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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번째로 수미를 만난것은 그때부터 거의 10년 세월이 흘러간 뒤였다. 그게 아마 해방되기 전해였으니까… 그래, 1944년 가을이였지. 그때 난 중국동북의 펑티엔(봉천)에 가있었는데… 참, 지금의 선양(심양)을 그땐 펑티엔이라구 했단다. 난 거기 선린녀중에서 음악교원을 했구나. 왜 중국에까지 갔는지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그럴만 한 사정이 있었지. 서울리화녀전에 다니다가 학비를 댈수 없어 중퇴했는데 마침 박정화라는 동창생이 부모를 따라 거기 펑티엔에 가있다가 나에 대한 소식을 듣고 편지를 보내오지 않았겠니. 《빨리 펑티엔으로 오라. 여기서 음악을 가르칠 녀교원이 없어 애를 먹고있는데 적임자만 나서면 보수도 후하게 주겠다는구나.》 하고 말이지. 그래서 국경을 넘어 펑티엔에까지 갔던거야.

미리 말해두지만 선린녀중에는 일본인녀학생들과 중국인녀학생들이 절대다수였구 조선사람은 거의나 없었다. 수업은 일본말루 하구… 그래도 보수가 후해서 빨리 돈을 벌어 리화녀전을 마저 다닐 생각으로 쉬지 않고 수업을 했지. 인기도 있었단다. 일본군장교들과 만저우국(만주국)의 관리들도 나를 보면 깍듯이 인사를 하지 않겠니. 학생들이 집에 가서 자기네 녀선생을 무척 자랑했던 모양이지. 펑티엔시의 다른 중학교들에서도 나를 데려가려구 무던히도 유혹하더구나. 내 속생각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벌써 많은 흥행사들이 내게 눈독을 들이고 꼬여가려 했지만 그 모든걸 거절해왔다는걸 그네들이 어떻게 알수 있었겠니. 그때만 해도 난 공부를 마저 하고서 세계적인 가수가 될 생각뿐이였어. 아버지나 채옥선생도 그걸 바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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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의 총포성이 대륙을 뒤흔들던 때였다. 그러나 은영에게는 그 무시무시한 굉음도 대수롭지 않았다. 거리를 질주하는 일본군의 포차들이며 신문과 방송들에서 목터지게 부르짖는 태평양상의 무서운 해전들과 일본군의 장렬한 전몰에 대한 소식에도 아예 귀를 막고있었다. 처녀의 마음속에서는 오직 세계명곡들만이 할머니의 옛말에서 나오는 골짜기의 외딴집 불빛처럼 껌벅껌벅 눈짓하며 불러줄뿐이였다. 처녀는 그 불빛을 가슴가득히 마시며 꿈을 꾸고있었다.

바로 그때 박수미와 다시 만났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였다. 은영은 《오케》레코드사의 순회대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명짜한 흥행사 리철사장이 설립한 《오케》레코드사, 녀가수 리란영으로 하여 더욱 이름을 날린 그들의 공연을 은영은 서울리화녀전을 다닐 때 한번 보았었다. 그러나 그들이 멀고 먼 동북에까지 찾아왔다는것이 더없이 놀랍고 기뻤다.

당시 우리 나라에는 약 200개의 크고 작은 상설극장이 있었는데 이 극장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개 지역 즉 령남지방(경상남북도), 호남지방(전라남북도), 서선지구(평안남북도와 황해도), 북선지구(함경남북도)로 흥행지역을 구분하였다. 이 지역마다 전문흥행사로 불리우는 중간업자들이 있어서 1937년 10월 이후 일제총독부가 외국영화수입을 금지시킴에 따라 극장무대들에는 영화보다도 악극, 연극, 창극들이 위주가 되여 공연되였다. 그리하여 《오케》레코드사를 비롯한 《빅라》, 《프리톨》, 《콜럼비아》 등의 이름을 단 레코드사들이 1940년대부터는 동북지방의 퉁징(룡정)과 옌지(연길), 훈춘, 무단강(목단강)을 비롯하여 베이징과 상하이(상해)에까지 동포들을 찾아 순회공연을 시작하였다.

《오케》레코드사도 《오케그랜드쇼단》이라는 이름으로 동북각지를 돌다가 펑티엔(봉천)에까지 이른것이였다.

은영이 도착했을 때 순회대는 탄광지구의 펑퍼짐한 둔덕아래에 대형천막을 치고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잔뜩 흐려지기 시작했다. 먹장구름이 몰려들고 하늘가 한끝에서 번개불이 펑끗거리며 우뢰질을 했다. 시꺼먼 먼지타래가 하늘중천으로 날아오르는데 어느새 굵다란 비방울이 먼지 오른 풀잎들을 짓뭉개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린근의 조선사람들은 죄다 모여오는듯 했다. 중국사람들도 많았다. 때아닌 우뢰질에 주먹질을 하며 험한 욕설을 퍼붓고있는 사람도 있었다. 변덕스러운 하늘에 저주를 퍼붓는것 같았다.

