를 따라 회의장소인 모란봉극장으로 향하였다.

김구는 의기양양하고 도고한 자세로 젊으신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회의장에 들어갔고 주석단에 의젓이 앉았으며 연단에 나가 리승만의 《단선단정》은 매국행위이며 조국통일을 위해 단결하여야 한다고 토론하여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새벽 김구의 산책모습은 의기가 떨어져있었다. 며칠간에 걸치는 련석회의가 성과적으로 끝나고 성대한 축하연을 치른 다음날 새벽에도 그의 산책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날이 갈수록 하강선을 긋는다는것이 뚜렷이 알렸다. 회의진행과정에 그리고 회의도중 휴계실에서 자주 있은 김일성장군님과의 담화와 접촉에서 보이던 그 감개무량한 표정과 찬탄, 감동의 기분과는 상반되는 김구의 저조함에 남모르는 속앓이를 하는것은 안우생이였다.

새벽산책이 김구의 변함없는 정치생활신조의 한난계임을 잘 알고있는 안우생은 나날이 쌓이는 불안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과업을 받고 김구의 생활을 책임지고 돌봐주고있는 김종항이 아침마다 묻는 그의 안부에 대해 다른것은 없다, 다 만족해한다, 건강도 날을 따라 좋아진다는 대답만 주던 안우생도 자기의 불안을 더이상 감추기 힘들게 되였다. 그래 잠을 설치는것 같다고 귀띔이라도 해주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2

《잠을 설치는것 같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김종항의 보고를 들으시고 몹시 놀라와하시였다.

《무슨 원인인지 모르겠소?》

《안우생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20년나마 그의 곁에서 일해오는데 이번처럼 산책이 의기소침해지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산책이 의기소침해진다?》

《예.》

김종항은 안우생한테서 들은 김구 산책의 변함없는 특징과 여기에 와서 저상해지는 모습을 구체적인 세부에 이르기까지 형용을 해가며 자세히 말씀드렸다.

《머리를 떨군다? 한숨까지 나오고…》

장군님께서는 새벽 2시를 알리는 시계종소리에는 아랑곳 않으시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시였다. 열어놓은 집무실창문으로 봄날의 차면서도 훈기가 섞인 밤바람이 불어들었다. 환절기인 봄은 꿈이 많고 새것이 낡은것을 털고 솟음치는 계절이다. 그래서인가 만경대할아버님께서도 어뜩새벽에 일어나시여 식구들의 단잠을 깨울세라 사르륵- 사르륵- 새끼를 꼬신다.

《기왕력에 불면증은 없다오?》

《예, 원체 건장한 체질이여서 불면증을 모른다고 합니다.》

김종항의 자신있는 대답에도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기웃거리시였다.

《정치세파에 부대낀 로인인데 왜 불면증이 없겠소.》

《저도 그게 이상해서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눕자마자 깊은 잠에 든다고 합니다. 일찍 자고 일찍 깨는 형인데 새벽산책길에서 전날에 있은 모든 일이 분석되고 총화된다고 합니다. 그날에 당한 격노, 울화, 슬픔, 자책, 후회와 같은 극적인 감정들은 다 자고난 다음의 새벽산책길에서 맑은 정신으로 재음미되면서 배짱과 도고성을 부채질하는 연소제로 타오른다는것입니다.》

《음, 정객들일수록 개성이 뚜렷한 법이지.》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산책경험에 비추어 김구 산책의 정신적리면세계를 양상적으로 리해하실수 있으시였다. 그러나 산책도중에 한숨까지 쉬면서도 불면증이 없다는것은 리해되지 않으시였다. 분명 김구는 잠자리에 누워 무엇인가 고민하고 번민하고있다. 그럴만한 원인이 무엇이겠는가? 숙식조건… 숙식조건은 그들자신이 말하는것처럼 난생 이런 대접은 처음 받아본다며 남조선대표들모두가 황송함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그에 보답해야겠다며 해방전의 어지러운 생활에서 버릇된 무정부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풍조를 일소하고 빠짐없이 회의에 참가하여 비등된 열성을 보이고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반성과 번민으로? 그 문제는 이미 김구가 평양에 들어오기 전에 보낸 친서에서 명백하게 시원히 다 해결해주시였다. 과거를 백지화한다고! 그때 친서를 받은 김구는 김규식의 손을 맞잡고 《우사, 이걸 좀 보오.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하셨소. 과시 도량이 우주같은분이시오. 그런데도 머리가 허옇게 센 우리가 우물쭈물해서야 체면이 서겠소.》하며 흥분을 터쳤다고 한다.

과거를 백지화한다는 도량에 단연코 평양에 온 김구지만 그래도 혹시 죄의식을 느껴 소심해질가 왼심을 쓰셨는데 회의참가과정에 전혀 그런 빛은 보이지도 않고 너무도 당당하고 호기스러운 기상이여서 역시 담과 배짱이 보통이 아닌 정객이로구나 하고 마음을 놓으셨는데 불면증이라니?!

장군님께서는 어두운 그림자가 가슴속에 슬밋슬밋 드리우는것을 느끼시며 서기에게 이르시였다.

《종항동무, 김구선생에게 래일 저녁부터… 아, 오늘이구만. 오늘 저녁부터 리경암선생과 홍성실동무를 전문 담당의사, 간호원으로 붙이시오. 김구선생의 건강에 특별한 류의를 돌려야겠소. 동무도 책임성을 높여 선생의 신상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도 놓치지 말아야겠소.》

김종항은 쭈밋거리며 선뜻 대답을 못하고 딱한 표정을 지었다.

《장군님, 장군님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 간호원까지 떼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야 아직 젊지 않소. 우리는 30대 한창나이지만 김구선생은 70객이요. 불면증으로 혈압이 오를수도 있고… 뜻밖의 불상사라도 일어나면 어찌겠소. 도의상으로 봐도 젊은 사람들이 늙은이들을 존경하고 돌봐주는것은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이요. 나도 만경대에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있소. 고생속에 살아온 로인들을 말년에나마 편안히 해드리는게 젊은 사람들의 도리가 아니겠소.》

장군님께서는 바다오거우(8도구)에서 자라실 때 가까이 지내신 김종항의 인심좋던 부모들을 생각하시며 그분들도 이젠 늙었겠는데 시간이 없어 한번 찾아보지 못하신것을 후회하시면서 말씀하시였다.

김종항은 가슴이 뭉클해졌으나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않고 고집스럽게 우기였다.

《알겠습니다. 김책동지에게 제기하여 정치위원회에서 토론하고 유능한 의사, 간호원을 김구선생에게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김책동무에게는 내가 말하겠으니 그렇게 합시다.》

이튿날 저녁 장군님께서는 방대한 회의문건을 처리하고 끊임없이 찾아드는 정객들을 만나 담화를 하고 협의회를 해야 하는 그 바쁘신 속에서 리경암과 홍성실을 부르시였다.

《리선생, 김구선생을 검진해보았습니까?》

리경암은 녀자처럼 곱게 생긴 얼굴에 가느스름한 눈을 쪼프리고 장군님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면구스러움을 느끼며 의아스러운 눈길로 리경암을 살펴보시였다.

《왜 그럽니까?》

《장군님…》

말꼭지를 떼고 리경암은 입술을 가늘게 떨었다.

《장군님의 신색이 요즘 말이 아닙니다. 하루에 쪽잠 한두번으로 장창 밤을 패시면 어떻게 합니까. 김책동지가 몹시 근심을 합니다. 말을 들었다고 해서가 아니라 제가 진심으로 말씀드리는것이니 장군님께서 취침시간을 좀 지켜주셔야 하겠습니다.》

《알겠소. 리선생, 산에서 싸울 때는 눈을 움켜먹구 추위에 떨면서 적의 포위속을 며칠씩 뚫고가야 했소. 쪽잠이 다 뭐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호강하는셈이요. 자- 그건 그거구 어서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오.》

《예, 김구선생은 건강합니다. 혈압, 체온, 맥박, 영양상태는 다 정상입니다. 고령의 나이에 그런 건강지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자고 깨면 산책이 저상해진다고 합니까?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장군님, 늙으면 새벽잠이 없는 법이 아닙니까. 더우기 김구선생이야 눕기 바쁘게 잠드는 형인데 잠을 설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구선생의 잠을 지켜보았습니까?》

《예?》

리경암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검진이나 해보고 마음을 놓았던것이다. 세상에 효자라고 이름난 사람은 많지만 늙은이의 잠까지 지켜드렸다는 말은 전설에도 없지 않는가. 더우기 김구임에야. 해방직후만 해도 거리에 《김구, 리승만을 타도하자!》라는 프랑카드가 펄럭이는것을 본 리경암이였던것이다.

