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해 10월이였다.

웬 젊은이가 은영이를 찾아왔다. 쥐색코트를 걸치고 중절모까지 썼는데 피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강마른 청년이였다.

《아버님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은영씨, 당장 서울로 돌아가야겠습니다.》

《?…》

은영은 미심쩍어하는 눈빛으로 그를 스쳐보았다. 한생 어둠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분명하였다. 그를 똑바로 마주보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그의 우묵한 눈확에서 반디불처럼 타는 두눈이 내다볼 때엔 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헌데 당신은…》

《예, 전 림호라고 합니다. 일이 있어 왔던 길에 아버님부탁을 받고 들렸습니다.》

어쩐지 의심만 더해졌다. 아버지가 많은 사람들을 사귀는것은 사실이지만 종적없이 사라진 아버지가 서울청년에게 무엇을 부탁할수는 없지 않는가!

《저… 우리 아버질 어떻게 아시고…》

《그럴만 한 일이 있습니다.》 청년은 벌써 은영이 미심쩍게 여긴다는것을 눈치챈것 같았다. 《은영씨 아버진 지금 서울에 와계십니다. 벌써 두달전 일인데 아직 모르고있었습니까?… 참 그런줄 모르구… 여기 편지에 다 적혀있을겁니다.》

편지를 꺼내는 림호의 왼손에 험한 상처자리가 나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손등에서 팔목까지 찍어낸 칼자리, 흔히 일본 야꾸자패들이 그런 흠집을 갖고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이 얼어드는듯 했다. 은영의 눈길이 흉한 상처흠집에 가닿자 림호는 미간을 찡기며 낮게 말했다.

《편지를 읽고 빨리 준비하십시오. 우린 밤차로 떠나야 합니다.》

《그럼 림호씨와 같이?》

《같이 가야 합니다. 아버님이 부탁했는걸요.》

《?…》

아버지의 분부라면 언제 한번 마다해본 일이 없는 은영이였다. 편지를 받아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맙시사! 이런 사람과 같이 가야만 한단 말인가?… 틀림없이 무덤속에서 나온 사람이야. 그런 냄새가 나!… 은영은 편지를 읽을 생각도 못했다. 이런 사람과 같이 먼길을 갈바엔 도깨비한테 홀려가는편이 훨씬 나을것이다.

《그럼》 하고 림호가 말했다. 《세시간후 다시 오겠습니다.》

그가 중절모를 약간 들었다놓으며 돌아서는 순간 은영은 짧게 깎은 그의 머리를, 깎았다기보다 이제 겨우 끄트머리를 내밀고있는 머리칼을 띄여보았다. 다시금 가슴이 서늘해지는것을 느꼈다. 언제 한번 해빛을 받아본적이 없는것 같은 되박머리에 금시 새 머리칼이 돋고있는것이였다. 파아란 정맥이 툭툭 불거져있는 이마, 우묵하게 패운 눈확, 생각만 해도 으쓸해지는 무서운 암흑세계에서 온 사람이 분명하였다.

그가 멀리 사라졌을 때에야 은영은 편지를 읽었다.

 

은영이 보아라.

당장 서울로 돌아오너라. 이 편지를 가지고가는 사람은 림호라는 청년인데 친오빠처럼 믿어도 된다.

우리 온 가족은 지금 서울에 와있다. 김제식선생이 너를 부른다. 가정교사로 받겠다 하니 리화녀전도 계속 다닐수 있을것 같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지체말고 곧 떠나도록 해라.

                                소화19년 10월 3일 아버지 씀.

 

그것이 전부였다. 은영은 몇번이고 편지를 읽고읽으며 한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서울로 돌아갈수 있다는것 그리고 리화녀전을 계속 다닐수 있다는 생각에 림호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있었다.

 

한밤중의 펑티엔(봉천)역은 어물시장처럼 소란스러웠다. 무개화차에서 쏟아져내린 일본군병졸들이 대렬을 짓느라고 야단이였다. 총가목이 부딪치는 소리와 구령소리, 군화발자국소리가 어지럽게 울리고 째지는듯 한 호각소리에 개찰구를 나선 려객들속에서 바스라지게 울어대는 어린애의 목갈린 소리까지 섞이였다. 그 모든 소음을 짓누르며 음울하게 울부짖는 기적소리에 외롭게 밤을 지키던 전등불들이 불안스럽게 껌벅이였다.

