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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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복구개건을 비롯한 도시복구 및 건설계획수행에서 나서는 대책이 토의된 내각전원회의가 길어짐으로 해서 그다음으로 예정된 농업부문협의회는 늦어지게 되였다. 이런 사정으로 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협의회에 앞서 휴식시간에 긴급한 문건들을 보시고 처리하시지 않으면 안되였다. 거기에는 리승엽도당의 공화국전복음모와 간첩사건에 대한 공판을 개정할데 관한 문건도 있었다. 이 간첩도당이 적발되고 분쇄된것은 우리 공화국이 조국해방전쟁에서 쟁취한 중요전과의 하나이다. 놈들에 대한 공판은 인민들에게 계급적각성을 불러일으키고 복구건설에로 고무할것이다. 그런데 미제놈들은 여전히 공화국을 겨냥한 책동을 그치지 않고있다. 통보에 의하면 덜레스가 곧 남조선에 날아들어 리승만과 모의하고 미국과 남조선사이의 《호상방위조약》에 가조인하려 하고있다. 이 기도는 지금 내외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있다. 안팎의 원쑤들의 도발책동이 계속되고있는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은 힘찬 걸음을 떼였다. 곧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의 기본방향을 결정하는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가 열릴것이다. 지금 진행하는 부문별 협의회들은 전원회의에 제출될 기본방향과 수행방도를 확정함에 있어서 일정한 의의를 가지게 될것이다…

협의회에는 관련부문 부수상인 최창익과 농업상, 재정상들이 참가했고 농업성에서는 부상들까지 참석했다. 최창익은 작은 키에 등이 좀 휘긴 했지만 통통하고 근력이 왕성해보이는 늙은 사람이다. 그는 얼마전까지 재정과 량정만을 담당했었는데 농업담당부수상이 갑자기 결원되는바람에 농업도 림시 맡아보게 되였다.

원래 농업을 잘 모르는데다가 갓 담당했으므로 그는 제기된 안건처리를 농업상에게 거의 맡기다싶이했고 성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강봉석은 그와 몇마디 말을 해본후로는 그를 아예 무시해버리다싶이 하였다.

강봉석은 다만 그에 대하여 환갑이 다 된 나이와 높은 직위와 과거 반일투쟁경력을 존중하고있을뿐이였다.

강봉석이로 말하면 그는 이 더운 때에도 흰 양복을 입고 빛갈이 연한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있었다.

협의회에서는 먼저 농업상이 보고를 하였다. 그의 보고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있는 농촌경리의 파괴상황은 이 나라의 산과 들, 거리와 마을들에서 아직 풍기고있는 끄스름내를 강하게 느끼도록 하였다… 전쟁 3년간에 피해입은 부침땅이 37만여정보, 줄어든 농경지가 9만여정보, 상실된 부림소가 25만여마리, 관개시설은 수자를 밝힐수 없이 거의다 파괴되였다. 미제놈들은 심지어 지난 5월 석암저수지와 자문저수지를 전투폭격기들로 수차례 폭격하여 처참한 피해를 가져왔는데 석암저수지가 터지면서 생긴 홍수에 의한 피해만 보아도 800여호의 농가가 침수파괴되고 400여명의 사람이 죽었으며 수다한 토지가 황페화되였다. 보고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실례들을 적지 않게 지적하였다. 결과 많은 농가들과 극심하게 령락되여 령세농민들이 현재 전체 농호의 30~40%를 차지하고있다. 이로부터 농민들에게 필요한 농기구들과 축력을 빨리 보장해주어야 하며 파괴된 농업시설들을 복구하고 평남관개공사를 비롯한 관개공사들을 대대적으로 벌리기 위하여 농업부문에 국가투자를 많이 하고 농촌경리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강화하는것이 근본적인 의의를 가진다. 상의 보고에서는 필요한 자금의 액수와 농기구, 부림소, 뜨락또르들의 수자가 밝혀져있었다.

어디서나 필요한것이 자금, 자금이다! 가령 금속공업이나 기계, 화학, 건재공업의 실태를 들어보면 거기서도 사정은 매한가지이다. 나라를 추켜세우고 발전시키자면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장성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시급히 풀어야 할 인민생활을 외면할수 있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업에 투자해야 할 자금몫이 적혀져있는 재정성에서 제출한 문건을 보시면서 농업상의 보고를 들으시였다. 보고에서는 계속하여 토지복구와 개량, 목축업과 공예작물의 장려 등 실무적인 과업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였다.

