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편 소 설
제 비 꽃
조 정 협
1
려명의 빛이 안개짙은 백두의 령봉들과 골짜기, 천리수해를 뒤덮으며 장엄한 새날의 해돋이를 알린다.
밤의 기나긴 어둠속에서 해돋이를 기다려온 바람꽃, 왕대황, 두메패랭이꽃 같은 고산지대 식물들이 싱싱한 잎사귀와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드러내며 기쁜듯이 웃고있었다. 아늑한 들판이 아니라 굳이 찬바람 잦을새 없는 높은 산속에 피여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생명들이였다. 밀림속의 젖빛안개는 꽃들의 모습을 해님앞에 어서 보이고싶은듯 서둘러 숲속을 떠나가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얀 봇나무들이 키높이 자란 숲속의 오솔길을 거닐고계시였다. 이슬젖은 오솔길은 한줄기 내물처럼 반짝이고있었다.
걸음을 옮기실적마다 열어젖힌 연회색코트자락에 안개발이 감겨돈다. 백두의 푸른 숲과 즐겁게 이야기나누며 산책길을 걸으시는 그이이시였다. 오랜 세월 뭇사람들의 눈길 한번 끄는 일 없었던 발밑의 작은 돌 하나에서도 생명의 속삭임소리가 울려오고있었다.
한걸음 내짚으면 금시 힘찬 군가소리가 가슴쩌릿이 울리여온다.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
결심품고 싸워가는 우리 혁명군
…
또 한걸음 옮기면 세월의 안개를 헤치며 낯익은 모습들이 다가온다. 바위처럼 든든한 어깨우에 총신을 번뜩이며 싸움터로 떠나가는 대원들의 모습, 늘씬한 군마에 박차를 가하며 번개같이 내닫는 전령병이며 통신원들의 모습,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밀영을 찾아오던 기쁨넘친 모습들…
백두의 아침은 려명이 아니라 이 나라 력사의 청신한 아침을 향해가시는 수령님의 걸음에서 시작되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울울창창한 숲의 바다를 둘러보시였다.
그것은 마치 전투를 앞두고 정렬한 대오를 련상시키는것이였다. 백두의 숲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계시는 수령님께서는 어느때인가부터 인간을 자연의 나무와 꽃들에 비겨보군 하시였다.
이깔이나 분비나무처럼 어디서나 자기의 름름한 자태를 확연히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흰 봇나무처럼 우아하고도 은근한 매력으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런 사람도 있었다.
조국의 력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백전로장들의 모습이며 대오의 맨 앞장에서 헌신분투해온 친근한 사람들의 모습이 연줄연줄 떠올랐다.
이윽고 수령님의 시선은 숲속에 피여나는 꽃들에로 이어지고있었다. 거기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만병초, 철쭉처럼 독특한 미와 향기를 간직한 꽃들이 있는가 하면 소리없이 피고지는 이름모를 꽃들도 많았다.
그 꽃송이들은 조국에 아름다운 자욱을 새겨가는 이 나라 인민의 모습이며 마음속에 애틋한 정만을 남기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련상시키고있었다.
발끝을 높이 들며 걸음을 옮기던 수령님께서는 풀대들사이로 수줍은듯 갸웃이 고개를 내민 한송이 작은 꽃을 보시였다.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린 꽃송이였다.
허리를 굽히고 이슬에 촉촉히 젖은 꽃송이를 꺾어드신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거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이른봄 눅눅한 흙을 헤집으며 돋아나는 파란 햇순을 보고도 그것이 무슨 풀인가를 제꺽 알아보시던 그이이시였다.
그런데 지금 손에 드신 꽃은 낯익어보이면서도 왜서인지 그 이름이 인차 떠오르지 않았다.
백두산에는 이처럼 작은 꽃들이 많았다. 봄, 여름 긴긴날들에 화려한 자태를 한껏 뽐내며 피여나는 들판의 꽃들과는 달리 백두의 꽃들은 비바람 눈보라속에서 너무나 짧은 한 시절을 위해 기나긴 시련을 억척같이 이겨내고있었다. 사실 세인의 경탄을 자아내며 그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지 않는 백두의 장쾌한 꽃세계는 한 시절을 위해 온갖 시련을 이겨낸 이 작은 꽃들의 모습이라고 할수 있었다.
손에 쥔 꽃송이를 빙그르 돌리시던 수령님께서는 한순간 《제비꽃!》 하고 탄성을 올리시였다. 꽃이름이 떠오르자 허구픈 웃음이 나갔다. 그 꽃은 이 나라의 산기슭이나 들에서 늘 보아오던 꽃이였다. 그런데 왜 이제야 떠오르는것인지 참 이상한 일이였다.
뜻밖의 곳에서 보았기때문일가? 아니면 꽃이 금방 망울을 터치는 참이여서였을가?
꽃을 바라보느라니 누군가의 모습이 벙싯 웃음지으며 우렷이 떠올랐다.
그지없이 순박해보이는 한 청년의 모습이였다.
살아서는 뭇꽃들처럼 자기를 애써 나타내려 하지 않고 스러져 티끌이 되면 영원한 대자연의 품속에 깨끗한 몸으로 되돌아가는 이 작은 꽃처럼 소박하고 사랑이 가는 인간이였다.
바람이 분다. 밀림이 설레인다.
수령님께서는 대자연의 음향속을 뚫고 울려오는 추억의 말마디를 듣고계시였다.
1948년 봄.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단선단정》조작책동으로 조성된 민족분렬의 위기를 가시기 위한 구국대책을 토의하기 위해 수많은 남조선의 정치인들이 평양을 찾아오고있었다.
집무실에서, 때로는 저택에서 무시로 찾아오는 손님들과 상봉하시던 수령님께서는 회의날자가 박두해오자 몹시 근심어린 안색을 지으시였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일행이 있었던것이다. 며칠전 그일행이 이미 떠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안전하게 들어올수 있도록 여러가지 대책도 세워주신 수령님이시였다.
그들의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것이 아닐가?
수령님께서는 그일행에 대하여 자주 알아보시였다. 하지만 그이의 안색에는 점점 더 어두운 그늘이 비끼고있었다.
일행이 들어오게 된 통로는 완전히 차단되였고 그들은 행방조차 알수가 없었던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는 더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그럴수 없으시였다. 그들이 없이 채택한 회의의 결정을 어떻게 전체 조선인민의 총의를 반영한것이라고 하겠는가. 또 나라를 위해 험한 길을 떠난 그들이 민족의 력사적인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서운해하겠는가.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백날맞잡이였다.
일행은 그로부터 이틀후에야 도착하였다.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급히 그들이 대기하고있는 곳을 향해가시였다.
나이많은 사람들부터 따뜻이 손잡아주시던 수령님께서는 20대의 한 청년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남조선의 한 애국적인 청년조직대표로 두차례나 수령님을 찾아왔던 림성현이라는 청년이였다. 수령님께서 년로한분들을 모시고 분계선을 넘느라 수고가 많았겠다고 거듭 치하하시자 그는 황송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장군님, 사실 전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이분들은 물론 제가 이 자리에 무사히 올수 있은것은 이번에 우리를 안내해준 동무가 있었기때문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림성현은 여기까지 오면서 있은 일들을 자초지종 말씀드리였다.
일행이 허위단심 분계선근방까지 도착했을 때 통로는 이미 차단되여있었다. 하지만 안내를 맡은 청년이 길을 얼마나 잘 찾아내는것인지 그 삼엄한 속을 아무 손실없이 안전하게 빠져나올수 있었다.
《솜씨가 여간 아닙니다. 달나라에 가는 길도 찾아낼 보배같은 사람입니다.》
림성현은 자랑하듯 보고드렸다.
《그 동무의 이름이 뭐요? … 정진수?》
몹시 귀익은 이름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저, 그는 여기에 오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말이요?》
《어떻게 길잡이하는것밖에 모르는 자기같은 사람까지 국사에 바쁘신 장군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겠는가고 하며 굳이 자리를 피했습니다.》
길잡이라는 말을 들으시는 순간 수령님께서는 《지난해 동무가 나를 찾아왔을 때 길안내를 해준 그 동무가 아니요?》 하고 물으시였다.
《옳습니다. 퍽 경험이 많은 동무입니다.》
림성현은 수령님께서 그때 자기가 얼핏 말씀드렸던 그 이름을 아직까지 기억하고계시는것이 신비하게 여겨졌다.
《동무가 돌아간 후 얼마 안되여 한 정당인사가 나를 찾아왔더랬소. 그가 자기를 길안내해준 동무를 몹시 칭찬하기에 그 사람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또 정진수라고 하더구만.》
수령님께서는 그때 한 일군에게 정진수라는 청년을 데려오도록 과업을 주시였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청년이 남으로 가는 사람들과 함께 떠나간 뒤였다.
림성현은 정진수에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평양이 고향인 그는 현재 서울 룡산기관구에서 일하고있었다. 통일을 이룩하고야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한다는것이였다.