란장판이였다. 남들보다 먼저 홈에 나선 사람들은 갖가지 보짐이며 고리짝들, 트렁크들을 량손에 들고 어깨에 메고 방금 들어선 렬차에 기여오르느라고 법석이였다. 억양이 센 중국말의 회오리속에 일본말, 조선말, 백계로씨야인들의 혀를 굴리는 소리까지 한데 어울려 국제시장에 들어선듯 하였다. 밤차인데다 완행이여서 하바닥인생들이 대부분이였다.

은영은 림호가 잡아끄는대로 붐비는 사람들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림호는 한손에 은영이의 자그마한 가죽트렁크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그 녀자의 팔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있었다.

두달전 은영이 《오케》레코드사순회대를 떠나보낼 때만 하여도 이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두달새에 무엇인가 달라진것이 많았다. 아버지가 편지에 시국이 어수선하다고 한것이 우연치 않았다. 사람들에게 떠박질리우고 밀치우며 저 역시 남들을 밀어내고 쥐여당기며 차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럴 때엔 모두가 한본새로 되기마련이다. 비로소 자리잡고앉자 림호는 말하였다.

《창가는 위험합니다. 나와 자릴 바꿉시다.》

은영은 말없이 시키는대로 했다. 지금까지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했을뿐이였다. 림호 역시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꺼내지 않았다. 기차가 떠난 후에야 은영은 꼭 묻고싶었던 말을 꺼냈다.

《저… 김제식선생이란 어떤분이세요?》

《김규식선생의 동생되는분입니다.》

《?…》

은영은 다시 한동안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하지만 또 힘들게 입을 열지 않을수 없었다.

《김규식이란분은요?》

그때에야 림호는 은영이 음악의 세계만을 방황하는 순진한 처녀라는것을 상기한것 같았다.

《상하이(상해)림시정부라는 말을 들어보신 일이 있습니까?》

《예.》

《지금은 상하이가 아니라 충칭(중경)에 있는데 그 정부각료들중의 한사람입니다. 김구, 김규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고보면 김규식이라는 이름도 낯설지 않았다. 김규식, 김제식…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보면 알게 될것을…

그때부터 그들은 오래도록 침묵을 지키며 제 생각에만 묻혀있었다. 레루이음짬을 타고넘는 단조로운 덜컹소리, 소란스러운 손님들의 객담과 싱갱이질, 승무경관의 짐검사… 침묵이 얼마나 고달픈것인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는가싶었다. 낯모르는 손님이라면 아무 상관도 없으련만 아버지가 친오빠처럼 믿으라고 한 동행자를 옆에 두고 입다물기경기라도 하듯이 장시간을 보낸다는것은 힘겨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어떤 우연한 일만 아니라면 그들은 끝까지 곁을 주지 않고 길고긴 려정을 무료하게 갔을런지도 모른다. 기차가 두번째 역에 머물렀다가 떠날 때였다. 새로 오른 손님들이 자리를 찾으며 지나가는데 승마복바지를 입고 코밑수염을 기른 사람이 림호를 눈여겨보면서 지나쳤으나 웬일인지 다시 돌따서 다가왔다.

《이게 누구요?!》 그 코수염쟁이가 조끼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며 반갑게 말했다. 《정말 오래간만이요. 난 당신이 감옥에서 잘못되였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 한경세형사님! 난 당신이 고등계주임으로 승급한다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요?…》

《여전하군.》

《무슨 말씀인지?…》

《재치있게 롱을 하는 솜씨말이요. 림호라는 사람은 살아있고 내가 제일 믿던 변절자가 대신 죽었다 그 말이겠지?》

두사람은 비양과 조롱의 입씨름을 시작했다. 이미전부터 그렇게 하는데 습관되여있은듯 했다.