보고가 끝나자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의견들이 있으면 제기하시오.》

잠간 침묵이 흐른뒤에 재정상이 지금 뜨락또르를 1천대씩이나 수입해올 형편이 못된다고 딱 자르듯 말했다.

그러자 그에 대답하기 위하여 농업상이 아니라 강봉석이 일어섰다. 그가 뜨락또르의 수입을 주장하여 보고서에 넣었던것이다.

《농촌경리의 발전이란 곧 그에 투입되는 현대농업기계들의 량적 및 질적장성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우리의 농업을 중세기적락후성에서 현대적인 선진농업으로 발전시키자면 손로동대신 기계가 일하는 기계화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는 메마른 어조로 이렇게 서두를 뗐는데 재정상이 아니라 협의회참가자들전체를 대상하여 기계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득시키려 하는것 같았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뜨락또르가…》하고 강봉석이가 계속하려는데 재정상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의 말을 막았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럽니까? 외화가 없다질 않습니까!》

그의 말을 최창익이가 받아물었다.

《부림소조차 부족한데 기계화소리를 하게 됐소? 그건 참새가 황새걸음을 하려는거나 마찬가지요.》

그는 통통한 배우에 두손을 깍지끼여 올려놓고 짤막한 상체를 의자등받이에 기댄채 함경도사투리가 강하게 풍기는 억양으로 말했다.

강봉석이는 늙은 부수상쪽으로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최창익이를 현대농업에 무식하다고 깔보고있었기때문이였다.

김일성동지의 표정을 살펴보고나서 최창익은 이렇게 계속하였다.

《지금 인민들이 헐벗고 굶주리고있는데 뜨락또르요 뭐요 하며 기계타령을 하고있어야 하겠습니까. 령락된 인민생활을 추켜세우는데 직접 투자를 하는것이 급선무란 말입니다.》

강봉석은 이마를 손으로 고이며 눈을 내리깔았다. 더 말하고싶지 않다는 표현이였다. 그러나 그는 참을수 없어 이마에서 손을 떼고 침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조선의 농업은 언제까지나 락후한 상태에 머물러있게 됩니다. 나는 더 할말이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손에 쥐신 연필을 굴리시며 시종 침묵을 지키고계셨기때문에 그들은 더 할말이 있어도 삼가하게 되였다. 좌석이 좌석이니만치 함부로 일어서게 되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수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다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시며 무거운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외화가 긴장하다는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전후에 년간 3억루블이상의 외화원천을 확보할데 대한 과업을 제기하시였는데 그 3억루블도 실상 아름찬것이였다. 그리고 지금 농촌의 기계화를 론의할 형편이 못되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농민들의 령락된 생활향상에만 급급하여 돌아가면 우리 농촌경리는 강봉석이 말한것처럼 영영 현재의 락후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말것이다.

《일이 잘 되자면》 이윽하여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공업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서 농촌경리가 발전해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공업을 선차적으로 복구발전시키려고 합니다. 강력한 중공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계제작공업을 창설하고 뜨락또르를 자체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기계제작공업을 건설하고 뜨락또르를 생산하자면 시일이 많이 걸릴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장들을 건설하는 한편 가능한껏 뜨락또르도 사들여와야 합니다. 그러나 뜨락또르같은 현대적농기계는 기계공업이나 무역부문에서 해결할 문제고 농업부문에서는 당면하여 파괴된 농촌경리를 시급히 복구하기 위한 사업을 비롯하여 자기들이 해야 할 일들을 착실하게 준비해나가야 하겠습니다.》

계속하여 수령님께서 토의를 구체화해나가시며 이렇게 물으시였다.

《평남관개공사계획를 구체적으로 들어봅시다.》

이 공사는 수령님의 발기에 의하여 전쟁전에 시작했다가 중단되였었다. 그랬는데 올해 1월 수령님께서 농업성일군들을 부르시여 전후에 공사를 진척시킬수 있도록 전반적인 공사대상지조사사업과 공사준비에 착수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강봉석이 책임지고 현장조사사업을 진행했고 준비사업에 착수하는 한편 구체적인 공사계획을 세웠다.

상이 공사계획을 말씀드리였다. 공사는 대동강물을 기본으로 하고 청천강물을 보조수원으로 하여 총 연장 근 4만리의 수로를 째고 5천여개의 대소구조물건설을 예견하는 방대한 규모였다.

《공사를 몇년이면 끝낼수 있습니까?》

수령님께서 다시 물으시였다.

상이 이내 대답을 드리지 못하자 최창익이 말했다.