《수고스러운대로 오늘 밤부터 리선생과 간호원동무가 교대로 김구선생의 잠을 곁에서 지켜드려야 하겠습니다. 과연 마음편히 푹 자는가? 무슨 다른 징조는 없는가? 난 만경대에 나가 하루밤을 잘 때마다 할아버님의 잠을 지켜보군 합니다. 가슴속에 숱한 자식들을 먼저 보낸 원한과 슬픔이 응어리져서 그런지 깊은 잠에 못 드시고 잠결에 신음소리를 내군 하십니다. 그러고도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일손을 잡으십니다. 김구선생도 70고령이 될 때까지 오죽이나 정치세파에 부대끼며 파란만장의 인생곡절을 겪어왔습니까. 그러니 젊은이들처럼 속이 편안할리가 없을것입니다.》

이튿날 장군님앞에 나타난 리경암은 못내 당황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이였다.

《장군님, 김구선생이 잠결에 무슨 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리경암은 침방곁의 응접실에서 1시까지 지켜보았는데 김구가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드는것은 사실이고 별다른 징조는 없어 홍성실과 교대했다고 한다. 장군님께서 자기한테 돌리시는 눈길을 느낀 간호원은 령리하게 생긴 눈을 반짝이며 침착하게 말씀드렸다.

《새벽 세시 반이 되였을 때부터 뒤치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 바싹 긴장해서 귀를 도사렸습니다. 그런데 끙끙 신음소리가 나더니 <아니, 아니야. 안돼.> 하는것이 분명한 잠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30분가량 동안을 두고 가끔 그랬습니다. 안심치 않아 안선생과 함께 불을 켜고 들어가보았더니 김구선생은 언제 일어났는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고있었습니다.》

《그것 보시오. 그가 낮에는 원기왕성하여 도고한 기상이지만 밤에는 잠을 못 자고 고민과 번민을 하고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 여파가 산책에까지 미쳐 걸음씨가 달라지는것입니다. 종항동무.》

김종항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김구선생이 룡악산이랑 남포지구를 보고싶어한다지요?》

《그렇습니다.》

《추억이 짙은 고장들이니까 생각이 많을것입니다. 이젠 회의도 필했겠다, 참관을 조직하시오. 남조선대표들이 가보고 싶은데는 다 가보게 하시오. 참관겸 휴식겸… 참관은 건강에 기본을 두면서 북반부의 현실을 잘 알도록 하는 방향에서 조직하시오. 명승지도 구경시키고… 그러느라면 머리가 거뜬해지고 잠도 잘 잘수 있을것입니다. 특히 종항동무는 김구선생의 건강을 잘 돌보도록 하시오.》

《알았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어 김종항과 마주앉으시여 남조선대표들의 참관일정을 일일이 짜주시였다. 그리고 지방정권기관과 해당 조직들에서 그들의 편의를 잘 돌봐줄데 대한 지시를 떨구시였다. 하셨으나 김구에 대한 근심만은 자못 가슴 한구석에 남아 떠돌고있음을 느끼시였다. 잠소리를 친다?! 그건 분명히 뭔가 고민하고있다는것을 말하지 않는가. 단순히 육체적로화에서 오는 생리적현상이겠는가. 아니, 정신적고민과 번민에서 오는것이 옳다고 봐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회의 전과정에 보여준 김구의 당당한 자세, 결패있는 걸음씨와 호기스러운 발언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호랑이라도 잡을 기상이였는데 뒤에서는 남모를 고민거리를 안고 앓고있는것이 분명하다. 앞뒤가 다른 어지러운 정객생활에서 굳어진 습관이라고 봐야 하겠는가.

장군님께서는 그 리유가 가늠이 가지 않으셨으나 어떤 일이 있든 우리의 진정을 주고 진정을 알게 하는 방도밖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하시였다. 마음의 장벽을 뚫고 통하는 길은 진심밖에 없다는것을 너무도 많이 체험하신 장군님이시였다.

《종항동무, 지방에 나가면 련락수단이 없겠지?》

《큰 공장, 기업소나 군들에는 다 전화시설이 되여있습니다.》

《동무한테 걸음수고를 시킬가봐 그러오. 김구선생의 신상에서 무슨 변화가 있을 때는 즉시에 나한테 전화를 걸어주어야겠소. 동무의 사업보고도 저녁시간에 나한테 직접 해주시오.》

《알았습니다.》

남조선대표들이 민주기지건설로 들끓는 각지를 돌아보는 기간 장군님께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김종항으로부터 김구의 신상에 대해 보고를 받군 하시였다. 그에 의하면 김구의 기분상태와 건강은 나날이 좋아지고있으며 송림의 황철과 남포지구, 룡악산 절간 등 가는 곳마다에서 감탄과 탄복을 련발한다고 하였다. 좀해서는 내색을 안하고 속에 뭉그려두고 저울질하는 형인 그의 입에서 《천지개벽이로다.》, 《희한한 일이로다.》, 《김장군의 정치가 이런줄 알았더라면 내가 왜 반공을 해?》 하는 탄성이 부지불식간에 튀여나왔다는것이였다. 그런데도 새벽산책의 모습은 여전히 호전될줄 모른다고 한다. 어떤 날은 머리를 높이 들고 씨엉씨엉 걸어서 안심되는가 하면 어떤 날은 더 하강선을 그어 종잡을수 없는 불안을 자아낸다는것이였다.

안우생은 김종항과 짜고들어 김구에게 로골적으로 들이댔다고 하였다. 무슨 고민이 있는가, 무엇이 부족돼서 잠조차 편안히 못 드는가, 수십년세월 당신의 손발이 되여 받들어온 이 안우생이 뭐가 미덥지 않아 속을 터놓지 못하는가.

이런 공세가 강화될수록 김구의 입은 더 굳게 닫기고 얼굴색은 시뻘개져 거칠은 숨을 내쉬며 말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차라리 상관하지 말고 지켜보는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러자니 그것이 더 우환거리였다는것이였다. 김구의 산책모습이 얼마나 우울하고 불쌍해보였던지 안우생은 김종항에게 눈물까지 그렁하게 지어보였다고 한다.

《김서기, 이걸 어쩌면 좋소. 우리 두령님이 점점 혼맹이가 빠지는것 같소. 저걸 보오. 이젠 걸을념도 못하고 멍청히 굳어져서 한숨만 푹푹 쉬는구려.》

《안비서, 정말 야단이요. 장군님께서 주신 특별과업을 수행 못했으니 내 어떻게 장군님앞으로 떳떳하게 돌아갈수 있겠소. 서기직에 사표를 내야 할가 보오.》

《에익- 저 령감이 이젠 오망을 하오. 오망을…》

둘사이에 이런 말까지 오갔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거참, 이상한 일이로군. 감동이 클수록 산책은 반비례적으로 저기압이 된다? 량심적인 인간일수록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큰 법인데 아마 그래서인가.)

그런데 지방참관의 마지막날인 오늘은 뜻밖에도 보고시간이 되기 전에 김종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군님, 큰일났습니다.》

김종항의 당황한 목소리에 장군님께서는 속이 철렁하시였다. 김구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난것 같았다. 산책이 어떻고 어떻고 하더니 혹시 뇌출혈이라도 일어난것은 아닐가? 로인의 몸에 흥분이 강하면 십분 그럴수 있다고 장군님께서 제일 근심하시는 문제가 그것이였다.

《무슨 일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긴장된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장군님, 글쎄 김구선생이… 선생이…》

김종항의 떠듬거리는 목소리에 장군님의 음성은 불시에 높아지셨다.

《김구선생이 어떻다는겁니까? 빨리 말하시오.》

《장군님, 김구선생이 방금전 만경대고향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안도의 숨을 후 내쉬며 어이없으시여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였다. 참 사람두.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덤벼치며 이렇게 놀래우다니?! 바다오거우시절 군사놀이를 할 때 김종항이 덤벼치던 모습이 떠오르시여 장군님께서는 허거픈 웃음이 나오시였다.

《그래 동무는 어디서 전화를 겁니까?》

《만경대혁명학원입니다. 방금전 김구선생을 고향집까지 안내해주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예견도 못한 뜻밖의 방문이고 선통도 받지 못한 고향집에서 손님맞을 준비도 되지 못했겠는데 너무 급해서 그럽니다.》

《허허, 참… 사람사는 집에 손님이 찾아가는거야 정상이 아닙니까. 어찌된 일인지 그거나 말하시오.》

그제야 김종항은 흥분을 누르며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참관 마지막일정인 만경대혁명학원을 돌아보고 거기서 자기도 잘 아는 상하이림정의 요인이였던 사람의 아들까지 만나본 김구는 눈을 슴벅이며 산천을 둘러보더니 낯익은 고장이라고, 내 중노릇할 때 신세를 많이 진 인심후한 고장이라고 되뇌이더라는것이였다. 풍치수려한 만경봉을 바라보는 김구의 시선을 좇던 김종항이 별다른 생각없이 한마디 한것이 그만 사달을 일으켰다고 한다.

《선생님, 저기 남산밑의 마을이 장군님의 고향이랍니다. 거기에 생가가 있구 조부모님이 아직 앉아계십니다.》

승용차에 오르려던 김구가 흠칫 놀라며 멈춰섰다.

《생가라구? 조부모님도?》

《예, 농사를 짓고계십니다.》

《어허, 조부께서 년세가 어떻게 되시는가?》

《올해에 77세가 됩니다.》

김구는 입술을 꾹 다물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더니 문득 안우생더러 《비서, 생가로 가자구.》 하더라는것이였다.

