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몽기가요는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것은 그 계승발전과 관련되는 심중한 문제이며 나아가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민족성원모두에게 조선민족된 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민족에 대한 립장은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뚜렷이 표현된다.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며 그의 력사적가치와 의의에 대하여 정확히 평가하고 그것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나가는것이 민족을 위하는 바른 자세이고 립장이라고 본다.
오늘날 공화국에서는 민족을 제일로 우선시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손길아래 계몽기가요가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그 유산적가치가 높이 평가되고있으며 계몽기가요를 발굴보존하고 시대적요구와 미감에 맞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벌어지고있다.
하여 전사회적으로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인식이 확립되였으며 계몽기가요가 사람들의 문화정서생활을 보다 풍부히 하고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고있다.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서의 계몽기가요가 가지는 음악사적 및 현실적의의와 그리고 세기와 세기로 이어지는 진정한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보기로 한다.
□ 음악사적의의를 론하기 앞서
민족문화유산을 평가하는데서 기본은 허무주의적태도와 복고주의적경향을 다같이 경계하는 원칙에서 그리고 비판적견지에서 민족문화유산의 진보적이며 인민적인 면과 낡고 뒤떨어진것을 정확히 갈라내여 분석평가하는것이다. 한마디로 주체적립장과 력사주의적원칙을 잘 지키는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몽기가요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특수한 사회적환경속에서 나온 음악인것만큼 제한성도 가지고있습니다.》
민족문화유산은 오랜 력사적발전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전해져오는것으로서 거기에는 민족의 우수한 특징이 반영되여있는 동시에 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이 있기마련이다.
왜냐하면 지난날의 민족문화유산은 사실상 인민대중이 주인으로 되지 못한 사회에서 창조된것만큼 그것이 진보적이며 인민적인것이라 할지라도 당대의 사회력사적환경과 창조자들의 세계관적미숙성으로부터 제한성을 갖게 되는것은 불가피하기때문이다.
계몽기가요도 역시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특수한 사회적환경속에서 나온 음악인것만큼 일련의 제한성을 가지고있다.
그러므로 계몽기가요의 진보성과 음악사적의의를 옳게 분석평가하는것과 함께 그가 가지는 제한성에 대해서도 똑바로 밝히는것은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확립하며 오늘의 시대적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키는데서도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계몽기가요의 제한성은 무엇보다먼저 가사의 주제사상적내용에서 찾아볼수 있다.
계몽기가요의 가사내용에서의 제한성은 우선 주제반영에서 당시 우리 민족앞에 가장 절박하게 나섰던 반일민족해방투쟁에로 사람들을 불러일으키고 고무추동할수 있는 사회정치적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취급하지 못한것이다.
시대의 요구에 충실하며 시대의 사명에 이바지하는것은 시대앞에 지닌 참다운 음악의 기본의무이며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수 있다.
음악이 사람들의 사상감정과 지향을 반영할뿐아니라 그들을 사상정서적으로 교양하고 투쟁에로 고무하는것을 사회적본성으로 하는것만큼 시대가 요구하는 절박한 문제, 의의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주어야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는것이다.
이렇게 놓고볼 때 계몽기가요도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음악예술의 사회교양자적역할을 다하자면 응당히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투쟁의 길을 밝혀주고 대중을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킬수 있는 의의있는 주제들을 취급하여야 할것이였다.
계몽기가요가 발생발전한 1920-1930년대는 일제의 략탈과 탄압이 날로 더욱 우심해짐에 따라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이 더욱 고조되고 민족자주의식이 끊임없이 높아가던 시기이며 일제와 조선인민사이의 민족적 및 계급적모순이 극도로 첨예화되던 시기이다.
더우기 1930년대부터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급속히 퍼지면서 반드시 밝아올 조국해방에 대한 확신과 환희의 감정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가고있었다.
그러나 계몽기가요는 이러한 현실과 결부하여 절박하고 당면한 사회정치적문제를 반영한 주제를 전면에 제기하지 못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날로 높아가는 반일사상감정도 전면에 내놓고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하였다.
물론 계몽기가요에는 일제식민지통치의 억압과 무권리속에서 사는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처지와 결부하여 불공평한 식민지사회현실에 대한 항거의 감정을 밑바탕에 깔고있는 작품들도 적지 않지만 그것은 주로 은유적인 수법으로 현실을 개탄하고 원망하거나 울분을 토로하는 정도에 머무르고있었다.
더우기 사람들속에서 많이 류행되였던 대중가요중에는 《감격시대》, 《락화류수》와 같이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락관의 감정을 반영한 작품들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의 노래들이 인정심리적인 주제내용에 많이 치중하고있었다.
이런 노래들은 인간의 고상한 생활정서를 담은것이 아니라 암담한 현실에 대한 절망과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하여 정신적으로 방랑하는 불행한 처지를 개인적감정의 시점에서 하소하거나 격한 비애와 울분을 터치는것이 일반적이였다.
이와 같은 주제반영의 제한성은 일부 예술가요작품들에서 당면한 현실적문제들과는 거리가 멀게 심리정서적인 추억이나 감성적인 비감을 토로하는데 많이 치우치고있는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그렇다면 왜 계몽기가요가 나라를 빼앗긴 민족적분노와 울분을 안고 참다운 생활의 길을 찾아 모대기는 인민들에게 식민지착취사회의 본질을 파헤치고 투쟁의 앞길을 선도해주는 보다 적극적인 주제내용을 취급하지 못하였겠는가.
그것은 창작가들의 세계관적미숙성과도 관련되지만 보다는 진보적인 가요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주되는 원인이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계몽기가요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특수한 사회적환경에서 나온 음악이다.
당시 일제는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을 탄압말살하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면서 각종 출판물과 문예작품들에 대한 포악무도한 검열제도를 세워놓고 사소한 반일적요소라든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이 엿보이면 가차없이 매장해버리군 하였다.
일제가 진보적인 음악의 창작과 보급을 막기 위해 얼마나 악착하게 책동했는가 하는것은 1933년 6월 《조선총독부》에 레코드검열계를 내온 후 불과 석달 남짓한 기간에 수천매의 레코드를 《치안방해》에 걸어 발매금지령을 내린 단편적인 실례 하나만을 놓고서도 잘 알수 있는것이다.
이러한 탄압의 일환으로 동요 《그리운 강남》, 예술가요《봉선화》, 대중가요 《눈물젖은 두만강》, 《황성옛터》, 신민요 《노들강변》을 비롯한 수많은 계몽기가요들이 《금곡》으로 매장되였고 창작가들이 류치장에 끌려가 곤욕을 당하는 일들이 헤아릴수 없이 벌어졌다.
이런데로부터 계몽기가요창작가들은 놈들에게 탄압의 구실을 주지 않고 검열의 관문을 무난히 넘길수 있는 세태적인 주제에 주로 의거하거나 은유적인 표현을 쓰는데 많이 치중하게 되였던것이다.
적지 않은 계몽기가요작품들이 주제내용에서 반일애국정신과 민족적자각들을 밑바탕에 깔면서도 그것을 자연풍물이나 류랑, 련정 등 세태적내용과 련결시켜 은유적으로 표현한것은 진보적인 가요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하여 창작가들이 자기의 창작적의도를 자유롭게 터놓을수 없었던 사정과 크게 관련되여있다.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창작적자유와 개성의 말살은 계몽기가요의 주제취급에서 우리 인민들의 다양하고 폭넓은 현실생활령역을 포괄하지 못하고 주로 자연풍물이나 세태생활과 같은 제한된 범위에 머무르게 하는 제한성을 낳기도 하였다.