《한 5~6년 걸려야 할것 같습니다. 기존시설물들의 파괴가 너무 심합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침묵하시였다.

《6년이면 너무 늦습니다.》

이윽하여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이 공사를 오래 끌수 없습니다.》

그이의 어조는 어느정도 날카로우시였다.

《세멘트, 철강재를 비롯한 각종 건설자재를 생산하는 공장들이 다 파괴되였고 로력도 긴장한 형편입니다. 특히 지금 인민생활에 우선 자금을 돌려야 할 형편에서…》

최창익이 그이의 안색을 살피며 말끝을 흐리였다.

김일성동지의 안광에서 노기가 번뜩이였다. 전쟁시기에도 어려운 인민생활을 운운하면서 당의 로선과 정부의 정책에 까박을 붙이던 최창익이였다. 얼핏 보면 누구나 제1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인민생활에 그가 제일 관심을 가지고있는것 같았다.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집무실안을 울리였다.

《인민생활이 어렵기때문에 우리는 이 공사를 하루라도 앞당기자고 합니다. 걱정이나 하면서 누가 원조해줄것만 바라며 가만히 앉아있어가지고는 백년이 가도 령락된 인민생활을 추켜세울수 없습니다.》

외국의 원조에 큰 기대를 걸고있는 최창익은 더 할말이 없어진듯 얼굴이 불그레해져서 잠자코 있었다. 강봉석이도 눈길을 떨어뜨리였다.

《물론 인민생활에 직접적인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없지 않습니까? 형제국가들의 원조도 배고프다고 다 먹어버리면 그 다음에 또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라도 나라를 개건해야 하며 평남관개공사도 최단기간내에 전인민적운동으로 끝내야 합니다. 동무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수령님께서 농업성 부상들을 돌아보시였다.

《우리가 6년씩이나 이 공사를 끌어야 하겠습니까? 어디 현장조사를 직접 한 강봉석동무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봉석이 현지에 나가보았으니 물을 갈망하는 그 고장 농민들의 심정을 잘 알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넓은 땅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물때문에 못살고 고생하는 열두삼천리벌 농민들이였다. 그이께서는 전쟁전 어느날 황혼이 비낀 황무지의 늪가를 거닐기도 하시고 그곳의 한 농가에 머무르시여 밤늦도록 농민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시면서 농민들에게 먹을 물을 주고 황무지로 변한 대지를 생명수로 적시여 물걱정과 가난으로부터 그들을 해방하고 불모의 땅을 옥토로 전변시킬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강봉석이가 대답드리였다.

《수상동지, 공사기일을 앞당길수 있는 여지는 있습니다.》

수령님의 안색이 밝아지시였다.

《어디 말해보오.》

《지금 시공을 너무 락후하게 하고있습니다. 례를 들면 공사에서 제일 중요한 콩크리트언제와 굴뚫기작업이 그러한데 기계화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이고 겨울에도 콩크리트작업을 할수 있는 선진작업방법을 도입하면, 그리고 로력조직을 잘하고 내부예비를 동원하면 막대한 로력과 자재를 절약하면서도 공사기일을 앞당길수 있습니다.》

《그것보시오. 탐구하면 예비가 나온단말이요.》

수령님께서 기뻐하시였다.

최창익은 강봉석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얼마나 앞당길수 있겠소?》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한 1년 앞당길수 있을것 같습니다.》

《1년?…》

수령님께서 머리를 가로저으시였다.

《아니요. 나는 2~3년안에 공사를 끝냈으면 합니다. 한 3년 앞당겨서…》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봉석이는 자기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자기의 감정을 얼굴표정에서나 대화에서 잘 나타내지 않는 최창익도 몸을 쭉 펴며 이렇게 문의했다.

《자금을 예산액보다 더 투자할 생각이십니까?》

《자금이 어디서 갑자기 더 생기겠습니까. 예비를 찾아내야 합니다. 가장 큰 예비는 사람들의 머리속에 있습니다. 무슨 일에서나 중요한것이 사람들의 사상정신상태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우리 인민의 힘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 힘을 옳게 조직동원해야 합니다. 평남관개공사를 전인민적운동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극히 실무적인 강봉석은 전인민적운동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 석연하게 안겨오지 않아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틀진 몸가짐을 하고있는 최창익과는 달리 처음부터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는 강봉석이는 지금도 두손을 무릎우에 올려놓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있었다. 그러나 속의것을 감추지 못하는 그는 내심이 얼굴에 내비치군 하였다. 그는 공사기일을 앞당길수 있는 가능성을 순전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타산했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사람들의 사상정신상태에서 예비를 찾고 2~3년안으로 공사를 끝내자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평남관개공사로부터 전반적인 농촌경리의 복구발전과 전망문제에로 폭을 넓히면서 실천적인 해결방도에로 협의회를 이끌어가시려고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여기에는 농업부문의 책임일군들이 다 모였는데 의견들을 들어봅시다. 방금 이야기된 대규모적인 관개공사를 비롯하여 농촌경리를 복구하고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며 알곡생산을 급속히 장성시켜야 할 이 부문의 과업은 대단히 아름찹니다.》