《사귄지는 얼마 안되지만 정말 성실한 동무입니다.》
림성현의 모습에서는 자기의 벗을 내세우고싶어하는 마음이 력력히 느껴졌다. 그는 자기들이 그 청년의 덕을 단단히 본다고 하며 그와의 사업과정에 동지를 얻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더 잘 알게 되였다고 하였다.
《함께 올걸 그랬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발길을 돌릴 때 그 사람 마음이 오죽했겠소?》
한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던 수령님께서는 《길잡이나 한다고 했단 말이지.》 하고 혼자말처럼 뇌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날 또다시 일군들에게 과업을 주시여 림성현과 함께 정진수를 찾도록 하시였다.
이번에는 그를 꼭 만나보고싶으시였다. 련민의 정때문만이 아니였다. 사선을 헤쳐야 하는 그처럼 어려운 일을 하고도 자기를 내세울줄 모르는 그런 훌륭한 청년이 한생토록 애국의 길을 긍지높이 걷도록 이끌어주고싶으시였던것이다.
도시상공에 감홍빛노을이 진하게 어리는무렵이였다.
림성현이 수령님앞에 숨을 헐썩이며 나타났다.
수령님께서는 서둘러 그를 마중해가시였다.
림성현은 천진한 어린애마냥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정진수동무를 찾았습니다. 저 서문거리쪽에 사는 어머니에게 가있었습니다.》
정진수를 데려오지 못한것을 후회하며 수소문하던 끝에 그의 어머니가 사는 곳을 알게 된 림성현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땀젖은 그의 모습을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정진수가 사람복이 있는걸. 그런데 왜 혼자 왔소?》
《그 동문 정말 고정한 사람입니다. 장군님께서 찾으신다고하니 자기가 어떻게 감히 장군님앞에 나서겠는가 하면서…》
림성현의 이 말에 수령님께서는 정진수라는 청년이 순박하면서도 강직한 사나이라는 느낌이 드시였다.
《그렇단 말이지. 좋소. 그럼 내가 그를 찾아가겠소.》
그 말씀에 성현은 몹시 당황해하였다.
《아니 장군님께서 어떻게…》
《난 동지를 얻는 길이라면 천리라도 가고싶소.》
수령님께서는 곧 림성현과 함께 길을 떠나시였다.
서문거리의 어느 골목길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토담에 둘러싸인 어느 한 집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마당에서 힘찬 도끼질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도간도간 울려왔다.
《어머니, 난 래일 떠나야 해요.》
《에구, 해방도 됐는데 넌 언제까지 그렇게 나가있을 작정이냐? 이 에민 아직 며느리얼굴조차 모르고있으니.》
수령님께서는 모자간에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시며 삽짝문을 여시였다.
《안녕하십니까?》
장작을 나르던 어머니도, 도끼를 추켜들던 청년도 자기들앞으로 걸어오시는 수령님을 뵈옵는 순간 뚝 굳어져버리고말았다.
《정진수동무지요?》
수령님의 그 부르심에 청년은 다시한번 놀라며 어안이 벙벙해 서있었다.
《왜 그러오. 내가 동무를 모를것 같아서? 어머니, 제 댁의 아들을 좀 만나고싶어 찾아왔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허둥지둥 다가오는 백발의 녀인을 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어찌 이 루추한 집엘… 제 아들의 이름은 어찌 아시고.》
녀인은 꿈같은 현실에 몸둘바를 몰라하며 채머리를 떨었다.
《어머닌 참 훌륭한 아들을 두셨습니다. 하지만 내 오늘 저 사람에게 욕을 좀 하자고 하는데 일없겠습니까?》
《잘못한것이 있으면 어서 그래주십시오. 예로부터 자식은 아버지 뼈를 받으며 큰다지만 저앤 여적 어른의 훈계 한마디 못 들어보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짓고 정진수를 바라보시였다.
《정동무, 벌써 몇차례나 평양에 오면서도 왜 나를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소? 나와 인사 한마디 나눌 여유도 없었단말이요?》
정진수의 손에서 도끼가 떨어져내렸다.
《장군님, 저같은것이 어떻게…》
수령님께서는 팔소매를 쓸어내리며 어줍게 서있는 그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였다.
《동무는 길잡이나 하는것이 무슨 큰일인가고 했다는데 아주 잘못된 생각이요. 애국의 길에 길잡이로 나선것이 왜 큰일이 아니란 말이요?》
수령님께서 정진수의 장알박힌 손을 꽉 잡아주시는 순간 그는 왈칵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
바람에 떨어진 푸른 잎사귀 하나가 수령님의 발치에 내려앉았다. 그이께서는 사색어린 눈길로 무성한 숲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정진수의 모습이 어려오고있었다.
총이 센 머리, 진한 눈섭이며 그밑에서 고요히 빛나는 눈동자, 언제나 꼭 다물려있던 선이 또렷한 입술에서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지을 때의 모습은 수줍음 잘 타는 처녀애를 련상시키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는 자주 그렇게 웃음짓군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색날은 철도복을 입고 도끼자루를 잡은채 빙긋 웃던 그 모습을 오늘도 잊지 않고계시였다. 새겨볼수록 사랑이 가는 모습이였다. 하기에 그에 대해 추억하실 때면 슬픔보다는 그 인간의 순결한 모습에 더욱 심취되군 하시였다.
사람을 모든것의 주인으로 보시며 세계는 마땅히 자주적인간에 의해 지배되고 개조되여야 한다는것을 신조로 간직하신 그이께서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확신하게 해주는 그런 모습을 보실 때 더없는 행복을 느끼군 하시였다.
하지만 지금 정진수에 대해 생각하시는 감정은 류다른것이였다.
수령님께서 또다시 그를 생각하게 되신것은 어제 어느 한 출판기관에서 조국해방 45돐을 맞으며 출판한 책을 보신 후부터였다. 그 책은 수령님의 과업을 받고 집필한것이였다. 지난해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4월남북련석회의며 공화국창건을 전후한 시기 조국통일의 길을 개척한 애국자들을 후세에 길이 전해주시려는 마음으로 도서집필과업을 그 기관에 맡겨주시였던것이다.
그 책은 하나의 력사기록과도 같은것이였다. 거기에는 통일조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에서 큰 공로를 세운 사람들의 투쟁내용이 실려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글들을 보시며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열정의 인간들을 깊은 감회속에 그려보시였다. 흐뭇한 마음으로 글을 읽으시던 수령님의 모습에는 차츰 어두운 그늘이 비끼고있었다. 도서를 받은 후부터 은근히 기대를 품고 찾아보시던 사람, 자신께서 해방후부터 오늘까지 잊지 않고계시는 사람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그가 다름아닌 정진수였다. 마음이 한없이 허전해지시였다. 자기가 보물처럼 여기는 귀중한 무엇인가가 무시당하는것을 보는 사람의 심정이랄가.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에 정진수가 빠졌다는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으시였다. 하여 수령님께서는 책을 낸 기관에 그에 대하여 문의하시였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되시였다. 그 기관에서는 조국통일부문의 일군들이 고증하여 넘겨준 자료에 기초하여 글을 썼는데 거기에 정진수라는 사람에 대한것은 없었다는것이였다.
착오가 생긴것인가, 아니면?
수령님께서는 꽃송이를 쥐신채 다시금 걸음을 옮겨가시였다.
2
한대의 승용차가 정오의 눈부신 해빛을 반사하며 드넓은 백두삼천리벌을 달리고있었다. 아침일찍 길을 떠나시여 새로 조업한 대홍단군의 어느 한 식료품가공공장을 찾으시였던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승용차였다.
차는 어느덧 밀림속에 들어서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차창을 여시였다. 순간 밀림의 설레임소리가 차안 가득히 흘러들었다. 그이 한생의 힘이였고 넋이였던 백두의 숨결소리였다.
그 숨결을 안고 얼마나 먼길을 걸어오시였던가. 돌아보면 세월은 살같이 흘렀다. 수령님께서는 자주 자신의 한생에 못다한 일이 무엇이였는가를 새겨보군 하시였다. 그러면 언제나 조국통일문제가 가슴치군 하였다.
근세기에 이르러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에 의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져 대국들의 리해관계를 리용하는 위태롭고도 가련한 외교로 명을 유지해오던 끝에 외세의 식민지가 되였던 나라, 해방은 되였으나 그 기쁨을 누려볼새도 없이 민족분렬의 아픔에 모대겨야 했던 이 나라의 인민들로부터 조국의 운명을 책임질 사명을 부여받은 정치가, 한 인간으로서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다 바쳐오신 그이이시였다.
차가 어느 한 언덕우에 올라설무렵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운전수에게 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앞쪽에서 한대의 승용차가 마주 오고있었다. 잠시후 가까이 다가온 저쪽 승용차에서 한 일군이 내려서는것이 보이였다.