계몽기가요의 가사내용에서의 제한성은 또한 시적형상수준과 예술적품위가 높지 못한것이다.
노래의 사상예술성은 그 기초로 되는 가사에 의하여 크게 좌우된다. 그러므로 가사에 담겨진 주제사상적내용이 얼마나 세련된 시적형상, 높은 예술성에 안받침되는가에 따라 사람들에게서 깊은 공감을 자아낼수 있다.
계몽기가요의 일부 가사들이 시가문학적측면에서 시적형상수준이 높지 못한것은 작품의 제목과 내용이 불일치된다든가 절과 절사이에 주제사상적통일성이 결여되여있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노래의 제목은 해당 작품에 반영된 주제사상적내용에 대하여 일정한 표상을 주는것이므로 노래에 담겨진 주제사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게 다는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계몽기가요중에는 제목을 노래의 주제사상을 집약화하여 달지 못하고 가사의 첫대목을 그대로 따붙이거나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는것들이 있는가 하면 절과 절들사이의 내용서술이 불일치되여 대중이 리해하기 힘든 노래들이 일부 있다.
실례로 신민요 《백두산을 바라보고》를 보면 1절은 백두산을 찾아가자는것으로 시작되여 백두산의 전경을 그리고있으나 2절은 락동강을, 3절은 락화암을 찾아가는것으로 되여있다.
이와 같이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고 절들 호상간에 주제적관통이 이루어지지 않는것으로 하여 작품의 주제사상이 석연치 않은 노래들은 대중가요, 예술가요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일부 노래가사들이 시적형상수준이 높지 못한것은 가사에 한문투가 많거나 은유화가 너무 상징적이여서 일반대중이 리해하기 어려운데서도 표현된다.
노래는 가사가 사상감정이 뚜렷하고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뜻이 깊고 통속적이여야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즐겨불리울수 있다.
그러나 계몽기가요중에는 가사에 한문투가 많거나 너무나 은유적이여서 그 뜻과 의미를 가려보기 힘들게 된 작품들도 일부 찾게 된다.
대중가요 《일자일루》를 실례로 본다면 제목부터 한문투여서 일반대중이 리해하기 어렵거니와 가사내용도 《한 글자 한 눈물에 젖은 글월을/ 보낼가 쓰건마는 부칠 길이 없네》들과 같은 시어들로 엮어지고있다. 음미해보면 님을 못 잊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속에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녀인의 슬픔을 담은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은유적수법이 지나치고 상징적의미가 모호할뿐아니라 일정한 사상정서적승화가 없어 작가가 노래를 통하여 주자는 사상이 무엇인지 가려보기가 어렵게 되여있다.
《추억》을 비롯한 일부 예술가요작품들의 경우에도 인정심리적인 개인서정토로에 많이 치우치면서 은유의 대상을 너무 깊이 은페시킨것으로 하여 서정적주인공의 추억의 세계에 비낀 뜻을 객관이 감득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그리고 창작가자신만이 알수 있는 지나친 추상화로 하여 주관과 객관의 감정정서의 통일성을 보장하지 못하는것과 같은 부족점을 나타내고있다.
계몽기가요의 가사내용에서 나타나는 제한성은 특히 인민들의 건전한 정신문화생활과 인연이 없는 저속하고 이색적인 표현들을 란발하고있는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실례로 일부 대중가요에서 사람들의 건전한 정신을 좀먹는 저속하고 이색적인 표현이나 무저항을 설교하는 염세주의적인 표현들을 쓴것이 그러하다.
당시 류행가라고 부른 《처녀 십팔세》, 《열여섯살 풋사랑》, 《아리숭고개》, 《모던서울》 등에서는 남녀간의 사랑문제를 취급하면서 조선녀성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세계와는 인연이 없는 저속한 표현들을 망탕 쓰고있다. 그 가사라는것을 보면 《처녀 십팔세》에서는 《에헤라 범나비야 춤추지 말아/겹저고리 감춘 가슴 따라서 뛴다》, 《에헤라 종달새야 우지를 말아/네 소리에 바람나리 처녀 십팔세》, 《모던서울》에서는 《댕기 늘인 새 과부가 긴 한숨을 쉰다/…갓쓴 신랑 단발신부 엉클어서 논다》(1절중에서),
《거리거리 흘린 사랑 줏는이가 임잘세/뻐스껄은 오전이면 손목조차 잡네/모던서울 하하하 익살맞다 하하하/파는 사람 사는 사람 뒤섞여서 논다》(2절) 등과 같이 녀성들의 인격을 무시하는 시구들을 엮어댄것은 우리 청춘남녀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사랑관에 대한 조롱이고 모독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이러한 가사들의 밑바탕에는 현실생활에 대한 정상적인 사고보다도 오락적인 쾌감이나 추구하는 저조성이 깔려있는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노래들에서는 현실에 대한 도피나 무저항을 설교하는 염세주의적인 표현들도 나타나고있다.
실례로 《산팔자 물팔자》, 《술이냐 물이냐》, 《항구의 선술집》 등의 노래들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참혹한 현실에만 포로되여 비관과 절망, 패배주의에 빠져 불합리한 현실앞에 굴종하여 타락한 인간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를 그리면서 허무주의를 제창하고있다. 그가운데서 《산팔자 물팔자》를 보면 《손금에 씌인 글자 풀지 못할 내 운명/인심이나 쓰다 가자 사는대로 살아보자》라든가 《근심도 참사랑도 믿지 못할 세상에/속는대로 속아보자 이럭저럭 지내보자》는 식으로 삶에 대한 열정도 투쟁의욕도 없는 절망에 빠진 인간을 형상함으로 하여 현실에 대한 도피와 순종, 무저항주의를 설교하고있다.
이런 노래들이 나오게 된것은 일제가 우리 인민의 민족자주의식과 반일항쟁의식을 마비시키고 정신적으로 타락시켜 노예적굴종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퇴페적인 노래들을 대대적으로 류포시키면서 부르죠아매문가들로 하여금 그런 류의 노래들을 만들어내도록 조장사촉한것과 관련된다.
이와 같은 노래들은 전반적인 계몽기가요들에 담겨져있는 반일계몽적성격과는 인연이 없는것들이며 민족의 넋을 흐리게 하고 염세와 절망, 타락과 허무감을 주는것으로서 계몽기가요들을 대하는데서 철저히 경계하여야 한다.
계몽기가요의 제한성은 다음으로 음악형식에서 찾아볼수 있다.
계몽기가요의 일부 노래가사들에서 나타난 주제사상적내용의 제한성은 그와 밀접히 결부된 선률양식에도 부정적영향을 주지 않을수 없었다.
계몽기가요는 음악형식의 측면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요소들을 적지 않게 개척하고있으나 그것이 이루어진 시대적환경과 여러가지 조건으로 인한 일련의 제한성도 가지고있다.
계몽기가요의 음악형식에서의 제한성은 우선 가요음악의 양상이 다양하지 못한데서 표현된다.
문학예술작품의 양상은 생활의 본색을 정서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내는 형상의 독특한 색갈을 말한다.
노래의 양상은 생활의 본색이 노래의 음악형상에서 독특한 정서적색갈로 표현되는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주로 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통일속에서 규정되며 창작가가 현실을 어떻게 리해하고 파악하는가 하는것과도 중요하게 관련되여있다.
계몽기가요는 주제사상적내용이 폭넓고 다양하지 못한것으로 하여 그에 의하여 제약되는 선률의 양상도 폭넓고 다양하게 개척되지 못하였다. 이와 함께 그 창작가들이 세계관적미숙성으로부터 시대의 요구와 본질, 생활의 본색을 깊이 체득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보고 대한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다양한 생활감정과 정서세계를 적극적으로 탐구하지 못한것도 선률의 양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였다.
