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가사마다에 담겨진 민족적울분과 항거의 감정

 

 

계몽기가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반일계몽적성격이 강한 노래라는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계몽기가요의 가사에 담겨져있는 주제사상적내용에서 뚜렷하게 표현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몽기가요는 나라를 빼앗긴 우리 인민들의 눈물겨운 처지와 민족적울분을 반영한 노래이며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 감정을 반영한 노래입니다.》

가사는 노래의 사상주제적내용을 담는 기본수단이며 노래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노래의 사상주제적내용은 가사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계몽기가요는 가사내용에서 나라를 빼앗긴 우리 인민들의 눈물겨운 처지와 민족적울분,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 감정을 진실하게 반영하고있다.

수수천년 오랜 세월 한강토에서 하나의 피줄을 이어오며 화목하고 근면한 생활을 하여왔던 조선민족이 일제침략자들에 의하여 나라도 향토도 다 빼앗기고 인간의 초보적인 자유와 권리마저 무참히 유린당하게 된 비참한 사회현실로부터 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식을 가지게 된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였다.

이러한 민족적감정을 반영하여 나온 계몽기가요에는 반일애국적인 계몽사상이 여러가지 형태로 담겨져있다.

물론 진보적인 가요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검열과 탄압에 대비하여 표현수법에서 은유적인 수법에 많이 의거하고있으나 망국의 울분을 터친 노래든 사람들의 눈물겨운 처지를 한탄한 노래든 그 밑바탕에는 일제에 대한 항거의 감정이 깔려있었다.

 

2

□ 빼앗긴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그리움

 

계몽기가요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여러 년대에 걸쳐 해당한 시대상을 반영하여 발생발전한 여러가지 가요종류들을 포괄하고있는것만큼 매개 가요종류들 그리고 구체적인 작품들에 반영된 주제사상적내용의 폭이 매우 넓고 다양하다.

그러나 계몽기가요의 모든 가요종류들의 가사내용에 관통되여있는 기본사상은 반일애국사상이다.

계몽기가요가 가지고있는 반일애국사상의 집중적인 표현의 하나가 바로 계몽기가요의 주제사상적내용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이다.

땅과 떨어진 나무를 생각할수 없듯이 조국과 떨어진 민족의 삶과 행복, 미래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일제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향토도 사람도 모두다 짓밟혔던 민족수난의 시기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조국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뼈저리게 체험한 시기였다.

하기에 이 시기 우리 인민들이 불러온 계몽기가요들에는 빼앗긴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을 담은 노래들이 기본주류를 이루게 되였던것이다.

계몽기가요에 담겨진 빼앗긴 조국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감정은 다양한 주제령역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있다.

 

3

○ 고향에 대한 추억속에 비낀 조국애

 

민족수난기에 고향에 대한 사랑은 우리 인민모두의 마음속에 간직된 소중한 감정이였다.

세상에 태여나 첫 울음을 터친 정든 고향집과 부모형제들, 다정한 소꿉놀이동무들과 화목한 이웃들, 시내물이 졸졸 흐르고 온갖 꽃과 과일나무들이 무성한 아름다운 산천…

참으로 어린 꿈을 키워가던 정다운 고향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가지가지의 추억을 간직하게 하여주고 언제 어디서나 잊지 못할 절절한 그리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귀중한 곳이다.

더우기 일제의 탄압과 략탈에 못이겨 고향을 떠나 너도나도 류랑길에 올라야 했던 수난의 시기에 타향에서 사는 사람들의 뼈에 사무치는것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였다.

얼마나 많은 우리 인민들과 어린이들이 망국노의 오열을 터치며 괴나리보짐을 이고 지고 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피눈물을 뿌리며 살지 않으면 안되였던가.

하기에 이 시기 고향을 잃고 타향살이를 강요당하던 사람들의 시점에서 떠나온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노래들이 많이 나와 불리우게 되였던것이다.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어린이들로부터 어른들에 이르는 각이한 나이와 직업을 가진 여러 계층 사람들의 정서적기호와 미학적요구에 맞게 창조된 다양한 계몽기가요종류들에서 진실하게 표현되고있다.

동요 《고향의 봄》(작사 리원수), 《고향하늘》(작사 윤복진), 《고향집》(작사 윤복진), 《고향생각》(작사 최북) 등은 어린이들의 소박하고 진실한 추억의 감정을 통하여 향토애를 노래한 대표적인 동요작품들이다.

1929년에 창작된 동요 《고향의 봄》은 창작가들자신이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고향을 그리는 어린이들의 동심세계를 직접 체험하며 지은 노래이다.

 

1.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리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 꽃동리 새 동리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내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리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봄이면 온갖 꽃이 활짝 피여 꽃동산을 이루고 맑은 물 흐르는 시내가에 수양버들이 춤추던 아름다운 고향을 그려보며 그속에서 뛰놀던 때를 추억하는 어린이들의 소박한 동심세계가 생동하게 안겨온다.