《다행이요. 당신같이 총명한 사람이 죽어서야 안되지. 응?》

《고맙습니다.》

한경세가 담배를 권했으나 림호는 사양했다. 한경세는 소리없이 싸늘하게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 감옥밥을 몇년 먹었소?》

《덕분에 한 3년쯤…》

괴이한 상봉이였다. 림호는 자리도 권하지 않았다. 한경세도 응당 그러리라고 여긴듯 걸상모서리에 불편하게 몸을 기대고 마주서있었다. 손에 든 담배를 연송 손가락으로 두드리는것이 심사가 불편한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끝없이 담배재를 터는 습관이 있는것 같다. 한모금 빨고 열번나마 재를 터는 그의 손가락, 아니 그 두번째 손가락끝이 뭉청 잘려버린것이 눈에 띄였다. 손톱이 빠져있는 그 손가락이 웬일인지 징글스럽고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한경세의 날카로운 눈빛 역시 마치 자석에라도 끌린듯 은영이를 견주고있었다. 몇번이고 곁눈질해보더니 매우 친절하게 중절모를 벗어들었다.

《아가씨, 곁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시죠.》

은영이 자리를 좁히려 했으나 림호가 슬그머니 잡아당겼다.

《형사님이야 어떻게.》 하고 림호는 깍듯이 례의를 차려 말했다.

《이런 비좁은 자리에 앉아 가시겠습니까! 1등칸으로 가시던 길이겠는데…》

한경세의 눈빛에서 독이 풍겼다. 한순간 말없이 쏘아보더니 또 한번 싸늘하게 웃었다. 소리없는 그 웃음, 코밑수염이 쫑긋거리는 그 살가운 웃음에 은영은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다. 하여 어느새 자리를 좁혀 옆으로 비켜앉았다.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예쁜 아가씨.》

다시금 중절모를 잡았다놓으며 한경세는 그들사이에 비집고앉았다. 한동안 무시무시한 침묵이 흘렀다. 맞은편에 앉은 중국인 늙은이가 대통에 꾹꾹 다진 독한 써레기에 불을 달더니 싯누런 연기를 무심코 앞으로 뿜어대였다. 조선말을 모르는 늙은이여서 맞은편에서 주고받는 말엔 애당초 귀도 기울이지 않고있었다. 한경세가 은영이에게 날아오는 담배연기를 손으로 휘저으며 친절을 표시했다. 그럴수록 은영은 몸을 사리며 비좁은 구석쪽으로 자꾸만 파고들었다.

림호가 참다 못해 가래끓는 소리를 내였다.

《이렇게 형사님을 만날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나 역시.》 한경세가 받았다. 《그런데 이쪽엔 왜 왔소? 누구와 선을 맺으러 온건 아니요?》

《아니. 아가씨를 서울로 데려가려구…》

《아, 이 아가씨?!…》

한경세의 눈길이 은영이의 얼굴을, 상큼한 목과 가슴노리를 슬쩍 더듬었다. 은영은 짜릿한 전률이 온몸을 불로 지지는것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가슴을 더듬고 옷을 벗기는것처럼 느껴지는것이였다. 그자가 여전히 코수염을 비다듬으며 지꿎게, 로골적인 굶주린 눈길로 살피는데엔 견딜수 없었다. 어망결에 가느다란 흐느낌소리가 새여나왔다.

림호가 불안해하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형사님은 왜 여기로 오셨는가요? 혹시 나를 묶어가려고 온건 아닌가요?》

한경세가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그자는 대답대신 례의 그 싸늘한 웃음을 떠올릴뿐이였다. 불안스러운 침묵, 차바퀴소리가 커졌다. 은영은 가슴을 조이며 제발 림호가 형사를 더이상 건드리지 않기를 빌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것만 같았다. 조선인 두 남녀를 총창으로 찔러죽이던 헌병장교의 사납게 이지러진 낯짝이 눈앞에서 언듯거렸다. 시꺼먼 차창밖으로는 허연 증기발이 언듯거리고…

《요즘 말이요.》 마침내 한경세가 림호의 귀에 대고 하는 말이였다. 《일본사람들속에서는 조선의 독립운동자들을 감옥에 쓸어넣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늘어나고있소. 데모현장에서 기관총으로 쭉 밀어버리는게 낫다고 말이요. 감옥에 걷어넣으니 얼마나 불편한가! 법률상으로는 사형을 구형하기가 힘들어 공밥만 먹이지 그러는새면 당신같은 풋내기까지 펀펀하게 살아남아서 제법 주의자냄새를 피우게 되거던, 그렇지 않소?》