매표가 시작될무렵에야 비가 그쳤다. 천막안에서는 바이올린이며 기타, 클라리네트 등 악기들이 조음을 하고있었다. 은영은 저도 모르게 무대로 정해진 천막의 뒤쪽으로 끌려갔다.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무심히 들을수 없는 관현악의 울림이였다. 비록 악기편성은 설피여 보잘나위 없어도 그래도 그곳에서는 관현악이 울리고있는것이다. 그리고 모든 음악가들이 그러하듯 은영이 역시 악기들이 조음하는것을 듣느라면 짜릿한 흥분에 몸이 떨리는것을 느끼군 했다. 그것은 이제 듣게 될 음악에 대한 크나큰 기대와 희망이기도 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있는데 갑자기 천막을 들치고 나서던 녀자가 은영을 보더니 못박힌듯 멎어섰다.

《어머!-》

은영이도 굳어졌다. 박수미였던것이다. 약간 치째진듯 한 파아란 두눈으로 불같이 지지며 마주보는 녀자, 10년전 그날의 나비같던 모습은 거의나 남아있지 않았지만 은영은 대뜸 알아보았다. 《수미!》하는 부르짖음이 어느새 터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수미는 은영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녀자가 멎어선것은 전혀 다른 리유에서였다. 파란 빛이 도는 눈빛으로 재빨리 은영이의 아래우를 훑어보며 수미는 감탄하듯 말하였다.

《어쩌문!… 곱기두 해라.》

《?…》

은영은 입을 다물었다. 얼싸안을듯 내밀려던 두팔이 아프게 가드라들었다.

《아씬 왜 왔어요?》

수미가 묻는 말이였다. 《혹시… 우리 쇼단(공연단체)에 들어오자는건 아닐테지요?》

《…》

수미는 또다시 그의 아래우를 재빨리 훑었다. 그 눈빛에는 가시처럼 찌르는 살가운데가 있었다.

《내 이름은 수미예요. 박수미.》

이렇게 무심히 뇌까리고나서 그 녀자는 은영의 저고리를 만져보았다.

《이 옷은 어데서 지었어요?… 수수하지만 잘 어울려.》

그새 수미는 괴퍅스러운 녀자처럼 변해있었다. 순수하고 정겹던 그 시절의 맵시나던 소녀애가 더는 아니였다. 은영은 의아쩍은 미소와 함께 추위를 타는것처럼 어깨를 옹송그렸다. 그러자 수미는 그의 두눈을 들여다보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는것이였다.

《불행할거야. 너무 곱게 생겼어요. 그런데 옷입은걸 봐선…》

그 녀자의 모든 관심은 은영의 옷차림에만 쏠려있는듯 했다. 애써 가난의 흔적을 찾아보려했는지도 모른다. 천박한 녀자들일수록 고운 녀자를 상대할 때면 자기보다 못한 점을 발견해낼 때까지 마음놓지 못하고 안달복달하는 법이니까.…

그날 은영은 조선옷치마저고리에 색이 바랜 회색코트를 입고 갔었다. 그와 마주선 수미는 살갗까지 비치는 타이쯔(발레무용복)를 입은 우에 랭기를 막느라고 부인용 두루마기를 걸치고있었다. 무대에서라면 몰라도 야외에서는 보기가 좀 거북스러운 차림이였다. 하지만 수미는 그런데엔 전혀 개의치 않는듯 했다.

《여기 사는지 오래 됐어요?》 수미가 물었다.

《아니요. 이제 겨우…》

은영은 미처 말끝을 맺을수 없었다.

《결혼했어요?》

《?!…》

《필요없어요. 결혼이란 멍에를 지는거니까. 그건 그렇고… 우리 쇼단에 들어올 생각이면 내가 말해주겠어. 사장한테…》

《사장님은 나도 알아요.》

《그-래요?!》

다음 순간 수미는 은영이 입고있는 치마를 들어올렸다.

《어머! 다리도 참!… 이렇게 매츨하구 미끈하다구야! 꼭 대리석으로 깎아낸것 같군요.…》

순간 은영은 파랗게 질리며 휘파람소리같이 흐느끼였다. 수미의 손목을 뿌리치며 가늘게 부르짖었다.

《미치지 않았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수미가 암상스럽게 깔깔거리는것이였다.