그런것으로 하여 계몽기가요는 종류적으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서정적인 양상 일면에 국한되여있다. 이것을 가요종류에 따라 구체화해보면 신민요는 주로 밝은 서정성이, 대중가요는 어둡고 비애적인 서정성이 위주로 되여있다.
노래의 양상은 가요의 종류와 형식에 따라 서로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계몽기가요의 여러 종류들이 주로 서정성 일면에만 치중한것은 제한성으로 보지 않을수 없다.
대중가요만 놓고보아도 그러하다.
대중가요중에는 일부 밝은 양상을 띤 작품들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몇편 안되는 개별적인 작품들에 불과한것이였다.
대중가요의 전반적인 음악양상에서 기본을 이룬것은 비애와 울분에 찬 어둡고 슬픈 양상이다.
이러한 어둡고 슬픈 양상의 노래들이 많이 나와 불리우게 된것은 일제식민지사회환경에서 극도의 정치적무권리와 암담한 생활난에 허덕이던 인민들의 정신적심리상태와 많이 관련되여있다. 즉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의 처지를 통탄하며 살아가던 당대 사람들의 심리세계에서 밝고 고상한 아름다운 정서의 노래보다 격한 비감과 울분이 반영된 비가적인 노래나 리성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어두운 정서의 노래들이 생활적으로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게 된데 그 원인이 있는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애와 울분이 당대 인민들의 감정정서의 전부라고 볼수는 없다.
비록 수난속이라 할지라도 민족생활풍속을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이 있기마련이며 그 령역은 매우 폭넓고 풍부하다.
대중가요라 하면 마땅히 대중적이며 통속적인 가요형식의 특성에 맞게 인민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생활의 본질과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감정정서를 폭넓고 깊이있게 반영하여야 할것이다.
더우기 직업적인 창작가들의 목적의식적인 창작물로서의 인식교양적기능을 원만히 하자면 가사내용에서는 물론 음악적정서에서 깊이가 있고 여운이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인가 생각하고 느껴지는것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대중가요창작가들은 주로 도시중심지에서 활동하면서 현실에 깊이 들어가 인민대중의 사상감정과 지향, 생활의 본색을 깊이있게 체득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자신이 참된 삶의 길을 찾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방황하고있었다. 그런데로부터 일제의 백색테로가 살판치고 비애와 울분이 차넘치는 현실의 외면만을 피상적으로 보고 그대로 반영하는데 그쳤으며 그것이 무의미한 슬픔이 아니라 사람들을 공감시키고 분발시킬수 있는 형상적견인력을 가진 적극적인 정서로 승화되도록 하지 못하였던것이다.
동요와 예술가요 등에서도 이러한 양상적측면에서의 제한성을 찾아볼수 있다.
계몽기가요의 음악형식에서의 제한성은 또한 선률표현수단과 수법들의 활용에서 표현된다.
특히 여기서 지적하게 되는것은 음조적측면에서의 제한성이다.
그것은 대중가요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고 할수 있다.
대중가요중에서 소조식으로 된 적지 않은 노래들에서는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음악정서생활에서 익숙되지 않았던 《씨-라-화-미》라든가 《도-미-도-씨-라》와 같은 이색적인 음조들을 많이 쓰면서 곡조를 지나친 비애의 정서로 일관시키고있다.
실례로 대중가요 《타향살이》, 《황성옛터》, 《울며 헤진 부산항》, 《애수의 소야곡》, 《목포의 눈물》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음조들은 원래 일본의 전통적인 민요나 류행가들에서 많이 쓴 음조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조식음계에는 미야꼬부시음계(일명 음선법)와 이나까부시음계(일명 양선법)라는것이 있었는데 전자는 주로 도시가요들에서, 후자는 지방민요들에서 많이 쓰이였다.
이중에서 미야꼬부시음계가 앞에 지적한 음조들을 낳은 온상이였다.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렬도는 력사적으로 지진과 태풍 등의 자연적피해를 받아왔는데 이로부터 일본사람들속에는 죽음과 슬픔에 대한 이상야릇한 심리적정서가 형성되게 되였다. 슬프고 처량하며 애상적인 기분을 자아내는 이러한 정서가 선률음조에 반영되고 음계화된것이 바로 음선법이라고도 하는 미야꼬부시음계인것이다.
해방전시기의 대중가요들에서 이처럼 슬프고 처량하며 애상적인 기분을 자아내는 음조들이 쓰이게 된것은 일제가 식민지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저들의 저속한 류행가들을 마구 끌어들여 퍼뜨림으로써 조선인민의 건전한 사고체계를 마비시키고 연약하고 무기력한 정서에로 끌어가려고 꾀하였던것과 관련된다.
다른 한편 대중가요작곡가들이 처량하고 애상적인 정서가 농후한 이런 음조들이 당시 우리 인민이 당하는 망국의 설음과 한을 표현하는데 정서적으로 일치된다고 보면서 그것을 도식적으로 모방한것과도 많이 관련되여있다.
이러한 음조들이 쓰인것은 당시의 특수한 사회적환경에서 어쩔수 없는 사정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족적정서와 기호와는 인연이 없는 이색적인 요소이므로 철저히 경계해야 할 점이다.
다른 한편 일부 예술가요작품들에서는 변음기호를 써서 반음계적음조를 적용하여 선률형상을 특색있게 하는 반면 그것을 지나치게 란발하여 선률의 통속성을 떨어뜨리는 제한성을 낳기도 하였다.
반음계적음조는 그것이 노래의 성격에 맞게 대중적가창성과 선률의 유순성을 살리는 방향에서 적용되면 류다른 감칠맛을 나타내면서 선률형상의 특색을 돋구는데서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고려가 없이 남이 쓴다고 하여 도식적으로 모방하여 쓰면 오히려 노래의 선률성과 가창성, 통속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어내게 된다.
예술가요 《하소연》, 《사랑》을 비롯한 일부 노래들에서는 반음계적음조를 지나치게 란발하여 성악전문가가 아닌 일반대중이 부르기 힘들게 하여 노래의 대중적가창성과 통속성을 떨어뜨리는 제한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계몽기가요의 음악형식에서의 제한성은 이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예술가요중의 일부 노래들이 절가로 되여있지 않고 큰 규모의 통절가요형식으로 되여있거나 《그리움》, 《사랑》, 《옛 동산에 올라》 등에서 서양의 기악반주를 동반하는 로만스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짧은 구조형식의 선률도중에 2~4소절을 기악반주로 처리함으로써 대중적가창을 어렵게 한것 등을 들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노래들의 경우 동요와 예술가요, 대중가요와 신민요사이에 종류적구분이 명백하지 못한것과 특히 대중가요에서 창작수법상 개성적특성을 뚜렷이 살리지 못한것으로 하여 선률음조와 전개방식, 종지투 등이 서로 어슷비슷한것, 구조형식에서 불균형적인것이 많은것들도 제한성의 측면들이다.
이러한 제한성들은 창작가들의 세계관적 및 창작실무적기량의 미숙성과도 관련되지만 중요하게는 진보적인 가요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그들이 자기의 창작적의도를 자유롭게 터놓을수 없었던 사정과 크게 관련되여있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계몽기가요가 일제식민지통치체제라는 특수한 사회적환경속에서 나온것만큼 일련의 제한성을 가지고있다.
그런데 지난 시기 계몽기가요의 제한성 일면에만 치우쳐 계몽기가요를 인정하지 않는가 하면 지어 《굴욕의 노래》, 《친일음악》이라고 부정하는 극단적인 편견도 있었다.