노래의 서정적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이국타향에 흘러간 수난당한 민족의 새 세대이다. 허나 어린 동심에도 잊혀지지 않고 사무치게 그려오는것은 태를 묻고 나서자라 다정한 동무들과 술래잡이도 하고 연놀이도 하며 뛰놀던 정든 고향땅이였으니 낯설고 물설은 이역땅에서 울려나온 그들의 목소리야말로 숨김도 없고 때도 묻지 않은 순결하고 진실한 감정의 분출이였으며 애향심에 젖어있던 겨레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하기에 이 노래는 이역땅에서 떠나온 고향을 애타게 그리는 어린이들의 소박한 목소리를 통하여 향토를 빼앗기고 타향살이를 강요당하던 수백만 동포들의 애향심을 진실하게 대변한것으로 하여 어린이들만이 아닌 광범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겨레의 노래, 민족의 노래로 널리 불리워졌다.

이 노래와 함께 동요 《고향하늘》도 이국땅에서 고향하늘을 그려보며 나서자란 고향집을 애타게 그리는 어린이들의 소박하고 순진한 동심세계를 통하여 빼앗긴 고향과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진실하게 표현한 노래였다.

 

1. 푸른 산 저 너머로 멀리 보이는

   새파란 고향하늘 그리운 하늘

   언제나 고향집이 그리울제면

   저 산너머 하늘만 바라봅니다

 

노래가사에서는 낯설고 물설은 이역땅에서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산너머 하늘만 바라보면서 푸르른 고향하늘을 그려보는 어린이들의 소박하고 진실한 동심세계를 생동하게 펼쳐보여주고있다.

원래 이 노래가사는 작사자가 부모를 따라 고향을 등지고 이국땅으로 떠나간 소꿉동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심정을 담아 중학시절에 지은 한개 절이 전부였다.

그것이 박태준이 작곡한 선률과 결합되여 사람들속에 널리 불리우는 과정에 정든 고향집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더불어 자나깨나 가고싶은 고향으로 기어이 다시 찾아 돌아가려는 소박한 지향을 담은 2, 3절의 가사가 더 붙어 노래가 여러절을 가진 절가형식을 갖추게 되였다.

 

2. 새파란 고향하늘 그 아래는

   나서자란 고향집이 기다린다오

   고향을 떠나온지 그 몇해런가

   저 하늘만 바라보면 가고싶어요

 

3. 궂은비 내릴 때나 함박눈 올 때

   고향하늘 볼수 없어 애를 태워요

   울고있는 저 하늘을 바라보면서

   박꽃피는 고향집을 그려봅니다

 

   자나깨나 잊지 못한 그리운 고향

   그 언제나 다시 찾아 돌아들 가리

 

이러한 동요작품들은 고향에 대한 어린이들의 소박하고 진실한 추억과 그리움을 통하여 빼앗긴 고향과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고향에 대한 추억과 결부하여 조국애를 노래한 주제는 대중가요와 예술가요 등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계몽기가요종류들에서도 기본분야로 되고있다.

계몽기가요들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중가요에서는 일명 애향가라고 하는 하나의 가요군이 형성될 정도로 향토애를 주제로 한 노래들이 많이 창작보급되였다.

대중가요의 발생초기부터 기본주제의 하나로 등장한 애향가들은 그 대부분이 고향을 잃고 이국타향에서 떠살이하는 류랑민들의 심리세계와 결부하여 고향에 대한 못 잊을 추억과 그리움을 노래하고있다.

그러므로 해방전시기에 애향가라고 불리운 노래들과 방랑비가라고 불리운 노래들은 주제적측면에서 볼 때 향토애를 담았다는 의미에서 일정한 공통성을 가지고있다.

물론 방랑비가들중에는 고향이라는 표현은 없이 정처없는 방랑길을 가고 또 가는 방랑인들의 불행한 처지와 설음 그자체를 애절하게 하소한 노래들도 일부 있다.

《집없는 천사》, 《이국의 등불》과 방랑극단의 설음을 담은 《막간아가씨》, 《류랑극단》과 같은 노래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방랑비가라고 불리운 적지 않은 노래들은 정든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의 감정과 결부되여있다.

《류랑의 노래》(작사, 작곡 김영환), 《방랑가》(작사 리규송)들은 제목그대로 방랑의 설음속에 향토애를 노래한 대표적인 방랑비가이다.

이 노래들은 1931년에 발행된 《정선조선가요집》 제1집 (조선가요 연구사편)에 실려있는것으로 보아 1920년대부터 불리워온 초기대중가요들이라고 볼수 있다.