《맘에 들어요. 얌전데긴줄 알았는데 매섭기란!…》

이윽고 웃음을 그치며 수미는 속삭이듯 말했다.

《예쁜 아가씨, 나랑 같이 있지 않겠어요?》

은영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이런 수미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어인 일인지 쓸쓸한 느낌에 목이 잠기는듯 했다. 그러자 수미는 코웃음쳤다.

《내가 공연하는걸 보면 맘이 변할거야.》

이번에도 수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은영의 아래우를 훑어보고 머리를 젓더니 천막안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은영은 마치 꿈을 꾸고난것만 같았다. 여기서 수미를 만난것은 분명 꿈에서 있은 일만 같았다.

사람들이 천막안으로 쓸어들고있었다. 젊은이, 늙은이, 아낙네들, 엄마잔등에 업혀 칭얼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잠시 한자리에 박혀있던 은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공연에 대한 흥미도 시들해져서 서두르고싶지 않았다. 가슴을 허비는 아쉬움과 까닭모를 슬픔에 잠겨 앞자리를 놓칠가봐 부스대는 사람들의 뒤를 마지 못해 시진하게 따라서고있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돌연 무시무시한 소음이 귀청을 두드렸다. 말발굽소리였다. 머리를 홱 돌린 은영은 말탄 일본군들이 무섭게 빠른 구보로 달려오고있는것을 보았다. 코구멍을 푸룩거리며 두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오는 말들의 편자를 친 발굽이 금시 사람들을 짓뭉개버릴듯 덮쳐들고있었다. 잠시후 한개 소대쯤 되는 일본군이 천막을 친 등성이밑을 빙 둘러쌌다. 뒤늦게 달려온 황부루가 앞발을 높이 들고 곤두섰다. 말탄 헌병장교가 옆구리에 찬 군도를 절컥거리며 무어라고 웨쳤는데 누렇게 뜬 얼굴이 잔뜩 이즈러져있었다. 은영은 그 헌병장교의 찢어지는듯 한 어성으로써 무서운 일이 벌어지리라는것을 예감하였다.

《몽땅 끌어냇. 빨리 빨리!》

그러자 사방에서 아우성소리가 터졌다. 채찍소리가 아츠럽게 허공을 찢으며 울부짖었다. 왜놈들이 구경군들은 물론 순회대의 배우들까지 한곳에 끌어내기 시작한것이였다. 은영은 누군가를 따라 허둥지둥 내달렸다. 천만다행으로 《오케》레코드사의 배우들속에 우연히 끼여들어 무서운 채찍세례는 피할수 있었다.

방금 비가 퍼부어진 뒤여서 매캐한 먼지냄새와 말들의 비릿한 땀내로 속이 메슥메슥해졌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구경군들한테 달려드는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얼마후에야 모든것이 명백해졌다. 왜놈들이 말꼬리에 비끄러맨 남녀 두사람을 끌어온것이였다. 나이 지숙한 녀인과 몸이 강마른 젊은이였다.

왁짝하니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실로 처참한 광경이였다.

바줄에 묶여온 녀인과 청년은 조선사람들이였는데 입에는 헝겊을 틀어막고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진 옷소매와 진흙으로 매닥질이 된 맨발에 말라 엉켜있는 피덩이들이 먼저 눈에 띄였다. 특히 녀인의 헝클어진 머리에 가득 붙어있는 짚검불이며 드러난 목덜미에 엇비듬히 가로 질러간 칼자리가 은영을 몸서리치게 했다. 청년의 모습은 더더욱 참혹했다. 피투성이얼굴에서 한쪽귀가 불에 그슬린 나무잎처럼 배배 꼬여있는것이 보였다. 그 청년이 무어라고 소리치는듯 했으나 입에 자갈이 물려있어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만이 가까스로 새여나오고 있었다. 손우의 녀인이 그 청년에게 번뜩이는 눈빛을 던졌다. 모지름쓰는 청년을 나무라는 눈빛 같았다. 그러자 청년은 시꺼먼 얼굴을 이지러뜨리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윽고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군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순간 은영은 몸을 떨며 비틀거렸다. 녀인의 비수같은 눈길이 자기를 쏘아보고있는것이였다. 뒤쪽에 서있던 사람이 붙들어주어서야 제대로 몸을 가눌수있었다. 알고보니 녀인은 은영을 겨누어본것이 아니였다. 그저 그렇게 느껴졌을뿐이였다. 말 못하는 녀인의 눈길은 이미 다른 사람들께로 옮겨져있었다.

일본군헌병장교가 두사람에게로 말을 몰아가며 사납게 소리쳤다.

