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몽기가요-어떻게 리해할것인가

 

계몽기가요를 어떻게 리해할것인가 하는것은 단순히 흘러간 옛시절에 불리워진 가요에 대한 순수 객관적인 음악리론적분석이나 력사적고찰, 평가에 국한시켜볼 문제만이 아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몽기가요를 어떻게 리해하고 취급하는가 하는것은 민족문화유산계승과 관련되는 심중한 문제입니다.》

계몽기가요에 대한 리해와 취급은 본질에 있어서 계몽기가요가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이라는 인식을 갖는 문제이며 그로부터 계몽기가요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옳게 계승발전시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켜나가는것과 관련된 심중한 문제이다.

 

2

□ 그 개념의 리해부터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지는데서 선차적인것은 계몽기가요란 무엇인가 하는 개념의 정의부터 명백히 인식하는것이다.

그것은 계몽기가요의 개념부터 옳게 인식하여야 우리 나라 음악발전에서 계몽기가요가 차지하는 지위와 유산적가치를 잘 알수 있을뿐아니라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빛내여나가기 위한 옳바른 자세와 립장을 가질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시기 계몽기가요에 대한 개념이 옳게 해명되지 못한것으로 하여 그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서 여러가지 편향들이 나타났다.

지난 시기 계몽기가요는 그 다양한 가요종류들이 나온 시기나 사회력사적환경 등과 결부하여 그 개념들을 여러가지로 해석하여왔으며 이름도 여러가지로 불러왔다.

계몽기가요중에서 동요와 예술가요는 주로 1920년대초부터 발생한 노래들이라 하여 1920년대 가요라고 하였으며 대중가요와 신민요는 1930년대에 많이 나온 노래들이라 하여 1930년대 가요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가요종류들을 통털어 해방전가요 또는 민족수난기가요라고 불렀다.

이러한 용어들은 계몽기가요가 나온 력사적시기나 시대적특징만을 알수 있게 할뿐 이 노래들이 가지고있는 본질적특성과 유산적가치까지 폭넓게 리해할수 있게 개념화되지 못한 제한성이 있었다.

이것은 해방전시기의 가요들을 총칭하여 부른 용어자체의 제한성에만 머무른것이 아니라 이 시기 노래들에 대한 리해와 해석에도 영향을 미쳐 그것이 가지는 반일계몽적성격과 유산적가치가 공정하게 평가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우기 해방전가요라고 불리운 노래들중에는 무의미한 련정이나 슬픔, 타락을 고취하거나 일제의 강요와 탄압에 굴복하여 염세와 절망, 허무와 무기력을 설교하는 반동적인 노래들도 뒤섞여있어 사람들에게 해방전가요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주기까지 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 나라를 빼앗긴 인민들의 눈물겨운 처지와 민족적울분 그리고 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 감정을 반영하였던 계몽기가요의 개념에 대한 옳바른 인식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천리혜안의 예지로 이 노래들에 비낀 계몽적성격과 유산적가치를 꿰뚫어보시고 계몽기가요라고 불러주시고 귀중한 민족음악유산으로 내세워주심으로써 비로소 바로가질수 있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가지고 력사주의원칙에서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으며 계몽기가요의 반일계몽적인 내용과 음악적특성 그리고 계몽기가요와 계몽가요 및 류행가와의 호상관계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가르쳐주시면서 계몽기가요의 개념에 대하여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몽기가요는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시기에 나온 진보적인 노래들입니다.》

계몽기가요란 일제식민지통치를 반대하는 우리 인민의 반일애국사상이 높아가던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시기에 나온 진보적인 여러가지 가요종류들을 총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계몽기가요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정식화는 종전의 개념들이 갖고있던 제한성을 극복하고 계몽기가요의 본질적특성과 유산적가치까지 폭넓게 리해할수 있게 하는 가장 과학적인 정식화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해방전시기의 진보적인 가요들에 계몽기가요라는 고유한 이름을 달아주시고 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질수 있게 하여주심으로써 이 노래들이 나온 시대적배경과 력사적사연 및 유산적가치와 결부하여 그에 대한 개념상리해를 과학적토대우에서 새롭고 폭넓게 할수 있는 주체적관점이 확립될수 있었다.