이 노래 가사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흘러가는 이 신세 물에 뜬 버들잎

   흐르고 또 흘러서 어디로 가나

   정든 고향 내 집이 차마 그리워

   해 다 지고 저문 길 눈물에 아득하네

 

2. 산을 넘고 물건너 멀고먼 나라

   끝없이 흘러가는 가련한 신세

   어느곳을 간대도 정든 내 고향

   어머님의 품이여 이밤도 그리워라

            대중가요 《류랑의 노래》(일명 《류랑가》)중에서

 

2. 돋는 달 지는해 바라보면서

   산 곱고 물 맑은 고향 그리며

   외로운 나그네 홀로 눈물지을 때

   방랑의 하루해도 저물어가네

            대중가요 《방랑가》(일명 《방랑자의 노래》)중에서

 

가사에서 보는바와 같이 물에 뜬 버들잎처럼 타향객지를 떠살이하는 외로운 류랑민, 방랑인의 불행한 처지를 눈물겹게 그려보이면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어느 한시도 떠나본적이 없는 정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담고있다.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들인 《타향살이》, 《찔레꽃》들도 이와 다를바 없다.

 

부평같은 이내 신세 혼자도 기가 막혀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만 저쪽

 

대중가요 《타향살이》의 2절가사에 나오는 부평은 흔히 개구리밥이라고 하는 떠살이식물인 부평초를 의미한다. 그 시대에 고향을 잃고 이국타향으로 흘러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류랑민들의 신세가 물우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평과 같았으니 방랑과 애향심을 담은 노래들에서 류랑민들의 불행한 처지를 이런 떠살이식물에 흔히 비유하였었다.

노래의 서정적주인공인 류랑민의 기막힌 신세는 곧 나라잃은 우리 민족모두가 당하고 피눈물속에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비참한 처지였으며 창작가들자신도 그것이 자기 신세나 다름없음을 스스로 절감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가슴아픈 현실이였다.

이에 대해서는 작곡가 손목인이 노래창작경위에 대하여 쓴 글에서 《너! 나! 할것없이 집이 있어도 있는것 같지 않은 우리네 신세… 그래서 그 시를 보구보구 해도 싫지 않아서 이것을 작곡해보겠다고 아마 몇달동안 우는 마음으로 작곡한것입니다.》(잡지 《삼천리》 1935년 11호)라고 한것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는것이다.

이 노래와 함께 1940년에 창작된 대중가요 《찔레꽃》도 머나먼 타향에서 떠나온 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에 대하여 뜨겁게 추억하는 서정적주인공의 심리세계를 통하여 애향심을 절절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이 노래는 창작가들자신이 류랑극단에 소속되여 중국 동북지방의 동포들을 찾아 순회공연하던중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있던 극단배우들과 동포들의 절절한 심정을 그대로 담아 지은 애향가였다.

민족수난기에 낯설고 물설은 이역땅에서 느끼고 체험하는 향수의 감정은 류랑극단 배우들의 심정이자 정든 향토를 빼앗기고 타향살이에 부대끼던 사람들모두의 가슴속에 간직된 소중한 감정이였다.

더우기 이 노래는 비애와 한탄에 젖은 노래들이 대중가요계의 주류를 이루고있던 시기에 사색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사내용과 5음계조식에 기초하여 밝고 부드러운 민족적정서를 안고 유순하게 흐르는 선률이 잘 결합된것으로 하여 이 시기 대표적인 애향가의 하나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즐겨불리웠다.

대중가요의 주제에서 기본주류를 이룬 향토애는 하염없이 쏟아져내리는 타향의 눈속에서 고향의 눈을 추억하며 타향은 낯설어도 눈은 낯익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치기만 하였던 류랑민의 애끓는 마음을 노래한 《고향설》, 낯익은 거리조차 얼음보다 차겁게만 보였던 방랑인-나그네의 눈물겨운 하소와 더불어 빼앗긴 고향에 대한 애향심을 절절하게 노래한 《나그네설음》 등에서도 진실하게 표현되고있다.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노래한 애향가들의 밑바탕에는 나서자란 고향과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함께 정든 향토를 빼앗고 짓밟은 일제에 대한 민족적울분이 은유화되여있었다.

계몽기가요중에서 예술가요는 다른 계몽기가요들에 비하여 작품수가 얼마 되지 않지만 대부분이 향토애, 조국애를 주제로 하고있다.

예술가요 《그리운 고향》(작사 지승암), 《류랑인의 노래》(작사, 작곡 채규엽)는 향토애를 주제로 한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이와 같이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노래한 계몽기가요들은 사람들에게 조국의 귀중함을 절감하게 하고 애국의 마음을 심어주는데 긍정적역할을 한것으로 하여 진보적인 음악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생명력을 가진다.

 

4

○ 망국의 설음에 깃든 뜨거운 조국애

 

계몽기가요에서 조국애의 감정은 망국의 설음을 노래한 작품들을 통해서도 절절하게 표현되고있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우리 인민이 겪어야 하였던 민족수난의 비극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아름답고 풍요한 삼천리강토를 빼앗기고 찬란한 력사와 문화도 송두리채 짓밟히고 강탈당한 이 땅에는 감옥과 철창만이 수풀처럼 늘어나고 가는 곳마다 망국노의 신세를 개탄하는 원한과 한숨, 피의 절규가 그칠새 없었다.