그이께서는 내외계급적원쑤들과 적들의 더욱 심해지는 책동, 농촌경리의 파괴,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형편 등에 언급하시고 이런 형편에서 가능한껏 자금을 얻어내여 투자를 늘이고 농촌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실무적인 대책을 취함과 함께 중요한 방책으로 개인농경리의 협동화문제도 상정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에게는 전쟁에서 단련되고 성장한 인민의 혁명열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밑천입니다. 인민대중의 힘은 무궁무진합니다. 이 힘을 조직동원할수 있는 실체가 협동경리가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동무들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협의회참가자들을 둘러보시였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협동화문제가 공식적으로 론의되기때문에 모두 긴장해진것 같았다. 이런 속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물론 농촌경리의 사회주의적협동화는 우리 농촌을 문명하고 현대적인 농촌경리로 발전시키며 농민들을 사회주의근로자로 개조하는 우리 혁명의 전략적인 목표로 제기되고있는 농촌에서의 심각한 변혁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당면한 전후복구건설의 어려운 과업을 풀기 위한 해결책으로써 벌려나가는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농업상과 다른 부상들은 그것이 대단히 현실적이며 중요한 문제라고 호응하였다. 강봉석은 무엇이라고 찍어 말할수 없는 복잡한 표정의 얼굴을 밑으로 숙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연히 그에게로 눈길이 가시였다.

그는 자기의 복잡한 생각을 입밖에 꺼내기를 주저하는지 혹은 여러 사람이 모인 회의석상이여서 삼가하는지 하여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수령님께서는 중화군의 어느 마을에 나가보시였던 이야기를 하시고 오늘 농업협동화는 생활적인 절박한 요구로 제기되고있으며 그것을 수행할 혁명력량도 준비되여있다는것을 강조하시는것으로 말씀을 끝맺으시였다.

협의희는 끝났다.

모두 일어설 때 수령님께서 《강봉석동무는 잠간 남으시오.》하고 말씀하시였다.

최창익이 제일 먼저 인사를 하고 가방을 끼고서 집무실을 나갔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있었다.

(강봉석이는 맹목적인 박창옥이따위보다 금새가 몇배 나간다니까.)

하지만 그의 불기우리한 얼굴을 보고서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누구도 알수 없었다. 광복전에 반일이요 공산주의운동이요 하며 동아시아는 물론 우랄너머 모스크바에까지 세상이 좁다하게 돌아치며 헐치 않는 인생의 곡절을 겪어온 그의 불기우리하고 피부가 두터운 우둘투둘한 얼굴에는 속심이 전혀 내비치지 않고있었다. 그 얼굴은 그의 활동적인 기질과 야심으로 해서 범상치 않는 기상이 풍기고있었지만 그것이 흔히 흐릿한 안개같은 표정으로 가리워져있었다. 만일 뒤에서 하는 그의 말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알수 없을것이다. 그는 협의회에서 특히 농업협동화가 론의될 때 속심을 깊이 감추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봉석이만 남게 되자 저으기 긴장해있는 그에게 담배를 피우도록 권했다. 강봉석은 당황해하며 사양했다.

《내가 남으라고 한것은 다름이 아니라 전후에 농업협동화를 실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동무의 생각을 들어보자는것입니다.》하고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강봉석이가 쓴 쏘련에서의 집단화경험을 소개한 글을 읽어보시였고 강봉석이에 대한 김일의 평가도 알고계시였다. 하지만 강봉석의 말을 직접 듣고싶으시였다. 협의회에서 무엇인가 말을 하고싶어하면서도 극력 자제하던 그의 심정도 충분히 고려하시였다. 그렇다고 수령님께서 그 어떤 새로운 말을 기대하시는것은 아니였다. 중요한것은 그의 인간됨이 어떠하며 그의 진심이 무엇인가 하는것이였다.

