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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80돐 독창회에는 오랜 옛지기들과 함께 인민배우, 공훈배우로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진 제자들은 물론 전후복구건설의 벅찬 시기부터 그를 알고있는 사람들, 작가들과 기자들, 새 세대예술인들도 수많이 참가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고진아는 비행장에서 곧장 여기로 차를 달려왔다. 마중나왔던 림현순이 오늘이 바로 어머니의 80돐독창회를 하는 날이라고 하기에 다른 일정은 다 뒤로 미루기로 한것이였다. 미리 정해놓은듯 한 좌석에 자리잡고 앉자 림현순이 객석의 사람들을 한사람한사람 소개해주었다. 로가수 김은영의 제자들인 인민배우 아무개, 공훈배우들인 누구누구 하고 불러댔으나 고진아의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고진아도 잘 아는 사람들, 한때 어머니가 자주 입에 올리던 조련과 한정애를 비롯한 로가수들부터 차례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오늘 독창회의 주인공 김은영의 친척들중에서는 누가 왔는가 하는것에도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진아가 어머니 박수미의 회상속에서 익힌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친척들중에서도 김은영의 막내동생만이 와있었다. 누이와 같이 성악가수로 자라나 인민군협주단에서 가수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영화 및 방송예술단에서 노래하고있다 한다. 전쟁전에 아버지와 같이 학살당한 김일한과 김차한이처럼(이런 사연은 《로동신문》에 상세히 소개되여있었다.) 남달리 특이한 목청을 타고난 그도 인제는 6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라고 한다. 그들의 부모는 많은 자식을 낳아 키웠지만 지금 이 자리에 남은것은 주인공인 김은영이와 김유한 두남매뿐이였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가!… 고진아는 여기에 자기 아버지 고종우와 어머니 박수미도 있었더라면 어떤 극적장면이 벌어졌을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알수 없는 슬픔에 목이 메였다. 갈리진 강토와 갈라진 민족의 아픔이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지는 무대였다. 진정 얼마나 많은 눈물과 고통속에 흘러간 세월이였던가!… 그새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 역시 눈을 감았으니 여기에 진아와 혈연적으로 이어진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는셈이였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갔다. 얼마간 시간이 또 흘렀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뒤늦게야 차를 타고 온 사람들속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로연출가인 박진도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저분이예요.》 림현순이 다부진 체격에 키가 크지 않은 로인을 가리키며 소곤거렸다. 《신문기사에서 봤지요?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 단장을 하던분 말이예요.》

《아, 저분?!》 진아는 어머니가 하던 말을 상기하며 나직이 말하였다. 《백영준이란 사람하구 박진, 그 두분얘길 참 많이 들었어요. 어머니한테서…》

그때 박진은 초대석을 마다하고 무대뒤쪽으로 가고있었다. 백발의 로인답게 천천히 걸어가는 그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가 여기서도 무대지휘를 하려는가고 이상해하는것이였다. 그런데 그는 사회를 맡고있는 녀성방송원을 붙들고 무엇인가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엇을 말했고 무슨 약속을 받아냈는지는 알수 없으나 서둘러 자리에 내려서는것을 보면 곧 독창회가 시작될것 같았다.

드디여 객석의 불이 서서히 꺼지고 진달래꽃을 수놓은 무대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관현악단이 나타났다. 고진아는 재빨리 맨 뒤쪽의 드람수로부터 피아노연주가는 물론 바이올린과 첼로연주가들모두를 훑어보았다. 저들속에도 어머니 박수미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가.…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 그들이 이 자리에 있을수 없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웬 일인지 모두가 불행한 자기 어머니를 알고있는듯이 생각되는것이였다.

사회를 맡은 방송원이 말했다.