안우생은 물론 김종항이 더욱 바빠맞았다. 농사철이라 일손이 바쁜 고향집에 별로 달갑지도 않은 우익정객이 불쑥 뛰여들면 무슨 불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선생님, 후에 들리시는것이 어떻습니까. 오늘은 등산을 하시느라 몸도 고단하고 날도 저물지 않았습니까.》

김종항이 설복했으나 김구는 상고머리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야. 조부님이 나의 형님벌인데 인사라도 드리고 가야지 곁에 두고도 모른척 한다면 그건 백의민족의 도리가 아니야.》

한번 결심하면 좌우를 살피지 않고 곧은배기로 내닫는 김구의 성미여서 김종항도 어쩔수 없었다는것이였다.

(김구선생이 할아버지를 방문한다? 허허, 그것 참 묘한 우연이로군. 할아버지가 김구선생을 어떻게 맞이하실가. 기꺼워하실가, 노여워하실가?)

장군님께서는 두 로인분들의 상봉이 못내 궁금하시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이 흥그러워지는것을 느끼시며 말씀하시였다.

《종항동무, 손님맞을 준비니 뭐니 하고 떠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맞이하면 됩니다. 농사집이 그렇지 호텔만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문득 지난 3월 만경대고향집에 들리셨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그때는 남북련석회의에 남조선정객들을 초청하는 문제를 놓고 론난을 거듭할 때였다. 반공극우익 두령인 김구를 초청하자는 그이의 말씀에 김책까지도 흠칫 놀라며 《김구까지 말입니까?》 하고 반문하였던것이다. 너무도 상상밖이였던지 김책은 장군님의 의사이니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불안감을 감추기 힘들어하였다.

김책이 그런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날 만경대혁명학원에 나가셨던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이 편안치 못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집에서 하루밤을 주무시게 되였다.

장군님께서 오시면 제일 기뻐하시는분이 할머님이시다. 땅처럼 말이 없어 할머님의 지청구를 듣군 하시는 할아버님은 어디 편찮으신가는 물으심에 덤덤히 깊은 생각에 잠겨 담배만 태우시고 할머님이 대신 농사군의 몸이란 봄철이면 늘 그런것인데 일없다며 잠자리를 펴주시였다. 솔가지를 땐 연기냄새가 옛 정취를 불러주는 훈훈한 방안의 노전구들에 할머님과 함께 누우시니 잠이 오지 않으시였다. 이 방안의 낯익은 토벽과 구석구석에 슴배인 아버님, 어머님의 체취와 사랑스런 동생들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오고 백두광야에 묻고 오신 수많은 전우들의 얼굴이 가슴에 맺혀 쉬이 잠을 이루실수 없었다.

어느결엔가 잠이 드셨던 장군님께서는 이상한 소리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시였다. 귀를 기울이시니 웃목에 누우신 할아버님께서 가끔 신음소리를 내시는것이였다. 깨우실가 하다가 곤히 주무시는 할아버님께 오히려 더 방해가 될것 같아 그만두셨는데 신음소리는 곧 멎고 깊은 잠에 드신듯 한 숨소리만 고요한 어둠속에서 높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잠에 드셨던 장군님께서는 바깥마당쪽에서 나는 인적기를 느끼며 일어나시였다. 웃목에 누우셨던 할아버님이 보이지 않으시였다. 언제 일어나 나가셨는지 일손을 잡으신것이 분명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서둘러 조용히 밖으로 나가시였다. 아직은 3월의 쌀쌀한 새벽공기가 추위를 느끼게 하는 마당건너편 헛간에서 멍석을 깔고 새끼를 꼬시는 할아버님의 모습이 보이시였다. 서쪽 다락지붕우로 소소리 솟은 백양나무가지사이로 새벽달빛이 흘러들어 마당을 환하게 비치는데 그 여광을 벗삼아 새끼를 꼬시는 할아버님의 모습이 장군님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며 안겨오시였다.

《할아버지, 왜 좀더 주무시지 않구 벌써 나오셨습니까?》

할아버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묵묵히 하던 일만 계속하시였다. 짚을 추겨 거쿨진 손바닥에 먹이고 스르륵- 서너번에 다 꼬시고는 또 다른 짚가락을 먹이시고… 잔등뒤로는 새끼오리가 둥그렇게 원을 지으며 감기고있었다.

장군님께서도 아무 말씀없이 할아버님의 옆에 자리를 정하시고 새끼를 꼬기 시작하시였다.

《스르륵- 스르륵-》

《사르륵- 사르륵-》

두분께서 새끼를 꼬시는 소리만이 새벽녘 마당의 고요를 노래가락처럼 조용히 흔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할아버님께서는 잔등뒤로 부풀어오른 새끼뭉치를 돌아보고 그제야 장군님께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그만하면 됐네. 장군의 신색이 왜 그런가?》

뜨거운 정이 쌓이고쌓인 그 한마디 말씀에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뭉클해나시였다.

《할아버지, 나라는 해방됐지만 걱정이 커서 그럽니다.》

어째서인지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앞에 나라의 수령으로서가 아니라 손자로서의 근심걱정을 다 터놓고 의지하고싶은 혈육적인 충동에 사로잡히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주섬주섬 호주머니에서 담배쌈지를 꺼내시였다. 썬 담배를 대통에 꾹꾹 눌러 재우시고 장군님께서 켜드리는 성냥불을 붙여 한모금 깊숙이 빨아 연기를 내보내신 후에야 말씀을 떼시였다.

《며칠전에 평양녀장군이 왔다갔네. 녹두가 있으면 좀 달라하더군. 늙은이들에게는 녹두음식이 제일이라면서. 뭐 듣자니 남에서 김구랑 올 예정이라면서?》

《예, 할아버지, 나라가 둘로 갈라지느냐 마느냐 하는 시각이여서 애국하자는 사람과는 그가 누구든 다 모여앉아 회합을 열고 토론하자는겁니다.》

할아버님께서는 묵묵히 담배질만 하시다가 후- 한숨을 내쉬시였다.

《장군의 아버지도 그렇게 애쓰더니… 그래야 하구말구. 그런데 김구 그 사람은 늙마에 길을 잘못 드는것 같아.》

장군님께서는 은근히 놀라시였다.

《김구를 아십니까?》

《알아도 잘 알지… 우리 집에도 몇번 왔댔네.》

《예?》

장군님께서는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며 할아버님의 주름살이 얽힌 얼굴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저 주름살 오리오리는 숱한 자식들을 독립운동의 길에 내세우고 애오라지 해방의 날을 믿어 고향집을 꿋꿋이 지켜오신 할아버님의 피어린 애국의 년륜이 아닌가. 이젠 80이 멀지 않은 나이이신데 해방의 락을 보며 좀 쉬면 좋으련만 일이 목숨이라며 손에서 호미자루를 놓을줄 모르신다. 그것이 안타까와 정숙동무는 지팽이를 마련한다, 농사일에 편리하게 옷을 지어드린다 하며 지성을 다한다. 지금 새끼를 꼬시며 입고계시는 저 품이 널널한 솜옷도 정숙동무가 마련해드린 옷이다.

《어찌된 일인지 좀 말씀해주십시오.》

할아버님께서는 장군님의 의혹을 풀어주시려는듯 천천히 말씀을 떼시였다.

《그게 장군이 태여나기 전 먼 옛날이였지. 왜놈을 찔러죽인 김구를 잡으라는 방문이 이 시골에도 나붙었네. 하루는 룡악산 절간에서 낯모를 중이 삿갓을 쓰고 밥동냥을 하러 오지 않았겠나. 나 김구외다, 밥 좀 주시오. … 사방 방이 나붙었는데 이름자부터 대는걸 보니 통이 크긴 큰 젊은이야. 집안으로 불러들여 술까지 대접하며 통성을 했네. 나보다 다섯살 아래더군. 날 형님이라고 하면서 수수떡 한 옹배기 다 먹는데 식성이 여간 아니야. 그후에도 몇번인가 동냥와서 낯을 익혔지.》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과 김구사이에 이런 인연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수 없으시였다. 어쩐지 이런 우연의 일치가 민족대단합에 큰 도움이 될것 같은 예감마저 들면서 가슴이 시원하게 열려지는감을 느끼시였다.

《할아버지, 김구선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나쁘다고 시비질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 험한 세월에 왜놈을 죽인다는건 목숨을 내대고 할 일이 아닌가.》

할아버님께서는 한동안 담배만 뻐금뻐금 빨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새벽달이 지는지 다락지붕의 그림자가 점점 마당을 길게 덮고 남산우의 하늘이 희벗해지고있었다. 할아버님께서는 끙- 하고 힘들게 자리를 이시며 헌헌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알고 짓는 죄가 나쁘지 몰라 짓는 죄야 어떡하겠나. 일깨워줘야지.》

《할아버지!》

장군님께서는 감동의 커다란 충격에 휩싸여 할아버님을 우러러보시였다. 한뉘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매며 농사일밖에 모르시는 할아버님께서 세상만사에 도통하시고 금보다 귀중한 조언을 주시다니?!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으신 이민위천의 철리를 먼데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계시는 할아버님의 모습에서 또 한번 절감하는 크나큰 환희와 격동에 휩싸이시였다. 극우익까지 다 포섭하는 용단을 내리기는 하셨지만 할아버님의 한마디 말씀이 그 용단의 거대한 힘이 되고 날개가 될줄은 정말 모르시였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시는 장군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시였다. 방금 김종항이 큰일이라도 일어날것처럼 덤벼치지만 어째서인지 좋은 결실을 가져오리라는 기대를 은연중 품게 되시는것이였다.