《이것들은 대일본제국을 반대해나선 공비들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보라. 제국을 반대하는 놈들은 다 이렇게 된다!》

헌병장교가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자주빛의 칼집속에 든 군도를 빼들었다. 다음순간 그자는 말꼬리에 비끄러맨 녀인과 청년의 눈앞에 서리찬 칼날을 번뜩이였다. 군중속에서 비명소리가 파도쳤다. 그러나 칼날은 두사람을 묶고있는 바줄을 뭉청 잘라버렸을뿐이였다. 네댓명의 병졸들이 말에서 뛰여내려 녀인과 청년을 둔덕쪽으로 끌어갔다.

은영의 뒤쪽에서 누군가 부득부득 이를 갈며 말했다.

《저 악독한 왜놈들을 그저!…》

헌병장교의 군도끝이 다시 허공을 찔렀다.

《1등병 오노데라, 1등병 이마니시 앞으로!-》

웅성거리던 군중이 잠잠해졌다. 놈들은 녀인과 청년을 바줄로 두손과 허리를 묶어놓고 바닥에 꿇어앉혀 놓았다.

《짐승같은 놈들!》 뒤쪽의 사나이가 여전히 이를 갈며 부르짖었다.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끌어왔는지 누가 알겠수. 말도 못하게 하는걸 보지비!》

그 사람은 놈들이 무슨 꿍꿍이짓을 하려는지 알고있는것 같았다.

《저것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수. 저 왜놈의 새끼들!…》

《쉬-》 누군가 옆에서 주의를 주고있었다. 《놈들이 망할 때가 돼오니 더 지랄발광을 하는거라우. 조심하시우. 너무 표나지 않게.》

《놈들이 왜 저들을 여기 끌어왔겠수?》 분노에 찬 뒤사람의 목소리는 계속 되였다. 《구경군들이 모였을 때 총살하자는기 아이요?》

《쉬- 조심하란데…》

바람이 차졌다. 마음이 얼어들었다. 두 병졸이 총창을 꼬나들고 사형수들의 앞으로 나섰다. 그때까지도 은영은 이제 놈들이 저 불쌍한 사람들을 어떻게 하려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뒤사람이 말하듯 총살할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하면서 어느새 후들거리는 손으로 귀를 막고있었다.

헌병장교가 갈개는 말우에서 고삐를 힘껏 당기며 군중을 향해 찢어지는듯 한 소리를 질렀다.

《이것들은 대일본제국이 망한다고 선전하던 놈들이다. 폭동을 선동했단 말이다. 다들 똑바루 들으라.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대일본제국이다. 그따위 선동질이나 해서 제국을 무너뜨릴것 같은가!… 그렇지만 태평양전쟁이 어려운 고비를 겪고있는것만큼 제국은 불온분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하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공비들과 그에 동조하는자 할것없이 현장에서 즉결 처단한다. 알겠는가?… 오늘 그것을 여기서 실지로 보여주겠다.》

그자는 총창을 꼬나들고있는 병졸들을 향해 군도를 휘둘렀다.

《찔러라!-》

그리하여 상상도 못했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두 병졸이 짐승의 울부짖음소리를 지르며 비틀거렸다. 앞으로 나가고있는것이였다.

순간 은영은 머리칼이 곤두서고 등골로 짱!- 하면서 전률이 스쳐가는것을 느꼈다. 금시 심장이 멎어버리는듯 했다. 어쩌자는거야. 정말 어쩌자구 저것들이?… 왜놈병졸들이 앞으로 내뻗친 총창이 파드드 떨리고있는것까지 보였다. 다음순간 은영은 몸서리치는 정경에 얼어붙고말았다. 놈들이 땅바닥에 꿇어앉힌 두사람의 가슴팍에, 배허벅에 총창을 박고있는것을 분간해본것이였다.

눈앞이 새까매졌다. 마비된듯 정적속에서 퍽-하는 소리가 난후 왜놈병졸들이 피에 젖은 총창을 도로 뽑으며 앞으로 쓰러지는 두 사람을 발길로 걷어차는 모양이 마지막으로 눈에 비껴들면서 은영은 모로 비스듬히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심장이 터지고 그속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나오는것을 아슴푸레 느꼈다. 총창에 찔린것은 바로 은영이 자신인것만 같았다.

째지는듯 한 비명과 무서운 흐느낌소리가 끓어번졌지만 은영은 알지 못했다.

누군가 그를 붙들어주면서 울고있는것도 몰랐다. 찬바람을 헉헉 들이마시며 와들와들 떨고만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헌병장교가 소리치고있었다.