《오늘 우리는 나라없는 민족의 설음을 안고 13살 어린 나이에 인생을 빛내줄 밝은 태양을 목메여 부르며 무대에 나선 이래 장장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 변함없이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태양의 노래를 불러온 김은영선생의 80돐독창회를 가지게 됩니다. 곡절도 많은 한생에 눈물로 불러온 노래는 그 얼마며 밝은 희망과 환희에 넘쳐 심장으로 부른 노래는 또 그 얼마이겠습니까!… 그럼 오늘의 뜻깊은 독창회의 주인공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0세기의 마지막 이해에 흘러간 세월의 자취를 더듬으며 사연많은 노래를 안고 나오는 김은영선생입니다!…》

폭풍같은 박수가 터졌다. 조명등의 불빛이 무대에로 나서는 주인공을 휘감고 촬영가들이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사진기의 섬광들이 번쩍이였다. 고진아는 두손을 가슴에 모두어쥐고 무대에 나서는 김은영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80고령에 그처럼 밝고 순수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한때 심하게 다친 후과로 한손에 짚고있는 지팽이만 아니라면 여전히 선녀같은 자태라고 해야 할것이다. 문득 수십년전에 눈을 감은 어머니의 비참한 정상과 대비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편중독으로 흐리마리해진 두눈에 초물같은 눈물을 찔끔거리고있었을 어머니…

관현악이 울리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에야 마음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이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안겨주신 참된 삶과 행복을 터치는 랑만적인 노래의 선률이 그의 가슴에도 물결처럼 흘러들기 시작하였다.

 

봄이 와서 이 강산에 꽃이 피는가

하늘맑아 우리 기쁨 넘쳐나는가

아 수령님품속에서

이 행복 이 기쁨이 넘쳐흐르네

 

사회자가 말했듯이 로가수는 자기가 부를 곡목들을 흘러간 세월의 발자취를 더듬어 선택한듯 하였다. 이 나라의 남녀로소 그 누구나 잘 아는 《봉선화》의 애절한 흐느낌이 파동쳐올 때 고진아는 비참한 어머니의 운명을 생각하며 다시금 눈굽이 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머니가 남긴 사진들속엔 저 로가수와 박수미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적지 않다. 한때엔 서로 껴안고 눈물을 뿌리던 그들의 운명은 얼마나 판이하게 되였는가?!…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락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로가수는 불우했던 이 나라 녀인들의 운명을 담아 흐느끼고있었다. 아직 고진아는 이 노래를 이렇듯 가슴저미는 눈물속에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것은 그대로 어머니의 비참한 한생에 대한 노래인듯이 여겨졌다.

림현순이 울고있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서로의 체온과 뜨거운 피의 흐름이 마주잡은 그 손을 통하여 전해졌다. 그것이 또 고진아를 눈물짓게 하였다. 아무런 혈연도 없는 그들이였지만 이 시각 그들은 눈물의 노래속에 서로의 마음을 잇게 되였다.

《봉선화》가 끝나자 사회자는 김은영선생이 한때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에서 전쟁승리를 위하여 헌신한 로병이라고, 그가 어떻게 우리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당을 따라 사선의 고비를 헤쳐왔는가를 박진동지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자고 했다. 그러자 기다리고있던 박진이 나섰다.

백발의 그는 역시 백발을 얹고있는 로가수와 수십년만에 만난 벗들처럼 뜨겁게 인사를 나누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독창회무대에 오른 옛 전우를 보니 감회가 깊다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하면서 전쟁시기 한 녀배우가 남으로 가자고 꼬드겼지만 기어이 수령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를 찾아오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고진아의 어머니 박수미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은영이며 고종우를 비롯한 그 사람들이 어머니를 버린것이 아니라 어머니자신이 자기의 희망과 미래를 버리고 달아난 이야기,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로동신문》에 실린 기사를 통하여 만단사연을 알고있었지만 고진아는 머리를 떨구고 옷고름만 쥐여뜯고있었다. 아, 아 어머니, 한순간에 의리를 저버리고 희망을 버리고 자신을 버린 어머니! 자신마저 버렸으니 이후에 차례진 비참한 운명은 너무도 당연한것이였다.

노래는 계속되였다. 삶과 로동, 사랑과 행복에 대한 노래들이였다.

 

천년을 만년을 번영할 내 나라

인민들의 념원이 아름답게 꽃피네

사람마다 화목하고 서로서로 이끌어나가니

아 내 고향 행복의 노래소리 정다운

예가 바로 살기 좋은 나의 고향

사회주의락원일세

 

가수는 민족가극《견우직녀》와 《금란의 달》의 아리아들도 불렀다. 흘러간 시대와 년대들을 뜨겁게 추억케 하는 노래들이였다.