계몽기가요를 무시하는 이러한 편협한 태도는 다 자기 민족이 창조한 문화유산을 허무적으로 대하는 주체성과 민족성이 없는 표현이 아닐수 없다.
민족수난의 시기에 우리 인민이 창조한 계몽기가요를 허무주의적으로 대할것이 아니라 그가 갖고있는 진보적이고 인민적인것을 보다 귀중히 여겨야 한다.
□ 계몽기가요의 유산적가치와 음악사적의의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며 그의 력사적가치와 의의에 대하여 옳게 평가하고 시대의 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키는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나아가서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발양하는데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계몽기가요는 20세기 전반기 우리 나라에 조성되였던 특수한 사회력사적환경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현대적발전과정이 급격히 촉진되고있던 새로운 력사적단계의 요구를 반영하여나온 민족가요유산인것으로 하여 음악사상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점한 첫날부터 조선인민의 반일독립정신을 거세하고 나아가 조선민족자체를 영영 멸족시키기 위한 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면서 그 한 고리로 가요를 비롯한 민족문화를 말살하려고 갖은 비렬한짓을 다하였다.
당시 일제가 우리 인민의 반일독립정신을 거세말살하기 위해 얼마나 날치였는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한편의 신문기사가 있다.
《동아일보》 1921년 8월 4일부에는 《독창 두자가 문제, 강연회까지 중지》라는 제목아래 덕천, 녕원, 맹산에서 평양에 가 공부하던 세 학생이 여름방학을 리용하여 고향땅에 가서 강연을 하기로 하고 1921년 7월 27일 덕천군 야소교회당에서 첫 강연을 연데 대하여 전하면서 《…각각 강연을 한 후 순서에 의하여 독창을 하려고 할 때에 립장하였던 경관은 돌연히 중지명령을 하였는데 그 리유는 독창의 홀로 <독>자는 독립을 의미함이요, 부를 <창>은 만세를 부른다는 의미이므로 중지를 시켰다는데 500여명의 청중은 할수없이 헤여져갔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독창》이라는 두 글자에 이처럼 독립만세의 위험을 느끼고 조선노래조차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게 하던 일제의 망동이 어느 지경이였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이다.
일제는 또한 온갖 선전수단을 총동원하여 군국주의사상을 고취하는 군가와 퇴페적인 류행가들을 대대적으로 퍼뜨리는 한편 포악한 레코드검열제도를 내오고 이른바 치안방해라는 명목하에 우리의 민족음악에 대한 탄압말살에 미쳐날뛰였다.
민족음악말살을 위한 일제의 악랄한 책동은 《조선일보》 1933년 9월 14일부에 《<기막힌 아리랑고개>도 <벙어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빅터>레코드에 취입한 민요 <아리랑>과 <한양의 사계>는 치안방해로 발매금지를 당하였다. 총독부에서는 6월 내무성보다 앞서 레코드취제규정을 제정한이래 발매금지를 명한것이 19종 2천매에 달하는바 그중 풍속궤란 3종, 기타는 전부 사상관계인 치안방해에 걸리였는데 일본어 2종과 로씨야어 3종을 제외한외에는 전부 조선어로 된것인데 이밖에 제조금지를 당한 내성품레코드도 몇종류 있다고 한다.》라고 개탄한 사실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리면상작곡가가 첫 작품인 《들국화》를 창작하였을 때 일제는 들국화는 서리가 내려도 피는 꽃인데 이것은 반일독립운동가들을 상징한것이라고 하면서 그 노래가 공개되기도 전에 노래금지령딱지를 붙이고 노래가 수록된 레코드들을 모조리 깨버리는 만행까지도 감행하였다.
일제의 조선민족 및 민족음악말살책동은 1930년대말에 이르러 더욱 포악해졌다.
조선악극단의 가수(고복수)가 신민요 《풍년가》를 부르려다가 일제검열계의 강요로 출연직전에 가사를 일본말로 바꾸다보니 《호넹가 왔네 호넹가 왔네》라고 조선말 절반, 일본말 절반을 섞어부르지 않으면 안되였던 비극적사실과 중국순회공연에서 연극 《흥부와 놀부》를 공연할 때 조선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갑자기 일본옷을 구할수가 없어 중국옷을 빌려입고 흥부와 놀부역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웃지 못할 희비극이 《연출》된 사실 등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의 포악성과 비렬성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실례에 불과하다.
이처럼 일제의 간악한 책동으로 전통적인 민족음악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 민족이 질식상태에 처하여 그 존재자체가 위협당하는 엄혹한 환경속에서 애국적인 문예인들이 일제의 탄압을 무릅쓰고 계몽기가요를 창작하고 보급한것은 인민들에게 반일애국정신을 심어주고 민족적인것을 고수발전시키기 위한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음악활동으로서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계몽기가요의 의의는 첫째로, 당대 인민들의 생활감정과 념원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함으로써 그들의 반일애국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한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몽기가요는 가사내용에서 당대 인민들의 생활감정과 념원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함으로써 그들의 반일애국의식을 높이는데 일정하게 기여하였습니다.》
계몽기가요는 해방전시기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밑에서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살아가던 인민들의 가슴속에 반일애국의 불씨를 심어주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계몽기가요가 창작된 시기로 말하면 일제가 《내선일체》, 《동조동근》을 떠벌이며 조선민족을 동화시켜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한 민족말살책동을 더욱 로골적으로 벌리고있던 시기였다.
당시 일제는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황국신민》화를 제창하면서 조선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 민족생활풍속은 물론 언어와 문자, 성까지 빼앗으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량심적인 문예인들이 사람들을 반일애국사상으로 계몽시키기 위하여 계몽기가요를 창작보급한것은 참으로 의의있는 일이였다.
계몽기가요에 구현된 반일애국적인 계몽사상은 무엇보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진실하게 반영한 작품들에서 찾아볼수 있다.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의 설음과 울분속에 살던 우리 인민모두의 마음속에 간직된 소중한 감정이였다. 더우기 일제의 탄압과 략탈에 못이겨 고향을 떠나 거치른 이역의 광야로 흘러가 류랑걸식하는 사람들, 《징용》, 《징병》에 걸려 현해탄을 건너간 사람들을 비롯하여 이국타향살이신세가 된 사람들이 헤아릴수 없었던 그 세월 그들모두가 애끓는 추억속에 그리고그린것은 빼앗긴 땅이여서 살아서도 갈수 없고 죽어서도 돌아가 묻힐 곳없는 추억의 고향, 그리움의 고향이였다.
겨레의 이러한 마음의 길동무로 되여 그들의 애향심을 더욱 북돋아주고 고향을 빼앗은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원한과 울분의 감정을 더욱 고조시켜주는 역할을 한것이 바로 당시 하나의 가요군을 이루며 활발하게 창작보급된 애향가들이였다.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타향살이에 부대끼던 사람들의 시점에서 향토애를 절절하게 노래한 대중가요 《타향살이》, 《찔레꽃》, 동요 《고향의 봄》, 《고향하늘》, 예술가요 《그리운 고향》,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찾아왔건만 황페화된 고향의 전경을 보며 침략자, 략탈자들에 대한 울분을 터친 대중가요 《잃어진 고향》을 비롯하여 이 시기 창작보급된 수많은 애향가들의 밑바탕에 깔려있는것은 반일애국의 사상감정이였다.
애향가들에서 노래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고향이 그립다는 그자체에 의의가 있는것이 아니다. 빼앗긴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평화롭던 지난날에 대한 추억과 련결되며 그것이 곧 그 모든것을 빼앗고 짓밟은 침략자에 대한 울분과 항거, 빼앗긴 고향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킬수 있는 바탕으로 된다는데 애향가들이 가지는 진보적인 가치가 있는것이다.