《인제는 공연을 해도 된다. 당장 여기서 시작하라. 알겠는가?…》

왜놈병졸들이 순회대의 배우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악사도 있고 가수며 무용수, 지휘자와 막간희극배우도 있었다. 군중속에서 그들을 골라내기는 어렵지 않았으므로 즉시 열댓명이 헌병장교앞으로 끌려나갔다.

《알겠는가?!》

헌병장교가 누렇게 뜬 얼굴을 말대가리앞으로 쑥 내밀며 소리치고있었다.

《당장 공연을 시작하라! 그러되 남방전선에서 피흘리는 황군용사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공비들의 시체를 밟고 노래하고 춤추란 말이다. 알겠는가?!…》

누구도 대답을 못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는 일이여서 배우들은 얼이 빠진 모양으로 입을 항 벌리고있을뿐이였다.

바람이 세차졌다. 싸늘한 바람이 피비린내를 몰아왔다. 그것은 죽음과 무시무시한 공포를 자아내는 냄새였다. 모든 사람들이 흐느껴 울듯이 허덕이였다.

이제 다시금 끔찍한 도살이 벌어지리라는것을 그들은 느끼고있는것이였다.

침묵 또 침묵… 사람들은 물속에 잠겨버린듯 했다. 눈이 멀고 귀가 멀고 입이 얼어붙었다.

헌병장교의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끝내 참지 못하고 그자는 말잔등에서 뛰여내렸다. 곧장 키가 큰 사람앞으로 다가갔다. 하얀 장갑을 낀 그자의 손이 키다리배우의 면상을 후려쳤다. 코피가 쏟아져나왔다. 피를 본 야수는 더 잔혹해진다고 한다. 그자가 칼집에 꽂아놓았던 군도를 다시 빼여들었다.

시퍼런 칼끝을 남자배우의 울대뼈에 들이대면서 그자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공연을 시작하란 말이다. 못들었어?… 저 공비들의 시체를 밟고서서 노래춤을 벌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 하겠어- 못하겠어?!… 말해봐라. 말해봐. 말해봐라- 아!-》

그러나 키다리배우는 망연자실하여 입도 벌리지 못하고있었다. 자기의 목을 찔러대는 시퍼런 칼끝만을 내려다볼뿐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헌병장교의 손에 쥐여있는 군도의 시퍼런 날이 푸들거리는 통에 키 큰 배우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자 그의 옆에 서있던 녀자가 째지는 소리를 질렀다. 수미였다. 헌병장교의 눈길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수미의 아래우를 재빨리 훑고나서 그자가 씨벌이였다.

《음- 네년이 먼저 할테냐?》

수미는 그만 기겁하여 뒤걸음쳤다. 헌병장교의 칼날이 이번엔 수미의 목으로 겨누어졌다. 숨넘어가는 비명!… 사람의 소리라고는 믿을수 없는 새되고 아츠러운 비명이였다.

《그래 할테냐 안할테냐?》 헌병장교도 독이 올라 부르짖고있었다. 《네년을 알몸뚱이로 만들테다. 알몸뚱이로 춤추게 할테다!》

소리도 없는 칼날이 획 반원을 그리자 수미가 걸치고있던 두루마기가 몇쪼각으로 너덜거렸다. 수미역시 키다리배우처럼 얼이 빠졌다. 어망결에 두팔로 헤쳐진 가슴앞섶을 가리려 했다. 그러나 손으로는 칼날을 막을수 없는것이다.

헌병장교는 분명 자기의 칼쓰는 재주를 시위하려는듯 했다. 그자가 또 칼날을 번뜩이자 수미의 타이쯔가 밑으로 쭉 째졌다. 젖가슴에서 새빨간 피방울들이 가느다란 실오리처럼 줄지어 돋아났다. 《악!-》 하는 외마디울부짖음에 운집한 전체군중이 치를 떨었다.

은영은 헌병장교의 성긴 눈섭이 푸들거리는것을 벅찬 공포속에 바라보았다.

이제 그자가 다시한번 군도를 휘두르면… 그것은 상상하기도 끔찍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자, 말해봐.》 헌병장교가 독을 쓰며 고아댔다. 《할테냐, 안할테냐? 말하지 않겠어?》

바로 그때였다.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은영이 헌병장교앞으로 나섰다.

《저… 장교님.》 너무도 속이 떨려 일본말발음이 엉터리로 번져지고있었다.

《장교님, 제- 제가 공연을 하- 하도록 해보겠어요.》

헌병장교의 누렇게 뜬 얼굴이 험악하게 실룩거렸다.

《뭐 네가?… 네년은 누구야?》

《예. 선린녀중에서 음악교원을 하는…》

《선린? 선린이란 말이야?》

《예.》

헌병장교도 선린녀중이 일본인녀학생들이 기본인 학교라는것을 알고있는것 같았다. 은영을 쏘아보던 시퍼런 두눈이 사뭇 껌벅거렸다.