 

3

봄빛이 무르녹는 정원에는 진달래, 개나리, 살구꽃이 한벌 지여 바람결에 분분히 날리고 배꽃, 사과꽃들이 하얗게 피여나고있었다. 늦잠꾸러기인 포도넝쿨과 대추나무에도 새 움이 발그레하게 돋기 시작했다. 어느덧 5월초이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김책과 함께 정원길을 걷고계시였다. 회색닫긴옷에 중절모를 쓴 김책은 버쩍 마른 얼굴에 진중한 빛을 띠우고 장군님과 천천히 발걸음을 맞추고있었다.

《장군님, 아무래도 김구선생의 숙소방문은… 제 장군님의 심중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김구야 권력다툼으로 체질이 굳어진 사람이 아닙니까. 다시 생각해보시는것이 어떻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김책의 말뒤에 숨은 뜻을 음미해보시였다. 김책동무는 무엇을 우려하고있는가? 숙소방문을 단순히 도덕의리적문제로 보고있지 않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과 《대한민국림시정부》 주석과의 관계문제로 보는것이 아닌가. 십분 그럴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먼저 찾아가면 김구가 기고만장하여 림정법통의 력사는 수십년이요, 북조선인민정권은 겨우 2년이니 응당 그래야 한다고 우쭐해질수 있다며 반대하고있다. 김책도 그에 동조하는가?

장군님의 심중을 읽은듯 김책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씀드렸다.

《장군님의 김구 숙소방문은 우리와 우익민족주의자들과의 련합을 극구 반대하던 사람들속에서 어지러운 요설을 퍼뜨릴수 있는 언질을 줄수 있다고 봅니다. 갓 탄생한 우리 정권의 권위와 영상에 흠이 되지 않을가 걱정됩니다.》

《인민정권의 권위문제라…》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되뇌이시고 아무 말씀없이 걸음을 옮기시다가 다시 말씀을 떼시였다.

《김책동무,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것은 아닙니까. 숙소방문이 무슨 정치적문제라고 그런 어마어마한 표현을 쓰겠습니까. 난 그저 우리 젊은 사람들이 로인들을 먼저 찾아보는것이 도의라고 생각해서 그러는것입니다. 더우기 김구선생한테는 먼저 가보고싶은 마음이 자꾸 앞서는거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책이 장군님의 말씀뒤에 깃든 사연과 뜻을 헤아려보고 좀 미안한 태도를 취했다.

《장군님, 그러시다면 제가 김구선생한테로 가고 허헌선생한테는 다른 동무를 보내는것이 어떻습니까?》

지방참관을 마친 남조선대표들이 하루 휴식을 하게 된 오늘 오후에는 간부들이 그들의 숙소를 방문하게 되여있었다. 김책은 남조선의 수십개의 크고작은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위와 역할, 통일운동에 기여한 공헌 등을 고려하여 그에 맞게 방문간부들의 순위를 정하였다. 김구의 한독당에는 다른 부위원장이 가도록 하였으며 김책은 옛 은사인 허헌의 숙소를 방문하게 되여있었다.

《그러면 허헌선생이 섭섭해하지 않겠습니까. 그 선생은 김책동무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을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머리우로 얼기설기 건너간 가름대우에 엉켜있는 포도넝쿨에 시선을 던지시며 문득 김책에게 물으시였다.

《김책동무, 솔직히 말해보시오. 김구선생한테 무슨 쌓인 원이라도 있는것은 아닙니까?》

김책은 약간 놀라는 표정이였다.

《예, 솔직히 말씀드려 있습니다. 제 산에서 싸울 때부터 그에게 묻자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산에서 싸울 때부터?》

장군님께서는 은연중 놀라시며 반문하시였다.

《예, 이번에 장군님께서 과거를 백지화하자고 하시여 참았는데 첫째로 당신이 조선독립을 원하고 민족을 사랑한다고 말은 잘하는데 그러면 왜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조선혁명가들을 테로하는가. 당신이 테로하여 사살한 상하이파견군 사령관 시라까와대장과 조선혁명가들이 그래 같은 계렬의 적수들인가. 둘째로 당신이 충칭(중경)에서 림정주석을 할 때 쟝지에스(장개석)를 찾아가 뭐라고 했는가. 만저우(만주)에서 혈전을 벌리고있는 빨찌산이 다 나의 부하들이다, 그들이 항일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있다는것을 위원장도 잘 알지 않는가, 원조자금을 보내야겠는데 좀 도와달라, 그렇게 해서 거액의 자금을 받았는데 그걸 어디에 다 써버렸는가, 이 두가지 문제만은 따져묻자고 별러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걷기만 하시였다.

자신께서도 산에서 싸우실 때 김구의 반공행위를 가끔 듣군 하시였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중국관내의 반일애국세력과의 련합을 모색하시면서 제일 관심을 두신것이 김구의 림정세력이였다. 그의 반공행위는 그자신의 본의가 아니라 인류의 신성하고 아름다운 리상인 사회주의를 당파싸움과 령도권쟁탈에 악용한 행세식맑스주의자들의 죄로 보아야 할것이다. 그런데 김책동무는 무엇을 보지 못하는가. 김구의 반공 일면에 분노한 나머지 그밑에 깔린 애국심은 차요시하는것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뒤엉킨 가지들이 어느 원줄기의것인지 알수 없는 포도넝쿨을 바라보시다가 김책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김책동무, 과거를 계산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것을 백지화하자고 이미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한입으로 두말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협잡을 한다고 해서 우리 혁명가들이 약속을 어기고 옴니암니 따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정치에는 정의와 진리가 없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나는 1937년도에 보천보를 쳤을 때 김구가 상하이조계지에서 그 소식을 듣고 조선이 살았다고, 이제부터는 김장군부대를 지원해야겠다며 련락원을 파견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의 민족적량심을 알게 되였습니다.》

김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장군님, 그 민족적량심이 순결하고 깨끗한것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 의아한 시선으로 김책을 주시하시였다.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장군님, 제 혼자만 알고있자고 했는데 기탄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 김구가 련락원을 파견하면서 김장군을 만나거든 자기의 친서를 전하고 조선인민혁명군을 광복군산하의 동북별동대로 하며 그런 경우 림정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것을 합의보고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도 얼마전에야 그 이야기를 듣고 분격했더랬습니다. 그러나 김구초청이 결정된 마당에 와서 그런 문제를 자꾸 꺼내는것은 좋지 않다고 그 의견을 눌러놓았습니다.》

한동안 묵묵히 걷고만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서 깨여나시며 언뜻 밝은 빛을 띠우시고 헌헌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나도 알고있습니다. 김구선생이 그런 조건부를 걸고 련락원을 파견한것은 사실입니다.》

《예?!》

《허허허… 김책동무, 그래도 난 그 련락원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구선생으로서는 쇠퇴몰락하는 림정과 광복군의 운명을 우리에게 의탁하려 한것인데 일제를 몰아내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만 있다면 나는 그와 함께 싸우는것을 환영했을것입니다. 민족이 다르고 정견이 다른 중국인반일부대와도 손잡고 공동전선을 폈는데 같은 민족끼리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달리는 어찌할수 없는 자신의 절절한 심정을 피력하시였다.

《김책동무, 사실 나는 산에서 싸울 때부터 김구선생과의 제휴를 생각해왔습니다. 그한테서 좋게 본 점은 무엇인가. 군대를 크게 무어 항일투쟁을 본때있게 벌려보려는 그것입니다. 김구선생은 무저항주의적인 실력배양이나 외교적방법으로 독립을 해보려는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독립은 오직 무장으로 일제를 때려부시는 길밖에 없다고 본 사람이였습니다. 물론 세계관적인 제한성과 투쟁방법에서의 소극성으로 하여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그 애국심이야 귀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는 우리의 무장투쟁소식에 그토록 관심하고 손을 잡자고 한것입니다. 돈문제도 그렇습니다. 쟝지에스뿐아니라 미국의 교포들에게도 김일성부대를 지원해야 한다면서 군자금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세로 보아 군자금이 우리한테 전달될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조직선을 타야겠는데 조직선을 찾기가 불가능했을것입니다.》

김책은 고개를 숙이고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다. 뚜벅뚜벅 무겁게 내짚는 발자국소리가 그의 심중을 대변하고있었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김책은 심각한 안색으로 머리를 버쩍 들며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장군님, 확실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김구의 반공 일면만 보았지 그의 애국적인 측면까지 깊이있게 전면적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최용건동무도 저와 같은 립장인데 제가 잘 말해서 마음을 풀어주겠습니다. 누구보다도 장군님의 뜻을 앞장에서 받들어야 할 우리들이 김구를 청해놓고서도 또 이런 실책을 범했으니 정말 죄송합니다.》

김책이 얼굴을 붉히며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렸다.