계몽기가요에 구현된 조국애의 감정은 망국의 설음과 울분을 담은 작품들에도 절절하게 반영되여있다.
망국의 설음과 울분을 담은 계몽기가요들에서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여러가지 상징적인 대상들과 결부되여 노래되고있다.
예술가요 《만월대》, 대중가요 《황성옛터》, 《무너진 황성》 등과 같이 유구한 력사국의 위용을 떨쳤던 옛성터에 비추어 빼앗긴 조국을 노래한것이 있는가 하면 대중가요 《진주라 천리길》, 《락화삼천》과 같이 선조들의 애국의 넋이 깃든 력사유적 및 고사와 결부하여 또는 예술가요 《동무생각》, 《추억》, 《옛 동산에 올라》와 같이 잃어버린 지난날에 대한 추억과 결부하여 망국의 현실을 통탄하면서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절절하게 터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조국을 상징하는 현실적인 대상들에 비추어 빼앗긴 조국을 노래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망국의 현실을 다시금 인식하고 반일애국의 정신을 가지도록 계몽각성시켜주는데 기여하였다.
계몽기가요에 구현된 조국애의 감정은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명승고적을 정열적으로 례찬한 작품들을 통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대표적인 실례로 신민요 《조선타령》, 《조선팔경가》, 《금강산타령》, 대중가요 《통군정의 노래》 등을 들수 있다. 이 노래들에서는 삼천리금수강산이라 불리우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명승고적들, 유구한 력사속에 빛나는 애국의 전통과 찬란한 민족문화, 전야에 오곡이 물결치는 풍요한 조국을 정열적으로 노래함으로써 인민들의 가슴속에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심어주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계몽기가요는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함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 애국적주제의 작품들을 통하여 민족의 넋을 잃지 않도록 하는데도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신민요, 동요를 비롯한 계몽기가요의 적지 않은 작품들에서는 우리 인민들의 고유한 민족생활풍속과 소박하고 진실한 세태생활감정, 근면하고 성실한 로동생활의 랑만적인 정서와 민속적인 유희놀이 등을 담고있다.
계몽기가요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세태적생활을 담은 노래들과 로동생활을 반영한 작품들에는 우리 인민이 지녀온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세계와 민족생활에 대한 긍정, 비관과 락망을 모르는 락천적인 사상감정과 생활정서가 흘러넘치고있다.
이것은 당시 우리 인민의 가슴속깊이 간직된 애국주의적사상감정의 진실한 반영인 동시에 민족적인 모든것을 짓밟고 말살하려고 미쳐날뛰는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증오와 반항의 감정에 근본을 두고있다.
계몽기가요에 구현된 반일애국적인 계몽사상은 다음으로 당대의 사회현실에 대한 울분과 비판의 감정을 진실하게 반영한데서 찾아볼수 있다.
계몽기가요에서 당대의 사회현실에 대한 울분의 감정은 련정비가 또는 리별비가라고 불리우는 대중가요들과 예술가요, 신민요들에서 많이 표현되였다.
대중가요 《울며 헤진 부산항》, 《목포의 눈물》, 《무정한 그 사람》을 비롯하여 련정비가라고 불리운 노래들과 예술가요 《오 내 사랑》에서는 리별많은 항구나 그밖의 구체적인 생활계기들과 결부하여 비극적인 리별의 정경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강요한 식민지사회현실에 대한 원한과 울분을 노래하고있다.
그런가 하면 예술가요 《가려나》, 《그리움》, 대중가요 《두견화사랑》, 《선창》, 《코스모스탄식》 등의 작품들에서는 련정상사의 형식으로 헤여진 님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노래하고있다.
이러한 노래들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사이의 비극적인 리별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강요한 당대 사회제도에 대한 끝없는 저주와 울분, 원한을 터치는 방법으로 반일감정을 고취하고있는데서 그 진보성의 측면을 찾아볼수 있다.
신민요에서는 식민지사회현실에 대한 원한의 감정을 주로 자연풍물과 결부하여 담고있다.
신민요 《노들강변》, 《능수버들》에서 볼수 있듯이 봄버들을 비롯한 여러가지 자연풍물과 결부하여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무권리하게 살아가는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처지와 썩어빠진 사회현실에 대한 원한과 울분을 터친 밑바탕에는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일제에 대한 항거의 감정이 흐르고있다.
계몽기가요에서 식민지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은 현실의 부패상과 불공평성을 예리하게 풍자조소한 대중가요와 동요들에서 생동하게 표현되였다.
대중가요 《세상은 요지경》, 《개고기주사》, 동요 《대낮에 생긴 일》에서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생활풍속과 륜리도덕이 무참히 짓밟히며 온갖 허위와 기만, 사기협잡과 불의가 란무하는 썩어빠진 사회현실을 유모아적인 시적형상으로 신랄하게 야유비판하고있다.
이와 달리 대중가요 《홍도야 울지 말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춘자의 고백》, 《기로의 황혼》 등의 작품들에서는 황금만능의 자본주의가치관에 의해 인륜도덕과 량심이 롱락당하고 온갖 패륜패덕이 판을 치는 썩어빠진 세상, 청춘남녀들의 참다운 사랑과 행복조차 용납하지 않는 불합리한 현실을 적라라하게 폭로비판하고있다.
물론 이러한 노래들은 당대 사회의 기본초점으로 되는 민족적 및 계급적모순을 신랄하게 까밝히고 비판의 날을 보다 예리하게 세우지 못한 부족점은 있으나 은유적인 형상으로나마 식민지사회현실에 비판의 예봉을 돌리고 사람들을 반일사상으로 각성시키는데 일정하게 기여한것으로 하여 긍정적평가를 받게 된다.
계몽기가요에 구현된 반일애국적인 계몽사상은 다음으로 당대 인민들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된 조국해방에 대한 념원과 확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조국해방에 대한 념원과 확신은 민족재생의 은인이신 김일성주석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에서 커다란 힘을 얻고 밝은 앞날에 대한 확신을 안고 살던 당대 인민들의 절절한 사상감정이며 지향이였다.
계몽기가요는 인민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이러한 사상감정과 지향을 사실주의적으로 진실하게 반영함으로써 시대적사명을 일정하게 수행할수 있었다.
계몽기가요에서 조국해방의 념원은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나라,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에 대한 동경을 반영한 작품들에서 다양한 형상수법들을 통하여 생동하게 표현되고있다.
동요 《반월가》, 《그리운 강남》, 《따오기》 등의 작품들에서는 사람들모두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새 나라에 대한 동경을 서정성이 깊은 시적형상으로, 《설날》, 《짝자꿍》에서는 행복하고 화목한 새 생활에 대한 갈망과 지향을 밝고 발랄한 정서로 일관된 시어들에 담아 생동하게 형상하는것을 통하여 조국해방의 념원을 감명깊게 표현하고있다.
이러한 동요작품들은 어린이들의 소박하고 진실하고 동심적인 목소리를 통하여 일제식민지기반에서 벗어나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세상에서 살려는 당대 인민들의 지향과 념원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주고있다. 다시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착취와 억압, 불공평한 사회계급적처지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민족생활을 되찾을수 있는 길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고 그것이 곧 조국해방에 대한 절절한 갈망으로 승화되게 하는 정서적감화력을 안고있는데 이 노래들이 가지는 진보성이 있다.
예술가요 《봉선화》는 우리 인민들이 사랑하는 꽃에, 대중가요 《눈물젖은 두만강》, 《강남달》 등에서는 빼앗긴 조국을 상징하는 《님》에, 신민요 《아리랑고개》는 봄이 오는 아리랑고개에 비유하여 당대 인민들이 일일천추로 학수고대하여오는 조국해방의 념원을 감명깊게 반영하고있다.