매 곡목이 끝날 때마다 우뢰같은 박수가 터지고 꽃다발을 든 옛지기들, 제자들이 달려나가 가수를 부둥켜안으며 축하를 했다. 어언 70고개에 올라선 리연영(한때 모스크바연수생이였던 녀성이라고 현순이 귀띔했다.)이도 꽃다발을 안고 달려나갔다. 축하의 인사말은 끝이 없을상 싶었다. 로가수의 귀전에 무어라 속삭이고 내려온 리연영은 림현순의 옆자리에 앉더니 눈굽을 찍으며 말했다.

《내가 왜 우는지 아세요? 저 김은영선생을 보면서 한때 쏘련에서 유명하던 녀가수 아부호바를 생각했어요. 그의 70돐독창회가 오페라극장에서 열렸는데 노래가 시작되여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그만 장내는 울음바다가 돼버리지 않았겠어요. 왜냐하면 그렇듯 명성높고 사랑받던 녀가수가 나이와 함께 조락하여 옛날 그리도 맑고 우아하게 노래부르던 그 녀가수가 옳긴 옳은가 의심하지 않을수 없기때문이였죠.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불쌍하여 울었어요. 인간의 힘으로써는 어찌할수 없는 세월의 무정함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할가… 그러나 나는 지금 너무도 기쁘고 황홀해서 또 눈물이 나는군요. 현순이, 보세요. 어머니가 얼마나 밝고 생신하고 귀엽기까지 한가!… 우리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사랑이 이처럼 고령의 가수도 청춘으로 다시 내세워주셨으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을수 있겠어요. 진정 우리 나라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이 안예요? 경애하는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이룰수 있는 기적이라고 할가…》

그때 로가수는 조기천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휘파람》을 부르고있었다.

80고령에 수줍음타는 처녀들의 기쁨과 행복을 그리도 방불하게 재현하는데는 만장이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폭풍같은 박수가 터지고 허리굽혀 거듭 인사를 하고난 끝에 김은영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마음속으로 노래를 불러주세요. 우리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안겨주신 참되고 복된 삶을 노래합시다. 저는 한생 노래를 불러온 한 예술가로서 오늘 세상에 대고 웨치고싶습니다. 이 세상에 명성높은 예술가들은 많고 또 많습니다. 이름을 날리고 꽃다발과 박수갈채에 묻혀산 예술가들은 많아도 위대한 수령님의 총애와 인민의 사랑을 받은 예술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세상 제일 큰 사랑을 안고사는 예술가, 가수입니다. 한때 저를 두고 예술에서도 사랑에서도 불행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이 세상 가장 위대하신 우리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고 태양의 노래를 부르는 저를 보십시오. 태양의 가수로 사는것이상 더 큰 행복이 어데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복되게 살아온 저의 한생을 노래합니다. 온 세상이 부러워하라고 노래불러 자랑하고있는것입니다!》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고있다. 그러자 만장이 또 열렬한 박수로 화답해주었다. 다시 관현악이 울린다. 처음부터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며 흐르는 그 음악에 벌써 로가수는 눈물이 글썽해지고있다.

 

북두칠성 저 멀리 별은 밝은데

아버지장군님은 어데 계실가

창문가에 불밝은 최고사령부

장군님 계신 곳은 그 어데일가

 

전체 관중이 노래를 따라불렀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지금 이 시각에도 멀고먼 선군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을 그리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기 바쁘게 무대로 걸어나가는 한 로인이 있었다. 꽃다발을 안고 조명등의 밝은 불빛에 눈이 먼 사람처럼 나가고있었다. 사회를 맡은 방송원은 물론 장내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오직 무대우의 주인공만이 그를 얼싸안을듯 앞으로 나섰다.

두사람은 잠시 아무말없이 마주서있다가 뜨겁게 두손을 맞잡았다.

《여러분!》 드디여 로인이 객석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저는 비전향장기수 한광수입니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 만장이 슬렁거리자 그는 눈물로 젖는 얼굴에 애써 웃음을 떠올렸다.