《부끄럽군요. 나한테서도 주의자냄새가 난다니.…》

밤이 깊었다. 차칸엔 담배연기가 꽉 차있었다. 천정에 매단 전등이 거물거물해졌다. 왁자하니 떠들던 사람들도 지쳐버려 저저마끔 구겨박히며 잠을 청하고있었다. 그러자 한경세와 림호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주의하라구. 다시 내 손에 걸려들면…》

《알고있습니다. 형사님 솜씨를!》

한경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은영은 그자가 수갑이나 족쇄를 꺼낼듯이 생각되여 저도 모르게 따라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림호가 먼저 일어나며 형사와 마주섰다. 그들은 마치 작별을 아쉬워하는 친구들처럼 가까이 마주보며 수군거렸다. 은영은 가까스로 그들이 하는 말을 가려들었다.

《다시 만나지 않도록 하라구.》

《예, 형사님.》

《그럼 잘 가시오.》

《고맙습니다.》

마주보는 눈빛은 서리발치듯 날카롭고 싸늘했다. 다시 만나는 그날엔 추호도 용서치 않는 피비린 격투가 벌어질것이다. 한경세는 나타나던 때처럼 소리없이 사라졌다.

기적소리가 울렸다. 가을밤의 광야를 질주하는 증기기관차의 목갈린 절규, 무엇을 절규하는것일가. 은영은 몸이 떨려 견딜수 없었다. 목소리까지 떨리고있다.

《그 형사가 림호씨를 따른게 아닐가요?》

《아니, 그럴수 없습니다.》

《왜요?》

《형사가 따라다닐만 한 인물이 못되니까요. 방금 그자가 하는 말을 못 들었습니까. 시위나 하구 고함이나 지른게 고작이였지요. 그래서 주의자냄새를 피운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

그의 말을 들으며 은영은 얼마전에 있은 끔찍한 학살을 또 상기하였다. 왜놈들이 말꼬리에 비끄러매여 끌어다 학살했던 녀인과 청년, 그들은 무엇을 하였을가. 형사가 말하던 법률상의 사형이 그들에게는 적용되였던것이다. 혹시 그들은 총을 들고 싸운 사람들은 아니였을가?… 왜놈들의 법에는 살인자만을 사형한다고 씌여있다고 한다. 그래서 3. 1인민봉기때 놈들은 시위자들은 법에 걸어 사형을 구형할수 없으므로 감옥이 아니라 바로 시위가 벌어지는 길바닥에서, 법정의 밖에서 칼로 찌르고 총을 란사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학살하였던것이다. 그러한 살륙의 내막을 언젠가 아버지가 손님과 말하는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러면 감옥에 갇혀있은것이 분명한 림호는 무엇을 하였을가. 아버지와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되였고?…

많은것을 묻고싶었다. 첫 인상에 무덤굴속에서 나온것 같던 이 침울한 사람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싶었다. 인제는 그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것이 안타까왔다. 감옥에는 왜 갇혔으며 변절자요 뭐요 한 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를 알고싶었다. 그러나 림호는 중절모를 눈가장자리에까지 푹 내리고 잠을 청하고있었다. 아니면 어둡고 무서운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고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이 사람은 모질고 드셀것이다. 지금은 정중한 태도를 취하고있으나 격하기만 하면 칼날처럼 서리찰것이다. 이런 사람을 아버지는 친오빠처럼 믿으라고 하였으니 과연 아버지는 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가?…

불현듯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사실 아버지는 도박이나 술에 미쳐돌아갈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술판에 불리워가서 륙자배기를 건드러지게 넘기는 활량이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매일밤 남포등밑에서 밤을 밝히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은영이조차 아버지가 무얼 쓰시는지 알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저 장사밑천을 불어먹고는 또 도강증을 얻으려 경찰들에게 빌붙는줄로만 알았을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엇때문에 두만강을 건느군 했을가. 혹시 아버지도 이들 주의자들과 같은 길을 가고있은것은 아닐가?…

처음으로 은영의 머리속에 갈마든 생각이였다. 스물두해째 살아오면서 아버지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있었다는것이 놀랍기만 했다.