계몽기가요에 대한 개념상리해를 바로하는데서 두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3

○ 계몽가요와 계몽기가요의 본질적차이

 

무엇보다 계몽기가요는 계몽가요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가요유산이라는것을 옳게 인식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음악발전의 계기점은 민족적 및 계급적모순이 첨예화되고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앙양되는 시기와 많이 관련되여있다. 이것은 지나온 음악력사가 보여주는 음악예술발전의 합법칙성이기도 하다.

계몽기가요는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시기에 나온 진보적인 노래들을 말한다.

그런데 지난 시기 일부 사람들속에서 계몽기가요와 계몽가요가 다같이 계몽이란 표현과 결부되여있다고 하여 혼탕시켜 인식하면서 계몽기가요를 계몽가요(창가)라고도 하고 계몽기가요의 한개 종류로 계몽가요를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계몽가요와 계몽기가요는 서로 다른 시대적배경과 력사적사연을 안고 창작보급된 노래들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몽가요와 계몽기가요는 창작보급된 시대적배경과 사상주제적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계몽가요와 계몽기가요는 다같이 우리 나라에서 민족적 및 계급적모순이 극도로 첨예화되고 인민대중의 민족해방투쟁이 앙양되던 력사적시기에 나왔으나 구체적으로 그것들은 창작보급된 시대적배경과 사상주제적내용이 서로 다른 노래들이다.

계몽가요는 우리 나라에서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이르는 시기에 벌어졌던 애국문화운동의 영향밑에 나온 계몽적성격을 가진 노래들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9세기 중엽부터 근대적인 부르죠아계몽사상인 개화사상이 싹터 자라면서 리조봉건정부내에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형성되여 여러가지 부르죠아개혁을 시도하였다.

애국문화운동은 이러한 개화파들에 의하여 1870년경부터 근대적인 성격의 계몽도서와 신문발행을 통한 부르죠아적문화계몽이 시작되면서 발단하였다. 그후 189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개화사상의 영향을 받은 애국적지식인들이 대중을 위한 문화계몽활동에 적극 나서면서부터 이 운동이 대중적지반을 가진 하나의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는 사회운동으로 강화발전하였으며 3. 1인민봉기가 일어난 1919년까지 지속되였다.

애국문화운동은 나라의 봉건적락후성을 가시고 근대적부강발전을 이룩하며 나라의 독립과 민족적존엄을 고수할것을 목적으로 한 애국애족적인 사회적운동으로서 운동의 기본방향을 정치계몽단체들을 통한 대중계몽활동과 언론활동, 민족교육운동, 국학운동, 문예활동 등으로 사람들속에 반침략애국정신과 근대적지식을 배양하기 위한 문화계몽활동을 벌리는데 두고있었다.

이러한 애국문화운동을 반영하여 나온것이 《신소설》이라고 불리운 문학작품들과 계몽가요들이다. 신소설과 계몽가요들에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독립과 근대적인 문명개화를 지향하는 애국문화계몽으로 들끓던 당대의 현실이 다양하게 반영되였다.

계몽가요에는 《독립가》, 《동심가》와 같이 애국심을 담은 노래들도 일부 있었으나 기본은 《학도가》, 《권학가》, 《문맹퇴치가》, 《신문가》, 《금주가》 등과 같이 지식계발과 문명개화, 반봉건을 호소한 문화계몽적성격을 띠는 노래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었다.

그때에는 이 노래들을 가리켜 창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당시 창가라는 말은 보통학교나 사립학교들에서 진행하는 음악과목의 이름으로도 쓰이였다. 그래서 해방후에 문예학자들이 음악시간을 의미하는 학과목인 창가와의 혼탕을 피할 의도에서 그리고 이 노래들이 가지는 계몽적성격을 고려하여 계몽이라는 말을 덧붙여 계몽창가 또는 계몽가요라고 고쳐불렀는데 그것이 그대로 굳어져 오늘날 계몽가요라고 부르게 된것이다.

이와 같이 애국문화운동의 영향밑에 대중의 문화계몽을 다그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로 출현한 창가 즉 계몽가요는 청소년학생들은 물론 성별과 년령, 직업 등의 차이를 초월한 광범한 군중속에서 커다란 감화력을 가지고 널리 보급되면서 그들을 정치문화적으로 계몽각성시키고 애국적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계몽가요는 전민족적인 반일항쟁이였던 3. 1인민봉기가 일제의 야수적탄압으로 실패하면서 부르죠아민족주의운동이 종말된것과 더불어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였다. 이것이 바로 계몽가요가 나온 시대적배경이며 이 노래들에 담겨진 력사적사연인것이다.