수령님께서 숙소에 남아 림성현을 맞이하게 하시였던 일군이였다. 어제 도서를 낸 출판기관 일군들에게 전화를 거시였을 때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료를 보내준 부서가 림성현의 부서라는것을 아시고 최근 사업정형에 대해서도 들어볼겸 그를 부르도록 하시였었다.
수령님께서는 반색을 지으시며 승용차의 문을 여시였다.
수령님앞에 다가와 인사를 올리던 그 일군은 좌석우에 놓인 문건들을 띠여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였다. 수령님께서 대홍단군으로 떠나려 하실 때부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수행일군들에게 제정된 일과에 대해 거듭 강조하던 그였다.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며 《림성현동무는 아직 도착 못했소?》 하고 물으시였다.
《도착했습니다. 이제 곧 여기로 올겁니다. 그런데…》
기쁘게 미소를 지으시던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왜 그러오? 무슨 일이 있었소?》
《방금전 김정일동지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수령님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시며 휴식을 충분히 보장해드리라고 또다시 당부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내 이미 말하지 않았소? 백두산에 오니 청춘을 되찾는것 같다고. 김정일동지가 걱정하지 않게 내가 건강도 퍽 좋아지고 휴식도 충분히 하고있다고 보고해주오.》
잠시 머뭇거리던 그 일군은 《그럼 이제부터라도 일과를 꼭 지켜주십시오. 오후에는 꼭 휴식하셨으면 합니다.》하고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씀하시였다.
《좋아. 그럼 약속하기요. 내 성현동무를 만나고는 꼭 나흘을 쉬겠소.》
그제서야 일군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어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때 또 한대의 승용차가 다가오는것을 보시였다. 차가 멎는 순간 키가 후리후리한 한 일군이 성급히 문을 열며 내려섰다. 림성현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그렇듯 눈처럼 흰 샤쯔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있는 그의 모습을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왔구만. 이달에는 꼭 료양소에 가서 치료도 받고 휴식도 하라고 했는데 가지 않았다면서? 왜 말을 듣지 않소?》
수령님께서는 림성현의 손을 잡아주시며 가볍게 나무람하시였다.
《사람에겐 건강이 밑천이야. 건강해야 혁명과업도 더 잘 수행할수 있거던. 자기 나이도 생각해야지.》
《수령님, 사실 우리보다 수령님께서… 여기 오시여서도 늘 휴식없이 일하신다는걸 저도 이미 들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난처한 기색을 지으며 손을 내저으시였다.
《동무도 그 소리구만. 그런데 나도 별수 없지 않소?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 않아.》
수령님께서는 림성현의 손을 잡고 승용차에로 이끌어가시였다. 그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신 수령님께서는 그 기간의 사업정형에 대해 물으시였다. 림성현은 최근 조국통일부문에서 이룩되고있는 성과들에 대하여 말씀올리였다. 세심하고 책임적인 림성현의 보고는 일목료연하였다.
마지막으로 중국, 일본 등 아시아지역과 유럽, 아메리카지역 해외교포들의 애국적활동에 대해 보고드리던 그는 조국방문기간 수령님을 만나뵙고 돌아간 한 종교인의 최근동향을 말씀드리였다.
그는 전쟁시기 남으로 나간 후 우리에 대해 좋지 못한 선전을 해온 인물이였다.
때문에 많은 일군들은 그가 조국방문을 요청해왔을 때 그것을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었다. 림성현도 례외가 아니였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설사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애국애족의 마음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옳은길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그의 조국방문을 허락하시였을뿐아니라 자신을 만나뵙고싶어하는 소청도 너그러이 받아주시였다. 하기에 수령님의 인품과 조국통일사상에 감동된 그는 교포들속에 수령님의 위대성을 널리 선전하면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지지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고있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좋은 벗이 하나 더 생긴셈이요. 언젠가 내가 한 해외동포기업가에게 한 말이 생각나는구만. 내 그에게 <크기가 서로 다른 다섯손가락을 하나로 합치면 주먹이 되듯이 각이한 정견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애국의 마음으로 뭉치면 큰 힘을 낼수 있다.>고 말해주었소.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손잡고 애국의 길로 이끌어주어야 하오.》
기쁘신듯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림성현을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차창을 닫으시고 한권의 책을 집어드시였다. 그러시고는 이번에 참 좋은 책이 나왔다고 하시며 그앞에 펼쳐보이시였다. 하얀 종이장이 번져지며 새 책의 등사잉크냄새가 알릴듯말듯 풍기여왔다. 림성현의 얼굴에는 기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그 도서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 도서에 수록된 인물들의 자료는 다름아닌 림성현의 부서에서 제공한것이였던것이다. 사실 거기에는 림성현의 노력이 크게 깃들어있었다. 당시 투쟁의 참가자였던 관계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군 하는 그의 기억력이 큰 은을 내였다. 림성현은 자료를 넘겨주면서 내심 거기에 추호의 오유도 없음을 장담하였었다. 그만큼 그 시기의 력사와 인물들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문제에 대하여 자신심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이번에 이 글들을 쓰기 위한 자료를 동무들이 보장해주었다고 하던데 참 수고가 많았겠소. 그런데 성현동무, 동문 여기에 빠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뜻밖의 말씀이였다.
《동무가 자료들을 검토하고 넘겨주었겠는데 어째서 정진수동무의 이름이 보이지 않소? 설마 그를 잊은거야 아니겠지?》
순간 림성현의 모습에는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정진수는 그가 해방후 남조선의 어느 한 애국적청년조직에서 사업하고있을 때 알게 된 사람이였다. 따라서 그는 정진수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일찌기 독립운동에 나섰던 아버지를 여의고 온갖 고생을 다하며 자란 정진수는 어느날 자기를 《불령선인》의 자식이라고 박해하는 왜놈 경관을 때려눕히고 이름마저 숨긴채 방랑의 길에 올랐었다고 한다. 하지만 삼천리 그 어디에서도 살 곳을 찾을수 없었던 그는 해방후에야 림성현을 비롯한 애국적인 청년들의 영향속에 새 삶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조용하면서도 무슨 일을 맡기든 드팀없이 해내군 하던 청년이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일찌기 적들에게 희생되였다. 그의 희생은 림성현의 가슴에 아픈 상처를 남기였다.
이번에 출판기관의 의뢰를 받고 자료를 묶을 때 그에 대해 생각 못했던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림성현은 력사에 남게 될 이 도서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선뜻 그의 이름을 써넣을수 없었다.
정진수의 투쟁내용이란 자기같은 사람들을 도와 길안내나 몇번 했던것이 전부였다.
그때 정진수와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였던가?
림성현은 수령님께 정진수의 자료를 주지 않은 리유에 대해 말씀드리였다. 투쟁경력이 짧은것은 둘째치더라도 조국통일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 비해볼 때 너무 평범했기에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다는것이였다.
순간 수령님의 모습에 그늘이 비끼는것이였다.
《그래서 그에 대한 자료를 주지 않았소? 그러니 착오가 아니였구만.》
《예, 제가 어떻게 그를 잊겠습니까? 그렇지만 객관적자료를 무시하고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울수는 없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몹시 안타까우신듯 옷깃을 헤치시였다.
《참 섭섭하구만. 정진수를 잊지 않고있다는 동무가 그런 말을 하다니.》
림성현은 그토록 노여워하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처음 뵈웠다.
차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깃들고있었다. 이따금 차창을 스치는 나무잎소리만이 간간이 울리여왔다.
3
무변광대한 우주를 뒤덮으며 반짝이던 별무리들도 깊이 잠들어가는 밤, 눈여겨 바라보면 너울거리는 모닥불빛에 붉게 상기된 혁명군대원들의 모습이 어려올듯싶고 귀를 기울이면 《사향가》의 선률이 고요한 대기를 흔들며 은은히 울려올듯싶은 밀림의 깊은 밤 수령님께서는 끝없는 추억의 광야를 거닐고계시였다.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초고를 집필하시는 그이의 심중에는 지나온 생애의 가지가지 사연들이 어제일인듯 생생히 떠오르고있었다.
돌이켜보면 손에 총을 잡고 제국주의자들과 싸우는것도 어려웠지만 민족통일전선을 이룩하는것은 더 어려운 일이였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사분오렬된 애국세력의 단합을 위해 허다한 사선의 고비들을 헤쳐야 했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도 하였다. 항일전의 나날에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제시하여 모든 애국력량을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에 불러일으켰고 해방후에는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새 민주조선을 건설하자는 건국사상을 제시하여 인민들을 새 조국건설에로 이끌어주시였다.
한평생을 총화해보면 자신의 한생은 나라의 해방과 조국통일에 바쳐온 한생이였다는 감회에 잠기게 되시였다.
파란만장의 인생행로에는 환희와 기쁨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상실의 아픔에 모대기던 때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수령님께서는 잠시 펜을 놓고 숲에서 꺾어오신 창가의 꽃송이를 바라보시였다.
잊을수 없는 1948년의 그 봄날이 눈앞에 어리여왔다.