《김책동무, 지금 우리 혁명이 어떤 난관에 부딪치고있는지 동무도 잘 알지 않습니까. 자칫하면 국토와 민족이 영구분렬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소스라쳐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은 체면도 자존심도, 량심과 의리도 모든것을 나라의 자주독립과 통일에 복종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이룩할수만 있다면 나는 일개의 전사로 되여도 원이 없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장군님!》

김책은 아무런 말씀도 드릴수 없었다. 그의 굳어진 마음을 풀어주시려는듯 장군님께서는 문득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김책동무,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압니까?》

《예? 그거야…》

김책은 뜻밖이여서 어정쩡해졌다.

《허 참, 글쎄 우리 할아버지와 김구선생이 젊었을적 서로 만나본 사이가 아니겠습니까.》

《예?! 아니 원… 그럼 구면이란 말씀입니까?》

김책이 호기심을 나타내며 안색이 확 풀렸다. 장군님께서는 전번 할아버님과 새끼를 꼬시며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김책이 희색이 만면하여 감탄하였다.

《거참, 우연의 일치입니다. 김구선생이 그런줄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알게 되였겠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어쩐지… 두분이 겸상하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화기애애하게 담소하더라는 김종항의 말을 듣고 난 그저 옛날 동세대분들이여서 그런가부다 했습니다. 그런 연고가 있을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나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 돌아온 날 밤에도 김구선생은 온밤 깊은 잠에 못 들고 신음소리까지 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우리 할아버지가 무슨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나 하고 근심했더랬습니다.》

《장군님, 정말 풀기 힘든 수수께끼라고 봅니다. 할아버님과 겸상을 하고 술대접까지 받았으면 속이 다 풀렸겠는데 뭐가 얹힌것이 있어 밤에 잠소리까지 치는지 정말 안타까운노릇입니다.》

김책은 본의아니게 흥분이 살아오르는것을 자제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렇습니다. 김구선생은 우리 할아버지와 마주앉아 평생 이렇게 좋은 술맛은 처음이라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아와서는 잠소리까지 쳐서 사람들을 깨웠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 선생이 우리한테 무슨 의견이 있거나 맺힌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딴의 어떤 문제를 안고 모대기는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책은 그동안 한독당과의 사업정형을 재빨리 돌이켜보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건 들어주고 리해시킬건 리해시켜 그들자신도 만족하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숙제로 남은 문제는 없었습니다.》

《김책동무, 다시한번 잘 생각해봅시다. 김구선생은 주장이 강한 사람입니다. 한번 결심한것은 철회하기 매우 힘들어하는 곧은 성미입니다. 그런 성미에는 좋은것도 있고 나쁜것도 있습니다. 자체모순에 빠지면 헤여나오기 힘들어하지요. 모든 사실로 보아 그는 자기 긍정과 자기 부정의 자체모순에 빠져 진통을 겪고있다고 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그에게 진심을 주고 성의를 기울여 스스로 헤여나오도록 도와줍시다. 밤에 잠을 설치고 산책이 저조해지는 원인을 본인의 입으로 말하도록 힘껏 도와줍시다. 그분이야 로인이 아닙니까. 70고령의 몸으로 나라를 통일하겠다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온분인데 이런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장군님, 알겠습니다.》

김책은 자기의 가슴속에 오랜 기간 남아있던 한점 그늘이 말끔히 가셔지고 민족대단결의 드넓은 바다가 안겨진듯 한 거창한 호흡을 느끼며 해빛넘치는 푸른 봄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내 한점의 티없이 장군님을 받들자고 맹세하며 오늘까지 살아왔지만 장군님의 그 무한대한 민족애의 세계를 언제면 다 알수 있을것인가!

 

4

김일성장군님께서 숙소를 방문하시게 된다는 전갈을 받은 김구는 감격스럽기도 하고 황송스럽기도 하여 어찌할바를 모르고있었다. 그동안 여러차례 장군님을 만나뵙기는 했지만 그것은 다 회의장이나 협의회 같은 공식장소여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로는 되지 못하였다. 그는 평양을 떠날즈음에 장군님을 단독으로 찾아뵈올 궁리를 하던차에 장군님께서 먼저 찾아오신다니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담화에서 제기될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발언준비를 한다, 응접실에 회담장을 꾸린다, 마당에 림정요인들을 정렬시킨다 하며 바삐 돌아치는데 마당밖에서 차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장군님께서 들어서시는것이였다. 더욱 놀라운것은 수원들도 없이 서기 김종항 한사람만을 데리고 오신것이였다.

장군님께서 만면에 눈부신 웃음을 지으시며 들어서시니 비슬나무가지들에 가리워 으슥해보이던 마당이 갑자기 환해지고 널마루며 아자무늬의 미닫이며 처마밑의 오랜 기둥들에 생기가 넘치는듯 하였다.

김구의 인사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격식을 차려 마당에 두줄로 늘어선 림정인사들의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기도 하시고 나이많은 운계앞에서는 특별히 건강이며 고향과 가족안부도 물어보시였으며 젊은이들에게는 가벼운 롱담도 거시여 대번에 엄엄하던 공식적인 분위기를 화락한 가정적분위기로 만들어놓으시였다.

이어 응접실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회담탁처럼 긴 책상에 마주놓은 숱한 의자들을 일별하시고 금강산 구룡폭포의 대형풍경화가 걸려있는 바람벽밑의 가죽쏘파에 스스럼없이 김구의 손을 잡아 앉혀주시며 자신께서도 함께 앉으시였다.

김구는 문밖에 일렬종대로 서서 회담탁으로 들어설 준비를 하고있는 수원들에게 필요없다는듯 손을 내저어보이고 어줍은 표정을 지었다.

장군님께서는 두손을 마주 쥐고 비벼대며 옹색해하는 김구의 마음을 눙쳐주시려는듯 탁 트인 음성으로 말씀을 떼시였다.

《김구선생, 격식을 차릴거야 있습니까. 그저 한집안식구처럼 얘기나 나누자고 왔습니다. 그래 건강은 어떻습니까. 년로하신 몸에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예, 그저 황공할뿐이외다. 난 예나제나 장군댁의 신세를 지면서 사는 몸인가 봅니다.》

장군님께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제 이번에 렴치없이 빈손으로 만경대생가를 찾아갔드랬습니다. 그런데 장군의 조부님이 옛날 제가 동냥쪽박을 차고 왜놈을 피해다닐 때 애국자라고 성의껏 도와준 그분일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럴줄 알았더라면 이 김구가 형님벌 되는 조부님께 술 한잔이라도 올려야 하는건대 제가 되려 술대접을 받았으니 이런 불륜이 어디 있습니까.》

《하하… 애국을 하고 애국자를 돕는건 우리 집안의 가풍입니다. 응당한 일인데 뭘 그러십니까.》

《아니올시다. 장군, 매끼 녹두찬이 오르는 진수성찬을 대하면서도 눈이 어두워 몰라봤으니 이젠 체신머리없어지나 봅니다. 김녀사로 말하면 옛날 황후격인데 늙은이를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드시다니… 꿈만 같은 일이여서 황송하기만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화제를 돌리시려는듯 담배를 권하시였다.

《피워보십시오. 이름난 성천담배입니다. 우리 나라 담배공장에서 처음으로 만든 권연입니다.》

《예예, 감사합니다. 장군, 제가 김장군을 먼저 찾아뵈워야 하는건대 늙은게 주책머리없이 정말 인사불성이 됐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합니까. 젊은 사람이 나이많은분을 찾아뵙는거야 도의가 아니겠습니까. 더우기 선생은 년로한 몸으로 38°선을 넘어와 회의성공에 큰 기여를 하셨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장군님의 호방하고 활달한 성품에 김구는 자기 몸이 왜소해지는감을 느낀듯 어깨를 돋구었다.

《장군, 실로 느끼는바가 큽니다. 남은 망하는 집안 같고 북은 흥하는 집안 같습니다. 공장이 돌고 어딜 가나 살림이 펴이여 흥성거리고… 회의에 참가하고 참관을 해보니 딴세상에 온것 같습니다. 언제 전조선대표들이 이렇게 모여본 일이 있으며 또 의견일치를 본 일이 있습니까. 이건 다 장군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찌 제 덕이겠습니까. 선생과 같은 대표 여러분들이 애국, 애족의 리념으로 단결했기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는 사대와 파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영영 매장하고 조선인민이 단결하면 자기의 힘으로 조국의 운명을 개척해나갈수 있다는것을 세계앞에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이 뒤떨어져 나라를 다스릴 힘이 없으므로 대국들의 후견제나 신탁통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미국과 매국역적들에 대한 커다란 타격으로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북남련석회의가 가지는 력사적의의와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공동성명서, 결정서, 격문을 관철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한동안 말씀하시고 김구선생이 앞으로도 지조를 굽힘이 없이 자주적인 통일정부수립과 통일전선을 위한 투쟁에서 잘 싸우리라는 기대를 표명하시였다.