계몽기가요는 계몽가요가 점차 사라져가던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시기를 시대적배경으로 하여 창작보급된 노래들이다.

이 시기는 우리 나라에서 로동운동이 장성하면서 로동계급의 요구와 사상감정을 반영한 프로레타리아문학예술운동이 일어나는 한편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주석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영향이 국내외로 확대되면서 인민들속에서 반일애국사상이 날로 높아가고 전반적인 반일민족해방운동이 더욱 앙양되여가던 력사적시기이다.

계몽기가요는 일제식민지통치를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기세가 더없이 높아가던 시기를 시대적배경으로 하여 나온 노래들로서 그 주제사상적내용에서 선행한 계몽가요에 비하여 반일계몽적성격이 강한 노래들이 주류를 이루고있다.

이것은 계몽기가요가 당시 나라와 민족앞에 나선 절박한 문제였던 반일계몽적인 내용을 담은 음악유산으로서 그보다 앞서 나왔던 문화계몽적인 성격의 계몽가요와 뚜렷이 구별된다는것을 말하여준다.

 

4

○ 계몽기가요와 퇴페적인 류행가를 구별해보아야

 

계몽기가요에 대한 개념상리해를 바로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계몽기가요와 퇴페적인 류행가를 똑바로 갈라보는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류행가란 말그대로 사람들속에 널리 류행되여 불리우는 노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류행가란 그 어떤 가요종류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류행가란 말그대로 사람들속에 널리 류행되면서 불리우는 노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말하여 해당 시기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지는 노래가 류행가이지 류행가라고 하는 독자적인 가요종류나 형식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나 지금이나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불리우는 노래는 다 해당한 시대의 류행가라고 할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류행가라는 말이 나온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13년에 《류행소가집》이란 노래책이 발행된 후 사람들속에서 창가류의 통속적인 노래들을 류행창가, 류행소가, 류행잡가, 통속잡가라고 불러왔는데 이 용어들은 그후에도 류행가라는 말과 같이 쓰이였다.

류행가라는 말은 1920년대에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노래들이 사람들속에 일정하게 퍼지면서 처음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후 새로 자라난 우리 음악가들이 노래를 지어 레코드취입에 넘기면서 자기의 노래가 구전민요나 다른 노래들보다 사람들속에 많이 불리워진다는 뜻에서 노래제목앞에 류행가라는 말을 붙이면서부터 이 말이 마치도 하나의 가요종류를 가리키는 용어처럼 인식되게 되였다.

처음에는 대중가요와 신민요가 같은 작곡가들이 창작하던 노래인것으로 하여 다같이 류행가라는 이름으로 소리판에 취입되여 보급되였다.

그후 전통적인 민요형식을 그대로 계승한 노래들이 새로운 민요라는 뜻에서 신민요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화되여나온 이후에도 대중가요만은 계속 류행가라고 불러왔다.

그리하여 류행가라고 하면 예나 지금이나 해방전시기의 대중가요를 가리키는 말로 통하고있다.

그런데 여기서 명백하게 알고 넘어가야 할것은 류행가의 모자를 씌워 일제가 류포시킨 퇴페적인 노래와 계몽기가요를 엄격히 구별해보아야 한다는것이다.

해방전시기 류행가라고 불리운 노래에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일제가 조선인민의 민족자주의식과 반일애국사상을 말살하고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순종하게 할 목적밑에 의식적으로 만들어 퍼뜨렸거나 자국에서 끌어들여 류포시킨 퇴페적인 류행가이다.

여기에는 일제가 퇴페적인 일본류행가들을 그대로 번역했거나 가사바꿈을 하여 류포시킨 《그대 그리워》, 《눈물인가 한숨인가》, 《갈가부다 말가부다》와 같은것들과 일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 대한 찬미와 무저항을 설교한 《잘있거라 전우여》, 《청춘동라》와 같은 친일반동적인 노래들 그리고 색정과 타락을 조장시키는 《무정한 달》, 《애수의 황혼》 등의 퇴페적인 노래들이 포함된다.