정진수를 만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와 함께 자신의 저택으로 가시였다.
그날 정진수는 김정숙동지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앞에서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밥상에는 어머님께서 터밭에서 몸소 가꾼 남새로 담근 김치며 토장국, 마늘장졸임, 구운 조기가 올라있었다. 혁명일가의 인민적가풍이 느껴지는 검소한 저녁상이였다. 하지만 더없이 정갈한 음식마다에 넘쳐나는 친부모의 따뜻한 정에 마음은 한없이 후더워올랐다.
다음날 날이 밝을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받아안은 꿈같은 하루를 되새겨보던 그는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마당가에 나선 그는 엷은 안개발속으로 곧게 뻗어나간 한줄기의 길을 바라보았다. 날 밝으면 하늘의 태양과 산천초목을 벗삼아 정처없이 걷던 떠돌이시절부터 몸에 배인 습관이였다.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바라보던 그는 담장밑에 세워진 댑싸리마당비를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마당을 쓸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쓸고 또 쓸며 한걸음한걸음 옮겨가는데 등뒤에서 우렁우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귀한 손님이 첫새벽에 마당비를 들다니.》
정진수는 당황했다. 조용히 하려던 일이 오히려 수령님의 휴식을 방해했다는 생각에 송구함을 금할수 없었다.
《그걸 놓고 나와 같이 정원이나 거닐자구.》
수령님께서는 정진수에게로 다가가시며 말씀하시였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비자루를 꼭 쥐고 서있는 그를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정동무가 어찌된거요. 내 집에서 하루밤 묵고나더니 값을 물자는건가?》
그 말씀에 정진수의 얼굴에는 티없이 맑은 미소가 피여올랐다. 천진한 소년을 련상시키는 모습이였다.
《장군님께선 저같은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일 때 나라를 찾기 위해 전장의 험한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장군님께서 걸으실 길을 한평생 쓸어드린대도 그 은혜에 어찌 보답할수 있겠습니까.》
그의 진정어린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뭉클 젖어드시였다.
《정 그렇다면 함께 쓸기요.》
수령님께서도 마당비를 들고 나서시자 정진수는 황황히 그이의 앞을 막아섰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어찌 이런 일을…》
정진수의 그 말에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나는 빨찌산시절에 대원들과 한모포를 덮고 잤고 한가마밥을 먹으며 살았소. 그게 생활의 락이 아니겠소?》
정진수는 자애로운 미소가 넘쳐흐르는 그이의 모습을 우러러보았다.
수령님께서는 먼저 허리를 굽히시며 마당을 쓸어나가시였다. 그이께서 길우에 떠도는 엷은 안개를 휘저으며 축축한 나무잎들과 이슬젖은 잔돌들을 넘겨주시면 정진수는 그것을 받아 쓸군 하였다.
정진수와 함께 천천히 정원길을 쓸어나가시던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조국통일문제를 길에 비유하여 알기 쉽게 가르쳐주시였다. 미제의 비호를 받는 리승만일파는 조국통일의 길을 가로막고 단독정부를 조작하려 하고있다. 온 겨레는 힘을 합쳐 매국역적들의 반민족적행위를 분쇄하고 전조선적인 통일적민주주의정부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민족분렬의 위기가 조성된 오늘 우리 조선민족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우리 함께 이 길을 쓸듯이 힘을 합쳐 외세와 매국세력을 몰아내고 조국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자.
동녘이 훤하면 세상인가부다 하고 살아온 정진수의 눈을 한순간에 틔워주시는 말씀이였다.
정진수는 정녕 장군님곁을 떠나고싶지 않았다. 이 새벽 그이와 함께 걸은 길은 짧았어도 실로 먼길을 걸어온 심정이였고 또 그렇게 영원히 걷고싶었다.
《정동무, 어제 밤 38경비려단에서 보고가 올라왔는데 놈들의 경계가 더 심해졌다고 하오. 그러니 올 때와는 다른 통로를 리용해야 할거요. 동무가 지리에 밝다는 말은 들었소.》
정진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도 많이 다니다나니 길들을 좀 알뿐입니다.》
《동무는 이 땅에 누구보다 정이 깊겠구만. 말하자면 애인과도 같다고 할수 있겠소.》
정말 그렇게 이 땅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사는 정진수였다. 살 곳을 찾아 이 나라 삼천리의 산과 들 그 어느 길이나 다 걸어본 그였던것이다.
길을 다 쓸고 허리를 펴니 깜박깜박 조을던 별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저 멀리 지평선우로 떠오르는 해빛이 온 우주에 밝게 비쳐가고있었다. 꽃송이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아침이슬 반짝이며 함뿍 웃음지었다.
《정동무.》
기쁜 마음으로 정진수를 돌아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그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보시였다. 두어걸음 뒤에 떨어져오고있는데 왜서인지 한쪽발을 불편하게 움직이고있었던것이다. 어제 그와 함께 저택에 오실 때에도 별스런 느낌을 받으시였었다. 그때도 저렇게 걷다가 자신과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아무 일도 없다는듯 허리를 꼿꼿이 펴보이였었다.
《왜 그러오?》
정진수는 빙긋 웃으며 씨엉씨엉 수령님곁으로 다가섰다. 어제처럼 일부러 꾸민듯 한 걸음새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이 꽃들이 너무 고와서 말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동에 닿지 않는 말마디들이 흘러나왔다. 정진수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들이 맺히는것을 보신 수령님께서는 어디 불편한가고 근심스런 어조로 물으시였다.
《난 워낙 걸음씨가 이렇습니다. 그런데 장군님, 여긴 꽃들이 정말 곱습니다.》
정진수는 슬쩍 말머리를 돌리며 길가의 꽃들을 가리켰다.
《정동무가 꽃을 좋아하는 모양이지?》
수령님의 그 물음에 정진수는 한결 즐거워진 기분으로 대답하였다.
《예, 좋아합니다.》
《그래, 어떤 꽃이 마음에 드오?》
잠시 주밋거리던 정진수는 《전 어느 꽃이나 다 좋아합니다.》 하고 말씀올리였다.
사실 그는 길가에 자라는 꽃은 뭐나 다 좋아하였다. 누구는 진달래를 봄의 선구자로 부르고 또 누구는 국화의 절개를 칭송하며 남다른 애정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그는 류랑의 시절 외로운 나그네에게도 취할듯 한 향기를 안겨주던 이 땅의 모든 꽃들을 다 사랑하였다.
《사실 저에게 굳이 좋아하는 꽃이 있다고 한다면 장미나 함박꽃처럼 큰 꽃들보다는 저 제비꽃이나 별꽃, 딱지꽃 같은 작은 꽃들입니다.》
수령님께서 무척 관심을 보이시자 정진수는 《땅이 있으면 어디에나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는 꽃들이 있다.》는 난데없는 격언까지 외우며 이야기하였다.
날 밝으면 맑은 이슬 떨구며 아침의 첫인사를 보내주고 달뜨는 저녁까지 걷고걸을 때면 부르튼 발을 어루쓸어주던 꽃송이들, 이 강산 어디 가나 늘 그의 곁에 있어준 그 작은 꽃송이들은 둘도 없이 다정한 길동무이기도 하였다. 큰 꽃송이들에 비해 비록 작아도 높은 산등성이건 깊은 산골짜기이건 그 어디에서나 성실한 노력을 바쳐가며 이 세상에 나름의 미를 한껏 보태여주는 갸륵한 생명들이였다.
《참 좋은 이야기를 들었소.》
수령님께서는 정진수를 포도나무덩굴밑으로 이끄시였다.
《제비꽃이나 별꽃이라. 옳아. 비록 크지 않아도 그런 꽃들이 없이 자연의 풍요로움을 생각할수 없지. 헌데 그 말이 나에겐 자연의 이야기라고만 생각되지 않는구만.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아.》
장알박힌 손을 어루만지며 어줍게 미소짓던 정진수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비끼였다. 집떠나던 어느날로부터 인생의 자욱을 따라 이어져가는 정진수의 이야기는 이 나라 인민이 겪어온 슬픈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그의 고향마을에는 제비꽃이 류달리 많이 피여나군 하였다. 어린시절 꽃밭속을 뛰놀 때면 아버지가 가르쳐주던 이 나라 산천의 모습이 동화의 세계처럼 안겨오군 하였다. 동네사람들은 이제 어른이 되면 이 꽃을 따라 아름다운 삼천리를 밟아볼 꿈속에 사는 어린 소년을 제비꽃같은 아이라고 불렀다. 세월의 흐름속에 그도 어른으로 자라났다.
어느날 그는 마을청년들에게 아버지가 들려준 조국산천의 아름다움과 유구한 력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었다. 그런데 그것이 《죄》가 되였다. 그는 그날을 잊을래야 잊을수 없었다. 금수강산이라는 글자를 새기던 손에 날아들던 왜놈의 무지한 군화발이며 억울한 피눈물에 젖던 고향마을의 꽃송이들…
정처없이 길을 떠나던 그날부터 제비꽃은 그의 눈에 너무나 슬픈 모습으로 비껴들었다. 이 나라의 그 어느 길에서나 자라고있는 그 꽃들을 보면 꼭 방황하며 떠도는 자기자신을 보는것 같았다.