《나라없는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처럼 의지할 곳도 돌봐줄 주인도 없이 이리 채우고 저리 몰리우며 천대와 멸시를 받는 상가집 개만도 못한것이 망국노의 가련한 신세였다.

하여 가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아도 조국을 빼앗긴 서러움이 가슴속 갈피갈피에 젖어들고 한그루 나무, 한송이 들꽃을 보아도 외로움과 슬픔이 저절로 북받쳐나왔으니 이 시기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여러가지 자연현상이나 력사고적 및 고사와 결부하여 조국애를 노래한 계몽기가요들이 많이 불리워지며 설음많은 가슴들을 달래주었다.

조국애의 감정은 페허로 된 옛 왕궁터에 비추어 망국의 설음을 노래한 대중가요작품들에서 생동하게 표현되고있다.

대중가요 《황성옛터》가 그러한 작품들중의 하나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나라를 빼앗긴 설음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황성옛터>에도 잘 반영되여있습니다.》

 

1.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페허에 설은 회포를 말하여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고있노라

 

2.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것을 말하여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노래의 1, 2절가사에는 교교하게 비쳐드는 달빛속에 처량하게 어리여오는 허물어진 옛성터의 자취를 더듬어보며 하많은 사연을 안고있는 어제날 왕궁의 페허와 결부하여 나라잃은 오늘의 설음을 애타게 하소하는 서정적주인공의 서글픈 심정을 눈물겹게 그려보여준다.

이어 3절에서는 보면 볼수록 설음과 슬픔만을 더해주는 황성옛터와 작별하고 정처없는 먼길을 떠나가는 서정적주인공의 쓸쓸한 모습을 통하여 일제가 살판치는 이 땅에서 더는 살길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으로 떠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던 설음에 찬 현실을 비유적인 수법으로 보여주고있다.

 

3.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어도

   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속깊이 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이처럼 옛성터에 비추어 나라잃은 민족의 설음을 절절하게 노래한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우리 민족사에 류례없는 수난을 들씌운 일제에 대한 민족적울분과 빼앗긴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 깔려있었다.

이 노래가 창작후 광범한 대중속에 급속히 보급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것은 바로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그러한 사상정서가 당대 인민들의 시대적감정에 너무도 부합되는것이기때문이였다.

대중가요 《무너진 황성》(작사 박영호)도 고려왕조의 옛성터에 비추어 망국의 설음과 조국애를 노래하고있다.

 

1. 무너진 황성에는 무너진 황성에는

   메마른 갈대꽃만 메마른 갈대꽃만 울며 도는데

   아 부서진 꿈쪼각만 눈에 암암해

 

2. 무너진 황성에는 무너진 황성에는

   서글픈 물소리만 서글픈 물소리만 높아가는데

   아 때묻은 전설만이 길을 적신다

 

3. 무너진 황성에는 무너진 황성에는

   무심한 별빛만이 무심한 별빛만이 깜빡이는데

   아 뜨거운 눈물만이 뺨에 흐른다

 

노래가사는 비록 은유적인 수법에 의거하기는 하나 옛성터를 주제대상으로 삼은 다른 노래들에 비하여 조국애의 감정을 보다 뚜렷이 드러내보이고있다.

노래제목과 함께 매개 절의 첫련에서 반복수법으로 강조되는 《무너진 황성》은 그대로 빼앗긴 조국을 의미한다.

둘째 련들에서 반복강조되는 《메마른 갈대꽃》, 《서글픈 물소리》, 《무심한 별빛》은 극도로 황페화되고 설음과 원한만이 차넘치며 인정사정도 없는 차디찬 수난의 현실을 그대로 비유하고있다.

그리고 슬픔과 한탄을 나타내는 《아》의 련속에 이어 마감련들에 나오는 《부서진 꿈쪼각》, 《때묻은 전설》, 《뜨거운 눈물》은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있다.

가요에 대한 일제의 검열과 탄압으로 민족이 당하는 수난과 고통을 직접적으로 담을수 없었던 조건에서 은유적으로나마 《무너진 황성》에 비추어 빼앗긴 조국을 노래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수난의 현실을 다시금 돌이켜보며 반일애국의 정신을 가지도록 각성시키는 정서적바탕을 안고있다는데 이 노래가 가지는 진보성과 유산적가치가 있는것이다.

대중가요에서 조국애의 감정은 력사고적이나 고사에 비추어 망국의 설음을 노래한 작품들을 통해서도 진실하게 표현되고있다.

대중가요 《진주라 천리길》(작사 조령출), 《락화삼천》(작사 조령출)이 그러한 대표작들이다.