이와 같이 반동적이며 저속하고 음탕한 내용과 곡조들로 일관된 퇴페적인 류행가들은 사람들속에 염세와 절망, 색정과 향락, 애수와 순종, 비애와 허무를 고취하고 민족의 넋을 흐리게 하며 식민지노예의 운명에 순종하도록 설교함으로써 사람들의 건전한 의식을 좀먹는 해독적인 작용을 하였다.

다른 한 부류는 나라잃은 민족의 슬픔과 울분, 조국애와 향토애, 민족애의 감정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한 노래들이다. 이 부류의 노래들은 당대 인민들속에서 많이 불리운 류행가의 기본주류를 이룬다.

물론 이 부류의 류행가들은 진보적가요에 대한 일제의 검열과 탄압으로 하여 반일애국사상을 전면에 내놓고 표현하지는 못하였으나 당대의 시대상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소극적으로나마 사람들속에 반일애국의 감정과 민족의식을 북돋아주는데 기여한 진보적인 노래들이다. 계몽기가요중에서 대중가요라고 부르는 노래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므로 계몽기가요와 류행가일반을 똑바로 갈라보아야 하며 특히 류행가라고 불리워왔던 계몽기가요와 퇴페적인 류행가를 혼탕시켜보면서 계몽기가요를 나쁜 노래로 치부하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5

상 식

 

《계몽》이란 말의 유래

 

계몽이란 지식수준이 낮고 사상의식수준이 어린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우쳐준다는 말이다.

봉건을 반대하고 자본주의적발전을 지향한 부르죠아사회문화운동인 계몽운동이 벌어진 시기는 우리 나라에서도 있었고 유럽에서도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시기를 《애국주의문화운동시기》 또는 《애국문화계몽운동시기》라고 하였으며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운동시기》 또는 《계몽주의사상문화운동시기》라고 하였다.

《계몽》이라는 말은 18세기에 유럽에서 봉건을 반대하고 자본주의적발전을 지향한 《계몽주의》라는 표현에서 처음 나왔다.

계몽주의는 당시 유럽에서 부르죠아혁명의 과업이 일정에 오르고 여러 나라들에서의 부르죠아혁명을 전후한 력사적시기에 나온 반봉건적, 반종교적사상문화운동이였다.

원래 봉건을 반대하고 자본주의적발전을 추구한 부르죠아혁명이 처음 수행된 나라는 영국이였다.

1649년에 영국에서 진행된 봉건제도의 전복과 부르죠아공화국의 수립은 그후 18세기에 이르러 일명 《나는 북》이라고 불리운 방적기의 발명을 시초로 한 산업혁명으로 이어져가면서 자본주의시대의 시초를 열어놓았으며 이것은 당시 인류의 사회적진보에 기여한것이였다.

이러한 사변에는 14~16세기에 영국, 그리스, 로마 등 여러 유럽나라들에서 반봉건, 반그리스도교적비판성을 가지고 발생발전하였던 인문주의사상에 기초한 문예부흥기문학예술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하였었다.

계몽주의가 새로 자라나는 신흥부르죠아지의 사상을 대변한 하나의 사상조류로 대두한것은 18세기에 프랑스에서였다.

일명 《백과사전파》라고 불리운 프랑스계몽주의자들에 의하여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과학, 예술 및 수공업백과사전》(전 35권)은 당시 유럽전반에서 세차게 벌어지고있던 계몽주의사상문화운동을 반영한 반봉건적계몽주의문학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계몽주의문학은 18~19세기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활발히 벌어진 반봉건적, 반종교적사상문화운동을 반영 및 대변하여 사람들을 깨우치고 추동함으로써 근대자본주의제도가 확립되여가도록 하는데 기여하는것으로써 자기의 력사적과제를 수행하였다고 볼수 있다.

이와 함께 유럽의 계몽주의운동도 나라들마다 시기적인 차이는 있으나 자본주의사회가 제도적으로 고착되는것으로써 자기의 과제를 원만하게 수행하였다고 볼수 있다.

이와 달리 우리 나라에서 19세기 후반기부터 전개된 애국문화계몽운동은 일제의 강도적인 조선강점과 식민지통치로 하여 1910년대말에 자기의 근본목적을 달성하지 못한채 인위적으로 중도반단되였다.

계몽가요가 쇠퇴된 요인도 이와 관련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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