그는 드넓은 호남평야를 꿰지르며 아득히 뻗어간 어느 길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
《대동여지도》를 그려낸 김정호가 삼천리강산을 답사할적마다 엎드려 절하군 했다는 이 나라 백성의 목숨같은 땅에 그는 무릎꿇고 앉아 울었다.
고향으로 가던 길에 서울에 들렸던 그는 온 도시가 해방열에 들떠있는것을 보았다.
가는 곳마다에서 해방이요, 건국이요 하고 웨치는 청년들을 보며 그는 자기만이 외토리로 남았다는 서운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어느날 그도 그 열풍속에 휘말려들었다. 그는 《애국지사》니 뭐니 하는 유명정객들에게 현혹되여 그들이 거느린 청년단체에 들어갔었다.
실망했다. 그자들은 《애국》을 웨치며 애국을 테로하는 반동의 무리들이였다.
모략, 흉계, 란동, 혐오스런 밤길들…
어느 음산한 밤, 그는 길잡이로 내몰렸다. 쇠관이며 흉기 품은자들의 말에서 그는 이제 피비린 살륙이 있게 된다는것을 알았다.
《난 이런 길은 가지 않겠다.》
순간 무지한 주먹들이 그를 쓰러뜨렸다.
《뭐, 못 간다구? 그건 왜서지?》
《너희들 애국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좋은 사람들을 해치는거냐?》
악령같은 거뭇거뭇한 형체들의 머리우로 괴이한 웃음소리가 날아올랐다.
《애국? 콱 찍어버려!》
쪼각달비낀 허공에 흰빛이 언뜻했다.
온몸이 부서지는듯 한 아픔, 확 끼쳐오는 피비린내, 끝없는 어둠속의 적막, 짓밟힌 넋의 처절한 몸부림…
그밤 다리의 상처보다 더 아프게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힌것은 그자들의 악의에 찬 목소리였다.
《길잡이나 하는 이따위 새끼!》
결국 인간의 길을 가고저 했을 때 그가 깨달은것은 참다운 길을 찾지 못하고는 언제까지고 인간일수 없다는것이였다.
그를 구원해준 사람은 림성현과 그의 동무들이였다. 불행한 청년의 하소연을 들은 그들은 생면부지였지만 친혈육처럼 간호해주며 김일성장군님께서 세우시게 될 새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가슴벅찬 충격을 느끼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 많은 청년들이 찾아와 그의 소생을 기뻐해주었다.
그들과 함께 길을 걷던 정진수는 그 악몽같은 밤을 되새기며 자기같은 사람도 나라를 위해 일할수 있겠느냐고 조심히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도 정진수나 다를바 없는 사람들이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힘을 합쳐 인민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것이 장군님의 뜻이라고 하는것이였다.
눈앞이 확 트이는것만 같았다. 가슴에 안고있던 아름다운 꽃송이들에 맑은 눈물이 떨어져내리고있었다. 방금전 한 처녀가 안겨주었던 들꽃송이들이였다. 소담하고 싱싱한 꽃송이들속에는 그가 사랑하는 작은 제비꽃송이도 들어있었다. 어제날엔 눈물속에 비껴들던 꽃이 지금은 희망의 꽃으로 유난히 안겨오고있었다. 그는 그 작은 꽃처럼 살고싶었다. 비록 뭇꽃들속에 묻혀 누가 알아주지 않는 작은 꽃에도 삼천리 아름다운 대지에 한쪼각 빛이나마 더해주는 기쁨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리가 나으면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가리라 생각했던 정진수는 자기를 구원해준 고마운 청년들을 도와 함께 일할것을 결심하였다. 자기 하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길잡이가 되고싶었다.
정진수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무릎을 꺾고 앉으시며 그의 다리에 친 행전을 풀고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시였다. 정진수는 당황해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거멓게 죽은 상처자리며 부어오른 다리를 놀랍게 바라보시였다. 정진수는 자기의 실언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눈치챌가보아 아픔을 웃음으로 가리워온 그였다. 오늘도 수령님께서 알아보실것만 같아 평생 해본적 없는 말재간을 피우며 꽃이야기를 꺼낸것인데 어찌해서 다리이야기까지 하고말았는지 자신이 민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글쎄 걸음걸이가 별스럽다 했지. 그때 그 상처가 도지는게구만. 늘 이렇소?》
《아닙니다. 이따금…》
《이런 다리로 그 먼길을 걸었단 말이요?》
수령님께서는 상처주위를 한참이나 슬며시 눌러도 보고 쓸어보기도 하시였다.
《뼈는 일없는것 같구만. 다행이요.》
《이번에 길이 좀 험하다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아픈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이 길이 장군님께 가는 길이다, 내가 장군님께 가는 길을 열어간다 하고 생각하며 걸으니 글쎄 다리에 힘이 막 솟는것이였습니다.》
팔소매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던 정진수는 벌씬 웃으며 발을 힘껏 굴러보이였다.
《정말 아프지 않습니다. 이제 당장 천리라도 걸을수 있습니다.》
《아니요. 우선 치료부터 받아야겠소.》
정진수는 잠시 머뭇거리며 인차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이제 자기가 길안내를 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던것이다. 그는 다시 오면 그땐 품을 놓고 치료를 받겠다고 간청하듯 말씀올리였다.
《참 고집두, 그럼 좋소. 하지만 나와 약속할것은 다시 오면 꼭 우리 집부터 찾아와야 한다는거요. 동무의 다리는 내가 책임지고 치료하도록 하겠소.》
정진수는 친어버이의 품에 안긴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이날 그는 차츰 어려움도 잊고 자기의 새 가정에 대해서까지 말씀드리였다.
《저, 장군님. 래달이면 저에게 자식이 생길것 같습니다.》
정진수는 수줍음 잘 타는 처녀애처럼 발깃이 얼굴을 붉히였다.
《이런 경사라구야. 그런 일이야 벌써 말했어야지. 가만, 내가 아기에게 비단옷을 한벌 장만해줄가?》
그러자 정진수는 펄쩍 뛰며 두손을 내젓는것이였다.
《장군님,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저에겐 장군님을 만나뵈온것만도 큰 영광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런 페까지 끼쳐드린단 말입니까?》
《정동무, 너무 그러지 마오. 해방된 조국땅에 태여날 새 아기에게 내 뭔가 뜻깊은 선물을 주고싶어 그러는거요.》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수령님께서는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신듯 정진수를 보며 말씀하시였다.
《아이에게 <삼천리>연필을 주는게 좋지 않을가?》
《삼천리》연필은 수령님께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첫 회의 의정으로 연필문제를 토의해주신 후 우리 나라에서 생산하는 첫 연필이였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정진수에게 아이들의 연필문제를 푸는 사업을 나라의 중대사로 내세우게 된 사연을 말씀해주시였다.
거기에는 후대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 혈전의 길을 헤쳐온 투사들의 뜻을 이어가기 바라는 수령님의 사랑의 세계가 비껴있었다.
《정동무, 우리 후대들이 선렬들의 뜻을 이어 조국에 대한 사랑을 안고 자라도록 잘 키워주자구.》
정진수는 목이 꽉 메여왔다. 그날 정진수는 수령님께서 손수 마련해주신 아기의 옷과 《삼천리》연필을 받아안고 길을 떠났다. 행복의 삼천리를 가슴에 새기며 자라날 아기의 모습을 그려보는듯 그의 모습에는 밝은 미소가 함뿍 어려있었다.
《장군님, 전 늘 사람들에게 삼천리의 길이란 길은 다 밟아보았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마음은 이제 겨우 첫걸음마를 떼는 심정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제비꽃 한송이를 꺾어 그의 손에 들려주시였다.
정진수와 작별인사를 나누신 뒤였다. 그가 뒤돌아서는 찰나 바람결을 타고 《흑-》 하는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한방울의 눈물이 허공을 날며 반짝이는것을 보았을 때의 그 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제비꽃송이를 소중히 품고 천진한 웃음을 짓던 모습, 잠시 다녀올 길을 가는듯 행전친 두다리를 성급히 내짚던 사나이의 뒤모습이 오래도록 눈앞에서 사라질줄 몰랐다.