《진주라 천리길》은 선조들의 애국의 넋이 깃든 진주의 력사고적인 촉석루와 결부하여 나라잃은 설음과 반일애국의 감정을 절절히 노래하고있다.

1절가사에서 나오는 《촉석루의 달빛만은 나무기둥을 얼싸안고/아 타향살이 이 심사를 위로할줄 왜 모르나》라는 시어들은 그대로 《우리 민족의 기개, 애국의 넋은 어디서 잠자는가, 어서 잠에서 깨라》는 무언의 호소와도 같은것이였다.

대중가요 《락화삼천》도 7세기 중엽에 백제가 멸망할 때 지조를 지켜 자결한 백제왕궁의 삼천궁녀이야기와 당대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결부시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조국애를 노래함으로써 은유적으로나마 반일애국의 감정을 계발시켜준 진보적성격의 작품이다.

력사깊은 명승고적과 결부하여 빼앗긴 조국에 대한 통절의 감정을 절절하게 반영한 대중가요들도 주목할만 하다.

대중가요 《잘 있거라 인풍루》(작사 유도순)는 관서지방의 명승의 하나로 일러오는 강계의 인풍루와 결부하여 조국애를 노래한 대표적인 대중가요이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평안남북도와 자강도를 포괄하는 지경을 관서지방이라고 불러오면서 이 지방 여덟곳의 명승고적들을 관서8경으로 꼽아왔는데 강계의 인풍루도 여기에 들어있다.

《잘 있거라 인풍루》에서는 인풍루를 중심에 놓고 만포선 천리길과의 관계속에서 당대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조국애를 노래하고있다.

 

1. 만포선 천리길에 기적이 우니

   인풍루 옛 자취에 정회 깊구나

   잘막령 지는해에 날이 저물고

   자북사 우는 종에 눈물흐르네

 

2. 독봉의 진달래에 잔치 베풀고

   독로강의 흰 돛아래 노닐던 옛일

   남산의 송림에선 두견만 울고

   떼목도 말없으니 찾을 길 없네

 

3. 만포선 천리길은 정회의 산길

   돌고개 리별에서 젖은 옷자락

   구현령 넘어서도 아니 마르네

   인풍루 잘 있거라 갔다오리라

 

1절과 2절가사에서는 만포선철길의 기적소리와 함께 가슴에 사무쳐오는 인풍루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결부하여 지난날을 뜨겁게 회고한다. 허나 인풍루와 더불어 즐겁게 노니던 지나간 옛일은 찾을 길 없음을 자북사의 우는 종과 한적한 송림의 구슬픈 두견새울음소리, 소리없이 흘러가는 떼목에 비추어 애절하게 하소한다.

3절가사에서는 형상의 초점을 압록강과 잇닿은 만포선 천리의 도로상으로 옮겨놓고 정든 사람들의 리별의 눈물이 마를새 없었던 수난의 현실을 생동하게 담고있다.

이러한 가사내용의 밑바탕에는 아름다운 명승고적을 놓고서도 슬픔을 노래할수밖에 없었던 망국의 현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빼앗긴 조국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의 감정이 깔려있었다.

망국의 설음과 결부하여 빼앗긴 조국을 노래한 주제는 예술가요들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예술가요 《만월대》(작사 김안서)도 역시 제목그대로 고려의 왕궁터였던 만월대를 주제대상으로 하여 나라잃은 설음과 조국애를 노래한 작품이다.

노래가사에서는 서정적주인공이 지난 세월을 그리며 찾아본 만월대는 보슬보슬 내리는 가을비속에 까마귀떼만 휘돌며 울어대는 쓸쓸한 빈터라는 은유적인 수법으로 망국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빼앗긴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고있다.

그런가 하면 예술가요 《성불사의 밤》(작사 리은상)에서는 한때 성황을 이루었던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성불사(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산에 있는 고려시기의 사찰)의 고적한 야밤풍경을 통해 망국의 비운속에 민족문화유적마저도 버림받는 수난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면서 빼앗긴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있다.

예술가요들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조국애의 주제는 지난날에 대한 못 잊을 추억과의 결부속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널리 알려진 예술가요 《동무생각》(작사 리은상)에서는 《옛동무》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통하여 빼앗긴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하고있다. 노래는 매절 가사에서 청라언덕에 핀 백합(향기로운 흰 나리꽃), 저녁조수우에 날아예는 흰 새, 밤의 장안에 빛을 뿌리는 가로등을 묘사대상으로 하여 창작가가 주자고저 하는 사상정서를 의미심장하게 펼쳐보여준다.

여기서 《청라언덕》, 《저녁조수》, 《밤의 장안》은 서정적주인공인 《나》의 마음을 의미하며 《모든 슬픔》은 《빼앗긴 조국과 모든것에 대한 슬픔》이다. 《백합》, 《흰새》, 《가등》은 창작가가 비유적으로 선정한 《옛동무》이다. 바로 이 《옛동무》로 묘사된 각이한 대상들이 《나》의 마음속에서 향기를 뿜고 빛날 때 가슴에 쌓이고쌓인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고 의미심장하게 노래한다.