강봉석, 그는 광복후 조국에 자진하여나온 사람이였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그를 친히 접견해주시였으며 그가 우즈베끼스딴의 주행정에서 조선사람들의 주택들을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는데 항의하여 몰로또브에게 신소편지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잘 알고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국살이의 설음을 겪으며 조국을 그리워한 그의 심정까지 다 헤아려주시였다.

이에 그는 대단히 감격하여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장군님께서 년세가 60이 넘고 백발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워진 백두산장수이실것이라고 상상했는데 정작 만나뵈오니 얼마나 젊으시고 소탈하신지…》

그는 수령님의 인품에 매혹됨을 금치 못해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현대농업운영의 경험자이며 농산기사인 그를 우리 나라에서의 농업발전에 한몫할 일군으로 특별히 중시하시고 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나는 강봉석동무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우리 나라에 농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선진적인 꼴호즈에서 기사로 일한 강동무처럼 현대농업을 아는 전문가는 없습니다.》

《기대에 보답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믿습니다! 부인은 가수라지요? 강동무는 우리 나라 농업발전에, 부인은 우리 나라의 예술발전에 함께 기여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인재가 정말 귀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업과 관련한 문제를 의논할 일이 있으면 아무때고 찾아오라고 그에게 당부하시였다. 그후 그는 북조선인민위원회 농림국, 공화국내각이 조직된후에는 농림성에서 일하였다. 그에 대하여 다른 농학자들을 깔보며 대단히 건방지다는 의견이 제기되고있는 가운데 한번은 그가 김일성동지를 직접 찾아왔다.

《조선의 농업은 놀라울 정도로 락후한 상태에 있습니다. 세상은 20세기 중엽의 현대문명을 건설하며 향유하고있는데 이곳 농촌은 중세기에서 헤매이고있습니다. 나로써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지 당황해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 농업이 락후한 상태에 처하여지게 된 력사적과정을 설명하시고 바로 그렇기때문에 당신과 같은 현대농업의 전문가들이 우리 농업을 속히 선진적인 농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설복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쏘련의 사회주의적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새 조선의 문화건설을 쏘련화하고있는 박창옥이처럼 강봉석이도 조선의 농업을 쏘련식으로 발전시키려 하고있는데 대하여 여러번 일깨움을 주시였다.

《강동무, 여기는 쏘련땅이 아니라 력사적으로 토장국에 밥을 먹으며 살아온 조선사람들의 땅이란말입니다. 때문에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현대농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강봉석의 잘못을 바로잡아주시면서 그가 《풍토순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시였다. 그러나 자연계에서의 풍토순화과정자체가 시일이 오래 걸리듯이 강봉석이도 매우 더디게 변화되여갔다.

물론 그후에 그는 우리 나라 농업의 현대적인 발전에 기여하기 시작했고 농업성에서의 그의 사업권위도 높아졌다. 그는 알곡수확고를 높이기 위한 선진영농법을 도입하고 농기계임경소들을 설치하며 농업운영의 현대적인 기초를 마련하느라고 애를 썼고 수완도 발휘하였다. 전쟁전에 평남관개공사를 구상할 때 강봉석은 측량기술자와 설계일군들을 찾아 전국각지로 다니였었다. 전쟁시기에 강봉석은 고생도 많이 했다. 한번은 농기계임경소에 갔다오다가 미제놈비행기를 만나 찦차가 기총사격을 받는바람에 목숨을 잃을번까지 하였다. 그는 그런속에서도 농촌들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전쟁의 피해를 료해하고 전후복구건설의 계획을 작성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하였다.

강봉석은 이처럼 지난 7년간 김일성동지를 받들어 우리 나라 농업발전을 위해 일했고 농민들의 애국열의와 충정에 감동하여 마지 않았으나 쏘련의 경험에 대한 숭배심은 변함이 없었고 우리 농업이 쏘련의 사회주의적인 선진농업을 닮아가야 한다는 견해에서 쉽게 물러서려하지 않았다. 강봉석이는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려하지 않으며 론리적이든 실천적이든 납득되기전에는 어떤 문제에서도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의 주장을 형식적으로라도 굽히는척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꼴호즈라고 하는 실체를 체험한 사람이며 이미 성공한 그 경험의 진리성을 굳게 믿고있다. 그러한 그에게 기술개조에 앞서 경리형태의 개조를 먼저 하려는 우리의 농업협동화계획이 납득되겠는가. 그 계획의 진리성이 실천으로 증명되기전에는 땅에 깊이 박힌 바위처럼 끄떡도 하지 않을것이다…

하여튼 지금 강봉석이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지다 못해 파릿해졌다.