《좋다. 당장 공연을 하게 하라!》

헌병장교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군도를 칼집에 꽂은 후 다시 말잔등에 뛰여올랐다. 사무라이로 악명을 떨친 사이고 다까모리를 그대로 빼여문 놈이였다.

말에 오른 그자는 군중을 에워싼 기병들에게 칼끝같은 시선을 던졌다. 그것 역시 소리없는 구령, 살륙을 의미하는 웨침이였다.

은영은 말탄 왜놈기병들이 일시에 칼자루를 틀어잡는것을 보았다. 헌병장교의 눈짓에 따라 배우이건 구경군이건 누구든 거역하거나 달아나면 칼탕을 치려는 자세였다. 이제 은영이 어떻게 왜놈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가에 따라 그들의 생사가 결정될 판이였다.

은영은 한절반 정신이 나간것 같은 배우들을 둘러보았다. 아직 그는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수미와 배우들이 참변을 당하는것을 잠시나마 막아보려했을뿐이였다. 흉곽이 아프게 조여들다 못해 불에 덴듯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헌병장교의 독오른 메밀눈이 차겁게 번뜩이고 하얀 장갑을 낀 손이 군도를 틀어잡고있는것을 보면서 갑자기 몸을 돌렸다.

《뭐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왔다. 그러나 은영은 아무 대답없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다리가 휘청거리고 혀가 말라들었다. 수백명의 군중이 몸을 떨며 량쪽으로 쭉 갈라졌다. 어떤 녀인은 은영이를 막으려는듯 한손을 쑥 내밀었는데 그만 허공을 그러쥐며 비틀거렸다. 헌병장교가 칼집에서 칼을 쭉 뽑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은영이가 사람들틈을 비집고 달아나버리려 한다고 여긴것 같았다. 그 순간 은영은 몸을 돌려 말우의 헌병장교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장교님, 제가 먼저 노래를 해도 되겠지요?》

《?…》

헌병장교의 볼따구니가 푸들푸들 떨리는것이 알렸다. 한순간 망설이는듯 싶더니 드디여 결심한듯 사납게 으름장을 놓았다.

《좋다. 그런데 저 시체를 밟고 해야 한다. 알겠는가?》

이번에도 은영은 대답대신 둔덕아래쪽으로 걸음을 떼였다.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이 눈앞에 있었다. 질척질척한 땅우에 머리를 틀어박고있는 그들이 두눈을 부릅뜨고 무섭게 절규하는듯 했다. 속이 뒤집히고 두다리가 휘청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눈을 감고 싶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부릅뜬채 굳어져버린 사형수들의 눈이 놓아주지 않았다.

《네가 우리 시체를 밟으며 노랠 하겠다구? 우릴 모욕하겠다구? 조국해방을 위해 싸우다 쓰러진 우리를 짓밟겠다는거야? 더러운 년! 왜놈의 앞잡이같은 년!》

그들은 이렇게 부르짖고있었다. 그 통절한 웨침소리를 은영은 분명히 듣고있었다. 전체 군중도 그렇게 웨치고있었다. 이제 은영은 미치지 않으면 여기서 칼탕을 맞고 죽던가 하는 두길뿐이였다. 내가 왜 여기에 나섰던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단 말인가?… 은영은 무엇때문에 자기가 한 처녀의 몸으로 이 도살장에 나섰는지 도저히 알수 없었다. 그는 조용하고 착하고 깨끗한 처녀로 알려져있었다. 은영이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 말없이 무슨 일이나 시키는대로 깐깐히 깨끗이 끝내군 하였다. 마음속엔 불덩이가 들어있었지만 그것은 엷은 입가에 피여나는 소리없는 미소로 감추어져있었다. 은영은 수다스럽게 지절거리거나 떠들썩 다투는것을 질색하였다. 인생의 모든것, 기쁨과 슬픔은 물론 희망과 고뇌도 노래로써 터치게 되리라고 믿고있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피비린 살륙의 마당에 뛰여든것이다. 인제는 돌아설길도 없다. 운명의 낭떠러지우에 나섰으니 무슨짓이든 해야만 했다. 하여 그는 마음속으로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들께 거듭거듭 용서를 빌었다.

《용서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또 숱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해요. 그래서… 난 당신들을 위해 노래를 부를가 해요. 당신들의 죽음을, 령혼을 위로해서… 그러니 무슨 노랠 부르면 될가요. 예?!…》

왜놈들은 물론 전체 군중이 숨을 죽이고 은영이를 쳐다보고있었다.