김구는 시종 흥분을 금치 못해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며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김구선생, 뭐니뭐니해도 신변에 각별히 주의하고 건강을 돌보아야 합니다. 나는 우리 동무들에게 혁명가에게 자본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이라고 말하군 합니다. 그런데 이번 회의기간 우리의 성의가 부족하여 선생의 건강에 무리가 간것 같습니다.》

김구의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이 불깃해지며 표정이 굳어졌다.

《장군, 솔직히 말씀드려 이번에 저는 되게 앓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은근히 놀라시며 측은한 눈길로 김구를 살펴보시였다. 하얀 명주두루마기우로 굵게 솟아오른 목덜미에 피줄이 퍼렇게 살아오르고 관자노리가 풀떡풀떡 뛰는것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말씀하십시오. 허물할거야 뭐 있겠습니까.》

김구는 쭈밋쭈밋 서슴어하는 눈치더니 헛기침을 깇고나서 태도가 돌변해졌다.

《장군, 먼저 무엄하게 물어볼것이 있습니다. 장군이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공산정치를 펴는것이 사실인가 하는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의아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여 얼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으시였다.

《하하… 난 선생이 자기 눈으로 다 보셨으니 잘 아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참관도 하고 만나볼 사람도 만나보시지 않았습니까. 현실 그대로입니다. 물론 건국초기이니 부족점이 있을것이라고 보면서 선생의 고견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김구의 얼굴이 활딱 붉어지더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래서가 아닙니다. 장군, 우직하다고 이 늙은것을 탓해도 할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공산정권으로 알고있는 북의 정권에 어떻게 자본가가 있을수 있습니까. 저 평양양말회사 사장같은 사람이 북조선인민회의 대의원이라니 하는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안악땅의 안씨는 왜정때 우리 림정에 군자금을 대주던 유산자인데 반일운동을 했다고 군인민위원장을 한다고 합니다. 독실한 그리스도교신자인 도산의 누이동생은 큰 녀맹간부를 하고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종잡을수 없습니다.》

《김구선생, 그들이 그렇게 일하는것이 좋으면 좋았지 나쁠거야 없지 않습니까.》

《그야 이를데 있습니까. 그런데 장군, 그게 어떻게 공산정권인가 하는것입니다. 내가 일생 싸워온 화요파나 엠엘파, 상하이파, 이르꾸쯔크파와 같은 공산당패들이 웨쳐대는 정치와는 하늘땅차이가 아닙니까. 헌즉 김장군의 정견과 정치에 어찌 당혹하지 않을수 없으며 어리둥절하지 않을수 없겠습니까.》

《김구선생, 무슨 오해가 생긴것 같습니다. 선생이 해외에서 일생 싸워왔다는 무슨 파니 하는 공산주의자들은 진짜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다 공산주의의 탈을 쓴 가짜공산주의자들입니다. 진정한 혁명가들은 정견우에 자기 민족을 제일로 내세웁니다. 나라와 민족이 있고야 정견이 있는것이지 나라와 민족이 없는데 정견은 해서 뭘 하겠습니까.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나라를 찾고 우리 민족을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이 땅우에 착취와 압박이 없는 문명하고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우는 애국자들입니다. 나도 혁명을 하면서 나라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는 가짜공산주의자들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민족주의자들가운데도 애국을 부르짖으며 매국을 하는 가짜민족주의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리승만과 같은 사람말입니다. 공산주의든 민족주의든 주의에는 관계없이 나라와 민족의 자주독립과 리익을 우선시하지 않고 외세에 붙어서 개인의 영달과 권력을 추구하는자들은 다 가짜공산주의자, 가짜민족주의자들입니다. 선생은 정치가인데 가짜와 진짜를 갈라보는 옳바른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군!》

김구는 이렇게 열차게 부르짖으며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렀다.

《내가 우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청맹과니였습니다. 장군의 말씀을 듣고보니 평양에 와서 생긴 의문이 다 풀리는것 같습니다. 나는 장군이 공산주의자인데 어떻게 되여 세상에서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정권을 세웠는지 리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장군이 세운 정권이야말로 조선에서는 제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쪽땅에서는 미국사람들과 미국을 등에 업은 사람들이 북의 정권은 쏘베트의 앞잡이라고 얼마나 열을 올려 선전하는지 이 우둔한것이 속아넘어서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낫다고 제 소견에는 장군의 리념을 김장군주의라고 하든지 그리고 정권도 김장군식정권이라고 선포하면 민족주의자들이 다 합작에 떨쳐나서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사실 남쪽의 어떤 사람들은 나처럼 장군님식의 공산주의에 대해 인식을 바로가지지 못해 오밀조밀 재면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느 사이에 자그마한 원탁이 앞에 놓이고 차잔이 오른것을 보시고 김구에게 차잔을 권하시였다.

《그래 그 문제로 하여 앓았습니까? 나는 선생이 밤에 잠소리까지 내고 새벽산책도 기운을 잃는다기에 정말 걱정이 컸드랬습니다.》

《장군! …》

김구는 차잔을 들고있는 손을 우들우들 떨었다. 그리고 감히 장군님의 시선을 마주보지 못하고 얼굴을 숙인채 몹시 주저하는 눈치로 말씀을 드렸다.

《장군, 장군은 상하이림정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들지 못하고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속을 바재이는 김구를 환한 미소를 지으신채 너그러운 안광으로 굽어보시였다. 이 완고한 로인이 그래도 제딴에는 반일독립을 하겠다고 수십년세월 림정을 끌고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가는 곳마다 차례진것은 비난과 수모였으니 그것이 얼마나 가슴에 맺혔으면 이런 질문을 하랴. 하내비처럼 믿었던 미국조차도 림정을 정부로 인정할수 없다고 개인자격으로 입국하라며 비행기조차 내주지 않아 울분을 터쳤다는 로인… 그 반발로 리승만의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세우되 림정의 법통을 계승한 통일정부수립을 강하게 주장한것이 아니겠는가.

《… 몰라 짓는 죄야 어떡하겠나. 일깨워줘야지.》

문득 자신의 가슴을 치며 은은히 들려오는 할아버님의 목소리… 장군님께서는 흔연히 웃으시며 말씀을 떼시였다.

《림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구요? 하하… 난 림정의 존재를 우리 민족의 절개를 꿋꿋이 지켜온 애국적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주저없이 한마디로 시원히 하시는 말씀에 김구는 화뜰 놀라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애국적소산이라고?! 아, 얼마나 피의 곡절을 겪으며 갖은 비난과 괄세를 받으며 초불처럼 가냘픈 명맥을 이어온 림시정부였던가. 자기의 일생이 집착된 림정을 김일성장군님께서만이 애국의 소산이라며 치하하시지 않는가. 김구는 가슴속에 얹혔던 얼음덩어리가 순간에 봄눈녹듯 하며 눈물이 불쑥 솟아나 얼른 손수건을 꺼내 눈언저리를 닦았다.

장군님께서는 감격을 억제하느라 입술을 떠는 김구를 너그러운 안색으로 바라보시며 친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세계력사를 살펴보면 망명정부의 례가 적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나뽈레옹은 왕당파에 밀려나 외딴섬에 망명정부를 세웠고 2차대전시기 뽈스까민족주의자들은 쳐칠의 비호밑에 영국에 망명정부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상하이림정과 같이 우리 나라에서의 망명정부는 계급전쟁이나 왕당파와의 싸움에서 밀려나 생긴것이 아니라 일제에게 국권을 통채로 빼앗긴 결과에 생긴것입니다. 민족의 자주권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안고 3.1봉기가 있은 후에 중국에 망명한 독립운동자들에 의해 나온 림시정부는 5천년의 력사국인 조선이라는 나라가 민족의 정기를 면면히 이어 세계에 존재한다는것을 선포한것으로서 애국적인 소산이 아닐수 없습니다. 물론 상하이림정은 발족되자부터 각료선발을 둘러싸고 파벌싸움을 했습니다. 림정의 리합집산이 계속되고 일제에게 쫓겨다니는 간고한 속에서도 김구선생은 애국의 초지를 버리지 않고 무장투쟁의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선생은 리봉창의 천황암살사건, 윤봉길의 시라까와대장암살사건을 벌리는 등 폭력의 방법으로 반일투쟁을 벌렸습니다. 리승만이 미국으로 쫓겨가고 김구선생이 주석으로 되면서 림정의 활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국민당정부로부터 림정을 승인받았고 만저우와 중국의 여러 무관학교들에 조선청년들을 보내여 군사간부들을 키웠으며 40년대에는 충칭(중경)에서 광복군도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희생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런 투쟁방법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었습니다.