그런가 하면 대중가요 《감격시대》, 《락화류수》, 동요 《조선의 아기》, 《조선의 꽃》, 예술가요 《저 별을 보라》, 《조선찬가》를 비롯한 적지 않은 계몽기가요들에서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나 《별》 또는 광명의 《아침》과 같은 상징적인 시어들을 통하여 조국해방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시대적분위기를 밝고 생신하며 희열과 랑만으로 충만된 시어들에 담아 격조높이 노래하고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일제의 탄압으로 반일사상을 직선적으로 로출시켜 표현할수 없었던 조건에서 비록 은유적인 수법에 많이 의거하고있으나 백두령봉에서 힘있게 울리는 항일전의 총성을 한없는 격정속에 들으며 반드시 도래할 조국해방에 대한 신심과 락관이 흘러넘치던 당대의 시대적감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것으로 하여 인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반일의식을 보다 격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계몽기가요중에는 대중가요 《압록강의 노래》, 예술가요 《선구자》와 같이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다시 찾으려는 우리 인민들과 독립투사들의 굳센 의지와 투쟁결의를 진실하게 반영한 작품들도 있어 계몽기가요의 진보성을 한층 돋구어주고있다.
이 작품들은 당시 진보적인 계몽기가요들에 반일감정을 은유화하여 표현하고있던것과는 달리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압록강의 노래》중에서),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선구자》중에서)라는 직선적인 표현들로써 반일애국사상감정을 정면에 드러내는것을 통하여 작품의 반일계몽적성격을 뚜렷이 나타내고있다.
이와 같이 계몽기가요는 망국노의 설음과 울분을 안고 살아가던 인민들의 가슴속에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주제사상적인 내용들을 다양한 형태로 적극 반영함으로써 그들의 반일애국의식을 보다 높여주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계몽기가요의 의의는 둘째로, 일제의 포악무도한 식민지통치와 민족문화말살책동속에서도 현대적인 가요음악의 종류와 형식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민족적인것을 고수하고 우리 나라 가요예술을 한계단 발전시키는데 기여한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몽기가요는 음악형식에서 전통적인 민족적선률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가요음악의 종류와 형식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우리 나라 가요예술을 한계단 발전시키는데도 기여하였습니다.》
해방전시기 우리 나라의 량심적인 문예인들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하에서도 민족적특성과 현대성을 밀접히 결합하여 가요음악의 다양한 종류와 형식을 새롭게 창조한것은 우리 나라 가요예술발전에 기여한 혁신적성과로서 커다란 음악사적의의를 가진다.
계몽기가요가 나오기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 나라 가요예술은 여러가지 종류로 갈라져있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고 할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반일민족해방운동이 더욱 앙양되여가던 1920년대이후의 사회력사적현실과 현대적발전을 지향하는 인민들의 미학적요구는 음악가들로 하여금 그에 맞는 새로운 종류와 형식의 가요음악을 창작하도록 추동하였다. 그리하여 이 시기 새로 자라난 작곡가들속에서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의 시대적감정을 다양한 가요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한 창작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졌으며 그 과정에 전통적인 민족적선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가요형식들인 동요, 예술가요, 대중가요, 신민요 등이 나오게 되였다.
결과 우리 나라 가요예술의 현대적면모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지게 되였다.
계몽기가요의 다양한 종류들은 전통적인 조선민요의 선률표현수법과 인민적절가형식에 의거하면서도 선률양식적측면에서 각각 자기의 고유한 면모를 갖춘 독자적인 가요형식으로 출현하였다.
선률표현수단과 수법들을 쓰는데서도 전통적인 조선민요의 고유하고 우수한 선률적요소들을 잘 살려쓰면서도 조식과 음조, 박자와 리듬, 선률발전수법 등을 리용하는데서 변화발전하는 시대의 요구와 인민들의 미감에 맞는 새로운 요소들을 적극 받아들여 민족적특성과 현대성을 밀접히 결합한 민족가요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있다.
계몽기가요들중에서 특히 신민요는 전통적인 민족음악의 기본정수를 이루는 조선민요의 선률형식을 시대와 인민들의 미감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킨 전문가에 의한 《창작민요》로서의 새로운 선률형상을 창조하였다. 전통적인 민요5음계조식체계의 특성을 시대적미감에 맞게 계승발전시킨 5음계적대조와 소조의 적극적인 활용, 선률음조에서 시대감에 맞지 않는 지나친 장식적요소와 지방적국한성의 극복, 박자 및 리듬에서 전통성을 잘 살리면서도 보다 단순하고 통속적인 형태들의 주도적리용, 음악적양상에서 밝고 명랑한 락천성과 적극적인 서정성의 결합 등은 신민요의 새로운 음악양식적면모를 보여주는 질적요소들이다.
선률양식적으로 종래의 민요와 뚜렷이 구별되는 신민요의 출현은 우리 나라의 민요 특히 민족적선률이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고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전반적인 민족가요예술의 새로운 발전과정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와 같이 계몽기가요는 일제식민지통치의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민족적특성과 현대성을 밀접히 결합한 민족가요의 새로운 종류와 형식을 개척함으로써 우리 나라 가요예술의 현대적발전에 적극 기여하였다.
계몽기가요의 창조는 당시 전반적인 민족음악예술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뿐아니라 해방후 우리 나라 가요음악의 다양하고 풍부한 발전을 가져올수 있게 한 귀중한 밑천의 하나로 되였다. 바로 여기에 계몽기가요가 가지는 유산적가치와 음악사적의의가 있는것이다.
계몽기가요의 의의는 셋째로, 그것이 오늘에 와서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현실생활에서 커다란 사회교양적기능을 수행하고있는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계몽기가요가 가지는 현실적의의는 무엇보다도 오늘 우리 인민들에게 과거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정책과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의 피눈물의 력사를 잊지 않게 하는데서 위력한 교양수단으로 되고있는것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과거죄행을 잊지 않도록 반일의식을 고양하는것은 의연히 절실한 문제로 나선다.
지난날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탈하고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일본은 오늘까지도 우리 민족에게 끼친 피비린 죄악을 성근히 반성하고 응당한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있을뿐아니라 오히려 제놈들의 죄악에 찬 침략력사를 외곡하고 미화하면서 군국주의망령을 되살리기 위해 별의별짓을 다하고있다.
더우기 민족적격분을 자아내는것은 일본의 극우보수세력들이 악랄한 반공화국대결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못되게 놀고있는가 하면 날강도의 심보로 신성한 우리의 령토인 독도를 강탈하기 위해 분별을 잃고 날뛰는 등 우리 민족의 존엄을 우롱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겨레의 전진을 한사코 방해해나서고있는것이다.
제반 사실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에 대한 피비린 침략사와 죄행을 가리워보려고 온갖 권모술수를 쓰면서 우리 민족을 또다시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흉심을 버리지 않고있다는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이 일제에 의하여 강요당한 민족수난의 과거력사를 잊지 않도록 하는것은 민족의 자주적발전과 나라의 번영을 위하여 현시기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방전 우리 겨레에게 반일애국사상을 심어주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 계몽기가요의 인식교양적가치가 오늘에 와서도 의연히 그 지위를 잃지 않고있다고 할수 있다.
지난날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슬픔과 울분, 잃어버린 고향과 조국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절절히 노래하고 해방의 봄을 그리며 목메여 부르던 계몽기가요들은 나라를 빼앗기면 얼마나 비참한 운명을 겪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실재한 증거물로서 사람들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있다.