여전히 기차는 캄캄한 어둠속을 꿰지르며 숨가삐 달리고있었다. 도중역들에서 멎어서는 일도 많지 않았다. 통화역으로 가까이 갈수록 우중충하게 솟아있는 험준한 산발들이 덮치듯 가까이 마주왔다. 인제는 자주 깊은 산협을 꿰지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렇게 또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자지러지는 총소리와 함께 말탄 사람들이 창밖에서 언듯거렸다. 급작스레 커지는 고함소리, 총소리, 말투레질소리에 차안의 사람들이 잠에서 깨여나 웅성거렸다. 레루를 긁어대는 아츠러운 쇠소리와 더불어 세찬 증기발이 창밖으로 날아갔다. 기차가 멎고있는것이였다.

《내다보지 마시오!》 은영이 허리를 펴고 창가로 다가서려는것을 림호가 몸으로 막았다. 《위험합니다.》

《무슨 일일가요, 예?》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차가 멎자 말탄 사람의 낯짝이 창유리에 비쳐졌다. 빤빤머리에 하얀 녀자수건을 목에 두른 사나이였다. 차안의 동정을 살피며 히물히물 웃고있는데 창유리에 바싹 붙어 얼굴이 납작해졌으므로 오싹해질 정도로 괴이하고 흉물스럽게 보이였다. 은영은 소스라치며 림호의 잔등뒤에 머리를 박았다. 왜놈헌병장교가 군도를 빼들고 위협할 때에도 이처럼 기겁하여 틀어박지는 않았다. 사실 그때에는 무고한 수미와 사람들을 지켜보려는 용기도 있었다. 하지만 끓는 물에 튀겨낸 도야지같이 허여멀쑥하고 납작해진 그 사나이의 음흉하게 웃고있는 징그러운 낯짝에는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다. 녀자들은 칼부림을 하는 군경보다도 흉측스러운 저런자들을 더 무서워하는것이다.

림호가 낮게 속삭이였다.

《무서워마십시오. 내가 있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피로써 막아주고 지켜주리라는 마음이 그의 굳센 목소리에서 울리고있었다.

탕!- 총소리가 울렸다. 바로 창밖의 흉물스러운 사나이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공중에 대고 쏘아대는것이였다. 탕- 탕!-

저도모르게 혀를 깨무는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림호가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은영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오직 뼈마디가 앙상한 림호의 잔등에만 매달려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어데선가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가 나고 고함소리며 총소리가 뒤따랐다. 하지만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적소리가 울리고 다시 기차는 칙- 칙- 세차게 증기발을 뿜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허리를 펴고 어떤 사람은 창밖을 살펴보기도 했다. 말탄 사람들의 시꺼먼 형태가 구름속을 떠가듯 멀리 어둠속으로 사라지는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왁작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뭐라구 하지요?》 아직도 속이 떨려 흐느끼듯 하며 은영이 물었다. 《무슨 일이 또 있는게 아녜요?》

림호는 중국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토비들이라구 합니다. 요새 토비들이 자주 출몰한다구요.》

《토비들?!》

《기차에서 무슨 짐을 내리는가 봅니다. 헌데 왜놈들은 그러는줄 뻔히 알면서도 눈을 감아준다지 않습니까.》

《예?!…》

놀라와하는 은영의 표정에 림호는 주를 달았다.

《왜놈들이 망할 때가 됐습니다. 토비들까지 써먹게 됐으니…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은영이만은 알지 못하고있다. 도대체 왜놈들이 언제, 어떻게 망한다는것일가. 비적소탕을 한다고 떠들면서도 《공비》들은 즉석에서 총창으로 찔러죽이고 《토비》들은 눈감아준다 하니 이것은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가?… 모르는것이 너무도 많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은영이 음악만을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새에 세상은 많이도 변해가고있는것이였다.

《은영씨.》 림호가 머리를 돌려 보고있었다. 《지금까진 너무 곁을 주지 않아 묻지 못했는데 은영씬 왜 여기로 왔습니까? 이 먼데까지…》

《돈을 벌려구요. 그다음 리화녀전을 마저 다니고싶었어요.》

림호는 의아해하며 서울에서도 돈을 벌기 위한 길은 얼마든지 있지 않는가고 했다. 자기가 알건대 10년전에 창설되였으나 지금 경영난에 허덕이는 경성교향악단에서도 재능있는 가수를 물색중이고 여러 극단, 흥행단들도 김은영이라면 대환영일것이라고.