나는 혁명투쟁에 나선 첫날부터 나라의 해방은 한두사람의 선각자의 힘으로는 할수 없다는것, 전조선민족이 사상과 정견, 계급과 계층, 유산자와 무산자, 신앙의 차이와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일치단결하여 싸울 때 그리고 그 투쟁방법에 있어서는 조직적인 항일유격전쟁에 전민무장봉기를 배합할 때만이 승리할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인민에게 의거하고 인민을 조직화, 의식화하여 혁명의 주인으로 키우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에-》

김구는 장군님께서 상하이림정의 조직경위와 당파분쟁, 투쟁내용에 대해 낱낱이 알고계시는데 대해 감탄하였고 소극적인 투쟁, 그릇된 방법에 매달려서는 승리할수 없다고 지적하신데 대해서도 부끄러워할 대신 그저 황홀한 심경에 싸여 듣고있었다. 그는 림정의 진가를 애국으로 평가해주신데 너무도 감동되여 무슨 말씀이든지 다해주십시오, 매라도 달게 맞겠습니다 하는듯 한 허심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장군님의 빛나는 안광과 말씀에만 심취되여있었다.

《김구선생, 림정이 우리 나라 민족운동사에 지조를 굽히지 않는 독립투쟁업적과 피맺힌 교훈을 남긴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산에서 싸울 때부터 김구선생과 련계를 맺으려고 여러모로 애를 썼습니다. 선생도 우리와 손을 잡으려고 련락원을 파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쟝지에스한테 지원금을 요구하고 미국의 교포들에게도 군자금을 호소하여 우리를 돕자고 노력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선을 잇지는 못했으나 무엇만은 확고히 알수 있는가. 주의주장에 관계없이 진심으로 애국하려는 사람은 다 이렇게 뜻이 통한다는 그것입니다. 나라의 자주독립과 통일을 이룩하는데서도 이것이 핵입니다. 이 진정한 애국심을 핵으로 민족대단결을 이룩해야 합니다. 민족대단결이 우리 민족의 좌우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김구는 그저 황홀한 표정에 싸여 장군님을 우러르더니 헌헌한 음성을 터치였다.

《장군, 편협하고 옹졸한 이 늙은이를 욕이라도 콱 해주십시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선생은 독립운동의 선배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앞으로 투쟁을 더 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민족의 영구분렬을 막고 전조선적인 완전통일정부를 세워 우리 조국을 대국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주적이고 부강번영하는 독립국가로 세계의 선진국가대렬에 당당히 올려세우는가에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격려하실수록 김구의 얼굴은 더욱 흥분으로 달아오르고 무엇인가 말하고싶은 심중을 달래느라고 애쓰는것이 알리였다. 평시에 은근히 서려있던 누가 나를 어쩌지 않나 하는듯 한 경계심, 거칫하면 쳐내깔리려는듯 한 반항아적인 도도한 기운은 차츰차츰 어디로 다 빠지고 평범한 촌늙은이처럼 순박하고 진실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김구를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시며 장군님께서는 더욱 힘이 될만 한 말씀을 고르시였다.

《김구선생, 나는 혁명투쟁에 나선 첫날부터 민족통일전선을 이룩하는것을 근본문제로 보고 그를 위해 고심해왔습니다. 그 전렬에는 언제나 중국관내의 반일애국세력인 림정이 있었습니다. 특히 김구선생이 군대를 크게 무어 반일항전을 벌려보려는 욕심이 저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세가 허락치 않아 그때는 아쉽게 됐지만 해방된 오늘에라도 이렇게 건국의 길에서 손을 잡게 되였으니 기쁜 심정을 금할수 없습니다. 진정한 애국자들은 멀리 떨어져있어도 서로 뜻이 통하고 어느때든 만나게 되며 힘을 합치게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별안간 김구는 쏘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장군님앞에 정중히 서서 허리를 굽히는것이였다.

《장군님, 제 인사를 받아주십시오.》

장군님께서도 놀라시며 일어나시였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말씀을 낮추십시오.》

《아닙니다. 장군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 못된 두상이 장군님께서 우리 림정을 인정해주십사 하는 생각을 품고있었더랬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스스럼없이 터치는 김구의 고백을 너그러운 미소로 받아주시며 그의 손을 잡아 쏘파에 앉혀주시였다.

《하하… 인정은 력사가 하고 인민이 하는것입니다. 내 개인이 무슨 큰 존재라고 인정을 하고말고 하겠습니까. 나는 초기혁명활동시기에 행세식공산주의자들이 감자도장을 새겨가지고 국제당의 승인을 받으려고 뛰여다니는것을 보고 저런 식으로 혁명을 해서는 안되겠다, 우로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밑으로 내려가자, 인민대중속으로 들어가자, 인민대중이 인정하면 국제당은 자연히 따라다니면서 인정해줄것이다라는 배짱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김구는 얼굴이 환해지며 헌헌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허허… 그러니 이 두상이 못된 두상이 아닙니까. 장군님, 글쎄 제딴에는 련석회의참가로 북에 온다면서 뒤에 딴 보따리 하나 차고 왔습니다. 이 기회에 김장군의 인정을 받고 남에 나가서 리승만을 보고 네가 뭐냐, 김장군이 우리 림정을 인정해주셨다 하고 대판 들이대자고 했습니다. 리승만을 엎어놓는데는 장군님의 인정이 가장 위력한 무기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평양에 도착한 그날 밤부터 다른 김구가 머리를 들면서 그것이 옳지 못한 생각이라고 자꾸 충동질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회의도중에서나 참관도중에서나 이 생각은 나날이 커져 머리를 앓았습니다.》

김구는 허연 머리를 푹 떨구고 두손을 마주 비벼댔다.

《김구선생, 인류력사를 살펴보면 권력투쟁으로 흘러왔다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한 왕조가 다른 왕조로 바뀌우고 특정한 계급과 특정한 인물이 백성을 다스리고… 그래서 나는 혁명에 나선 첫날부터 아니다, 백성이 권력의 주인이 된 세상을 만들자, 인민이 통치자를 섬길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인민을 섬기고 인민의 심부름군이 되여 일하는 새세상을 만들자, 이런 리념을 안고 오늘까지 싸워왔습니다. 그래서 각급 주권기관은 근로하는 인민의 대표자들이 주인으로 되여있고 간부들은 권력자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복무하는 심부름군, 일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일하는 제도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김구는 황홀한 눈길을 들어 장군님을 우러렀다.

《예에… 들을수록 새로운 세계입니다. 사실 만경대생가에 가서 장군님의 조부님을 뵙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나라의 수령을 손자로 두신분이 고령의 몸으로 농사일을 하시느라 손이 터갈리고 주름살이 얽힌것을 보고 내 속궁냥이 얼마나 치사한것인가를 알았습니다. 사람이 살아도 권력을 탐내지 말고 그 덕을 보려고도 하지 말며 조부님처럼 가식이 없이 진실하게 살아야 되겠구나 하고 제 70평생이 부끄럽게 돌이켜졌습니다. 그래서 몹시 속앓이를 했습니다. 허허, 새 김구와 낡은 김구가 싸우느라고 제 좀 되게 앓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김구를 여겨보시였다.

역시 김구선생은 정의를 위해서는 백범다운 결단과 기상을 지니고있다. 참다운 애국심만 있다면 정견이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선뜻 털어놓기 어려운 속심을 그것도 제노라 하는 정계인물로서는 도저히 내비칠수 없는 흑심을 아무런 주저나 부끄러움도 없이 털어놓는 김구고보면 역시 담이 있고 결심하기 힘들어 그렇지 한번 결심하면 물러서지 않는 완력가형의 정객이다. 쉽게 내뱉을수 없는 속을 말짱 털어놓은 당사자의 안색은 너무도 평온하였다. 앓던 환자가 병을 털고 일어난듯이 그 어떤 행복감과 안도감의 빛이 얼굴에 서서히 피여오르고있었다. 조금 밭을사 한 이마에 튀여나온 광대뼈, 억세게 다물린 내밀사 한 아래입술, 안경알안에서 예리하게 번쩍이는 작은 눈… 겉보기에도 단단하고 고집스럽게 생긴 이 로인이 젊은 시절에는 민비살해에 격분하여 왜군중위를 찔러죽이는것으로 반일독립운동에 나섰다는 그 열혈청년이였단 말인가. 민비한테서 신세를 진것도 없고 상면도 못했을 청년이 그런 의로운 결사에 스스로 뛰여든것은 민족적자존심과 의기의 분출에서였을것이다. 그때로부터 반세기도 넘는 기나긴 세월 망국의 통탄과 파벌싸움의 오욕속에서 유령정부를 이끌고 일제에게 쫓기우며 이국땅을 헤매느라 이젠 머리가 다 희고 주름살이 얽힌 70객이 되였다. 식민지의 곡절많은 정객으로서 인생의 참된 길을 찾지 못해 《테로두목》, 《반공분자》, 《고집불통》, 《심술쟁이》, 《무식하고 완고한 령감》 등 갖은 험구와 비난을 들썼지만 그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빛을 뿌리는 하나의 보석이 있었으니 그것이 민족애였다. 민족애를 잃지 않고 고수하는 인간은 매국노로 되지 않으며 민족애가 살아있는 민족은 멸망하지 않으며 민족애가 강한 나라는 부강번영한다!