다시말하여 이 땅의 모든 아름다움이 자기 주인의 품속에서 자태를 펼칠 때 이 땅에 서린 모든 슬픔과 나라를 잃은 설음이 가시여진다는 의미깊은 은유법으로 조국애를 뜨겁게 노래하고있다.

예술가요 《옛 동산에 올라》(작사 리은상), 《추억》(작사 박순덕)에서는 평화로운 생활의 자취가 어려있는 산천이 일제의 략탈로 빛을 잃어가고 즐거웠던 지난날의 꿈조차 사라져버린 망국의 현실을 통탄하는 서정적주인공들의 추억의 세계를 통하여 빼앗긴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정서깊이 노래하고있다.

이와 같이 망국의 설음을 노래한 계몽기가요들은 순수한 설음이나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빼앗긴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결부하여 당대 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함으로써 인민들속에 반일애국의 감정을 고취하는데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5

○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명승고적에 대한 찬양

 

계몽기가요에 반영된 조국애의 감정은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명승고적들을 찬양한 노래들에서도 잘 표현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몽기가요에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나 명승고적과 결부시켜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명승고적과 결부하여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작품들은 계몽기가요의 주제사상적내용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주제의 노래들은 특히 일제가 우리 조국을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망밑에 《내선일체》니, 《동조동근》이니 하면서 민족말살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고있던 엄혹한 환경속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긍지높이 노래에 담고 조국애, 민족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것으로 하여 큰 의의를 가진다.

백두산천지로부터 한나산의 백록담에 이르기까지 고운 비단필을 늘여놓은듯 하다고 하여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부르는 우리 나라는 산은 산마다 명산이고 강은 강마다 맑고 푸르러 천하절승도 많으며 유구한 력사와 더불어 이루어진 세상에 자랑할만 한 명승고적도 많다. 하기에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에 대하여 그리고 이름높은 명승고적들과 자연경개를 노래에 담아 부르며 조국과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키워왔다. 해방전시기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하에서도 우리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명승고적들을 긍지높이 노래한 계몽기가요들은 망국의 설음과 울분을 안고 살던 인민들의 가슴속에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조국애를 불러일으키는데서 적지 않은 작용을 하였다.

계몽기가요의 다양한 종류들중에서 이러한 주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것은 신민요이다.

신민요 《조선타령》, 《조선팔경가》, 《금강산타령》, 《팔도강산 구경가자》 등이 그 대표작들이다.

 

1. 아 백두산 솟아서 정기를 뻗치니

   삼천리산야

   에라 좋아 얼싸 데라 좋아라

   오대강 십대산 좋은 곳에서

   삼천만겨레들 잘살아보세

   (후렴)

   에헤라 조선을 축복하세

              신민요 《조선타령》(작사 유도순, 작곡 전기현)중에서

 

이렇게 시작된 《조선타령》은 4개 절의 가사를 통하여 들에는 오곡이 물결치고 문화가 찬란히 꽃피며 영웅호걸에 문장가도 많아 동방에 이름높은 조선의 자랑을 긍지높이 노래하고있다.

노래에 담겨진 이러한 애국적내용은 당시 작곡가 전기현이 출판물에 발표한 《강홍식씨가 부른 <조선타령>》이란 제목의 글에서 《<조선타령>이 시인 유도순씨의 힘을 넣은 작품인데 유감없이 조선의 정기를 그린 일대 걸작이다. 이 노래는 우리 삼천리반도강산의 행복을 축원한 노래이다. 백두산에서 정기뻗쳐 남쪽끝 제주도 한나산까지 삼천리강산은 비단폭을 늘이운듯 한 기름진 금수강산인 세계에 자랑인 아름다운 동산이다.》(잡지 《삼천리》 1935년 11호)라고 한것을 통해 잘 알수 있다.

이것은 노래에 담겨진 사상적내용에 대한 작곡가자신의 정당한 평가인 동시에 당시 이 노래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빼앗긴 땅이긴 하여도 자기의것인 조국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고 아름다운 산천과 유구한 력사와 문화, 애국의 전통과 슬기를 떨쳐온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음을 보여준다.

신민요 《조선팔경가》, 《팔도강산 구경가자》들도 역시 아름다운 절승경개들과 명산, 명강들이 많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정열적으로 례찬하고있다.