드디여 은영은 머리를 높이 들었다. 두사람의 주검이 바로 몇발자국 앞에 있었다. 죽을지언정 차마 참혹한 그 주검들을 밟고 설수는 없다. 그러니 빨리 왜놈장교가 고함치기전에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은영은 여전히 군도를 틀어잡고있는 왜놈장교에게로 재빨리 몸을 돌렸다.

괴괴한 정적, 군중도 왜놈들도 은영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라 숨을 죽였다. 은영은 무엇인가 말을 할것처럼 입을 벌리고는 급기야 헉-헉 찬바람을 가득들이쉬였다. 다음순간 어두워지는 하늘을 우러르며 세찬 바람결에 머리칼을 흩날렸다.

탄광지구의 하늘은 석탄먼지로 얼룩이 져있는듯 거무스레하고 음침했다. 태양은 서산너머로 잠겨버린지 오래였다.

 

오 밝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노래가 시작되였다. 은영이 제일 사랑하는 노래, 리채옥선생이 배워주었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좋아한 노래, 13살 어린 나이에 고향인 회령을 떠나 서울에서 진행된 전국녀중생들의 성악콩클에 참가하여 불렀던 노래, 그것으로 사람들을 놀래우고 촉망되는 미래의 녀가수로 지목받았던 노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었다.

《은영아, 너는 우리 고향의 자랑이구 기쁨이다. 잊지 말아라. 우린 밝은 세상을 바라고 산다. 그 밝은 해빛을 그리며 노랠 하거라.》

 

폭풍이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그때 13살 소녀였던 은영은 그 밝은 세상이 무엇인지 다는 알지 못했으나 모든 고향사람들이 귀기울이며 듣군 하던 그 노래를 끓어오르는 사랑과 희망을 담아 처음 서보는 극장무대에서 불렀었다. 심사석에 앉아있던 나비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일치하게 말한것처럼 그 어린 나이에 류다른 감정세계에 잠겨 특이한 소리색갈과 형상으로 노래했던것이다.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오고

하늘의 밝은 해는 비친다

 

어느새 악사들이 손에 들고있던 악기로 반주를 하고있는것도 그는 알지 못했다. 마음속의 태양만을 보고있었고 그 밝은 해빛을 가슴 가득 공기처럼 빨아들이고있었다.

 

나의 몸엔 사랑의 별

오 나의 태양 비친다

오 나의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은영은 이렇듯 목메여 흐느끼며 노래부른적이 없었다. 환희와 랑만에 찬 이 노래를 눈물속에 심장을 터쳐 노래하리라고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구름장을 뚫고 부채살처럼 해빛을 뿌리는 태양, 나의 태양을 불러보고있었다. 눈물이 가랑가랑한 눈으로 하늘을 향해 두손을 쳐들며 나의 태양을 찾고있었다.

사람들은 숨소리 하나 없이 듣고있다가 저도 모르는새에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왜놈들까지 그 처절하고 목메이는 눈물의 호소에 넋을 잃은듯 했다. 살기에 차있던 놈들이 말고삐를 꽉 잡고 입을 비틀고있다. 헌병장교까지도 놀란듯, 혼미해진듯 누렇게 뜬 얼굴을 찡기며 군도를 쥔 손을 떨고있다.

《오케》레코드사의 유명한 녀가수 리란영과 고복수가 나와서 은영의 량쪽에 붙어섰다.

 

폭풍이 지난후 너 더욱 찬란해

 

은영은 쓰러진 사람들의 피나는 절규를 대신하고싶었다. 지금껏 노래가사의 폭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던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듯 했다.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오고

하늘의 밝은 해는 비친다

 

이렇게 공연이 시작되였다. 아직은 은영이 혼자였지만 상처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기에는 그 노래가 너무도 뜨겁고 숭엄하였다. 오 태양, 나의 태양은 어데 있는가?!… 은영의 노래는 계속되였다. 드디여 피가 즐벅한 땅을 밟고있는 은영의 곁에 순회대의 배우들이 차례로 나와섰다. 리철사장과 박시춘작곡가도 나왔다. 노래의 후렴에서는 그들모두가 따라 불렀다.

 

나의 몸엔 사랑의 별

오 나의 태양 비친다

오 나의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그때 왜놈기마병이 채찍소리도 요란히 말을 달려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뭐라고 보고하자 헌병장교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군도를 칼집에 꽂아넣었다.

《기병소대 날 따랏!》

커다란 두눈을 머룩거리며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말들이 푸루룩거리며 앞발을 높이 들었다. 말들이 투레질하며 네굽을 놓기 시작하자 시꺼먼 흙먼지가 일고 이어 소란스러운 말발굽소리도 아츠러운 채찍소리도 차츰 멀어져갔다.

