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맞힌》 지역공약
할수없이 시작된 《세종시》
2010년 남조선은 리명박의 오만과 독선이 낳은 세종시수정놀음으로 인한 정치적혼란과 갈등으로 1년내내 홍역을 앓았다.
세종시란 로무현《정권》시기 내들었던 《주요지방발전계획》의 하나이다.
내용은 2030년까지 충청남도 연기군과 공주시, 충청북도 청원군지대에 서울에 있는 행정기관들중의 일부 부, 처들을 옮겨 50만명이 살수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한다는것이다.
이 계획은 2005년 《행정도시특별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되였고 2006년 12월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을 《세종시》로 한다는것이 선포되였으며 2007년 7월에 시작되여 2009년 11월까지 공정계획의 24%정도가 진척된 상태였다.
리명박은 《대통령선거》에서 충청도지역 주민들의 지지표를 얻기 위해 자기가 집권하면 《세종시건설》을 그대로 추진시킬것이라고 공약했었다.
선거전 12회, 집권후 4회나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발언으로 《원안대로 추진》을 철석같이 약속했다.
당시 《한나라당》것들 역시 무려 20여차례나 《세종시원안이 당론》이라고 떠들며 《한치 드팀도 없이 실행할것》이라고 광고했다.
그런데 2009년말부터 《한나라당》(당시)이 갑자기 무슨 효률성을 구실로 행정기관들을 옮기는것을 반대하면서 법안수정을 주장하고 《국무총리》 정운찬이 그것을 공론화하면서 이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였다.
리명박은 《한나라당》(당시)이 세종시수정을 들고나오자 2010년 1월 세종시를 원래 계획된 행정중심도시가 아니라 산업도시로 만들겠다고 하면서 론난에 더욱 불을 지펴놓았다.
사실 세종시수정놀음은 리명박의 조종에 의하여 벌어진것이다.
리명박은 세종시가 건설되면 결국은 로무현의 《업적》으로 되며 더우기는 《세종시건설》을 그대로 추진하는 경우 《4대강정비사업》을 비롯한 자기의 《치적》쌓기에 필요한 예산을 충당할수 없다는것을 알게 되자 수하졸개들을 내몰아 이런 놀음을 꾸며낸것이였다.
리명박의 《세종시건설》계획수정흉심이 드러나자 남조선 각계는 강력히 반발하여나섰다.
야당들은 《세종시건설법안》의 수정을 견결히 반대하고 원안고수를 주장하면서 《국회》를 마비시켰다.
특히 충청도지역 주민들은 《대통령선거》때 지역민심을 낚기 위해 세종시건설을 밀겠다고 《공약》하였던 집권세력이 지금에 와서 《수정》이니 뭐니 하면서 그것을 사실상 무효화하려고 하고있다고 격분을 토로하면서 도처에서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리였다.
하지만 리명박은 야당과 사회 각계의 이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0년 1월 11일 《국무총리》를 내세워 《세종시건설》계획수정안을 발표하게 하였다.
수정안의 내용을 요약하면 종래의 《세종시건설》계획원안을 백지화하고 대신 기업, 대학, 연구기관들을 끌어들여 교육과학중심의 경제도시를 원래 계획하였던 2030년이 아니라 2020년까지 건설한다는것이였다.
리명박은 《세종시건설》계획수정안대로 진행하면 원안에 비해 10배의 경제적리익을 얻고 지역발전효과도 2. 8~3배나 높아진다고 떠들었다.
《세종시건설》계획수정안이라는것이 나오자 남조선내부는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법석 끓었다.
도처에서 당국자와 《한나라당》에 대한 화형식이 벌어지고 충청남도를 행각중이던 《국무총리》가 지역주민들로부터 닭알세례를 받았다.
충청남도에서는 《행정도시사수 500만충청권총궐기대회》가 열리고 《필사즉생의 각오로 정권불복종운동》이 선포되였으며 단식투쟁, 삭발투쟁과 같은 반리명박, 반《정부》투쟁이 련이어 벌어졌다.
《세종시건설》계획수정으로 여당내부에서도 집안싸움을 벌리였다.
《세종시건설》공약이 뒤집힌 후 여당의 전통적지반이라고 하는 대구, 경상북도지역에서는 리명박에 대한 지지률이 거의 20%나 떨어졌다.
사실 지난 시기 대구, 경상북도지역은 《섬유산업의 중심지》로 불리였지만 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후 10여년간 심화되는 경제위기로 지역경제가 심히 침체되였다. 이로부터 대구와 경상북도에서는 2009년부터 《첨단의료복합단지》, 《교육중심도시》, 《국제과학비즈니스지구》 등을 건설하는것으로 지역경제를 추겨세울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세종시건설》수정안에 그 내용들이 포함되다나니 이 지역의 계획이 모두 물거품으로 될 형편에 처하게 되였던것이다.
2010년 6월 29일 《실용정부》패들은 《세종시건설수정안》이 《국회분과위원회》에서 압도적다수의 반대로 부결되였으나 《백년대계사업》이므로 전체 《국회》의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우기면서 수정안을 《국회》본회의에 상정시켰다. 그런데 《국회》본회의에서 진행된 표결에서도 참가한 여야당소속 《국회》의원 총 275명중 《한나라당》내 친리명박계인물 105명만 찬성하고 그외 164명이 반대함으로써 《세종시건설수정안》은 최종적으로 부결되였다.
리명박은 《결단》이요, 《고뇌》요 하면서 주요정책으로 내들었던 《세종시건설수정안》의 《국회》부결로 커다란 정치적타격을 받게 되였으며 할수없이 《세종시건설》을 원안대로 진척시킬수밖에 없었다.
민심의 배격에 밀려 할수없이 시작한 《세종시건설》.
이는 인민들앞에서 하였던 약속도 서슴없이 배반하는 비렬한 리명박의 사기공약때문에 남조선에서 고질적문제거리로 되고있는 지방들사이의 갈등과 분쟁은 더욱 악화되고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남조선출판물들은 이렇게 전하고있다.
《보통사람들도 한입으로 두말하면 신뢰를 잃는다. 주변에 그런 친구를 가까이 두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하물며 <대통령>이 한입으로 두말하는데서야 어찌 신뢰할수 있겠는가. 그런데 리명박은 공공연하게 말바꾸기를 되풀이해왔다. 세종시의 경우에도 10여차례에 걸쳐 원안대로 추진을 약속했으나 어느 순간 태도를 바꾸어 수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국민들을 극한의 지역갈등에로 몰아넣었다.
이런 사람을 믿고 표를 준것이 부끄러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