《수상동지… 저로서는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기가 헐치 않습니다… 저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그는 내리깐 눈길을 좀처럼 들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시였다.

《괜찮소. 동무야 쏘련의 꼴호즈에서 일하다온 사람인데 누구보다 협동화문제에 밝을게 아니겠소? 그러니까 우리에게 참고가 될 이야기를 해주는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어서 이야기하시오.》

마침내 강봉석이가 숙인 머리를 들었다. 그러자 평온한 표정이 어린 얼굴에 피기가 돌고 눈에 푸르스름한 광채가 돌았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본래의 침착한 자기의 자세로 돌아왔다.

《우리 농촌이 사회주의협동화를 통하여 선진적이고 문명한 발전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수상동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그 시기성이 문제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농촌경리를 복구하고 알곡생산을 늘이기 위한 중요한 해결책으로서 개인농들을 협동경리에 묶어세우는것이 대단히 중요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소농기구조차 부족한 형편에서 농민들을 어떻게 협동경리에로 묶어세울수 있겠습니까? 수세기동안 개인농경리에 인습된 그들에게 집단경리의 우월성을 체득시켜 스스로 가입하게 하자면 수공업적이고 어렵고 힘든 손로동대신에 높은 생산능률을 내면서도 문명한 기계로동의 우월성을 직접 보여주어야 할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선 농촌의 기술적개조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에 가장 낮은 기준을 설정한다해도 100헥타르당 뜨락또르가 3대는 차례져야 농산작업의 기계화라는 말을 할수 있을것입니다. 이것은 북조선의 농경지에서 기계가 작업할수 있는 면적을 100만헥타르로 보면 최소한 3만대의 뜨락또르가 전야에서 작업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이 3만대는 우리가 1년에 3천대씩 사들여 온다해도 10년이 걸려야 다 확보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금전에 이야기되였지만 1년에 1천대씩 사들여오는것도 외화가 없어 못하겠다고 하는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농업협동화가 장래에 가서 론의되여야 할 전략적과업이라는것을 반증해주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강봉석이는 솔직한 사람이였고 진지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모든 사고와 론리전개를 우리의 생동한 현실이 아니라 쏘련의 기존경험으로부터 하고있었다. 그는 농민대중의 혁명열의가 아니라 기계를 기본으로 보고있는 낡은 관념에 깊이 잠겨있다. 기계를 기본으로 보면 그의 말이 옳다.

《하나 물읍시다.》

한동안 지나서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강봉석이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만일 농민들이 협동로동을 바란다면 어떻게 되오? 그것이 그들의 생활적요구로 된다면 말이요?》

강봉석은 잠시 생각하고나서 대답을 드리였다.

《수상동지, 이렇게 말씀드리는것을 용서하십시오. 생활적인 요구가 곧 가능성은 아니라고 봅니다. 쏘련에서도 처음에 기계에 토대하지 않은 작은 규모의 협동조합을 조직하였다가 실패한 실례가 있습니다. 소설 〈개간된 처녀지〉를 읽어보면 거기에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 소설은 물론 뜨락또르의 생산과 함께 큰 규모의 집단화가 시작된 30년대의 쏘련현실을 형상하고있습니다. 소설이지만 그것은 력사적사실의 재현이였습니다.》

수령님깨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나도 그 소설을 읽었소라고 말씀하시였다.

《동무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쏘련의 경우가 아니겠소? 그 소설은 쏘련의 현실을 그리고있단말입니다.》

《협동화의 보편적원리는 우리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하며 강봉석은 눈을 내리깔고 더 전개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주저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게 어서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저는》하고 강봉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상동지께서 토지개혁을 비롯한 제반민주개혁을 실시하여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한 이후 사회주의혁명에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령도하시였는가를 잘 알고있습니다. 농촌에서만 보아도 국영농목장들과 기타 국영기업소들을 확장하는 한편 생산협동단체들을 조직하여 개인농들을 협동적소유에로 점차 준비시켰습니다. 내각에는 협동단체사업을 종합적으로 맡아보는 책임참사제를 내왔고 중앙당에 해당부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그 모든것은 멀리 뒤로 후퇴하였습니다. 다시말하여 물질적기초가 참혹하게 파괴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며 집무실을 거니시였다. 그런데 사실 푸른 탁상보를 씌운 집무탁과 긴앞탁 그리고 의자들이 차지하고나니 집무실은 사색하며 거닐 빈자리도 없을 정도로 면적이 좁았고 천정도 키가 큰 사람은 머리가 닿을 지경으로 낮았다. 강봉석이 입을 다물자 그이께서는 멈추어 서시였다.