《장군님,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기다리지. 기다리겠소.》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의 희생에 대한 비보를 받으신 그때 수령님께서는 눈물이 나기보다는 억이 막히시였다. 그를 치료할 유능한 의사도 찾아보시고 귀한 약재도 마련해놓고 기다려오신 수령님이시였다. 그날 아무 말씀도 없이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을 걷고 또 걸으시던 수령님께서는 우뚝 걸음을 멈추시였다. 비물에 흠씬 젖은 제비꽃송이들이 흐릿한 망막속에 비껴들었다. 꽃송이들은 질척한 대지에 얼굴 묻으며 흐느끼듯 몸부림쳤다. 정진수의 순진한 얼굴이 그 꽃송이에 어리여왔다. 꽃을 보느라니 다시 오면 치료도 받고 자신과 함께 조국땅 삼천리를 발목이 시도록 걸어보고싶다고 하던 랑만에 겨운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듯싶었다.
굵은 비줄기가 그와 함께 쓸었던 길, 그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을듯싶은 그 길을 두드리며 세차게 쏟아져내리고있었다.
그의 도움을 받은적 있는 사람들은 참나무처럼 든든한 다리와 늘 입가에 떠돌던 미소에 대해 말하군 하였지만 수령님의 마음속에 새겨진것은 그 웃음에 가리워진 아픈 상처였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모습이 때없이 눈앞에 다가오군 하시였다. 상상속에서 두 시선이 부딪칠 때면 그는 《내가 장군님께 가는 길을 열어간다고 생각하면 다리에 막 힘이 솟습니다.》 하며 미소짓군 하였다.
그야말로 제비꽃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이였다.
수령님의 마음속에서는 그가 영원히 떠나간것이 아니였다. 비록 너무 일찌기 생을 마치였어도 조국에 대한 사랑을 안고간 그 사람을 잊을수 없으시여 그와 함께 마음속의 삼천리를 걷고 또 걸으시는 수령님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집무탁우에 놓인 연필 한자루를 집어드시였다. 《꿀벌》이라는 글자를 보신 수령님께서는 연필을 드신채 창가로 천천히 다가가시였다.
그때 시계의 종소리가 울리여왔다. 밤 2시였다.
4
림성현은 수령님을 모시고 새벽산책길에 올랐다. 수령님께서 산책을 무척 즐기신다는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였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백두산에서 그이와 새벽길을 걷게 된것은 림성현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 아닐수 없었다.
려명의 푸름한 빛이 퍼져나가는 밀림속에서는 전나무며 봇나무잎새에 맺혔던 새벽이슬이 해묵은 락엽을 두드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이 울려오고있었다.
나지막한 둔덕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신 수령님께서는 한송이 제비꽃을 보시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것 보오. 꽃이 참 곱지 않소?》
백두산과 수령님에 대하여 생각하며 걷던 림성현은 의아함을 금할수 없었다.
그로서는 주위에 보다 크고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있음에도 그 작은 꽃에 매력을 느끼시는 수령님심중의 깊은 뜻이 무엇인지 아직 알수 없었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걸음을 옮겨가시였다.
《생각나오? 전후에 나와 함께 황해남도의 한 농촌마을학교에 들렸던 일말이요.》
수령님께서는 즐겁게 미소지으며 말씀하시였다. 하지만 림성현은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동무의 머리가 희여진것을 보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소. 금방 회칠을 한 자그마한 농촌마을학교, 학교에서 울리던 그 유정한 종소리가 생각나지 않는단 말이요?》
그제서야 림성현의 입가에는 빙긋 미소가 피여올랐다.
《아, 생각납니다. 1957년 가을이였습니다. 그 종소린 분명 구리종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글소리랑, 교실이랑… 생각납니다.》
《옳아. 림동무가 기억력이 좋거던. 그리고 언제 봐야 정확하단 말이야.》
림성현은 어줍은듯 뒤더수기를 매만지였다. 림성현이 그때 일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잊지 않고있는것은 사실 기억력때문이 아니였다.
그때 황해남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던 수령님께서는 농촌마을학교의 그 수업종소리를 들으시고 림성현을 비롯한 수행원들에게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의 학교에 들려보자고 하시였었다.
일군들과 함께 수업이 한창인 어느 교실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처녀선생에게 아이들이 지금 무슨 공부를 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것에 대해 글을 짓는중이라는 처녀선생의 말에 무척 흥미를 느끼신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교실을 거니시며 아이들을 굽어보시였다.
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열심히 글을 쓰고있는 아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연필방아를 찧고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한 소년의 곁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학습장에 씌여진 《삼천리금수강산》이라는 작문제목이며 글의 내용이 마음에 드시였던것이다. 무척 영민하게 생긴 아이였다. 그애는 총알깍지를 끼운 꽁다리연필을 종이에 대고 꼭꼭 박아쓰고있었다.
《우리 나라는 아름다운 삼천리금수강산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손가락만 한 연필을 손에 쥔 그 소년이 애처로우시여 연필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소년은 뜻밖에 필갑에서 한번 깎기만 했을뿐 새것 그대로인 《삼천리》표 연필을 꺼내놓는것이였다.
어째서 그 연필을 쓰지 않는가고 물으시자 소년은 당돌하게 대답하였다.
《이 연필은 아버지가 저에게 남긴것입니다.》
순간 수령님께서는 아이에게 어떤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처녀교원이 수령님께 소년에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전쟁시기 남반부에서 들어온 아이였는데 아버지는 전쟁전에 희생되였고 그애를 업고 왔던 어머니는 그후 철도복구대로 나갔다가 적비행기의 폭격에 희생되였다고 하였다. 그애 어머니의 사품속에 있던 연필은 애아버지가 어린 자식에게 남긴 유물이였다. 소년은 아버지의 체취가 스민 그 연필이 닳는것이 아까와 꽁다리연필을 쓰고있었으리라.
그날 소년은 글짓기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랑독하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연필을 손에 든 소년이 수령님께로 다가가 점수를 매겨달라고 하는것이였다. 처녀선생은 소년을 나무라며 저애는 5점을 맞을 때면 꼭 그 연필로 점수를 받군 한다고 말씀올리였다.
연필을 받아드시고 《삼천리》라는 글자를 한참이나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뭔가 생각되는것이 있으신듯 소년에게 이름을 물어보시였다.
《정철영입니다.》
《정철영이? 아버지이름은 뭐냐?》
소년은 울먹거리기만 할뿐이였다.
어린 소년의 눈가에 가랑가랑 맺힌 눈물을 닦아주시던 수령님께서는 연필로 학습장에 《5점》이라고 큼직하게 새겨주시였다.
《공부를 잘하거라. 네가 공부 잘하면 돌아가신 아버지도 어머니도 기뻐하실거다.》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우리가 이애의 아버지가 되여주자고 말씀하시였다.
눈물없이 볼수 없었던 추억의 그 장면이 분비나무숲을 거니는 림성현의 눈앞에 사라질줄 몰랐다.
벌써 30여년전의 일이였다.
그때의 더벅머리소년, 그애는 정진수의 아들이였다.
그날 평양으로 돌아가시던 수령님께서는 림성현에게 거기에 남아 소년의 부모들에 대해 알아보라고 말씀하시였다. 남반부에서 살았다는 그애의 아버지가 거의 10년전에 생산한것이 분명한 연필을 유물로 남긴 사실이라든가 아이가 정진수의 아이와 나이가 같다는 사실 등이 우연처럼 여겨지지 않으시였다. 더우기 정진수가 희생된 후부터 그의 가족을 찾기 위해 마음써오신 수령님이시였다.
수령님의 의도를 알리 없었던 림성현은 료해과정에야 소년이 정진수의 아들임을 알고 즉시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드리였다.
자신의 예감이 틀림없었다는것을 확인하신 수령님께서는 자식에게 《삼천리》연필을 귀중한 유산으로 남겨주고 간 정진수의 인간미를 다시금 가슴후덥게 느끼시였다. 정진수는 자신과 만났던 그날의 약속을 잊지 않았던것이다.
림성현은 지금도 평양으로 달리는 승용차안에서 그 소년을 꼭 그러안고 기뻐하던 일이 눈앞에 선했다.
그후 소년은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하였다. 림성현은 그때에는 물론 그후 내각의 지도일군으로, 조국통일부문의 일군으로 드바쁜 나날을 보내는 속에서도 정진수가 희생된 날이면 꼭꼭 그를 만나보군 하였다.
《철영이가 얼마전에 인민군대려단장이 되였소. 내 그를 만났을 때 보니 작전가방에 아직도 <삼천리>연필을 넣고 다니더군.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훌륭하오?》
림성현은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자기는 철영이가 름름하게 자라는 모습을 늘 대견하게 바라보면서도 그가 가슴속에 무엇을 안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관심하지 못하였었다.
《정동무는 아들에게 훌륭한 유산을 물려주었소. 가슴속에 삼천리에 대한 사랑을 안고 살기 바라는 아버지의 축복이였다고 할가.》
수령님께서는 길가에 핀 또 한송이의 제비꽃을 보시며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림성현은 그이의 집무실에서도 저 꽃을 보았던것이 생각났다.
여기에 어떤 사연이 있는것일가?