자기 조국과 자기 인민을 사랑하는 정신이 절절하고 강할수록 그것을 침해하는 원쑤들에 대한 증오는 더욱 불타오르게 되는것이다.
참으로 계몽기가요들은 지난날은 물론 현시대에 와서도 조국의 자주권을 수호하며 민족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떨쳐나서야 할 전민족적인 시대적사명감을 깊이 새겨주는것으로 하여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계몽기가요가 가지는 현실적의의는 다음으로 온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수행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는데 있다.
예로부터 한강토에서 하나의 언어와 풍습, 하나의 피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은 노래를 불러도 같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도 조선춤을 함께 춰왔다.
아름답고 우아한 조선민요와 함께 해방전시기에 나온 계몽기가요는 북과 남이 따로없이 함께 망국의 비운을 통탄하고 도탄에 빠진 민족을 구원해줄 민족재생의 은인을 찾아 절절히 부르던 겨레의 노래, 민족의 노래였다.
전체 조선민족의 공통된 념원과 지향을 반영하고있는 계몽기가요는 오늘에 와서도 그에 담겨진 공통된 민족적감정과 정서로 하여 북과 남, 해외에 사는 조선민족 누구나 다 사랑하며 즐겨부르는 노래로 되고있다.
외세의 집요하고 악랄한 책동에 의하여 민족분렬의 비극이 반세기이상 지속되고있는 오늘 북과 남은 갈라져살수 없는 한민족, 한피줄임을 보여주는 노래가 바로 조상전래의 민요들과 계몽기가요이다.
조선사람이라면 《봉선화》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라고 하면서 행복의 앞날을 그리며 부르던 노래를 잊지 않고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언덕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와 같은 시구들은 오늘도 조선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하나의 감정정서로 이어주는 감명깊은 표현들이다.
그래서 북과 남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통일행사나 여러가지 체육문화축전들에서 목청을 모아 함께 부르는 노래도 《아리랑》과 같은 전통민요들과 《고향의 봄》, 《그리운 강남》과 같은 계몽기가요들이였다.
현실은 계몽기가요가 북과 남, 해외에서 사는 모든 조선사람들을 사상과 정견, 계급과 계층을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임을 감정정서적으로 일맥상통시켜주는 민족의 노래로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아래 서로 단합시키고 조국통일위업실현에 떨쳐나서도록 하는데서 큰 감화력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웅변적으로 실증하여주고있다.
바로 이처럼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며 민족지상의 과제인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민족대단결을 이룩하는데서 적으나마 이바지한다는데 계몽기가요가 가지는 현실적의의가 있는것이다.
참으로 계몽기가요는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했던 시절에 갖은 고초를 겪으며 발생발전하여오면서 우리 인민들의 반일애국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하였을뿐아니라 우리 나라 가요예술을 한계단 발전시키는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것으로 하여 조선음악사에 자기의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커다란 감화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민족적인것을 귀중히 여기고 빛내여나가려는 숭고한 사상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계몽기가요와 같은 귀중한 음악유산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긍지가 아닐수 없다.
□ 세기와 세기를 이어, 그 진정한 생명력은 어디에
계몽기가요가 나온 때로부터 근 한세기를 가까이 하는 긴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비록 당대 사회에 휩쓸었을지언정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자기의 생명력을 잃고 력사의 이끼속에 파묻혀버린 유명무명의 음악유산들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그러나 류수와 같은 세월속에서도 계몽기가요는 진할줄 모르는 생명력을 발휘하고있다.
공화국에서 펼쳐지고있는 현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지난 세기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했던 그 시절에 나라잃은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우리 민족이 피눈물을 뿌리며 처량하게 불렀던 계몽기가요가 선군조선의 존엄을 떨쳐가는 새 세기 오늘날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빛을 뿌리고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민족애의 숭고한 감정을 승화시켜주며 널리 불리워지고있다.
만민의 태양이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이 흘러넘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의 화려한 무대에서도, 주체예술의 기념비적걸작품인 김일성상계관작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비롯한 시대의 명작들마다에서도 계몽기가요의 노래선률이 울려나온다.
어찌 그뿐인가.
선군시대의 요구와 미감에 맞게 새롭게 재형상된 계몽기가요들이 TV와 소리방송을 통해 전국에 전파되고 그 어디가나 펼쳐지는 활기와 랑만에 넘친 흥겨운 오락회마당들에서도 계몽기가요의 곡조들이 흥취를 돋구는 속에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은 더욱 풍만해지고있다.
계몽기가요가 세기와 세기를 이어가며 자기의 진할줄 모르는 생명력을 발휘하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과연 어떻게 마련된것인가.
해빛을 떠나서 만물의 소생을 생각할수 없듯이 민족음악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빛내여주는 태양의 손길을 떠나서 계몽기가요의 오늘을 생각할수 없다.
다시말하여 한없이 숭고한 민족애를 지니시고 민족음악유산의 옳바른 계승발전을 위해 온갖 심혈을 다 기울여가시는 선군태양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계몽기가요의 진할줄 모르는 생명력의 원천인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민족이 력사적으로 이룩해놓은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살려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시종일관한 문예정책의 하나입니다.》
일찍부터 민족문화유산의 계승발전에 관한 어버이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음악유산에 대한 평가를 바로하고 귀중히 여기며 시대의 요구와 미감에 맞게 그를 훌륭히 계승발전시켜나가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려오시였다.
특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천재적예지와 현명한 령도로 계몽기가요를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빛내주신것은 우리 민족음악사에 불멸할 커다란 업적으로 된다.
사실 돌이켜보면 계몽기가요는 한때 일부 사람들과 음악전문가들의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하여 력사주의적원칙에서 옳게 고찰되고 평가되지 못하고있었다.
계몽기가요가 가지는 진보적성격과 유산적가치를 정확히 보지 못하다나니 해방전시기의 노래들은 퇴페적인 류행가로 오인되였고 사람들의 문화정서생활에서도 점차 빛을 잃어갔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는 옛 노래에 불과했던 해방전시기의 진보적가요들을 계몽기가요로 명명해주시고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그 지위를 올려주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그 어느 음악보다도 조선의 음악을 귀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기에 계몽기가요에 관한 문제를 민족문화유산계승과 관련되는 심중한 문제로 보시고 그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지도록 하는데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계몽기가요를 무시하는 편협한 태도는 자기 민족이 창조한 문화유산을 허무적으로 대하는 주체성과 민족성이 없는 표현인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원칙적립장에서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계몽기가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계몽기가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지자면 류행가에 대한 견해를 바로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해방전에 창작된 노래들을 류행가라고 하여 다 반동적인 작품으로 취급하여서는 안된다고, 그 노래들이 시대적제한성으로 하여 오늘날의 노래와 같이 혁명적인 사상은 없지만 거기에는 조국을 빼앗긴 우리 민족의 울분과 향토애, 민족의 고유한 정서가 담겨져있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정확한 력사적고찰이 없이 계몽기가요를 류행가라고 하면서 부르지 못하게 하고 부정하는것은 음악사적견지에서 놓고봐도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일이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1920년대, 1930년대 음악을 잃어버리게 되며 특히 계몽기가요가 많이 창작보급된 카프시기부터 해방전시기까지 사이에 공백이 생기게 되는것이다.