갑자기 물속과 같은 정적이 깃들었다. 사람들은 귀가 먹먹한 그 정적에서 헤여나려고 헛되이 모지름썼다. 맨처음 입을 열고 새되게 부르짖은것은 바로 칼날에 베여진 타이쯔속에서 피가 말라 붙고있는 젖가슴을 손으로 가리고있던 수미였다.

《은영이, 네가 은영이지? 네가 날 살렸구나!》 수미가 두팔을 벌리며 은영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아깐 왜 몰라봤을가, 내가 눈이 멀었지. 은영이 내 사랑!》

은영은 미처 정신을 차릴새가 없었다. 어느새 그들에게로 군중이 왁 몰려들었다.

《잘했소, 아가씨.》

《이름을 어떻게 부르시오?》

《선린녀중에 있다구 했지야?》

《아씨만 아니였더문 큰일 날번 했구마!》

은영이 무슨 큰일을 했단 말인지?… 사람들이 눈물속에 어루쓸고 목멘 소리로 치하하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키다리배우와 《오케》레코드사의 리철사장도 은영을 얼싸안았다. 하지만 은영은 머리를 흔들며 무엇인가를 찾고있었다. 그들의 눈앞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왜놈들에게 무참하게 학살된 두 남녀의 시체가 있었다. 은영의 눈길이 거기에 멎자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은영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굽혀 치마가 말려올라간 녀인의 허벅지를 가리워주었다.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이렇게 은영은 참혹한 주검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네들의 주검앞에서 과연 내가 한 일이 옳았을가. 내 노래가 그네들을 모독하지 않고 혼을 위로하였을가?…

날이 어두워지면서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멀고 먼 하늘가 한끝에서 무엇인가 번쩍이였다. 소리도 없는 번개, 이제 한바탕 폭우를 쏟을 차비인가?…

사람들이 떨쳐나 희생된 두사람을 정히 싸서 어데론가 떠메고 갔다. 아무도 그들이 어데서 살았고 어데서 왔는지 알지 못했어도 겉옷을 벗어 씌우고 맨발에 고무신이며 미투리일망정 벗어 신기더니 자기네 누이와 오빠처럼 조심스럽게 맞들고 가는것이였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은영은 죽은 사람들과 이 낯모를 탄광지구사람들에 대한 사무치는 련민의 정에 눈굽이 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쓰라린 아픔과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눈물이 핑- 어리는것을 느꼈다. 사람은 슬프거나 기뻐서만 우는것이 아니다. 아픔에 겨워, 그것을 참기 어려워 우는것만도 아니다. 경건한 마음도 눈물로 흐른다.

낯모를 사람들, 죽은 사람들과 산 사람들이 은영이를 울게 하였다. 사무치는 감사의 념과 더불어 이름할수 없는 숙연한 마음이 눈물로 되여 하염없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것이였다.

수미도 그를 붙안고 울고있었다.

《울지 마, 은영이. 난 정말 못견디겠어. 울지 마!》

그들은 서로 꽉 부둥켜안은채 정신없이 소리쳐 울기 시작했다. 《오케》레코드사를 이름떨치게 한 유명한 녀가수 리란영이 눈물속에 노래를 시작한것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사공의 배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시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리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수많은 간데라불들이 그들을 비쳐주고있었다.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전지불들도 둔덕우에 나선 리란영이며 고복수, 장세정, 백년설 등 가수들의 눈물어린 두볼을 따뜻이 더듬었다. 리란영의 남편이며 악단의 지휘자인 김해송의 얼굴도 온통 눈물에 젖어있었다. 방금 처참한 일을 겪은 후여서 만장이 소리내여 흐느끼고있었다. 간데라불들이 사람들의 머리우를, 눈물의 바다를 쉬임없이 노저었다.

은영은 처음 이렇게 목놓아우는듯 했다. 아픔과 슬픔에 겨워 끝없이 울고만싶었다. 리화녀전을 다니면서 흥행악단의 가수들을 천하게 아류로 취급하는 말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그였지만 지금은 이국땅에까지 찾아와 동포들을 울리고있는 그들과 함께 울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또 있다. 목놓아 울지 않으면 안되는 리유가 또 있다.

어이하여 우리에게는 눈물의 노래밖엔 없단 말인가. 희망과 랑만의 노래는 왜 없는것인가?!… 은영은 눈물과 비탄의 노래밖에 없는 동포들의 설음과 아픔이 가슴에 사무쳐와 울고 또 울었다.

버럭산너머 먼곳에서 이따금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비구름이 랭기를 뿜으며 밤하늘을 덮고있었다. 찢어진 구름장사이로 하나 둘 별볓이 가물거리고는 곧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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