《동무가 내앞에 련판장을 내놓으며 정진수의 희생을 알리던 일이 엊그제 같구만. 정진수가 기어이 돌아오겠다고 했다며 슬피 울던 일이 정말 잊혀지지 않아.》
한가지 사실이 림성현의 뇌리를 스치며 떠올랐다. 수령님께서 오늘도 못 잊으시는 정진수라는 인간의 마지막모습이였다.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도자협의회이후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던 남녘인민들에 의해 선출된 수많은 인민대표들이 분계선을 넘어오고있었다. 그때 대표로 선출된 림성현도 북으로 들어오게 되였다. 정진수는 또다시 길안내를 맡아나섰다.
강을 건느고 산을 넘었다. 그 강, 그 산을 둘로 가를수는 없다고 결의도 나누며…
가평군 화악산을 넘어 광덕산줄기를 따라 북으로 가던 인민대표들은 뜻밖의 정황에 부닥치게 되였다. 일행의 앞길에 적들이 나타났던것이다. 림성현은 몹시 당황하였다. 다른 출로가 더는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생각끝에 그는 일단 되돌아설것을 결심하였다. 그가 자기 의견을 말하자 사람들의 얼굴엔 어두운 그늘이 비끼는것이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표가 새겨진 련판장을 품고 떠나며 자기들도 새 조국의 창건을 보게 되였다고 기뻐하던 그들이였다. 한 대표는 림성현의 가슴을 치며 통곡하듯 울부짖었다.
그때 정진수가 아니였다면 그날은 림성현의 한생에 가장 괴로운 추억으로 남게 되였을것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정진수는 품속에서 련판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새겨진 자기의 이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안해와 함께 갓 태여난 아들애의 작은 손을 잡고 한자한자 새겨넣은 이름이였다.
정진수는 련판장을 접으며 림성현에게 넘겨주었다.
《성현동지, 돌아서면 안됩니다.》
그 어조에서는 비장한 결심이 느껴졌다.
《땅이 있으면 길도 있는 법이라오.》
그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벌씬 웃음지었다. 몹시 눈에 익은 미소였다. 그런데 그 인간을 선량하고 지어는 소심하게 여겨지게 하던 그것이 이 순간에는 어떤 거인의 넋이 발산하는 신비론 후광처럼 비껴들고있었다.
《이 련판장을 장군님께 드려주십시오. 그리고 정진수가 꼭 돌아온다고 말씀드려주십시오.》
노을이 불타는 언덕우로 성큼성큼 걸어오르던 그는 잠시 멈춰서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지들! 내 꼭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웃고있었다. 눈부신 장미빛석양의 빛속에서 울리여오는 그 맑은 목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파고들어 심혼을 휘저으며 창공에 메아리쳐가는것이였다.
정진수가 떠나간지 얼마 안 있어 어딘가 먼곳에서 총성이 울리였다. 일행이 위험구간을 무사히 통과했을 때 저녁노을이 짙게 어린 하늘가로 마지막총성이 긴 여운을 남기며 울려퍼졌다. 사람의 혼을 찢어발기는듯 한 그 소리마저 사라져가고 어둠과 무거운 정적이 깃들어갈 때 그가 남기고 간 련판장이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넘어갔다. 여기저기서 자기들의 길잡이를 해온 한 청년의 마지막자욱같은 그 이름을 바라보며 흐느끼는 소리가 울리고있었다. 북으로 북으로 향해가는 그들의 가슴속에 석양이 비낀 언덕우에서 자기들을 향해 손을 젓던 그 사나이의 목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며 쉬임없이 울리여왔다.
…
《성현동무, 내가 지금 왜 지나간 일을 추억하는지 아오?》
수령님께서는 정진수는 자신앞에 단 한번 왔다가 영원히 떠나간 사람이였지만 마음속에 깊은 자욱을 새겨놓았다고 말씀하시며 몹시 서운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실 나는 어제 동무의 말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파 온밤 잠들수가 없었소. 정말 난 그처럼 순박한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하겠단 말이요.》
순간 림성현은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의식에 휩싸이였다. 정진수에 대한 그 한마디의 말에 수령님께서 이렇듯 노여워하실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었다.
림성현에게는 어제 자기가 객관적자료니, 사사로운 감정이니 하고 운운할 때 수령님께서 못내 섭섭해하시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림성현은 수령님께서 왜 정진수를 잊지 못하시는것인지 그 심중의 깊은 뜻을 아직은 다 알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씀하시였다.
《해방후 정진수동무를 나에게 소개한 사람은 다름아닌 동무였소. 지금도 나는 어디서 소박하고 성실한 사람을 알게 되면 정진수를 그려보게 되고 또 그를 생각하느라면 은근히 그 사람을 내세워주고싶어하던 동무의 모습을 되새겨보군 하오. 그를 찾고서는 너무 기뻐 나에게로 달려왔던 땀에 젖은 동무의 모습은 참 아름다왔소.》
림성현에게는 오래전 수령님께 정진수에 대해 말씀드릴 때의 그 심정, 수령님께서 정진수가 사람복이 있다고 말씀하실 때의 그 감정, 그 모든것이 생생히 되살아나는것이였다.
《그래 동무는 그때 무엇을 보고 그와 사귀였더랬소? 무엇때문에 그를 내앞에 내세우고싶어했고 무엇때문에 그의 희생에 그리도 슬퍼했소?》
림성현은 그와 자기사이의 인연에 대하여 더듬어보았다.
방황하는 불행한 인간을 이끌어주고싶은 의협심이 그와 손잡게 하였었다. 그리고 어려운 일에 스스로 몸을 내대는 사람에 대해 선배로서 가지게 되는 믿음, 성실한 벗을 만났다는 흐뭇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후 그의 희생과 함께 쓰라린 상실감으로 바뀌였다.
지금도 인생길에 흔치 않은 동행자였고 미더운 방조자였다는 인상은 깊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의 일을 놓고 울고웃던 가식없는 감정이 어디서 생긴것이였던지 딱히 찍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한줄기 바람이 숲속을 지나갔다. 숲의 푸른 잎사귀들은 잠투정하듯 흐느적이며 아직 굳잠든 대지에 맑은 이슬방울들을 후두둑 떨구었다. 잠을 설친 산까치 한마리가 온 숲의 생명들에게 새날을 알려주려는듯 청을 돋구어 울어대며 날아예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림성현에게 자신께서 왜 정진수를 잊지 못하시는가를 이야기해주시였다.
수령님께서 그의 웃음과 그 웃음으로 가리웠던 아픈 상처에 대하여 이야기하실 때, 고향길이 아니라 사선을 헤쳐야 하는 길잡이의 험난한 길을 택한 그의 마음에 대해 말씀하실때 림성현은 놀랐다.
자기도 그의 웃는 모습을 많이 보았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 웃는것인지 림성현은 전혀 모르고있었다.
처음에는 웃음이 헤프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일을 맡겨달라고 하자 그렇게 어진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고 도리머리를 젓기까지 하였었다. 하지만 후날 그의 일솜씨를 보고는 인상좋은 친구였다고 단정해버리고말았다.
《정진수는 정말 자기가 사랑한 그 제비꽃처럼 산 인간이였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일찍 가는건지.》
수령님으로부터 정진수와 제비꽃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림성현에게는 펀뜻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정진수와 작별하던 때의 일이였다.
한동안 언덕을 향해가던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허리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손에 드는것이였다. 다시 몸을 일으키는 그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어리여있었다. 림성현은 무엇이 이 순간 그에게 저토록 비상한 감동을 주는것인가고 생각하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정진수는 자기의 손을 펼쳐보이였다. 뜻밖에 손우에는 한송이 작은 제비꽃송이가 놓여있었다.
한갖 길잡이로 불리우던 자기를 삼천리조국의 귀중한 보배로 내세워주신 수령님의 사랑을 안고 그는 행복의 미소를 지으며 영원의 길을 간것이였다.
옛 추억을 되새겨본 림성현은 예리한것에 가슴을 허비운듯한 아픔을 느끼였다.
《난 그 소박한 인간에게서 천금에도 비기지 못할 귀중한것을 보았소. 나에겐 그보다 값진 보물이 없소. 내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잊지 않고 내세워주고싶어하는것은 그들의 공적때문만도 아니고 특별한 인연때문은 더더욱 아니요. 감히 그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린 그것으로써 오로지 조국에 깨끗한 마음을 바쳐온 우리 인민의 삶을 우롱하게 되는거요. 그 어떤 공적에 앞서 우리가 가장 귀중히 여겨야 할것은 사람들의 마음이요.》
림성현은 자기의 행동에는 그 어떤 구실로도 굼때버릴수 없는 심중한 원인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승용차안에서 자기를 바라보시던 수령님의 눈빛이 되새겨졌다. 자기가 한 해외교포종교인에 대한 평가에서 협소했다고 말씀드릴 때 수령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시며 판단은 응당 정확해야 한다, 하지만 옷을 보고는 사람을 알수 없듯이 직관적 관찰로는 대상의 본질을 정확히 알수 없지 않느냐고 말씀하시였었다.