하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통을 계승하면 력사가 빛나고 전통을 무시하면 력사가 없어진다고 하시면서 음악예술부문에서 이러한 편향을 바로잡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체96(2007)년 3월에 고전적로작 《계몽기가요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이다》를 밝표하신것은 전면적이며 과학적인 해명으로 계몽기가요에 대한 가장 옳바른 인식을 정립하시고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서 계몽기가요를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가는데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에 백과전서적인 지침을 밝힌 력사적의의를 가진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과학적인 론리와 분석으로 계몽기가요의 본질과 주제사상적 및 예술적특성 그리고 계몽기가요가 가지는 진보성과 유산적가치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밝혀주시면서 계몽기가요에 대한 리해에서 나타난 편향을 바로잡고 계몽기가요를 다시 찾은것은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하나의 큰 사변과 같은것이며 주체성과 민족성을 살리고 력사주의원칙에서 민족음악유산을 계승하는데서 이룩한 귀중한 성과라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계몽기가요에 대한 보급선전사업의 중요성과 그 실천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명철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계몽기가요보급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그것이 우리 나라의 문학예술사를 더욱 풍부히 하고 빛내이며 사람들의 문화정서생활을 풍부히 하고 주체성과 민족성을 살려나가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질뿐아니라 조선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서도 좋은 작용을 할수 있다는데 대해서 강조하시였다.
민족성을 고수하고 적극 살려나가며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과 풍습을 귀중히 여기는것은 북과 남, 해외에 사는 모든 조선사람들의 일치한 감정인것이다. 강토도 같고 언어와 풍습도 같으며 피줄도 같은 우리 민족은 노래도 같은 노래를 불러왔다.
북과 남이 다같이 계몽기가요와 같은 우리 민족의 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민족성을 지켜나간다면 엉켰던 오해도 풀리게 되고 끊어졌던 혈맥도 다시 이을수 있는것이다.
한가지 실례를 들어봐도 잘 알수 있다.
한때 남조선에서는 공화국에서 항일혁명문학예술외에 다른것은 인정하지 않는것처럼 외곡선전하는가 하면 지어 해방후 북조선에 들어와 활동한 조령출, 박영호, 한명천, 리면상을 비롯한 계몽기가요창작가들이 쓴 계몽기가요들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달아 발표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던것이 공화국에서 계몽기가요를 음악사에서도 취급하고 영화에서도 많이 활용한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릇된 인식을 바로가지게 되였다.
나중에는 공화국에 찾아와 한명천을 비롯한 계몽기가요창작가들을 추모하고 그 가족들에게 원고료를 주겠다고까지 하는 일도 벌어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에 대해 지적하시면서 계몽기가요는 북과 남, 해외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을 사상과 정견의 차이에 관계없이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아래 서로 단합시키고 조국통일위업실현에 떨쳐나서도록 하는데서 큰 감화력을 가지고있다고 천명하시였다.
계몽기가요보급사업을 잘하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에 대해서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들을 발굴고증하고 정리하는 사업을 잘하는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계몽기가요에 대하여 리론적으로 소개선전하는 사업도 잘할데 대해서 그리고 계몽기가요들가운데서 좋은 노래들을 재형상하여 보급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참으로 이 력사적로작에는 우리 민족이 이룩하여놓은 음악유산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시고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여주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열렬한 민족애가 뜨겁게 어려있다.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열화와 같은 민족애, 천재적예지에 의하여 계몽기가요는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이라는 지위를 받아안고 후세에 길이 전해질수 있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확립할뿐아니라 그것을 널리 보급하여 인민들속에서 즐겨불리워지도록 하시기 위해 각별히 마음을 써오시였다.
지난 시기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가르치심속에서 많은 계몽기가요들이 무대공연과 예술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작품들에서 훌륭히 형상되여 인민들의 정서생활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주체80(1991)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가지고 다부작예술영화를 만들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영화에 이 노래와 함께 1930년대에 많이 불리운 계몽기가요를 배합하여 쓰도록 함으로써 영화를 특색있는 걸작으로 되도록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락화류수》, 《동무생각》, 《홍도야 울지 말아》, 《고향하늘》을 비롯한 계몽기가요들을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장면에 맞게 많이 리용하였으며 《카프》작가편에서는 계몽기가요창작가의 한사람인 홍란파에 대하여서와 그가 작곡한 《봉선화》가 취급되게 되였다.
기름진 영화화면과 함께 울려나오는 계몽기가요들은 영화의 사상예술성을 높이고 정서적감화력을 높이는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을뿐아니라 사람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계몽기가요를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빛내주시기 위해 기울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혈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창조과정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주체90(2001)년 9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세계적인 대걸작으로 창조할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두만강에는 많은 사연이 깃들어있다고, 이번에 창조하는 《아리랑》공연의 제1장 1경 《두만강을 넘어》에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을 넣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고 두만강에 깃든 우리 인민의 수난의 력사를 생동한 생활화폭으로 잘 형상할데 대하여 간곡히 이르시였다.
그후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창작가들이 제1장 1경에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을 넣었으나 노래형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령도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몸소 그들을 불러주시고 해방전 우리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진 모든 계몽기가요와 마찬가지로 《눈물젖은 두만강》도 지난 세월 우리 인민의 비참한 생활형편을 깊이 느끼게 하고 민족성을 북돋아주는데 의의있는 노래라고 하시면서 노래를 우리 식으로 부르고 반주도 우리 식으로 하는것을 비롯하여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형상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명철한 해답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식으로 훌륭히 형상된 《눈물젖은 두만강》의 절절한 노래속에 피눈물을 뿌리며 정든 고향과 조국을 등지고 떠나가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설음에 찬 처지를 방불히 펼쳐보이는 명장면이 창조될수 있었다.
눈물없이 볼수 없는 이 장면에서 울리는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은 탁월한 령도자를 모실 때 지난날 민족의 울분을 싣고 흐르던 원한의 강, 눈물의 강도 락원의 강, 행복의 강으로 될수 있다는 진리를 가슴깊이 새기였고 쓰라린 력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몸과 맘을 다 바칠 애국의 의지를 가다듬었다.
참으로 한곡의 계몽기가요에도 이렇듯 심혈을 기울이시여 사람들의 심금을 틀어잡는 명곡, 명장면을 창조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손길이 있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국보적인 대걸작, 민족의 자랑으로 만방에 그 이름 떨칠수 있었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들을 새 세기의 요구와 우리 인민의 미감에 맞게 새롭게 재형상하여 TV방송과 소리방송으로 많이 내보내여 사람들이 우리의것을 사랑하고 즐겨부르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이미전부터 TV방송과 소리방송으로 계몽기가요를 많이 내보낼데 대해 가르쳐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몇해전부터는 TV방송에서 《계몽기가요 감상시간》을 설정하고 정상적으로 내보내도록 하는 한편 계몽기가요들을 방영할 때 그 가요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경위와 가요의 사상주제적내용에 대하여 안내말을 주도록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TV방송과 소리방송을 통해 현대적미감에 맞게 재형상된 계몽기가요들이 울려나오고 그 창작경위와 시대적배경, 주제사상적내용은 물론 창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을 통해 사람들은 계몽기가요에 대해서 더 깊이 인식하게 되였으며 류다른 애착심을 갖고 즐겨부르고있다.
정녕 지난날 쓰라린 울분과 비애에 젖어 불리웠던 계몽기가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버릴번 했던 계몽기가요가 오늘 이렇듯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값높은 지위를 부여받고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 민족적정서와 흥취를 돋구어주는 행복의 노래로 높이 울려퍼지게 하여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야말로 누구도 따를수 없는 민족애를 지니신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이시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민족을 제일로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따르는 길에 민족의 존엄과 창창한 미래가 있다는 굳은 확신을 안고 내외반통일분렬세력들이 제아무리 발악해도 6.15공동선언의 기치높이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과감히 벌려 겨레의 노래, 통일의 노래를 마음껏 부를 통일조국의 래일을 앞당기기 위해 분발해나서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