《그럴수 있겠지요.》 은영은 가느다랗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난 아직 노래부를줄 몰라요. 이건 채옥선생이… 참 그런 고마운분이 있었어요. 그 선생이 한 말이지만… 나도 그렇게 느끼는걸요.》

《노래부를줄 모른다구요?》

《예. 어리석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예술을 하리라고 자신해왔는데… 왜 이럴가요. 난 아직 성악가로서의 나자신은 발견하지 못했어요. 바로 나 김은영을!…》

《놀랍습니다. 그리구… 그 말이 참 마음에 듭니다.》

《그건 왜요?》

《누구든 자기를 알게 될 때 비로소 현명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

그것 역시 좋은 말이다.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의미깊은 말임에는 틀림없다. 자기를 알게 될 때 비로소 현명해진다!… 은영은 생각에 잠겼다. 어인 일인지 문득 《오케》레코드사와 수미가 상기되였다. 바로 그네들도 은영이 자기를 알도록 도와주지 않았던가! 그들의 고달픈 순방, 술에라도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수미의 불행, 그네들을 보면서 은영은 자기의 꿈이 얼마나 순진했는가를 통절하게 느꼈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영은 지금도 리화녀전에만 모든 기대를 걸고있으니… 어리석지 않은가, 이 처녀는?!…

《은영씬 꿈꾸는듯 한 눈을 가지고있습니다.》 림호가 하는 말이였다. 《그 눈은 지금도 웃고있군요.》

그가 이 말을 침울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첨기어린 속된 말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웃고있다구요? 실은 나자신을 비웃고있었는데요.》

림호는 머리를 기웃하였다. 은영이 덧붙였다.

《정말이예요.》

《꿈을 꾸십시오. 꿈마저 잃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림호의 얼굴은 백살을 넘어 산 도사와 같은 표정이였다.

《그런데 난… 자살할 생각까지 했댔습니다.》

《?…》

《아까 한경세형사와 하던 말이 생각나십니까. 변절자를 두고 하던 말… 한때 나는 독서회사건에 관여한 청년들을 밀고했다는 루명을 쓰게 됐는데… 억울하지만 해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룽징(룡정)에서 있은 일이지요. 나는 변절자로 몰려 동지들의 손에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막부득이해서 자살할 결심까지 했던건데… 그때 마침》 하고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바로 은영씨 아버님이…》

《예?!》

《그렇습니다. 부친님이 도와주었습니다. 진짜 변절자를 밝혀냈지요.》

《아버지가?!》

차바퀴소리가 쿵쿵 흉벽을 때렸다. 비로소 모든것이 리해되였다. 고향을 떠나 쉴새없이 두만강을 넘나들던 아버지, 소득이 없는 장사 그리고 교회합창단의 지휘자, 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교원으로부터 소작농으로 돌아앉는 등 종잡기 어렵던 변동과 가산을 팔며 미쳐돌아가던 도박… 그리고 종적없이 자취를 감추었던 아버지가 지금은 일가식솔을 거느리고 서울에까지 올라온 사연이… 그래서 아버진 이 사람을 친오빠처럼 믿어도 된다고 하셨구나!… 옥에서 나온 이 침울하고 감때사나운 사람을…

《마저 말해주세요.》 은영은 말라드는 입술을 감빨며 낮게 그리고 재빨리 속삭이였다. 《그래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다구요?》

림호의 우묵한 눈확속에서 불빛이 흔들렸다.

《이제 다 알게 됩니다. 아직 그 이상은… 더 묻지 마십시오. 그건 그렇고… 참 은영씨, 한가지 부탁하고싶은데… 어련하겠소만 절대 꿈을 잃지 마십시오. 지금처럼 늘 꿈을 꾸며 사십시오.》

《?!…》

고무적인 그 말의 의미를 새겨보며 은영은 머리를 수그렸다.

다음날 새벽 기차는 단동역에 들어섰다. 압록강의 북쪽기슭이다. 강을 가로지른 철다리를 넘어서면 신의주… 수난의 조국땅이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창밖으로 눈길을 옮겼다. 이제 거기서는 무슨 일이 우릴 기다리고있을가?…

날이 밝을무렵이였다. 희미한 새벽이 창유리에 파르스름하게 스며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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