《그러니까, 객관적조건이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는거겠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강봉석의 얼굴에는 땀이 흘렀다. 그는 잠시 주저하는듯 하더니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힘을 합치고 서로 도우면 혼자 일할 때보다 능률이 몇배 나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중시하고 현대농기계에 토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농업협동조합이 아닐것입니다. 농업협동조합이라는 건물을 공업화의 토대우에 짓지 않으면… 기초가 약한 건물이 허물어지듯 어차피 실패를…》

그는 목이 말라들어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손수건을 꺼내여 땀을 씻었다.

집무실안에 침묵이 드리웠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리 해도 지금으로서는 그를 납득시킬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가 너무 지꿎게 나오니 감정이 거슬리기도 하였다.

강봉석이 쏘련식사고로 체질화되였다는 김일의 평가가 옳았다.

선진국가의 기존경험이 그에게는 확고한 신념으로 박혀있었다.

예견했던대로지만 이처럼 집요할줄은 몰랐다. 이런 사람들때문에 앞으로 농업협동화가 곡절을 겪을수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특히 강봉석이 경우는 꼴호즈경험의 체험자이고 현재 농업성부상자리에 앉아있으니 협동화운동을 지도함에 있어서 현실적인 장애로 될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쏘련에서 나온 사람이라 하여 다 하나같이 보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큰 나라에 무턱대고 추종하며 맹동하는 사람들과 강봉석을 구별해보시였다. 강봉석이는 큰 나라에 맹종맹동하며 대리인역할을 하는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한 큰 나라의 선진경험을 절대시하고있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신조가 맹목적인 추종보다 더 저애로 될수 있었다.

수령님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격렬하게 끓어올랐다.

(실패할수 있다구?…)

불쾌감이 짙어갔다.

그이께서는 가슴속에서 끓는 복잡하고 격한 심리의 파도를 가까스로 제어하시였다. 당초에 강봉석이를 남도록 하신 목적의 다른 하나가 이 기회에 협동화의 시기상조를 주장하는 강봉석이에게 그 주장의 부당성을 깨우쳐주시려는데 있었던만큼 수령님께서는 시간을 내여 그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시였다.

《앉으시오.》

수령님께서는 손세를 쓰며 그가 앉도록 권하시였다.

그러나 자신께서는 그냥 서신채로 말씀을 하시였다.

《동무의 착오는 어디에 있는가. 객관적조건을 고찰함에 있어서 물질적인것만을 보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동무는 우리 공업과 농업의 물질적파괴상만을 보고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침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지며 허무감과 패배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또 다른 나라의 원조에 기대를 걸고 손을 내밀게 됩니다. 즉 자주성을 잃게 됩니다. 아니요. 강봉석동무! 우리 조국의 강토는 불타고 도시와 마을, 공장과 농촌이 무참하게 파괴되였지만 이 전쟁기간에 우리 인민들은 귀중한 체험을 했으며 단련되고 성장하였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자기들에게 진정한 삶의 권리와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준 우리 인민정권의 귀중함을 뼈속깊이 체험했으며 때문에 그를 지켜 무비의 영웅성을 발휘했고 당과 정부주위에 굳게 뭉치였습니다. 전쟁기간 동무도 체험했지요? 동무자신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시농업생산지휘를 하였고 후방에서 처녀들과 아이어머니들이 어떻게 전선에 나간 남정들을 대신하여 보탑을 잡고 밭갈이를 했고 씨를 뿌렸는가를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폭격이 심하면 달빛을 리용하든가 홰불을 켜들고 밤에 소를 몰아 밭갈이와 춘기파종을 보장한 농민들의 영웅적투쟁정신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전쟁을 통해 물질적으로는 손실을 보았고 뒤로 후퇴했지만 사람들의 사상정신상태는 멀리 앞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농민들은 전쟁기간에 품앗이, 소겨리반을 무어 서로 돕고 이끌면서 난국을 타개하였고 전쟁이 끝난 오늘도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합심하여 일할것을 요구하며 또 그렇게 하고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것입니까! 때문에 오늘 우리 농민들이 협동화를 생활적요구로 제기하고있을뿐아니라 객관적조건도 성숙되였다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이로부터 협동경리를 통하여 농민들을 사회주의에로 이끌어가야 할 시기가 왔다고 인정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도도히 흐르던 말씀을 잠간 멈추시고 아까부터 손에 들고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시려고 성냥을 집어드시였다. 그러나 불을 붙이지 못하고 다시 강조하여 말씀하시였다.