수령님께서는 인간이 지닌 마음의 귀중함을 모르고 산 자기를 타이르고계시였던것이다.
지금까지 정진수를 한갖 목적지로 가기 위해 함께 걸었던 그런 길잡이로 여겨온것이 아닐가.
하기에 수령님께서 대번에 찾아보신 그 귀중한것을 대수롭지 않게 스쳐보냈던것이 아닌가.
아니라고 하기엔, 그것은 현실앞에서 너무도 무맥한 변명일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적지위가 변화하는 과정에 끊임없이 헤여지고 맺어지는 인간관계속에 살면서 어느덧 실무적인 인간이 되여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림성현은 이때 자기의 마음속심연을 헤치며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자기같은 사람도 나라를 위해 일할수 있느냐고 묻던 정진수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였던가.
그것이 림성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인간의 매력이였다. 림성현은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
《난 아직도 그가 죽었다는것을 믿고싶지 않소. 이제라도 통일이 되면 그가 불쑥 내앞에 나타날것만 같아. 그런데 우리가 그 넋을 잊는다면 그가 누구를 찾아온단 말이요? 그러면 그는 이 땅을 영영 떠나가버린 사람이 되고말거요.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많은 말을 해온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믿고 조국을 위해 생을 바쳐온 사람들의 삶을 감히 저울질할수가 있단 말이요?》
수령님의 심중의 깊은 뜻을 깨닫는 순간 림성현의 마음은 형언할수 없이 괴로웠다.
《수령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숲속에는 한동안 나무잎 설레이는 소리며 젖은 락엽을 밟는 소리만이 고요히 울리였다.
산책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오신 수령님께서는 창가의 꽃병앞으로 다가가시였다.
꽃병속에서는 어제 꽂아놓으시였던 제비꽃송이가 곱게 웃고 있었다. 태양의 빛을 무척 따르고 혹한도 열풍도 두려움 모르는 실로 사랑스러운 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 작은 생명이 이 높은 백두산에 올라 밀림의 거목들속에 뿌리내리고 산다는것이 여간 기특하게 여겨지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파란 버들잎같은 꽃받침잎이며 노란 꽃술을 빼여문 꽃의 귀여운 모습을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자기처럼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살아가는 양지바른 들을 떠나 높고 험한 백두산에 올라 자연의 거센 풍파를 이겨나가는 이 꽃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마음속에 묻어둘수 없으시였던 수령님께서는 어제 저녁 그 작은 꽃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씀해주시였었다.
《이 꽃은 백두산제비꽃이요.》
…
수령님께서는 희슥한 머리를 수굿하고 서있는 림성현을 돌아보며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성현동무, 명심하오. 자기를 한갖 길잡이라고 하던 정진수와 같은 사람, 저 높고 거대한 산악에서 피여나는 작은 꽃들처럼 소박한 인간들이 바로 조국통일의 길을 개척한 첫 세대였고 자기 자식보다 더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훌륭한 혁명동지였소. 설사 모든것을 다 잊는대도 정진수와 같은 동지들의 가슴속에 간직되였던 그 넋을 잊어서는 안되오. 공로란 다른것이 아니요. 정진수와 같은 사람들의 삶자체가 공로이고 이 땅에 가정에 대한 애정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바치고 꿈많은 청춘도 아낌없이 바친 그 마음들에 우리 겨레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가장 큰 공로가 있는거요.》
방안에는 한동안 고요가 무겁게 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 깊은 고요속 어디에선가 울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시였다. 그 목소리는 차츰 가까이에서 쟁쟁히 울려오고있었다.
《장군님, 지금 제 마음은 이제 겨우 첫걸음마를 떼는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분명 정진수의 목소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 소리가 울려오는 곳을 찾으려는듯 사방을 둘러보시였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손수건을 꺼내드시고 후덥게 젖어오는 눈가로 가져가시였다.
정진수처럼 돌아오지 못한 유명무명의 렬사들을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 사시는 수령님이시였다. 그들을 생각할 때면 철창속과 단두대, 인적없는 산야마다에서 눈감겨주는이도 없이 비석 하나 남기지 못한채 그 어느 나무밑에, 그 어느 바위밑에 한줌 흙이 되여 묻힌 령혼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아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으시였다.
림성현은 숭엄한 마음을 안고 수령님을 우러러보았다.
집무탁우에 어제의 그 책을 꺼내놓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추억깊은 눈길로 거기에 새겨진 이름들을 더듬어보시였다.
《조국이 해방된지 벌써 45년이 흘렀소. 우린 겨레를 위해 자신을 바친 사람들의 삶을 응당 존엄높이 내세워주어야 하오. 내가 이 도서에 대하여 류달리 관심하는것은 바로 그때문이요.》
림성현은 가슴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조국과 겨레를 누구보다 사랑하시는분, 그것을 위해 한평생 헌신해오시고도 통일의 길을 걸어온 이 나라 인민들을 위해 마음쓰시는 수령님이시였다.
림성현은 차마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출판기관 일군들에게 자료를 넘겨줄 때 성현은 수령님께서 책을 보시면 기뻐하실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수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줄이야. 그 책에 정진수의 이야기가 빠진것은 자기 생활의 빈구석을 말해주는것이였다. 이 실책을 무엇으로 보상할수 있단 말인가?
수령님께서는 림성현의 속마음을 헤아려보신듯 그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며 말씀하시였다.
《성현동무, 정진수의 투쟁자료를 가지고 글을 한번 크게 써보는것이 어떨가? 통일을 위해 생을 바친 사람들은 누구나 마땅히 후세에 전해질 자격이 있지. 정진수, 우리의 제비꽃이 후대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피여있게 하자구. 나는 이 글을 동무에게 맡기자고 하오. 동무는 필력도 있고 정진수를 누구보다 잘 아는것만큼 좋은 글을 쓸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내가 이번에 동무를 부른것은 바로 이것때문이였소. 정진수에 대한 글의 제목을 <제비꽃>이라고 답시다.》
순간 림성현은 건듯 머리를 쳐들었다. 급히 수첩을 펼쳐든 그는 흥분으로 하여 몹시도 떨리는 손으로 《제비꽃》이라는 제목을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정진수, 하많은 꽃들중에 작은 제비꽃을 사랑했던 사람, 바람세찬 백두에 뿌리내린 한송이 꽃처럼 험난한 조국통일의 길을 자기 삶의 길로 정했던 그, 그는 오늘 수령님의 사랑속에 다시 태여나 삼천리대지에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금방 해돋이가 시작되는 백두산마루를 바라보시며 창문가로 다가가시였다.
그이의 뒤를 따라서며 태양의 눈부신 빛발을 바라보던 림성현은 무엇엔가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퇴색한 사진속에서처럼 흐릿이 새겨지던 정진수의 모습이 이 순간 너무나 또렷하게 창문 가득 어려오는것이 아닌가. 예전처럼 떡 벌어진 두어깨엔 색날은 배낭을 메고 참나무처럼 든든한 두다리엔 행전을 친 차림새그대로 활개치며 걸어오고있는것이였다.
총이 센 머리, 진한 눈섭, 그밑에서 고요히 빛나는 까만 눈동자, 마치 옛시절이 되돌아오는듯싶었다. 그는 웃고있었다. 오목한 입술사이로 흰이를 반짝이며 벙글벙글 웃고있었다. 자기의 주위를 온통 그 밝은 미소로 물들이며…
림성현의 가슴은 몹시도 높뛰였다. 무엇보다 놀라운것은 희미하게만 그려지던 모습이 순간의 환영일망정 너무도 생생했다는 그것이였다.
그는 이 순간의 놀라운 체험을 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림성현의 그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사랑한다면 꿈에도 보이는 법이요.》라고 말씀하시며 기쁘게 웃으시였다.
《아닙니다. 수령님의 사랑이 저의 마음에 사랑의 세계를 주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창문을 활짝 여시였다. 아침의 청신한 기운을 안은 금빛해살이 그이의 넓은 가슴에 확 안겨들었다.
두팔을 벌리신채 빛을 안고계시는 수령님을 우러르던 림성현은 눈부신 광원을 본듯 황홀한 심경에 휩싸이였다. 무심히 보았던 제비꽃, 그 작은 생명은 그지없이 살틀한 태양의 애무속에 무한한 행복의 미소를 지으며 어리광부리듯 흐느적이고있었다.
동이 터온다. 한평생 겨레의 마음속 삼천리를 걷고걸으시며 사랑의 빛발을 안겨주시는 수령님의 그 품속에서 대지의 아침이 밝아오고있었다.
창너머 저 멀리 삼천리의 길마다에 어우러진 무성한 꽃송이들이 아침이슬 반짝이며 설레인다. 그 꽃무지사이로 정진수며 수령님의 품속에서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떠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차츰 가까이가까이 활개를 저으며 다가온다.
수령님 피워오신 아름다운 꽃길로 정진수가 돌아오고있었다. 영원히 잊을수 없는 백두의 아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