《조선팔경가》에서는 백두산, 금강산, 한나산 등의 이름난 명산들을 비롯하여 우리 조국의 자랑인 아름다운 절승경개들을 긍지높이 노래하고있으며 《팔도강산 구경가자》에서는 백두산과 압록강으로부터 시작하여 조선팔도의 이름높은 명산고적을 꼽아가며 아름다운 삼천리금수강산을 정열적으로 노래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뜨거운 조국애와 높은 민족적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조국산천에 대한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랑을 안겨주는 주제적내용들을 직선적이면서도 생동하고 리해하기 쉬운 통속적인 시어들에 담아 힘있게 노래한 신민요들은 그것이 가지는 애국주의적성격으로 하여 슬픔과 절망속에 살아가던 겨레의 가슴속에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끝없는 조국애를 심어주는데서 큰 작용을 하였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명승고적과 결부하여 조국애를 노래한 주제는 대중가요들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대중가요 《통군정의 노래》(작사 유도순)가 그 대표작이다.

평안북도 의주군의 압록강기슭 삼각산우에 있는 통군정은 군사지휘처로 고려 초기에 세운 단층루각이다. 통군정은 그 주변경치가 아름답고 장쾌하여 예로부터 관서8경의 하나로 꼽히워왔을뿐아니라 외래침략자들을 쳐물리친 우리 인민의 애국투쟁의 력사가 깃들어있어 더욱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통군정이라는 이름도 의주성 장군들이 여기에 올라와 싸움을 지휘하며 통군의 령을 내렸다는데서 불리운것이였다.

대중가요 《통군정의 노래》는 이처럼 선조들의 애국의 넋이 깃든 명승고적을 중심에 놓고 민족의 장한 기개를 긍지높이 찬양하고있다.

 

1. 백두산정기 품고 흐른 이천리

   배노래 구룡포에 장한하구나

   해동문 옆에 끼고 백두산 보면

   의주라 통군정은 우뚝이 섰네

 

2. 취승당 그 옛 뜰에 두견화 피고

   아침과 지는해에 종이 우는데

   북천앙 작은 절에 념불성 나니

   의주라 통군정은 정회깊고나

 

3. 구룡성 바라보며 섰는 충혼비

   압록강 건너서서 이긴 싸움에

   동해에 아침해가 떠올랐으니

   의주라 통군정은 장엄도 하네

 

이 노래는 당시 아름답고 훌륭한 명승고적을 놓고서도 슬픔을 노래할수밖에 없었던 일부 대중가요들과는 달리 통군정의 장엄한 기상과 그에 깃든 우리 민족의 장한 기개와 애국의 넋을 긍지높이 찬양한것으로 하여 비운속에 살아가던 겨레의 가슴속에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애국심을 심어주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명승고적을 주제로 한 계몽기가요들은 나라를 빼앗고 민족적인 모든것을 거세말살하려는 일제의 악랄한 민족말살책동에 맞서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전인민적사상감정으로 폭넓게 노래함으로써 사람들의 가슴속에 열렬한 애국심을 심어주려고 한 계몽기가요창작가들의 적극적인 창작적지향이 낳은 결실이였다.

 

6

일 화

예술가요 《선구자》에 깃든 이야기

 

해방전 우리 인민들속에 보급된 계몽기가요들중에는 《룽징의 노래》라고 불리운 예술가요가 있다.

제목이 담고있듯이 민족의 수난사가 깃든 이국땅 룽징을 배경으로 하여 창작된 노래였다. 이 노래가 후날 제목이 《선구자》로 개작되여 불리워왔으니 그 창작담과 더불어 노래에 깃든 사연을 더듬어본다.

포악한 일제의 탄압과 략탈로 하여 고향을 떠난 수많은 류랑민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남, 북만저우(만주)에 흩어져가 살던 1933년의 어느 겨울날이였다.

북만저우에 있는 무단(목단)강의 자그마한 려인숙에 묵고있는 청년작곡가 조두남에게 낯모를 청년이 찾아왔다.

《작곡가선생님이 옳습니까? 윤해영이라고 합니다.》

조두남은 대답할 짬도 주지 않고 질문에 자기소개를 연거퍼 해대는 청년을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깡마른 체구에 보통키, 목깃을 올려세운 허술한 외투, 해볕에 탄 검실한 얼굴에 눈빛만은 침착하고 만만치 않았다. 나이는 조두남보다 좀더 났을 젊은이였다.

(누구일가? 나를 어떻게 알고…)

당시 21살의 홍안의 청년이였던 조두남은 가요작곡가로 일정하게 물망에 오르고있었다.

평양태생인 그는 11살때에 처음으로 가요 《옛이야기》를 작곡하여 사람들을 놀래웠고 평양숭실중학교에 다니던 16살때에는 자기가 작곡한 노래들을 묶은 가요집을 내놓기도 하였다.

1933년초에 중국 허이룽(흑룡)강성의 무단강에 와서는 류랑극단을 조직하여 순회공연을 하면서 《무단강의 노래》를 비롯한 여러편의 노래들을 내놓아 재능이 있는 청년작곡가로 사람들속에 알려져있었다.

