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죽어간 룡산주민들
2009년 1월 20일 서울의 룡산에서는 경찰의 야수적인 살인만행으로 생존권보장을 요구하던 주민들이 무참히 희생되는 경악할 사태가 빚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남조선당국이 재개발을 운운하며 아무런 이주대책도 없이 이 지역에서 주민들을 강제로 철거시킨것으로 시작되였다. 추운 겨울에 무작정 삶의 보금자리를 강탈하려는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격분한 철거민 50여명은 5층짜리 건물옥상을 점거하고 철야롱성투쟁에 돌입하였다.
그들은 《실용정부》가 재개발을 광고하며 마치도 큰 덕이나 볼것처럼 떠들었지만 정작 쫓겨나가게 된 철거민들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생존대책도 없다고 하면서 해당한 대책을 세울것을 주장하여나섰다.
하지만 《실용정부》패당은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에 대해 떠들어대며 철거민들의 롱성투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라는 살인명령을 내리였다.
명령에 따라 폭압무력우두머리들은 철거민들에 대한 진압에 1 600여명 경찰은 물론 테로방지에만 동원된다는 《특공대》까지 내몰아 광란적인 진압작전을 개시하였다. 좁은 건물옥상에 뛰여든 특공대와 경찰들은 무자비한 폭압에 날뛰였으며 치렬한 공방전속에서 삼단같은 불길이 치솟았다. 경찰의 강제탄압을 지켜보던 많은 시민들이 진압중지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폭력배들은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계속 쏘아대면서 더욱 광기를 부리였다.
결과 철거민 5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는 끔찍한 참사가 빚어지게 되였다.
룡산살인참극은 리명박의 《뉴타운》공약에 의해 빚어진 인위적인 살인사건이다.
리명박은 서울시장을 해먹던 시절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래된 거리들과 건물들을 해체,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경영, 상업, 봉사 및 주택거리들을 건설한다는 《뉴타운정책》이라는것을 내놓았으며 《대통령선거》때에는 부동산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서민들의 경제생활을 향상시킨다는 명목하에 이를 계속 장려할것이라고 공약해나섰다.
하지만 이것은 인민을 기만우롱하여 부동산재벌들과 부자들의 배만을 불리워주기 위한 일대 사기공약이였다.
《뉴타운정책》에 따라 서울시 룡산구에서도 2009년 5만여평의 부지에 새 건물들이 들어설것이 예견되였는데 이를 위해 그곳에서 살고있던 주민들에게 철거가 강요되였다.
당시 그곳에는 입주주민들과 함께 건물을 임대하여 상업활동을 벌리던 주민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철거에 따른 보상금을 받을것을 기대하고있었다.
하지만 리명박의 《뉴타운공약》을 폭리의 좋은 기회로 본 건설업주는 그들에게 필요한 생계비와 이주비용을 지불하겠다고 얼려넘겨 강제철거를 단행하고는 해가 바뀌도록 시치미를 떼고있었다.
날새들도 자기의 보금자리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가만히 앉아있을수 없는것이다.
그리하여 철거민들은 약속한 보상금을 하루빨리 지불하고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줄것을 요구하였다.
《친서민정책》을 떠들던 리명박이라면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는것은 너무나 응당한것이였다.
하지만 리명박패당은 건설업주의 편만 들면서 철거민들의 요구와 투쟁을 불법과 과격행동으로 몰아갔으며 나중에는 야만적인 탄압을 가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던것이다.
룡산살인참극의 전후는 바로 이렇게 된것이였다.
하지만 리명박패당은 사건이 벌어지자 《정부발표문》이라는것을 통해 사과가 아니라 《불법점거》의 《위법성》을 떠들며 철거민들을 《범죄자》로 몰아댔으며 나중에는 배후조직이 있다고 고아대면서 《척결》을 부르짖었다. 또한 공안당국은 희생자들의 가족들에게서 시신을 빼앗아 제 마음대로 부검하여 두벌죽음을 강요하는 반인륜적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리명박일당의 파렴치한 진상외곡과 기만적인 수사결과발표로 살인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희생자들은 근 1년동안이나 차디찬 병원랭동고에 방치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건발생후 355일이 지나서야 각계의 참가밑에 범국민장으로 진행된 장례식도 반《정부》시위투쟁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고 고아대며 수천명의 전투경찰을 내몰아 주변을 완전히 봉쇄한 리명박일당의 책동으로 살벌한 폭압분위기속에 치르어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룡산살인참극은 절대다수 근로인민대중의 리익과 념원을 짓밟는것은 식은 죽 먹기로 여기는 리명박일당의 반인민적정체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특대형살인만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