《오늘의 현실은 사회주의적협동화만이 우리 농촌을 구원하는 길이며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한가지 간단한 실례를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평남관개공사에서 근 4만리의 수로를 파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계획대로 기계를 사다가 하자면 돈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러나 농민들이 모두 떨쳐나서서 한구간씩 맡아 파면 공사기간을 앞당길수도 있다, 이 경우에 개인농들은 잘 동원되지 않을것이고 작업능률도 높지 못할것이지만 개인농들을 협동조합에 망라하면 즉 농민들의 힘을 묶어세우면 몇배의 능률을 낼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 했다, 매 개인의 능력은 조직화되고 의식화된 집단속에서 몇배로 커지게 될것이다, 이것이 협동경리의 우월성이며 사회주의의 본질적내용이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강봉석은 머리가 깊이 숙어졌다. 우리 농촌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과 비상한 철의 론리, 특히는 우리 농민들에 대한 뜨거운 동정과 사랑과 믿음, 그들의 운명에 대한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책임감의 열도앞에서 그는 더이상 할말을 찾을수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농업협동화문제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주장할수는 더우기 없었다.

《수상동지, 저는 더 할말이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가까스로 말씀드리였다.

《좋습니다. 돌아가서 잘 생각해보시오. 우리의 농촌현실에 대하여 우리 농민들이 어떤 말을 하고있으며 무엇을 바라고있는지 체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맑스-레닌주의 일반원리나 다른 나라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할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현실로부터 출발하여 풀어야 합니다. 그만합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온화하게 말씀하시며 그를 출입문까지 배웅해주시였다. 그리고 자신께서도 어둠이 짙게 드리운 밖으로 나가 꽃과 풀냄새가 떠도는 습하고 더운 공기를 호흡하며 한동안 마당을 걸으시였다.

걸으시면서 방금전의 협의회와 강봉석과의 담화를 돌이켜보시며 사색에 잠기시였다. 강봉석이가 충분히 납득한것 같지 않았다. 하긴 그는 그렇게 간단히 납득하고 또 그것을 입빠르게 밖에 표현할 사람이 아니였다. 그가 고지식하고 성실한 사람임을 느낄수 있으시였다. 그는 앞에서는 입을 봉하고 뒤에 가서 시비질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미움을 사고 비난받을수 있어도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였다. 그는 공업화에 토대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된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사실 하기 힘든 말을 했다. 그것은 그가 진심으로 자기식의 걱정을 하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옆에서 따라 걷던 책임부관이 불쑥 말씀드리였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영웅칭호 수여식을 언제 할수 있겠는지 문의해왔습니다.》

정전협정이 조인된 다음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김일성동지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수여하여 드릴데 대한 정령을 발표하였었다.

《지금 그런 의식같은걸 할 경황이 있소?》하고 수령님께서는 달갑지 않게 말씀하시다가 곧 감정을 늦추시였다.

《6차전원회의를 한 다음에나 봅시다.》

《그렇게 알려주겠습니다.》

《우리 일군들이 현실에 들어가지 않는것이 탈이요.》

그이의 생각은 여전히 강봉석이와 련결되여있었다.

《현실에 나가볼수록 새로운 충격을 받게 되오. 강봉석동무는 농업성에 앉아있으니 농업을 알고 농촌을 잘 알것 같지만 사실 농촌을 모르고있단말이요.》

그이께서는 중화군 세창마을에 가보셨던 이야기를 간단히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곳에 나가시여 강춘보로인을 비롯한 농민들을 만나보았기에 오늘 협의회에서 더 신심을 가지고 말할수 있었다고 하시였다.

《참 조인철책임참사말이요. 내가 병중에 있는 안해한테 가보라 했는데… 아마 가지 않았을수 있소. 만일 가지 않았으면 속히 떠나도록 지시하시오. 그의 안해가 치료받고있는 마을이 현촌인데 거기에 최옥금이가 있소. 그러니 거기 가면 최옥금이를 만나게 될것이고 그러면 전쟁을 이긴 오늘의 우리 농민들을 알수 있을거요. 최옥금이가 전후에는 어떻게 하겠는가고 걱정한다고 했는데 모름지기 전쟁때처럼 합심해서 난관을 이겨내고있을거요. 그 길밖에 없으니말이요.》

수령님께서는 조인철이에게 현실을 체험할데 대한 문제는 너무 강조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시였다. 안해의 병문안을 홀시할수 있고 또 조인철이가 농촌에 내려가면 집안에만 박혀있지 않을것이라고 믿었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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