《작곡가선생님이 이 싸구려려인숙에 묵고있다는 소릴 듣고 우야 찾아왔수다. 어디 노래가 되겠는지 좀 봐주시우다.》

말투는 투박하고 단도직입적이나 어딘가 정이 스미는 청년의 요구에 이끌려 조두남은 저도 모르게 그가 외투깃을 헤치고 꺼내든 종이장으로 눈길을 가져갔다.

《룽징의 노래》라는 제목아래 규모있게 쓴 시련들이 눈에 안겨들었다.

무엇인가 의미깊은 내용을 담은듯싶은 가사였다. 매개 련들도 3, 4, 4, 3조 시행들로 맞춰 엮어 규칙적인 률동미와 음악성을 갖춘것이 전통적인 시가작시법에 조예가 있는 솜씨였다.

그 어떤 류창하고 아름다운 선률이 나올듯 한 가사였으나 그속에 담겨있는 깊은 뜻을 새기기에는 룽징에 대하여 너무나도 모르는 조두남이였다.

그제서야 방문객이 아직 서있다는것을 알아차린 조두남이 서둘러 그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하였다.

《허 참, 룽징엘 가봤어야 글귀를 알아보지요. 전 이 만저우땅에 흘러든지도 얼마 되지 않지요.》

청년은 피씩 하고 웃더니 눈을 끔적하며 말하였다.

《그건 념려마우다. 내사 룽징을 제 집 드나들듯 하였으니 손금보듯 해드릴수 있수다.》

청년은 가사를 짚어가며 첫련의 《일송정 푸른 솔》부터 설명을 해가기 시작하였다.

룽징부근에는 어찌된지 소나무가 전혀 없다 한다. 그런데 하이란강우를 가로지른 룽먼(룡문)교를 건너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한창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옆에 한그루의 늙은 소나무가 홀로 우뚝하니 서있다는것이다. 그 거대한 소나무를 《일송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어 청년은 2절에 적힌 《용드레우물》은 룽징의 본토를 말한다고 하면서 룽징의 래력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의 할아버지대쯤 되는 때(1880년대 중엽)에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온 두세대의 조선사람가족이 하이란강기슭에 우물을 파고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두만강을 건너온 류랑민가족들이 한집, 두집 불어나면서 용드레마을이 생겨난것이 오늘은 수만의 조선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로 되였다는것이다.

이러한 나날에 룽징에는 민족수난의 현실이 그대로 옮겨져 겨레의 울분과 피눈물이 슴배이게 되였다.

20세기 초엽에는 일제의 강도적인 조선강점에 항거하여 독립의기를 떨치던 리상설을 비롯한 독립운동자들이 수없이 드나들고 독립만세를 웨치던 3. 1인민봉기가 좌절된 후 온 조선땅이 일제의 피비린 발굽에 찍힐 때 살륙의 마수를 피해온 망명객들, 피난민들이 정착한 땅이기도 하였다.

그후 일제의 교활한 문화통치속에서 집도 땅도 다 잃은 조선사람들이 날마다 흘러들고 행여나 희망을 품고 찾아왔던 청춘남녀들이 일제가 중국 동북지방을 강점한 1931년이후에는 일제놈들이 살판치는 룽징의 현실에 비관하여 하이란강에 몸을 던진 투신사건도 많았던 고장이였다.

그래서 작사자는 가사의 매개 절 후반마다에 《말 달리던 선구자》,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를 주고 마감련을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로 관통해줌으로써 애국의 의기 높았던 독립운동자들의 넋은 다 어디로 갔는가? 겨레여, 분발하여 일어나라고 호소하자고 하였다는것이다.

방문객은 떠나갔다. 찾아온것처럼 꼭 노래로 성사되게 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급작스레 떠나갔다.

다급한김에 조두남이 그를 붙잡고 물었다.

《가만, 작사자의 이름이라도 알아야지요?》

《윤해영이라고 하우다. 조선이 독립되면 작곡가선생님을 찾아옵지비.》

함경도말씨의 그 청년은 떠나갔으나 조두남의 눈에는 가사의 시구들과 더불어 룽징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삼삼히 어려왔다.

일송정 푸른 솔과 한줄기 하이란강, 용드레촌의 우물과 룽먼교의 달빛, 애국열에 불타던 사나이의 굳은 맹세-거기에는 너무도 아프고 모질고 거칠면서도 황홀하고 열렬하였던 모든것, 민족이 겪는 력사의 수난과 뜻이 깊은 호소가 절절하게 흐르고있었다.

작곡가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선률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밝고 우아하면서도 사색도 있고 추억도 있고 울분도 있고 탄식도 있고 격조도 있고 호소도 있는 그런 선률이였다. 그것은 비가풍의 류행조나 흥타령류가 아닌 한편의 품격있는 예술가곡이였다.

이국땅 룽징을 배경으로 하여 민족수난의 현실을 담은 예술가요 《선구자》(《룽징의 노래》)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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