《한때 저는 이 김은영선생과 함께 서울 한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었습니다. 전 력사교원이였구 김선생은 음악교원으로 말이죠. 그때 일들에 대하여 얘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시간도 제한되여있겠구… 그래서 한가지만 말하고자 합니다. 우린 전쟁과 함께 갈라져 반세기만에 다시 만났는데… 그동안 저는 철창속에서 한생의 거의 전부를 보냈습니다. 말하자면 청춘도 사랑도 다 잃었다고 볼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소리높이 자랑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자 김선생도 말했지만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온 한생보다 더 큰 자랑과 행복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김선생은 우리의 이 마음을 노래불러주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차고 넘치는 하많은 사연을 다 노래로 불러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터지는 폭풍같은 박수속에 그는 무대를 내렸다. 절절한 관현악의 울림이 그가 못다한 말을 풍만한 화음으로 이어주고있었다.

이렇게 독창회의 시간은 흘러갔다. 노래와 함께 흘러간 세월을 더듬고 래일을 내다보며 모든 사람이 시간의 흐름을 감감 잊고있는듯 싶었다.

고진아가 자리에서 일어선것은 마지막곡목을 앞둔 때였다. 그 녀자의 옷차림이 먼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의혹을 자아냈다. 사회를 맡은 녀방송원은 아무런 사전약속도 없었으므로 마이크앞에서 굳어져있었다. 장내엔 숨소리 하나 없었다. 그런데 웬 일인지 고진아는 무대우로 오르자 갑자기 못박혀버리고 말았다. 로가수에게로 향한 그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번뜩이고있었다. 무엇인가 소리치고싶으나 목이 콱 메여 모지름쓰는것 같았다. 침묵… 그것이 무던히도 오래 계속되는듯 했다.

《축하드려요.》 이윽고 고진아가 눈물로 속삭인 말이였다. 《전… 고진아예요. 저의 축하도… 받아주시겠죠?》

《진아!》 김은영의 목소리도 젖어들고있었다. 《그런데 어째 그러구 서있지?… 어서 와야지. 진아!》

《선생님!》

고진아가 꽃다발을 안은채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로가수가 장년의 녀인을 부둥켜안자 장내가 떠나갈듯 다시 박수가 터졌다. 비록 그들- 김은영과 고진아의 눈물에 대해서는 다 알지 못하나 흘러간 세월과 더불어 남달리 뜨거운 사연이 있으리라는것만은 누구나 다 짐작하였던것이다. 고진아가 말했다.

《선생님, 다 들었어요. 늦었지만… 인젠 다 알게 됐어요. 선생님, 이제부턴 어머니라고 불러도 되겠죠?!》

《그래, 그래야지.》은영은 진아를 껴안고 그의 눈물에 젖은 두눈을 들여다보며 속삭이였다.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진아, 늦었지만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태양을 떠나 우린 못살아!…》

조명등의 불빛들이 껌벅거리고 다시 시작된 관현악의 선률도 목메인 흐느낌소리처럼 울렸다. 제자들인 인민배우, 공훈배우들이 또 무대로 달려나왔다. 그들모두가 한덩어리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품고있는 생각도 모두다 말을 하고

움터나는 희망도 터놓습니다

하늘처럼 믿고삽니다 장군님을 믿고삽니다

천년세월 흐른대도 김정일장군님만을

 

한생은 길지 않다. 그리고 짧지도 않다.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순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영원히 이어지기도 한다. 그 한생이 길었던가 짧았던가, 행복했던가 불행했던가를 가르는것은 사랑이다. 사랑을 모르는 삶은 허무하고 비참하나 끝까지 사랑을 바치고 사랑을 안고산 사람은 행복하다. 참된 삶과 복된 삶은 오직 진실한 사랑에서만 온다.

 

하늘처럼 믿고삽니다 장군님을 믿고삽니다

천년세월 흐른대도 김정일장군님만을

 

이것은 독창회의 마지막곡목이였다. 다난스러운 한생을 걸어온 녀가수 김은영이 인생의 총화로 선택한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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