장군님께서는 그 민족애로 하여 고목에 환생하는 김구를 놀랍게, 기이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자신께서 지니신 신념의 정당성을 또 한번 굳게 확인하시였으며 민족대단결로 기어이 밝아올 통일의 그날을 확신하시였다.

《김구선생, 뭐니뭐니해도 건강에 류의하셔야 합니다. 남에 나가시면 신변에 각별히 주의해야겠습니다. 미국과 리승만과 같은 가짜애국자들은 정견이 조금만 달라도 용공감투를 씌워 갖은 모략을 꾸미는 무뢰한들이라는것을 잊지 말고 매사에 경각성을 높여야 합니다.》

《예, 념려마십시오. 이 백범이 죽어도 38°선을 베고 죽겠다고 선언했는데 무섭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민족의 장래와 국토의 완정을 위해 앞길이 창창하신 장군님께서 건강해주시기를 이 늙은 정객이 비는바입니다.》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김구의 손을 꽉 잡은채 오래도록 놓을줄 모르시였다.

김구는 만시름이 풀린 개운한 마음으로 장군님께서 타신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정문앞에 서서 바래드리고있었다.

 

5

어뜩새벽에 깨여난 김구는 온몸에 솟구치는 왕성한 정력을 느끼며 응접실로 나왔다. 그가 깨여나기를 기다린듯 안우생이 붉은 비단보자기에 싼 물건을 안고 서있었다. 긴 탁우에는 처음 보는 지함이 놓여있었다.

《두령님, 편히 주무셨습니까?》

안우생이 머리숙여 인사하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건 뭔가?》

《두령님,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무슨 일? 그리구 이제부터는 두령이라는 말은 빼게.》

《예, 선생님이 깊이 잠든 자정이 넘어 김일성장군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김구선생이 잠들었는가고 물으시고 깊은 잠에 들었으면 됐다고, 한시름놓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시간이 지나 장군님께서 기별도 없이 직접 오실줄이야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습니까. 김녀사와 대동하시고 두분께서 글쎄 자정이 퍽 넘은 깊은 밤중에…》

안우생은 말끝을 흐리였다.

《뭐, 뭐라구?!》

김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런데도 날 깨우지 않았단 말이냐?》

《그분들께서 절대로 깨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는걸 어떻게 합니까. 두분께서는 침실에 들어가 잠든 선생님을 한참이나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남으로 나갈 때 갈아입도록 하라시며 이걸 내놓고 가셨습니다. 김녀사께서 손수 바느질로 지으신것이랍니다.》

《뭐, 뭐?》

김구는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안우생이 받쳐드리는 비단보자기를 풀어보았다. 백설같이 하얀 명주천으로 지은 조선옷 한벌과 푸른 공단조끼가 나타났다. 안우생은 탁우의 지함뚜껑을 열어제꼈다.

《그리구 이건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녹두와 마른 송이버섯입니다. 김녀사께서는 얼마 되지 않지만 성의로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김구는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해있더니 갑자기 사나운 눈찌를 안우생에게 날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에서는 감격과 자책, 노여움이 섞인 노성이 터져나왔다.

《안비서, 당신은 그래 이 늙은이를 철없는 아이로 만들어야 옳겠나? 엉? 오늘부터 당장 비서자릴 내놔라!》

그리고는 주저앉아 가슴을 치는것이였다.

《이게 무슨 망신이요. 누워서 선물을 받다니?! 아,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안우생이 련민의 정이 그윽한 눈길로 김구를 일궈세웠다.

《선생님, 일어나십시오. 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다 늙은 몸이 다시 아이로 태여나는 영광을 선생님말고 누가 또 지녀보겠습니까.》

《뭐, 뭐라구?!》

김구는 퀭해진 눈으로 안우생을 쳐다보더니 허거픈 웃음을 터뜨렸다.

《음- 그래그래, 그렇구말구. 안비서, 당신도 북에 오더니 몰라보게 발전했어. 허허허… 나가자구.》

문을 활짝 열고 산책에 나선 그의 걸음이 얼마나 빠르고 활개짓이 요란한지 안우생은 종종걸음을 치며 겨우 따라잡고있었다. 아침식사가 끝난 후 응접실에 림정요인들이 두줄로 늘어서있었다. 눈같이 흰 새 명주바지저고리에 푸른 조끼를 받쳐입고 침실에서 나오는 김구의 가슴에는 인장함이 안겨져있었다. 제손으로 인장함을 들고 나온 김구의 표정은 엄숙하고 숭고해보였다. 그는 림정요인들을 새삼스럽게 한명한명씩 훑어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에- 오늘 우리는 남으로 나가게 되오. 그동안 우리는 민족주의정객으로서의 대접을 받으며 자기 사업을 성과적으로 결속하였소. 우리 림정력사에서 이번처럼 모두가 단결하여 의견일치를 본 일은 없었소. 여러분들은 지난날 콩 한알을 놓고도 옥신각신하던 버릇을 뚝 떼고 새 사람들이 되였소. 나 역시 그렇소.》

김구의 울대뼈가 오르내리더니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별천지… 별세상이요. 집세 30원도 못 물어 괄세를 받던 림정정객들이… 정객은 무슨… 거지도 상거지였지. 돌이켜볼수록 우리는 부모없는 고아였소. 부모가 없으니 제 집을 빼앗기고 수십년세월 이국에서 방랑생활을 해왔소. 그 설음이 어떤것인지 나나 당신들은 뼈에 사무치게 체험했소. 머리 흰 오늘에 와서 인생을 총화해보니… 이 백범은 고아로 방황하는 처지에 분수넘게도 국부행세를 하며 당신들을 허튼 길로 이끌어왔소. 당신들이 보다싶이 북은 천도교에서 숭상하는 지상천국이요. 나라를 잃고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뿔뿔이 흩어지던 조선백성들이 해방 3년간에 부모를 만나 제 집을 꾸리고 일치단결로 민족의 위상을 떨치며 약진하고있소. 그런데 남쪽땅은 어떤가?》

김구를 주시하는 요인들의 머리우로 긴장한 침묵이 떠돌고있었다. 김구의 목소리가 불현듯 높아졌다.

《일은 안하고 아침부터 하느니 권력싸움이요. 리승만이 국부냐? 백범이 국부냐? 나이가 많아 국부냐? 엉?》

김구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여 근엄한 표정으로 수원들을 둘러보고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나를 만나주신 석상에서 당신들이 민족주의운동사에 남긴 업적도 평가해주시였소. 림정이 우리 민족의 애국적소산이라고 하셨소.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소. 엉?》

김구는 목이 울컥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이거면 되오. 뭘 더 바랄게 있겠소. 고아처럼 떠돌던 우리 민족이 오늘에야 비로소… 오늘에야 부모를 만난것만 같소. 젊으신 김일성장군님과 김녀사한테 민족의 운명을 맡기면 내 평생소원인 자주독립과 통일이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요. 내 그래서 떠나기 전에 한가지 할 일이 있소. 림정인장을 김일성장군님께 바치고 가자는것이요. 이의가 있으면 말해보시오.》

폭풍전야와 같은 무겁고 긴장한 침묵이 방안을 꽉 채웠다. 아침해빛이 비쳐드는 벽우에 걸린 시계의 초침소리가 거대한 종소리처럼 쾅쾅 귀전을 때렸다. 말뚝처럼 굳어져있던 요인들속에서 기침소리가 나더니 운계가 허연 머리를 들고 김구의 앞으로 걸어나왔다.

《백범, 법통이자 백범의 목숨이 아니옵니까. 정말 힘든 결심을 내렸습니다. 나도 북에 와서 감탄했습니다. 감탄이 클수록 림정의 허무함이 커서 갈팡질팡했습니다. 하면서도 백범의 눈치를 보느라 선뜻 말하지 못했습니다.》

김구의 눈에서 환희의 빛이 번쩍거렸다.

《고맙소. 고맙소! 운계, 이날이때까지 나 하나 믿고 따라다닌 당신을 잘못 인도한 내 죄 실로 크오. 여러분, 이 어리석었던 백범을 용서해주시오. 이제부터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참된 민족주의의 길을 걸읍시다.》

그러자 갑자기 박수소리가 터졌다. 모두의 얼굴들에 재생의 환희, 감격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안우생도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구는 인장함을 가슴에 안고 마당으로 나섰다. 마당복판에 이르러 그는 버릇처럼 고개를 들어 비슬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며칠전까지만 해도 죽은듯 아무런 생기도 없던 나무, 바로 그 비슬나무에 꽃이 피질 않았는가. 정말 신비스러웠다.

비슬나무를 바라보는 김구의 마음속에는 그것이 꼭 자기의 모습처럼 여겨졌다. 어지럽고 복잡다단한 길을 걸어온 인생이 위대한 태양의 빛발을 받아 고목에 꽃을 피웠다.

꽃송이 만발한 나무가지들사이로 눈부신 해살이 쏟아져내렸다. 그 해살에 몸을 맡기며 김구는 시인지 노래인지 알수없는 탄성을 질렀다.

《오호라! 고목봉춘하여 칠십환생하니 이 또한 조선정객의 행운이 아니뇨?》

김구를 태운 승용차는 해방산언덕을 향해 달려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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